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고일_2021.02.10 심사기간_2021.03.01-14 게재확정일_2021.04.08 DOI https://doi.org/10.47294/KSBDA.22.2.5
동시대 미술과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이론적 고찰 -수퍼플렉스와 토마스 사라세노의 작업을 중심으로-
A Theoretical Investigation on Contemporary Art and Entertainment -focused on works of Superflex and Tom
ás Saraceno-
김보라,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Kim, Bo Ra_Department of Painting, Hongik University
차례 1. 서론
1.1. 연구의 배경 1.2. 연구목적과 방법
2.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이론적 접근 2.1. 엔터테인먼트 개념의 어원 2.2.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사상적 계보 2.2.1. 엔터테인먼트 비판
2.2.2. 엔터테인먼트 옹호
3. 동시대 미술에 나타난 엔터테인먼트적 요소 3.1. 수퍼플렉스의 <One Two Three Swing!>
3.2. 토마스 사라세노의 <In Orbit>와 <Arachnomancy>
4. 결론 References
동시대 미술과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이론적 고찰 -수퍼플렉스와 토마스 사라세노의 작업을 중심으로-
A Theoretical Investigation on Contemporary Art and Entertainment -focused on works of Superflex and Tom
ás Saraceno-
김보라,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Kim, Bo Ra_Department of Painting, Hongik University
요약
중심어 엔터테인먼트 경험경제 리처드 슈스터만 수퍼플렉스 토마스 사라세노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고급예술과 대중문화의 구분은 모호해졌으며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물결 속에서 경제, 정치, 문화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본 연구의 목적은 일상과 문화를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엔터테인먼트와 동시대 미술의 관계를 고찰하는 것이다. 논문은 크게 두 단계로 구성되어, 엔터테인먼트 개념과 관련된 어원적, 사상적 계보에 대해 검토한 후 구체적 미술 실천 사례 를 통해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분석한다. 이로써 엔터테인먼트를 포용하고, 진지한 미술과 엔터테인 먼트의 균형과 양자의 바람직한 조우를 모색하는 결론에 이른다. 이를 위해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선구 적 성찰을 제시했던 철학자 리처드 슈스터만의 논의를 참고하고자 한다. 개념사적으로 엔터테인먼트 에 접근하는 과정에서는 진지한 대접과 유희적 오락, 주의집중과 기분전환이라는 엔터테인먼트의 역 설적 구조를 발견하고,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기존의 편협한 시각을 극복할 계기를 찾을 수 있다. 다음 으로 서양 사상의 역사 속에서 대표적 엔터테인먼트 비판자, 특히 콜링우드, 아도르노, 하이데거 등 엔터 테인먼트를 부정적으로 보았던 철학자에 대해 살펴본다. 이로써 엔터테인먼트의 한계점과 약점을 확인 할 수 있다. 동시에 엔터테인먼트를 옹호한 사상가들의 입장을 조명함으로써 엔터테인먼트의 미학적 잠 재력과 가능성을 타진한다. 이러한 이론적 고찰을 바탕으로 구체적 예술작품에 접근하여, 수퍼플렉스의
<One Two Three Swing>, 토마스 사라세노의 설치 <In Orbit>와 카드 작업 <Arachnomancy>에 나 타난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분석한다. 이 과정을 통해 슈스터만이 말한 엔터테인먼트의 역설적, 생산 적인 변증법적 구조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ABSTRACT
Keywords entertainment Experience Economy Richard Shusterman Superflex
Tomás Saraceno
Since postmodernism, the distinction between high-end fine art and pop culture has become ambiguous, and the boundaries of economy, politics and culture are blurring amid the global wave of capitalism. Against this backdrop,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relationship between contemporary art and entertainment which seems to dominate everyday life and culture.
The paper consists of two main stages. First, etymological and ideological genealogy related to the concept of entertainment is reviewed and the entertainment elements found in specific artworks are analyzed. This leads to a conclusion that embraces entertainment and coordinates the balance of art and entertainment or the desirable intersection between the two. In particular, Richard Shusterman’s pioneering reflection on entertainment is a major reference. The paradoxical structure of entertainment that encompasses serious maintenance and playful amusement, attention and diversion can be found in the process of approaching the history of concept. Moreover, it provides an opportunity to overcome the traditional narrow view of entertainment. It is followed by the arguments of leading entertainment critics who disparaged entertainment in the history of Western thought, such as Collingwood, Adorno, and Heidegger.
Their comments confirm the limitations and weaknesses of entertainment. On the contrary, a review of claims of thinkers who defended entertainment reveals the aesthetic potential of entertainment. Based on this theoretical consideration, this paper analyzes the entertainment elements shown in Superflex’s ‘One Two Three Swing!’, Tomás Saraceno’s ‘In Orbit’ and
‘Arachnomancy.’ Through the analysis of these works, I emphasize the importance of paradoxical and productive dialectical structure of entertainment that Shusterman has mentioned.
1. 서론 1.1. 연구의 배경
현존하는 최고의 화가라고 일컬어지는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 1932- )는 2011 년 테이트모던 회고전을 앞두고 열린 한 대담에서 “세월이 흐르면서 예술가의 역할이 변화하고 있나요?”라는 질문을 받자, 다음과 같이 답했다. “이제는 엔터테인먼트에 가까운 것이 되었다고 할까요. 우리는 사람들을 즐겁게 합니다(we entertain people).” 그런가 하면 캐나다의 사진작 가 제프 월(Jeff Wall)은 2003년 3월 미술잡지 Artforum과의 인터뷰를 통해 대중문화가 미술가에 강한 영향을 미치고 미술가들이 다양한 영역을 넘나드는 상황을 우려하며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제 생각에는 1970년대 이후에 전혀 새로운 종류의 미술이 나타난 것 같아요.
