•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빌렘 플루서의 매체미학

N/A
N/A
Protected

Academic year: 2021

Share "빌렘 플루서의 매체미학"

Copied!
34
0
0

로드 중.... (전체 텍스트 보기)

전체 글

(1)

: 기술이미지와 사진

박 상 우*

1)

Ⅰ. 들어가는 말

Ⅱ. 기술이미지의 특수성

Ⅲ. 장치의 코드

Ⅳ. 인간의 코드, 미디어의 코드

Ⅴ. 기술이미지 비평

Ⅵ. 나오는 말

Ⅰ. 들어가는 말

빌렘 플루서(Vilém Flusser)는 서구 미디어 학계에서는 중요한 미디어 이론 가로 알려져 있지만 미학, 미술사 분야에서 많이 언급되지 않아 왔다. 플루서가 1980년대 기술이미지(사진, 영화, 비디오, TV, 디지털 이미지 등)에 대한 중요한 저서인 사진철학을 위하여 Pour une philosophie de la photographie (1983)와

* 중부대학교 조교수

이 논문은 한국미학예술학회 2015년 봄 정기학술대회 기획심포지엄에서 발표한 원고를 수정 보완하여 게재한 것임.

(2)

기술이미지의 세계로 Into the Universe of Technical Images (1985)를 저술했 음에도, 그리고 1970년대부터 유럽의 여러 대학에서 기술이미지에 대한 강의를 해왔음에도 이미지 연구자들은 그의 철학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미술 이론가 마르타 쉬벤데너(Martha Schwendener)는 이 점을 지적한다. “플루서의 동료인 독일 미디어 이론가 프리드리히 키틀러(Friedrich Kittler)는 미국 미술사 학계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음에 반해 플루서는 거의 무시되어 왔다.”1) 이것 은 동시대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의 사진론이 미국에서 그의 열렬한 독자 들 ― 수잔 손탁(Susan Sontag),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 등 ― 에 의해 ‘과도하게’ 알려진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2) 이 같은 사정은 플루서가 죽 기 전 15년이나 거주하면서 기술이미지에 대해 여러 차례 강연을 했던 프랑스에 서도 마찬가지였다.3)

플루서는 왜 이처럼 미학, 미술사학계에서 주목을 받지 못했을까? 그것은 먼저 그의 철학이 다양한 학문분야를 가로지르고 있음에도 주로 커뮤니케이션학 의 미디어 이론에 흡수되어왔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쉬벤데너는 플루서의 철학이 독일에서는 우선 독일 미디어 스터디의 커리큘럼에 흡수되었고 1970년대 미국에 서는 미디어에 대한 여러 강연4)을 통해 미국 미디어 학계에 소개되면서 소위 ‘미 디어 이론’에 수용되었다고 지적했다.5) 게다가 그의 매체미학이 강조하는 테크놀 1) Martha Schwendener, “Vilém Flusser's Theories of Photography and Technical Images

in a U.S. Art Historical Context”, in: Flusser Studies, Issue 18, 2014, pp. 1-19, p. 2.

2) “미국에서 바르트는 수잔 손탁, […] 그리고 옥토버 October 잡지의 공동 창간인인 로잘 린드 크라우스, 아네트 마이클슨(Annette Michelson)의 특별한 지지를 받았다. 플루서는 독일에서 발간된 대부분의 사진이론 선집에 […] 들어가 있으나 미국의 사진이론 선집에는 거의 포함되지 않았다.” 같은 책, p. 3.

3) 프랑스 사진이론가인 마크 르노(Marc Lenot)는 이 같은 사실을 다음과 같이 피력한다.

“플루서는 독일과 브라질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지만 […] 프랑스의 [이미지 이론]에 미친 영향은 거의 없다.” Marc Lenot, “Jouer contre les appareils: pour une définition de la photographie”, in: L'Expérience photographique, Eléonore Challine, Laureline Meizel, Michel Poivert (dir.), Publications de la Sorbonne, 2014, pp. 28-29.

4) 특히 버팔로 뉴욕주립대에서 했던 뉴미디어 대한 강연과 ‘열린 회로: 텔레비젼의 미래’라는 주제로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개최된 심포지엄의 강연 (1974)이 중요하다.

5) Martha Schwendener, 앞의 책, p. 10.

(3)

로지, 장치, 프로그램, 정보라는 ‘덜’ 미학적인 범주들 때문에 미학자와 미술사학자 의 관심을 끌지 못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 같은 그의 ‘차가운’ 범주들은 바르트 의 푼크툼, 죽음, 어머니, 정서라는 ‘따뜻한’ 범주들과는 대조된다.

하지만 플루서의 이미지(사진이미지, 기술이미지) 이론은 ― 그의 주장의 급 진성에도 불구하고 ― 현대 이미지 철학에 유의미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어떤 점이 새로울까? 지금까지 대부분의 이론가들은 기술이미지 에 대해 주로 ‘보는 자’의 입장에서 비평해왔다. 이들은 ‘이미지 앞에서(devant l’image)’6) 이미지가 보는 자의 지성과 감성에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효과에 주목 했다. 하지만 플루서는 이들과 달리 기술이미지를 이미지 ‘생산’의 관점에서 접근 한다. 그의 입장은 ‘이미지 앞’보다도 ‘이미지 전(前)(avant l'image)’의 과정, 즉 이미지가 생산되는 과정에 무게를 더 둔다. 나아가 그는 기술이미지 생산의 두 주체인 인간과 장치 중에 장치의 분석이 기술이미지 분석의 핵심이라는 독특한 입장7)을 제시했다. 따라서 플루서는 이미지 자체의 분석에만 머물던 기존의 기술 이미지 비평을 이미지의 원인인 장치에까지 확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부분의 사진이론은 이미지와 그것의 맥락만을 분석하는데 그친다. 이에 반해 플루서의 이론은 더욱 넓은 영역을 포괄한다. […] 그는 사진을 ‘이미지 자체’에 위치시키는 덫에 빠지지 않고 카메라와 장치라는 개념에까지 확장시켰다.”8)

또한 기술이미지를 예술, 광고, 커뮤니케이션 등 특정 영역에만 한정시켜서 분석했던 기존의 이론들과 달리 플루서는 이 이미지를 후기산업사회의 새로운

‘언어’ 혹은 그의 표현대로 ‘코드’로 파악한다. 그에 따르면 기술이미지는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코드에 속하기 때문에 세계에 대한 우리의 모든 경험과 6) 프랑스 철학자, 미학자인 조르쥬 디디-위베르망(Georges Didi-Huberman)의 저서 제목이 다. Georges Didi-Huberman, Devant l'image. Questions posées aux fins d'une histoire de l'art, Collection ≪Critique≫, 1990.

7) “사진이론과 사진철학이 주로 재현(representation) 그리고 사진이미지가 실재와 맺는 관계

― 크라우스, 뒤부아(Dubois), 손탁, 바르트, 쉐퍼(Schaeffer) ― 에 주목했다면 사진 프로 세스 자체에 관심을 보인 학자는 매우 드물다: 벤야민 특히 플루서일 뿐이다.” Marc Lenot, 앞의 책, p. 31.

8) Martha Schewendener, 앞의 책, p. 9.

(4)

지각방식을 바꾸고 우리가 처한 존재방식까지 뒤흔들어 놓는다. “기술이미지가 문 자를 대체할 때 우리는 세계와 우리 자신을 다르게 경험하고, 지각하며, 가치 평 가한다. […] 주위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은 우리 경험, 지각, 가치, 행동방식 이 변동하고 있으며 세계 속에 있는 우리 존재가 변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9) 따라서 그의 기술이미지 논의는 사진이론, 영상이론, 매체미학에 머물지 않고 현 대사회에 대한 ‘문화비평’과 ‘현대철학’에 맞닿아 있다. 그의 기술이미지 이론은 다 른 어떤 이미지 이론보다도 훨씬 포괄적이며 심층적이다.

