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념 追念 의 공간, 제주4·3평화공원
방승환│「닮은 도시 다른 공간」 저자 ([email protected]) 2020 UrBAN ODYSSEY•4
제462호 2020 April
이날이 다가오면, 아무도 시키지 않지만 제주 사람들은 푸줏간에서 고기를 끊어와 제사상 을 차린다. 마을 안 여기저기서 솟아오르는 연기는 1년에 한 번 제주에서만 펼쳐지는 풍 경이다. 아무리 죽음이 개별적이라 해도 그날의 죽음만큼은 하나의 덩어리로 엉켜 있다.
제주가 이런 낯선 풍경을 갖게 된 사건은 1948년 4월 3일에 일어났다. 「제주4 · 3사건 진 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하 제주4 · 3특별법)은 이 사건을 “1947 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 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그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정의한다. 용어 의 정의를 언제나 명확하게 하는 법조차 설명할 수 없는 건 사건 발생의 원인이다.
제주평화재단(2016)에 의하면 7년 6개월간 제주도에서 발생한 사망자수는 2만 5천
~3만 명이다. 이들은 대부분 이념이 뭔지 좌우가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평범한 사람들 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이토록 많이 죽었지만 그 원인을 정의할 수 없기에 여전히 ‘제 주4 · 3사건’으로 부른다. 단선적일 수 있지만 1947년 삼일절 기념행사에서 일어난 무장 경찰의 총격사건과 이후 이어진 좌익진영의 총파업, 그리고 1948년 발생한 남로당 제주 도당 무장봉기와 그에 따른 우익인사 12명의 사망은 나와 다른 생각을 대하는 우리의 편 협한 자세가 원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후 벌어진 수많은 죽음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섬에서 일어난 상호 학살사건
사실 좌우의 대립과 그 다름을 대하는 우리의 편협한 자세로 인한 ‘상호 학살사건’은 해방 후 우리나라 곳곳에서 일어났다. 갈등의 상대는 동족 간, 양반 간, 신분 간, 종교 간 등으 로 다양했다. 박찬승(2010)은 한국전쟁 전후 마을단위로 벌어진 ‘상호 학살사건’의 과정 과 원인을 다룬 「마을로 간 한국전쟁」에서 “한국인들은 갈등을 현명하게 풀어나가는 데 미숙했으며, 그 결과가 그토록 엄청난 비극을 가져오지 않았을까”라고 진단했다. 이런 측 면에서 보면 최소한 제주4 · 3사건의 원인 중 가장 큰 좌우의 대립과 그 다름을 대하는 우 리의 편협한 자세는 특별하지 않다. 그럼 유독 제주에서만 엄청난 사망자가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섬’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그래서 바다를 통해 어디로든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만 이는 바다를 이용한 교통수단의 발달을 전제로 한다. 전제가 성립되지 않으면 바다는 열린 장벽이 된다. 그리고 섬은 고립된 땅이 된다. 제주4 · 3사건 당시 제주는 고립돼 있었
위령탑과 제주4·3평화기념관
다. 당시 제주도민들이 제주를 나갈 수 있는 방법은 한정적이었고 제주에서 발생한 사건 이 제주 밖으로 퍼지는 방법도 제한적이었다. 제주도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중산간 마 을을 초토화시키는 작전을 전개할 수 있었던 이유도 그 대상을 독 안에 든 쥐로 봤기 때문이다.
「제주4 · 3특별법」에 나온 또 하나의 날짜인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 해 제 및 전면 개방 선언’을 통해 4 · 3사건은 끝났다. 그 기간 동안 제주도는 사회 기반시 설뿐만 아니라 사람 자체가 파괴된 땅이 됐다. 사람의 죽음은 육신의 사라짐만을 의미 하지 않는다. 한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이 맺었던 관계 그리고 기억 모두가 사라진다. 기 억에서 사라지는 것이 영원한 죽음을 뜻한다면 겨우 살게 된 사람들은 죽은 자들이 자신 들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게 하려고 애쓰고 또 애쓴다. 그런데 제주에서는 그 애씀조차 드러내서는 안 되는 행위였다. 국가는 그 애씀을 연좌제, 「국가보안법」으로 처리했고 살 아남은 개인은 트라우마, 콤플렉스에 시달려야 했다. 이도 저도 엮이고 싶지 않은 남은 이 들이 선택할 수 있는 건 그 죽음을 타자화하는 일이었다.
