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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영상 매체에서 초상의 재현에 대한 고찰 - 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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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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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일_2019.10.10 심사기간_2019.11.01-14 게재확정일_2019.12.03

21세기 영상 매체에서 초상의 재현에 대한 고찰 - <지단 : 21세기의 초상>을 중심으로

A Consideration about Representation of Portrait in 21st Century's Moving Image - focused on the film, <Zidane : A 21st Century Portrait> -

전준혁_서경대학교 영화영상학과

Jeon, Junehyuck_Department of Film and Digital Media, Seokyeong University

차례 1. 서론

2. <지단>에서 드러나는 분열된 시각 주체에 대한 분석 2.1. 실제의 사건을 둘러싼 시각주체의 분열: 축구경기와 영화 2.2. 지가 베르토프의 ‘키노-아이’를 통한 지단의 시각 체계 분석

3. 불연속적 시공간과 파편화된 신체-이미지

4. 스펙타클로서의 초상

5. 결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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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영상 매체에서 초상의 재현에 대한 고찰 - <지단 : 21세기의 초상>을 중심으로

A Consideration about Representation of Portrait in 21st Century's Moving Image - focused on the film, <Zidane : A 21st Century Portrait> -

전준혁_서경대학교 영화영상학과

Jeon, Junehyuck_Department of Film and Digital Media, Seokyeong University

요약 본 논문은 실존을 표현하는 이미지 형식인 초상이 현대-이미지 사회에서 어떻게 재현되는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 되었다. 2000년 대 가장 많이 소비된 이미지이자 중층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축구 스타인 지네딘 지단 은 미디어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조명된 초상의 예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 <지단: 21세기의 초상>은 표 상, 이미지, 시선, 권력에 대한 다채로운 서사를 보여준다. 지단의 움직이는 신체를 집요하게 촬영하는 카메라는 축구 경기의 서사를 무시한 채 한 인물의 물리적 표면에 집착한다. 하지만 이러한 영화적 형식은 이미 사건을 경험한 관객과의 만남을 통해 표면 너머에 있는 지단의 정체성을 드러내어주는 통로로 확장된 역할을 획득한다.

본 연구자는 영화 <지단>의 형식적인 측면과 영화가 드러내어주는 표면 너머에 있는 의미를 들여다보기 위해 이미지와 시선에 대해 고찰한 영화철학자인 지가 베르토프와 질 들뢰즈의 이론을 접목시켰다. 지가 베르토프는 카메라-시각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에 대해 풍부한 상상력과 의지로 고찰한 영화인이자 철학자이다. 그는 삶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비인간적 힘으로 영화 이미지를 이용하고자 했다. 질 들뢰즈는 영화의 이미지가 존재의 단순한 표상, 혹은 그림자로서 읽히는 것을 거부하고 이미지의 존재론을 부각시킨 철학자이다. 그는 운동-이미 지, 시간-이미지라는 개념으로 이미지가 스스로를 구성하는 자동적 원리를 간파하려고 했고 이를 통해 현대 사 회의 본질을 읽어내려 했다. 공공연하게 드러난 한 인물의 초상은 가상의 시각적 네트워크가 구축해 놓은 거대 한 스펙터클 안에서 인간 존재의 실존 그 자체가 된다. 영화 <지단>은 분열된 시각 주체와 관객, 불연속적인 시 공간과 이미지의 세계, 파편화된 신체이미지와 초상이라는 구도 속에서 한 시대의 영웅의 이미지가 현대-이미 지 사회에서 소비되는 방식을 폭로한다.

This study was initiated in the question of how the portrait, the image form expressing the human existence, is reproduced in the modern-image society. Zinedine Zidane, the most consumed image of the 2000s and a football star with a various layers of identity, is an example that has been illuminated in various ways by the media. Among them, <Zidane: A 21st Century Portrait> presents a colorful narrative of representation, image, gaze and power. The film camera, which persistently captures Zidane’s moving body, ignores the narrative of the soccer match and sticks to the physical surface of the subject. However, this cinematic form takes on an extended role as a conduit to reveal Zidane’s identity beyond its surface through the very existence of audiences who have already experienced the event. I incorporate the theories of the film philosopher Dziga Vertov and Gilles Deleuze, who considered image and gaze to take a close look at the formal aspect of the film and the meaning beyond the surface of it. Dziga Vertov was a filmmaker and philosopher who had looked at the possibilities of camera-visual perception with an abundant imagination and will. He wanted to use the image of cinema as a post-human force for the purpose of revealing life as it is. Gilles Deleuze was a philosopher who refused to let the cinematic image be read as a simple representation of reality or shadow of its existence but highlighted the existence of image. He tried to see the principle of images that automatically forming itself through concept: 'l'image-movement', 'l'image-temps', and also tried to read the essence of modern society through the concept. A portrait of a figure that has been publicly exposed becomes the existence of human beings within a giant spectacle built by a virtual visual network. The movie, <Zidane> discloses how the image of a hero of an era is consumed in a modern-image society by drawing up a structure that comprised of fragmented visual subject and viewer, discontinuous space time and imagery world, and fragmented body image and a portrait.

중심어

지단 다큐멘터리 디아스포라 지가 베르토프 들뢰즈 초상

ABSTRACT Keyword

Zidane Documentary Diaspora Dziga Vertov Deleuze Portrait

본 연구는 2019서경대학교 교내학술연구비 지원과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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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현대 영화연구에서 시각과 이미지와 관련한 사유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이론가들이 있다. 지가 베르토프는 1920년대 ‘키노-아이’라는 개념을 제창하면서 자신의 실천적 영화 운동의 기본으 로 삼았다. ‘키노-아이’는 기본적으로 불완전한 인간의 시지각 능력을 상회하는 영화카메라의 탁월한 능력을 바탕에 두고 있다. 영화적 지각이 인간적 조건 ‘바깥’에 있는 물질 자체에 내재 되어 있다고 사유함으로써 그의 유물론적이고 기계론적인 세계관을 반영한다. 그에게 있어서

‘올바른 영화’는 스스로 지각하는 물질 자체이며 ‘영화인’은 그러한 초월적 능력을 바탕으로 세계를 보고 구성하고 드러내는 혁명적 노동자인 것이다. 그의 물질적 우주로서의 영화에 대한 사고방식은 앙리 베르그손이 바라보는 이미지에 대한 독특한 사유와 공통점을 지닌다. 베르그 손에게 이미지는 주관과 객관의 공존, “사물과 표상의 중간 어딘가에 있는” 물질적 대상이다.1) 그러므로 이미지는 전통적인 인식론에서 주장해왔던 것처럼 그림자나 복사본 따위가 아닌, 주관적인 내면의 의식 외부에 선재하는 것으로서 주어진다. 질 들뢰즈는 이 개념을 조금 더 확장한다. 들뢰즈는 베르그손의 운동과 이미지에 대한 사유(운동은 기계적으로 분절될 수 없 는 지속이다. 이미지는 물질이다.)에서 착안하여 운동-이미지라는 개념을 만들어낸다. 그는 이러한 운동-이미지들이 구성하는 전체tout가 영화이고 여기에 기입되지 않은 모든 가능성이 담겨있는 “물결”을 내재성의 평면이라고 명명한다.