뭐랄까, 이해하기 쉽고 어딘가 놀이 같고 대중매체의 방식과 좀 더 친밀한, 그런 미술 말이죠.
전반적으로 볼 때 그건 오락에 훨씬 가깝고, 제작 가치나 스펙터클 같은 측면에 많이 기대고 있는 미술이에요. 과거의 진지한 미술에서는 절대 하지 않았던 방식이죠(Robertson, 2010/
2011, p.62).”
한편 미국의 워커아트센터에서 기획된 어느 책자 첫머리에는 “나는 더 이상 운동선수가 아닙니 다. 엔터테이너죠.”라는 문장이 인용되어 실렸다. 농구 선수 데니스 로드맨의 말이었다. 이 책은
≪Let’s Entertain: Life’s Guilty Pleasures≫ 개최에 맞춰 출간된 것으로, 제목에서 암시되고 있는 것처럼 엔터테인먼트를 주제로 기획된 전시의 도록이었다(Vergne, 2000). 리히터와 월, 그리고 로드맨의 말처럼 우리는 진정 엔터테인먼트의 시대에 살고 있는가?
널리 인식되고 있는 바대로,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예술과 삶의 경계는 희미해지고 고급예술과 대중문화를 가르던 구분이 모호해지고 있다. 더욱이 1990년대 이후 본격화되기 시작한 세계화 와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물결 속에서 “경제, 정치, 문화는 점차 서로 포개어지고 서로 간에 투자(Hardt & Negri, 2000)”하는 가운데, 엔터테인먼트 개념이 부상하고 있다. 영국의 미술평 론가 오시안 워드는 저서 TABULA 현대미술의 여섯 가지 키워드(Ways of Looking: How to Experience Contemporary Art)에서 “미술관과 엔터테인먼트 사이의 간격이 좁아지고 양 자의 관계는 더욱 긴밀해지고 있다(Ward, 2014, p.40)”고 주장한다.
워드에 따르면 엔터테인먼트는 진지한 예술의 반대말에 그치지 않는다. 미술 감상이 즐거워질 때 더욱 깊은 가치도 발견할 수 있으며, 따라서 깊이와 재미는 상호배타적인 개념이 아닌 것이 다. 이른바 엔터테인먼트 미술이 반드시 가벼운 주제만 다루는 것은 아니라고 워드는 말한다 (Ward, 2014/2017). 그가 이 책에서 엔터테인먼트, 이벤트, 스펙터클 등 몇 가지 키워드를 통해 현대미술의 양상을 논하고 있듯이, 이제 미술관에서 미끄럼틀을 타거나(카르스텐 횔러 작업의 예. <Figure 1> 참조), 자신이 좋아하는 밴드의 공연을 보며 환호하는 것은 낯선 풍경 이 아니다. 미술관은 명상적 관조의 공간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재미와 유희적 요소를 결합 한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관람객을 끌어들이며 능동적 감상을 유도하고 있다. 이는 관람객 참여와 소통을 중시하는 최근 예술 경향과 연결되고, 인터넷 문화나 고객에게 특별한 체험을 제공할 것을 강조하는 경험경제(Experience Economy) 같은 기술적, 경제적 맥락과도 맞물리 는 현상이다(Pine & Gillmore, 1998/2010).
1.2. 연구목적과 방법
위와 같은 배경에서 본 논문은 엔터테인먼트 개념을 이론적으로 재검토하고자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재고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 이 엔터테인먼트로 생각하는 체험은 보통 공연을 보거나 음악을 듣는 것처럼 감각을 통해 수동 적으로 체험을 흡수하는 것을 말한다(Pine & Gillmore, 1998/2010, p.61). 하지만 이 논문에 서는 동시대 미술작품에 주목함으로써 미술은 고급예술이며 엔터테인먼트는 저급하다는 이분 법이나, 엔터테인먼트를 가볍고 소비적이며 감각적인 즐거움에만 머무는 것이라고 보는 관점 에 도전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동시대 미술에 나타난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밝히고 그 미학적 의의와 시대적 함의를 고찰하는 데에 지향점을 둘 것이다. 연구는 크게 두 단계, 즉 철학적
<Figure 1> Carsten Höller, Site, 2006
(http://www.tate.org.uk)
논의와 사례 분석으로 진행된다.
먼저 로빈 조지 콜링우드(Robin George Collingwood, 1889-1943),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 테오도어 아도르노(Theodor Adorno, 1903-1969) 등 엔터테인먼 트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던 철학자의 주장을 살펴보고 그들이 엔터테인먼트를 폄하했던 이유를 통해 엔터테인먼트의 한계점이나 폐해를 확인한다. 더불어 이와 대조적으로 엔터테인먼트에 대해 긍정적 시각을 가졌던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 T.S. 엘리엇 (Thomas Stearns Eliot, 1888-1965) 등의 견해를 되짚어 본다.
엔터테인먼트 옹호론과 관련하여, 예술에 대한 엘리트주의 관점을 벗어난 학문적 접근으로 제2 차 세계대전 이후 영미권을 중심으로 전개된 문화연구(Cultural Studies), 1970년대 본격화된 신미술사학(New Art History) 등의 선례를 들 수 있겠지만, 이 논문에서는 특히 미국의 철학 자 리처드 슈스터만(Richard Shusterman, 1949- )에 기대고자 한다. 그가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주목할만한 통찰을 보여주는 이론가이기 때문이다. 애초 슈스터만은 대중예술을 옹호하 는 입장에서, 대중예술의 결점과 잠재성을 동시에 이해하고자 했다(Shusterman, 1992). 이후 2003년에는 엔터테인먼트에 관해 쓴 논문 발표를 통해 이 개념의 어원을 확인하고 엔터테인먼 트에 대한 사상적 계보를 밝힌 후,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있다. 이와 같은 미학적 시도는 엔터테인먼트에 새롭게 접근하고자 하는 본 연구논문의 중요한 참조점이 된다.
