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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檀)’과 홍익인간에 대한 철학적 이해-어원을 중심으로-이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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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철학적 이해

-어원을 중심으로-

이찬구**

Ⅰ. 문제제기

Ⅱ. 단군과 단군민족주의

Ⅲ. ‘단(檀)’과 홍익인간

Ⅳ. 결론

*

* 이 글은 2017년 7월 7일 선도문화진흥회와 국학연구원이 개최한 ‘21세기 선도문화의 바른 인식과 생활화’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논문이다.

* 이 논문은 저서인 『통일철학과 단민주주의』(한누리미디어, 2015)와 2017.1.12. (사)국학원 주최 정기학술회의에서 발표한 논문“홍익인간과 ‘다다살리’ 단(檀)민주주의”에서 제기된 문 제를 일부 수정, 보완하여 ‘단’과 ‘홍익인간’에 대한 새로운 어원분석을 통해 인간의 주체적 존재를 서술하고 있다.

** (사)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

(2)

【국문요약】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단군과 홍익인간의 정신은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가? 단순히 ‘박달임금’이라거나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

는 것과 같은 기존의 해석에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단군의 단(檀)과 홍 익인간에 대한 원초적인 해석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단군의 단(檀)과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어원을 분석하여 원초적 의미를 찾아볼 것이다.

일찍이 최남선은 단군(壇君)이란 텡그리(Tengri) 또는 그 유어(類語) 의 사음(寫音)이라고 보았다. 또 원래 하늘을 의미하는 말에서 변전하여 하늘을 대표한다는 군사(君師)의 호칭이 된 말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이와 비슷한 말로 우리말 ‘대갈’을 들었다. 이는 머리이며, 동시에 하늘 이라 했다. 『사기』(흉노전)에서도 하늘(天)을 탱리라 했다.

북한의 리지린은 단군의 단(檀)은 ‘다’를 한자로 음사(音寫)한 것으로 보고, 단군은 국왕으로서의 ‘단임금-다임금’이라는 색다른 해석을 제시 하였다. 고구려말에 骨大(골대)를 ‘고다’로 읽은 것에서 大(대)를 ‘다’로 독음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檀(단)은 본래 ‘다’의 소리였고, 하늘과 땅의 뜻을 지닌 말로 추정할 수 있다.

안호상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말이 홍익인간에 대한 바른 해 석이 아니라고 지적하고, 홍(弘)을 넓을 광(廣)이 아니라 큰 대(大)로 볼 것을 제안했다. 홍(弘)을 대(大)로 볼 경우, 단(檀)의 다(多)와 상통함을 알 수 있다. 또 익(益)은 ‘더을(더할) 익’으로 ‘더’의 소리를 취할 때, 홍익 은 ‘다더’가 되고, 이는 ‘다다’로도 통용이 된다.

이상을 통해 단의 ‘다’와 홍익의 ‘다다’는 하늘과 땅에 근원한 말임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천지인(天地人)의 합일을 중요시한 조상들 의 지혜를 발견할 수 있고, 천지(天地)와 함께 살아온 ‘우주의식’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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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어 : 단군, 홍익인간, 천지인, 우주의식, 텡그리

Ⅰ. 문제제기

우리는 작년 연말부터 몇 달 동안 전혀 다른 체험을 하였다. 그동안 우리의 시위문화는 으레 폭력 내지는 폭력성을 수반하는 것이었으나, 평화집회로 일관하였다. 필자는 대통령 탄핵을 주제로 한 일련의 촛불 집회를 ‘광화문의 평화’라고 규정짓고 싶다. 이것은 광화문과 평화라는 두 개념의 절묘한 조합을 의미한다. 광화문 앞의 광장 명칭도 2009년 에 ‘광화문광장’이란 이름으로 조성되었다. 광화문이라는 이름은 『서경』

에 나오는 光被四表 化及萬方(광피사표 화급만방; 빛이 사방을 덮고, 교 화가 만방에 미친다)에서 따온 말이다. 이는 임금의 통치를 중심으로 한 말이지만, 오늘날은 그 임금이 빛을 잃자 국민이 일어나 새로운 빛이 되 고 있다. 그 빛이 평화의 빛이 되어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고, 한국 민 주주의 역사를 다시 쓰게 하고 있다.

우리 민족에게 깃든 평화의 빛은 오랜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 다른 민 족의 개국신화가 전쟁으로 얼룩져 있다면, 우리의 개천신화는 비폭력적 평화의 정신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를 우리는 홍익인간이라는 개천이념 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화려한 이념에도 불구하고 우리민족은 현 재 남북 분단이라는 비홍익적(非弘益的)이고 비평화적 체제에 살고 있 다. 지금 세계는 미국과 중국이 강대강(强對强)구조를 이루고 있고, 남 과 북도 강대강(强對强)으로 적색경보가 켜져 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 과 북한, 중국과 한국도 강대강(强對强)의 구조로 극한 대결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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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세계 열강에 둘러싸여 있던 조선에 특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바로 민족적 고유종교(이하 ‘민족종교’로 통칭 함)의 등장이었다. 동학과 대종교라는 민족종교의 등장은 민족의 암울 기에 혜성처럼 나타나 민족해방의 등대가 되었고, 민족운동의 선구가 되었다. 동학운동과 단군운동은 다 같이 민족의 고유성에 바탕을 두고 이를 지키기 위해 민족적 투쟁에 적극적이었다. 그 고유성의 바탕은 홍 익인간 정신의 근대적 부활이었다.

그러면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단군과 홍익인간의 정신은 어 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가? 단순히 ‘박달임금’이라거나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것과 같은 기존의 해석에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홍익인 간에 대한 원초적인 해석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위해 필자는 단군의 단(檀)과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어원을 분석하여 원초적 의미를 찾아 보고, 『단군세기』에 나오는 ‘염표문’과 비교하여 재해석하려고 한다. 나 아가 이 연구를 통해 단군의 이야기가 불교의 전설에서 나왔다는 식민 지시기 일제의 주장을 반박할 것이다. 아울러 홍익인간의 의미를 손성 태가 멕시코 원주민(동이족의 일파인 맥이족)의 언어에서 찾은 ‘다다살 리’(tlatlazali)01)와도 비교하려고 한다. 이 ‘다다살리’라는 말은 그들의 고수레 풍습에서 나온 것으로 ‘모두 함께 살자’는 뜻인데,02) 홍익인간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새로운 시사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01) Bernandino de Sahagun, Primeros Memoriales, Vargas Rea, 1950, p.11. 이 말의 원어는 Tlatlazaliztli이다. T 다음의 l은 빼고 읽는다. 원번은 1580년경에 집필되었다(손성태 교수 자료제공).

02) 손성태, 『우리민족의 대이동』(멕시코편) 코리, 2014, 115~1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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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단군과 단군민족주의

1. 한말 단군운동과 민족사학

1909년 1월 15일 자시, 홍암 나철은 서울 재동 취운정 아래 육칸 초옥 에서 ‘단군대황조신위’(檀君大皇祖神位)를 모시고 제천의식을 거행한 뒤

‘단군교포명서’를 공포함으로써 단군교를 중광하였다. 이 자리에는 나철 을 비롯하여 오기호, 강우, 유근, 정훈모, 이기, 김윤식 등 수 십인이 참 례하였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이 친일행위를 하므로 나철은 1910년 7월 30일 교명을 ‘대종교’(大倧敎)로 개칭하였다. 교명을 바꾼 직후 나라가 일제에 의해 강점되자 그는 활동지역을 만주로 넓히고 1914년 5월 13일 에는 총본사를 만주 화룡현 청파호로 이전하였다. 아울러 서울에 남도 본사, 청파호에 동도본사를 설치하는 한편, 백두산을 중심으로 동서 남북 4도 교구와 외도교구를 선정함으로써 교구제도를 확대·개편하 였다.