“이미지는 이 평면 위에서 즉자적으로 존재한다. 물질은 이미지 뒤에 숨어있는 어떤 것이 아니 다. 반대로 물질은 이미지와 운동의 절대적 동일성이다... 운동-이미지와 흐름-물질은 엄밀하 게 동일한 것이다.”2)

들뢰즈는 세계를 구성하는 물질로서의 영화를 제안한다. 존재와 삶은 여기의 현실에도 있고 저기의 표상에도 있다. 지가 베르토프, 질 들뢰즈는 각각 1920년대, 1980년대에 시각과 이미 지에 대한 전복적인 사유를 내놓았다. 폭발적인 이미지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들의 사유는 유의미한 지점을 선사한다.

현대사회는 부단히 떠다니는 이미지들로 구축된 사회이다. 인터넷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과 실생활을 점유하는 사진/영상이미지의 폭발적인 증가는 21세기를 특징짓는 두 개의 중심적인 현상으로 규정될 수 있다. 심지어 이제 사진/영상이미지는, 그것이 전달하는 진실성과 그것이 표현하는 심미적, 환상적 영역이 서로 복잡하게 뒤얽혀있게 되었다. 현실을 그대로 재현한 투명한 이미지라는 사진의 위상은 최근에 와서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는데, 포토샵 등의 컴퓨터 프로그램을 활용해 손쉽게 조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진작가나 게시자의 의도에 따라 현실 의 전체 맥락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3) 뿐만 아니라 최근 ‘딥 페이크’

기술이 촉발시킨 논란에서 볼 수 있듯이 누구나 손쉽게 영상 합성 기술에 접근할 수 있는 세상 이 되었다.4) 더 이상 사진이 재현한 현실에 대한 신뢰가 유효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사진은 그림처럼 변한다. 반면에 현대사회는 ‘보는 법’을 사진과 영상에서 배우기도 한다.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우리의 눈을 사진의 눈과 구별할 수 없게 되는 지점이 있고 소셜미디어는 그 지점 을 확대한다. 이를테면 현대사회에서는 들뢰즈의 시뮬라크르=존재, 베르그손의 물질=이미지 의 공식이 일상적인 범주에서 대중들에 의해 실천되고 있는 것이다. 본 연구자는 이러한 상황 하에서 한 사람의 대표적인 이미지인 초상portrait의 생산은 어떤 맥락에서 읽힐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특히 부단히 움직이는 이미지인 영상매체에서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다양한 존재론적 위상을 가지는 지단이라는 초상이 이미지 위에 드러나는 근본적 인 작동원리를 탐구하고자 한다. 이 연구의 목적은 영상이미지의 매체적 특성이 한 시대를 대표하는 초상의 이미지를 어떻게 구축하는지, 그리고 그 사회와 어떠한 상호작용을 하는지 밝히는 것이 목적이다. 따라서 사진과 회화 등 고전적 매체에서 나타나는 초상의 특징과 의의

1) 이지영, 「들뢰즈의 『시네마』에 나타난 영화 이미지 존재론」, 철학사상 22, 2006, p255 2) 질 들뢰즈, 유진상 역, 『시네마1 운동-이미지』, 2002, 시각과언어, pp116-117

3) 이에 관해서는 수전 손택의 『사진에 대하여』, 『타인의 고통』 등 사진에 관한 저작에서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다.

4) CNN business, ‘When seeing is no longer believing’,

https://edition.cnn.com/interactive/2019/01/business/pentagons-race-against-deepfakes/ (2019.09.02.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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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대해서는 본 연구에서 생략하도록 할 것이다.5) 또한, 하나의 예술작품으로서 <지단>을 평가하고 비평하기보다는 현대 ‘이미지’ 사회의 흥미로운 참조로서, 혹은 범례로서 <지단>을 상정하고 이 작품을 통해 읽어낼 수 있는 이미지의 자화상을 들여다볼 것이다. 그럼으로써 시선이 새롭게 가지게 되는 현대적 권력과 신체의 이미지가 포착되고 소비되는 관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연구자는 먼저 <지단>에서 드러나는 카메라 주체의 문제, 파편화된 신체와 운동의 문제를 영화이미지에 대해 고찰한 철학자들과 이론가들의 사유를 통해 분석하고 검토할 것이다.

2. <지단>에서 드러나는 분열된 시각 주체에 대한 분석 2.1. 실제의 사건을 둘러싼 시각주체의 분열 : 축구경기와 영화

<지단>을 공동 제작한 더글러스 고든(Douglas Gordon)과 필리페 파레노(Philippe Parreno) 는 1993년의 만남을 출발점으로 기억한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열린 전시회에 함께 참여하 고 있었다. 축구팬이었던 그들은 남는 시간동안 근처 축구연습장에서 공을 가지고 놀며 아이디 어를 떠올렸다. “만약 다양한 인물이 나오는 이야기 속에서 한 명의 캐릭터만 줄곧 쫓아다니는 영화를 만든다면?”6) 관객들은 그 영화의 이야기는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인간 에 대한 영화적 초상(cinematographic portrait)은 세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스코틀랜드 프로 축구팀 셀틱의 광팬인 더글라스 고든은 어렸을 적 축구경기를 중계하는 TV 수상기 앞에 앉아 자신이 좋아하던 영웅의 모습이 나올 때를 두근거리며 기다렸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 기억은

