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5
5. 이슬람 역사의 태동과 발전: “한 손에 칼, 한손에 꾸란”의 허실
1)“한손에 칼. 한손에 꾸란”에서 공납제도의 확립
메카에서 출발한 이슬람이 1세기만에 세 대륙을 석권하면서 그렇게 빨리 세상으로 퍼져간 배 경은 무엇인가? 흔히 말하는 무력점령의 결과인가? 아니며 다른 배경이 있는가?
그렇다면 21세기에도 가장 많은 인구를 갖고 역동적으로 성장해 가는 이슬람 종교의 비법과 원천은 무엇인가?
이슬람은 610년 사우디아라비아의 오아시스 도시 메카에서 무함마드에 의해 계시되었다. 그런 데 그가 사망한지(632년) 100년만에 이슬람 세력은 아라비아 반도는 물론 북아프리카 전역과 이베리아 반도, 이란, 인도, 파키스탄, 중앙아시아 일부까지 진출하였다. 인류역사상 가장 역 동적인 종교로 계속성장 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한 손에 칼, 한 손에 꾸란” 이 란 종교적 담론으로 믿지 않으면 죽이기 때문에 퍼져갔다는 논리는 서구가 만들어 낸 너무도 궁색한 논리다. 지금 15억명의 무슬림 인구에 이슬람 국가가 57개국에 이르고 있고, 칼의 위 협이 걷힌 이후에도 원래의 종교로 돌아가거나 그 뒤 지배를 받았던 나라의 종교를 받아들인 예가 단 한 곳도 없다는 사실로도 분명하다.
그럼 진정한 배경은 무엇일까? 궁금증이 더해진다.
우선 시대적 상황으로 이슬람이 등장하기 직전까지 유럽과 중동-오리엔트 지방은 동로마 제국 과 사산조 페르시아가 약 300년간 전쟁을 하면서 극심한 수탈과 약탈이라는 전쟁경제 상태에 있었다. 두 제국의 오랜 소모전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피폐, 그리고 과종한 세금으 로 인한 민심의 이탈, 종교적 내분으로 인한 국론 분열은 새로운 세력의 출현을 강력하게 예 고하고 있었다. 이 시기는 어떤 정치적 집단이 등장하여 기본적인 의식주 공급체계를 마련해 주고 내일이 보장되는 예측가능한 경제를 만들어준다면 환영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세기말적 위기에서 사회적 요구에 화답하면서 등장한 새로운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바 로 이슬람1)이었다.
1) 이슬람은 유일신 알라를 믿는 종교다. 삼위일체에 의한 기독교식 유일신 사상과는 달리 예수의 신격 격화를 부정하는 철저한 일원론적 유일신 사상을 확립하였다. 이슬람에서는 아담에서 아브라함, 모세, 예수로 이어지는 성경에 기록된 많은 선지자들을 시대적 임무를 띤 훌륭한 인간 예언자로 인정하고 추앙한다. 무함마드는 예수 이후에 신에 의해 보내진 마지막 인간 예언자로서 앞선 복음을 완성하는 사명을 가졌다고 본다. 즉, 이슬람교는 신 앞에 만민의 평등과 신과 인간 사이에 어떤 중개자도 두지 않는다는 가르침으로 예수를 통한 구원을 강조하는 기독교 사상과 근본정신을 달리하였다. 또한 현세 에서의 선악의 경중에 따라 최후의 날 신의 심판을 받아 천국의 구원과 지옥의 응징으로 나뉜다는 내 세관과 모든 것은 신의 정해진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예속된다는 정명사상을 갖고 있다. 그 밖에 도 박, 마약, 고리대금, 술과 돼지고기, 이슬람식으로 도살되지 아니한 육류를 금하며, 특수한 상황에서 일부다처를 허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이슬람의 실천 강령과 신앙체계는 흔히 오주육신으로 압축되는 데, 무슬림(이슬람교도)들의 5대 의무는 신앙의 고백, 하루 다섯 차례의 예배, 자선을 위한 종교세, 라 마단 한 달에 해 있는 동안의 단식, 평생에 한 번 메카의 순례 등이다. 또한 이슬람의 가르침은 무함 마드의 계시내용을 담은 꾸란에 집대성되어 있으며, 꾸란과 함께 그의 선별된 언행록인 하디스가 경 전으로 삶의 구체적 지침이 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피지배 민중들 사이로 스며들 수 있었던 매력으로는 조세제도가 큰 몫을 차지하였 다. 무엇보다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토지공개념제도를 도입하여 누구든지 경작지에서 자유롭게 수확하고 정부에 약 25% 정도의 토지세(kharaj)를 내는 조건으로 사유재산이 인정되었다. 이 것은 오랜 수탈 경제에서 예측가능한 경제로 나아가는 드라마틱한 삶의 변화를 의미하였다.