추모의 방식을 넘겨받은 건축가들
4 · 3사건 희생자들의 가족과 피해자들은 죽은 자를 애도하고 기릴 수 있는 공동의 장소를 마련하고 싶었다. 그들에게 그 장소는 희생자들을 더 이상 숨어서 추모할 필요가 없음을 의미했다. 또한 4 · 3사건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사라져도 후대가 기억해 줄 거라는 여지였 다. 정부도 그 바람을 알았기에 1999년 6월 위령공원 조성을 위한 30억 원의 특별교부세 지원을 약속했다. 이듬해에는 「제주4 · 3특별법」을 공포하고 공원부지 매입을 시작했다.
2020 UrBAN ODYSSEY•4
제주4·3평화공원 현상설계안: 왼쪽부터 승효상, 조성룡, 희림건축, 공간건축 설계안
제462호 2020 April
까? 일반적으로 입지는 기본계획 수립 후 사업의 취지에 맞는, 최소한의 개연성이 있는 곳으로 결정한다. 4 · 3사건의 유적은 제주 곳곳에 있다. ‘4 · 3길을 걷다’라는 이름의 제주 4 · 3유적지도에 나온 유적만 42곳이다. 그럼에도 제주4 · 3평화공원 조성부지는 4 · 3사건 과 직접적으로 관련돼 있지 않다. 더군다나 기본계획 연구용역이 시작되기 전에 입지가 결정되고 매입이 시작됐다. 현재 우리는 이런 땅에서 4 · 3사건의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기 려야 하는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다.
2002년 3월 14일, 4 · 3중앙위원회가 공원조성 기본계획 1단계 사업을 확정한 뒤 9월에 는 제주4 · 3평화공원 조성을 위한 설계안이 현상설계를 통해 선정됐다. 당선자는 공간건 축. 제주4 · 3평화공원 현상설계는 제안자들에게 큰 도전이었다. 왜냐하면 사건의 원인이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건의 원인이 명확하지 않다는 건 설계자들이 제안 해야 하는 대상이 명확하지 않다는 얘기이고, 제안의 대상이 명확하지 않다는 건 제안의 방법이 불분명하다는 뜻이다. 4 · 3사건 희생자의 죽음을 애도하고 추모하는 것이 목적이 라면 공동묘지를 조성하면 되겠지만 이는 너무 쉬운 접근이다. 실제 ‘4 · 3평화공원 조성 기본계획’에서도 공동묘지 조성은 지양했다.
이런 상황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설계자들의 해석이다. 해석은 설계자가 어떤 철 학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승효상(유홍준, 임옥상 공동작)은 “추모공원 은 과거의 비극을 우리의 마음속에 재현하고 새로운 가치를 우리 속에 심는 일이 되 어야 한다”라고 자답했다. 그는 “4 · 3민중항쟁은 제주의 온 산하를 붉게 적신 땅의 기 록이기 때문에 기념비적 건축을 부정했다.” 그의 제안은 ‘땅에 쓴 기록, 랜드스크립트 (landscript)’였다.
2등에는 조성룡(서안조경설계 공동작)과 희림건축(우대기술단 외 3사 공동작)의 안이 공동 선정됐다. 조성룡은 “제주4 · 3평화공원은 서술이 중단된 아픈 사건을 다시 역사 앞 에 드러내고 담담히 기록해나가는 행위다”라고 정의했다. 그는 “마치 흔적만 남은 유적지 의 폐허가 대지와 긴밀히 소통하면서 감동을 전달하듯이 차분히 땅 위에 밀착하여 의미를 새겨 넣는 태도를 취했다.”
희림건축의 계획안에서 확실하게 읽히는 건 시작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시퀀스 (sequence)’다. 초대마당에서 시작되는 이 시퀀스는 ‘질곡의 길-위령제단-4 · 3사료관’을 거쳐 ‘추모의 정원-사색의 길-이해뜰-오름광장-인권의 장-4 · 3교육문화센터’에서 끝 난다. 이 시퀀스만 따르면 방문자는 제주4 · 3평화공원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제대 로 수신할 수 있을 것 같다.