본 연구가 이 같은 그의 기술이미지 이론을 대상으로 제기하는 질문은 다음 과 같다. 기술이미지가 전통이미지 또는 문자와 근본적으로 다른 특징은 무엇일 까? 기술이미지는 실재의 흔적일까 아니면 상징일까?(기술이미지 특수성), 만약 상징이라면 기술이미지는 이미지 생산, 배포, 수용 단계에서 어떤 방식으로 상징 화가 될까?(기술이미지의 코드화), 이처럼 코드화된 기술이미지를 올바로 비평할 수 있는 새로운 비평 기준은 무엇일까?(기술이미지 비평), 그리고 이 기술이미지 비평은 후기산업시대의 문화비평, 혹은 비평철학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문화비평 으로서의 기술이미지 비평).

결국 본 연구는 플루서의 핵심 개념인 기술이미지를 대상으로 이 새로운 종 류의 이미지가 기존의 재현 매체인 그림, 문자와 어떻게 구별되는지를 드러내고 자 한다. 또한 기술이미지가 여러 과정에서 코드화되는 다양한 방식과 이처럼 코 드화된 이미지를 올바르게 비평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이 연구는 플루서의 이미지 이론이 사진 및 기술이미지 이론의 전체 지형도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를 자리 매김하고자 한다. 나아가 기술이미지에 대한 플 루서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국내에서 사진미학, 영상미학, 매체미학에 관 한 논의를 활성화하는데 목표를 둔다.

9) Vilém Flusser, Into the Universe of Technical Images, Trans. Nancy Ann Roth,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11, p. 5.

(5)

Ⅱ. 기술이미지의 특수성

플루서는 기술이미지를 독립적으로 분석하지 않고 기존 매체인 전통이미지 및 문자와 비교하여 분석한다. 이 비교를 통해 그는 기존의 다른 이론가들(바르 트, 앙드레 바쟁(André Bazin), 인덱스주의자)과 마찬가지로 기술이미지가 그림과 문자와 공유하는 동일성보다는 이들 매체와 구별되는 차이를 강조한다. 그에 따 르면 기술이미지는 전통이미지 혹은 문자와 역사적으로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다른 매우 특수한 매체이다. 그는 왜 이처럼 기술이미지의 특수성을 강조할까?

그것은 그림 및 문자와는 완벽히 다른 코드인 기술이미지가 지배하는 후기산업사 회는 이전 시대와는 모든 측면에서 구별되는 세계라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해서이 다. 이를 통해 그는 이전 산업시대(역사시대)와 전혀 다른 새로운 문화비평과 새 로운 철학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플루서는 이처럼 후기산업시대의 문화비평과 철학의 정립이라는 더욱 넓은 이론적 맥락에서 기술이미지의 존재론, 더 구체적으로는 최초의 기술이미지인 사 진 존재론의 논의에 참여한다. 그의 사진 및 기술이미지 이론은 사진 존재론의 전체 지형도10)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할까? 플루서는 기술이미지의 존재론에 대해 자신의 관점을 밝히기 전에 우선 기술이미지를 바라보는 기존의, 그의 표현대로,

‘순진한(naive)’11) 관점을 비판한다. 그 관점이란 거울론12)과 인덱스론이다. 플루 서가 사진철학을 위하여와 기술이미지의 세계로를 저술할 1980년대 전반에는 10) 사진의 존재론은 사진이 지시체와 맺는 관계에 따라 세 가지로 나뉜다. 그것은 19세기 미 메시스(mimesis) 이론(사진은 실재의 거울), 20세기 중반기의 코드(code) 이론(사진의 실재 의 변형), 1970년대 후반 인덱스(index) 이론(사진은 실재의 흔적)이다, Philippe Dubois, L'acte photographique, Nathan, Paris, 1990, p. 45.

11) Vilém Flusser, Pour une philosophie de la photographie, Paris: Circé, 1996, p. 45 (이하 Pour une philosophie de la photographie의 약자인 P.P.라 표기함)

12) 사진이 거울처럼 실재와 왜 유사한가에 대한 설명은 다음을 참조. Sang-Woo Park,

“Identity and identification through photography,” 2007 conference paper in: The Nordic Network for the History and Aesthetics of Photography (Keynote speakers; Michel Frizot, Abigail Solomon-Godeau, Olivier Lugon).

(www.hf.uib.no/nnhap/confpapersparis2007.html).

(6)

당시 새롭게 대두한 인덱스론이 서구의 이미지 미학, 사진이론, 미술이론에서 강 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플루서는 자신의 여러 글에서 한 번도 인덱스론 을 직접 거론하지 않았지만13) 기술이미지에 대한 인덱스 관점을 간접적으로 격렬 하게 비판했다.

플루서는 우선 기술이미지가 지문(指紋)14)의 경우처럼 원인(실재)과 결과(이 미지)의 시스템에 속한다는 인덱스론의 입장을 거론한다. “사실 외형적으로 보면 기술이미지는 전혀 해석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면 기술이미지의 지 시체가 이미지의 표면위에 자동으로 반사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 치 지시체(손가락)가 원인이고 이미지(각인)가 결과인 지문15)의 경우와 같다.”16) 그는 이어서 사진이 왜 인과관계 시스템처럼 보이는지를 역시 인덱스론의 관점에 서 묘사한다. “[사진의] 광학, 화학, 기계적 장치는 이 세계에서 반사된 태양광과 다른 광선을 감광판 위에 고정시킨다. 그리고 그것의 결과로서 기술이미지가 생 산된다. 다른 말로 하면 기술이미지는 실재 혹은 지시체와 같은 위상에 놓인 것 처럼 보인다.”17)

플루서는 기술이미지에 대한 이 같은 관점은 사진을 보는 자(spectator)에게 두 가지 환영(illusion)을 불러일으킨다고 지적한다. 첫째, 기술이미지가 지시하는 이 세계는 기술이미지의 ‘최종’ 원인이며 이 세계와 기술이미지는 어떤 식으로든

‘인과관계의 끈(une chaîne causale)’18)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환영이다. 이 ‘끈’은

13) 플루서는 일반적으로 각주와 참고문헌을 제시하지 않고 글을 쓰기 때문에 그의 사상의 기 원과 영향, 혹은 그가 비판한 대상과 인용한 대상을 추적하기란 쉽지 않다.

14) 미술비평가인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는 지문을 발자국, 의학적 증상과 함께 인덱스 범주에 포함시켰다: “인덱스는 지시체가 날인을 통해 남긴 흔적인데 그것은 발자 국, 지문, 의학적 증상을 포함한다.” Rosalind Krauss, “Nightwalkers,” in: Art Journal 45, Spring 1981, p. 35.

15) 지문을 범죄수사학이 아니라 이미지 철학의 관점에서 접근한 연구는 다음을 참조. Sang-Woo Park, “Les empreintes digitales et Francis Galton”, in: Sociétés & représentations, n° 28, 2009, pp. 207-219.

16) P.P., p. 16.

17) P.P., p. 16.

18) P.P., p. 16.

(7)

철학자 찰스 샌더스 퍼스(Charles Sanders Peirce)가 언급한 지시체와 기호사이의

“물리적 연결 관계(une relation de connexion physique)”19)를 연상시킨다. 둘째, 실재의 흔적 혹은 거울인 기술이미지는 세계를 가리는 불투명한 ‘이미지’ 혹은 ‘스 크린’이 아니라 세계로 향한 투명한 ‘창문’이라는 환영이다.