<지단>의 초반에 등장하는 지네딘 지단의 인터뷰에서 발췌한 자막에서 관객과 공유된다. 위 의 아이디어와 고든의 개인적 기억의 만남은 독특한 특성을 가진 기획을 탄생시켰다. 2005년 4월 23일 고든과 파레노가 이끄는 150여명의 스텝들과 17대의 카메라는 레알 마드리드의 홈구장인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열린 레알 마드리드와 비야레알의 경기를 시작부터 끝까 지 촬영했다. 축구경기의 현장이기도 했던 이 촬영장에서 나사에서 빌려온 천체관측용 슈퍼줌 렌즈를 장착한 카메라 한대를 포함한 17대의 카메라-눈은 오로지 지단만을 쫓는다. 공을 중심 으로 펼쳐지는 일반적인 축구경기의 서사는 여기에서 완전히 배제된다. <지단>의 관객은, 레알 마드리드의 경기를 지켜보았던 관중들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관중의 눈은 경기에 완전히 몰입해있거나 그렇지 않은 한 명의 선수를, 그의 신체를, 그의 움직임만을 쫓을 수 있을 뿐이고 경기시간과 완전히 같은 93분의 러닝타임 동안 스크린 위의 시간이 축적 하는 순수한 이미지들의 결합만을 경험할 수 있을 뿐이다. 관객은 대부분의 시간 동안 어딘가 를 응시하는 지단을 본다.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한 사이즈로 경험하는 그의 얼굴은 무엇을 표현하는가. 파레노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일에 완전히 몰두한 사람의 초상을 시간 속에서 그려 내고 싶었다고 밝혔다. 18세기 프랑스 철학자인 드니 디드로는, 포즈를 취하고 있는 초상화와 우연히 포착된, 완전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심취해 있는, 보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대상과의 차이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그에 따르면, 오직 후자만이 진실이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지단은 경기에 몰두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언급을 하기도 한다. 그는 경기장에 운집 한 수만 명의 직접적인 눈으로 둘러싸여있고, 중계를 위해 그 경기가 촬영되어 전 세계에 라이 브로 송출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거기에 더해 오직 자신만을 쫓는, 인간의 시지각 능력을 월등하게 초월한, 지워질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17대의 기계들의 눈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관객으로서 우리가 ‘보는 것’은 디드로가 진실이라고 표명한 순수한 무지각적 대상인가? 아니 면 미디어와 소셜미디어에 매일 자신이 노출되는 것을 보고 있는 (인식하고 있는, 포즈를 취하 는) 현대적 초상의 세밀화인가? 이 질문에 답변하기에 앞서 <지단>에서 작동하고 있는 시각 주체의 특성에 대해서 먼저 분석할 필요가 있다.

5) 다만, 고전매체 속 초상에 대해서는, 회화에서의 초상에 대해 기존의 양식사 중심의 비평글에서 벗어나 작가중심의 독특한 사유를 전개한 존 버거의 글을 모은 톰 오버턴 저, 김현우 역, 『초상들: 존 버거의 예술가론』, 2019, 열화당과 보먼트 뉴홀 저, 정진국 역, 『사진의 역사』, 2003, 열화당을 참고.

6) Cyril Neyrat, ‘ZIDANE, A 21ST CENTURY PORTRAIT’, http://chimurengachronic.co.za/zidane-a-21st-century-portrait/

(2019.09.04.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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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지단>에서 카메라는 지네딘 지단의 움직이는 신체를 다각도로 제시한다. 여기서 카메 라에 포착된 강렬한 시각적 유형은, 그 크기의 범위에서, 롱쇼트에서 익스트림클로즈업까지 매우 다양하다. 그것은 사각형의 축구장 필드 밖에 있는 관중의 눈, 그리고 텔레비전 앞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시청자의 눈을 압도하는, 불가능한 영역에서 작동하며 실제 축구경기를 ‘보여 주는’ 중계카메라 고유의 역할을 정면으로 배반하는 방식으로 제시되는 이미지의 다발이다.

<지단>의 관객이 실제 보게 되는 것은 축구경기의 주체이자 대상이 아닌 (공을 중심으로 22명의 남성들이 뛰어다니면서 만들어내는 집합적인 스펙타클이 아닌), 영화의 주체이자 대 상이다. 그리고 경기시간과 동일하게 흘러가도록 설정되어있는 시간의 흐름과 사각형의 프레 임에 의해 잘려진, 그럼으로써 전체tout에서 고립된 것처럼 제시되는 운동하는 신체와 함께 축적되는 이미지의 접합과 간극이다. 그런데 실제 일어났던 일로서 2005년 4월 23일의 ‘그’

축구경기는, 보여지는 대상으로서 보는 주체와 복잡하게 설정된 관계 체계를 가지게 된다.

지단의 운동 중인 신체를 둘러싼 시선의 체계는 다음과 같다.

(체계 1) 경기장 외부의 경계-터치라인 바깥에 (영화감독들에 의해) 배치된 17대의 카메라-시선 (체계 2) 경기장 외부-경계 바깥의 관중석에서 경기에 집중하는 무수한 관중들의 시선 (체계 3) 경기장 외부에 중계를 위해 설치된 중계카메라의 시선

(체계 4) 영화-경기의 시공간적 실재로부터 떨어져 나온, 재생되는 영화 <지단>을 구경하는 관객들의 시선

위의 체계에서 (체계 1)과 (체계 4)는 더글라스 고든과 필리페 파레노가 해당 경기를 둘러싼 시선들의 체계에 개입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생겨난 시선들이다. (체계 2)와 (체계 3)은 축 구경기의 목적에 부합하는, 중계카메라의 눈과 관중들의 눈이다. 한 쪽은 축구경기를 기록하는 카메라-눈과 축구경기의 서사를 즐기는 관중-눈이며 다른 한 쪽은 영화를 구성하는 카메라- 눈과 축구경기의 서사에서 떨어져 나와 지단의 신체를 목격하는 관객-눈이다. 두 체계의 차이 는 축구경기-스펙터클을 해체하고 전복시킴으로써 영화의 구성, 그리고 관객의 목격이 가리 키는 의미를 강조하게 된다.

2.2. 지가 베르토프의 ‘키노-아이’를 통한 지단의 시각 체계 분석

지가 베르토프는 1922년 6월 5일부터 1925년까지 촬영하고 구성한 <키노 프라우다>라는 영화를 통해 자신이 체계화한 ‘키노-아이’의 개념을 정초한다. 1922년 작성한 그의 선언서를 보면 영화의 길은 “기계의 시학을 통해 서투른 시민에서 완벽하게 전기적인 인간으로 인도”하 는 것이고, “공간 안에서 사물의 움직임을 창조하는 예술”이어야만 한다.7) 베르토프는 카메라 의 눈을 인간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인간 지각의 불완전함을 보완해줄 수 있는 새로운 시대 의 혁명적 역능을 지닌 것으로 파악했다. 따라서 영화적 지각은 인간의 의식과 감각이 아닌, 물질 내에 이미 존재하는 것으로서 카메라를 통해서만 “사물의 운동과 리듬을 찾아내 있는 그대로 재구성해낼 수 있고, 현실의 조각들을 효과적으로 조직해 일상의 배후에 숨어있는 진실 들을 보여줄 수 있다.”8) 베르토프는 ‘키노-아이’라는 개념을 심화시키며 카메라와 관련해 세 가지 중요한 특징(혹은 능력)을 발견한다. 이 각각의 항목을 <지단>의 시각 체계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징들을 통해 설명해보려고 한다.

