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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이 많아 슬픈 질문
어떻게 하면 혁신을 촉진할 것인가? 비단 과학기 술정책 부문에 몸담고 있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질문이다. 모두가 궁금해 하지만 어느 한 사람이 쉽게 답할 수 있는 질문은 아 니다. 더군다나 몇몇의 사건들을 바탕으로 설명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혁신이라고 가볍게 부르지 만, 하나의 개념으로 정의하기에도, 그리고 그것의 원인과 특징을 규명하기에도 너무나 이질적인 생각 과 사건들의 집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이 질문을 탐구하려다 보 면, 정보가 없어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많 은 정보들이 범람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가 되곤 한 다. 매년 많은 연구들과 서적들이 어떻게 하면 혁신 적인 사람이 될 수 있는지, 혁신적인 조직을 운영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정보가 오히려 문제를 복잡하게 할 수 있다면, 이를 보다 간결하고 핵심적으로 짚어줄 수 있는 프레임이 글 : 장필성 ([email protected])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 :
혁신 창출 환경에 대한 메타적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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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ce & Technology Policy ◀ 과학기술정책 | 2016년 5월호 (통권214호)
간절히 요청된다.
<Where do good ideas come from?(탁월한 아이 디어는 어디서 오는가?>의 저자 스티브 존슨은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혁신창출환경의 속성을 최대한 통합적으로 탐구하였다. 저자는 700년의 역사 동안 의 다양한 사례들을 통합적으로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연에서 생명이 발현되는 원초적 혁신이 이루 어진 환경의 특성을 반추함으로써 새로운 것이 탄생 하는 공간의 특성을 도출한다.
혁신과 창조성은 예술, 과학, 기술 등 부문에 따라 서 미묘하게 다른 특징을 가지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 책에서는 관련된 다양한 개념들을 포괄하기 위하 여 ‘아이디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저자는 다 양한 형태의 혁신과 창조성 사이의 7가지의 공통된 특성을 설명한다. 그리고 이들을 관통하는 함의는
‘아이디어를 보호하기보다 서로 연결하는 것이 더 좋다’ 라는 것이다. 압축을 거듭하니 다소 밋밋한 문 구로 느껴지지만,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은 신선한 내용이 많다. 분량의 제약으로 여기서는 그 중 일부 만을 소개한다.
액체적 네트워크 (liquid network)
두뇌에는 1천억 개의 뉴런이 있고, 1백조개의 뉴 런의 연결이 존재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뉴런들의 새로운 집합체의 생성과 관련이 있다. 아이디어는 하나의 개체가 아니며 하나의 무리에 가깝다. 어떻 게 하면 보다 창조적인 결합이 가능하도록 할 수 있 을까?
먼저 원시 지구에서 생명이 탄생하는 원초적 혁신 과정을 통해 생각해보자. 오늘날의 생명이 탄소를 기반으로 이루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4개의 원자가
전자를 가지는 탄소는, 다른 원자들과 연결되어 새 로운 복잡한 분자들을 형성하는 능력이 탁월하 다. 탄소는 엄청나게 많은 수의 분자결합 가능성을 쉼 없이 살핀 후 안정된 화학 반응을 찾아내어 최초 의 유기체를 탄생시켰다. 탄소와 마찬가지로 물이라 는 매개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물은 액체 상 태로 남아있는 온도범위가 다른 모든 물질보다 넓 다. 유동성과 용해성을 가지는 액체상태인 물을 매 개로 원소들은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서로 충돌하며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들어 내었다. 따라서 지구에서 초기에 혁신을 일으킨 엔 진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가능한 많은 수의 다른 원 소와 결합할 수 있으면서, 다른 원소들 사이에서 무 작위적인 충돌이 일어나도록 하는 환경이다.
한편 생물학적인 측면이 아닌, 문화적인 측면에서 도 액체적 네트워크가 중요했다. 초기 인류는 기체 와 같은 네트워크에 살았다. 수렵사회의 소규모 집 단은 넓게 흩어져 살았으며 집단 간의 접촉은 거의 없었다. 농업사회의 등장으로 수천, 수만 명으로 이 루어진 집단을 형성하였으며 그 집단 안에서 형성될 수 있는 연결의 수도 엄청나게 증가했다. 도시의 출 현으로 인해 아이디어의 총량이 증가하였지만 그 이 상의 변화도 있었다. 밀도가 낮은 혼란스러운 네트 워크에서 아이디어는 누군가의 머리에서 나타나더 라도 쉽게 휘발된다. 도시라는 액체적 네트워크는 혁신을 보다 쉽게 일어날 수 있게도 하였지만, 그 혁 신을 저장하는 필수적인 기능도 수행하였다.
오늘날 주된 혁신을 창출하는 연구자들을 살펴보 면 어떨까? 1990년 케빈 던바가 연구자들의 실제 연 구과정을 관찰하였는데, 재미있는 사실이 발견되었 다. 던바의 관찰에 따르면 대부분의 혁신적인 발견 이 일어났던 곳은 실험실이 아니라 회의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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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라는 집단적 상호작용은 의 외의 발견들을 실수로 일축해버 릴 가능성을 줄여주었다. 좋은 아 이디어를 만들어 내는 가장 생산 적인 수단은 사람들이 탁자에 둘 러앉아 나누는 대화였던 것이 다. 집단과의 대화는 개인적인 고 체상태를 액체적 네트워크로 바 꾸어준다.