대종교는 종교활동과 교육을 모두 항일운동에 초점을 맞추었다. 1918 년 중광단을 중심으로 한 무오독립선언, 이듬해 3.1운동의 영향으로 활 기를 띈 중광단은 대종교에서 범종교적인 단체로 승화하여 새로운 대한 정의단을 결성하였다. 기독교를 제외한 유림들이 참여하였고, 일제에 혈전을 주장하였다. 김좌진, 이범석 등이 가담한 대한정의단은 무기를 구입하여 군정부(軍政府)의 기능을 수행하였고, 임정의 명령으로 대한 군정서(大韓軍政署)라 개칭함으로써 이름 그대로 정부의 공인 군사기관 이 되었다.

한말 민족운동은 크게 동학운동과 단군운동으로 대별된다. 신용하는 이 중에 단군운동에 주목하여, 한말 애국계몽운동기의 하나의 큰 사상 흐름으로서 ‘단군민족주의’(檀君民族主義) 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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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여기서 말할 수 있는 것은 韓末(한말) 애국계몽운동기 의 하나의 思想으로서 「檀君民族主義」 「檀君내셔널리즘」이라고 부를 수 있는 思潮가 사상계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전개되다가 그 한 흐름은 歷史로 흘러들어가 申采浩(신채호) 등의 「古代史」

의 설명에 投射(투사)되고, 다른 한 흐름은 宗敎로 흘러들어가서 羅寅永(나인영) 등의 「大倧敎(대종교)」의 창건으로 投射되었다고 볼 수 있다는 점이다.03)

이 단군민족주의는 두 가지 흐름으로 나타났는데, 그 중의 하나가 역 사로 흘러들어가 신채호 등의 고대사 연구에 투사되고, 다른 한 흐름은 종교로 흘러들어가 나인영(나철) 등의 대종교 창건으로 투사되었다고 보았다.

한편 근대적 민족주의 사학04) 운동가로 박은식, 장지연, 신채호를 들 수 있다.05) 신채호는 같은 민족주의 사가(史家)라 하더라도 독특한 위치 에 있다. 이를 두고 유교적 사학과는 다른 단재사학(丹齋史學)이라고 명 명하기도 한다.06) 신채호는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신(神)이나 혼(魂) 또 는 얼 대신에 구체적인 고유한 사상체계를 중요시하였다. 즉 그는 화랑 도의 사상을 한국의 고유한 것으로 보고, 이 낭가(郎家)사상의 성쇠가 곧 민족사의 성쇠를 좌우한다고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 의하면 한

03) 신용하, 「신채호의 애국계몽사상」, 『한국학보』20집, 1980, 111쪽

04) 민족사학과 민족주의 사학이라는 말을 구별할 것을 주장한 분도 있다. 조동 걸은 민족사학이란 식민사학에 대칭하는 용어이고, 민족주의사학은 민족사 학의 분류상의 호칭이라고 보았다. 예컨대 마르크스주의 사학은 민족사학이 기는 해도 민족주의 사학은 아니라는 말이다.(「민족사학의 분류와성격」, 『한 국민족주의의 발전과 독립운동사연구』 지식산업사, 1993)

05) 신용하, 「한말애국계몽사상과 운동」, 『한국사학』1,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0, 289쪽

06) 이만열, 「단재사학의 배경」, 『한국사학』1,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0, 2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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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는 고유사상이 외래사상과 투쟁하는 역사로 파악하였다.07)

역사란 무엇이뇨? 인류사회의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 시간부터 발전하며 공간부터 확대하는 심적(心的) 활동의 상태의 기록이니, 세계사(世界史)라 하면 세계 인류의 그리되어 온 상태 의 기록이며, 조선사(朝鮮史)라면 조선민족의 그리 되어 온 상태 의 기록이니라.08)

신채호는 당시의 세계정세를 제국주의 시대로 보고 있다. 그는 서구 열강이 추구하고 있는 제국주의 본질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저 열강이 문명은 날로 번창하고 인구는 날로 늘어 자기나라의 토지만으로 그 생활을 하기가 어려우며, 자기 나라의 생산물만으 로 그 발전을 꾀하기 어려우니, 이에 나라 밖으로 영토를 확대하 고 이익을 얻으려고 미발달지역을 개척하여 자신의 욕망을 채우 려 하니, 자기보다 열등한 나라는 물론 동등한 힘을 가진 나라에 대해서도 경제싸움을 걸어 승부를 겨루는 것이다.09)

당시 제국주의가 자본주의 발달과정에 따라 겪게 되는 약육강식의 경 제전쟁은 필연적이었다. 이 필연적 제국주의 경제전쟁을 목도한 신채호 는 역사를 나와 나 아닌,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으로 보았던 것이 다. 신채호의 민족주의는 바로 이 제국주의의 침략에 대응하기 위한 유 일한 투쟁노선이다. 이 투쟁에서 일본도 예외는 아니었다. 을사늑약 이 후 국권을 상실한 우리 대한을 표현하기를, “삼림(森林)이 유(有)하건마 는 아(我)의 유(有)가 아니며, 광산이 유하건마는 아의 유가 아니며, 철 07) 이기백, 「한국근대사학의 발전」, 『근대한국사론선』삼성문화재단, 1973, 247쪽 08) 신채호, 『조선상고사』(총론)

09) 신채호, 『단재 신채호전집』별집 「20세기 신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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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 유하건마는 아의 유가 아니다”10)라고 통탄하면서 국가는 있으나 국권이 없는 나라를 시급히 바로잡기 위해서는 부국강병을 통한 독립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의 부국강병론은 서구문물의 모방에는 비판적이다. 그는 서 양의 경제, 법률, 상업 및 부국도 결국 그들의 애국심과 국사에 대한 사 상에 기초한 것으로 보고, 우리도 민족주체성과 정신적 대아(大我)를 바 탕으로 애국심을 고취하고 산업과 교육을 육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그 중에 신채호는“역사가 없으면 국민의 애국심이 어디서 나 오겠느냐”11)면서 민족사의 서술 작업을 통해 애국심을 고취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존 역사서술이 사대주의에 빠져 있다고 비판하고, 역사중심 의 민족주의 사관정립에 몰두한다. 그는 우리 민족사의 사통(史統)을 세 움에 있어, 아래와 같이 단군을 시조로 분명히 하고 2천만 민족은 그의 자손이라 하였다.

始祖檀君(단군)이 太白山에 下하사, 此國을 開創하고 後世子孫 에 貽(이)하시니, 三千里疆土(강토)는 其産業也며, 四千載歷史는 그 譜牒(보첩)也며, 歷代帝王은 其宗統(종통)也며,12)

이어 신채호는 단군을 고구려 왕조의 직접 조상이라는 관점에서 ‘단군

→ 부여·고구려로 양분 → 부여 멸망, 고구려 재통합’13)으로 보았으며, 특히 묘청을 진압한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지을 때에 우리의 옛 사서 를 없앤 후에, 조선의 강토를 줄이고, 조선의 문화를 유교화 하며, 외국 에 구걸이나 하는 외교가 전부인 양하여 철저히 사대주의로 꾸며놓았다 고 지적하였다. 신채호는 우리 역사에서 김부식에 의해 자주적인 국풍 10) 신채호, 『단재 신채호전집』별집 「대한의 희망」

11) 신채호, 『단재 신채호전집』 「역사와 애국심과의 관계」

12) 신채호, 『단재 신채호전집』 「국가는 즉 일가족」

13) 신채호, 「독사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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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國風派)가 패하고, 사대주의가 승리한 것을 ‘1천년 이래 제1대사건’이 라고 비탄해 하였다.14) 신채호는 초기에는 국민을 계몽의 대상으로 파 악했으나, 3·1운동 이후 민중의 위대한 힘을 발견하였다. 여기서 신채 호 사상은 ‘신국민설(新國民說)’과 뒤에 나오는 ‘민중혁명론’으로 구체화 된다. 1923년에 나온 그의 「조선혁명선언」은 민중을 혁명의 대본영으로 삼은, 민중에 의한 무력혁명론이며, 민중에 의한 무장독립전쟁론이다.