첫째로, 키노-아이는 ‘시야의 확장 가능성’을 내포한다.9) 관중의 신체(체계 2)에서 떨어져 나와 유영하는 시선으로서 카메라-눈(체계 1)의 ‘응시’는 영화 관객의 눈(체계 4)에 이식된, 다시 말해 카메라의 기계적인 관점을 인간의 눈에 이식한 일종의 비-신체적 신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지단>에서의 이 응시(카메라의 시점)는 그 관점의 주체를 특정할 수 없다는

7) 지가 베르토프, 김영란 역, 『키노 아이』, 2006, 이매진, pp62-67 8) 김호영, 「물질적 우주로서의 영화」, 외국문학연구 (46), 2012, p254 9) 위의 글,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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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에서, 시각 주체의 좌표를 파악할 수 없다는 데에서 비-신체적 신체를 인식할 수 없는 것으 로,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으로 만든다. 파편화된 신체-움직임을 따라다니는 카메라-눈은 시 선의 편재성을, 그 카메라의 시점을 공유하는 관객의 시선은 편재된 응시의 불가능한 출현을 암시한다. 다시 말해 몽타주를 통해 실시간을 가상적으로 구성하는 일련의 이미지 다발이 제공 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일반적인 중계 장면과 달리 현실 속에서는 불가능한 시점을 충실 하게 현실 속에서 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확장된 비-신체적 경험을 감각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순수 영화적 경험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영화-기계의 눈은 ‘시선의 자율성’을 얻는다. 즉, “모든 곳에 스며들어, 시점을 증식시키 고, 공간의 모든 점을 모두 시점화하는 카메라의 시선은 무한한 자유의 가능성을 가진다.10) 한정된 공간과 정해진 규칙 속에서 무한대에 가까운 경기의 양태와 움직임의 형태를 만들어내 는 축구경기의 특징은 영화 <지단>이 설정해놓은 한계 속에서 그 우연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보통 우리는 세계 내에서 현실화된 사건을 차후에 복기하면서 그것이 필연적인 모습으로, 그렇 게 드러났어야 하는 이유들을 덧붙이는, 결정론적인 태도를 취하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경기가 그렇게 끝났을 필연적인 경로를 표시해주는 특정한 몇몇 단계들(결정적인 패스, 선수교체, 골 등)에 주목하는 대신, 다시 말해서 93분 동안 22명의 선수들과 1개의 공이 만들어내는 필연적인 움직임을 묘사하는 대신, 17개의 특정할 수 없는 카메라의 눈을 사용하 여 오로지 지단의 표정과 움직임을 무작위로 포착해서 드러내어 준다. 특기할 점은 영화의 흐름에 따라 템포가 변하는 편집의 속도 때문에 관객은 해당 컷이 어떤 위치에서 찍혔는지 판단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경기장의 형태는 기본적으로 원형이다. 마치 벤담의 ‘판옵티콘’의 뒤집어진 형태처럼 그를 원형으로 둘러싼 무수한 눈이 동시에 감시하는 모양인 것이다.11) 우리에게 익숙한 축구경기의 중계는 기본적으로 한 쪽 각도에서만 촬영한다. 그래서 TV로 경기를 보는 시청자는 왼쪽 또는 오른쪽으로 공격하는 방향성을 인지하게 된다. 만약 축구경기 의 중계카메라가 반대쪽에도 있어서 경기 중간에 반대쪽 컷으로 전환하게 되면 오른쪽으로 뛰어가던 선수가 갑자기 왼쪽으로 뛰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혼란이 올 수 있다. 그러나 <지단>

은 축구경기 중계의 기본적인 룰을 뒤집어서, 다시 말해 원형의 경기장에 17대의 카메라를 둘러서 배치함으로써 지단을 둘러싼 모든 방향성을 없애버린다. 그는 왼쪽으로 뛸 수도 있고 동시에 오른쪽으로 뛸 수도 있는 것이다. 동시에 극단적인 망원렌즈의 사용은 공간 감각을 왜곡한다. 지단의 눈이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익스트림 클로즈업, 습관적으로 축구화를 잔디에 문지르는 두 발의 클로즈업. 먼 곳에서 포착하는 가까운 모습들. “중심은 모든 곳에 있고 원주 는 어디에도 없는 구체”처럼 좌표를 상실한 무수한 점들에서 비롯되는 각각의 시점이 운동하 는 지단의 신체를 잘라내고 가로지르고 포획한다.12) 이렇게 <지단>은 경기장 내부의 필드를 하나의 세계로 한계 짓는 축구경기의 특성을 이용하여 ‘모든 곳에 스며들어 증식하고 공간의 모든 점을 시점화하는 카메라의 눈’을 실현한다.

셋째, 키노-아이는 ‘무한한 운동성’을 지닌다.13) 베르토프가 활동하던 시기의 영화 카메라는 이제 막 그 기동성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사진의 역사에서 라이카의 35mm 컴팩트 카메라가 수많은 보도사진가와 거리사진가를 탄생시켰던 것처럼, 영화 카메라의 소형화, 경량화는 ‘영화 인Kinoki’14)로 하여금 조금은 더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것은 제작비

10) 프랑수아 주라비슈빌리, 박성수 역, 『뇌는 스크린이다: 들뢰즈와 영화 철학』, 2003, 이소출판사, p218

11) 미셸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사용하여 유명해진 벤탐의 ‘판옵티콘’은 중앙의 탑을 중심으로 원형의 형태로 만들어진 감시 구조 물을 말한다. 이 감옥의 모든 방에서는 다른 모든 감옥의 방들이 보이고 자신의 방은 중앙의 탑을 포함한 다른 모든 방들에 의해 감시가 가능하다. 본문에서 언급한 ‘뒤집혀진 판옵티콘’이라는 말은 중앙의 탑이 감시자가 아닌 감시대상 (필드 위의 지단)이 되고 원형의 방들에 해당하는 관중들이 감시자가 되는 <지단>에서의 시선-권력관계를 보여주기 위해 고안한 말이다.

12) ‘중심은 모든 곳에 있으나 원주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구체’라는 개념은 아르헨티나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무한을 실체적으로 인식하기 위해 전용한 문장이다. 사막이나 바다 한 가운데에 서 있는 존재처럼 순간적으로 자신의 좌표를 잃어버리거 나 (모든 곳이 중심이 되거나) 방향과 거리감을 상실하는 (원주는 어디에도 없는) 신체적 경험으로 은유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참고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정경원 역, 『만리장성의 책들』, 2008, 열린책들, pp17-25 13) 김호영, 앞의 글, p258

14) 카메라를 들고 세상을 보는 눈으로서의 영화 제작자를 뜻하는 말로, 지가 베르토프 자신이 조합한 신조어이다. 영화를 뜻하는 기 존 단어 ‘Kino'에 눈을 의미하는 ’oko'를 덧붙여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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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감으로 인한 부르주아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기도 하고 작고 가벼운 카메라에 속도와 방향 을 제공해주는 자유이기도 하다. 인간 신체-정신의 부동성으로부터의 독립. 이는 지가 베르토 프가 영화로 성취하고자 했던 소비에트 정신의 정수이기도 했다. “신속한 이동 수단, 보다 빛에 민감한 필름, 작고, 가벼운, 들고 찍기 카메라, 가벼운 조명장비, 번개처럼 빠른 영화 취재 스탭,

