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저작자표시

N/A
N/A
Protected

Academic year: 2022

Share "저작자표시"

Copied!
91
0
0

로드 중.... (전체 텍스트 보기)

전체 글

(1)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2.0 대한민국 이용자는 아래의 조건을 따르는 경우에 한하여 자유롭게

l 이 저작물을 복제, 배포, 전송, 전시, 공연 및 방송할 수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조건을 따라야 합니다:

l 귀하는, 이 저작물의 재이용이나 배포의 경우, 이 저작물에 적용된 이용허락조건

을 명확하게 나타내어야 합니다.

l 저작권자로부터 별도의 허가를 받으면 이러한 조건들은 적용되지 않습니다.

저작권법에 따른 이용자의 권리는 위의 내용에 의하여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이것은 이용허락규약(Legal Code)을 이해하기 쉽게 요약한 것입니다.

Disclaimer

저작자표시. 귀하는 원저작자를 표시하여야 합니다.

비영리. 귀하는 이 저작물을 영리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변경금지. 귀하는 이 저작물을 개작, 변형 또는 가공할 수 없습니다.

(2)

2021년 8월 석사학위 논문

알프레드 쿠빈의 작품에 등장하는 그로테스크 이미지 연구

―프로이트의 트라우마, 죽음 충동, 거세공포, 언캐니 개념을 중심으로

조선대학교 대학원

미 학 미 술 사 학 과

최 민 재

[UCI]I804:24011-200000490380

[UCI]I804:24011-200000490380

(3)

알프레드 쿠빈의 작품에 등장하는 그로테스크 이미지 연구

―프로이트의 트라우마, 죽음 충동, 거세공포, 언캐니 개념을 중심으로

Analysis of Alfred Kubin’s Grotesque Images

―Based on Sigmund Freud’s Trauma, Death Impulses, Castration Fears and Uncanny

2021년 8월 27일

조선대학교 대학원

미 학 미 술 사 학 과

최 민 재

(4)

알프레드 쿠빈의 작품에 등장하는 그로테스크 이미지 연구

―프로이트의 트라우마, 죽음 충동, 거세공포, 언캐니 개념을 중심으로

지도교수 김 승 환

이 논문을 문학 석사학위신청 논문으로 제출함 2021년 4월

조선대학교 대학원

미 학 미 술 사 학 과

최 민 재

(5)

최민재의 석사학위논문을 인준함

위원장 조선대학교 교 수 장민한 (인) 위 원 조선대학교 교 수 공병혜 (인) 위 원 조선대학교 교 수 김승환 (인)

2021년 5월

조선대학교 대학원

(6)

목 차 국문초록

ABSTRACT

제 1 장 서 론 · · · 1

제1절 연구의 배경 및 목적···1

제2절 연구의 방법과 범위···2

제2장 그로테스크와 프로이트의 4가지 개념···5

제1절 그로테스크의 이론적 배경···5

1. 그로테스크의 어원과 시대적 양상···5

2. 19세기 후반 이후의 미술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14

제2절 프로이트의 4가지 개념과 그로테스크의 상관관계···19

1. 트라우마와 그로테스크···20

2. 죽음 충동과 그로테스크··· ···· ···22

3. 거세공포·언캐니와 그로테스크···24

제3장 쿠빈의 그로테스크 이미지 유형 분석··· · ···27

제1절 쿠빈의 생애···27

제2절 여성 혐오···33

1. 임신한 여성···33

2. 악마적 의식의 주체자···36

3. 팜므 파탈···38

제3절 죽음으로의 회귀···44

1. 죽음과 삶···44

2. 죽음과 고통···46

3. 죽음과 유한한 시간···49

(7)

제4절 심리적 공포로서 구멍···51

1. 여성 성기···51

2. 구멍···57

3. 입···60

제4장 쿠빈 작품의 의의와 가치···65

제1절 그로테스크한 미술 작품의 해석적 틀로서 프로이트의 4가지 개념···65

제2절 쿠빈의 미술사적 가치···71

제5장 결론···74

참고문헌···78

(8)

국문초록

본 논문은 알프레드 쿠빈의 그로테스크 이미지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개념 중 트라우마, 죽음 충동, 거세공포·언캐니를 통해 논의하고, 나아가 쿠 빈의 미술사적 위치를 재고하는데 그 목적을 둔다.

쿠빈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작가이자 삽화가로 생전에 ‘그로테스크’한 그 림을 다수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그림에는 심연의 어두운 그림자 가 드리우고,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무서운 것들이 가득하다. 그의 그림을 마주한 감상자는 두려움과 호기심을 동시에 느끼게 되고, 이내 그림 속으 로 빠져들게 된다. 쿠빈이 집필한 소설 다른 한 편의 제목처럼, 그의 그 로테스크한 그림은 감상자를 현실의 반대편으로 데려다 놓는다.

쿠빈의 회화는 내면의 무의식의 세계와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된 그로테 스크한 면모를 보이는 이미지로 구성된다. 쿠빈이 활동했던 19세기 후반에 서 20세기의 유럽 사회는 독재 정권과 전쟁의 공포가 팽배해있었다. 쿠빈 은 혼란스러운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개인사적 문제들을 겪으면서 정신적·

심리적으로 불안한 시간을 보냈다.

이러한 쿠빈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는 작품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특히 1 898년에서 1904년 사이에 제작된 쿠빈의 초기 회화들은 그로테스크의 정수 를 보여주고 있으며, 프로이트의 트라우마, 죽음 충동, 거세공포와 언캐니 의 맥락에서 설명 가능한 해석적 실마리들이 발견된다. 쿠빈의 그림에는 여성 혐오에서 비롯된 부정적인 여성상, 작품에 짙게 내재된 죽음과 관련 된 비관론적인 정서 그리고 여성의 성기를 비롯한 구멍의 이미지가 다수 등장한다.

따라서 본 논문은 쿠빈의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의 특징을 프로이트의 정 신분석학 개념인 트라우마, 죽음 충동, 거세 공포·언캐니라는 네 가지 관점 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나아가 쿠빈의 그림 세계를 이루고 있는 예술적 표 현 방식인 그로테스크가 ‘환상성’이라는 맥락에서 끝나지 않고 ‘왜 우리 시 대의 그로테스크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본 논문은 국내에 잘 알 려져 있지 않은 알프레드 쿠빈이라는 화가를 소개하고, 기존의 문학적 연 구가 아닌 미술사적 연구라는 점에 있어서 의의가 있다.

(9)

ABSTRACT

Analysis of Alfred Kubin’s Grotesque Images

―Based on Sigmund Freud’s Trauma, death impulses, castration fears and uncanny

Choi Minjae

Advisor: Prof. Seoung-Hwan, Kim Ph.D Aesthetics and Art History

Graduate School of Chosun University

This paper aims to discuss Alfred Kubin's Grotesque paintings through trauma, death impulses, castration fears, and uncanny based on Freud's psychoanalysis concepts, and further to reconsider the position of Alfred Kubin in art history.

Kubin is an Austrian writer and illustrator who is known to have pai nted many "grotesque" paintings during his lifetime. His paintings are f ull of dark shadows of the abyss and scary things that do not exist in reality. Facing his paintings, the viewer feels both fear and curiosity, an d soon falls into them. His grotesque paintings, like the title of the nov el

The Other Side

, take the viewer to the other side of reality.

Kubin's paintings consist of grotesque images from the inner unconsc ious world and personal experience. In the late 19th and 20th centuries when Kubin was active, there was widespread fear of dictatorship and war. Kubin had a time of mental and psychological uneasiness, experien cing personal historical problems in a chaotic atmosphere.

Kubin's unstable state of mind influenced his work. In particular, Kub in's early paintings, produced between 1898 and 1904, show the essence of Grotesque, and explanable interpretive clues are found in Freudian ps

(10)

ychoanalytic contexts. Kubin's paintings feature a number of negative i mages of women stemming from misogyny, pessimistic emotions related to death deeply embedded in the work, and images of holes, including women's genitals.

Therefore, this paper attempts to analyze the characteristics of Kubin' s grotesque images from four perspectives: trauma, death impulse, castr ation fear, and uncanny, Freud's psychoanalysis concept. Furthermore, G rotesque, the artistic way of expressing the world Kubin created, does n ot end in the context of "fantasy," but asks the question, "Why Grotesq ue of our time?" This paper introduces an artist named Alfred Kubin, w ho is not well-known in Korea, and is significant in that it is an art hi story study, not an existing study about Kubin’s novel.

