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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멘스의 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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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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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15)

• 그리스도교 변증가, 헬레니즘(그리스 문 화) 세계를 대상으로 활동한 선교사·신 학자.

• 알렉산드리아 교리문답학교의 2번째 지 도자 교사로 알려져 있다. 현존하는 그의 저서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책은 ‘회심 에의 권고 (Protreptikos)’· ‘교사

(Paidaggos)’· 미완성 저작인‘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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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멘스의 서신

• 클레멘스는95년경 고린도 교회에서 있었던 소요에 대해 장로들을 대적 한 신자들에게 소요를 중지하고 장로들에게 복종하라고 권면하기 위해 고린도 교회에게 첫번째 편지를 저술

• 장로들과 집사들은 사도들이 임명하는 것이며 사도들은 그리스도에 의 해 보내심을 받았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았다는 데에 초점 을 두었음. 클레멘스는 이들 민주적으로 임명된 지도자들에게 순종하라 고 강력히 요구. 이 서신에서 화합하라는 권면으로 끝을 맺는다

(3)

• 클레멘스의 서신은 1세기 교회안에서의 장로와 집사의 지위에 관한 정 보를 제공하기 때문에 중요.

• 클레멘스는 감독에게 순종하는 것이 기독교적 화합을 이룰 수 있는 실질 적 보증이 될 것이라고 보았으며 성직자들은 평신도와 구분된다고 언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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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멘스 (Titus Flavius Clemens; St. Clement of Alexandria; 150-215)

• 클레멘스는 알렉산드리아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지적 지도자 역할을 하는 가운데 윤리와 신학에 관한 저서들과 성서 주석들을 여러 권 썼고, 이단인 영지주의자들(영적 기원, 정체, 운명을 계시해 주는 비밀스런 지식을 통해서 구원을 얻는다고 믿는 종교적 이원론자들)과 투쟁했으며, 그리스도교를 지 성화하려 한다는 의심을 받던 그리스도교도들과 논쟁을 벌였고, 훗날 신학 자들과 교회지도자들이 된 인물들(예를 들면 예루살렘의 주교 알렉산데르) 을 교육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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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을 할 수 있는 실제적인 전도계획을 내놓았다. 그는 이 계획이 그리스도교 신 앙 안에서 그리스 철학과 모세 전승의 역할을 이해하게 만들어줄 것으로 기대했 다. 그에 따르면 마치 모세 율법이 유대인들에게 그러했듯이, 철학은 그리스인들 에게는 진리로 인도하는 예비학습이라고 했다. 그의 목표는 그리스도교 신조들 을 그리스 ' 파이데이아'(교과과정)로 교육받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 만듦으 로써 그리스도교 신앙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헬레니즘 문화 안에서 효과적으로 증인 역할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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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역시 2세기 문화환경에 깊이 뿌리를 내린 사회비평가였다. "진리는 하나이다.

그러나 그 안으로 들어가면 마치 영구히 흐르는 강처럼 각각 여러 곳에서 흘러 온 지류들이 함께 흐른다“(잡기(Miscellanies)에서)라는 클레멘스의 견해는 오리 게네스 밑에 있던 교리문답학교 교과과정의 바탕이 되었으며 중세대학의 기본 적 교과과정의 7교과를 형성, 4개 학과인 산수, 기하, 천문, 음악(quadrivium)와 3 개 학과 문법, 수사, 논리(trivium : 교양과목들)의 기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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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것에 대해

• 클레멘스는 철학이 영지주의의 토대가 되기보다는 그것을 파괴시킬 수 있는 합 리적 방법을 제공해주며 극복할 수 있다고 판단

• 클레멘스는 플라톤이 모세와 선지자들의 진리를 정당한 인정없이 표절했다고 언급하고 그리스 철학은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고 죄를 억제하는 목학 선생으로 주어졌다고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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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정한 영지자는 철학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즉 교회안에 서 믿게 된 것을 올바로 이해하고, 잘못된 혼합을 논박하기 위해 철학을 사용할 수 있다.