‘영화인’ -관찰자 부대”15)는 노동자들을 둘러싼 현실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효과적이고 조직 적으로 삶을 ‘몽타주’하기 위해 필수적 갖추어야 할 조건들이다. 그리하여 ‘키노-아이’는 볼 수 있는 세계와 볼 수 없는 세계 모두에 대한 영화적 해석이 되며, 시공간을 정복하고, "삶 속으로 뛰어든다.”16) “사실들의 영화-공장”을 통해 “전 세계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이름으 로 세상을 보고 보여주는 것”17)이다. 영화 <지단>에서 카메라의 눈과 관중의 눈, 그리고 카메 라를 통해 지단의 신체를 '구경하는' 관객의 눈이 구성하는 3중의 시선은 영화를 둘러싼 시각 주체가 미묘하게 분열되어 있고 어긋나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선이 탐욕스럽게 들여다보는 지단의 신체 너머에는 무엇이 존재하는가? 우리는 그 너머에 있는 추상적인 초상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가? 우리가 파악하게 되는 것의 실체는 무엇인가? 관중의 눈은, 전적으로 지단 이 공을 소유하고 있거나, 적어도 공 근처에 있을 때에만 지단을 향한다. 하지만 카메라의 눈은 공의 소유 여부와 관계없이 지단에게 달라붙어 있다. 영화의 시점으로 부여된, ‘지단에게 달라붙어 있는 눈’은 그가 공을 소유하고 있는 ‘사건의 시간’에 현장에 있는 관중의 시각과 일치된다. 그렇다면 영화를 보는 관객의 시선은 축구경기라는 사건의 지평에서 관중의 눈을 공유하고 있지 않은 시간에 지단의 신체에 머물면서 무엇을 보는가? 축구경기에 몰입한 그의 움직임을 보면서 우리는 순수한 운동-이미지로서의 탈맥락화된 신체를 보는가, 아니면 프랑 스의 영웅, 알제리계 이민자, 말없는 카리스마, 아트사커의 창시자 지단의 재맥락화된 신체를 보는가? 궁극적으로 <지단>의 카메라-눈은 볼 수 있는 세계와 볼 수 없는 세계 모두에 대한 어떤 해석을 제시하는가?

3. 불연속적 시공간과 파편화된 신체-이미지

인간의 시지각 조건을 넘어서는 확장하는 시선이 응시하는 <지단>의 신체는 온전하게 조망 되는 하나의 전체로서 제시되지 않고 순간적인 동작으로, 부서진 몸의 부분들로, 온갖 방향과 거리에서 포착되어 연결되는 조각들로 제시된다. 원형으로 배치된 다수의 카메라의 시점, 그리 고 망원렌즈로 왜곡되는 거리감과 거세되는 공간감은 피사체를 관음하는 시선을 특정할 수 없는 임의의 순간들로 분절시킨다. 그것은 축구경기의 연속된 시공간, 즉 인과관계로 짜여진 서사와 평행하게 놓이는 불연속적인 시공간이다. 질 들뢰즈는 그의 영화 철학에 대한 긴 글에 서 시간-이미지와 운동-이미지에 대한 독특한 사유를 전개한다. 그에게 영화 속에서 ‘흐르는’

시간은 운동-이미지 혹은 숏의 연속적인 연결로부터 비롯된다. 왜냐하면 관객은 움직이는 이미지 그 자체, 그리고 이미지들을 연속적이고 연대기적으로 연결시키는 숏의 움직임으로부 터 시간의 흐름을 감지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시간은 운동에 종속된다. 관객 은 오로지 연속적인 운동을 통해서만 시간의 선형적인 흐름을 감각한다.18) 그래서 들뢰즈는 시간-이미지는 운동을 통해 간접적으로만 드러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대영화에서 시간은 연대기적으로만 드러나지 않는다. 알랭 레네의 <지난 해 마리앙바드에서>라는 영화에서는 불완전한 기억의 재생을 통해 사건의 시간은 불연속적으로 드러난다. 그것은 차이를 불러내는 반복이면서 운동-이미지, 연속적인 공간의 연결에서 해방되는 시간 자체가 스스로를 영화 속에서 드러내는 한 방법이었다. 들뢰즈는 시간-이미지로의 이행을 사유하기 위해 운동-이 미지에서 공간적인 이미지들에 종속되어 있는 시간에 관한 간접적인 이미지를 해방시켜야 한 다고 믿었다. 그러나 선형적인 서사를 가진 극영화는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그 인물이

15) 지가 베르토프, 앞의 책, p149 16) 위의 책, p166

17) 위의 책, p105

18) 쉬잔 엠 드라코트, 이지영 역, 『들뢰즈 철학과 영화』, 2004, 열화당,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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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하는 무대인 공간에 의해 틀지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떻게든 공간, 혹은 공간의 연속 을 보여주지 않고는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잃어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비연속적인 공간의 몽타주(카메라를 든 사나이), 공간성을 휘발시키는 깊은 심도의 숏들(시민케인), 우연적이고 비논리적인 시간의 배치(지난해 마리엥바드에서), 순수 시각 혹은 추상화된 시각으로 영화를 채움으로써 공간에 대한 관객의 기대를 전복시키는 아방가르드 영화들, 그리고 타협 없이 미리 주어진 서사인 축구경기의 맥락을 의도적으로 제거하고 시스템의 일부로서가 아닌, 한 명의 인간존재로서 인물의 초상에 주목하는 <지단>이 시간-이미지를 직접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예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축구경기의 중계방송에서 관람자는 선수들의 위치와 공의 움직임, 그리고 한정된 사각형의 운동장을 정확하게 지각하고 그 안에서의 좌표를 명징하게 설정할 수 있다. 등번호 5번의 선수 가 상대방 진영 1/3 지역에서 공을 잡고 돌진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예측하거나 기대할 수 있다. <지단>에서는 그러한 공간적 감각은 완전히 지워진다. 관객은 지단의 신체를 집요하 게 쫓아다니는 카메라를 통해서만 관찰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에 특정한 시간대에 특정한 공간 에 서 있는 특정한 선수-지단이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혹은 어떤 방향으로 어떤 속도로 뛰어나가게 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불연속적이고 파편화된 공간을 감각하는 관객은 그러 나, 93분의 러닝타임 동안 동작들을 이어주는 매끄러운 편집방식으로 인해 시간은 연속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대신 관객은 지단의 ‘영화적 목소리’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동시에 경험 하게 된다. 지단의 움직임과 응시에 따라 시간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몽타주에 종종 중계화면과 리플레이, 그리고 하프타임의 TV뉴스 리포트들, 경기장 건물 안을 배회하는 유령 같은 시선들 이 틈입해 들어온다. 이미지의 실타래들은 그렇게 여러 가지의 색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 경험 은 오히려 동질적이고 직선적인 시공간 감각을 뒤흔든다. 그것은 지단의 신체를 포착하는 시선 으로 구성되어 있는 쇼트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감독의 정념, 혹은 감독이 의도한, 감독의 시선으로 재맥락화한 지단의 정념이다. 관객은 그것을 지단의 생각으로, 그의 회상으로 맞닥뜨 리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그 생각과 회상이 그것을 직접 보여주는 외삽되는 화면이나 플래시 백이 아닌 언어로 이루어져 있고 그 언어는 흔히 나레이션으로 구성되는 청각적 기호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닌 자막으로 생성되는 시각적 기호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관객이 지단의 신체와 특히 그의 시선에 반응하는 맥락은 일부 그의 언어로 재구성되는데, 우리는 그의 생각 을 들을 수 없고, 볼 수 있을 뿐이다. 들려지는 언어가 보이는 신체와 직접적으로 관련을 맺게 된다면, 다시 말해 영화에서 나레이션을 들을 때 관객은 그 순간에 보여지는 인물의 목소리로, 혹은 그 인물과 관계있는 목소리로 직접적인 연결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반대로 보여지는 언어 는 보이는 신체 위로 떠다니게 된다. 다시 말해 영화에서 자막을 읽을 때 관객은 그 순간에 보여지는 인물의 기억으로, 혹은 그 인물과 관계있는 기억으로 연결 짓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청각의 동시성과 시각의 비동시성으로 대립시켜볼 수 있다. 나레이션이 청각적으로 주어질 때 그것은 인물의 목소리로 현재성을 나타내지만, 나레이션이 시각적으로 (자막으로) 주어질 때 그것은 인물의 기억으로 과거의 것이 된다. (이것은 마치 사진의 이미지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즉각적으로 과거의 어떤 것으로 지각하게 만드는 특성과 비슷한 효과를 가지고 있다.)

