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보스토크는 우리가 흔히 연해주라 부르는 프리모르스키 크라이(Primorskii Krai)의 주도(州 都)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극동 연해주 남부 에 있는 길이 30km, 폭 12km의 무라비요프-아무 르스키 반도 남단부에 위치하고 있어 자연스럽게 항구와 해군기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왔다. 블 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 해군의 태평양함대 기지가 있는 군항도시이며, 러시아의 아∙태지역 진출의 관문이다. 블라디보스토크항은 겨울철에 일부 결 빙을 하지만, 쇄빙선을 사용함으로써 연중 이용 이 가능한 부동항이다. 블라디보스토크항 선착장 바로 옆에는 블라디보스토크 철도역이 위치하고 있다. 바로 이곳에서 모스크바역까지 총 연장 9,297km에 달하는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출발한다.
한국인에게 모스크바 다음으로 가장 친숙한 러 시아의 도시인 블라디보스토크는 모스크바에서 9,302km 떨어져 있다. 그러나 서울에서는 불과 750km 남짓한 거리에 있으며, 인천공항에서 항공 편으로 2시간 15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근거리 에 위치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모스크바 다음으로 한국과의 인적∙물적교류가 가장 활발한 러시아의 도시 중 하나다.
한민족의 애환이 깃든 블라디보스토크
블라디보스토크가 우리에게 성큼 다가선 것은 그 리 오래되지 않았다. 구 소련시기 블라디보스토크 는 러시아 극동지역의 군사적 중심지로 외국인뿐
블라디보스토크항 전경
러시아 극동의 관문, 블라디보스토크
성원용|한국교통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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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극동의 관문, 블라디보스토크
성원용|한국교통연구원 책임연구원
만 아니라 러시아 내국인도 별도의 증명서가 없으 면 출입이 통제된 도시였다. 그러나 구 소련 붕괴 이후 1992년부터 러시아의 시장개혁이 본격적으 로 진행되면서 블라디보스토크는 외부 세계에 다 시 개방되었다.
그러나 조금 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블라디 보스토크는 결코 우리에게 낯선 도시가 아니다. 이 곳에는 한민족의 숨결과 애환이 깃들어 있다. 블라 디보스토크는 일제 강점기 이범윤, 홍범도, 유인 석, 이진룡 등의 독립투사들과 이상설, 이위종, 이 동녕, 안창호, 박은식, 신채호, 이동휘, 장지연 등 애국지식인들이 활약했던 독립운동의 본거지였고 구한말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살았던‘신한촌(新韓村)’이 있었던 곳이다. 이곳 은 중국의 상하이와 함께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들 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을 벌인 해외 거점 중 하나 였다. 신한촌은 항일운동의 보복으로 1920년 4월 일본군으로부터 습격을 받았다. 이것을 가리켜 신 한촌사건 또는‘4월 참사’라고 하는데, 재외동포 이민사의 5대 비극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후 신한 촌은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인해 자 취를 감추고, 지금은‘뻬르바야 레치까’라고 부르 는 시내 중심가 아파트 사이에 우뚝 서 있는 기념 비만이 과거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주고 있다.
블라보스토크는 한민족 재외동포 이민사에서 가장 큰 비극이 시작된 공간이기도 하다. 1860년 이후 연해주로 이주하여 황무지를 개간하며 정착 했던 우리 동포들은 1937년 중일전쟁 발발과 함께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짐짝처럼 시베리아횡 단열차에 실려 반 사막지대나 다름없던 중앙아시 아로 쫓겨나고 말았다. 이들은 중앙아시아의 악조 건에서 생존하여 삶의 기반을 마련했다. 그러나 일 명‘고려인’이라 불리는 우리 동포들에게 또 한 번
의 가혹한 시련이 닥쳐왔다. 구 소련 붕괴 이후 중 앙아시아의 여러 공화국이 독립하면서 자민족 중 심주의가 극단으로 치닫자 이들은 다시 기차에 올 라타 제2의 고향인 연해주로 귀환해야 했던 것이 다. 현재 연해주에는 3만여 명의‘고려인’이 거주 하고 있으며, 이들 중 다수는 블라디보스토크와 항 카호 중간에 위치한 국경도시 우수리스크에 집거 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역사
러시아인에게 펼쳐진 블라디보스토크의 역사는 1859년부터 시작된다. 군함‘아메리카’호를 타고 표트르대제만(灣)을 여행한 동시베리아 총독 무라 비예프 아무르스키는 이곳을 항구개발의 적지로 눈여겨봤고, 1년 후 코마로프 소위를 지휘관으로 삼은 동시베리아 4대대 3중대 군인들이 군함‘만 주’호에서 이곳에 상륙하여 초소를 지었는데, 2년 후 그 블라디보스토크 초소가 공식적으로‘항구’
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 이곳이 시(市)의 명칭을 부여받은 해는 1880년이었다.