이론적 논의에 뒤이은 작품 분석은 연구자의 직접적 감상 체험을 바탕으로 한다. 그 가운데 엔터테인먼트적 특징이 반영된 동시대 미술의 주목할만한 사례라고 판단되는 덴마크의 아티스트 그룹 수퍼플렉스(Superflex)와 아르헨티나 출신의 미술가 토마스 사라세노(Tomás Saraceno, 1973- )의 최근 작업을 살펴볼 것이다. 이들 작품 자체가 갖는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분석하 여 앞에서 전개한 이론적 논의와 예술실천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확인하고자 한다.
물론 엔터테인먼트 개념과 연결지어볼 수 있는 미술 실천과 미술관 전시 및 교육 프로그램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며, 수퍼플렉스와 사라세노의 작업 모두가 동시대 미술의 엔터테인먼 트적 특성을 대표한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 논문에서 강조하려는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구현한 하나의 사례로서 수퍼플렉스와 사라세노의 몇몇 작업을 제시하고 자 한다. 특히 이들의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엔터테인먼트적 요소가 어떻게 적절하게 연결되는지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동시대 미술과 엔터테인먼트의 관계를 짚어본 후, 양자 간의 결합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관해 논하는 결론부에 다다르게 될 것이다.
2.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이론적 접근 2.1. 엔터테인먼트 개념의 어원
우리 말로 ‘오락’, ‘여흥’으로 번역되는 영어 단어 ‘entertainment’를 들으면 대개 TV, 영화, 대중음악, 게임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이 개념이 일상생활의 많은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는 현황을 고려하여 그 잠재력을 탐색하려면, 의미를 좀 더 확장해서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슈스터 만에 따르면, 엔터테인먼트는 19세기부터 영어로 쓰이기 시작한 ‘대중예술(popular art)’에 비해 더욱 폭넓고 역사도 오래되었다. 신문이나 잡지 매체의 카테고리로 ‘Arts and Entertainment’가 일반적일 정도로 엔터테인먼트는 예술 개념과 매우 복합적으로 깊숙이 연관되어 있는 개념이 기도 하다. 이러한 엔터테인먼트 개념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에 앞서 이 단어의 유래와 역사를 살펴보자.
영어 ‘entertainment’는 16세기부터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라틴어 ‘inter’와 ‘tenere’가 결합된 형태다. ‘inter’는 ‘중간’ 혹은 ‘사이’를, ‘tenere’는 ‘잡다’, ‘유지하다’, ‘단결하다’, ‘대접하 다’, ‘떠받들다’를 의미하는 것이다. 슈스터만에 따르면, 서양 철학에서 엔터테인먼트 개념은 복합적이고 중첩적 의미를 지닌 채 사용되어 왔다. 슈스터만은 역사 속에서 엔터테인먼트라는 개념이 조금씩 다르면서도, 중첩되는 의미를 갖는 다양한 용어로 표현되어왔다고 말한다.
우선 영어 ‘amusement’, ‘recreation’, ‘pastime’, ‘divertissement’, ‘distraction’, 그리고 가끔씩 연관된 단어로 사용되는 ‘play’와 ‘game’이 그것이다(<Figure 2> 참조). 프랑스어에서는 영어와
표기법이 같은 ‘amusement’, ‘distraction’, ‘divertissement’
이외에도 ‘rejouissance’, ‘passetemps’이 쓰인다. 그런 가 하면 독일어에서는 ‘Unterhaltung’, ‘Zerstreuen’,
‘Zeitvertreib’, ‘Belustigung’ 등의 단어가 엔터테인먼트 의 의미로 사용된다.
어원에서 알 수 있듯이, 엔터테인먼트는 원래 대접하고 떠받드는 것을 나타낸다. 따라서 엔터테인먼트는 ‘기분 좋게 사람의 관심을 끄는 행동’, ‘관심거리나 오락을 제공 하는 행동’을 말한다. 슈스터만은 ‘관심을 끌어내거나 즐 겁게 해주는 공적 퍼포먼스 혹은 전시’라는 말이 여기에 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고 쓰고 있다. 그러나 영어와 프 랑스어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amusement’, ‘distraction’,
‘divertissement’나 독일어의 ‘Zerstreuen’, ‘Zeitvertreib’
의 의미를 고려할 때 엔터테인먼트 개념은 다소 복잡해 진다. 이러한 단어들은 어떠한 생각에 사로잡혀 시간이나 정력을 소모하는 것 혹은 습관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것 대신 다른 것에 관심을 쏟는 것, 분산되고 흩어지는 것 등을 뜻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슈스터만은 바로 여기에 중요한 철학적 교훈이 있다고 주장한다. 즉 자기 자신을 유지하 고 지탱하기 위해 우리는 자신 이외의 것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집중력을 회복 하기 위해 집중력을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이 슈스터만은 집중과 분산, 진지한 대접과 유희적 오락이라는 외관상 대립하는 개념 쌍을 생산적 변증법으로 묶어내는 역설적 구조가 엔터테인먼트 개념의 계보 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흥미로운 분석을 보여준다(Shusterman, 2003). 이러한 엔터테인먼트의 역설적 구조는 구체적 작업에 접근할 때 다시 상기하게 될 것이 다. 다음으로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사상적 계보를 살펴볼 차례다.