<지단>에서 육체의 현재성과 과거로부터 들려오는 정신이라는 두 이미지 사이의 (시간적) 간격은 <지단>의 영화적 공간을, 지단이 움직이고 있는 무대인 필드를 관객들에게 조금 더 주관적으로 제시하게 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관객이 현재 보고 있는 지단의 육체를 자신의 현재성으로 이입하는 동시에 그의 기억을 자신의 기억으로 회상하는 이중의 주관적 개입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렇다면 카메라-눈의 객관적 시각이 관객의 눈으로 이식해 들어올 때 이미지를 제각기 수용하게 되는 주관적 시각으로 변이하게 되는 특수한 지점 으로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이 영화가 운동-이미지의 감각-운동 도식으로 만 이루어진 것이 아닌, 행위-이미지와 정감-이미지가 복합적으로 엮여나가는 확장된 전체 로서 읽혀질 수 있는 단서가 된다. 감각-운동 도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때 “지각은 행위 로 직접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이미지들은 더 이상 서로 연결될 수 없”다.19) 이미지들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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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정감으로 채워진다고 인식되는 간격이 생겨나게 되고 영화는 이때 간격의 영화가 되는 조건 을 갖추게 된다. 그리고 영화는 그 조건의 발자국을 따라 시간-이미지로 나아간다. <지단>에 서 간격은 숏과 숏 사이에서, 프레임과 프레임 사이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시점과 시점 사이, 기억과 시간 사이에서도 드러난다. 영화에서 자막으로 제시되는 지단의 목소리는, “그 경기와 그 사건은 ‘리얼 타임’으로 기억되거나 경험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의 “기억은 파편 화 된다.” 그는 “다른 장소에서, 다른 시간에 경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낀다.” 그는 관중들이 기침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의자를 옮기는 소리, 자신을 향해 소리치는 소리를 정확하게 분간할 수 있다고 느낀다. 그는 시계가 째깍대는 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지단>의 편재하는 시선과 불연속적인 시공간, 그리고 파편화된 신체는 한 시대의 초상으로 서 영화 속 지네딘 지단의 이미지를 여러 층으로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지가 베르토프와 들뢰즈에게서 중요한 것은 유동하는 단면으로서 이미지 그 자체보다는 그것의 연 결, 변화이고 그래서 몽타주이다. <지단>의 몽타주는 두 개의 물리적인 쇼트 사이의 상호작용 이면서 동시에 축구경기의 관중과 영화 관객 사이의 시간적 상호작용이다. 이것은 실제 사건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는 이 영화의 특수성에서 기인한다. 같은 사건을 바라보는 불특정 다수의 서로 다른 경험이 그 때의 지단을 바라보는 다중적인 시각을 제공한다. 이는 스펙타클 로서 소비된 초상이미지의 전복적인 재림이고 그것이 가진 의미, 현대적 개념의 환영을 폭로하 는 방법론으로서 담론생산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자면 현실적 지각을 영화에 앞서 인식하고 있는 관중의 눈은 관객의 눈과 겹쳐지고, 그것은 곧 영화의 눈인바, '영화적 지각'이 바로 ‘인간적 지각’위에 (스펙터클로 뒤덮인 세계에) 덧붙여지는 감각적 확장, 혹은 의식적 변이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영화인 것은 결국, 편재하는 시선이 바라보는 파편화된 신체가 드러내는 것은 한 명의 인간이고, 그가 드러내는 감정적 동요이며, 우리에게 드러나지 않는 그의 시선 속에 비친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단>이 무대 위에 내세우고 있는 것은 축구선수라는 단일한 정체성을 가진 평면적인 인물이 아니다. 이 사이에는 자신을 지켜보는 시선을 의식하는 능동적 주체로서 지단이 있다. 디드로의 순수한 초상은 <지단>을 구성하는 파편화된 이미지들의 물결 위에 그려지지만 지네딘의 의식은 영 화의 다른 층위에서 발현되며 관객들에게 침투한다. 그는 관중석을 본다. 그는 전광판을 본다.

그의 무표정한 눈을 우리는 볼 수 없다. 그는 자신이 누구이고 어떻게 표현되는지 알고 있다.

그의 침묵은 자신의 성격에 의해서이기도 하지만 그가 스스로 선택한 존재 양태이기도 하다.

요컨대, 외부의 시선에 노출되는 지단의 이미지는 존재적 이미지로서의 지단을 통제한다. 하지 만 동시에 지단 스스로 자신의 이미지가 구축되는 방식을 통제하기 위한 선택들도 존재한다.

대중의 시선에 의해 구축되는 이미지와 지단 스스로 조심스럽게 선택한 이미지의 노출이라는 이중적 피드백 효과가 지단의 초상을 둘러싼 수수께끼를 일종의 술래잡기로 변화시킨다. 관객 이 목격하는 것은 감독에 의해 창조된 인물이 아니라 세계 내에 실존하고 있는 입체적 내면이 기 때문이고 영화의 카메라가 우연히 포착했던 결정적 순간이 선물처럼 당도한 순간 그의 모순 적인 정체성이 폭로되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우리는 지단의 신체 너머에 도사리고 있는 21세 기의 초상에 다가갈 수 있다.