• 진정한 영지자는 마음이 깨끗한 자들, 아이가 아버지와 함꼐 걸어가듯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겸손한 자들, 윤리적 행위의 동기가 형벌에 대한 두려움이나 상급 에 대한 기대를 넘어서서 오직 선 그 자체에 대한 사람에서 비롯된 자들에게 영 적통찰력이 주어진다는 것을 안다

(9)

에 플라톤의 형이상학과 스토아 학파의 윤리,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으로부터 배울 것이 많이 있다고 확신

• 어디에서 발견되든지 간에 모든 진리와 선은 창조주로부터 온 것이다. 동일한 근 거에서 클레멘트는 물질을 지존의 하나님으로부터 전적으로 소외시킴으로써 창 조세계를 폄하하고 그 결과 윤리적으로는 극단적인 금욕주의나 또는 반율법주 의적 정욕주의에 빠지게 되는 영지주의자들을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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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레멘스는 어떤 사치나 허영을 극력 반대했으며 세상에서 합법적이라고 생각 될 수 있는 많은 것들이 매우 부적절한 것들이라고 여김

• 클레멘스는 기독교인의 삶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모양(likeness of God)을 이루어 나가는 진보의 과정으로 이해했다. 따라서 기독교인의 삶을 기독교 교리 의 성격을 점차 깨달아가는 역동적인 진보일 뿐 아니라 배우는 사람이 때로는 회계가 필요한 잘못을 범할 수 있는 교육의 과정이라고 파악

• 클레멘스는 교회를 학교라고 말하고 있는데 학교는 많은 과정과 학년이 있으며 학생들은 능력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강조. 또한 그 안에서 모든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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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과 더불어 끝나리라고 생각하지 않음

•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도 지혜로운 불에 의해 정화될 필요가 없이 곧바로 하나 님의 면전에 서게 될 정도로 높은 거룩함을 이룰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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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게네스 (Ὠριγένης Ōrigénēs; Origen Adamantius ; 185-254)

• 초기 그리스 교회의 가장 중요한 신학자

·성서학자.

• 경건한 기독교인 부모에게서 태어남.

• 202년 아버지가 순교하고 기독교 교사가 되기로 결심

• 대표작은 구약성서의 6가지 판본을 병기 해놓은 ‘헥사플라’ (Hexapla)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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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리게네스는 그리스 철학의 다양한 학파들의 주장에 대해 완전히 정통했으 며 스토아주의, 에피쿠로스주의, 플라톤주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 등 서로 다른 입장들 사이를 자유롭게 활용하여 신학을 뒷받침

• 오리게네스는 영혼이 하나님과 닮은 존재이지만 진정한 고향이 아닌 물질세 계에 살지 않으면 안된다는 플라톤의 가르침에 공감, 신적진리를 발견함에 있어서 플라톤이 실제로 영감을 받았다는 점을 파악

• 오리게네스에 있어서 계시의 유일한 원천은 성경이었으며 매일 여러 시간을 기도와 성경연구에 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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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게네스 (Ὠριγένης Ōrigénēs; Origen Adamantius ; 185-254)

• 오리게네스는 철학적으로 뛰어난 학문을 구축했고 황제였던 알렉산더 세베 루스(222-235 재위)에게 깊은 인상을 주어 자신의 도서관 설립을 오리게네스 에게 맡김

• 플라톤은 악이란 선의 결여이며 이 세상의 무질서에 대한 책임은 자유의지 의 오용에 있다고 파악함. 오리게네스에 있어서 물질세계는 한시적이고 잠 정적인 것이며 이 세상에서의 삶이란 이보다 훨씬 더 긴 영혼의 삶속에서의 짧은 일부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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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리게네스가 교사로서 쌓은 경험은 영적인 깨달음의 범위를 꾸준히 강조한 데에 잘 반영되어 있다. 그는 그리스도교를 신을 향해 올라가는 사다리로 보 았고, 초신자들도 성인들과 함께 끊임없이 사다리를 오르는 법을 배워야 한 다고 가르쳤다. 그의 신학 전체는 결국 하느님의 선함과 피조물의 자유에 초 점을 둔다. 만물 위에 초월해 있는 하느님이 모든 존재의 원천이며, 선하고 의로우며 전능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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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게네스 (Ὠριγένης Ōrigénēs; Origen Adamantius ; 185-254)