그렇지만 그는 무력주의를 절대적이 아닌 제한적인 의미에서 정당한 것 으로 생각하였으며, 결국에는 민족주의와 인류공영을 양립시키고자 하 였다.15)

2. 대종교의 단군민족주의

김동환은 대종교와 단군민족주의에 대해 ‘대종교의 성립과 단군민족 주의’와 ‘대종교의 독립운동과 단군민족주의’라는 두 측면에서 대종교의 단군민족주의를 거론하고 있다. 특히 대종교의 성립에 있어서 「단군교 포명서」가 지니는 의의를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요약하고 있다.16)

첫째, 대표적인 민족종교이자 한말, 일제기에 전개된 단군민족주의 운동의 주역의 하나였던 대종교의 중광을 견인한 공헌이다.

둘째, 후대에 와서 민족상징들로 정립된 관점들이 많이 나타나는 점 이다. 즉 단군 건국에서 비롯된 단기연호라든가, 10월 3일 개천절이 이 포명서에 제시되어 있다.17)

14) 신채호, 「조선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사건」

15) 『한국철학사상사』 한울아카데미, 1997, 381쪽

16) 정영훈, 「단군교포명서와 그 사상사적 가치」, 『국학연구』13집, 국학연구소, 2009, 90~92쪽에 상세한 설명이 있다.

17) 김동환, 「한국종교사 속에서의 단군민족주의」, 『선도문화』15권, 2013, 1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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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군교포명서」에는 종교적 단군민족주의의 토대가 되는 종교적 체제, 즉 교조관, 교리관, 교사관 등을 엿볼 수 있는데, 교사관적 측면 에서 「단군교포명서」에는 단군신앙의 흐름이 단군시대로부터 부여와 고 구려, 발해와 고려를 거쳐 조선의 이태조에게 까지 금척을 내린 주체가 단군임을 연결시킴으로써 조선조까지 연면히 지속되고 있음을 확인시 켜주고 있다는 면에서 값진 의의를 갖는다.18)

또한 10월 3일을 단군개극입도지경절(檀君開極立道之慶節)이라 한데 서 개천절이 부활하는 계기가 된다. 개천절은 종교적 기념일을 넘어 범 민족적 기념일로 승화되어 독립정신을 일깨웠다. 다음은 「단군교포명 서」의 마지막 단락이다.

4천여 년 오랜 가르침의 숨겨졌던 것이 다시 돌아와 나타나는 밝음이 또한 오늘에 있을 지며 천만억 형제 자매의 화가 물러가고 복이 돌아옴 이 역시 오늘에 있으니, 오호라! 모든 우리의 형제자매들이여! 단군개극 입도 4237년 대한 광무 8년 갑진 10월 3일

「단군교포명서」는 단군 탄강의 역사, 단군교의 신앙유습, 단군교를 신 봉하여야 할 이유 등을 설명하고, 우리 민족은 같은 민족으로서 같은 운 명을 지니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우리 겨레가 하늘의 자손임을 강조하 고, 단군교를 오로지 정성으로 믿고 받들어서 구교의 중광은 물론, 천만 형제자매가 복록을 누리게 되기를 호소하고 있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서기 1904년을 단기 4237년이라고 분명히 밝힌 점이다. 이는 『동국통 감』에서 말한 단군의 무진년 건국과 일치한다.

그 다음은 대종교의 무장독립운동에서 단군민족주의를 발견할 수 있 다. 양대 독립기구인 북로군정서와 서로군정서에 참여한 독립군들이 모 두 단군성조를 받들고 단군민족주의로 철저히 무장하여 독립운동을 주

18) 앞의 책, 159~1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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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하였다는 점19)은 앞에서 열거한 중광단 등의 활약에서 본 바와 같다.

특히 단군민족주의는 문화적 투쟁의 배경으로 작용하여 혁혁한 문화민 족주의 운동을 전개하였다. 주시경, 이극로, 최현배의 한글운동, 이병기 의 시조운동, 김교헌의 신교사관에 의한 역사복원운동, 신채호의 낭가 사상, 박은식과 정인보, 신규식의 국혼운동 등등에서 대종교인이 앞장 서 펼친 것은 단군민족주의의 투영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대종교의 궁 극적인 지향점은 홍익인간 재세이화이다.

그런데 한영우는 김교헌의 『신단실기』를 지적하며, “단군조선의 역사 와 문화를 무리하게 날조하지 않고, 조선 후기 실학자들이 밝혀낸 단편 적인 연구 성과를 광범하게 수집 정리하고, 여기에 대종교적인 단군민 족주의 세계관을 투영시켜 새로운 상고사의 체계를 수립”20)했다고 평가 했다. 이런 단군민족주의를, “단군을 민족사의 출발점으로 상정하고 ‘단 군의 자손’으로의 단일민족의식을 기본으로 하여 민족정체성을 구성하 며, 그 같은 인식 밑에 민족적 통합과 발전을 도모하던 일련의 의식-사 상 또는 문화적-정치적 운동을 가리킨다”21)고 규정할 수 있다. 또 권덕 규의 『조선사』(초판은 1920년대 『조선유기』임)를 단군민족주의 관점에 서 그의 민족주의 사관을 분석하기도 한다.22) 권덕규의 『조선사』는 조선 의 영역을 태백산(백두산)의 북쪽인 송화강을 중심으로 하여 중국 동북 부 지역의 대부분과 반도 전체를 조선의 영역으로 포함시켰다. 그리고 조선의 종족은 상고시기 6대 문명을 시작한 환족(桓族)이라고 하고 이 환족을 천족(天族)이라 규정했다.23)

19) 앞의 책, 163~164쪽

20) 한영우, 「1910년대의 민족주의적 역사서술」, 『한국문화』1,1980, 123~124쪽 21) 정영훈, 「단군민족주의의 前史」, 『단군학연구』8호, 2003, 148쪽

22) 정민지, 「권덕규의 조선사에 나타난 한국사 인식」, 『역사교육연구』17, 2013.5, 28쪽

23) 권덕규, 『조선사』 정음사, 1945,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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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단(檀)과 홍익인간

1. 단(檀)의 어원에 대한 재해석

1894년 일본의 백조고길(白鳥庫吉)은 “단군의 사적은 원래 불교에 근 거한 가공의 선담(仙譚)”24)이라고 비하했다. 환인과 단군이라는 왕호가 다 불교에서 차용한 말이라는 것이다. 이에 필자는 단군이라는 명호가 불교설화의 차용이 아니라, 우리말 고대어에서 나온 것임을 입증하고자 한다.

안호상은 『계림유사』25) 등 전통적인 해석에 따라 단군(檀君)의 단(檀) 은 밝달이고, 단군은 ‘밝달임금’이며, 밝달나라는 배달나라라고 했다.26) 양주동도 단군왕검은 ‘박달 님ᄀ·ᆷ’, ‘ᄇ·ᆰ달 神君(신군)’으로 보았 다.27) 북한의 강인숙은 단군을 ‘박달임금’으로 보고, 그 박달을 ‘불산’으 로 보았다.28) 이와 같이 단군(檀君)을 박달임금이라 한 것에서 먼저 단 (檀)의 훈독(訓讀)인 ‘박달나무’에서 박달(朴達)이라고 적으면 훈차(訓借)한 것이고, 박달에서 다시 ‘밝다’의 소리를 빌리고 음차(音借)가 된다. 이 뒤에 임금 군(君)의 훈(訓)과 결합하여 ‘밝은 임금’이 되는 것이다. 이러 한 예를 훈음차법(訓音借法)이라 할 수 있다. 또 웅주(熊州, 곰 마을)를 공주(公州)라 적은 것은 공(公)으로써 ‘곰’의 소리를 음차(音借)한 것이 다. 『삼국사기』(34권,지리1)에 의하면, 신라에서 서울 경(京)을 서라벌 (徐羅伐), 서벌(徐伐)이라 적은 것은 훈차(訓借)한 것이다. 백제에서 여

24) 白鳥庫吉/김창겸 외 번역 「단군고(檀君考)」, 『식민사관 형성 기초 자료 번역』

(사)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 2015, 11쪽 25) “檀은 倍達, 君은 任儉” (『계림유사』)

26) 안호상, 『겨레역사 6천년』 배영출판사, 1989, 29~30쪽 27) 양주동, 「國史古語彙借字原義考」, 『명대논문집』1권, 1968, 79쪽 28) 강인숙, 「단군신화와 력사」, 『단군과 단군조선』 살림터, 1995, 2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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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餘美)를 해미(海美)로 적은 것은 남을 여(餘)의 ‘남을’에서 ‘나’를 반훈 (半訓)하여 곧 ‘나미’가 되니 ‘바다’를 뜻한다.29)

그러면 밝달 이전 최초의 단군이 갖는 의미는 무엇이고, 또 단군을 어 떻게 불렀을까?