2.2.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사상적 계보 2.2.1. 엔터테인먼트 비판
슈스터만이 적시하고 있듯, 서구 철학사에서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었 다. 엔터테인먼트의 가치와 의미를 밝히고자 하는 슈스터만의 논의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기에 앞서,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비판의 소리에 귀기울여 보기로 하자. 슈스터만을 따라 엔터테인먼 트의 잠재력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기 이전에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것은 엔터테인먼트의 한계 점을 미리 확인함으로써 균형잡힌 시각을 갖기 위함이다. 엔터테인먼트적 요소에 경계심을 표 했던 사상가는 고대 플라톤 이래 무수히 많았지만, 대중문화 개념이 본격화된 19세기 이후의 논의에 한정짓기로 하고, 대표적으로 세 인물의 입장을 고찰하기로 한다. 그 중 콜링우드의 주장을 가장 먼저 살펴본다. 그는 일찍이 엔터테인먼트와 예술을 결합한 용어 ‘엔터테인먼트 예술(entertainment art)’에 관해 논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영국의 철학자 콜링우드는 무엇보다 진정한 예술과 기술(craft), 진정한 예술과 사이비 예술을 구분했다. 대표 저서인 상상과 표현(The Principle of Art)(1937) 제1부 ‘예술과 비예술’에 서 그가 자신이 경멸하는 사이비 예술, 즉 가짜 예술의 대표 사례로 들고 있는 것이 바로 ‘엔터 테인먼트 예술’이다. 콜링우드는 엔터테인먼트 예술의 목적이 감정 발산 자체라고 말한다. 그것 은 쾌락주의적이며 단지 즐거움을 준다는 점, 그 이상은 없다. “진정한 예술작품과 달리, 그것은 자체적 가치를 갖지 못하며, 단지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것은 확정적이고 미리 계획된 일정한 효과를 거두기 위해, 즉 특정한 부류의 관람객에게 특정한 종류의 감정을 불러일 으키기 위해, 그리고 바로 이 감정을 한정된 가상 상황 안에서 방출하기 위해 공산품처럼 기술 적으로 구성되고 의약품처럼 솜씨있게 조제된다”(Collingwood, 1958/1996, p.104). 그에 따르 면 엔터테인먼트 예술에는 치명적 위험이 존재하므로 이러한 예술이 유행하는 것은 그 사회가
<Figure 2> Various Terms That Overlap Entertainment
도덕적으로 타락했다는 징후다. 그는 영화나 라디오 같은 엔터테인먼트 예술이 널리 보급되면 서 사회가 몰락한다고 보았으며 이에 저항하고자 했다(Warburton, 2003).
그밖에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반감을 표했던 대표적 인물로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가 있다.
세계 안에 존재하는 인간 실존에 관심을 기울였던 하이데거에게 예술작품은 하나의 세계를 열고 진리를 생성하는 것이었다. 미술 관련 중요 저작인 「예술작품의 근원(Der Ursprung des Kunstwerkes)」에 하이데거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예술은 진리를 샘솟게 한다. 예술은 진리의 창작적 보존으로서 작품 가운데서 존재자의 진리를 샘솟게 한다”(Heidegger, 1952/
1998, p.98). 그에게 “작품을 단지 체험을 자극하는 자극제의 역할로 격하하는 일”은 경계해야 할 대상이고, “만일 작품들이 한낱 예술적 향수만을 위해서 제공된다면, 우리는 그것이 진정 작품으로 보존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Heidegger, 1952/1998, p.86).” 따라서 그는 무엇보 다 “진지하고 위대한 예술작품” 속에 존재의 진리가 깃듦을 해명하고자 나선다(Heidegger, 1952, p.216).
마지막으로, 아도르노는 역사상 가장 강경한 엔터테인먼트 비판론자이자 중 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다. 막스 호르크하이머와 공저한 책 계몽의 변증법(Dialektik der Aufklärung)(1969) 에서 대중문화가 모든 것을 동질화시킨다고 지적하면서 이를 ‘문화 산업(culture industry)’이 라 명명했던 그는, 사람들의 여가 시간이 “문화 산업이 제공하는 획일적 생산물로 채워질 수밖 에 없다”(Adorno & Horkheimer, 1994/2001, p.189)고 말한다. 다음과 같은 아도르노의 글에 서 오락과 즐김에 대한 그의 강한 반감이 전해진다. “……오락에는 물건을 팔기 위해 요란한 소리를 내는 시장 바닥의 외침과 같은 장사꾼 냄새가 배어 있다. ……즐긴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항상 무엇인가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것, 고통을 목격할 때조차 고통을 잊어버리 는 것이다. 즐김의 근저에 있는 것은 무력감이다, 즐김은 사실 도피다. 그러나 그 도피는 일반적 으로 얘기되듯 잘못된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마지막 남아있는 저항 의식으로부터 도피 하는 것이다. 오락이 약속해주고 있는 해방이란 ‘부정성’을 의미하는 사유로부터의 해방이 다”(Adorno & Horkheimer, 1994/2001, p.219). 그가 보기에 자본주의가 양산한 싸구려 문화 는 대중들의 정신을 둔하게 만들고 상품 소비와 같은 거짓 욕구를 추구하도록 만들었다. 예술의 본령은 부정과 비판이라고 보았고, 부정성의 사유를 강조했던 그에게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표 준화, 오락과 긴장 이완, 수동적 감상을 특징으로 하는 대중문화는 배척해야 할 대상이었다.