• 하느님은 창조질서를 초월하기도 하고 그 안에 내재하여 활동하기도 하기 때문에, 제약을 받기도 하고 받지 않기도 하며, 자유롭기도 하고 필연성 아 래 있기도 하다.

• 하느님은 물질세계를 훈련도구로 창조했다(지진이나 전염병 같은 천재지변 은 인간들에게 이 세상이 하느님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님을 일깨워 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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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원의 절정은 창조 이전부터 존재했던 성자가 성육신한 사건이다. 다른 영 혼들이 모두 타락한 상태에서 한 영혼만은 타락하지 않고 성부를 경배하며 그와 연합되어 있었다. 그리고 성부·성자·성령, 즉 삼위일체 중 제2위격인 신적인 ' 로고스'(성부에게 종속되지만, 무한한 창조주와 유한한 피조물 사이 에 놓인 심연을 놓고 보면 하느님 편에 속하는 것)는 성부와 연합함으로써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비롯된 몸으로 성육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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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게네스 (Ὠριγένης Ōrigénēs; Origen Adamantius ; 185-254)

• 오리게네스는 성서 계시와 신자의 영적생활이 모두 점차 발전해가는 과정이 라고 보았다. 교회는 잘못을 저지른 학생들을 바로잡아주는 '영혼의 학교'로 서, 그 기초교육은 현세에서 받고 고등교육은 장차 올 세상에서 받게 된다고 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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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prianus; St. Cyprian; ?- 258)

• 초기 그리스도교 신학자, 카르타고 의 주교.

• 로마로부터 박해를 받는 동안 북아 프리카 그리스도교도들을 이끌었 다. 발레리아누스 제 시대에 이방신 제사를 거부하여 285년 처형당함으 로써 주교로서는 아프리카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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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프리아누스 (Thascius Caecilius Cyprianus; St. Cyprian; ?- 258)

• 박해시 배교자들에 대한 속죄를 강 조하며 신앙을 입증할 수 있는 기 회를 절차를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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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신학은 교회의 통일성과 유일성에 토대를 두었다. 교회의 통일성 은 모두 다 똑같이 자기 교구안에서 성령과 통치권을 소유하고 있는 각 주교들이 동의함으로써 표현되고, '주교들의 주교'란 없으며 교회는 주 교와 연결되어 있는 교인들로 구성된다고 했다.

• 그리고 사제직에 대항하는 분열과 반란을 가장 악한 죄로 보았다. 이러 한 견해들은 교회의 순결성과 배타성에 토대를 둔 비타협적인 태도로서 북아프리카의 신학자 테르툴리아누스에게서 유래된 듯하다. 키프리아 누스의 순교를 지켜본 대부분의 북아프리카 그리스도교도들은 이러한 견해들을 하느님의 절대적인 뜻으로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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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프리아누스 (Thascius Caecilius Cyprianus; St. Cyprian; ?- 258)

• 교회의 통일성 강조하여 교회가 하나가 되고 주교들의 권위를 통해 분 열된 교회의 일치를 도모

• 251년 교회일치에 대하여라는 선언서 낭독“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로 서 거룩한 기관이며, 그리스도의 신부는 오직 하나일 뿐이다. 오직 교회 안에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고, 교회밖은 어둠과 혼란뿐이며, 교회를 떠 나서는 성례, 성직, 심지어 성경까지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통을 통해 기독교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교회 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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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황직(라틴어로 'Papatia', 아버지란 뜻의 'Papa'에서 유래)이라는 말은 지상에서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교황의 직위와 재치권을 가리키는 말로 서 중세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일차적인 의미는 교황(로마)의 집무실을 가리키며, 따라서 교황이 직접 관장하는 교회적·세속적인 정부를 나타 낸다. 교황의 집무실이 특별한 이유는 로마의 주교가 수위제자인 성 베 드로의 후계자라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때문이다. 베드로 집무 실의 재임자로서 교황은 보편적인 교회의 최고 주교 또는 수좌로서 홀 로 탁월한 지위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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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의 수위권