북한의 리지린은 단군의 단(檀)이나 단(壇)은 모두 ‘다’를 한자로 음사 (音寫)한 것으로 보고 단군은 국왕으로서의 ‘단임금-다임금’이라는 색 다른 해석을 제시하였다.30) 리지린은 그 근거로 ‘다’를 따(地)의 고어로 보았다. 과연 이 주장은 타당한가?

그러면 단(檀)의 소리는 어디서 왔는가? ‘단’의 반음(半音)인 ‘다(多)’

에서 ‘단’이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고구려말에 骨大(골대)를 ‘고다’로 읽 은 것31)에서 大(대)를 ‘대’라고 하기 이전에 또한 ‘다’로 읽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어로 大同(대동)을 ‘다퉁’이라 소리내고, 일본어의 大山을

‘다이센’이라 소리내고, 高을 ‘다까’라고 소리내는 것에서 檀(단)은 본래

‘다’의 소리였고, 많다(多,다), 크다(大, 대), 높다(高,고)의 뜻을 지닌 말 로 분화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예컨대, 고구려의 지명에 개백(皆伯) 을 또는 왕봉(王逢)32)이라고 일컬었다는 것은 ‘다 皆(개)’를 ‘王(왕)’의 뜻 으로 썼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王(왕)으로서의 檀 (단)은 다(多, 皆)에서 왔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다. 따라서 단(檀) 소리 의 근원은 ‘다’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단군의 어원이 되고 있는 다는 ‘단군’ 또는 ‘단군왕검’은 어떤 관게에 있는가? 정인보는 왕검의 ‘검’은 천왕, 천가한(天可汗), 탱리선우

29) 도수희, 『백제어 어휘연구』 제이앤씨, 2005, 520쪽

30) 리지린, 『고조선연구』 열사람, 1989, 114쪽 (이 책은 도쿄 학우서방에서 1964 년에 첫 영인본이 나왔다. 평양에서는 1963년에 출간됨)

31) 류열, 『세나라 시기의 리두에 대한 연구』 한국문화사, 1995, 124쪽

32) 『삼국사기』 (권37, 잡지 6, 지리4): 도수희『백제어 어휘연구』 제이앤씨, 2005, 506쪽 참조

(14)

처럼 당시의 지존을 가리키는 칭호로 보았다.33) 儉(검)이전에 檀(단)의 多(다)에 天(천)과 王(왕)의 뜻을 동시에 함의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과연 그러한가.

최남선은 “단군(壇君)이란 텡그리(Tengri) 또는 그 유어(類語)의 사음 으로서, 원래 하늘을 의미하는 말에서 변전하여 하늘을 대표한다는 군 사(君師)의 호칭이 된 말”34)이라고 규정했다. 특히 군장(君長)의 이름에 하늘을 씌워 부른 것은 조선 고대문화의 특색의 하나라고 설명하고 있 다. 탕그리와 텡그리와 비슷한 ‘대갈’은 곧 머리이며, 동시에 하늘이라 했다. 탕그리(tangri)를 하늘의 뜻으로 소개한 사람은 백조고길(白鳥庫 吉)이다.35) 이는 『사기』(흉노전)에서도 입증된다. 「색은」에 “선우(單于)의 성은 연제(攣鞮) 씨(氏)이고 그 나라에서 탱리고도 선우라 칭했다. 흉노 에서는 하늘(天)을 탱리라 하고 자식(子)을 고도(孤塗)라 한다. 선우는 광대한 모양으로 그가 하늘을 닮았음을 말하니 이 때문에 탱리고도 선 우라 하였다”36)고 했다. 흉노말 탱리는 이 텡그리가 변한 말일 것이다.

흉노족이 한자로 하늘(텡그리, 탱리)을 닮은 지도자(또는 아들)를 單于 (선우)라고 하는데, 우리는 아직도 單于(단우)라는 원발음을 간직하고 있다. 단우는 앞에서 말한 ‘다누’일 것이다. ‘다누’ 이전에는 ‘다’였을 것 이고, 이 ‘다누’가 축약하여 ‘단(檀)’이 되었을 것이며, 여기서 하늘(天)을 닮은 아들, 지도자[子]로서 단군(檀君, 壇君, 다나+니시거미)이 출현하 였다고 본다.37) 따라서 단(檀)의 근원은 하늘이다. 단은 텡그리의 이칭

33) 정인보, 『조선사연구』(상), 문성재 역주, 우리역사연구재단, 2012, 181쪽 34) 최남선, 지음/전성곤 옮김, 『불함문화론/살만교차기』경인문화사, 2013, 55쪽 35) 白鳥庫吉/김창겸 외, 번역 「조선고대지명고」, 『식민사관 형성 기초 자료 번 역』(사)겨레얼살리기 국민운동본부, 2015, 39쪽. 이 논문의 원문은 1895~6 년 사이에 발표한 것이다.

36) “索隱案 單于姓攣鞮氏,其國稱之曰 撐黎孤塗單于.而匈奴謂天爲 撐黎,謂子爲 孤塗,單于者,廣大之貌也.言其象天,故曰O黎孤塗單于”(『사기』 「흉노전」) 37) TENGRI의 이칭들: “TIAN”, “TIANDI”, “RANGI”, “SHANGDI”,

“SHADDAI”, “DINGIR” OR “TENGERE”

(15)

인 ‘TIAN’과 흡사한 것으로 본다.

김규승은 壇君(단군)의 壇(단)자는 그 반음(半音) ‘다’ 로 읽고, 君(군) 자는 마루[宗]의 ‘말’로 읽어 壇君(단군)의 古訓(고훈)은 하늘을 뜻하는

‘다말’이 된다고 했다.38) 이때의 하늘은 태양의 인격적 표현에 가깝기 때 문에 천신(天神)이라 할 수 있다. 또 「삼한관경본기」에도 王儉(왕검)은 大監(대감)이라고 했다. 이 대감의 ‘대’에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본래 천 (天)의 뜻이 들어 있다. 大(대)란 글자는 머리, 손, 발을 다 갖춘 것을 의 미한다고 했다.39) 이 大(대)는 ‘크다’는 훈독(訓讀)일 뿐만 아니라, ‘대’

이전의 음독 ‘다’였다고 본다. 또 ‘다 皆(개)’의 ‘다’는 머리, 손, 발로써 몸의 전체를 표현한 것이다. 이처럼 단군의 ‘다’에는 하늘의 뜻을 원초적 으로 지녔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최남선의 ‘대갈’(다갈)이나 김규승이 ‘다 말’이 본래 ‘하늘’ 또는 ‘천신’의 뜻이었다는 말은 ‘대’와 ‘다’가 하늘을 뜻 하고, ‘갈’이 ‘대갈박’이라는 우리말에서 곧 머리임을 알 수 있으며, 다말 의 ‘말’도 머리, 마리의 줄임말 ‘말’인 것에서 인격적인 천신(天神)을 상 징한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하늘을 뜻하는 ‘다’에서 천신을 뜻하는 다말(대갈)이 되었듯이, 하늘을 대신해 땅을 다스린다는 뜻의 ‘다누+니 무가마’, ‘다나+니시거미’의 단군(檀君)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삼한 시대의 천군(天君)이라는 호칭이 이를 반영한 말로 보인다. 천군도 같은 소리를 냈을 것이다.

또 예를 들어 고구려 지명 ‘多知忽(다지홀)’을 나중에 ‘대곡(大谷)’40) 로 호칭한 것에서 ‘대’는 ‘다’의 소리에서 나온 것임을 거듭 알 수 있다.

