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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과02: 그리스 학문의 고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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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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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글

(1)

에피소드 과학사

둘째 주: 그리스 과학과

철학의 고전기

(2)

히포크라테스-체액설

모든 질병의 원인과 치료법을 자연에서 찾으려 하는 노력은 히포크라테스(Hippokrates, B.C.

460-377)에 의해 시작되었다. 제사장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신전에 찾아오는 병자들을 볼 기회가 많았다. 이들을 관찰하고 치료하면서 그는 ‘체액설’

이라는 이론을 바탕으로 한 의학 체계를 세웠다.

체액설은 (자연철학자들의 영향을 받아) 사람 몸이 불, 물, 공기, 흙의 네 원소로 이뤄지고, 체액은 이 원소들에 상응하는 혈액, 점액, 황담즙, 흑담즙 네 가지 체액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설이다.

(3)

히포크라테스-체액설

이 네 가지 체액들이 신체의 성질과 건강을

결정한다. 이들이 적당한조화를 이룰 때 사람은 건강하며, 이들의 조화가 깨져 어느 하나가

모자라거나 넘치면 병이 생긴다고 보았다.

의사의 임무는 이들이 조화와 균형을 회복하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고, 병을 낫게 하는 근본적인 힘은 자연에 있다고 보았다.

(4)

히포크라테스 선서

그의 이름을 동반한 의사의 윤리관은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와 의사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알려 준다: [히포크라테스 선서]

나는 의사의 신인 Apollo, Aesculapius, Hygeia , Panacea에 맹세하여 나의 능력과 판단에

의하여 다음의 선서를 준수할 것을 모든 신과 여신 앞에서 맹세한다. … 나의 양심과

위엄으로서 의술을 베풀겠노라. 나의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중략.

교과서 39쪽 참조.)

(5)

아리스토텔레스

서양 과학사에 가장 오랫동안 가장 큰 영향력을 끼쳤던 과학자는 누구일까? 뉴턴? 아인슈타인?

그러나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eles, B. C 384-322)라고 답할 것이다.

그는 고대 그리스 자연철학의 완성자이자 모든 학문의 통합자이며, 서양의 과학사 2천년을

지배한 사람이다.

(6)

플라톤-이데아론

아리스토텔레스는 17세 때 플라톤(Platon, B.C 427-347)이 세운 교육기관인 아카데미아에

들어가 그의 제자가 되었다.

플라톤은 이원론을 주장한 고대 관념론의

대가였다. 그는 이오니아의 유물론적인 과학적 전통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현상의 세계는

불변불멸인 천상의 세계(이데아의 세계)의 복사판에 불과하다는 이데아론을 주장했다.

(7)

플라톤-후대에 끼친 영향

플라톤의 수학적인 조화와 아름다움에 대한 믿음은 과학혁명을 주도했던

근대과학자들에게도 중요하게 받아들여져, 갈릴레오와 케플러 등 많은 과학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 결과 그들은 자연을 표현하는 방식은 수학적 조화와 간결함,

아름다움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8)

아리스토텔레스-종합적 철학자

플라톤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개별적 사물과 그 본질은 분리할 수 없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이 낮게

평가했던 자연계, 물질계의 운동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그 원인을 추구했다. 뿐만 아니라

고대의 논리학, 형이상학, 물리학, 생물학,

심리학 , 윤리학의 완전한 체계를 세웠다. 물음:

그의 과학이론의 많은 부분은 나중에 틀린

것으로 드러났지 않았나? 틀린 과학이론은 어떤 가치가 있을까?

(9)

아리스토텔레스: 4원소설의 수용

그는 밀레토스의 자연철학자들이 의문을 제기한 후 끊임없이 반복된 질문, 즉 우주의 근본물질에 대한 답으로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설을

받아들였다.

그는 이 근본물질의 원인이 되는 기본적인 네 가지 성질로서 온, 냉, 건, 습을 들었다. 이 네

성질이 조합하여 우주의 근본물질인 불(온+건) , 공기 (온+습), 물(냉+습) , 흙(냉+건)이 생긴다고 하였다.

(10)

아리스토텔레스: 4원소와 사물의 다양성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한 원소는 성질의 조합에 의해서 생기므로, 사물의 다양성을 쉽게 설명할 수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물의 끓는 현상과

어는 현상이었다. 물이 차가움(냉)과 접하면

얼음이 된다. 얼음이 불(온)과 접하면 다시 물이 된다. 더 많은 불이 가해지면 물은 끓고 공기로 변화한다. 다른 예는 나무 토막에서 볼 수 있다.

막 자른 나무토막은 수액 (물)이 나오지만, 탈 때 그것은 불꽃과 연기(공기)를 내어놓는다. 연소가 끝난 마지막에는 재(흙)가 남는다.

(11)

아리스토텔레스: 우주론과 물리학

그의 우주론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정지하여 위치해 있다고 상정한다. 이것은 그 나름대로 완성된 이론이다.