(11)

제 1장 서론

제 1절 연구의 배경 및 목적

본 연구는 알프레드 쿠빈(1877-1959)의 작품에 등장하는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프 로이트의 정신분석학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개념 중 트라우마, 죽음 충동, 거세 공포·언캐니의 네 가지 개념을 통해 살펴볼 것이다. 이는 쿠빈의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분석하는데 유용하다. 트라우마는 쿠빈의 여성관과 밀 접한 관련이 있으며, 죽음 충동은 그의 삶에 대한 비관론적인 태도와 연관성을 갖는다.

쿠빈의 작품에 반복되어 나타나는 구멍의 이미지가 환기하는 공포와 두려움은 거세공 포와 언캐니로 설명이 가능하다.

쿠빈 작품의 심연에는 어두운 분위기와 위협이 도사리고 있으며, 불가사의한 기운이 감돈다. 그의 그로테스크한 그림은 감상자들의 시선을 끌며 공포, 우울, 놀라움과 동시 에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쿠빈이 저술한 소설 다른 한 편의 제목처럼 그의 그림은 관람객을 현실의 반대편으로 데려다 놓는다. 그러나 쿠빈의 그로테스크한 그림이 모두 동일한 양상을 띠고 있지는 않다. 초기에 비해 후기 작품으로 갈수록 그로테스크한 표 현은 다소 약해지는 모습을 보인다. 쿠빈의 초기 그림으로 분류되는 1898년부터 1904 년 사이에 제작된 작품에서 작가 내면에 잠재된 고통과 상처, 불안정한 심리·정신적 문제들을 보여주는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난다.

쿠빈의 초기 작품에 반복되어 나타나는 임신한 여성, 해골, 여성 성기 등의 이미지는 어린 시절에 겪은 사건과 기억이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보인다.1) 다른 화가들의 그로테스크한 그림이 종교, 도덕, 신화, 전설, 사회·정치적 문제 등의 특정한 주제와 관 련되어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본다면, 이는 쿠빈만의 독특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렇다면 쿠빈의 작품에 그로테스크한 이미지가 나타난 이유는 무엇이며, 불안정한 심 리·정신적 문제와 그로테스크는 무슨 관련이 있을까? 쿠빈의 그로테스크한 작품이 당 대의 개념이나 시대상을 어떻게 반영하고 문제점을 제시하고 있는가? 나아가 그로테스 크의 미학적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쿠빈에 관한 국내 선행 연구는 미흡한 편이다. 홍진호의 현실의 일부가 된 꿈과 환상-알프레드 쿠빈의 <다른 한 편> 2)은 쿠빈의 소설이 여타 환상문학과의

1) Annegret Hoberg et al., Alfred Kubin: Drawings 1897-1909, New York: Prestel/Neue Galerie, 2008, pp. 42-43.

2) 홍진호, 현실의 일부가 된 꿈과 환상-알프레드 쿠빈의 <다른 한 편> , 한국카프카학회, 제24집, 2010.

(12)

차이점을 연구하고 있다. 조예서는 트라클의 후기 산문시와 쿠빈의 삽화 비교연구 3) 에서 오스트리아의 시인 게오르크 트라클의 시의 내용이 반영된 쿠빈의 삽화를 소개하 면서 그 둘을 비교 연구하고 있다. 이는 쿠빈이 제작한 삽화만을 다룬다는 점에서 이 외의 작품들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다는 한계가 있다. 김남진의 현대미술에 나타난 그 로테스크 이미지 연구 : 상징주의, 초현실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을 중심으로 4)는 쿠빈을 연구하는 논문이라고는 할 수 없으며, 다만 연구자가 상징주의 미술 사조를 논의하는 데 있어서 쿠빈을 간략하게 언급하는데 그치고 있다. 이처럼 쿠빈에 관한 기존의 국내 연구는 그 수가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쿠빈에 대한 미술사적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 지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쿠빈이 외국, 특히 유럽에서 이미 환상적인 비전과 그로테스크한 미술 세계를 보여 주는 화가로 평가받는다는 사실에 비추어 본다면 국내에서의 쿠빈에 대한 연구의 미흡 함은 아쉬운 부분이다. 따라서 본고는 쿠빈의 그로테스크한 회화를 프로이트의 정신분 석학 개념 중 트라우마, 죽음 충동, 거세공포와 언캐니를 통해 미술사적으로 연구하는 데 있어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2절 연구 방법과 범위

본 연구는 1898년부터 1904년 사이에 제작된 쿠빈의 작품에 등장하는 그로테스크 이 미지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개념 중 트라우마, 죽음 충동, 거세공포·언캐니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작품 범위를 1898년부터 1904년으로 설정한 이유는 이 시기에 제작 된 그림에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이론을 해석적 틀로서 적용시킬 수 있는 요소들이 다수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본 연구를 위해 연구자는 쿠빈과 관련된 주요 서적과 논문, 간행물과 학술 저널 등 을 활용했다. 쿠빈의 생애와 작품 해석을 위한 참고서로는 Austrian expressionism: t he formative years(1993), 필립 H. 레인(Phillip H. Rhein)의 The verbal and visual art of Alfred Kubin, Alfred Kubin: Drawings 1897-1909을 참고했다. 쿠빈의 자서 전인 Alfred Kubin은 주관적인 견해와 자기해석이 들어간 경향이 있었으며 실제보 다 축약된 내용과 객관성이 부족한 부분 때문에 다소 신뢰성은 떨어졌다.5) 그러나 쿠

3) 조예서, 트라클의 후기 산문시와 쿠빈의 삽화 비교연구 , 고려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13.

4) 김남진, 현대미술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이미지 연구 : 상징주의, 초현실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을 중심으로 , 경성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18.

5) 이러한 쿠빈의 자서전에 대한 평가와 관련된 내용은 Phillip H. Rhein, The verbal and visual art of Alfred Kubin, Ariadne Press, Riverside, California, 1988, pp. 3-5를 참조함.

(13)

빈 개인 내면의 불안과 정신·심리적 상태 및 병적 증세를 포함해, 일련의 사건에 대한 당시의 감정 상태에 대해서 본인의 기술이 들어가 있었기에 쿠빈의 내면세계와 정신적 인 부분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로테스크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볼프강 카이저의 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 크, 미하일 바흐찐의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과 중세 및 르네상스의 민중문화, 필립 톰슨의 그로테스크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정신분석학 이론과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주로 프로이트의 히스테리 연구, 억압, 증후 그리고 불안, 예술, 문학, 정신분석, 맹정현의 프로이트 패러다임을 참고하였 다. 상기된 연구서들은 연구자의 전반적인 프로이트 이론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를 도 와주었다.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먼저 2장에서는 그로테스크의 이론적 고찰과 프로 이트 정신분석학의 네 가지 개념을 살펴볼 것이다. 2장 1절에서는 그로테스크의 어원 과 시대에 따른 그로테스크의 양상을 정리한다. 2장 2절에서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과 미술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살펴본다. 더불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개념 중 트라우마, 죽음 충동, 거세공포·언캐니에 대해 자세히 논의한다. 이후 그로테스크와 네 가지의 개념이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3장에서는 앞서 설명한 네 가지 개념을 토대로 쿠빈의 작품을 분석해본다. 나아가 다른 작가들의 작품과 비교분석을 통해 쿠빈 작품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를 돕고자 한 다. 먼저 3장 1절에서는 쿠빈의 작품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위해 그의 생애를 소개 한다. 3장 2절에서는 쿠빈 작품에서 여성 혐오의 면모를 띠는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개인사적, 사회·역사적 맥락에서 분석해본다. 3장 3절에서는 죽음이라는 관념과 작가의 비관론적인 정서가 짙게 깔린 그로테스크한 작품이 등장하게 된 배경을 개인사적 차원 을 넘어 정치·역사적 맥락에서 살펴보도록 한다. 마지막 3장 4절에서는 작품에 등장하 는 여성 성기가 동굴, 구멍, 입과 같은 이미지들로 나타났을 때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 지 거세공포와 언캐니 개념을 통해 살펴볼 것이다. 이후 4장에서는 쿠빈의 미술 작품 을 해석하기 위해 미술사적 방법론으로서 적용했던 트라우마, 죽음 충동, 거세공포와 언캐니 개념이 쿠빈의 선대 미술 작품에도 적용해보고 이후 쿠빈 작품에 대한 미학적 가치 판단을 내리기로 한다.

이를 통해 결론에서는 쿠빈의 그로테스크한 이미지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관점 에서 해석 가능한 것임을 밝히고자 한다. 또한 쿠빈의 그로테스크한 작품이 당대의 개 념이나 시대상을 어떻게 반영하고 문제점을 제시하고 있는지 확인한다. 이 지점에서

(14)

그로테스크의 미학적 가치를 확인해볼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쿠빈이 미술사에서 갖는 위치를 재고해본다.