• 논란이 그치지 않았던 교황제는 초대 교회 이후 1870년까지, 즉 제1차 바 티칸 공의회가 '신앙과 도덕의 문제'에 관한 선언에서 교황의 절대우위 성과 무류성을 신앙사항으로 공식 표명할 때까지 오랜 세월에 걸쳐 발 전해왔다. 이 선언에 따르면, 교황은 사도들의 대표이자 초대 로마 주교 라고 생각되는 사도 베드로의 직계 후계자로서 교회의 사법·입법·행 정 전반에 대해 권위를 행사한다. 베드로의 권위는 마태복음 16장 18~19 절에 인용된 예수의 말을 비롯해 그밖의 성서구절에 근거를 둔 것으로, 거기에 따르면 베드로가 예수를 이어 하늘과 땅의 권세를 쥔 것으로 해 석되었다. 교황제의 초기 역사는 이러한 베드로론의 발전사이며, 그 이 후의 역사는 그리스도교 사회에 대해 교황의 영적 권위뿐 아니라, 세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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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세기 이단과의 투쟁에 있어서 로마 교회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과 더불 어 로마주교가 사도적 전승의 계승자라는 인식

• 382년 이전까지만 해도 마태복음에 드러난 베드로 권위가 수위권 주장 에 신학적 성경적 토대를 제공할 만큼 중요성을 띠지 않았음

• 다마수스이후 로마주교들의 권리 주장이 설득력이 있어짐. 하나의 교회 법으로 무질서가 횡행하던 지역에 질서와 기율을 부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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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드로는 최초의 로마 감독

• 베드로는 사도로서 반석위에 교회를 세울 것이라는 그리스도의 인정을 받음

• 키프리아누스와 제롬은 로마교구의 특수성을 강조

• 로마는 사도적 전승과 연결되어 특권이 로마의 감독에게 부여

• 클레멘스, 이그나티우스, 이레나이우스, 키프리아누스 등 많은 서방교회 의 교부들은 감독직의 중요성과 모든 감독들이 동등하나 로마의 감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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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계승자로서 지고의 영적 위엄을 갖고 있음을 강조함으로써 세속 권 력과 도덕적 권위에서의 취약함을 보완

• 다마수스는 서예가 디오니시우스 필로칼루스를 고용하여 순교자들과 교황들의 성소들을 경구들로 장식하게 하고, 이탈리아의 학자 제롬 (Jerome)에게 라틴어 성경의 개정판을 제작하게하여 보편적 표준 라틴 어 성경인 불가타역 성경을 확립

• 다마수스는 로마교회를 미학적이고 전례적인 면에서 풍요롭게 만드는 주목할만한 업적을 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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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의 수립

• 감독의 역할은 신조의 발달에 의해 강화. 신조는 대중이 사용할 수 있는 신앙의 진술로서 여기에는 구원과 교회의 신학적 안녕에 필요한 조항들 이 포함

• 전체 교회의 대표들이 작성한 종교회의의 신조, 혹은 보편적 신조들이 313년부터 451년 사이의 신학적 논쟁 기간에 출현

• 이레나이우스와 터툴리아누스는 영지주의자들을 구별하는 데 사용하기 위해 신앙의 규칙들을 개발했는데 이는 주요 성경적 교리들의 요약이었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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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마 교회의 신조 작성 과정은 사도신경에서 그 절정에 이르렀다. 사 도신경은 오늘날 대부분의 개신교회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세례의식과 공중예배에서 쓰인다. 사도신경이 현재의 형태로 사용된 것은 아마 8세 기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사도신경은 그 이전의 세례 신조, 특히 고대 로 마 신경에서 시작된 것 같은데, 그 내용의 골자는 2세기에 작성된 것으 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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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케아 신조

• 니케아 신조는 정통 교리에 대한 권위 있는 규범으로 입안된 것으로, 325년 니케아에서 열린 최초의 에큐메니컬 공의회에서 처음으로 작성 되었다. 이 신조를 개정한 이른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는 동로마 교회와 서로마 교회가 다같이 받아들였다.