러시아 극동정책의 일환으로 건설된 블라디보 스토크는 중국, 한국, 일본이 가까운 곳에 위치한 탓에 일찍부터 무역, 외교, 상업의 중심지가 되었 다. 1890년대부터 무역항으로 크게 발전하였으며, 20세기 초반까지 급속하게 성장하여 전 세계의 무 역상, 자본가와 외교관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러시아는 1891년 시베리아 횡단철도 기공식을 이 곳에서 가졌으며, 당시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 라이 2세가 참석했을 만큼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 아 동진의 거점이었다. 1903년에는 시베리아 철도 가 완전히 개통됨으로써 도시의 중요성은 더욱 커 졌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에 서 보낸 군수품과 철도장비를 들여오는 태평양의 주요 항구였다. 러시아혁명 직후인 1918~1922년 에는 일본군의‘시베리아 출병’으로 인해 수많은 러시아 주민들이 무고한 피를 흘려야만 했던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1917~1920년 기간동 안 전 러시아를 휩쓴 혁명과 내전의 와중에 크게 파괴되었던 이 도시는 1931년에‘완전한 사회주의 복구’도시에 속하게 되었으며, 이후 1950~1980 년대를 통해 도시 인구와 면적이 세 배로 늘어나는 성장을 하게 되었다.
러시아의 상하이
러시아인이 동진을 시작하던 19세기경 블라디보 스토크의 원래 중국명은 해삼위( )였다. 러 시아인이 이 땅을 차지하면서 도시의 이름이 블라 디보스토크로 바뀌게 된 것이다. 한국인에게 블라 디보스토크라는 도시명은 조금 낭만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 그 숨겨진 뜻을 안다면 섬뜩한 느낌을 지우기 어려울 것이다. 두 개의 단어가 결 합된 말인데, ‘블라디’는 정복하다는 뜻의‘블라제 찌’의 명령어이고, ‘보스토크’는‘동방’이란 뜻이 다. 그러니 직역을 하자면 블라디보스토크는 곧
‘동방을 점령하라’는 말인 것이다. 도시의 이름에 서도 우리는 과거 러시아제국이 이곳으로 동진했 던 역사적 배경을 읽을 수 있다. 그래서 오늘날 이 도시의 이름을 수없이 내뱉으며 살아가는 러시아 인들이 과연 그‘동방’을 어떠한 이미지로 그리고 있을지 상상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인 듯싶다.
이곳을 방문한 한국인들은 도시 외관부터 사람 들의 관습까지 유럽적인 도시가 한국과 이토록 가 까운 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도시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블라 디보스토크의 과거에는‘동방’과 함께 한 역사의 궤적들이 살아 숨쉬고 있다. 태평양을 향한 러시아 의 관문으로서, 또한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동단 도 시로서 블라디보스토크는 20세기 초 중국, 한국, 일본 등 주변국과의 교류가 많은 도시였다. 당시 이 도시는‘러시아의 상하이’라 불릴 정도로 국제 화되고 외국인이 많은 도시였다.
오랜 기간 동서 냉전기에 폐쇄되었던 블라디보 스토크는 다시 개방되면서 과거의 활기를 되찾아 가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시는 현재 부산, 다렌, 니가타, 아키타, 하코다테시 등과 자매결연을 맺고 있으며, 지리적∙전략적 요충지로서 잠재적인 발 전 가능성을 인정받아 세계 각국에서 이곳에 영사 관을 개설하고, 무역대표부를 파견하며, 외국항공 사들의 직항로 개설 움직임도 활발하다.