(15)

제 2장 그로테스크와 프로이트의 4가지 개념 제 1절 그로테스크의 이론적 배경

1. 그로테스크의 어원과 시대적 양상

그로테스크의 역사는 원시 시대부터 시작됐다. 피터 핀게스턴(Peter Fingesten)은 프 랑스의 라스코 동굴 벽화에서 발견된 한 형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미술에서 최초의 그로테스크 이미지는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 벽화에서 발 견된 아포칼립스한 괴수이다. 이 괴수는 완전히 비현실적인 모습을 하고 있 다. 말의 머리에 사자의 몸을 갖고 있고 배는 임신을 해서 축 쳐져 있으며 몸에는 혹이 붙어있다. 이마에는 긴 뿔이 튀어나와 있으며 동그란 모양의 표식이 온 몸을 뒤덮고 있다. 이 그로테스크 이미지는 무시무시하고 악마의 형상을 띠고 있는데, 출산을 상징하는 신비로운 힘을 가진 동물일 것이다.6)

이처럼 핀게스턴은 최초의 그로테스크 이미지를 라스코 동굴 벽화에서 찾고 있지만, 학자들에 따라 그로테스크 이미지의 시작은 다르다. 그러나 그로테스크라는 용어의 등 장 시기에 대해선 일치된 의견을 보이고 있다.7)

보편적으로 그로테스크라는 용어는 1480년경에 발굴된 고대 로마 네로 왕의 궁에 있 던 동굴의 기이한 벽화에서 유래한다.8) 벽화에는 각종 동물과 식물 그리고 인간이 하 나로 얽혀 기이한 형상을 하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불어권에서는 이 기이한 그림에 대해 “끄로떼스끄(grotes-que)라고 불렀으며, 1640년경 그로테스크(Grotesque) 라는 단어로 대치되었다.”9)

6) Peter Fingesten, “Delimitating the concept of the grotesque”, The Journal of Aesthetics and Art Criticism, Vol. 42, No. 4, Summer, 1984, p. 420.

7) 함순용, 고야 판화연작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미학 연구 ,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박사논문, 2010, p. 18.

8) James Luther Adams·Wilson Yates, The Grotesque in Art and Litreature: Theological Reflecti ons, Wm. B. Eerdmans Publishing Co., Grand Rapids, Michigan, Cambridge U.K, 1997, p. 5.

9) 그로테스크의 어원을 확인해 보니 “이탈리아어로 동굴은 그로타(grotte)이고 그로타에서 이것의 형용사형인 그로테스코(grottesco)와 명사형인 그로테스카(la grottesca)가 생겨났다.”, 필립톰슨,

(16)

① 르네상스 시기의 그로테스크

16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화가이자 건축가로 활동했던 바사리(Giorgio Vasari)는 앞서 논의한 이 벽화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로마시대의 비트루비우스(Mar cus Vitruvius Pollio)의 다음과 같은 논평을 인용하고 있다.

벽면에 새겨진 괴물의 형상은 자연에서 본 뜬 아름다운 이미지를 대신하 고 있다. 아름다운 원주(圓柱)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식물의 줄기와 잎사귀 가 뒤엉켜서 소용돌이 모양으로 자라나고 있다. 나뭇가지 모양의 촛대는 위 아래가 뒤바뀐 채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가느다란 식물의 줄기는 사람의 머리 혹은 동물의 머리를 한 반신상을 받치고 있다. 이러한 기이한 형상들 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다. (...) 어떻게 갈대가 지붕을 받칠 수 있으며, 부 드럽고 연약한 나뭇가지가 반신상을 장식하겠으며, 식물의 뿌리와 덩굴에서 반은 꽃이고 반은 인간인 형상이 생겨날 수 있단 말인가?!10)(도판 01)

위와 같이 묘사된 이미지는 바사리처럼 고전적인 취미를 가진 사람에겐 불쾌하고 끔 찍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바사리를 기점으로 르네상스 시기에는 그로테스크에 대한 부 정적인 입장이 지배적이었다.11) 이러한 배경에는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라는 르네상스 시기의 예술관이 자리하고 있었다.12) 그럼에도 불구하고 르네상스의 예술가들은 그로 테스크에 매료되어13) 예술작품에 기꺼이 이 새로운 표현양식을 수용했다.14) 라파엘로 (Sanzio Raphael)가 1515년경 교황청의 기둥에 그린 장식화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 가 제작한 장식화에는 줄기에서 자라난 인간의 몸, 식물의 잎사귀가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모습, 두꺼비와 다람쥐 그리고 도롱뇽과 같은 동물들이 그려져 있다. 이외에도 동

그로테스크, 김영무 옮김, 서울대학교출판부, 1986, p. 17을 참조함.

10) Marcus Vitruvius Pollio, De Architectura(27 B.C.), trans. and ed. Frank Granger(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Loeb Classical Library, 1934), 2: 105를 James Luther Adams·Wilson Yates, op. cit., pp. 7-8에서 재인용.

11) 함순용, op. cit., p. 21.

12) 볼프강 카이저, 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이지혜 옮김, 아모르문디, 2019(개정판), p.

50.

13) James Luther Adams·Wilson Yates, op. cit., p. 6.

14) op. cit., p. 32.

(17)

판 조각가였던 아고스티노 베네치아노(Agostino Veneziano), 루카 시뇨렐리(Luca Signorelli)가 그 린 벽화에서도 그로테스크 장식을 찾아볼 수 있 다.15)

또한 그로테스크는 감정의 표현으로서 “현실의 질서가 파괴된 세계와 대면할 때의 긴장감과 섬 뜩함”16)을 의미하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르네상 스 시기에는 그로테스크를 ‘화가의 꿈(sogni dei pittori)’이라는 표현으로 부르기도 했다. 이 단어 는 질서와 규칙으로 이루어진 실제 세계와 완전 히 다른, 화가가 꿈이나 상상의 세계에서만 표현 가능한 이질적이고 비현실적인 세상을 일컫는 말 이다.17)

이후 그로테스크가 알프스 이북으로 전파되면 서 북유럽 미술가들도 이 표현양식을 예술에 적 용하기 시작했다.18) 이탈리아의 그로테스크가 장 식미술에서 지배적이었던 것과 달리, 북유럽 미술의 그로테스크는 다른 성격을 보여주 었다.19) 히에로니무스 보쉬(Hieronymus Bosch)와 대(大) 피터 브뤼겔(Pieter Bruegel t he Elder)의 작품에서 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보쉬의 <천년왕국>(도판 02)과 <성 안 토니우스의 유혹(The Temptations of St. Anthony)>에서는 묵시록의 종말 장면이나

“기독교관에서 통용되던 지옥의 모습, 신의 종복으로서 인간에게 경고를 던지거나 인 간을 시험하고 벌주는 괴물들“20)이 등장한다. 한편 브뤼겔은 종교적 틀을 벗어난다는 점에서 보스와 조금 다르지만 <악녀 그리트>(도판 03), <네덜란드 속담(Netherlandish Proverbs)>, <사육제와 사순절의 싸움(The Fight between Carnival and Lent)>에서 나타나는 도덕적 교훈과 종교적인 색채는 여전히 보쉬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21) 이처럼 북유럽 르네상스 미술에서는 그로테스크가 종교적인 의미나 기독교 15) Ibid., p. 33.

16) Ibid., p. 34.

17) Ibid.

18) Ibid.

19) James Luther Adams·Wilson Yates, op. cit., p. 9.

20) 볼프강 카이저, op. cit., p. 59.

21) Donal Polumbo, Eros in the Mind’s Eye(London: Greenwood Press, 1986), chap. 1, and [도판 01] 뒤 세르소, <그로테스크 모

티프>, 1550,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 관

(18)

Barasch, chap. 1을 James Luther Adams·Wilson Yates, op. cit., p. 9에서 재인용.