그의 물리학은 상식의 물리학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이론들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부터의 보고 느낀 것으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물체는 무게에 상관없이 진공 속에서는 같은 속도로 떨어진다는 후세의 갈릴레이의 이론과 비교해 보라.)

(12)

아리스토텔레스: 지상의 운동

물건을 공기 중에 놔두면 곧장 아래로 낙하한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상에 있는 물체의 자연적 운동은 곧장 아래로 향하거나 위로

향하는 직선 운동이다. 그러나 실 끝에 물체를 매달고 돌리는 원 운동은 강제적이고 물체의 본성을 거역하는 운동이다. 이와 같이

아리스토텔레스는 물체의 운동을 자연적 운동과 강제적 운동으로 나누어 생각했다.

(13)

아리스토텔레스: 천상의 운동

또한 달을 기준으로 달 바깥의 천상계와 달 아래의 지상계로 나누었다. 천상계는 완전한 물질인 제 5원소로 구성되어 있고, 그 세계는 영원불멸한 신의 세계이므로 그 운동은 완전한 도형인 원을 따르고 속력도 변하지 않는

등속원운동이다.

이러한 그의 자연철학은 만물은 신을 목적으로 하여 운동한다는 목적론적 세계관을 품고 있다.

이러한 사상은 데카르트가 완성했던 근대의 기계론적 세계관과 대립되는 것이다.

(14)

아리스토텔레스: 진공의 부정

또 아리스토텔레스는 진공을 부정했다.

즉우주의 모든 공간은 물질로 가득 차 있고, 물질은 공간에 연속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진공의 존재를 인정했고, 물질을 이루는 최소의 입자로 원자를 가정했던 데모크리토스와 대조되는 입장이다.

(15)

아리스토텔레스: 생물학

그는 생물학 분야에서도 세심한 관찰을 기초로 이루어 놓은 업적이 많은데 , 그 중 동물 분류가 뛰어나 동물학자로도 불리운다. 그는 동물 약 540종을 분류했는데, 이 분류법은 18세기에 이르러 린네(Carl von Linné, 1707 -78)에 의해 체계화될 때까지 그대로 사용되었다.

(16)

아리스토텔레스: 후대에 끼친 영향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을 벗어나기 위해 역사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중세 동안 그의 이론은 중세 신학의 기반이 된 스콜라

철학에 의해 받아들여져 그의 이론을 반박하는 것은 곧 신에 대한 거역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대 이후 과학의 발달은 그의 이론들이 무너짐에 따라서 새로운 물질관,

운동관, 우주관, 세계관 등이 성립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체계는 결코 저절로 무너지지는 않았다.

(17)

기하학 원론-그 이전

최초의 기하학은 땅을 측정하기 위한 학문이었다.

고대 이집트의 농경생활에서 나일강의 범람은 그 주변의 땅들을 생산력이 풍부한 옥토로 유지시켜 준다는 점에서 중요했다. 그러나 나일강 범람 후 남의 땅과 내 땅의 경계가 없어지는 상황에서

정확한 측정이야말로 모두에게 필요한 일이었다.

유프라티스강 유역의 바빌로니아나 황하강

유역의 중국에서도 같은 이유로 기하학이 발달 했다. 이와 같이 이 시대 기하학은 실질적 필요에 의해 측정과 관찰, 직관을 기초로 발달했다.

(18)

기하학 원론-그 이전 (계속)

그리스인들은 이러한 고대 이집트와

바빌로니아의 기하학을 받아들였고 이를 사변적 학문으로 발전시켰다. 기하학의 창시자는

탈레스다. 그는 최초로 논리적인 추론으로 원과 삼각형에 관한 기하학적인 결과를 증명했다.

그리스인들은 기하학이 인간의 지성을 계발할 뿐 아니라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게 한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지성을 가지려면 반드시 기하학을 배워야 했고, 기하학은 모든 학문의 기본이라고 여겼다.

(19)

기하학 원론-수학자들의 성서

유클리드는 눈금이 없는 자와 캠퍼스 만을 사용해 당시까지의 수학적 지식을모두

13권으로이루어진 『원론』에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다. 이후 『원론』은 ‘수학자들의 성서’

라는 명성을 얻었다.

유클리드는 모든 기하학의 문제를 관찰이나 실험 에 의하지 않고 오직 논증에 의하여

추론하여 연역적인 관계를 가지는 기하학으로 발전시켰다.

(20)

기하학 원론-공리적 구조

그는 먼저 점, 선, 평면을 정의하고, 자명하다고 여겨지는 다섯 가지 공준들(postulates)과 다섯 개의 공리들(axioms)를 기본적인 명제로 삼아 복잡하면서 직관적으로 명백하지 않은 방대한 내용의 명제 456개를 증명하였다.

(21)

기하학 원론-공준

1. 한 점에서 다른 점으로 직선을 그을 수 있다.

2. 유한한 직선(즉 선분)은 무한히 연장할 수 있다.