• 니케아 신조는 사도신경과 마찬가지로 부분적으로는 이단의 주장들, 특히 성부와 성자의 동등성을 부인하는 아리우스 이단설을 배제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그러므로 그 신조는 예수 그리스도가 성부와 동일본질 (homoousion)을 지닌다고 규정했다. 서방교회는 또한 성령이 성부에게 서뿐 아니라 성자에게서도 나온다는 뜻의 ' 필리오쿠에'(성자로부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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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방교회의 3번째 에큐메니컬 신조는 아타나시우스 신조이다. 16세기 이래로 동방교회에서 별로 인정받지 못한 이 신조는 로마 가톨릭, 성공 회, 루터교가 공식적으로 채택하고는 있지만 최근 몇 세기 동안 예배에 서 이 신조를 사용하는 일이 크게 줄어들었다. 논쟁의 성격을 강하게 띠 고 있는 이 신조는 그리스도교의 본질과 삼위일체의 주제들을 자세히 설명한다. 이 신조는 450~500년에 남부 프랑스에서 생겨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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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의 기준

① 영감성 : 본문 전체가 하나님의 계시로서 일점 일획도 틀림없이 영감으로 기록된 사실, 즉 그 내용의 신적 기원이 인정될 수 있어야 한다.

② 목적성 : 말씀의 내용 자체와 그 기록이 인간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전 달하는데 기본 목적이 있어야 한다.

③ 신뢰성 : 하나님의 영감을 받고 쓴 인간 저자의 신실성이 입증되어야 한다.

저자의 하나님에 대한 진실성과 성경의 기록자로서 하나님께서 흔연히 인정하 셨는가의 의문에 관한 문제이다. 구약의 경우 하나님의 소명과 기름 부음, 신 약의 경우 사도성이 바로 이에 속한다.

④ 보편성 : 본문의 내적 속성에 근거하여 구체적으로 어느 한 책이 정경성을 갖고 있다는 교회의 보편적 확증이 요구된다.

⑤ 보존성 : 성경 원본의 권위에 근거하여 그 본문이 신적 간섭에 의하여 훼손 됨 없이 전달되어졌는가 하는 보존과정의 완전성이 요구된다.

(33)

• 정경의 결정에 있어서 가장 결정적 판단의 기준은 그 문서들이 사도적 인가에 두었다는것은 첫째로 사도들 자신이 직접 쓴 것 이어야 한다는 것에 앞서 신뢰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둘째는 사도들과 함께 동역한 사 람들이 쓴것이어야 한다.

• 마가와 베드로는 사도들의 동역자들이었음으로 포함이 되었다. 그리고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후서, 요한3서, 유다서, 계시록등은 정경에 포함된 것이 늣어진 것은 그 문서들이 사도들에 의하여 쓴것인지의 여 부가 분명치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바나바 서와 헬마스의 목양자와 클 레멘트의 서신과 솔로몬의 지혜등이 제외된것도 모두 이 때문이다.

(34)

정경의 기준

• 정경은 교회에서 사용된 역사가 있는 책이어야하며 사도가 저술했거나 인정한 책이어야 한다. 또한 신자들의 삶에 영향을 준 분명한 증거가 있 는 책이어야 한다.