[도판 02] 히에로니무스 보쉬, <천년왕국(The garden of Earthly Delight)>, oil on oak panels, 205.5

× 384.9cm, Museo del Prado, Madrid

[도판 03] 피터 브뤼겔, <악녀 그리트(Dulle Griet)>, oil on panels, 115 × 161cm, Museum Mayer van den Bergh, Antwerp

(19)

적 세계관을 보여주는 표현 양식으로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② 17·18세기의 그로테스크

17·18세기에 걸쳐 영국과 프랑스로 넘어오면서 그로테스크는 더 넓은 의미를 가지 게 되었다. 17세기 프랑스의 한 사전은 그로테스크를 “외적으로 우스꽝스럽고 기이하 며, 괴상한 것”22)으로 설명한다. 또 다른 어학사전은 그로테스크를 “유쾌하게 그리고 우스꽝스러운 특징을 가진 무언가”23)로 정의하고 있다. 이렇듯 이 시기의 그로테스크 는 볼프강 카이저가 언급한 것처럼 “우스꽝스럽고, 웃음을 유발하며 희화화된 이미 지”24)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렇다면 그로테스크가 이러한 의미로까지 확장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배경에는 캐리커처와 연관이 있다.25)

그로테스크가 캐리커처와 동일선상에 놓이게 된 것은 빌란트(Christoph M. Wielan) 에 의해서였다. 18세기의 유명한 캐리커처 연구가였던 빌란트는 캐리커처의 의미를 세 가지로 분류했는데, 그로테스크는 그 중 마지막 유형인 “순전히 화가의 상상으로 창조 된, 혹은 소위 그로테스크라 불리는 캐리커처”26)에 속한다. 빌란트는 왜 그로테스크와 캐리커처를 동일한 양식으로 보았을까? 빌란트에게 캐리커처는 현실을 왜곡하고 대상 을 과장해서 비현실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27) 이러한 캐리커처의 특징과 “기형적인 형태에 대한 조소와 더불어 보기에도 섬뜩하고 괴이한 요소에 대한 혐오감”28)의 면모 를 보이는 그로테스크의 특징이 비슷하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그로테스크가 캐리커처와 동일하게 간주되면서 “실제 인물이나 사회적 범주에 대한 논쟁적 도구로서 재탄생”29)하게 되었다. 이때 그로테스크는 “대상의 신체적 결점을 과장되게 표현함으 로써 도덕적 결점을 비웃고 비난”30)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결과적으로 그로테스크 는 대상을 우스꽝스럽게 만든다. 즉 대상의 한 부분을 기형적이게 강조하면서 추하게 변형시킨다.31)

22) op. cit., p. 43.

23) Ibid.

24) Ibid., p. 60.

25) Ibid., p. 48.

26) Ibid., p. 49.

27) op. cit.

28) Ibid., p. 50.

29) 움베르토 에코, 추의 역사, 오숙은 옮김, 열린책들, 2008, p. 152.

30) Ibid.

31) Ibid.

(20)

이러한 그로테스크의 특징은 자연히 풍자화에서도 발견된다. 18세기는 예술가들 사 이에서 풍자가 유행처럼 번져나가던 시기였다.32) 구체적인 예로 영국의 윌리엄 호가스 (William Hogarth)의 판화 연작 중 <진 거리>(도판 04)와 <잔인함의 네 단계>(도판 05)을 살펴보자. <진 거리>에서는 술이 인간과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을 정신이 나가 버린 인물들과 혼돈에 빠진 길거리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잔인함의 네 단 계>에서는 ‘톰’이라는 인물을 내세워 악행을 일삼은 인간의 최후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특히 <잔인함의 네 단계>의 연작 중 마지막 그림인 <잔인성의 대가>를 보면, 남자의 배를 갈라 내장을 뽑아내고 있는 모습, 두개골에 구멍을 뚫는 모습 등은 그로 테스크의 끔찍하고 잔인한 면모를 보여준다.

호가스보다 조금 더 후배격인 제임스 길레이(James Gillray) 또한 풍자화가로 명성 을 떨쳤다. 길레이는 당시 왕립 아카데미 부설학교에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이미 예술 계에서는 신임을 받고 있었다. 그의 풍자화에서도 그로테스크한 특징이 발견되는데, 32) 윌리엄 본, 낭만주의 미술, 마순자 옮김, 시공사, 2003, p. 92.

[도판 04] 윌리엄 호가스, <진 거리(Beer Stre et and Gin Lane)>, 1751, Etching and engra ving, 141 × 161cm, Courtesy Andrew Edmu nds, London

[도판 05] 윌리엄 호가스, <잔인함의 네 단계 (The Four Stages of Cruelty: The Reward of Cruelty)>, 1751, Etching and engraving, 32×3 8cm, Courtesy Andrew Edmunds, London

(21)

<변절자 찾아내기>(도판 06)에서 는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 가 리처드 프라이스라는 종교인의 부도덕하고 위선적인 모습을 고발 하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33) 그 림에서 버크의 모습은 머리가 없 고 코와 눈, 손만 묘사되어있다. 특 히 코를 과장해서 아주 크게 그렸 는데 그 모습이 꽤나 우스꽝스러 워 보이기까지 한다. 또 다른 작품 인 <피곤한 하루 일과를 끝낸 후 식사를 하는 상퀼로트34) 가족>(도 판 07)에는 훨씬 잔인하고 야만적 인 모습이 나타난다. 길레이는 당 시 공화당이었던 상퀼로트의 모습 을 과격하고 야만적으로 표현하고 있다.35) 아이를 거꾸로 매달아 피 를 뽑고 있는 모습, 한쪽 구석에서 인간의 내장으로 보이는 찌꺼기 따위를 정신없이 먹고 있는 꼬마 들이 보인다. 그중 가장 그로테스 크한 광경은 인간의 머리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다섯 명의 사람들 이 눈, 심장, 팔을 게걸스럽게 먹고 있는 모습일 것이다.

정리하자면 호가스의 작품은 타 락한 영국 사회와 개별 인간의 사 33) Ibid., p. 93.

34) 프랑스 내에서 혁명을 주도했던 파리의 빈민층으로 이루어진 급진적 세력을 일컫는 말. “귀족들 이 입는 ‘퀼로트’라는 바지를 입지 ‘않는’다고 해서 ‘상퀼로트’라 불렀다.” 노명식, 프랑스 혁명에 서 파리 코뮌까지, 1789~1871, 책과함께, 2011, pp. 126-127을 참조함.

35) E.H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백승길·이종승 옮김, 예경, 2012, p. 190.

[도판 06] 제임스 길레이, <변절자 찾아내기(Smelling o ut a rat)>, 1790, Etching and engraving with publishe r’s watercolour, 24.8 × 35cm, Trustees of the British Museum

[도판 07] 제임스 길레이, <피곤한 하루 일과를 끝낸 후 식사를 하는 상퀼로트 가족(Un Petit Souper a la Parisi enne)>, 1792, hand-coloured etching, 28.7 × 36.2cm, T rustees of the British Museum

(22)

악하고 추한 모습을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잔인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길레이의 작품은 영국과 프랑스에서 벌어졌던 사회·정치적 혼란과 문제를 과장되고 잔인하게 나타내고 있다. 두 작가가 작품에서 보여주고 있는 그로테스크는 “풍자적 알레고리와 결합하여 개혁의 필요성을 느끼도록 국민들의 의식을 바꾸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36) 이처럼 18세기의 그로테스크는 시대상을 풍자하고 사람들에게 도덕적인 교훈을 전달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③ 신고전주의 시기의 그로테스크

신고전주의 시대에는 그로테스크의 영향이 축소되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데카르트의 합리주의를 바탕으로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인식했던 사고가 예술에까지 영향을 미 쳤기 때문이었다.37) 당시 예술가들은 아카데미의 규율에 따라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미 술을 수용했다. 그들은 선대의 화가들이 보여주었던 논리, 이성, 질서, 규율을 받아들이 고 그 이외의 어떤 것도 인정하지 않았다.38) 17세기의 화가 푸생(Nicolas Poussin)이 주창했던 고대 미술, 자연, 드로잉은 신고전주의 화가들의 미학 규범으로 받아들여졌 다.39) 또한 16세기에 활동했던 프란시스쿠스 유니우스(François du Jon)라는 신학자의 문헌에서는 “헛된 자만심과 방종에 의해 자연에 알려지지 않은 갖가지 터무니없고 기 괴한 형상을 고안해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40)라고 쓰여 있었다. 이러한 르네상스 시기의 사상을 신고전주의 화가들이 이어받았기 때문에 그로테스크가 설 자리는 더욱 없었다. 신고전주의를 대표하는 다비드(Jacques Louis David)와 같은 화가들은 빙켈만 이 고전의 그리스 조각상을 통해 추구했던 “고요한 위대성과 고귀한 단순성”41)이라는 사상을 예술 작품에 투영했다. 다비드를 경외했던 앵그르(Jean-Auguste-Dominique In gres) 역시 학생들에게 “대상을 정밀하게 묘사하고, 즉흥성과 무질서를 경계하라”42)라 고 할 정도로 고전기 회화의 완벽함을 추구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그로테스크가 가지고 있는 조화와 균형이 깨진 “정상규범을 위반하는 비정상성”43)은 빛을 보기 어려웠다. 그로테스크한 이미지가 보여주었던 기괴 36) 윌리엄 본, op. cit., p. 92.