플루서는 이 같은 환영들 때문에 기술이미지를 보는 자는 이 이미지에 대해 올바른 비평을 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그에 따르면 기술이미지의 관객은 이것을

‘이미지’가 아니라 마치 ‘실재’처럼 여긴다. 관객은 또한 자신의 눈에 부여하는 만 큼의 신뢰를 이 세계를 투명하게 반영한다고 믿는 기술이미지에게도 부여한다.

게다가 관객은 기술이미지의 ‘투명한 창문’ 너머에 있는 지시체만을 응시하고 이 이미지의 생산과정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다. 플루서는 기술이미지에 대한 이 같 은 잘못된 비평의 태도 혹은 비평의 부재는 현재 시점에서 매우 위험하다고 진단 한다. 왜냐면 지금은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행위에서 기술이미지가 문자를 몰아내 고 전면적인 위치를 차지했기 때문이다.20)

플루서는 이처럼 1980년대 기술이미지 미학의 한 패러다임인 지시체주의, 인덱스, 리얼리즘 이론을 비판한 다음 자신의 기술이미지 존재론을 제시한다. 그 는 기술이미지의 특수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 새로운 이미지가 기존의 전통이미지 와 다른 독특한 특징을 역사적, 존재론적 관점에서 제시한다. 먼저 그는 역사적 관점에서 전통이미지는 문자보다 수만 년 앞서 등장했고 기술이미지는 문자보다 수천 년 늦게 탄생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전통이미지는 전(前)-역사 (pre-history), 문자는 역사(history), 기술이미지는 탈(脫)-역사(post-history) 시대 에 각각 속하기 때문에 기술이미지는 역사적 관점에서 그림과는 완전히 다른 시 기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21) 다음으로 플루서는 기술이미지가 전통이미지와 이 처럼 역사적으로 다를 뿐만 아니라 존재론적으로도 다르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 면 이 두 이미지는 ‘추상(abstraction)’의 정도가 서로 현격히 다르다. 전통이미지

19) Philippe Dubois, L'acte photographique, p. 46.

20) P.P., pp. 16-17.

21) P.P., pp. 15-16.

(8)

가 구체적 세계에서 추상된 1단계 추상이라면 기술이미지는 구체적 세계가 아니 라 문자에서 추상된 3단계 추상이다.22) 다르게 표현하면, 기술이미지는 기술, 즉 장치에 의해 생산된 이미지이고 장치는 과학적 텍스트(문자)를 적용하여 생산된 결과이기 때문에 기술이미지는 (과학적) 문자의 간접적인 산물이다.23)

플루서는 전통이미지와 기술이미지는 이처럼 ‘출생신분’이 서로 완전히 다르 기 때문에 그들이 의미하는 대상인 지시체도 판이하게 다르다고 주장한다. “전통 이미지는 현상을 의미하고 기술이미지는 개념을 의미한다.”24) 구체적 세계에서 태어난 그림은 이 세계의 현상을 가리키고 과학적 텍스트에서 태어난 기술이미지 는 이 텍스트의 개념을 가리킨다. 따라서 기술이미지는 세계, 실재, 현상이 아니라 플루서의 표현대로 ‘개념들로 이뤄진 상징적 복합체(des complexes symboliques)’

를 재현한다. 기술이미지는 ‘텍스트의 메타코드(des métacodes de textes)’로 이 메타코드는 외부세계가 아니라 다른 텍스트를 지시한다. “사진의 진정한 지시체는 […] 프로그램화된 개념이다. […] 사진에서 우리는 추상적 개념들로 이뤄진 상징 적 복합체 또는 상징적 사태로 코드화된 담론과 관계한다.”25)

플루서는 모든 이미지는 물론 상징적 특징을 지닌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에 따르면 이미지를 보는 자가 전통이미지와 기술이미지에서 상징적 특징을 파악하 는 정도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는 전통이미지에서 상징적 특징(이미지의 의미)을 찾아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말한다. 왜냐면 그림과 지시체 사이에는 이 것을 중개하는 인간(화가)이 있기 때문이다. 화가는 그림에 들어갈 상징을 머릿속 에서 고안한 다음 그 상징을 붓을 이용해 캔버스 위에 옮겨놓는다. 따라서 그림 의 상징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화가의 머릿속에서 발생한 코드화’26)를 풀면 된다.

결국 플루서는 전통이미지를 해석하는 데는 이 이미지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한 22) 플루서에 따르면 문자는 1단계 추상인 그림에서 추상된 2단계 추상이기 때문에 문자에서

추상된 기술이미지는 3단계 추상이다.

23) P.P., p. 15.

24) P.P., p. 15.

25) P.P., p. 48.

26) P.P., p. 17.

(9)

인간의 ‘의도’를 밝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반면 플루서는 기술이미지에 들어있는 상징을 해독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 다고 말한다. 왜냐면 기술이미지에서 상징화 혹은 코드화는 인간(사진가)의 머릿 속뿐만 아니라 장치 내부에서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기술이미지 이론에서 지시체 주의와 인덱스 이론은 장치 외부에서는 인간의 코드가 개입하지만 장치 내부에서 는 어떤 코드도 개입하지 않는다고 말한다.27) 카메라 내부에서 발생한 이미지 생 산과정은 앙드레 바쟁의 표현대로 ‘자동생성(genèse automatique)’28)의 과정이며 바로 이 같은 생산과정의 자동성 때문에 이들은 사진이 객관성을 지닌다고 주장 한다.

리얼리즘 옹호자들은 지시체에서 반사된 빛이 카메라로 들어가서(input) 사 진으로 나오기까지(output)의 프로세스는 연속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플루서는 이 과정은 결코 연속적이지 않으며 거기에는 깊은 단절이 있다고 주장 한다. 그에 따르면 피사체에서 반사된 빛이 카메라 안으로 들어가 감광판을 노광 해 사진이 형성되는 과정은 인간에게 감춰져 있다. 인간은 셔터가 열리기 전과 후에는 카메라와 사진에 개입할 수 있지만 일단 셔터 버튼을 누르고 나면 카메라 내부인 ‘어두운 방’에서 벌어지는 과정은 인간에게 철저하게 미지(未知)의 과정이 다. 때문에 플루서는 카메라(혹은 사진)를 ‘블랙 박스’라고 지칭했다.29) 하지만 그 에 따르면 이 블랙박스 내부에서 벌어지는 과정은 인간이 완벽히 배제된 결코 객 관적인 과정이 아니며 오히려 인간이 ‘간접적으로’ 개입해 코드를 심어 넣는 과정 이다. 그것은 기술이미지의 코드화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과정이다. “기술이미 지의 코드화는 이 블랙박스 내부에서 발생한다.”30) 따라서 그는 기술이미지 속에 27) 바르트의 유명한 테제인 ‘사진은 코드없는 메시지(message sans code)’. Roland Barthes,

“Le message photographique”, in: Communications, vol. 1 no.1 1961, p. 128.

28) André Bazin, “Ontologie de l'image photographique” (1945), in: Qu'est-ce que le cinéma?, Paris, Les Éditions du Cerf, Collection 7ème Art, 2002, p. 13.

29) 반면 바르트는 사진을 ‘어두운 방’ ‘블랙 박스’ 대신에 ‘밝은 방’이라고 명명했다. 바르트의

‘밝은 방’에 대한 비판적 연구에 대해서는 박상우, 롤랑 바르트의 어두운 방: 사진의 특수 성 , 미학예술학연구, 제32집 (2010) 참고.

30) P.P., p. 17.