4. 스펙타클로서의 초상

더글라스 고든은 인터뷰에서 만약 그 경기에서 레알 마드리드가 이기고 지단이 해트트릭을 기록했다면 영화의 분위기가 사뭇 달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든과 파레노가 만났던 지단은 과묵했고 자신을 밝히기를 꺼려했으며, 첫 제안에서 영화의 촬영을 거절했다. 하지만 그들의 계획을 자세하게 듣고 나서는 흥미를 보였다. 찰스 치망가, 디디에 곤돌라, 피터 블룸이 공동 저술한 『프랑스적인 것과 아프리카 디아스포라』라는 책20)에서는 알제리계 프랑스 이민자

19) 쉬잔 엠 드 라코트, 위의 책, p32

20) Charles Tshimanga, CH. Didier Gondola, et al., 『Frenchness and the African Diaspora』, 2009, Indiana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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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들이 겪는 분노와 수줍음에 대해 설명하면서 지단의 겉으로 드러난 모습에 대해 분석을 시도한다. 저자에 따르면 스스로를 프랑스인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프랑스 공동체 안에서 북아 프리카계 아이들은 제 2의 정체성을 가진 타자로 취급된다. 아이들은 매우 어려서부터 그들이 인식되는 방식과 그들을 취급하는 공동체의 태도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으며 점차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고 스스로의 정체성에 관해서는 침묵하는 방향으로 처세술을 익히게 되 었다. 침묵의 반작용으로 드러나는 분노와 폭력은 억눌려있던 부당함, 소외감, 자기표현의 일 그러진 외현(外現)인 것이다. 역시 알제리계 프랑스인 이민 가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지네딘 지단에게도 비슷한 감정적 형성 과정이 발현되었을 것이라고 이 책에서는 주장하고 있다. 지단 의 과묵한 성격과 종종 이성을 잃고 폭력적인 행동을 보이는 특징이 사실은 북아프리카 디아스 포라가 2세들에게 미친 광범위한 영향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흥미로운 것은 지단이 스스로가 목격당하고 있다는 것을, 사실은 매일 매일 감시당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프랑스의 영웅과 알제리계 이민자의 정체성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 기를 하고 있었다. 그가 경기를 이기는 날은 모두에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프랑스인’으로 불리지만 성질을 참지 못하고 폭력사태에 휘말리는, 많은 경우 그 중심에 서 있는 날에는 ‘야만 적인 이민자’의 이미지로 소비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미디어와 대중이 예상하고 기대하는 지단 의 정체성은 그러므로 고정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 사실은 누구보다 지단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스스로가 결코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타자 서사의 전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극도의 조심성 없이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의 위치를 누구보다 잘 아는 이민자의 아이로 서, 반대로 스스로를 드러내는 자신만의 방법을 경계심vigilance을 갖고 자각하고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수많은 시선을 통해 대상화되는 피사체이지만 동시에 그 시선을 피하거나 이용 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찾아다니는 능동적인 주체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고든과 파레노의 우려와는 달리, 레알마드리드가 2:1로 이기기는 했지만, 지단 자신은 팀의 승리를 피치 위에서 보지 못했다. 그는 경기가 끝나기 몇 분 전에 일어난 충돌사태에서 상대팀 선수를 위협했다는 혐의로 퇴장 당했기 때문이다. 그 사건은 이 영화에 성격을 부여하는 ‘결정 적 순간’이었다. 이로서 <지단>은 추락하는 영웅 서사의 전형을 얻게 되었다. 지단의 퇴장 덕분에 연출자는 지단과의 인터뷰에서 영화의 내레이션으로 쓰일 부분을 발췌하는데 하나의 길잡이를 얻었다. 그리고 스코틀랜드 밴드 모과이의 몽환적이고 과묵한 영화음악 작곡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나의 우발적인 사건이 <지단>의 불특정한 순간을 예정된 지단의 서사로 대체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순간 전까지 <지단>은 운동-이미지와 쇼트의 간격, 분절된 움직임과 분열된 정감, 파편화된 신체를 한 시대를 풍미한 초상을 대상으로 연구 하는 질 좋은 사례로서 작동하고 있었지만 추락하는 영웅 서사의 개입이 결정된 후부터는 의미 생성의 축이 조금은 다른 차원으로 이동한다. 이 영화가 공개되었던 2006년 봄은 월드컵을 앞두고 있었다. 그리고 관객들은 몇 개월 후, 2006 독일 월드컵 결승에서 마치 이 영화에서 예언한 것처럼 보이는 사건을 목격하게 된다. 프랑스 대표팀이 이탈리아와 맞붙은 결승전에서 지단이 가족을 향해 심한 욕을 한 상대팀 선수 마테라치를 머리로 들이받은 것이다. 그 결과는 퇴장이었고 프랑스는 결승전에서 패배했다. 이 사건으로 지단이 걷던 정체성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한 쪽으로 넘어가버렸다. 많은 미디어에서 그의 출신을 문제 삼으며 머리박치기 head-butt를 비판했고 그는 순식간에 야만적인 북아프리카 이민자의 아이로 호출되었다. 당 시 유럽은 전쟁 이후 다시 한 번 영토 내의 소수인종과 이민자의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던 시기였고 9/11 사태 이후 전 지구적으로 번진 아랍계 극단주의자들에 의한 테러에 피로감이 극도로 높아지던 중이기도 했다. 지단은 이전에는 프랑스가 낳은 성공스토리의 아이콘이었지 만 이제는 아랍계 소수인종들이 내재적으로 지닌 폭력성을 예증해주는 징표가 되어버린 것이 다. 이 가운데 지단이 보인 행보는 주목할 만하다. 그는 오히려 그 때까지 단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던 자신의 고향으로 휴가를 떠나기로 결정 한다. 그는 “오늘까지 나는 매일 사람들의 시선 에 노출되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조금 숨을 돌릴 수 있다. 진짜 삶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나의 출신과 내 어버이의 땅으로 돌아갈 때이다. 나는 내 고향을 보고 느끼고 싶다. 조금씩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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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길 것”21)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더글라스 고든은 이스라엘에서 파레노와 공을 차고 놀 며 영화의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린 때로 돌아간다. “지단의 이름이 떠올랐다. 필리페는 오란에 서 태어났다. 카뮈와 지단의 가족도 그곳에서 태어났다. 지단은 단순히 축구 스타이기 때문에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축구 이상의 어떤 것을 대표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한 세대의 이민자들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그는 한 명의 이방인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 자신 이상의 것들 을 분명히 불러낼 수 있다.”22) 지단이 선택한 길은 마치 그를 짓누르고 있었던 세기의 초상이 라는 의무에서 해방된 자의 자기고백처럼 들린다. 그는 완성된 영화를 보고 나서 이렇게 말했 다. “지금까지 나를 촬영한 다른 이미지와 다르게 느껴진다. 전혀 나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마치 나의 쌍둥이 형제를 보는 것 같다.” 그조차도 자신의 스냅이 아닌 세밀화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을 것이다. 지단이 언급했던 ‘다른 시각’은 그와 연결되어 있던 맥락을 모두 지워버린 채 드러내는 벌거벗겨진 시각이었고, 동시에 한 명의 개인으로 소급되는 한 세대가 겪는 소외 의 이미지, 다시 말해서 ‘21세기의 초상’이라는 제목이 이율배반적으로 표현하듯 거꾸로 배치 된 거울로 마주하게 된 당혹스러운 세계의 이미지인 것이다.