37) 오병남, 미술론 강의, 세창, 2014, p. 83.

38) Ibid., p. 79.

39) Ibid., p. 87.

40) Ibid., p. 88.

41) 윌리엄 본, op. cit., p. 13.

42) E.H 곰브리치, op. cit., p. 503.

(23)

하고 우스꽝스러우며 공포스러운 특징은 화가의 상상력과 창조력에서 비롯되었기 때문 이었다. 그러나 점점 그리스 조각상과 같이 시각적으로 완전무결함을 추구하는 예술이 예술가의 열정과 사상을 온전히 보여줄 수 있는가라는 시대적 의문이 제기되었다.44) 그로테스크는 “반이성적이고 반고전주의적, 고정관념의 전복, 화가의 창조적인 상상력 이 중심이 되었던 낭만주의 시대”45)에 와서 그 영향력을 다시 행사하게 되었다.

➃ 낭만주의 시기의 그로테스크

19세기 낭만주의에 이르러, 오로지 상상력에 의해서 표현될 수 있는 이미지들은 긍 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46) 이 말은 곧 그로테스크의 재출현과 그것이 긍정적으로 받아 들여지게 됨을 의미하기도 했다.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화가로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를 꼽을 수가 있 다. 스페인 출신이었던 고야는 궁정화가로도 활동했으며 격정적인 시대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에 있던 화가였다. 고야의 상상력은 음침하고 환상 속에만 존재하는 기괴한 요 괴나 괴물 등의 그로테스크한 존재로 발현되었다.47) 그는 당시 유럽에서 성행하던 악 마나 마녀의 모습 또한 그로테스크하게 묘사했다. 그의 작품 속 악마나 마녀는 혼란스 럽던 스페인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국민들을 탄압하고 억압했던 정부와 부패의 중심이 었던 카톨릭을 상징했던 것이었다.48) 고야의 그로테스크에서 알 수 있는 또 다른 특징 은 자신의 꿈, 악몽, 불안정했던 정신세계를 형상화한 것이었다. 그의 유명하고 가장 난해한 작품으로 손꼽히는 <검은 그림 연작>에는 그로테스크한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검은 그림 연작>의 대표작들이라고 할 수 있는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 누스(Saturn Devouring His Son)>, <두 명의 늙은 남자(Two Old Men)>, <성 이시 드로의 순례>(도판 08), <스프를 떠먹고 있는 두 노인(Two Old Men Eating Soup)>,

<환상적인 모습(Fantastic Vision)>에서는 고야의 정신세계가 그로테스크한 도상들로 반영되어 있다.49)

스위스 출신의 낭만주의화가였던 존 헨리 푸셀리(John Henry Fuseli)의 그림에서도 43) 이창우, 그로테스크 예찬, 그린비, 2017, p. 47.

44) 윌리엄 본, op. cit., p. 13.

45) 오병남, op. cit., p. 106.

46) Ibid.

47) E.H 곰브리치, op. cit., p. 488.

48) Ibid., p. 485.

49) 함순용, op. cit., p. 41.

(24)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작품 <악몽(Nightmare)>에 나타나는 말 과 악마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와 이미지는 환상, 꿈의 세계를 보 여주고 있는 듯하다. 고야와 푸셀리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정신세계와 꿈을 반영한 그 로테스크의 새로운 면모는 이후 상징주의와 초현실주의에서 나타나게 될 그로테스크의 새로운 성격을 앞서 예고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로테스크의 어원과 르네상스부터 19세기 중반까지의 그로테스크 개념의 시대에 따른 변화를 고찰해보았다. 그로테스크가 이탈리아 르네상스에서는 장식예술로 나타났다면, 북유럽 르네상스에서는 종교적인 세계관을 보여주는 하나의 표현양식이었 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17·18세기에는 빌란트에 의해 그로테스크가 캐리커처와 동 일선상에서 간주됐고 풍자와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되었다. 하지만 그로테스크는 고전미 를 추구했던 신고전주의 시대에 주춤하게 되지만 이후 낭만주의의 등장과 함께 다시 한 번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이렇듯 그로테스크는 시대의 이념과 가치관에 따라 두드러지게 나타나기도 하며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음을 알 수 있다.

2. 19세기 후반 이후의 미술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19세기 후반 상징주의와 함께 그로테스크는 또 한 번 그 모습을 드러냈다. 1789년 대혁명을 통해 프랑스에서는 진보적 사상이 득세하였고, 경제·정치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낙관적인 믿음이 생겨났다. 그러나 1870년 프랑스가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참 [도판 08] 프란시스코 고야, <성 이시드로의 순례(A Pilgrimage to San Isidro)>, 1823, Oil mural tr ansferred to canvas, 140 × 438cm, Museo del Prado, Madrid

(25)

패하면서 비관론적 사상이 사회 전반에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사람들은 현실에 이상향 을 제시해주리라 여겼던 실증주의와 사회주의에 회의를 느끼게 되었다. 결국 기존의 가치가 무너지면서 극단적인 회의주의, 퇴폐주의가 생겨나게 되었다.50) 이러한 새로운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상징주의가 태동하게 되었다.

① 상징주의 시기의 그로테스크

상징주의 화가들은 이성, 도덕, 절제라는 구시대적 가치를 멀리하고 암시와 상징을 통한 정신세계와 주관적 감정을 표현하였다.51) 새롭게 등장한 이 사조의 본질은 상상 력이었다.52) 그들은 “상상력을 통해 상징으로 예술을 전달하려는 욕구와 함께 꿈, 환 상, 신화 그리고 소설에 관심을 보였다.”53) 구체적인 예로 귀스타브 모로(Gustave Mor eau)는 신비롭고 이국적인 분위기의 미술을 선보였다. 그는 그림의 주제를 철학, 문학, 성경을 비롯해서 전설과 신화에서 가져왔다.54) 모로의 작품 <환영(L’Apparition)>은 성서 속 헤롯 왕에게 세례요한의 목을 요구한 살로메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의 다른 작품인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테베의 왕인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사이에 얽힌 이야기를 나타내고 있다. 또한 오딜롱 르동(Odilon Redon)은 석판화와 목판화를 이용해 암시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55) 르동의 모호하고 신 비스러운 작품은 암시적 기법을 통해 감상자의 의 식과 무의식을 이끌어낸다.56) 이러한 르동의 회화적 특징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외눈박이 거 인을 묘사한 <키클롭스>(그림 09)와 셰익스피어 극 에 등장하는 반인반수를 묘사한 작품 <캘리밴(Calib an)>에서 확인할 수 있다. 두 화가의 그림에서 나타 나는 신체의 절단, 신체 요소의 결핍, 이질적 형상 의 조합은 그로테스크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처럼 상징주의 미술은 인간 내면과 비물질적 세계 50) 김경란, 프랑스 상징주의, 연세대학교 출판부, 2005, p. 29.

51) Ibid., p. 157.

52) 에드워드 루시-스미스, 상징주의 미술, 이대일 옮김, 열화당, 1987, p. 26.

53) op. cit., p. 156.

54) Ibid., p. 159.

55) Ibid., p. 163.

56) Ibid., p. 164.

[도판 09] 오딜롱 르동, <키클롭스 (Kyklopes)>, 1914, Oil on cardboar d mounted on panel

(26)

를 그로테스크하게 나타내고 있다.57)

② 독일 표현주의 시기의 그로테스크

상징주의 이후 20세기 독일 표현주의 미술에서도 그 로테스크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독일 표현주의 화가들 은 사회적 현상에서 그림의 모티프를 얻었는데, 그들 작 품 속 그로테스크는 “사회적 병리에 대한 고발”58)이라 할 수 있다. 구체적인 예로 오토 딕스(Otto Dix)의 <카 드놀이 하는 사람들>(도판 10)을 살펴보자. 군복을 입은 세 사람이 카드놀이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상태를 보면 다리가 없거나 머리의 절반이 뜯겨졌으며, 잘린 팔 대신 발가락으로 카드를 들고 있는 기괴하고 끔찍한 모 습을 보여주고 있다. 화가는 1차 세계대전 이후, 참혹하 게 변해버린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즉 전쟁 후 혼란스 러운 시대 속에서 인간 내면에 잠재된 우울과 공포, 개 인이 입은 피해와 그로 인한 고통, 상처 등 당시 사회와 인간이 겪고 있던 현상을 그로테스크를 통해 표현한 것 이다.