(35)

• 알렉산더가 페르시아를 물리치고 승리함으로써 그의 모국어였던 그리 스어를 확산시키고 오리엔트 지역은 헬레니즘화 되었음

• 희랍어는 고대 세계의 표준어가 되었고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디아스포 라이후 모국어인 고대 히브리어가 사라지고 희랍어를 사용하게 되었음

• B.C. 250년경 헬레니즘의 중심지였던 알렉산드리아에서 히브리어에서 희랍어로 구약 번역 작업이 이루어짐

• 이스라엘의 12지파에서 6인씩 선출되어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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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15권 외경

• 토비트, 유디트, 솔로몬의 지혜, 바룩, 예레미아의 편지, 마카비서 상, 마 카비서 하, 수산나, 세 청년의 노래, 벨과 용, 에스더 속편, 벤시락 또는 집회서, 에스드라스 상, 에스드라스 하, 므낫세의 기도

• 신약에는 262번의 구약 직접인용과 370번의 간접인용이 있으나 그리스 도와 사도들은 외경은 한차례도 언급하지 않았음

• 초기 역사가인 요세푸스 역시 외경은 언급하지 않음

(37)

• 언어: 히브리어

• 15권의 책은 외경으로 정경에서 제외시킴

• 유대인들과 개신교(Protestant)의 정경 전승

• A.D. 70년 로마의 장군 티투스에 의해 예루살렘이 완전히 파괴된 후에 유대의 율법학자들이 지중해 연안의 얌니아에 이주. 얌니아의 율법학자 들은 로마 당국

(38)

구약 알렉산드리아 정경(Alexandrian Canon)

• 언어: 희랍어

• 15권의 책도 정경에서 포함시킴

• 초대교회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정경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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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레멘트 1서, 클레멘트 2서, 십이사도의 가르침(디다케), 바나바 서신, 헤르마스의 목양서, 베드로 묵시록, 바울행전

• 복음서: 도마복음, 니코데모 복음, 바르톨로메오 복음, 베드로 복음, 마 리아 복음, 야고보원 복음, 필립보 복음, 요셉복음, 마티아 복음, 위 마태 오 복음, 나사렛인 복음, 애굽인 복음, 히브리인 복음서, 아람인 복음서

• 행전서: 바울로 행전, 요한행전, 안드레 행전, 토마스 행전, 베드로 행전, 바르나바 행전, 필립보 행전, 빌라도 행전, 야고보 행전, 다대오 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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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경(Pseudepigrapha)

• 묵시문학적 외경: 에녹 1서, 에녹 2서, 에스라 4서, 에스라의 환상, 아브 라함 묵시서, 엘리야 묵시서, 다니엘 묵시서, 스바냐 묵시서, 바룩 2서

• 유언서 형태의 책들: 12족장의 유언서, 세족장(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유언서, 모세의 유언서, 솔로몬의 유언서, 아담의 유언서

• 유사역사서: 아리스테아스의 편지, 희년의 책, 이사야 순교와 승천, 아담 과 이브의 생애, 바룩 4서

• 철학적 문학적 책들: 마카비 3서, 마카비 4서, 아히칼서

(41)

• 초대교회 당시 동방교회는 66권의 정경을 소유했던 반면에 서방교회는 73권을 정경으로 받아 들이고 있었다. 서방교회는 제롬의 반대 저항에 도 불구하고 외경들을 구약성서의 일부로 간주했기 때문에 향후 천년이 지난후에도 계속되어 왔다.

• 외경이란 용어는 통상적으로 회당에서 더 이상 쓸 수 없는 사본중에

“숨겨진 것”을 지칭하거나 회당에서 “사용이 금지된 책”들과 관련 하여 사용되었다고 한다.8)

• 단어의 기원은 영지주의적 기독교 저자들이 “외경”이란 용어를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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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경

• 외경이란 단어는 이레나이우스가 자신들의 집단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인물이다. 오리게네스 역시 외경이란 용어를 다소 긍적적인 색채를 띠 기도 하였으나 4세기후 부터는 순수하게 부정하며 신구약 정경으로로 부터 단호하게 배제된 책들과 관련하여 사용하 였다.

(43)

• 무라토리 정경(Muratorische Fragment L.A.