2.2.2. 엔터테인먼트 옹호
앞선 논자들과 대조적으로, 슈스터만은 논문 「엔터테인먼트: 미학을 위한 하나의 제안 (Entertainment: A Question for Aesthetics)」(2003/2012)에서 엔터테인먼트의 가치를 밝히 고자 한다. 그는 자신의 입장을 본격적으로 피력하기 이전에 엔터테인먼트를 옹호하는 시각을 담은 역사적 선례를 풍부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주목할만한 대목은 미셸 몽테뉴 (Michel de Montaigne, 1533-1592)와 프리드리히 실러(Friedrich Schiller, 1759-1805),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 T.S. 엘리엇에 관해 설명하고 있는 부분 이다.
첫째로, 슈스터만은 근대 여명기의 사상가 몽테뉴의 저서 수상록(Les Essais)제2권 10장
「서적에 대하여」, 제3권 3장 「세 가지 사귐에 대하여」, 제3권 4장 「기분전환에 대하여」에 초점 을 맞춘다. 몽테뉴는 제3권 3장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학문을 단지 노리개나 소일거리로 삼는 것이 뮤즈 여신들을 천대하는 일이라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쾌락과 노리개, 소일거 리의 값어치가 얼마나 큰가를 모르고 하는 말이다. ……나는 젊어서는 남에게 자랑하기 위해서 공부했다. 다음에는 나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하였다. 지금은 재미로 한다.”(Montaigne, 2009, pp.912-913). 슈스터만에 의하면, 이러한 발언을 통해 몽테뉴는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진지 한 사유’와 ‘유희적 오락’이라는 전통적 위계 질서에 도전한다. 방대한 분량의 자기성찰적 기록 인 수상록이라는 업적을 남긴 몽테뉴에서 알 수 있듯이 엔터테인먼트, 쾌, 진지한 지적 활동 의 추구는 서로 무관한 것이 아니다(Shusterman, 2003).
두 번째로, 슈스터만에 따르면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인간의 적극적 욕구가 유희 개념을 통해 표현된다고 주장한 실러의 주장을 주목할 만하다.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편지(Über die ästhetische Erziehung des Menschen in einer Reihe von Briefe)열다섯 번째 편지에서 그는
“인간은 완전한 의미에서 인간인 경우에만 유희하며 그는 오로지 유희하는 한, 온전한 인간인 것입니다(Der Mensch spielt nur, wo er in voller Bedeutung des Wortes Mensch ist, und er ist nur da ganz Mensch, wo er spielt)”(Schiller, 1995, p.88)라고 적고 있다. 실러는 유희 를 통해 물질적 삶과 정신적 삶 사이 균형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세 번째로, 니체는 종종 엔터테인먼트 개념을 경멸적 의미로 사용하기도 했지만,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에서는 “Erholung(기분전환/레크리에이션)” 개념을 통해 엔터테인먼트의 긍정적 힘을 논한다. 그는 자기 관리를 위해 날씨, 영양 섭취, 레크리에이션이 중요하다고 쓴다.
앞서 슈스터만이 거론한 몽테뉴와 더불어 니체는 엔터테인먼트의 생산적 의미를 인정하고 있 는 것이다. 이처럼 몽테뉴와 니체는 엔터테인먼트와 기분전환의 가치를 강조한 대표적 인물이다.
다음으로, 역시 슈스터만의 시선을 따라 시인이자 비평가 엘리엇을 보자. 엘리엇은 현명하게도 예술의 인식적 중요성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엔터테인먼트를 긍정한다. 뿐만 아니라 고급 예술 과 대중 엔터테인먼트를 연속체로 보면서 양자를 가르는 이분법에 도전하려 했다. 엘리엇은 훌륭한 시인(good poet)은 “대중 엔터테이너(popular entertainer)처럼 되고 싶어하고……시의 즐거움(pleasures of poetry)을 전달하고 싶어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고급예술(high art)과 대중예술(popular art)의 관객이 구분되어 있다고 보는 것은 모자란 생각이며, 고급예술이 폭 넓은 인기를 얻을 수 없다거나 통속적 대중문화로부터 유래한 작품이 고상한 미적 가치를 획득 할 수 없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고 보았다.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앞선 이론가들의 입장을 살핀 후, 슈스터만은 논문 마지막 부분에서 쾌와 삶(pleasure and life)의 문제를 논한다. 부당하게도 역사 속에서 쾌의 중요성이 간과되어 왔다 고 지적하면서 예술작품을 향유하는 것은 그 작품의 특성과 의미를 지각하고 이해하는 가운데 쾌를 얻는 것이라 주장한다. 이러한 쾌는 작품에 대한 주의력을 강화시킨다는 것이다. 또한 예술의 향유나 엔테테인먼트는 종종 주관적이고 협소하다고 간주되는 인식에도 반대한다. 미 적 경험과 마찬가지로 미적 쾌도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요컨대 예술과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얻는 미적 쾌를 하찮은 것으로 취급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다. 예술과 엔터테인먼트의 쾌는 여러 가지 유의미한 방식으로 삶을 유지하고 삶에 의미를 부여하며 삶을 윤택하게 하는 데 기여한다.
엔터테인먼트를 비판했던 이론가들이 예술의 진리, 보편성, 영원불멸성을 강조했지만, 이에 반 해 슈스터만은 일시적 기쁨도 순간적이기 때문에 감동적이며 소중하다고 말한다. 미, 예술, 엔터테인먼트에 의한 대부분의 쾌들은 영속적이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가치가 있다. 슈스 터만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 주체의 미적 경험을 구성하는 에너지와 재료는 보다 포괄적인 세계 에 속해 있다. 말하자면 미적 경험은 인간 주체의 머릿속에만 결코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주체가 예술의 대상이나 자연미의 대상과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가능해지는, 보다 폭넓은 맥락 에 항상 존재한다(Shusterman, 2003).