③ 초현실주의 시기의 그로테스크

1920년대에 등장한 초현실주의는 그로테스크와 깊은 관련이 있다.59) 특히 19세기 후 반 이후의 미술에 나타난 그로테스크는 이전 시대와 또 다른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데, 주목할 점은 초현실주의 미술에서 그로테스크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만나면서 새 로운 성격을 띠었다는 점이다. 앙드레 브르통(Andre Breton)의 초현실주의 선언과 함 께 초현실주의 화가들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기반으로 작품 활동을 활발히 하였

57) Ibid., p. 158. 상징주의는 죽음, 성(性), 악무주의 등의 주제를 통해서 시대적 중심 관점을 창조하 였는데 이때 그로테스크가 큰 역할을 하였다. 도널드 레이놀즈, 19세기의 미술, 전혜숙 옮김, 예 경, 1991, p. 122.

58) 움베르토 에코, op. cit., p. 368.

59) 볼프강 카이저, op. cit., p. 263.

[도판 10] 오토 딕스,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Skat Players)>, 19 20, 캔버스에 유화, 포토몽타쥬, 콜라쥬 혼합, 110×87cm, 베를린 국립미술관

(27)

다.60) 이들은 무의식, 꿈, 환상을 인간의 근원으로 보았으며 이를 미술작품에서 재현해 보였다.61)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막스 에른스트(Max Ernst)를 비롯한 초현실주의 화 가들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그로테스크 이미지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 언급되는 꿈과 무의식의 개념을 통해 설명된다. 초현실주의 미술

은 신체를 이용한 그로테스크한 형상뿐만 아니라 데페 이즈망 기법을 통해 언캐니한 그로테스크의 면모를 보 여주고 있다.

특히 언캐니 개념이 작품에 두드러진 화가는 키리코 (Giorgio de Chirico)였다. 그의 작품에는 르네상스의 건 축물과 현대의 물건이 함께 있다거나, 고대의 조각상과 외과용 수술 장갑이 놓이는 방식을 통해 관객을 낯설게 만든다.62)(도판 11) 이러한 초현실주의 예술 작품을 통 해 “그로테스크는 생경해진 세계”63)라고 카이저는 주장 했다. 그가 말한 생경해진 세계란 “지금껏 익숙하던 세 계의 질서가 파괴되는 것”64)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때 느껴지는 위협, 공포, 섬뜩함, 당혹스러움, 낯설음이 그 로테스크의 본질이라는 것이다.65)

60) Ibid., p. 264.

61) 노버트 린튼, 20세기 미술, 윤난지 옮김, 예경, 2003, p. 170.

62) 볼프강 카이저, op. cit., p. 266.

63) Ibid., p. 290.

64) Ibid., p. 266.

65) Ibid., p. 290. 한편 이러한 카이저의 그로테스크 정의에 대해 예술·문학 비평가였던 미하일 바흐 찐(Mikhil Bakhtin, 1895-1975)은 비판적인 입장을 보여주었다. 바흐찐은 카이저가 정의한 그로테 스크에 대해 “단지 모더니즘 그로테스크의 몇 가지 현상들에만 적용될 수 있는 것일 뿐, 낭만주의 그로테스크에 적용될 때에는 전혀 부합하지 않으며 그 발전의 이전 단계에도 결코 적용시킬 수 없다.”라는 문장으로 비판하고 있다. 바흐찐은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과 중세 및 르네상스의 민 중문화라는 저서에서 그로테스크를 설명하고 있다. 바흐찐은 그로테스크의 본질을 카니발과 같 은 축제에서 나타나는 민중들의 웃음으로 설명한다. 종교적인 엄숙한 문화에 대립해 나타나는

“카니발적 유형의 광장 축제들”에서 드러나는 “의식적 구경거리는 이질적이고 비공식적이며, 우스 꽝스러운 의식과 전례들, 난쟁이들, 절름발이들, 떠돌이 광대들은 민중들의 웃음과 카니발적인 문 화의 부분이다.” 카니발은 모든 규범이나 가치, 제도, 질서를 일시적으로 파기하여 축하하는 것이 다. 이러한 카니발 속에서 나타나는 그로테스크는 민중들의 웃음을 유발하고 물질과 육체의 긍정 적인 과장법을 사용하여 “공포와 경악에서 세계를 해방시켰으며,” 오히려 밝고 유쾌한 장소로 만 들었다는 것이다. 무섭고 공포의 대상이었던 모든 것이 카니발 세계에서는 즐겁고 우스꽝스러운 것이 된다. “결코 하나도 무섭지 않은 세계에서만 그로테스크 고유의 극단적 자유가 나타나며”, 바흐찐은 그로테스크를 “항상 변화의 기쁨으로 충만해 있는 것”이라며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도판 11] 데 키리코, <사랑의 노 래(The song of Love)>, 1914, 캔버스에 유채, 73×59.1cm, 뉴욕, MoMA

(28)

④ 1960년대 이후의 그로테스크

1960년대 이후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활동했던 예술가들은 사회 문제, 권력관계를 반영하는 문화적 산물의 수단으로 신체에 대한 탐구를 보다 깊이 하였다.66) 해프닝이 나 플럭서스, 행위예술과 같은 1960-70년대 유행했던 퍼포먼스 아트가 그 예이다. 특 히 신체미술은 몸을 적극적인 예술적 표현의 수단으로 사용하면서 자해나 육체적 고통 과 아픔을 동반하는 피학적인 실험에서부터 조금 더 온건한 종류에까지 다양하게 진행 되었다.67)

포스트모더니즘 시기에는 인종, 계급, 젠더 등의 사회적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 는 과정에서 과격하고 거친 예술적 퍼포먼스가 동반된다. 또한 컴퓨터 기술, 생명과학 과 의학의 발전이 고도로 높아지면서 그것들이 몸에 미친 충격을 탐구했다. 그들은 몸 과 기계를 중첩시키거나 신체의 일부를 분리, 파편화하기도 했다. 또한 피와 같은 체액 이나 내장을 보여주기도 하였다.68)

이렇듯 르네상스 시기부터 포스트모더니즘까지 그로테스크는 당대의 사회적 현상이 나 개념들을 반영하고 보여주는데 있어 적절한 예술적 표현 양식이었다. 르네상스 시 기에는 음지에 있는 지옥의 모습을 묘사하는데 그로테스크한 면모가 나타났으며, 17-18세기에는 사회의 부패의 온상이나 감추어져 있던 시대적 모순을 드러내고 전복 하는데 그로테스크는 예술가들의 최고의 표현 수단이었다. 이후 19세기 후반 세기말적 분위기 속에서도 그로테스크는 퇴폐주의라는 당대의 하위개념을 드러내 보이는데 사용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 그로테스크는 인간 내면의 고통이나 무의식, 꿈 등의 비물질 적 세계와 사회·정치적 문제를 드러내고 기존의 가치를 전복시키는 효과를 보여주는데 그 면모를 보이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신체를 적극적인 표현 수단으로 사용하 며 대중문화를 통한 그로테스크 이미지가 늘어났으며, 여러 첨단 기술이 예술에 적용 되면서 매체의 다변화를 이용한 그로테스크한 면모가 드러났다.69)

있다. 이러한 바흐찐의 그로테스크에 대한 설명은 미하일 바흐찐,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과 중 세 및 르네상스의 민중문화, 이덕형·최건영 옮김, 아카넷, 2001, pp. 88-90, 이재걸, 북유럽 르네 상스 회화와 그로테스크-W. 카이저와 B. 바흐친의 이론을 중심으로 , 예술문화융합연구, 제3권, 2015, p. 32, p. 124를 참조함.

66) 진 로버트슨·크레이그 맥다니엘, op. cit., p. 120.

67) Ibid., p. 124.

68) Ibid., p. 126.

69) 김남진, op. cit., p. 191.

(29)

그로테스크는 상징주의 미술과 독일 표현주의 미술에서 각각 인간 내면의 비물질적 세계와 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한 인간 내면에 잠재된 우울과 공포 그리고 고통을 보여 주고 있다. 이후 초현실주의 미술에서는 인간의 무의식과 꿈, 환상을 예술적 표현 양식 인 그로테스크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 지점에서 본고가 주목할 부분은 그로테스크 가 인간의 정신적·심리적 내면의 세계를 드러내는데 있어 중요한 표현적 양식으로 변 모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그로테스크는 깊은 내면에서 발현된 정신의 세계, 심리적 고통과 문제가 반영된다는 점에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개념을 통해 접근할 필요가 있다.70) 다음 절에서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개념 중 트라우마, 죽음 충동, 거세공 포·언캐니와 미술 작품에 드러나는 그로테스크의 관계를 살펴보기로 한다.