세 개의 축과 뒤집어진 산방산
마지막으로 당선작을 살펴보자. 공간건축은 ‘세 개의 축’을 강조했다. 대상지를 관통하는 상징축, 문화축, 미래축이 “인위적으로 나뉜 두 대지를 과거, 위령, 추념 등을 나타내는 상부 대지와 미래, 평화, 상생 등을 나타내는 하부 대지로 개념화”하도록 했다(산업도서 출판공사 2002).
공간건축은 무언가를 기념하는 공간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방식을 택했다. 그건 공간의 조성 주체가 방문자에게 기념을 위해서는 ‘이것을 보라!’라고 가리키는 방식이다. 그 가리킴은 ‘축’이라는 곧게 뻗은 선으로 나타나고 기념의 대상은 축이 끝나는 곳에 놓인다.
바로크 시대에 만들어진 기념비적인 도시에서 절대 권력을 드러내는 전형적인 방법이다.
축을 이루는 장소의 이름만 봐도 공간건축이 방문자들에게 기대하는 행위는 명확하다.
상징축을 예로 들면, ‘진입광장’으로 들어와 서쪽으로 가면 ‘추념’과 ‘위령’이고 동쪽으로 가면 ‘화해’와 ‘상생’이다. 축의 서쪽 끝에 있는 위령제단은 영원성을 상징하는 오석의 아 치탑, 4 · 3의 정신성을 드러내는 작은 돌, 조국 · 상생 · 평화의 공간을 의미하는 태극, 생 명력을 담은 바닥의 그림자 아치(arch) 그리고 추모 · 승화의 공간인 제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징과 의미하고자 하는 것들을 하나로 모으면 ‘영원성’, ‘4 · 3의 정신성’, ‘조국 · 상 생 · 평화의 공간’, ‘생명력’, ‘추모 · 승화의 공간’이 된다. 다 좋은 말인데, 그 좋은 말들을 방문자가 느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전달은 안 되더라도 최소한 어떻게 해야 그 좋 은 말들을 방문자가 공감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는 내게 곧게 뻗은 상징축 이 이렇게 말했다.
“그냥 그렇다면 그렇게 받아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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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사건 당시 억울하게 죽어간 변병생 모녀를 모티브로 만든 모녀상 비설
제462호 2020 April
제주4 · 3평화공원 한쪽에는 제주4 · 3평화기념관이 있다. 2008년 완료된 2단계 사업의 핵심 시설이다. 기념관은 원뿔이 뒤집어진 형태로 그 자체로 기념비이다. 설계를 맡은 공 간건축은 기념관의 형태에 대해 “한라산과 산방산에 얽힌 제주의 근원 설화를 형상화했 다”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설문대할망이 한라산을 뚝 잘라 던져놓았다는 산방산을 거꾸로 세워놓은 느낌으로 그 중간에 솔리드와 보이드, 제주적인 것과 비제주적인 것 등 이 등장한다. 기념관은 상층부와 저층부가 명확히 나뉜다. 설계자는 외장재를 선택할 때 도 이 건물이 기념관임을 드러내고자 했다. 상층부에 쓰인 산화동판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색되는데 이를 통해 4 · 3사건의 역사성을 표현하고자 했고, 저층부에 쓰인 송이벽돌은 제주라는 땅과의 관계성을 드러낸다고 한다.
기념관은 제주4 · 3사건이 60주년 되던 2008년에 개관했다. 그리고 3년 뒤 3단계 조 성사업이 확정됐다. 그런데 3단계 사업은 처음 계획보다 축소된 상태로 결정됐다. 이로 인해 설계자가 기념의 방식으로 선택한 ‘축’은 반쪽만 완성된 상태로 남았다. 처음 의도
로 보면 축은 ‘추념’과 ‘위령’은 담았지만 ‘화해’와
‘상생’은 담지 못했다. 상징축은 반쪽만 조성된 상 태에서 잘렸고 문화축은 시작점만 놓였으며, 미래 축은 시작도 못한 채 사라졌다.
물론 모든 사업이 계획대로 진행될 수는 없다. 문 제는 3단계 사업 때 지어진 평화교육센터(현 어린 이체험관)가 기념관과 마주 봄으로써 제주4 · 3평 화공원의 공간질서가 변했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조형물이 이루는 동서축과 시설물이 이루는 남북축 이 진입광장에서 ㅗ자로 교차하는데, 남북축이 동
3단계 조성사업으로 추가된 평화교육센터
서축에 비해 훨씬 더 강해졌다. 이로 인해 방문객들은 평화공원 전체를 둘러보지도 않고 기념관과 평화교육센터만 들른 뒤 이곳을 떠난다.