(10)

숨어있는 상징을 해석하는 요체는 바로 이 블랙박스 내부에서 발생하는 것을 드 러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플루서는 자신의 기술이미지 존재론에서 거울론, 인덱스론, 지시체주의, 리얼리즘을 비판하고 코드론을 제시한다. 그는 미메시스 대신에 변형을, 창문 대 신에 스크린을, 투명성 대신에 불투명성을, 세계 대신에 개념을, 코드없는 메시지 대신에 코드화된 메시지를 주장한다. 하지만 기존의 코드론자들이 ‘사진과 실제의 차이’, ‘사진은 실제의 효과’ ‘카메라의 가짜 중립성’을 주장하며 주로 사진에 개입 하는 문화, 이데올로기, 주관성이라는 코드에 주목했다면, 플루서는 이들이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던 장치(카메라와 감광판)에 감춰진 코드에 주목했다.

결국 그가 기술이미지에서 언급하는 코드, 상징 혹은 ‘상징적 복합체’는 인 간의 코드(의도, 관점, 이데올로기)보다는 주로 장치의 코드를 가리킨다. 바로 이 장치의 코드가 기술이미지 코드화의 핵심이다. 따라서 장치는 결코 자연적, 객관 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인위적, 반(反) 객관적이다. 장치 내부에는 인간이 만든 과 학적 개념들인 코드가 프로그램 형식으로 숨어 있으며 이 장치가 생산한 모든 기 술이미지에는 이 개념들의 흔적이 필연적으로 묻어있다. 그렇다면 기술이미지의 장치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과학적 개념들과 코드들이 담겨있을까? 그리고 장치는 이 개념들을 이미지에 어떤 식으로 코드화할까?

Ⅲ. 장치의 코드

장치가 기술이미지를 코드화하는 방식을 밝히기 위해서는 먼저 장치가 정확 히 무엇을 의미한지를 규명해야 한다. 플루서는 산업사회를 특징짓는 핵심 개념 으로 노동(travail), 그리고 노동에 사용되는 수단으로 도구(outil)와 기계를 들었 다. 반면 후기산업사회를 특징짓는 핵심 개념으로 정보, 그리고 정보를 생산하는 수단으로 장치를 지적했다. 그렇다면 도구/기계와 장치는 어떻게 다를까? 그에 따 르면 도구와 기계의 의도는 ‘세계를 변형시키는 것’인데 반해, 장치의 의도는 세계

(11)

자체가 아니라 ‘세계에 대한 의미를 변형시키는 것’이다.31) 도구와 기계의 의도는 물리적인데 반해 장치의 의도는 ‘상징적’이다.

플루서는 후기산업사회를 열어젖히는 최초의 장치가 바로 사진기라고 언급 한다. 사진기라는 장치는 이전 사회에서 바늘(도구)이 가죽(세계)을 변형하여 구 두로 만드는 방식의 일을 수행하지 않는다. 사진기(장치)는 세계 자체를 물리적으 로 변형시키는 대신에 세계에 대한 상징(코드, 정보)을 생산한다. 사진기는 지지 체(종이) 위에 세계에 대한 상징을 부여하며(정보의 코드화) 그 결과로 상징을 지 닌 오브제이자 ‘상징적 표면’인 사진을 생산한다. “사진기(그리고 장치 일반)는 상 징 ― 상징적 표면 ― 을 생산한다.”32) 따라서 플루서는 후기산업사회의 최초의 장치인 사진기에서 제작된 사진은 산업사회의 도구나 기계에서 생산된 오브제와 는 근본적으로 다른 후기산업사회의 최초의 오브제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상징을 생산하는 사진기는 종이의 표면을 어떻게 ‘상징적 표면’으 로 만들까? 사진기는 사진에 어떤 상징을 어떤 방식으로 부여할까? 한마디로 장 치는 사진을 어떻게 코드화할까? 플루서에 의하면 사진기라는 장치는 단단한 재 질로 만들어진 어두운 상자(하드웨어)이고 이 상자는 프로그램(소프트웨어)을 지 니고 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은 사진기가 생산할 수 있는 모든, 플루서의 표현 대로, ‘잠재적, 가능적 사진들(photographies possibles, virtuelles)’33)을 포함하고 있다. 프로그램이 지닌 이 잠재적 사진들의 수는 무수히 많지만 결코 무한하지는 않다. 바로 이 잠재적 사진들의 전체가 사진기 장치의 ‘기억’을 구성한다.34) 인간 이 사진기 버튼을 누르면 사진기는 자신의 프로그램에 있는 잠재적 이미지를 사 진 이미지로 구체화한다. 정보를 지닌 새로운 사진들이 사진기를 통해 많이 생산 될수록 사진기 프로그램 안에 있는 소위 ‘잠재적’ 이미지들은 더욱 소진된다. 반면 사진기 장치에서 나온 사진들로 이뤄진 ‘사진의 세계(l'univers photographique)’는 31) P.P., p. 18.

32) P.P., p. 28.

33) Vilém Flusser, La production photographique, résumé de la conférence Ⅰ dans l'Ecole nationale supérieure de la photographie d'Arles, 23. fev. 1984, p. 2

34) 같은 책.

(12)

더욱 풍부해진다.

결국 사진기 장치가 사진을 코드화한다는 것은 장치의 프로그램에 있는 정 보(개념)인 잠재적 사진들을 종이 위에 구현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진의 거울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미 존재하는 실재를 장치를 통해 사진으로 반영(reflect)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그것은 기존의 코드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실재를 장치를 통해 사진으로 변형하는 것도 아니다. 플루서에 따르면 사진을 촬영한다는 것은 사진 기 장치가 장치 외부의 실재가 아니라 장치 내부의 잠재성 혹은 가능성을 ‘현실 화(actualisation)’하는 것이다. 장치는 구체적인 세계에서 이미지를 창조하는 능력 인, 그의 표현대로, ‘상상(imagination)’이 아니라, ‘일련의 가능성들을 이미지로 바 꾸는 능력’35)인 ‘시각화(visualization)’와 관계가 있다. 장치는 구체를 추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을 구체화한다. 따라서 사진은 사진기 밖에 위치한 실재의 복사, 실재의 변형, 실재의 흔적이 아니라 사진기 안에 있는 개념(가능성, 잠재성)의 ‘외 부 세계로의 투사(投射, projection)’36)이다.

플루서는 이처럼 사진을 ‘세계의 반영’ 혹은 ‘세계의 흔적’이 아니라 ‘세계로 의 투사’로 보기 때문에 사진의 시제에 대해서도 기존 이론의 입장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사진은 이미 존재했던 것의 이미지인 과거의 이미지가 아니라 앞으로 투사할 가능성으로서의 이미지인 미래의 이미지이다. “사진은 투사, 즉 미래의 이 미지로 인식되지 않는다. 대신 장면의 복사, 즉 과거의 이미지로 인식되고 있다 .”37) 플루서의 이 관점은 모든 사진의 시제는 과거 혹은 모든 사진은 죽음이라는 기존의 관점(예컨대 바르트의 ‘그것은 존재했음(ça a été )’)과 충돌된다.

사진기 장치가 프로그램의 가능성을 사진으로 현실화한다면 그 현실화(코드 화)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까? 플루서는 “장치 프로그램은 상징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에 의하면 이 상징들은 서로 명확하게 분리된 독립된

35) Vilém Flusser, “Photography and History”, in: Writings, translated by Andreas Ströhl,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02, pp. 126-131, p. 129.

36) 같은 책.

37) 같은 책.