현재 블라디보스토크는 한국과의 지리적 근접 성과 엄청난 개발 잠재력 때문에 우리의 지대한 관 심을 끌고 있다. 우리나라는 대한항공을 비롯해 현 대, 삼성, LG, 롯데, 한국통신 등 10여 개 대기업 들과 많은 중소기업들이 진출하여 활발한 경제활 동을 전개하고 있다. 또한 블라디보스토크는 북한 의 최북단과 인접해 있어 북한의 여러 기관과 노동 자들을 접할 수도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약 2,500명의 북한주민이 해안지역 건설노동자로 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04년을 기준으로 블라디보스토크의 인구는 59만 명으로 연해주 전체의 28.7%를 차지하였다.
주요 산업은 조선업과 어업, 항만 관련 산업이다.
이곳에는 대규모 선박수리소 이외에 철도공작창과 광산장비를 만드는 공장이 있으며, 경공업으로는 기계∙라디오 공장, 목재 가공공장, 도자기 공장, 의약품 공장 등이 주를 이루고 있다. 생선, 육류가
공, 제분을 한 중심으로 한 식료품 산업과 조립식 건축자재 생산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블라디보스 토크시가 속한 연해주의 주요 산업은 수산업, 해산 물 가공, 임산업, 비철금속공업, 건설재료공업 등 이며 그중 수산업과 임산업은 중요한 외화 획득원 이 되고 있다.
극동의 관문, 블라디보스토크
블라디보스토크항은 러시아 극동의 관문으로 북 한, 중국, 러시아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연해주 남 부 졸로또이 로그만(灣)에 위치하고 있다. 항만규 모로 보면 블라디보스토크항은 극동지역에서 보스 토치니항과 나호트카항 다음의 3위에 위치하고 있 다. 블라디보스토크항에는 한국, 베트남, 일본 등 과 주요 국제항로가 개설되어 있으며, 사할린, 캄 차카, 마가단 등과 연안항로가 운영되고 있다.
1950년대 초 외국 선박의 블라디보스토크 출입이 금지된 이후 국제해상무역은 대부분 블라디보스토 크 동쪽의 나호트카항이나 보스토치니항을 통해 이루어졌고, 따라서 그동안 블라디보스토크항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작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극동지역의 대외교역 물동량이 증 가하고 시설용량이 확대되면서 블라디보스토크항 은 상업항으로서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MCL 등 글로벌 선사들의 항로 서비스가 개설되면 서 물동량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2004년의 화물 처리 실적은 726만 7,300톤(수출화물 557만 6,900 톤, 연안수송 109만 5,100톤, 수입화물 59만 5,300 톤)이었다. 컨테이너화물의 비중은 아직도 미약하 지만 성장 속도는 매우 빠르다. 2004년 컨테이너 화물처리 실적은 10만 2,169TEU(연안수송 5만 5,064TEU, 수출 2만 6,090TEU, 수입 2만
▲급속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컨테이너 부두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한 한국 해군의 모습
▼블라디보스토크 철도역.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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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5TEU)이며, 전년 대비 15%의 증가율을 보이 는 등 놀라운 성장세에 있다. 블라디보스토크항은 컨테이너 화물처리 용량 증대를 위해 컨테이너 부 두를 증설 중이다. 현재 제3부두를 개축하고 있고, 수심 16m의 제4부두 개축으로 대형 컨테이너 화물 처리가 가능하게 되었으며, 12번 부두에 위치한 유 류기지가 완공될 경우 연간 150만 톤의 유류제품 처리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교육 및 문화의 중심지
블라디보스토크는 또한 러시아연방 극동지역의 교 육 및 문화의 중심지로서 극동과학센터와 극동대 학교를 비롯하여 의과대학, 예술대학, 공과대학, 상과대학, 선박공학대학 등의 고등교육기관들이 있다. 1899년 개교한 극동대학교는 극동지방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대학이다. ‘동방대학’이 란 이름으로 개교한 이 대학은 1920년에 종합대학 이 되었다. 극동대학교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 의 한국학대학이 설치되어 있다.