3. 한 점에서 어떤 반경의 원도 그릴 수 있다.

4. 모든 직각은 서로 같다.

5. 한 직선과 두 직선이 만날 때 어느 한 쪽의 두 내각의 합이 직각의 두 배보다 작으면 이 두 직선을 계속 연장할 때 직각의 두 배보다 작은 각이 이루어지는 쪽에서 두 직선은 반드시

만난다. (평행선 공준)

(22)

기하학 원론-공리

1. 동일한 것과 같은 것은 서로 같다.

(a=b&a=c->b=c)

2. 같은 것에 같은 것을 각각 더하면 그 전체는 서로 같다. (a=a'&b=b'->a+b=a'+ b')

3. 같은 것에서 같은 것을 각각 빼면 그 나머지는 서로 같다. (a=a'&b=b'->a-b=a'-b')

4. 서로 일치하는 것은 서로 같다.

5. 전체는 부분보다 크다.

(23)

기하학 원론-후대에 끼친 영향

적은 수의 자명한 명제들로부터 정리를 도출하고, 이 정리들을 논리적인 순서로

배열하여 새로운 정리를 증명하는 『원론』의

형식체계는 서양 학문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뉴턴도 『프린키피아』에서 이 형식체계를

원용하였고, 철학의 명제들도 이러한 방식을 따랐다 (예: 스피노자의 『윤리학』).

(24)

프톨레마이오스-역사적 배경

B.C. 331년 경 알렉산더가 이집트를 정복한 후 세운 도시 알렉산드리아는 그리스의 자연철학을 이어 받아 가장 앞선 과학, 문화, 경제의 중심이 된다. 알렉산더가 33세라는 이른 나이로 죽게 되자, 뒤를 이어 이집트는 프톨레마이오스 1세 (Ptolernaeos I; B.C. 367 ~ 283)가 통치한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에 도서관, 식물원 , 동물원, 천문대, 해부실, 실험실 동을 갖춘 뮤세이온

(Museion)을 세워 고대의 지식을 보존, 발전, 전파하는 일을 한다.

(25)

프톨레마이오스-천문학자

뮤세이온에서 활동했던 대표적인 학자들 중에는 에라토스테네스, 프톨레마이오스, 유클리드,

아르키메데스 등이 있다. 이들 중 고대 천문학의 완성자로서 과학 혁명이 시작될 때까지 천문학에 이름을 남긴 사람이 프톨레마이오스(Klaudios

Ptolernaeos, 85 ~ 165년 경; 프톨레마이오스 1세와 동명이인)이다. 그의 천문학 이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천동설(geocentricism)로부터 유래한 것인데, 중세에는 기독교와 결합하였다.

과학혁명은 그의 이론을 깨뜨리면서 시작되었다.

(26)

프톨레마이오스-알마게스트

뮤세이온은 그리스 자연철학의 모든 자료를

가지고 있었고, 여기서 공부한 프톨레마이오스 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에 접할 수 있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천상계와 지상계를 구분한 것, 천상계의 운동이 등속원운동이라는 것 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실제 관측과 아리스토텔레스 이론은 잘 맞지 않았다. 그

철학자의 이론에 크게 어긋나지 않고 관측 결과와 일치하는 이론을 찾아 체계화한 책이 ‘가장

위대한 책’이라는 뜻을 가진 『알마게스트』다.

(27)

프톨레마이오스-이심과 주전원

밤하늘을 보면 시간에 따라 밝기가 달라지는 별을 관찰할 수 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이에 대해 지구와 별이 도는 중심(이심)이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지구에서 관측한 별의 밝기는 거리가 변함에 따라 달라진다.

(28)

프톨레마이오스-이심과 주전원 (계속)

또 등속원운동을 해야 할 행성들이 실제로

관측해보면 반대로 가거나 공전 속도가 변하는 것도 발견된다.

이를 프톨레마이오스는 행성들이 지구 주위로 원운동을 하면서 다시 그 자리에서 작은 원운동 (주전원)을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29)

프톨레마이오스-천동설

그의 입장에서 지구가 자전한다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이론이었다. 그는 지구가

자전한다면 지구 위에 있는 모든 물체는 날아갈 것이고, 지구도 견디지 못하고 깨질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한 지구가 돈다면 지구의 위치에 따라 같은 별(항성)이 약간의 각도를 가지고 달리 보이는 시차가 있어야 하는데, 시차는 관측되지 않았다.

지금은 지동설이 당연하다고 여겨지지만, 당시 위 반론들은 상당히 합리적인 주장들이었다. (후대에 이 문제들이 어떻게 해결되었는지 설명.)

(30)

프톨레마이오스-평가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 이론은 관측한 결과와 일치할 뿐만 아니라 미래의 천체의 운동도

상당히 정확히 예측할 수 있었다. 또한 그리스 천문학을 받아들여 만들어졌으므로 그리스 자연철학과도 당연히 일치하였고, 무엇보다 당시의 경험과 상식에도 잘 맞아떨어졌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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