(13)

요소들이다. 인간이 사진기의 버튼을 누르면 사진기 장치가 ‘작동하는데 (fonctionner)’ 이것은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이 불연속적인 요소들을 조합하는 것 을 의미한다. 문필가가 글을 쓰는 행위는 장치(언어)를 구성하는 상징들(단어들) 을 조합하는 것이다. 컴퓨터라는 장치가 작동한다는 것은 컴퓨터를 구성하는 불 연속적인 상징들(0과 1)을 조합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진기 장치를 구성하고 조합하는 요소들은 무엇일까? 플루서에 따르면 그것은 우선 광자(光子, photon), 은입자, 픽셀, 전자, 그리고 디지털 이미 지에서는 비트와 같은 미세한 불연속적인 입자들(particles)이다. 사진을 촬영한다 는 것은 이 입자들을 조합해서 이미지로 만드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광자들이 사 진기 안에 있는 감광판(필름이나 CCD)에 부딪히면 감광판에 있는 입자들(은입자, 픽셀)이 변화한다.38) 빛을 받은 입자(정보, 1)와 빛을 받지 않은 입자(비정보, 0)의 조합으로 수많은 사진이 탄생한다. 결국 사진 나아가 모든 기술이미지는 이러한 불연속적 요소들의 조합의 결과이다.39)

그리고 이 광자들이 사진기 장치를 통과할 때 항상, 플루서의 표현대로, ‘사 진기의 범주들(les catégories de l’appareil photo)’을 통해 감광판에 도달한다. 그 리고 이 범주들은 ‘사진의 시공간 범주들’을 의미하며 마치 장치 프로그램 내부의 잠재적 이미지들처럼 서로 명확하게 분리되어 있다.40) 공간의 범주들은 예컨대 극단적 클로즈업, 클로즈업, 중간 장면, 원경, 극단적 원경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간에 대한 다른 범주를 예로 들면 하이앵글, 수평앵글, 로우앵글 등이다. 시간의 범주들은 노출시간을 의미한다. 예컨대 매우 빠른 시간, 빠른 시간, 보통 시간, 느 린 시간, 매우 느린 시간 등이다.41) 바로 이처럼 광자, 은입자 등의 입자들 그리 38) 플루서는 자신의 저서에서 기술이미지가 형성되는 과정을 기술하지 않는다. 이 과정에 대 한 간단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피사체에서 반사된 광자가 카메라 안에 있는 감광판의 입 자에 부딪히면 감광판의 입자에서 전자가 튀어나온다. 이것이 아인스타인이 밝혀낸 그 유 명한 광전(光電) 효과이다. 모든 기술이미지는 이 전자 입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된 결과이다.

39) Vilém Flusser, Into the Universe of Technical Images, p. 16.

40) P.P., p. 38.

41) P.P., p. 38-39.

(14)

고 카메라의 시간-공간의 범주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한 것이 사진기 프로그 램의 잠재적 이미지들이며, 이 이미지들을 세계에 투사한 것이 사진의 세계이다.

결국 사진의 세계는 ‘[사진] 코드의 전체적인 조합’42)을 가리킨다.

한편 사진기 장치가 자신의 프로그램을 사진으로 실현한다는 것은 그 프로 그램에 담겨있는 과학적 텍스트의 개념들을 사진에 부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진기 장치에는 어떤 과학적 개념들이 물질화되어 있을까? 그리고 사진기는 자 신이 지닌 과학적 개념들을 어떻게 사진으로 코드화할까? 사진(그리고 모든 기술 이미지)은 다른 어떤 재현 매체보다도 실재와 유사한 이미지이다. 그것은 우리 눈 에 마치 실재의 복사처럼 다가온다. 그러나 사진의 중요한 속성인 이러한 ‘유사성’

은 사진기 장치가 거울처럼 이 세계를 투명하게 반영해서 나온 결과가 아니다.

플루서에 따르면 사진의 유사성은 오히려 이 세계와 사진 사이에 인간이 만든 문 화적 오브제인 장치가 개입한 결과이며, 이 장치에 숨어있는 ‘일련의 복잡한 코드 화(une série d'encodages complexes)’43)의 결과이다. 그렇다면 어떤 종류의 코드 화일까?

사진기 장치를 구성하는 카메라와 감광판 중에 카메라에 내재하는 과학적 개념 혹은 코드부터 살펴보자. 플루서는 사진의 유사성은 사진의 자연스러운 속 성이 아니라 카메라에 담긴 ‘원근법이라는 개념’44)의 결과임을 강조한다. 하지만 원근법 개념을 물질화한 카메라의 반(反)중립성 혹은 코드화를 언급한 것은 플루 서가 처음이 아니다. 플루서보다 20여 년 전인 1960년대 프랑스 학자들(특히 피에 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위베르 다미쉬(Hubert Damish))은 일찍이 원근법 을 체화한 카메라의 코드화를 비판했다. “[부르디외와 다미쉬]는 카메라가 중립적 이고 않고 순수하지도 않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카메라가 포착한 공간은 관습적 이고 그것은 르네상스 시대의 원근법의 원칙에 따라 이뤄졌다.”45)

42) P.P., p. 93.

43) P.P., p. 48

44) Vilém Flusser, Into the Universe of Technical Images, p. 43.

45) Philippe Dubois, L'acte photographique, p. 34.

(15)

부르디외, 다미쉬, 플루서가 이처럼 카메라에 담긴 과학적 개념으로 ‘원근법’

을 제시했지만 카메라는 사실 이보다 정확한 개념인 ‘투사기하학(la géométrie projective)’이라는 수학적 개념을 물질화한 것이다. 카메라로 세계를 촬영하면 이 세계는 투사기하학(더 엄밀히 개념은 원추형 투사기하학)이라는 과학적 개념에 따라 필연적으로 ‘변형(코드화)’되어 이미지로 옮겨진다. 따라서 카메라로 촬영된 모든 사진에는 이 과학적 개념이 들어가 있다. 반면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고 제 작된 사진인 포토그램(photogram)은 이 과학적 개념 대신에 다른 종류의 과학적 (기하학적) 개념이 개입한다. 따라서 위에서 살펴본 사진기 범주 중에 모든 공간 범주들(클로즈업, 원경, 하이앵글, 로우앵글 등)은 바로 투사기하학이라는 과학적 개념에 종속되어 있다.

플루서는 카메라 외에 사진기의 또 다른 장치인 감광판에도 과학적 텍스트 가 담겨있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흑백필름은 컬러로 뒤덮인 이 세계를 흑백 이라는 이원적 세계로 변형하도록 과학적 텍스트에 의해 프로그램 되어있다. 흑 백사진은 결국 과학적 텍스트인 광학이론의 산물이다. “흑백사진은 광학이론을 구 성하는 개념들이 만들어낸 이미지이다. 다른 말로 하면 흑백사진은 이 이론에서 도출되었다.”46) 그것은 결국 문자의 이론적 담론과 이론적 사유를 이미지로 바꾼 것이다. “흑백사진은 선적인 이론적 담론(le discours théorique linéaire)을 표면으 로 변화시킨다는 점에서 이론적 사유의 마술이다.”47)

사진의 변형론자인 루돌프 아른하임(Rudolf Arnheim)과 같은 지각심리학자 는 사진이 실재의 변형이라는 근거로 흑백사진(실재는 컬러인데 사진은 흑백)의 예를 자주 들었다.48) 이 논리에 따르면 색의 측면에서 실재 세계와 유사한 컬러 사진은 실재의 변형이 아니고 실재의 거울일까? 컬러사진에는 흑백사진과 달리 어떠한 코드도 개입하지 않을까? 플루서는 컬러사진의 색이 이 세계의 색과 극도 의 유사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흑백사진보다 더 인위적이고 더 추상적이라고 언급

46) P.P., p. 46.