지금까지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대표적 비판자로 콜링우드, 하이데거, 아도르노의 견해를 짚어 본 후, 슈스터만이 엔터테인먼트 옹호자로 논했던 몽테뉴, 실러, 니체, T.S.엘리엇의 입장과 슈스터만 본인의 주장을 살펴보았다. 요컨대 슈스터만의 철학적 성찰은 진지한 예술과 엔터테 인먼트라는 오랜 이분법에서 벗어나 엔터테인먼트의 미학적 가치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단초 를 제공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주장에 동조하는 입장에서 보자면, 콜링우드의 비판대 로 엔터테인먼트는 감정 발산에만 머무는 개념이 아니다. 아도르노가 우려했듯 오락과 긴장 이완이 반드시 무력감과 현실 도피, 수동적 감상으로만 귀결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놀이와 즐거움, 기분전환 역시 사람들의 생각을 열어 놓을 수 있는 것이다. 이 때, 엔터테인먼트는 진정한 예술의 반대편에 위치하지 않는다.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통해 관람객을 초대하고 그 들의 관심을 끌고 즐겁게 할 수 있으며, 기분전환의 체험이 진지한 사유의 세계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고찰을 바탕으로 동시대 미술 실천에 접근해보도록 하자.
3. 동시대 미술에 나타난 엔터테인먼트적 요소 3.1. 수퍼플렉스의 <One Two Three Swing!>
수퍼플렉스는 1996년에 결성된 덴마크의 3인조 시각예술가 그룹이다. 라스무스 닐슨(Rasmus Nielson, 1969- ), 브외른스테르네 크리스티안센(Bjørnsterne Christiansen, 1969- ), 야콥 펭거(Jakob Fenger, 1968- )로 구성되었으며, 세 사람은 미술대학 동기다. 이들은 평면, 입체, 영상, 건축, 공공디자인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글로벌 자본, 전쟁, 이민자, 기후변화, 대체 에너 지 등을 주제로 한 작업을 전개해왔다. 이들의 홈페이지 www.superflex.net만 잠시 둘러보아 도 수퍼플렉스의 흥미롭고도 다소 엉뚱한 상상력이 빚어낸 폭넓은 활동을 파악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 몇 가지만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가축들이 배출한 가스로 대체 에너지를 개발한 다든지, 맥도날드 매장을 물에 잠기게 한다든지, 다양한 국적의 이주민들이 사는 동네의 공원을 각국에서 가져온 물건이나 각 나라를 상징하는 특색있는 디자인으로 채웠던 프로젝트, 다양한 맥주 레시피를 수집하고 무료로 나누어주는 공짜 맥주 프로젝트 등을 들 수 있겠다.
이렇듯 수퍼플렉스는 오늘날 현대 사회가 직면한 여러 과제를 다루면서 재치와 유머를 특징으 로 한 표현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사회, 경제적 문제에 대한 대안적 모델을 고민하며, 공동 작업을 통해 구현한 자신들의 작업을 예술작품 대신 ‘도구(tools)’라고 부른다. 매체나 작업 방식이 기발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종종 ‘이것도 예술인가?’ 혹은 ‘예술가가 이런 일도 하는가?’,하는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이들이 수퍼플렉스다.
<Figure 3> Superflex, Free Beer, Ongoing(www.superflex.net)
<Figure 4>
Superflex,TOOLS/, 2003
(www.superflex.net) <Figure 5> Superflex, One Two Three Swing, 2017(www.superflex.net)
이렇듯 지난 25년 동안 미술의 역할, 그 외연을 확장해온 수퍼플렉스의 프로젝트 가운데에서도
‘동시대 미술작품에 나타난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라는 본 논문의 주제와 연결하여 가장 주목할 만한 작업이라 판단되는 것은 <One Two Three Swing>(2017)이다. 런던의 테이트모던에서 처음 선보인 것으로, 당시 현대자동차의 기업 후원으로 터바인홀에 전시할 기회를 제공 받아 진행한 프로젝트였다. 이들은 미술관의 중앙 공간인 터바인홀에 여러 대의 그네를 설치했다.
이러한 설치 작업은 미술관 방문객의 동심을 자극했고, 많은 이들이 마치 놀이터에 온 것처럼 그네 타기를 즐겼다. 전시 기간 이후에도 이 작업은 한동안 테이트모던 외부 공간에 일부 설치 되었으며 덴마크, 독일, 스위스 등지에도 실내공간이나 야외, 각 장소에 맞게 유사한 디자인의 그네들이 세워졌다. 2019년에는 파주의 도라산 전망대에 설치되어 그곳을 찾는 사람들이 북한 을 바라보며 그네를 탈 수 있도록 했다.
수퍼플렉스를 대표하는 컬러인 오렌지색이 회색과 조합된 금속 파이프로 만들어진 그네들은 독특하게도 3인이 함께 타도록 제작되었다. 여느 그네처럼 혼자서 탈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셋이 힘을 합쳐 발을 굴러야 비로소 멀리 나가는 그네인 셈이다. 따라서 관람객은 유년기로 돌아간 듯한 놀이의 순간 체험과 더불어 협력적 행위를 경험하게 된다. 한때 화력발전소였던 공간에서 관람객의 참여에 의한 역동적 움직임의 에너지가 창출된다. 그들은 균형을 이루고 함께 이루어 내는 일의 중요성을 놀이를 통해 경험하는 것이다. 놀이의 중요하고 본질적인 사회 적 역할을 경험할 기회를 제공하는 <One Two Three Swing>을 통해 수퍼플렉스는 우리 시대
가 봉착한 정치적, 환경적, 경제적 위기에 대한 무관심에 도전한다. (www.tate.org.uk/press/
press-releases/hyundai-commission-2017-superflex-one-two-three-swing). 수퍼플 렉스가 즐겨쓰는 개념을 적용해보자면, 놀이와 재미를 즐기면서도 자연스럽게 협동과 연대의 의미를 떠올리게 하는 ‘도구(tools)’인 것이다.