일종의 조세혁명이었다. 나아가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사람들에게는 약 10%에 해당되는 인두 세(jizya)까지 면제해 주었다. 대량개종을 가능하게 했던 비법이었다. 이러한 정책은 피정복주 민의 환영을 받았고, 무혈의 정복사업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나아가 이슬람 세력은 새 정복지에서 살육을 금하고 직접통치보다는 공납과 간접통치를 선호 하였다. 아무리 뛰어난 제도나 이념이라도 적은 수의 유목전사들이 광대한 지역을 직접 다스 릴 수는 없었다. 이를 위해 기존의 상상을 뒤엎는 전혀 다른 방식의 통치 시스템이 등장했다.
간접통치란 기존의 토착세력과 기득세력을 인정해 주면서 중앙정부에 대한 충성과 성실한 공 납의무를 지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특히 전쟁의 과정을 거치면서 기득세력을 소탕하고 새로운 지도력을 심으면서 통치의 효율성을 기하는 기존방식을 뛰어넘는 예상 밖의 조치에 생명을 부 지한 토후 세력들이 앞장서서 이슬람을 옹호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더욱이 가능한 반란 과 정책 왜곡을 막기 위해 삼분통치 감시시스템을 적용했다. 첫째는 군통수권을 중앙정부에 두고 사령관을 중앙에서 파견하여 군사적 저항이나 반란을 막았다. 둘째는 조세징수관을 직접 파견하여 공납의 성실한 이행을 감독하고 새로운 조세시스템을 체계화하도록 했다. 세번째는 사령관과 조세징수관의 토착세력과의 유착이나 반정부 세력으로 돌변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왕의 측근 심복인 감사관을 파견하여 권력의 효율적인 배분과 견제 시스템을 가동하였다. 물 론 이러한 제도가 완전하게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수적인 열세에 있는 아랍 주체세력들 이 이슬람 제국을 건설하는데 순기능을 했던 것만은 분명해보인다.
2)이슬람의 융화력
또 다른 이슬람 문화의 전파 이유는 특유의 융화력이라 할 수 있다. 아랍인은 정복을 통하여 역사상 최초로 오늘날의 인도와 중국의 경계선 지역, 그리스, 이탈리아 및 프랑스의 변경 지 역에 이르는 방대한 지역을 통합하였다. 이 방대한 지역을 한동안은 군사적·정치적 권력을 통 하여, 그 후 훨씬 오랜 기간 동안은 아랍어와 이슬람 종교를 통하여 한 덩어리로 묶어 놓았 다. 이와 같이 이슬람 세계는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르게 전파되어 공간적으로는 주변 문화의 수렴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는 고대 문화까지도 재생시켜 이슬람 문화라는 새로운 종합문화를 창출하였다.
이슬람 사회의 다양성은 당시 기독교 세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문화적 관용의 결과였다. 무 슬림들은 이교도들에게 그들의 종교를 인정하고 종교생활을 보장하였다. 전쟁에서 패하면 남 자들은 죽임을 당하거나 여자들은 노예로 팔려가던 시절에 이러한 조치는 매우 파격적인 것이 었다. 다만 무슬림들은 비무슬림들에게 일정한 사회적·법적인 차등정책을 실시하였는데 그 대 표적인 것이 무슬림보다 비무슬림들에게 세금을 조금 더 많이 부과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 즈야라 불리는 이 인두세 역시 그 당시 비잔틴 제국이나 페르시아 제국 하에서 받던 고율의 세금비하면 너무나 가벼운 조치였기 때문에 일반 국민들의 환영을 받았다. 이와 같이 무슬림 들은 비무슬림들의 종교적·경제적·지적 활동의 자유를 부여하여 그들의 이슬람 문명 창조에 눈부신 공헌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이처럼 포용과 융화력이야말로 이슬람 문 화의 가장 큰 특징이었다.
이슬람 정부는 세금 감면을 노리는 대량 개종을 막기 위해 오히려 개종금지백서를 발효하여 국가 수입의 증대를 위해 피정복민의 개종보다 공납을 요구했다. 그런데 이 공납 액수도 비잔 틴이나 페르시아의 수탈에 비하면 가벼운 것이었으므로 이슬람 제국 하에서 기독교인과 유대 교인들은 종교의 자유와 경제적 기득권을 향유했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보면, 무력에 의한 이 슬람 전파는 근거가 희박하다. 십자군 전쟁 이후 유럽 전역을 휩쓰는 이슬람 열풍을 막고 기 독교 세계를 지키기 위해 당대 최고의 기독교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만들어 놓은 적의감 이 가득한 정치적 수사에 불과한 용어다.