47) P.P., p. 47.

48) Philippe Dubois, L'acte photographique, p. 33.

(16)

한다.49) 왜냐면 컬러사진이 현실의 색을 재현해내기 위해서는 흑백사진보다 훨씬 까다로운 ‘일련의 복잡한 코드화’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내 눈앞에 있는 나 뭇잎의 녹색을 (흑백사진의) 회색이 아니라 (컬러사진의) 녹색으로 재현해내기 위 해서는 흑백사진보다 훨씬 복잡하고 난해한 과학적 이론이 필요하다. 따라서 플 루서는 컬러사진이 흑백사진보다 더 거짓이고 더 이론적이라고 말한다. “흑백사진 은 더 구체적이고 이점에서 더 진실하다: 흑백사진은 자신의 기원이 이론에 있다 는 것을 명확히 제시한다. 반면 컬러사진이 더 사실적일수록 그것은 더 거짓이며 자신의 이론적 기원을 더 감춘다.”50)

따라서 사진 나아가 기술이미지가 지닌 강력한 두 가지 유사성(형태와 색) 은 장치에 숨어있는 복잡한 과학적 개념들이 이미지 생산과정에 개입해서 나온 결과이다. 이런 측면에서 기술이미지가 인간의 눈에 더 사실적으로 보일수록 그 것은 더 인위적인 개념화 혹은 코드화의 결과이다. 결국 사진기 장치가 사진을 코드화하는 과정은 개념(상징)의 일련의 이동 과정이다. 과학적 텍스트에 있는 개 념들이 장치 프로그램의 개념들로 이동하고, 장치를 작동시키면 이 프로그램의 개념들이 지지체(종이 혹은 모니터)위의 개념들로 이동한다. 따라서 여기서 우리 는 플루서가 제시한 기술이미지의 지시체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기술이 미지는 장치 밖의 외부 세계를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장치 안의 내부 세계인 상 징, 개념, 코드를 지시한다.

49) “컬러사진은 흑백사진보다 더 추상적이다.” P.P., p. 48.

50) P.P., p. 48.

(17)

Ⅳ. 인간의 코드, 미디어의 코드

장치는 자신이 지닌 프로그램을 혼자서 ― 인공위성 사진처럼 완벽히 자동 화된 장치를 제외하고는 ― 기술이미지로 실현하지 못한다. 장치가 작동하기 위 해서는 장치의 시작 버튼을 누르는 인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기술이미지의 생산 과정에는 장치와 장치의 작동자인 인간이 동시에 개입한다. 따라서 플루서는 사 진을 포함해 모든 기술이미지가 지닌 정보에는 장치의 의도뿐만 아니라 인간의 의도도 필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고 강조한다.51) 기술이미지의 코드화에 이처럼 장치 이외에 인간이 개입한다면 인간은 과연 자신의 의도를 이미지에 어떤 방식 으로 전달할까? 그리고 인간의 의도는 장치의 의도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플루서는 장치와 인간의 관계가 지닌 특수성을 설명하기 위해 이 관계를 도 구와 장인의 관계 그리고 기계와 노동자의 관계와 비교한다. 그전에 그는 먼저 도구와 기계가 각각 인간과 맺는 방식의 차이를 마르크스 방식으로 설명한다. “산 업사회 이전에 인간은 도구에 의해 둘러싸여 있었으나 그 이후에는 기계가 인간 에 의해 둘러싸이게 되었다. 이전에는 도구가 변수였고 인간은 상수였다. 나중에 는 인간이 변수이고 기계가 상수가 되었다.”52) 하지만 그는 후기산업사회에서 인 간이 장치와 맺는 관계는 그 이전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장치와의 관계에서 인간은 상수도 변수도 아니다. 오히려 이 두 주체는 하나로 결합한다. “인간과 장치는 서로 뒤섞여 하나가 된다.”53) 플루서는 이처럼 후기산 업사회에서 장치를 작동시키고 장치와 하나가 되는 이 새로운 인간을 ‘기능인 (fonctionnaire)’이라고 불렀다.

이 기능인은 자신의 의도를 어떻게 관철할까? 예컨대 사진가는 사진을 촬영 할 때 자신의 의도 혹은 개념을 화가처럼 종이 위에 직접 실현할 수 없다. 사진 가의 의도는 언제나 장치(사진기)라는 매개체, 구체적으로 위에서 언급한 장치의

51) Vilém Flusser, La production photographique, p. 2.

52) P.P., p. 26.

53) P.P., p. 29.

(18)

시공간적 범주들을 통해 관철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사진가가 자신의 의도를 장 치를 통해 사진에 실현하는 것과 화가가 붓을 통해 캔버스에 실현하는 것은 근본 적으로 서로 다른 행위이다. 플루서에 따르면 사진가는 화가처럼 붓을 이용해 이 미지를 직접 그리는 자가 아니라 장치(카메라)의 표면에 기입된 여러 가지 시공 간 범주들을 ‘선택’하고 ‘조합’하는 자이다. “사진가는 사냥을 할 때 하나의 시공간 형태에서 다른 시공간 형태로 이동한다. 이를 통해 그는 조합의 방식으로 시공간 의 범주들을 하나씩 조율한다.”54)

사진가는 사진기 장치를 자신의 의도에 종속시켜 장치의 범주들을 자유롭게 선택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플루서는 사진가의 자유는 사진기 장치가 허용하는 시공간 범주 내에서의 선택에 머물기 때문에 매우 제한적이라고 말한다. 사진가 의 자유는 장치의 자유 한도 내에서의 자유만을 의미한다. “장치는 사진가의 의도 에 따라 작동한다. 하지만 그의 의도 자체는 장치 프로그램에 따라 작동한다.”55) 이것을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장치는 사진가가 원하는 것을 실행하지만 사진가는 장치가 할 수 있는 것만 원해야 한다. 플루서의 이 같은 사고는 사진의 역사에서 도 잘 드러난다. 예컨대 빛에 민감한 감광유제가 발명되기 전인 19세기 중반에 사진가는 움직이는 물체를 스냅으로 촬영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왜냐면 기능인 인 사진가는 당시 사진기 장치 자체가 스냅촬영을 할 수 있는 ‘기능’이 없다는 것 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플루서의 ‘기능인’ 개념은 ‘장치가 할 수 있는 것만 원하는 자’이다.

하지만 그의 기능인 개념은 장치와 관련해 좀 더 우울한 색채를 띤다. “[기 능인은] 장치에 의해 행위를 하는 자이다.”56) 플루서는 또한 “사진가의 자세는 사 실 장치 안에 있는 프로그램이 내린 지시를 수행하는 것”57)이라고 언급한다. 나 아가 그는 “사진가의 자세뿐만 아니라 사진가의 의도도 장치에 의해 기능한다”58)

54) P.P., p. 39.

55) P.P., p. 39.

56) P.P., p. 91.

57) Vilém Flusser, Into the Universe of Technical Images, p. 20.

(19)

며 사진 혹은 기술이미지의 생산 과정에서 장치에 대한 인간의 종속 혹은 인간에 대한 장치의 지배를 지적했다. 결국 사진을 포함한 모든 기술이미지는 개념들이 이미지로 코드화한 것이다. 그 개념들은 먼저 이미지 제작과정에서 장치 프로그 램의 개념과 장치의 작동자인 인간의 개념이 결합된 것이다. 하지만 기술이미지 는 복제되고 배포되는 과정에서도 다시 한 번 개념을 부여받는다.