미디어 산업과 스펙타클로서의 이미지가 일으키는 착시 현상의 근저를 파헤치고 그 이면에 있는 현실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왔던 영화감독이자 설치미술가인 하룬 파로키는 2007년 “Deep Play”라는 제목의 설치작업을 선보인다. 2006년 독일 월드컵 결승전 의 장면들을 12개 채널의 비디오 인스톨레이션으로 재현한 작품이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대표팀이 치룬 이 유명한 경기는, 부분적으로는 지단이 마테라치의 가슴을 머리로 가격했던 사건 때문에 더 유명해진, 이미 수억 명의 시청자들이 실시간으로 시청한 미디어에 의해 결집 된 “전지구적 집단적 몽환”으로 기억된다. 하룬 파로키는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시각적 장치들을 동원해 이 경기의 현실을 비-인간적 지각의 조건들 속에서 파헤친다. 이를테면 현장 의 감시카메라 영상, 컴퓨터 시뮬레이션, 경기 중계방송 뿐만 아니라 각 선수의 스탯을 보여주 는 숫자들의 인포그래픽, 뉴스화면 등의 다종다양한 시점으로 경기의 현실을 복원하는 것이다.

그는 동시에 미디어 산업의 거대한 토양 위에 지어진 정보사회의 이면, 그리고 천문학적 자본 으로 치장한 월드컵 경기의 뒷면을 관찰한다. 실재와 그것의 인위적 재현을 연결시키는 그의 독특한 방법은 관점을 만들어내고 정보를 제조하며 현실을 생산하는 현대사회의 매커니즘에 질문을 던진다. 파로키보다 1년 앞서, 월드컵보다 1년 전에 미디어에 의해 생산되는 스펙터클 의 이면을 들여다보기 위해 지단을 새로운 초상의 범례로서 내세웠던 고든과 파레노는, 하룬 파로키가 축구경기를 재현하기 위해 설치한 숫자와 그래픽으로 표현된 정보의 세밀한 가시성 을 다른 차원으로 변형시키는 세밀화를 그려낸다. 그것은 경기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 그러나 전체의 연결에서 고립된 한 명의 위태로운 영웅, 한 명의 노동자의 육체와 정신의 세밀화이며, 고집스럽게 파고드는 초현대적 미디어의 시선에 대한 감각적 논증이다. <지단>이 부지불식 간에 드러내는 것은, 이제 스펙타클은 실재의 표면 위를 떠다니는 초연한 시뮬라크르가 아니 라, 욕망과 관계가 적극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무대 위에 초대된 모든 것의 이미지이며, 실재 의 표현인 그 이미지는 이미 실재의 속성 그 자체이므로, 변화와 분열의 주체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 명의 초상 위를 떠다니는 다채로운 시선은 그 자체로 초상을 변화시키고 초상에 의해 변화하는 실체가 된다.

5. 결론

지가 베르토프는 키노-아이가 수행하는 구성능력의 힘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도록, 명료하 지 않은 것을 명료하게, 숨겨진 것을 명백히 밝히고.... 즉 거짓을 참으로 변화시키는 데 있다”

고 했다.23) 이를 위해 카메라는 삶을 조작하는 것이 아닌, 삶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에게 있어

21) 위의 책, p215

22) Gary Younge, ‘He shoots. He scores. He folds his socks’,

https://www.theguardian.com/film/2006/may/18/cannes2006.cannesfilmfestival1, 2019.09.11 접근 23) 지가 베르토프, 앞의 책, pp107-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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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노-아이’를 통해 포착한 ‘있는 그대로의 삶’은 인간의 눈이 보는 ‘있는 그대로의 삶’과 다르 다. 아니, 그저 다르다고 표현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그것들은 서로 “첨예하게 대립한다.”24) 사각형의 프레임으로 취사선택된 삶은 베르토프가 소망했던 바대로, 노동자들을 계몽하고 그 힘으로 혁명을 태동시키는 절차를 밟았던가? 새로운 세상을 구성하려는 영화인의 꿈이 담긴

‘키노-아이’. 베르토프에게 그것은 ‘공산주의 세계의 유토피아’였지만 21세기를 사는 현대인 에게는 조금 다른 현실이 되었다. 그것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며 유토피아 따위는 더더욱 아니 다. 이제 기계-눈으로 구축한 세계의 영상 이미지는 우리 자신 그 자체이다.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새로운 신체이다. 고든과 파레노의 17대의 카메라는 지단의 신체에 밀착해서 그의 호흡과 움직임, 나아가 그의 정념과 정체성을 드러내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 카메라는 어쩔 수 없이 지단의 유니폼에 새겨져 있는 거대기업의 로고도 함께 드러낸다.

카메라가 지단이 발을 잔디에 끄는 습관을 잡아낼 때 관객은 축구화에 새겨진 아디다스의 로고 를 본다. 아니, 그 이전에 이미 축구경기는 천문학적인 자본의 논리에 따라 구축된 하나의 거대 한 쇼이지 않은가? 알제리계 이민자와 프랑스 축구대표팀 주장이라는 이중적인 정체성을 가진 지단의 이미지는 현대 소비사회의 특징인 스펙타클로서의 이미지가 그것의 주체와 혼동되어가 는 상황을 폭로한다. 현대-이미지 사회에서 한 개인의 초상-정체성은 더 이상 표상/실체의 이분법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지의 총합은 존재의 총합보다 더 거대하다. 들뢰즈의 영화철학은 이미지를 “지각되는 것이자 존재하는 것으로, 표상이자 사물로 인식하”25)는 베르 그손의 철학을 더 멀리 밀고 나아간다. 인간의 지각과 관계없이 스스로 세계의 이미지를 구성해 나가는 영상 이미지가 자동-기계화되고 자동-시간화(auto-temporalisation)되는 작동원리 를 간파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들뢰즈에게 본질적인 것은 고정되어 있고 불변하는 사물이 아니 라 항상 변화하고 어떤 흐름으로 파악할 수 있는 사건이다. 그것은 하나의 통일체가 아니라 교차점이고 진리가 아니라 사실이다. 여기에서 이미지는 표상인 동시에 실재이다. <지단>에 서 영웅의 파편화된 신체를 포착하는 편재하는 시선은 그렇게 난립하는 이미지로 구축되는 개인의 현대적 정체성에 대한 우려스러운 징후, 노골적인 표상을 드러내어주는 것이 아닐까?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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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위의 책, p161 25) 김호영, 앞의 책, p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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