제 2절 프로이트의 4가지 개념과 그로테스크의 상관관계

정신분석학은 기본적으로 환자의 노이로제를 치료하는 데에 목적이 있지만71) 프로이 트는 치료법을 넘어 이를 하나의 학문적 이론으로 발전시켰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이 관찰하고 실험 대상이었던 환자들과의 만남 이 전제되었기 때문이다. 즉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개념이 현상에 앞서는 것이 아 닌, 현상이 개념에 앞서서 탄생한 학문이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인간의 심리와 행동을 탐구하고 연구하는 지식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심리가 반영된 미술 작품을 해석하는데 있어 정신분석학의 적용은 그 타당성을 갖는다.72) 이 점 때문에 기존의 많은 연구자들은 정신분석학을 미술 작품 의 해석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미술 작품의 해석에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갖는 방법론적 목적은 작품에 내재된 의미를 예술가의 “위장된 무의식의 욕망과 기억”73)에 70) 유럽에서는 1800년대부터 꿈에 관한 많은 연구와 서적들이 쏟아져 나왔다. 수많은 심리학자와 철 학자들은 꿈에 대한 연구를 이루어 나갔고 이러한 선행 연구를 기반으로 이후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이라는 책을 발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쿠빈이 화가로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19세 기 후반부터 20세기 전반에 걸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기에, 다른 심리학 이론보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바탕으로 쿠빈의 작품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김숙영,

막스 클링어의 장갑 연작 연구 . 서양미술사학회, Vol.33 No.-, 2010, p. 124를 참조함.

71) 강영계, 강영계 교수의 프로이트 정신분석학 이야기, 해냄, 2007, p. 44.

72) 김영길, 정신분석학적 작품분석을 통한 미술교육 비평 연구 , 美術敎育論叢, 한국미술교육학회 Vol. 24 No.1, 2010, p. 361.

73) 마이클 해트·샬럿 클롱크, 미술사방법론, 전영백과 현대미술연구회 옮김, 세미콜론, 2012, p.

288.

(30)

비추어 밝혀내는 것이다. 나아가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은 화가의 미술 작품에 내재된 성 심리적 요인을 화가의 개인적 경험에서 찾아 연구하는데 목적을 둔다.74) 여기서 화 가가 생전에 작성한 글, 일기, 누군가와 주고받은 편지와 같이 여러 문서를 자료로 삼 아 작품에 내재된 암시와 관계를 이끌어 낼 수 있다.75) 실제로 프로이트는 미술품 수 집가이기도 했으며 미술에 학문적 관심을 보일정도로 미술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이 는 프로이트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관한 논문76)을 발표했 다는 사실에서 입증된다.

미술사와 정신분석학은 각각 이미지와 환자의 행동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와 그 원인 이 무엇인지 밝히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본고는 쿠빈 작품에 그로테스크한 이미지가 나타나는 원인과 내재된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개념 중 트라우마, 죽음 충동, 거세공포·언캐니를 살펴보고 각각의 개념들이 예술적 표현 양 식인 그로테스크와 어떤 연관성을 갖는지 살펴보겠다.

1. 트라우마와 그로테스크

프로이트는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학의 창시자로 유명하지만 대학 전공 시절에는 신경학을 공부하였다. 그는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신경과 의사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히스테리 환자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프로이트는 히스테리의 원인을 알아내고자 환자 들의 사례를 분석하면서 1893년 스승인 조셉 브로이어와 함께 히스테리 현상의 심리 기제에 대하여: 예비적 보고서 77)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후 1895년 히스테리 연구

를 공동 집필하였다.78)

히스테리 연구에는 ‘사건’과 ‘트라우마’라는 중요한 개념이 등장한다. 먼저 사건이 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지점에서 발생한 일을 말한다. 반면 트라우마는 정신이 준비 되지 못한 상태에서 그 사건이 남긴 쇼크를 의미한다.79) 특히 트라우마는 외부의 성적

74) Ibid., p. 283.

75) Ibid., p. 290.

76)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유년 기억 (1910)은 프로이트가 다 빈치가 어린 시절에 겪었다고 하는 독수리와 관련된 꿈의 내용에 관한 정신분석학적 논문이다. 프로이트는 다 빈치의 고백 글에서 독수리가 어떻게 동성애적 성향과 연관되는지, 다 빈치의 뛰어난 예술적 기질과 과학자로서의 기 질이 어떻게 연관성을 갖는지 논의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예술, 문학, 정신분석, p. 161.

77) 이 논문에서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 이론의 기초를 세웠다. 미하일 바흐찐, 프로이트주의, 김윤 하 옮김, 뿔, 2011, p. 11.

78) 강영계, op. cit., p. 105.

(31)

인 자극이 정신 속에 개입하면서 갈등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프로이트는 ‘성적 자극이 어떻게 정신 속으로 개입됐을까?’ 라는 의문과 함께 ‘성적 자극을 일으킬 만한 사건이 있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했다. 프로이트는 그 사건의 원인을 어떠한 ‘만남’으로 가정한다. 여기서 말하는 ‘만남’이란 피해를 준 어른 과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평범했던 아이가 어른과의 잘못된 만남에서 성적 접촉이 발생하고, 이는 아이의 정신에 강한 흔적을 남기게 된다. 주목할 부분은 환자가 당시 어린 아이기에 아직 성적인 행위의 의미를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이다.80)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건의 표상이 정신에 쇼크를 만들어 낸다.”81)는 점인데, 사건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사건의 표상이 문제가 된다. 사건이라는 것은 하나의 해프닝이 기 때문에 한 번 일어나면 없어지지만, 사건의 표상은 여전히 환자의 정신 속에 남아 서 사라지지 않는다. 프로이트는 표상이라는 단어 대신 기억이라고 표현한다.82) 즉 프 로이트에 따르면 트라우마는 환자가 유년 시절에 겪은 성적인 사건에서 발생한 기억이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머리에 남아있는 정신적 쇼크를 의미한다.83) 이러한 트라우마는 환자에게 끔찍한 기억을 안겨주고 평생 고통 속에 살게 한다.

한편 예술가의 특정한 의도와 목적에서 만들어진 예술작품은 개인의 정서적·심리적 상태를 드러낸다.84) 이러한 맥락에서 트라우마를 지닌 예술가의 작품에는 트라우마에 서 비롯된 개인의 정신적·심리적 문제가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예술 가는 자신에게 트라우마를 안겨준 대상의 모습을 부정적인 방식으로 묘사하게 되는데, 이때 뒤틀리고 왜곡되는 등 그로테스크한 면모가 반영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왜 냐하면 환자에게 그 기억은 불쾌하고 두려운 기억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러한 기억에 서 도출된 ‘감정’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불쾌했던 기억이 환자의 정신에 불러일으 킨 감정으로 인해 환자가 대상에 대해 혐오감을 들게 만들고 두려움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85)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은 작품에서 그로테스크한 면모를 띠는 이미지가 나타 나는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예술가는 왜 트라우마에 대한 기억을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로 작품에 반복

79) 맹정현, 프로이트 패러다임, 위고, 2015, p. 64.

80) Ibid., pp. 82-83.

81) Ibid., p. 65.

82) Ibid.

83) 지그문트 프로이트, 억압, 증후 그리고 불안 , 프로이트 전집 12, 황보석 옮김, 열린책들, 1997, p. 52.

84) 박이문, 예술철학, 문학과지성사, 1983, p. 37.

85) 맹정현, op. cit., p. 69.

(32)

하는 것일까? 프로이트는 이러한 행위의 이유를 자기 보호라고 설명하며,86) 구체적인 예로 ‘포르트-다(Fort-Da)’ 놀이를 든다. 이 놀이는 아기가 실이 감겨진 실패를 던지면 서 ‘포르트!’라고 외친 이후, 다시 실패를 되감으면서 ‘다!’라고 외치는 놀이이다. 이때 프로이트는 실패를 엄마의 상징물로 해석하였고, ‘포르트’는 엄마가 사라진 상황, ‘다’는 엄마가 되돌아온 상황이라고 보았다. ‘포르트-다’ 놀이를 통해 아기는 엄마의 대용물 (실패)의 사라짐과 나타남을 반복하면서 공포와 두려움을 반복해서 마주하고 있다.87) 즉 아기는 엄마가 사라진 공포의 상황을 하나의 놀이로 되풀이하고 연습함으로써 그때 의 공포를 완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예술가 또한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정신적 고통을 완화시키고자 작 품에 트라우마와 관련된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프로이트는 예술가가 트라우마를 완화시키는 수단으로 미술 작품을 만들어 낸다고 보았고, 이를 ‘승화’의 한 형식으로 생각했다.88) 즉 그로테스크는 예술가가 트라 우마를 마주하고 극복하기 위한 표현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2. 죽음 충동과 그로테스크

프로이트의 죽음 충동 이론을 설명하기에 앞서, 프로이트가 말한 ‘나르시시즘’에 대 해 알아보자. 프로이트가 히스테리 연구를 집필할 당시, 그가 주목했던 환자군은 히 스테리 환자들이었다. 이후 1911년 프로이트는 새로운 환자군에 주목하게 되는데 정신 병을 앓는 환자들이었다. 물론 이전에도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의 탄생이라는 책에서 정신병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정신병을 히스테리와 같은 신경증의 일종으로 생각했다. 프로이트의 제자들이 정신병을 연구하기 시작하자, 프로이트도 1905년 이후부터 정신병을 정신분석학 측면에서 연구하기 시작했다. 정신병을 지닌 환 자들을 관찰하고 연구한 끝에 프로이트는 다음과 같은 결과를 도출하게 된다. 정신병 을 앓는 환자들이 다른 대상에게 지녀야할 리비도를 자신에게 쏟고 있다는 것이다. 즉 프로이트에게 나르시시즘이란 자아가 제3자가 아닌 스스로를 사랑의 대상, 성적인 쾌 락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89)

86) 우정아, 남겨진 자들을 위한 미술, 휴머니스트, 2015, p. 23.