도(道)는 중국어 ‘다오’에 ‘다’의 소리가 남아 있다. 또 『광주판 천자문』

(1575년)에 ‘긔ᄌᆞ’ 王(왕)이라 했고, ‘님굼’ 君(군)이라 했다. ‘긔ᄌ·’ 王 (왕)이 ‘다 皆(개)’에서 나왔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이 때의 다 개(皆) 는 본래의 뜻이 하늘의 해를 뜻하고, 또 사람을 뜻한다. 날씨가 ‘개’다 38) 김규승, 『동이고사연구의 초점』 범한서적, 1974, 15쪽

39) “天大,地大,人亦大。故大象人形”...大文則首手足皆具(『설문』 大部) 40) 『삼국사기』 (권37, 잡지 6, 지리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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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할 때의 ‘개’는 해를 뜻하고, 아무‘개’라고 할 때의 ‘개’는 사람이다. 사 람에서 왕으로 그 뜻이 옮긴 것이다. 天(천)과 地(지)는 더 말할 것이 없 다. 천지(天地)와 인(人, 아무 개의 ‘개’)과 왕(王)의 소리는 ‘다 皆(개)’의

‘다’로 통한다. 이처럼 단군의 단(檀)은 ‘다’의 어근에서 나온 말로 천지 인과 왕을 다 포괄하고 있는 것이다.41) 결론적으로 ‘다’는 ‘하늘’과 ‘땅’을 뜻하다가 점차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여 마침내 ‘왕’의 뜻을 지닌 말러 발 전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어의의 발달과정상 처음에는 하늘과 땅의 뜻 으로 쓰이다가 어느 순간에 ‘왕’의 뜻으로까지 전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 런데 이 ‘다’는 다시 ‘다나’ ‘다누’ 등으로 ‘ㄴ’첨가현상이 일어나 변해가기 시작했다. 신라 말에 檀溪(단계)는 ‘다나구루’로 소리 냈다. ‘다나’는 檀 (단)의 소리를 옮긴 것이고, 구루는 ‘내’의 뜻을 옮긴 것이다.42) 강상원은 단군을 산스크리트어로 ‘다누 나자’(Dhanu raja; hero, king)로 해석했 다.43) ‘다’의 다양한 변화상을 짐작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삼국시기에 天干(천간)을 ‘더가나/더하나/다가나/더 하나’로 읽은 근거에서 天(천)을 ‘더’, ‘다’로 소리 낸 것을 확인할 수 있 다.44) 아울러 ‘다’는 ‘닫>달>다>따>땅’45)으로 변한 것에서 리지린의 주장 처럼 땅(地)의 뜻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신라에서 지 리산(地理山)을 ‘디리모로’, ‘더러모로’46)라고 한 것에서 지(地)는 ‘다’ ‘더’

41) 『노자』 (25장)의 “道大, 天大,地大,王亦大”(도도 크고, 하늘도 크고, 땅도 크고, 왕(사람)도 크다)와 『설문』(大)의 “天大,地大,人亦大。故大象人形” (하 늘도 크고, 땅도 크고, 사람도 크다. 사람의 모양을 본뜬 것이다)도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천지(天地)와 왕(王)도 ‘다’의 소리가 나고, 인 (人;개)도 ‘다’의 소리가 나므로 『노자』와 『설문』의 표현이 우리 말 ‘다’에 근원 한 ‘대(大)’라고 할 수 있다.

42) 류열, 앞의 책, 451쪽

43) 강상원, 『사라진 무제국』 조선세종태학원, 2013, 331쪽 44) 류열, 앞의 책, 464쪽

45) 서정범, 『국어어원사전』 보고사, 2000, 213쪽 46) 류열, 앞의 책, 509쪽

(17)

‘디’로 소리 낸 것을 알 수 있다. ‘달(地), 딜(土), 들(野)’47)에서도 그 의미 의 상관성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러면 君(군)은 무엇인가? 리지린은 단(檀)자가 고조선어를 음사한 것이라면 군(君)자는 한문식 기록으로 추정하고, 단군(檀君)보다는 본래

‘다임검(檀王儉)’일 것으로 보았다.48) 하지만 고구려말로 君(군)은 ‘그므’

로 그므(今勿)>검(黑)으로부터 나왔다는 주장도 있다.49) 양주동은 『지봉 유설』(권16)을 인용하여 ‘君(군)은 尼音今(니음금)’이라고 했다.50) 니음금 을 줄이면 ‘님금’ ‘님검’이 된다. 신라의 왕칭인 尼師今(니사금)도 이 ‘님’

에서 나온 말이다. 님(壬)의 상고음이 ‘니엄’, 고대음이 ‘니무(nimu)’로 되고, 님검은 ‘니무가마’, ‘니무거머’로 된다.51) 북한의 류열은 尼師今(니 사금)을 ‘니시기미, 니시거미’로 읽었다.52) 서정범은 님은 ‘닏>닐>닐임>

니임>님’의 변화를 거쳐 왔으며, ‘닏’의 근원적 어원은 사람으로 ‘나, 너, 누’와 같은 말이라고 했다.53)

그리고 오늘날의 ‘단군’이라는 소리가 생기기 이전에 ‘다+그므’, ‘다나 +그므’, ‘다누+그므’로 결합하거나, ‘다나+니시거미(니사금)’ 또는 ‘다누 +니무가마’로 결합이 시도되었을 수 있다. 의미상으로 ‘다(多)+니(尼)+

검(今, 金, 儉)’ 또는 ‘니’가 생략되어 ‘다(多)+검(黑)’이 되었을 것이다.

즉 多(다)는 天(천)의 뜻, 尼(니)는 日(일)이므로 ‘다(多, 皆)+그므(今, 君)’,

‘다(多)+니(日)+금(今, 儉)’이 된다. 결국 ‘다(天)+니(日)+금(今, 儉)’이 되면서 檀君(단군)이란 말이 생긴다. 이 단군의 뜻은 오늘날로 보면 천 일군(天日君), 또는 천일왕검(天日王儉)이다. 즉 하늘의 태양 같은 임금 47) 서정범, 앞의 책, 213쪽

48) 리지린, 앞의 책, 115쪽

49) 최남희, 『고구려어 연구』 박이정, 2005, 61쪽 50) 양주동, 「故言硏究抄」, 『명대논문집』5집, 1972, 180쪽

51) 정연규, 『언어속에 투영된 한민족의 고대사』 한국문화사, 2002, 131~132쪽 52) 류열, 앞의 책, 1995, 451쪽

53) 서정범, 앞의 책, 1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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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있어서는 다(多, 皆)가 처음의 天(천)의 뜻이 약화되고 地(지)와 王(왕)의 뜻으로 강조되면서 단군은 천 지대왕(天地大王)으로서 檀王儉(단왕검) 또는 檀君王儉(단군왕검)이란 말이 나온 것으로 본다.

그동안 단군을 어떻게 이해하였는가? 윤내현은 고조선은 건국부터 붕 괴될 때까지 왕이라는 칭호는 없고 최고 통치자를 단군이라고 불렀으 며, 단군과 한(韓, 汗)은 함께 사용되었으나 단군이라는 칭호에는 신 또 는 종교지도자의 의미가 강하고, ‘한’이라는 칭호에는 정치적 의미만 있 었다고 보았다.54) 그런데 리지린이 단군이 산신(山神)이 되었다는 말에 근거하여 천군(天君)보다는 ‘지상의 군주’로서의 단군으로 국한하여 인 식하였으나,55) 신용하는 천왕이 곧 단군의 뜻이라고 보고, 『삼국유사』에 서 흙 토(土)의 단군(壇君)이라 표기한 것은 지상의 천왕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했다.56) 사실상 삼한의 천군은 제사의 주관자였기 때 문에 단군보다 하위개념이다. 『설문』도 『춘추번로』를 인용하여 王(왕)자 의 뜻을 분명히 밝혀주고 있다. 이것을 보면, 단군은 태왕(太王)으로서 의 천군(天君)이었음을 알 수 있다.