제주4·3평화공원에서 듣는 까마귀 울음소리
제주4 · 3평화공원을 둘러보면서 방문자가 자신만의 시 각으로 4 · 3사건을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경로는 무엇 일까 생각해봤다. 설계자가 일방적으로 던지는 축과 그 끝에 놓인 기념의 대상이 아니라 방문자 각자가 해석하 는 4 · 3사건. 나는 아직도 4 · 3사건의 원인을 명확히 규 명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경로는 지극히 감각적이어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평화공원 곳곳에 놓인 조형 물들은 지나치게 설명적이고 그 배치는 다른 어떤 해석 도 용납하지 않는다. 함께 이곳을 방문한 KHR과 제주 건축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 공간을 설명하기보다는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 느낌이 4 · 3사건의 실체에까지 닿는다면 더 바랄 나위 없을 테고.
대규모 행사를 위해 비워진 위령광장에 올랐을 때 가장 먼저 3월 제주의 태양이 느껴졌 다. 너무 따스했던 햇살에 눈을 감았을 때 아직은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고 그다음 까마귀 소리가 들렸다. 까마귀 소리는 제주4 · 3평화공원에 처음 왔을 때부터 들렸을 테지만 내 가 듣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다. 그 순간 한 번도 본 적 없는, 본 적 없을 ‘순이삼촌’이 떠올 랐다. 현기영의 소설에 등장하는 순이삼촌은 삼촌이지만 여성이다. 그녀는 4 · 3사건의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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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평화공원 전경: 남북축과 동서축이 ㅗ자로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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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녀를 살렸다. 그녀의 의식이 서서히 돌아왔을 때 아마도 첫 번째로 돌아온 감각은, 청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 들리기 시작한 소리가 까마귀 울음이 아 니었을까. 그다음 공기의 살랑거림을 느낀 순이삼촌 은 감은 눈으로 스며들어오는 빛을 느꼈을 것이다. 마 치 위령광장에 서 있는 나처럼. 모든 감각이 돌아와 자신이 살아있음을 깨달았을 때 눈을 뜬 그녀가 본 장 면은 엉켜 있는 시체들. 집단화된 죽음. 평화공원 곳 곳에서 들리는 까마귀 소리가 내게 아주 작게나마 4 · 3사건을 느끼게 해주었다.
‘기념’이 아닌 ‘추념’의 대상, 제주4·3사건
제주4 · 3평화공원과 기념관에서 처음 접했던 단어가 있다. 추념(追念). 사전은 ‘추념’을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함, 죽은 사람을 생각함’이라고 정의한다. 반면 기념(記念)의 정 의는 ‘어떤 뜻깊은 일이나 훌륭한 인물 등을 오래도록 잊지 아니하고 마음에 간직함’이다.
기념이라는 단어에는 그 대상에 대한 평가, 원인을 바라보는 가치판단이 이미 포함돼 있 다. 반면 추념은 -최소한 첫 번째 의미에서 만큼은- 그냥 ‘행위’다. 4 · 3사건을 대하는 우 리에게 일차적으로 필요한 건 ‘기념’ 이전에 ‘추념’이다. 아직은 잘 모르는, 아마도 앞으로 도 잘 모를 그 사건을 그냥 ‘돌이켜 생각하는 행위’, 추념.
우리가 4 · 3사건을 추념해야 하는 이유는 희생자 가족들, 피해자들이 모두 그 사건이 일어난 그 시간에 여전히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순이삼촌의 죽음을 접한 소설 속 주인공 이 한 달 보름 전이 아닌 30년 전 그날, 그 밭에서 순이삼촌이 이미 죽었다고 착각하듯이.
제주4 · 3사건을 잊지 않기 위해 제삿날마다 모여 순이삼촌의 이야기를 나누는 고향 어른 들처럼 제주4 · 3사건은 계속해서 우리 사회가 돌이켜 생각해야 하는, 아직은 정의할 수 없는 그냥 현재의 사건이다.
위령광장과 위패봉안실
박찬승. 2010. 마을로 간 한국전쟁. 파주: 돌베개.
산업도서출판공사. 2002. 설계경기 제37권. 서울: 산업도서출판공사.
제주4.3 평화재단. 2016. 제주4.3 바로알기. 제주: 제주4.3평화재단.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