액체적 네트워크 이슈의 함의 는 단순하다. 혁신이 필요한 조직 과 기관에서 고체와 같이 너무 경 직되지 않게도, 기체와 같이 너무 불안정하지 않게도 균형을 유지 해야 한다는 것이다. 크리스토퍼 랭턴이 언급한 너무 심한 질서도,
너무 심한 무정부 상태도 아닌 ‘혼돈의 가장자리 (edge of chaos)’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느린 예감 (slow hunch)
중대한 혁신으로 판명되는 대부분의 아이디어들 은 불완전한 예감의 상태를 긴 시간 거쳐 발현된다.
많은 발명가들, 과학자들, 기업가들, 예술가들은 자 신의 업적을 직관적 통찰인 것처럼 이야기 하곤 하 는데, 저자에 따르면 그 이유는 그렇게 말하는 것이 재미있어서이기도 하고, 느린 예감이 천천히 진화해 온 과정을 설명하기가 훨씬 더 어렵기 때문이다.
다윈 또한 자연선택설을 떠올린 기원을 맬서스의 인구론을 읽은 순간이라고 스스로 묘사한 바 있다.
하지만, 1970년대 하워드 그루라는 심리학자가 다윈 의 방대한 일지를 면밀히 연구한 결과, 다윈 이론의
핵심 요소는 맬서스의 이론을 접하기 훨씬 전에 이 미 노트에 기록되어 있었다. 다윈이 맬서스의 이론 을 접한 것은 1838년 9월 28일 이라고 적혀있었지 만 1837년부터 노트에는 모든 핵심 개념들이 자세하 게 기술되어 있었다. 다윈이 정확히 언제 그 아이디 어를 떠올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 아이디어는 어느 날 떠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의식 속으로 서서히 들어온 것이다.
느린 예감을 좋은 아이디어로 키워내기 위해서는 많은 단계에서 도전을 받는다. 우선 기억 속에 설익 은 예감을 보존해야한다. 대부분의 예감들은 좋은 아이디어로 다듬어지고 인정받기까지 기억 속에 오 래 남아있지 못한다. 저자가 제안하는 예감을 키워 내는 방법은 간단하다. 떠오르는 생각을 모두 기록 해두는 것이다.
다윈의 아이디어의 진화를 정확하게 추적할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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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ce & Technology Policy ◀ 과학기술정책 | 2016년 5월호 (통권214호)
는 이유는 다윈이 다른 자료에서 발췌한 글들, 즉흥 적으로 떠오른 새 아이디어, 의문을 가졌던 내용 등 을 일지에 철저히 기록해두었기 때문이다. 일지를 보면 다윈의 아이디어가 진화해온 과정을 볼 수 있 다. 다윈의 일지는 초기 단계의 예감을 배양할 수 있 는 공간이 되어주었다. 그는 자신의 일지를 계속 되 풀이 읽으며 새로운 의미를 찾아냈다. 그의 아이디 어는 현재의 생각과 과거에 일지를 기록한 내용의 이중주를 통해 등장했다.
느린 예감에 대한 내용은 좋은 아이디어를 창출해 야하는 연구자 개인에게나, 여기 저기 흩어진 작은 예감들을 잘 담아두고 좋은 아이디어로 채택해내야 하는 조직과 사회에게 큰 시사점을 주는 것으로 보 인다. 완성된 아이디어로서의 논문이나 특허와 같은 형태의 지식만이 성과로 인정되고 공유되는 환경에 서는 수많은 설익은 예감들과 경험들이 개인의 안에 서 맴돌다가 사회에서 증발되어 버릴 수 있다. 연구 자 개인 뿐 아니라 조직과 사회의 차원에서 불완전 한 아이디어들이 오랫동안 이어달리기를 지속할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풀이과정 없는 답안지
혁신을 창출하는 공간들의 특징들을 들여다보고 있다 보니, 최근 과기계의 한 이슈가 떠올랐다. 정부 는 우리나라의 혁신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총체적인 문제들을 개선하고자 R&D 혁신 방안을 작년부터 올해까지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폭넓은 영역을 다루고 있고, 상당히 오랫동안 지적되어 오던 문제 들을 다루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 현재의 문제점을 선언하고 현행의 방식이 아
닌 방법으로 선회하겠다는 계획이 과연 맞는 방향일 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계획에는 혁신 창출과정의 속성에 대한 탐구에 기반을 둔 근 거가 드러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의 풀이과정이 없는 답안지에 비유할 수 있을 까? 보통 문제가 제시되면, 그 문제의 답이 도출되 기 전까지 풀이과정을 전개해야한다. 그 문제와 답 이 가지는 논리적 연결고리를 보여주어야 한다. 혁 신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답안이라면, 어떤 환경에 서 혁신이 활발히 창출되는지에 대한 탐구와 그 결 과에 바탕을 두어야 할 듯 하지만, 언급할 필요성이 없는 것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문제의 풀이과정이 없는 답안은 대단히 직관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답으 로 인정받기가 어렵다. 정책에 대한 이성적인 토론 보다는 이해관계에 따른 논쟁으로 발전하기도 쉬워 진다. 대체로 선진국의 정책 사례를 제시하여 풀이 과정의 대안으로 삼고자 하지만, 과연 선진국이라고 통칭되는 서로 다른 국가들이 우리와 같은 맥락에서 같은 문제를 풀고 있는지는 담보할 수 없는 것이다.
혁신과 그 창출과정의 속성에 대한 우리 나름의 탐 구와 성찰이 더 많아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