<Figure 6> Superflex, One Two Three Swing!(www.superflex.net)
3.2. 토마스 사라세노의 <In Orbit>와 <Arachnomancy>
토마스 사라세노는 아르헨티나와 독일 등에서 건축을 전공한 예술가로서, 환경과 생태, 과학기 술, 미래 도시 등을 주제로 다양한 작업 활동을 선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세계적 인기를 구가하 는 방탄소년단의 메시지를 현대미술로 전하고자 기획된 프로젝트 《CONNECT, BTS》
(2020)에 참여하기도 했다. 앞서 살펴본 수퍼플렉스와 마찬가지로 사라세노의 작업도 매체나 표현방법, 규모 면에서 그 스펙트럼이 방대하므로, 예술의 엔터테인먼트적 특성에 집중하고 있는 미술가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다만 이 논문의 주제와 연관하여 볼 때, 사라세노가 오랫동 안 연구한 거미와 연관된 작업이자 연구자가 직접 체험한 <In Orbit>와 <Arachnomancy>의 구현방식에서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찾을 수 있다고 판단하여 이것이 어떠한 작용을 하고 있는지 분석하고자 한다.
2013년 사라세노는 독일 뒤셀도르프의 현대미술관 K21에서 관람객의 참여로 완성되는 대규 모 설치 작업 <In Orbit>을 선보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K21은 중정 형식으로 가운데 공간이 비어있는 5층 규모의 건물인데, 건물 내부 꼭대기에 대형 은색의 구 형태와 네트로 구성된 작업을 설치한 것이다(<Figure 7> 참조). 참가자는 작업 체험을 하기 위한 유의사항과 설명을 들은 후 20미터가 넘는 높이의 그물망 위로 오르게 된다. 설치 작품 위에 일단 올라서면 발아래로 미술관 1층 로비가 바로 내려다보이는 아찔한 경험이 시작된다. 누구나 처음엔 새로 운 체험에 대한 기대감으로 호기롭게 그물망에 오르지만, 이내 주저앉아 버리거나 네트 위에서 조심스럽게 겨우 한 걸음씩 내딛게 된다. 반면에 과감하게 점프를 하는 몇몇 참여자도 있다.
이러한 행동에 주변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는데, 네트 위 어느 쪽에서든 누군가 조금이라 도 움직이면 금세 전체적 파동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일정 체험 시간 동안 함께 그물에 오르는 참여자들은 모두가 연결되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시적으로 하나의 궤도를 공유하는 공 동체를 구성하게 되는 것이다(<Figure 8> 참조).
<In Orbit>는 애초 계획되었던 전시 기간보다 연장되어 2022년 7월 1일까지 K21에 전시될 예정이다. 미술관에는 거미줄을 모티프로 제작된 이 대형 설치 작업 이외에 작품 컨셉과 작업 진행과정, 작가의 오랜 거미 연구를 엿볼 수 있는 별도의 전시실이 마련되었다(<Figure 9>
참조). 거미의 생태에 대한 사라세노의 탐구는 2009년 베니스비엔날레의 설치 작업 이래, 여러 작품으로 구현되어 왔다. <In Orbit>와 같은 대규모 설치와는 다른 방식의 프로젝트로
<Arachnomancy>(2018)를 들 수 있는데, 이는 총 33장의 카드와 관련 앱 및 플랫폼으로 구성 된 작업이다(www.studiotomassaraceno.org/arachnomancy-cards). 2018년 팔레 드 도쿄 전 시에서 처음 선보인 이래 2019년 베니스비엔날레와 서울에서 개최된 사라세노의 개인전 등에 서 소개된 바 있으며 온라인 아카이브와 연결되는 관람객 참여 프로젝트다. 작품과 함께 전시된 설명문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Figure 7> Tomás Saraceno, In Orbit, K21, 2018(Photographed by the researcher)
<Figure 8> Tomás Saraceno, In Orbit, K21, 2018(Photographed by the researcher)
<Figure 9> Tomás Saraceno, In Orbit, K21, 2018(Photographed by the researcher)
사라세노가 제작한 이 카드는 근본적으로 생물과 무생물, 모든 사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모두가 함께 조율해 나갈 미래를 모색하기 위한 일종의 초대장이다(<Figure 10> 참조). 카드는 거미/망의 신탁을 찾는 방법 중 하나이자 중재 도구로서 기능한다. 거미/망 은 먼 우주의 흐름에 맞춰 진동의 세계를 엮어내고 있으며 연결성의 새로운 가닥을 감지하지 않으면 멸종이라는 영원한 침묵에 직면할 것이라고 설명문에는 쓰여 있다. 이처럼 사라세노는 거미라는 작은 생명체를 통해 우주를 이야기하고 있다. 거미들은 아주 작은 세계를 돈다. 공중 에 달린 거미망은 복잡한 상호 조합의 네트워크로 구성된 것이다. 거미의 생태계는 인간의 도 시, 나아가 인간 너머의 세계까지 얽힌 관계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Figure 11> 참조).