87) Ibid., pp. 22-23.

88) 마이클 해트·샬럿 클롱크, op. cit., p. 287.

89) 맹정현, op. cit., pp. 43-44.

(33)

이처럼 리비도의 대상이 자아이든 다른 대상이든 간에 프로이트는 결국 쾌락원칙에 입각해서 인간이 하는 모든 행동의 목적은 쾌락을 위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1910 년대 후반부터 쾌락원칙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보고되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신경증 환자들의 행동에서 ‘외상 후 특별장애(PTSD)’라고 하는 현상이 발견 된 것이다. 그들은 쾌락이 아닌 불쾌감을 주는 행동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였고, 프로이 트는 이러한 행동을 ‘반복강박’이라 불렀다. 문제는 반복강박으로 인한 행동이 쾌락이 아닌 불쾌감을 준다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왜 불쾌한 경험을 반복하는가?’ 라는 문제 를 제기했고, 이 지점에서 ‘죽음 충동’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프로이트는 1920년에 완 성된 쾌락원칙을 넘어서에서 이 죽음 충동이라는 개념을 처음 등장시킨다. 즉 나르 시시즘이 자신을 향한 리비도의 성적인 쾌락이라면, 죽음 충동은 자아가 스스로를 파 괴하고 분열시키는 성향을 말한다. 자아가 성적인 충동 외에 파괴와 죽음을 향한 충동 이 있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죽음 충동 이론을 생물학적인 가설과 경제학적인 가설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자.90)

생물학적인 가설에서 죽음 충동은 생물이 생(生)의 전(前)으로 돌아가려는 성질, “비 유기체적인 상태로 회귀하려는 성향”91)을 말한다. 즉, 생이란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물은 왜 비유기체의 상태로 돌아가려는 것일까? 이 지점에서 경제학적인 가설이 개입한다. 모든 생물은 고통, 갈등, 불쾌함을 없애기 위한 방향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그러한 부정적인 감정을 무(無)로 만들기 위한 수단이 죽음 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두 가설의 관점에서 확인되는 공통점은 회귀이다.92) 생물학적인 관점에선 비유기체로의 회귀이며, 경제학적인 관점에선 긴장과 고통의 양을 제로화 하 려는 회귀이다. 따라서 죽음 충동이란 “강력한 추진력으로 이전 단계의 상태를 회복하 려는 힘”93)이다. 프로이트는 이 죽음 충동을 통해 자아가 삶이 아닌 죽음을 지향하는 것이라 생각했다.94)

프로이트의 죽음 충동 이론에서 봤을 때, 인간은 본능적으로 주변 사람들의 죽음에 서 비롯되는 슬픔이나 심리적인 문제로 인한 고통과 괴로움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본 능적으로 없애려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때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학대하거나 파괴하려 는 피학적인 성향이 동반된다.95) 만약 예술가가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성향을 가지고 90) 마이클 해트·샬럿 클롱크, op. cit., p. 261.

91) Ibid.

92) Ibid., p. 263.

93) 핼 포스터, 강박적 아름다움, 조주연 옮김, 아트북스, 2018, p. 46.

94) Ibid.

(34)

있다면, 자연히 작품에서도 그 성향이 드러나게 된다. 이러한 점 때문에 자살, 살해 등 의 죽음과 관련된 이미지가 예술가의 작품에 그로테스크한 특징을 지닌 이미지로 나타 난다. 결과적으로 죽음 충동에 입각해서 본다면, 그로테스크한 면모를 띠는 작품은 괴 로움, 고통, 슬픔 등의 불쾌한 감정을 없애기 위해 예술가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3. 거세공포·언캐니와 그로테스크

프로이트는 신경증 환자들이 여성의 성기를 보면 두려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환자들은 왜 두려움을 느꼈을까?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프로이트의 ‘거 세공포’ 개념을 살펴보자. 거세공포라는 개념은 프로이트의 어린아이의 성 이론에 관 하여(1908)라는 논문에서 처음 등장한다. 애초에 거세공포는 남근이 무엇이고, 남근의 역할을 논하기 이전에 남근의 존재여부라는 해부학적인 측면에서 출발했다. 연구가 진 행되어감에 따라 프로이트는 ‘왜 거세공포가 나타났는지, 남근이 없다는 사실이 왜 그 토록 공포심을 유발 하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어린 아이는 성별에 상관없이 자신처럼 모든 인간에게 남근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자신과 달리 여성에게는 남근 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어린 아이는 여성 성기에 대해 혐오감과 불쾌감을 느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남근 또한 거세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를 느끼게 된다는 것 이다.96)

이제 앞선 질문에 대한 답을 해보자.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한 가지 해답을 나르시 시즘에서 찾을 수 있다. 남근이라는 신체의 기관은 나르시시즘 즉, 자신의 리비도가 투 여되는 중요한 부위이기 때문에 자신과 동일시가 가능하다. 그로 인해 남근의 결여는 환자에게 강력한 공포심과 두려움, 불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97) 따라서 거세 공포는 남근에 투영되어 있는 나르시시즘의 훼손에서 오는 불안과 공포를 의미한다.98)

이러한 거세공포는 이후 ‘언캐니’라는 개념과 함께 프로이트의 Das Unheimliche99) 95) 미국 정신분석 학회, 정신분석 용어사전, 이재훈 외 옮김, 한국심리치료연구소, 2002, p. 158.

96) 맹정현, op. cit., p. 221.

97) Ibid., pp. 221-222.

98) Ibid., p. 223.

99) 이 논문은 1919년 이마고라는 논문을 비롯해 여러 논문에 수록되었다. 이후 독일어 운하임리 히(unheimliche)가 영어로 번역되면서 ‘언캐니(uncanny)’라는 단어로 처음 등장하게 된 것이다. 즉

‘언캐니’는 프로이트가 사용했던 독일어 ‘운하임리히’를 영어로 번역한 것이다. 여기서 운하임리히 는 ‘두려운 낯설음’으로 해석된다. 본고에선 편의상 ‘언캐니’로 통일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예

참조

관련 문서

필요할 뿐만 아니라 저개말국 내부에서의 社會階層間 不平等을 해소하 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또한 선진국어l 선 개말도상국의 經濟發展파

It means, reducing depression, increasing hope and family support are needed when developing and implementing nursing intervention, And the results of this

* ‘ 실용수학’ 은 10단계 수학의 이수 여부에 관계없이 학생들이 실생활에 필요한 수학 을 학습하기 위하여 선택할 수 있는 과목으로 수학의 기본적인

먼저 본 연구의 제1장 서론에서는 연구의 목적과 연구의 범위 및 방법을 밝혔고,제2장 조직몰입의 이론적 배경에서는 조직몰입의 개념 과 유형 그리 고

두보는 중국문학사상 위대한 현실주의 시인으로서 「삼리·삼별」은 그의 현실주의 시편의 걸작이라 일컬어진다.. 그는 안사의 난으로 혼란의 소용 돌이에 휩싸인 조정과

- &#34;This work was supported by the Korea Found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 and Creativity(KOFAC) grant funded by the Korea government(MOE)&#34;...

그가 말한 ‘일원’은 원불 교의 종지(宗旨)로, 법신불이자 우주의 궁극적 진리인 초월성을 지닌 신앙 대상이자 동시에 중생의 본성인 내재적인 신앙의 대상이다..

이 연구의 목적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 표현에 서투른 학생들에게 기본적인 발 표의 틀을 제공하여 다양한 표현의 기회를 경험하고, 발표 과정에서 교과의 핵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