도심 속에 있는 아르세니예프 향토박물관은 블 라디보스토크가 자랑하는 최고의 박물관이다.
1890년 문을 연 이 박물관은 유명한 탐험가였던 아 르세니예프를 기념하기 위해 건설되었다. 이곳에 서 우리는 20만 점 이상의 전시품을 통해 시베리아 와 극동지역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의 삶과 역사를 고대부터 현대까지 관찰할 수 있다. 아르세니예프 향토박물관에는 100년 이상된 고고학, 지리학, 민 속학의 자료들과 희귀 서류 및 책들이 보관되어 있 는데, 우리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발해 관련 유물들이다. 발해사와 관련한 학술분야에서 한국 과 러시아는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러시아의 어느 지역에서든 볼 수 있는 것이 슬
▲ 극동대학교의 모습. 세계 최대규모의 한국학대학이 설치되어 있다
▲ 해마다 7월 2일이 되면 블라디보스토크시 건립을 축하하는 축제가 열린다
▼ 해군박물관이 들어서 있는 루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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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브정교 교회라면 블라디보스토크에는 현재 해군 박물관이 들어선 최초의 루터교회(St. Paul’s Lutheran Church)를 감상할 수 있다. 루터파의 회 합을 위해 처음 1878년 블라디보스토크에 세워진 교회는 목조양식의 건물이었지만 1908년 중세풍 의 아치와 천장, 이랑이 있는 고딕양식의 벽돌 건 물로 재탄생하였다. 러시아 건축양식을 대표하는 블라디보스토크 역사(驛舍)와 1906년에 건설된 바 로크 양식의‘굼백화점’도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블라디보스토크의 건축물이다.
한국인의 눈으로 볼 때 블라디보스토크는 그리 큰 도시도 아니고, 문화유산과 볼거리가 많은 것도 아니다. 다만 큰 매력이라고 한다면 바다로 둘러싸 인 도시여서 시내에서 10~15분만 걸어 나가면 바 로 항구에 닿을 수 있고, 바다의 흥취에 흠뻑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야트막한 구 릉과 언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가장 높은 곳은 214m의‘독수리 둥지’라는 산이다. 이곳의 전망대 에 오르면 도시를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석양 이 질 때 독수리 둥지에 올라 블라디보스토크의 아 름다운 파노라마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이곳의 전망대가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바다의 도시, 블 라디보스토크에서 일상적인 볼거리는 역시 바다에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여객선, 어선 등 크고 작은 수많은 배들이 꽉 들어차 있고, 러시아 태평 양함대의 육중한 군함들을 보는 것도 커다란 즐거 움이다. 혁명광장에서 5분 정도를 걸으면‘C-56 잠수함 박물관’을 만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당 시 10대의 적함을 침몰시켰다는 전설적인 잠수함 C-56을 개조하여 잠수함 내부를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가까이에서 잠수함을 속속들이 관람할 수 있다 는 것 외에도 전시된 다양한 기계장치를 실제로 조
작해 볼 수 있다는 재미에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 지 않는다.
무한한 잠재력의 도시
한여름 이곳을 방문하면 아무르만의 연안 해변을 걸어가는 많은 중국인을 만나게 된다. 이들 대부분 은 중국 동북 3성(요녕성, 흑룡강성, 길림성) 사람 들로 버스나 항공기로 여행을 와서 바다를 보고 유 럽풍의 이국적인 정취를 즐긴다. 최근 극동지역의 골칫거리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입국하여 불법거주자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점차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극동지방 정부 는 이러한 중국인들의‘황색바람’을 국가안보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아직도 1990년대 체제전환의 여파를 완전히 극복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번쯤 이 도시를 방문한 사람들은 누구나 이 도시가 극동 지역에서 경제무역의 중심도시가 될 수 있는 무한 한 잠재력을 가진 도시임을 인정하게 된다. 러시아 사회는 점차 안정되고 있고, 경제는 활기를 띠고 있으며 힘찬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 크가‘동방의 진주’라 불리었던 옛 이름에 걸맞는 지위를 빨리 회복하여 러시아 경제부흥의 대동맥 역할을 떠맡을 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