플루서는 기술이미지가 이처럼 이미지의 생산과정뿐만 아니라 배포과정에서 도 코드화된다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기술이미지는 이미지의 생산과정에서는 장치(사진기)와 인간(사진가)에 의해 코드화된다면 배포과정에서는 미디어(신문, 잡지, 방송, 포스터 등)라는 또 다른 종류의 ‘장치’59)에 의해 코드화된다. 이 세계 와, 관객이 최종적으로 마주하는 기술이미지 사이에는 생산장치와 기능인뿐만 아 니라 배포장치인 미디어가 언제나 개입한다. 미디어는 기술이미지를 어떤 방식으 로 코드화할까?

플루서에 따르면 하나의 기술이미지는 하나의 미디어에만 실리지 않고 미디 어 사이를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고 말한다. 예컨대 그는 달 착륙 사진의 사례를 제시한다. 이 사진은 천문학 잡지에서 미국 영사관으로, 담배 광고 포스터로 그리 고 예술작품 전시회로 옮겨 다닐 수 있다.60) 플루서는 사진이 이처럼 새로운 미 디어로 이동할 때마다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고 말한다. 왜냐면 미디어는 사진 의 배포과정에서 사진에 새로운 코드(개념,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사진이 미디어에 배포되는 것은 단지 기계적인 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코드화의 과정이다.”61) 결국 사진 생산단계에서 사진기라는 장치가 사진을 코드화한 것처 럼 사진 배포과정에서는 미디어라는 장치가 이미 코드화된 사진을 ‘재-코드화’한 다. 이를 통해 플루서는 사진이 ‘남아있는 의미’62)를 획득한다고 말한다.

58) 같은 곳.

59) 플루서에게 장치의 개념은 사진기처럼 물질적인 의미의 장치뿐만 아니라 언론사, 행정부, 산업계 등 사회, 경제, 정치적 의미의 장치까지 포함한다.

60) P.P., p. 58.

61) P.P., p. 58.

62) P.P., p. 60.

(20)

하지만 플루서는 사진의 배포과정에서 사진의 코드화는 배포장치뿐만 아니 라 인간(사진가)에 의해서도 이뤄진다고 언급한다. 그에 따르면 사진가는 배포장 치가 사진을 코드화화는 과정에 ‘기능적으로’ 참여해서 이미지를 장치(미디어)에 따라 코드화한다. 사진가는 사진을 촬영할 때 자신의 사진이 실릴 배포장치(과학 잡지, 시사 잡지, 여행 책 등)까지를 미리 염두에 둔다. “사진가는 관객의 의도뿐 아니라 자신의 사진이 실릴 배포장치의 의도까지를 생각한다. 그는 사진을 촬영 하면서 미디어가 어떤 사진을 배제하고 어떤 사진을 선택할지를 예상한다.”63) 국 사진을 촬영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장치와 인간의 결합 관계는 사진을 배포 하는 과정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사진가는 사진기 장치의 기능인이면서 동시에 배포 장치의 기능인이기도 하다. 그는 이 두 가지 장치가 지닌 기능들을 수행하 는 대리인이다.

플루서에 따르면 사진을 포함한 모든 기술이미지가 이처럼 이미지 제작과정 과 전달과정에서 다양한 개념들로 코드화되었음에도, 이 이미지는 자신의 코드를 숨긴 채 실재의 투명한 거울처럼 행세하면서 현대인의 모든 삶을 마술적으로 프 로그램화한다. 그리고 해석되지 않은 이 기술이미지의 마술에 사로잡힌 현대인은 이 마술을 통해 자신의 모든 삶을 영위한다. “기술이미지는 우리 삶에 마술을 부 여한다. […] 우리는 이 이미지를 통해 살아가고, 지식을 얻으며, 가치를 평가하고, 행동을 한다.”64) 플루서는 기술이미지의 이 같은 마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는 무엇보다도 기술이미지에 대한 새로운 비평이 절실하다고 역설한다. 그렇다면 기술이미지에 대해 그가 제시하는 새로운 비평이란 과연 무엇일까?

63) Vilém Flusser, La diffusion photographique, résumé de la conférence Ⅱ dans l'Ecole nationale supérieure de la photographie d'Arles, 15. Mars. 1984, p. 4.

64) P.P., p. 18.

(21)

Ⅴ. 기술이미지 비평

플루서는 기술이미지에 대한 기존의 비평은 주로 이미지 자체의 분석에만 머물고 이미지의 생산과정에 대한 분석을 소홀히 했다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기술이미지의 생산과정에 관심을 둔 이론가들마저도 생산의 주체로서 주로 인간 (사진가, 감독, 연출가, 아티스트 등)만을 상정하고 이 생산 주체의 의도만을 분석 하는데 만족한다. 그것은 사진비평가들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의 사진비평가들 은 사진 뒤에 사진가의 의도만 숨어있다고 생각한다.”65)

플루서는 기술이미지를 해석하는데 이 같은 기존의 비평 대신에 새로운 차 원의 비평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왜냐면 비평의 대상인 기술이미지는 전통이미 지 혹은 문자와는 존재론적으로 다른 재현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는 기술이미 지가 인간만이 아니라 인간과 장치의 결합을 통해 생산된 이미지이기 때문에 이 것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의도 외에 장치의 의도도 동시에 분석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기술이미지에 개입하는 이 두 가지 의도 중에 인간의 의 도보다 장치의 의도에 대한 분석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왜냐면 전술한 것처럼 인간의 의도는 장치의 의도에 종속되거나 아예 ‘증발하기’ 때문이다. 플루서가 말 하는 장치의 의도(역할)란 무엇일까? 그것은 ‘생산장치와 배포장치 그리고 나머지 장치들이 기술이미지에 행한 코드화의 역할’66)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는 기술이미 지의 여러 과정(생산, 배포, 수용과정) 중에서 생산과 배포과정에 개입하는 장치 의 문제를 새로운 비평의 기준으로 제시했다. “[기술이미지 비평의] 새로운 기준 은 생산(자동화와 반(半)자동화)과 배포(미디어와 복제의 분석)라는 두 가지 문제 에 집중해야 한다.”67) 결국 플루서에게 기술이미지에 대한 새로운 비평 기준은

‘장치의 자동화’와 ‘미디어’로 귀결된다.

65) Vilém Flusser, Critique photographique, résumé de la conférence Ⅳ dans l'Ecole nationale supérieure de la photographie d'Arles, Mai. 1984, p. 2.

66) 같은 책, p. 2.

67) 같은 책, p. 3.

(22)

플루서가 제시한 이 ‘새로운’ 비평에서 가장 독창적인 부분이 바로 장치의 비평이다. 그는 사진을 포함한 모든 기술이미지에는 ‘기술(장치)’의 특징이 필연적 으로 묻어있기 때문에, 그리고 인간의 의도는 언제나 장치의 파라미터(장치의 시 공간 범주)를 통해서만 실현되기 때문에 이미지에서 장치에 대한 비평은 필수라 고 말했다. 플루서는 또한 새로운 비평에서 장치(사진기) 프로그램의 지배를 받는 인간(사진가)이 어떤 식으로 장치에 저항하는가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인간은 사진기 장치가 지시한 일을 그대로 수행했는가(사진기 프로그램에 있는 잠재적 이미지를 그대로 실현하는 것), 아니면 장치 프로그램 내에 존재하지 않은 새로운 사진을 창조하려고 했는가를 비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비평의 두 번째 기준으로 ‘미디어’를 제시한 플루서의 주장은 물론 그의 것만은 아니다. 1970년대 프랑스 카이에 뒤 시네마(Cahiers du Cinéma) 그 룹은 사진(특히 보도사진)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으며 그 뒤에는 미디어 나아가 국가의 이데올로기가 작동한다고 주장했다.68) 그럼에도 그 이후 서구 사진이론에 서 주요 이론가들(바르트69)를 포함하여)은 미디어의 역할에 대해 침묵했다. 기술 이미지 해석을 위한 플루서의 미디어의 비평은 카이에 뒤 시네마 그룹과 같은 사 진 변형론자들이 주장한 이데올로기 비평 수준을 훨씬 넘어선다. 그는 기술이미 지에서 미디어의 역할은 단지 이데올로기 전달의 차원을 넘어 사진의 의미를 결 정할 정도로 근본적이라고 주장한다.70) 나아가 플루서는 사진의 정체성(예술사진, 보도사진, 광고사진 등)은 사진 ‘이미지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를 통해 코드화된 것이라며 사진의 정체성까지 결정하는 미디어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플루서의 ‘새로운 사진비평(nouvelle critique-photo)’의 내용은 구 체적으로 무엇일까? 그 구체적 내용은 플루서가 제시한, 사진비평을 할 때 비평 가가 제기해야할 16개의 질문의 리스트에 나타나 있다. 그것은 사진의 코드화에 68) Philippe Dubois, L'acte photographique, p. 36.