王(왕)은 천하가 모두 돌아가는 곳이다. 동중서는 “옛날에 문 자를 만든 사람이 세 번 획을 긋고 그 가운데를 이어서 왕이라 하였다. 세 획은 천지인이다. 이 셋을 관통하여 다스리는 자가 왕이다. 공자도 하나로써 세 가지를 관통하는 것이 왕이라고 했 다.57)

54) 윤내현, 『고조선 연구』 일지사, 1994, 126쪽 55) 리지린, 앞의 책, 114쪽

56) 신용하, 『고조선 국가형성의 사회사』 지식산업사, 2010, 159쪽

57) “天下所歸往也。董仲舒曰:“古之造文者,三畫而連其中謂之王。三者,天、地、人 也,而參通之者王也。”孔子曰:“一貫三爲王”(『설문』 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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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의미에서 최고의 왕은 단군이고, 단군의 檀(다>단)의 ‘다’가 천지 인의 관통자로서 왕호(王號)개념을 함의한 최초의 글자임을 알 수 있다.

일반의 왕(王)자보다 더 포괄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말이 바로 다- 단(檀)이다. 그럼에도 일부 식민사학자들은 우리 역사에 왕호의 출현 이 중국보다 늦다는 것을 구실 삼아 고조선의 후진성을 강조하려고 한 다. 김정배는 『삼국지』(동이전)에 나오는 것처럼, 주(周)나라가 쇠약해 지자 연(燕)나라가 칭왕(稱王)하는 것을 보고, 조선후도 스스로 칭왕(稱 王)하였다는 구절에 근거하여 B.C. 4세기경까지는 고조선이 왕호를 쓰 지 못했다고 지적한다.58) 김부식은 최고운을 지적하며 이르기를 “신라 왕을 거서간이라 칭한 이가 하나요, 차차웅이라 칭한 이가 하나요, 니사 금이라 칭한 이가 열여섯, 마립간이라 칭한 이가 넷이다. 그런데 나말의 명유 최치원은 帝王年代曆(제왕연대력)을 지을 때, 다 무슨 무슨 왕이 라 칭하고, 거서간 등의 칭호는 말하지 않았으니 이는 혹 그 말이 야비 하여 족히 칭할 것이 못 된다는 까닭일까?”59)라고 반문하고 있다. 그러 면서 그는 “『좌전(左傳)』과 『한서(漢書)』는 중국의 역사책인데도 오히려 초(楚)나라 말인 ‘곡오도(穀於菟)’60), 흉노(匈奴) 말인 ‘탱리고도(撑犁孤 塗)’61) 등을 그대로 보존하였다. 신라의 일들을 기록함에 그 방언을 그

58) 김정배, 『고조선에 대한 새로운 해석』 고려대, 2010, 559~560쪽

59) “論曰 新羅王稱居西干者一 次次雄者一 尼師今者十六 麻立干者四 羅末名儒崔 致遠作 帝王年代曆 皆稱某王 不言居西干等 豈以其言鄙野不足稱也”(『삼국사 기』(권4, 신라본기4 지증마립간)

60) 중국 초(楚)나라의 방언(方言)으로 ‘곡(穀)’은 ‘젖’ 또는 ‘젖먹이다’라는 말이고,

‘어도(於菟)’는 ‘호랑이’라는 말로 “호랑이가 젖을 먹인다”라는 뜻이다. 이것 은 초나라의 영윤(令尹)인 자문(子文)이 불륜관계로 태어나자 외할머니가 연 못가에 버렸는데, 호랑이가 와서 젖을 먹였으므로 자문을 ‘투곡어도(鬪穀於 菟)’라고 칭하였다는 것에서 나온 말이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선공(宣 公) 4년 참조.(한국사데이터 베이스 재인용)

61) ‘탱리(撑犁)’는 하늘[天]이라는 뜻이고, ‘고도(孤塗)’는 아들[子]이라는 뜻의 흉 노(匈奴) 말이다. 즉 탱리고도(撑犁孤塗)는 천자(天子)라는 뜻으로 흉노의 선 우(單于)를 칭하는 말이다. 《한서(漢書)》 권94, 열전(列傳) 흉노(匈奴) 참조.

(한국사데이터 베이스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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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로 쓰는 것이 또한 마땅하다 본다”고 덧붙이고 있다. 흉노조차도 천 자(天子)를 ‘탱리고도’라고 고유한 방언을 쓰는데, 왜 우리가 ‘마립간’이 라는 고유어를 못 쓰겠느냐고 주체성을 강조한다. 이런 차원에서 고조 선 시기에 왕이라는 말을 쓰지 않은 것은 철저하게 고유어를 쓰는 원칙 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단군의 이름도 불교의 ‘전단(栴檀)’에 서 따온 말이 아니고 우리의 고유어인 하늘을 뜻하는 ‘다나, 다누(단)’에 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단군의 ‘다’는 소리로는 天(천), 地 (지), 大(대), 王(왕)의 뜻이다. 또 뜻으로는 ‘많을’ 다이므로 ‘많’의 ‘마’는 크다, 신성하다의 뜻이 들어있다. 예컨대, 麻姑(마고)의 ‘마’는 크다, 신 성하다, 나아가 신(神)을 지칭하고, 고(姑)는 골, 고을로 성(城)을 뜻 한다.

2. 홍익인간의 어원에 대한 재해석

여기서 단(檀)과 왕(王)의 관계를 반증이라도 하듯이, 『송사(宋史)』

(卷490 열전 第249)에 층단국(層檀國)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참 고할 필요가 있다. 층단국은 셀주크투르크(Saljūk Turks)인들이 건립 했다고 알려지고 있으며, 아라비아반도에 있었다고도 하는데, 1071년에 처음으로 중국과 교역이 이루어졌다. 당시 층단(層檀)은 Al-Sultan(蘇 丹)의 음역으로, 왕(王)이라는 의미였다고 한다.62) 단(檀)에 천지인 삼재 관통의 왕호개념이 이미 들어있었음을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김정배의 칭왕설은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신채호가 단군을 대단군(

大壇君)왕검이라고 칭했던 이유를 알 수 있다.63)

앞에서 우리는 이 단(檀)의 어근이 되고 있는 ‘다’가 하늘, 땅, 사람,

62) http://contents.nahf.or.kr/id/NAHF.jo_018r_0050_0060_0010 63) 신채호, 『조선상고사』(제2편 수두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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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뜻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필자는 홍익인간의 의미를 단의 어근인 ‘다’와 연계하여 새롭게 설명할 필요성 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홍익인간도 이 하늘, 땅, 사람, 왕의 범 주를 벗어날 수 없고, 그 범주 안에서 해석되지 않을 수 없다고 보기 때 문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홍익인간은 완전한 해석이 아니 라는 지적이 있다.

안호상은 홍익인간의 뜻으로 알려진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기’가 너 무나 잘못된 해석이라고 보고, 이를 ‘사람을 크게 유익하게 하기’로 바꾸 어야한다고 주장한바 있다. 그의 논지는 弘(홍)을 넓을 광(廣)의 弘(홍) 이 아니라, 큰 대(大)의 弘(홍)어야한다는 것이다.64) 아무튼 홍(弘)을 대 야(大也)로 본 것은 당시로써는 새로운 해석이었다. 이에 착안하여 필 자는 훈음차법(訓音借法)으로 새로운 해석을 하려고 한다. 특히 표기는 한자로 하였으나 실질적인 호칭은 고대로 올라 갈수록 고유명(固有名) 이 대세를 이루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65) 예를 들어 고마성(固 麻城)은 고유명이나 백제시대에 들어와 熊津(웅진)이 되고 다시 公州(공 주)가 되었다. 이처럼 삼국시대 이전에 더 많이 고유지명인 ‘고마나루’를 보존하며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公州(공주)에서 어떻게 ‘고마나 루’를 찾을 수 있을까?