역사를 살펴보아도, 일단 이슬람 세력이 진출했던 지역은 이슬람 세력이 물러난 후에도 원래 의 토착 종교로 돌아가거나 다른 종교로 개종하지 않았음은 물론 오늘날까지도 이슬람 문화권 으로 남아 있다. 만일 무력에 의한 종교전파가 있었다면 이슬람 세력이 후퇴한 후에 그 지역 주민들은 즉시 이슬람교를 버렸을 것이다. 오히려 이슬람이 더 번성하여 그후 많은 이슬람 학 자들을 배출하였다. 만일 이슬람의 지배를 받던 지역에서 배출된 학자들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신학, 철학, 사상 등의 이슬람 학문은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3) 무함마드의 등장과 통합의 리더십
무함마드에게 내린 신의 계시는 14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점 하나, 획 하나 변하지 않고 14억 무슬림들의 일상과 삶의 방식에 절대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 코란으로 집대성 된 신의 말씀을 따르며, 무슬림들은 오늘도 무함마드를 잊지 못한다. 수염을 기르고 터번을 쓰며 그 의 생전의 모습을 닮으려고 온갖 정열을 다 바친다. 역사상 이토록 오랜 기간과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그만큼 커다란 영향력을 끼친 인물이 또 있을까? 도대체 그는 어떤 인물이기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꼼짝 못하게 묶어두는 종교적 카리스마와 인간적인 매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무엇보다 무함마드는 순수한 인간이었다. 그는 어떠한 기적도 행하지 않았으며, 결단코 신 이 되기를 거부했다. 그의 사후 많은 추종자들이 그의 신격화를 꾀했을 때, 후계자 아부바 크르는 무함마드의 뜻을 따라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무함마드를 섬기고 경배하지 말라. 그는 죽어 없어졌다. 하나님을 섬기고 복종하라, 그 분 은 영원히 살아 우리와 함께 계실 것이다.”
그의 종교적 성공과 사람을 묶어두는 매력의 원천은 정직과 관용, 합리적인 현실성, 그리고 종교적 열정과 온화함의 조화였다. 동시에 그는 모든 어려움을 앞장서 막아내는 불굴의 정 치지도자였다. 대부분의 종교적 창시자들이 자신의 근거지를 떠나 새로운 세상에서 그 뜻을 펼쳤지만, 무함마드만은 박해의 진원지였던 그의 고향 메카를 설득과 용서를 통해 재정복했 다. 그리하여 메카는 무함마드를 보호해 주던 가장 든든한 지지 기반이 되었다.
그 무엇보다 무함마드가 가진 최고의 미덕은 적에 대한 관용과 가난하고 버림받은 자에 대 한 한없는 낮춤의 자세였다. 아무리 치명적인 손해를 끼친 적이라 하더라도 그에게 복종하
고 용서를 비는 자에게 자비를 베풀어 철저히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으며, 전쟁에서 전사한 동료가족은 물론 적들의 가족들까지 헌신적으로 보살폈다. 그를 택하고 그에게 보호를 요청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한 최초의 추종자들이 오늘날 세계최대의 가장 견고한 종교 공동체를 이루는 원동력이 되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서구의 평가는 너무나 다양하고 혼란스럽다. 최고의 극찬으 로 포장된 수사에서부터 혐오에 가까운 저주사이를 수시로 오간다. 그는 악마의 회산이나 사회선동가 나아가서는 일부다처 때문에 몰몬교도의 원형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중세 교황 청의 공식적인 생각은 사막의 신인 무함마드를 추종하는 무리들과 함께 호흡할 수 없다는 것이었고, 이는 이교도에 대한 무자비한 대량살육의 길을 열어준 셈이 되었다. 기독교 서구 사회에서 예수를 신의 아들이 아닌 인간 예언자로 추앙하는 이슬람을 용서할 수가 없었고,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만 해도 다른 종교와 도저히 공존할 수 없다고 생각한 쪽은 서구의 기독교였지, 이슬람 사회가 아니었다.
무함마드는 평범한 한 인간으로 출발하여 위대한 한 인간으로 생을 마쳤다. 그렇지만 그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서는 14억 무슬림들의 가슴 속에 내재되어 있는 종교적 열정과 향수, 복잡다단한 이슬람세계의 진정한 모습을 그리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참고도서 : 중동의 역사(까치), 케임브리지 이슬람사, 무함마드 평전(암스트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