<Figure 10> Tomás Saraceno, Arachnomancy, 2018 (www.studiotomassaraceno.org)
<Figure 11> Tomás Saraceno, Spider Web, 2018(Photographed by the researcher)
작가는 관람객에게 아라크노만시 앱을 다운로드 받도록 유도함으로써 자신을 둘러싼 생태계의 거미/망 신탁을 만나고 멸종을 대비한 지도 제작에 동참하기를 권한다. 이 카드 작업은 방대한 디지털 아카이브와 연동되며 참여자가 앱을 사용한 활동은 기록의 일부가 된다. 이로써 멸종에 맞서는 계획에 기여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사라세노는 타로 카드와 같은 형식을 고안하여 감상자의 관심과 흥미를 유발하고, 일종의 놀이에 참여함으로써 우주 내 모든 존재가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게 만드는 체험을 제공하고 있다.
4. 결론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인터넷 문화와 경험경제 사회 속에서 미술과 엔터테인먼트는 다양 한 방식으로 결합하고 있다. 이는 관객의 참여가 중요해지는 동시대 미술 경향과 소위 ‘엔터테
인먼트 시대’라고 불릴 만큼 엔터테인트먼트가 교육, 경영, 정보 등 많은 영역으로 틈입하고 있는 현상을 반영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엔터테인먼트와 미술의 바람직한 조우란 무 엇일까? 답변이 쉽지 않은 물음일 것이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엔터테인먼트적 예술에 우려를 표했던 많은 철학자나 비평가가 지적한 한계점을 상기함으로써 이를 오히려 대안적 모색을 위한 도약판으로 활용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이 시점에서 미국의 비평가 할 포스터(Hal Foster)의 다음과 같은 목소리에 주의를 기울일 만하다. 그는 1900년 이후의 미술사(Art Since 1900)개정 증보판의 표제연도 2015년 부분 에서 ‘새로운 미술관’이라는 제목하에 다음과 같은 논의를 전개한다. 그는 우리가 여전히 스펙 터클의 사회에 살거나……완화된 표현을 쓰자면 ‘경험경제’ 속에서 살고 있다며 밝히면서 이러 한 미술관들은 오락을 중시하는 문화와 어떤 관계를 가질지 질문한다고 말한다. 이미 1997년에 테이트미술관 관장 니콜라스 세로타(Nicolas Serota)는 ‘현대미술관의 딜레마’를 한편으로는 오락과 스펙터클로 설명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학적 숙고나 역사적 이해로 논의되는 ‘경험’
또는 ‘해석’ 사이의 극단적인 선택이라는 프레임으로 설명한 바 있으나, 20년도 더 지난 상황에 서 ‘이것이냐, 저것이냐’라는 양자택일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포스터의 진단에 따르면, “스펙터클은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여기 그대로 있고, 미술관은 그 일부이다. 그것은 주어진 것이지만, 바로 이 때문에 스펙터클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Foster, 2016, p.839).
그렇게 미술의 엔터테인먼트적 요소가 볼거리나 가벼운 재미, 감정 발산에 그치지 않고 ‘미학적 숙고’나 ‘역사적 이해’에까지 가닿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에서 포스터는 깊이 공감할만 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즉 “지성적으로 설계하고 프로그램을 짠다면 미술관은 오락과 숙고 를 모두 가능하게 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이해를 증진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 시대와 문화의 관계 속에서 다른 시대와 문화를 시험하거나 역으로 다른 시대와 문화의 관계에 서 우리 시대와 문화를 시험함으로써 조금씩 변형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다시 말해 가장 중요한 것은 시대와 사회에 대한 성찰에 바탕을 둔 기획이다. 예술가가 구상한 계몽주의적 시나리오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예술과와 관람객이 함께 하는 과정에서 서로 무언가를 배우고, 새롭게 인식하여 우리가 사는 세계를 바라보게 하는 미술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수퍼플렉스와 사라세노의 작업은 감상자가 같이 완성해가는 프로젝트다. 수퍼플 렉스의 그네 설치 작업은 관람객을 동심의 세계로 이끄는 동시에 연대와 협동의 가치를 생각해 보게 하고, 거미에 대한 오랜 연구를 토대로 한 사라세노의 설치와 카드 작업은 유희적 체험과 더불어 ‘우주 속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태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수퍼 플렉스와 사라세노의 작업은 엔터테인먼트와 내적 성찰 사이 균형 잡힌 안배를 제시한 좋은 사례로 주목할만하다. 관람객의 관심을 끌고 그들에게 재미와 즐거움을 전달하면서도 순간적 으로 휘발되는 오락에 그치기보다는 삶에 대한 사유와 연결해볼 수 있는 기회가 열리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는 보다 나은 사회를 향한 의식을 나누는 데 기여할 가능성을 제공한다. 21세기에 엔터테인먼트는 관람객의 체험과 참여가 강조되는 동시대 미술 경향과 모호하게 얽혀있고 때로는 변증법적 관계로 결합된다. 그러므로 엘리트주의적 시각에서 엔터 테인먼트를 경계하고 전면적으로 부정하기보다는 다양한 방식의 예술적 소통과 교감을 위해 포용적 관점으로 접근해야할 개념임을 알 수 있다. 수퍼플렉스와 사라세노의 작업에서 확인할 수 있듯, 포스터가 말한 ‘오락과 숙고를 모두 가능’하게 하고 ‘이해를 증진’할 수 있는 지성적 프로그램 기획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시대와 사회에 대한 통찰일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본 논문에 충분히 담지 못한 다양한 미술 실천에 대한 탐구는 앞으로의 연구 과제로 남겨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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