이제 홍익인간의 弘益(홍익)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강희자전』에 홍(弘)은 대야(大也), 대지(大之)66)라 했고, 익(益)은 요야(饒也), 가야 (加也)라고 했다.67) 이에 대해 우리의 『전운옥편』에 홍(弘)은 대야(大也)

64) 안호상, 『사람을 크게 유익케하기의 본바탕과 가치』 배달학회, 1997, 44쪽 65) 도수희, 앞의 257쪽

66) “《廣韻》《集韻》《韻會》胡肱切,或平聲。《說文》弓聲也 又《爾雅·釋詁》大也。《疏》

弘者,含容之大也。《易·坤彖》含弘光大。又《正韻》大之也。《論語》人能弘道”(『강 희자전』 弘)

67) “《唐韻》《集韻》伊昔切,嬰入聲。饒也,加也。《廣韻》增也,進也。《書·大禹謨》滿 招損,謙受益。《詩·邶風》政事一益我。《左傳·昭七年》三命茲益共。《禮·曲禮》

請益則起。《論語》益者與”(『강희자전』 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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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하였고, 익(益)은 증야(增也), 진야(進也), 요야(饒也), 가야(加也)라 하였다.

홍(弘)을 대(大)라 한 것은 뜻으로 본 훈독(訓讀)이다. 여기서 이 대 (大)를 앞의 단(檀)의 설명에서 말한 바와 같이 다(多)의 통음(通音)으로 볼 수 있다. 즉 홍(弘)은 대(大)이며, 다(多)임을 알 수 있다. 『만한사전』

에 의하면, 大(대)는 da와 dai로 각각 소리 난다. da로 소리날 경우는 大(대), 達(달), 打(타)의 음사이며,68) dai로 소리 날 경우는 大(대), 待 (대), 玳(대), 戴(대)의 음사이다.69) 여기서도 大(대)는 da와 dai의 통용 임을 알 수 있다. 만주어에는 dae발음이 없다. 만주어 da에는 수장(首 長), 우두머리, 뿌리, 근원, 본원, 처음의 뜻이 들어 있다.70) 시조(始祖) 를 damafa라고 하는 점에서 da(檀-大-多)에서 지도자의 의미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다음은 익(益)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1804년 『주해 천자문』에 익 (益)을 ‘더을 익’이라고 했다. 이는 증야(增也)를 우리말로 번역한 말이 다. 더을(더할) 익의 ‘더’는 ‘더을’의 반훈(半訓)이다. 『삼국사기』(권35, 잡지)에 익성군(益城郡)이 금성군(金城郡)으로 개명되었고, 또 백제의 금마(金馬)가 고려에는 익주(益州)로 바뀌었다. 류열은 이에 대해 금마 (金馬)의 뜻글자는 대문(大文)이고, 중간의 실복(悉伏)이 익주(益州)로 되었다고 했다.71) 그러면서 실복(悉伏)이 어떻게 익주(益州)로 되었는 지 똑똑히 알 수 없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실복은 다 실 (悉), 엎드릴 복(伏), 굴복할 복(伏)이므로 다 실의 ‘다’와 대문(大文)의

‘대’는 통용이라는 사실을 거듭 발견할 수 있고, ‘더라’, ‘다라’가 ‘도라’의 변종으로 쓰이듯이72) ‘더’을 익(益)이 또는 ‘다’을 익(益)으로도 통용되었 68) 이훈, 『만한사전』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17, 165쪽

69) 앞의 책, 172쪽 70) 앞의 책, 163쪽 71) 류열, 앞의 책, 343쪽 72) 류열, 앞의 책, 3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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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따라서 공주, 웅진의 고유지명이 ‘고마나루’

이듯이, 홍익의 고유어는 ‘대다’, ‘대더’, ‘다다’, ‘다더’임을 알 수 있는 것 이다.

따라서 홍(弘)의 대(大)는 결국 다(多)로부터 나온 것으로 하늘을 뜻한 다고 본다. 그러면 익(益)은 무엇인가? 지리산(地理山)을 ‘디리모로’, ‘더 러모로’로 소리 냈다는 것은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다. 『삼국사기』(동명 성제)에 나오는 고구려 말인 다물(多勿:復舊土)73)에 대해 정인보도 ‘다 (多)’는 땅의 ‘따’를 번역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先世(선세)의 “땅”을 “물르”는 첫 功績(공적)임을 紀(기)하기 爲(위)하 야 “復舊土(복구토)”의 義(의)로 “多勿(다물)”이라 하엿으니 “多(다)”는

“地(지)”의 義(의) “따”를 譯(역)함이오 “勿(물)”은 “還買(환매)”의 義(의)

“물르”를 譯(역)한 것이다. 일헛던 땅을 물러온 이 事(사)가 高句麗建國 (고구려건국)의 最初業蹟(최초업적)일 뿐 아니라, 일헛던 땅을 물르자는 것이 곳 高句麗立國(고구려립국)의 根本宗旨(근본종지)다.74)

결국 홍익의 고유어는 ‘다다’나 ‘다더’가 되고, 고어에서 ‘다’와 ‘더’는 통용되므로 ‘다다’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홍익의 훈독 말인 ‘다다’는 하 늘과 땅의 뜻에 공통되므로 결국 홍익의 훈음차인 ‘다다’는 천지(天地)와 같은 뜻이다. 여기에 인간이란 말이 결합하여 ‘천지인’을 합일한 뜻이라 고 본다. 이처럼 홍익인간의 홍익이 대익(大益)이 아니라, 천지(天地)의 뜻일 때, 홍익인간은 ‘천지와 함께하는’ 곧 ‘천지인간’이 된다. 이 ‘천지+

인간’이 곧 ‘천지와 함께 사는 인간’ 또는 ‘천지를 모시는 삶’이 된다. 이 것이 홍익+인간의 원뜻이라고 보는 것이다. 삶의 목적이 천지인합일에 기원을 둔 우주의식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후대인들이 한자어 로 재해석한 말이 ‘弘益人間(홍익인간)’이다. 그래서 그 뜻도 2차적 의미 로 ‘널리 인간세상을 이롭게 하자’가 되었다.

73) “二年 夏六月 松讓以國來降 以其地爲多勿都 封松讓爲主 麗語謂復舊土爲多勿 故以名焉”(『[삼국사기』 권제13,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

74) 정인보, 『동아일보』 「오천년간 조선의 얼」 1935.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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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 가지 유의할 것은 인간(人間)의 간(間)75)을 재조명할 필요 가 있다는 점이다. 『예기』(악기)에 이르기를, “쉼없이 움직임을 크게 드 러낸 것이 하늘이고, 움직이지 않음을 크게 드러낸 것이 땅이다. 한번 움직이고 한번 고요한 것은 천지의 사이(간격)이다. 고로 성인이 말하기 를 예와 악이라 이른 것이다.”76)고 했다. 이처럼 천지의 간(間)이 있다면 인의 간(間)도 있다. 특히 소강절은 일동일정지간(一動一靜之間)에 주목 하였다. 사람들은 천지가 천지인 것을 알지만, 천지가 왜 천지인지는 알 지 못한다. 천지가 왜 천지인가를 알고자 하지 않는다면 그만이지만, 반 드시 천지가 천지로 된 까닭을 알고자 한다면, 동정(動靜)을 버리고 어 디로 갈 것인가라고 반문한다. 또 일동일정은 천지의 지극히 신묘한 것 이며, 일동일정지간(一動一靜之間)이라는 것은 천지인의 지극히 또 신 묘한 것이라고 찬탄하였다.77) 일동일정과 일동일정지간이 가지고 있는 차이를 강조한 것이다. 주회암이 천지인을 至妙(지묘)라고 거듭 강조한 것은 “하늘은 다만 움직일 뿐이고, 땅은 다만 고요할 뿐이나 사람에 이 르러서야 곧 움직이고 고요함을 겸하였기 때문이다”78)고 말했다. 다시 말해 천, 지, 인은 이 일동일정지간(一動一靜之間)에서 만나는 것이다.