Muratori; 1672-1750) 은 190년경에 이미 기독교인 들이 신약성경을 사용했던 흔적을 나타내주는 현 존하는 신약성경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1740년 출판되었다. 이들은 신약성경을 구약성경의 성취 로 보았다.

• 무라토리 정경은 1740년 이태리의 고고학자 무 라토리가 밀라노에 있는 암부로시우스 도서관에 서 발견하여 처음으로 공개하였기 때문에 그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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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토리 정경

• 무라토리 정경은 많은 부분들이 훼손되었지만 말시온의 정경과는 달리 마태복음과 마가복음도 편집이 되었음이 확실하다. 왜냐하면 누가복음 이 세 번째 복음서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마태복음과 마가복음도 편집 이 되어 있었는데 회손이 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크다.

• 무라토리의 정경속에는 요한복음과 사도행전 그리고 바울이 교회에 보 내는 9편의 서신과 개인에게 보내는 4편의 서신인 빌레몬서, 디도서, 디 모데전후서와 유다서, 요한의 두서신 요한계시록 베드로의 묵시록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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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대 광야의 사막 동굴과 고대 유적지에서 발견된 필사본.

• 가죽과 파피루스에 손으로 쓴 이 필사본의 발굴은 근대 고고학 역사에 서 가장 중요한 발견으로 꼽힌다. 이 사본을 복원한 결과, 학자들은 히브 리어 성서가 확립된 시기를 AD 70년 이전으로 앞당길 수 있었고, BC 4세 기부터 AD 135년까지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재구성할 수 있었으며, 초기 그리스도교와 유대인의 종교 전통이 어떤 관계를 갖고 있었는지 명확히 밝힐 수 있었다. 이 문서들은 유대 광야에 흩어져 있는 5개의 주요유적 인 키르바트쿰란·와디알무라바·나할헤베르(와디카브라)와 나할제엘 림(와디세이얄)·와디달리예·마사다에서 발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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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 주로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씌여짐

• 1947년 양치기 소년들이 사해의 북서쪽 기슭에 있는 키르바트쿰란의 동 굴에서 우연히 발견한 첫번째 필사본은 곧 '사해두루마리'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그후 특히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사해 근처에서 잇따라 발견된 필사본들도 역시 사해두루마리라고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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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쿰란 근처에 있는 11개의 동굴에서는 수많은 문서가 나왔는데, 이것들은 모두 BC 2세기 중엽부터 AD 68년까지 쿰란에서 번성했던 유대교 종파 인 에세네파의 문서들 가운데 일부였다 (→ 색인 : 쿰란 종파). 이 문서들 은 BC 3세기 중엽부터 AD 68년까지 만들어졌지만, BC 1세기와 AD 1세기 에 쓰여진 것이 대부분이다. 그중에서 가장 오래된 필사본이 성서의 일 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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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절기(서력기원)

• 그리스도가 탄생한 해를 기원원년으로 한다. 이에 따라 그리스도 탄생 전은 BC(before Christ)로, 탄생 후는 AD(anno Domini:주님의 해)로 표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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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력기원은 이탈리아 거주의 스키타이 출신 수도사 디오니시우스 엑시 구스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525년 교황 성 요한네스 1세의 요청으로 그가 부활절의 정확한 계산법을 산출하던 중에 부산물로 탄생했다. 당 시는 그리스도를 박해했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즉위 기원을 사용 하고 있었으므로 엑시구스는 "대박해자의 이름을 영속시키지 않고, 우 리 주 그리스도의 현현으로부터 햇수를 세기 위해" 서력기원을 시작했 다. 그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로마의 건국기원 753년으로 계산했는데 이 것은 8세기 영국의 성인 비드(Bede)에 의해 이의가 제기됐다. 그리스도 의 탄생은 그보다 4년 정도 앞선 것으로 추산된다. 서력기원은 그의 새 로운 부활절표가 널리 사용되면서 확산되었는데 유럽에선 11세기, 스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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