69) 바르트는 밝은 방 La Chambre Claire에서 니카라과의 사진 등의 보도사진들을 분석하 면서 미디어의 역할에 대해 눈을 감고 그 사진들에서 자신이 보고 싶은 것 혹은 자신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푼크툼)만 보려고 했다.

70) “미디어가 사진의 의미를 결정한다.” P.P., p. 60.

(23)

가담하는 네 가지 주체인 ‘장치(사진기), 사진가, 미디어, 관객’에 대한 질문이다.71) 예컨대 장치에 관련된 질문은 다음과 같다: “이 사진을 생산한 카메라는 어떤 종 류인가?” “이 카메라는 어떤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맥락에서 제작되었나? 그리 고 어떤 기술로?” 사진가와 관련된 질문: “이 카메라를 선택한 사진가의 의도 및 영향?” “사진 촬영할 때 사진가의 의도?” “사진가의 의도와 카메라의 의도는 일 치?” “사진가의 의도는 프로그램의 의도를 굴절시켰는가?” 미디어와 관련된 질문:

“어떤 미디어가 이 사진을 배포했나?” “이 미디어는 어떤 문화, 경제, 정치, 이데 올로기 맥락에서 작동하는가?” “사진가는 이 미디어의 프로그램에 저항하는가?

그렇다면 어느 정도 성공했는가?” 마지막으로 관객과 관련한 질문: “관객은 어떤 맥락에서 사진을 수용했는가?(사진은 텍스트 또는 다른 사진들과 함께 제시되었 는가?)” “사진은 이 맥락과 어떤 관계일까?” 이 질문들은 본 연구에 매우 유의미 하다. 왜냐면 지금까지 진행된 기술이미지 비평에 대한 플루서의 추상적 논의를 이 질문들을 통해 구체적인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플루서는 기술이미지 비평을 통해 이처럼 이미지-스크린의 마술적 성격을 깨트리고 이미지에 숨겨진 다양한 층위의 코드들을 해석하는 데에만 만족하지 않 는다. 그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이 같은 사진비평 혹은 기술이미지 비평 자체가 아니라 후기산업사회의 문화현상 전체에 대한 비평이다. “사진비평은 문화 비평의 한 영역에 불과하다.”72) 그는 후기산업사회에 대한 문화비평은 ― 기술이 미지 비평처럼 ― 이전의 산업사회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비평이어야 한다 고 생각했다. 왜 그럴까?

플루서는 인류의 문화구조를 바꾸는 동력은 무엇보다도 기술이라고 지적한 다. “기본적으로 모든 문화혁명은 기술에 기반을 둔다.”73) 그에 따르면 산업사회 의 핵심 기술은 ‘기계’이고 따라서 ‘기계 철학’이 산업사회의 모든 문화현상(사회,

71) Vilém Flusser, Critique photographique, pp. 3-4.

72) 같은 책, p. 4.

73) Vilém Flusser, “The Photograph as Post-Industrial Object: An Essay on the Ontological Status of Objects”, in: Leonardo, 19, no. 4. 1986, pp. 329-332, p. 331.

(24)

정치, 과학, 예술)의 비평이었다. 이 시기는 그의 표현대로 ‘메커니즘 비평’의 시대 였다. 하지만 그는 이 기계 철학은 후기산업사회에서는 더 이상 효력을 지니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왜냐면 후기산업사회의 핵심 기술은 기계가 아니라 장치이기 때문이다. 그는 기계에서 장치가 지배하는 사회로 바뀌면 “우리 존재(Dasein)의 근본적인 구조도 변화한다”74)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는 인간의 존재 구조는 더 이상 산업시대의 ‘소외(aliénation)’가 아니라 지금까지 인류가 겪어보지 못한 새로 운 맥락에 처하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장치가 인간에게 소위 ‘존재론적인 혁 명’75)을 가져다주었다고 강조했다.

바로 이 때문에 플루서는 후기산업사회에서의 문화비평은 산업사회와는 다 른 비평이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후기산업사회에서 인간의 존재조건과 문화 현상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는데 기존 문화비평의 프레임을 여기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새로운 문화비평은 바로 후기산업사회 문화현 상의 궁극적인 원인인 장치에 초점을 두어야한다. 또한 그는 ‘사진기가 모든 장치 의 조상(祖上)’76)이기 때문에, 그리고 ‘사진세계는 후기산업사회의 삶의 모델’77) 될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문화비평은 바로 사진비평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 했다. 따라서 그는 산업사회에서 ‘기계철학’이 했던 것처럼 후기산업사회에서는

‘장치철학’ 그리고 장치철학의 출발점으로서의 ‘사진철학’이 후기산업사회의 모든 문화현상의 비평철학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78)

플루서의 새로운 문화비평은 구체적으로 장치를 어떻게 비평할까? 그는 우 선 기계에 대한 기존의 비평 태도인 ‘인간주의적 비평(critique humaniste)’79) 장치 비평에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에 따르면 전통적인 비평의 핵 심은 기계 뒤에 숨어 있는 인간의 의도를 드러내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74) P.P., p. 86.

75) P.P., p. 86.

76) P.P., p. 78.

77) P.P., p. 82.

78) P.P., pp. 85-86.

79) P.P., p. 80.

참조

관련 문서

조직에서의 온도는 비열이나 비중 그리고 열전도도와 같은 상수들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혈류변화와 같은 생리학적 반응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음.. 4)

그러나 갑상선결절의 빈도가 이처럼 높음에 따라 무조건 적인 갑상선 초음파검사나, 발견되는 모든 결절에 대한 미세 침흡인세포검사는 비용-효과에서의 효율성 뿐만

그는 고대 그리스 자연철학의 완성자이자 모든 학문의 통합자이며, 서양의 과학사

따라서 사용자의 위치를 계산하기 위해서는 사용자의 3차원 위치 좌표 뿐만 아니라 위성 간의 시간 변 수를 포함하여 4개의 연립방정식을 풀어서 좌표로 결정하기

따라서 물도 재생하여 사 용할 필요가 있으며, 여기에는 화학적 지식이 필요하다.... 왼쪽 사진의 그늘진 부분에서 보이던

문을 닫으세요. 그는 모든 학생들을 불러냈다. 나는 그를 친구로 여긴다. 이 일을 마음에

따라서 울타리나 담, 문과 같은 것은 조형물 이 아니고 다른 시설물로 취급되고 있다..

따라서 는 전사준동형사상이다.. 따라서 보조정리는 성립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