그 중에 인(人)은 이 간(間)중의 간(間)을 간직하고 있다. 사람은 하늘의 움직임과 땅의 고요함을 다 겸비(兼備)한 특별한 존재이다. 천지의 일동 일정지간(一動一靜之間)을 모두 겸하였기 때문에 인간이 곧 천지이며, 천지인합일체이다. 그러므로 우리 고대사에서 ‘인’이 아닌, ‘인간(人間)’

75) “〔古文〕《唐韻》古閑切《集韻》《韻會》居閑切《正韻》居顏切,音蕑。《說文》隙也。从門 从月。會意,亦形。《徐鍇曰》門夜閉。閉而見月光,是有閒也。《禮·樂記》一動一靜 者,天地之閒也。《莊子·山木篇》周將處夫材不材之閒”(『강희자전』 間) 76) “著不息者天也,著不動者地也。一動一靜者天地之間也。故聖人曰禮樂云”(『예기』

(낙기))

77) “人皆知天地之爲天地 而不知天地之所以爲天地...夫一動一靜者 天地至妙者歟 夫一動一靜之間者 天地人之至妙至妙者歟”(소강절 『황극경세』 내편 5장) 78) “蓋天 祗是動 地 祗是靜 到得人 便兼動靜 是妙於天地處”(『황극경세』 「관물내

편 5장」 주자注 )

(25)

이란 말에 ‘홍익’을 붙여 ‘홍익인간’이란 말을 처음 사용한 것은 인(人)이 천지의 일동일정지간(一動一靜之間)을 겸수(兼受)한 존재이기 때문이 며, 그래서 인간은 근본적으로 ‘천지의 인(人)’이므로 ‘천지인간’인 것이 다. 이 말 한마디에 ‘홍익인간’의 ‘인간’이라는 말이 우주적 개념임을 알 수 있다.

한편 『논어』나 『맹자』에도 ‘인간’이란 말은 등장하지 않는다. 중국의 문헌 중에 가장 이른 것은 서한(西漢)시기의 『설원』(잡언)에 나오는 “故 君子居人間則治,小人居人間則亂”이란 구절이다. 이는 단순히 ‘사람들 사이’라는 뜻으로써 인간이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일찍이 안재홍은 「신민족주의」를 설명하면서 ‘다사리’ 즉 ‘다사리주의’

라는 말을 사용했다. 이 말은 ‘다사리어’(모두 다 말씀하게 하여)와 ‘다 살린다’(모든 사람을 다 살게 한다)의 뜻을 가진 말로 해석된다.79) 런데 손성태는 멕시코 원주민(동이족의 일파인 맥이족)이 사용한 말들 을 분석하여 발표한 바 있다. 다메메, 다마틴이, ‘다다살리’(tlatlazali) 등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보듯이 모두 ‘다’로 시작한다. 특히 ‘다다살 리’(tlatlazali)라는 말은 그들의 고수레 풍습에서 나온 것으로 ‘모두 함 께 살자’는 뜻이라는데,80) 이 말은 우리의 홍익인간과 대비하여 흡사함 을 느낄 수 있다. 옛 사람들이 천지자연과 함께 살려는 의식의 작은 표 현이 고수레였다. 또 고수레는 음식을 매개로 서로의 생명을 동일한 존 재로 대한다. 그래서 사람끼리 음식을 나누는 나눔 의식을 한다. 고수레 는 인간이 아닌 대상에게도 음식을 나누어주는 행위이다. 당연히 동네 에서 가까운 사람이나, 찾아온 손님에게도 음식을 나누어 준다. 고수레 는 욕심을 더는 덞 의식이다. 고수레는 단시간에 어디서나 누구나 간편 하게 할 수 있는 신앙행위이자, 대자연을 사랑하는 열린 마음이다. 모든 것에 감사하고, 하찮은 동식물이나 무생물까지도 인격체로 대하는 생명

79) 정윤재, 「민세 안재홍의 다사리이념 분석」, 『한국동양정치사상사 연구』 11(2), 2012, 97쪽

80) 손성태, 앞의 책, 115~116쪽

(26)

존중의 마음이다. 이것이 진정한 홍익인간의 모습이다.81)

그러면 어찌하여 ‘다다살리’(tlatlazali)를 홍익인간과 비교할수 있 는가?

우선 고수레의 풍습처럼 원초적인 공동체의식으로부터 나왔다는 점 을 고려한다면, 이 중에 ‘다다’는 앞에서 열거한대로 하늘의 ‘다’, 땅의

‘다’의 뜻을 모두 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또 ‘살’은 사람의 어근이 다.82) ‘살리’는 ‘더부살이’처럼 ‘삶의 형태’ 또는 ‘그런 사람’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다다살리’는 홍익인간과 같은 공동체적 의식과 관계있다고 볼 수 있다.

3. 단(檀)과 홍익인간으로 본 인간존재

앞에서 논의된 홍익인간의 의미를 단(檀)과의 관계에서 다시 살펴보 기로 한다. 홍익인간은 우리 민족에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아 정체 성을 일깨워준다. 이런 정체성의 문제제기는 민족적인 것을 뛰어넘어 우주적 관계로 까지 물음을 갖게 한다.

박용숙은 사람을 인(人), 인(仁), 인간(人間), 홍익인간(弘益人間)으로 구별하면서, “니르바나의 체험을 통하여 아트만이 성립되고, 범(梵) 아 (我)로 발전한다는 불교의 논리와 마찬가지로 인(人)의 체험을 통해 인 (仁, ᄇᆞᆰ, 부루)이 되고, 그것이 홍익인간(弘益人間)으로 발전”83) 다고 했다. 이는 니르바나를 통해 새롭게 변화하듯이 사람이 인(人)의 체험을 통해 최상으로 발전할 수 있는 마지막 인격체로 홍익인간을 제

81)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59075&cid=50222&cate- goryId=50229 고수레 (한국민속신앙사전: 가정신앙 편, 2011. 12. 15., 국 립민속박물관)

82) 서정범, 앞의 책, 356쪽

83) 박용숙, 『한국의 시원사상』 문예출판사, 1985, 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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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 것이다. 여기서 인(人)의 체험이란 사람이 사람다움의 거듭된 체험 을 의미한다. 박용숙은 인(人)이란 보통의 사람이 아니라, 고도의 수행 자로서 지도자의 자격을 갖춘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84) 곰과 범이 쑥 과 마늘을 먹고 이루고자 한 그 사람 즉 모든 사람이 간절히 기원하는 원화위인(願化爲人)의 그 인(人)인 것이다. 안함로의 『삼성기』는 이를 환 웅의 성선(成仙), 즉 신선이 되는 것이라 하였다. 이것이 ‘인(仁)’이며,

‘밝’이다. 선(仙)이다. 환인시대에는 인(人)의 체험을 통한 영성의 근본 적 변화를 인(仁) 또는 인(因)이라고 했다가, 환웅시대에는 선(仙)이 되 고, 단군시대에는 단(檀), ‘밝’으로 달라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중용』에 修道以仁(수도이인), 仁者人也(인자인야)라 했다. 즉 수도는 인(仁)으로 써 하는데, 이 인(仁)이 이루어진 자가 곧 가장 인(人)다운 사람이라는 뜻이다. 『중용』의 이 말은 고조선 이전의 수도문화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시간상으로 인(仁)에서 선(仙), 선(仙)에서 단(檀)으 로 바뀐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인(人)이 보통사람이 아닌 특별한 뜻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천지인(天地人)을 표현할 때, 천일(天一), 지일(地一), 태일(太一)로 표 현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이 인(人)이 단순히 생물학적인 사람이 아닌 특 별히 초인적인 능력을 지닌 태(太, 泰)의 존재라는 것이다.85) 중국 자료 에, “천신 가운데 가장 귀한 자가 태일신(泰一神)이며, 태일신을 보좌하 는 것이 오제(五帝”86)라고 했으며, 굴원(屈原)의 「구가(九歌)」에도 “동황 태일(東皇太一)”이 나온다. 전자는 신적(神的) 존재로서의 태일신을 의 미하고, 후자는 최고지도자로서의 동방의 태일 임금을 상징한다고 본 다. 이와 같이 인이 밝(檀)이 되고, 다시 그 밝이 우주적인 것과 하나가 되는 실천을 통해 ‘큰 밝’이 된다는 것이 박용숙의 인간관이다.87) 이 ‘큰 84) 앞의 책, 37쪽

85) 앞의 책, 36쪽

86) “天神貴者泰一 泰一佐曰五帝 古者 天子以春秋祭泰一...”(『사기』 효무본기) 87) 박용숙, 앞의 책, 46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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