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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그림의 예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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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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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논문은 2020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NRF-2020S1A5B5A17087526).

인공지능 그림의 예술성

TheArtisticValueofAIPictures

김전희 / 서울대학교 박사과정

Jun-HeeKim / Ph.D. student, SeoulNationalUniversity

Ⅰ. 서론

Ⅱ. 인공지능-그림

1. 인공지능의 디지털-그림 2. 인공지능의 물리적-그림

Ⅲ. 미적 경험

1. 예술작품과 미적 경험 2. 인공지능 그림과 미적 경험

Ⅳ.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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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초록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삶을 안락하게 만든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발전은 단순히 인간을 보조하는 수준을 넘어, 인 간 고유의 활동이라 여겼던 창작에까지 도전하고 있다. 인공지능의 예술 창작은 이미 인공지능이 만든 작품을 전시 하고 판매하는 성과를 내보이고 있다. 이러한 현 상황을 배경으로 하여, 본 논문은 인공지능이 생산한 작품을 인간 이 어떻게 경험하고 수용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탐구한다. 인공지능의 작품들은 인간에게 미적 경험을 가져다줄 수 있는가? 만일 가져다줄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떤 미적 경험일 수 있는가와 같은 문제를 통해 인공지능의 작품을 수용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한다.

먼저 본 논문은 현재 인공지능의 작품 제작 기술을 살피고, 이를 통해 인공지능 작품의 특징과 인간 작품과의 유 사성에 대하여 알아볼 것이다. 인간의 예술 작품이 우리에게 미적 경험을 제공한다는 전제하에, 만일 인공지능 작 품에서도 우리가 미적 경험을 얻는다면, 우리는 인간 예술 작품과 마찬가지로 인공지능의 작품도 우리에게 미적 경 험을 제공하는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인공지능 작품을 어떻게 수용할 수 있는지, 즉 어떻게 감상하고, 이를 예술작품으로 대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하여 이어지는 장에서는 미적 경험에 대하여 살필 것이다. 이는 인공지능의 작품을 통해 인간이 미적 경험을 얻을 수 있는지, 그리고 만일 얻을 수 있다면 그건 어떤 미적 경험일 수 있는지를 설명할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인공지능 작품들을 통해 기존 인간 예술가들의 작품과 다른 새로운 미적 경험을 얻을 수 있음을 알게될 것이다.

핵심어|노엘 캐롤, 미적 경험, 비어즐리, 인공지능, 인공지능 작품, 인셉셔니즘

ABSTRACT

The development of artificial intelligence (AI) technology has made ‘peoples’ lives easier. It seems that this development goes beyond the ancilla of human beings. AI has challenged art creativity, which has been considered an intrinsic ability of human beings. Based on the situation where AI artworks have been exhibited and sold, this paper discusses that how people can accept and experience AI artworks.

Could work made by AI provide an aesthetic experience? If so, what kind of aesthetic experience could it be?

For the purpose, this paper looks at recent technologies of AI creating artwork and the results. It is followed by the concept of aesthetic experience, which is considered to be found in human artworks.

If we could find aesthetic experience in works made by AI, we would have to admit that AI artworks provide the same aesthetic experience as those made by people. Therefore, we look into what aesthetic experience is to figure out whether it is possible to accept AI works as art and to learn how to even appreciate them. As a result, we would find out whether the artworks of AI could provide a different and novel aesthetic experience that cannot be found in human art.

Key Words|Aesthetic Experience, Artificial Intelligence, Artworks of AI, Inceptionism, Monroe C. Beardsley, Noel Carro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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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론

기술의 발전은 우리가 예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하였던 일들을 가능하게 하였다. 지도를 보며 목적지를 찾는 대신 검색 한 번으로 목적지에 도달하는 가장 빠른 길을 안내하기도 하고, 집안 의 온도와 습도를 저절로 맞춰주기도 하며, 말 한마디에 음악을 틀어 주기도 한다. 인간을 돕는 인공지능 기술은 발전을 거듭하였고, 2000년에 들어 인공지능은 이제 인간의 보조자 역할을 넘어 인간만의 고유한 활동에도 도전하기 시작하였다. 지금껏 예술 창작은 인간만의 고유한 활 동으로 여겨져 왔다. 예술 창작의 기반이 되는 창의성, 영감, 반성, 관조 등은 기계들이 범접할 수 없는 인간만의 고유 영역이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인공지능은 이미 이러한 예 술 창작에 도전하고 있다. 20156월 구글(Google)은 자신들이 개발한 딥드립(Deepdream) 프로그램이 만든 작품들을 샌프란시스코 갤러리에서 <딥드림: 신경망의 예술 DeepDream: TheArt ofNeuralNetworks>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하고 판매하였다.1 2018년에는 프랑스 의 ‘오비어스(Obvious)’ 미술팀이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통해 <에드몬드 드 벨라미의 초상화 PortraitofEdmonddeBelamy>를 제작하였고, 이를 세계적인 경매회사 크리스티(Christies) 를 통해 432,500달러(한화 약 47천만원)에 판매하였다.2 뿐만 아니라, 2016년부터 매년 ‘국 제 로봇 예술 대회(InternationalRoboticArtCompetition)’가 열리고 있다. 이 대회는 로봇이 제작한 그림이면 무엇이든 참가 가능하며, 최종 우승자에게는 10만달러(한화 약 11천만원) 의 상금이 주어진다.3 국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예술가들이 다양한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활용 하여 작품을 만들고 있으며, 이러한 작품들은 이미 여러 전시에서 선보여졌다.4

그러나 인공지능의 그림5들이 전시되고 판매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인공지능 생산물의 예술 1. https://www.fastcompany.com/3057368/inside-googles-first-deepdream-art-show (2021년 3월 30일 최종 접

속).

2. https://www.nytimes.com/2018/10/25/arts/design/ai-art-sold-christies.html (2021년 3월 30일 최종 접속).

3. 물론 로봇으로 제작되는 그림이지만, 대부분의 참가작들은 로봇의 하드웨어 외에 소프트웨어로 인공지능 프로 그램을 사용한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Ⅰ장에서 다뤄질 것이다.

4. 대표적으로 언급하자면, 2020년 7월 탈영역우정국에서 있었던 《미래의 환영》전, 2018년 미술세계에서 열렸던

《인공지능 시대의 예술작품》전, 2017년 SeMA창고 외에서 열렸던 《인공지능과 인공적 창의성》전 등이 있다. 이 들은 인간 예술가가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활용하거나 혹은 인공지능 프로그램과 ‘협업’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작품들을 전시하였다.

5. 본 글에서는 인공지능과 인간의 생산물인 디지털 이미지, 예술작품, 회화, 물리적 이미지로서의 드로잉 등을 모 두 총칭하여 ‘그림’ 또는 ‘작품’ 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림이란 ‘선이나 색채를 써서 사물의 형상이나 이미지 를 평면 위에 나타낸 것’을 의미한다. 표준국어대사전,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 (2021 년 5월 20일 최종 접속) 참고. 본 글에서 인공지능의 생산물이나 인간의 작품 모두를 문맥에 따라 ‘예술’, ‘회화’.

‘생산물’ 등으로 매번 다르게 사용하면, 이미 그것이 작업에 대한 가치판단으로 작동하여 논문의 취지를 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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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예술 작품이 아닌 경우에도 전시와 판매가 이루어질 수 있 으며, 또한 이러한 그림들이 단순히 예술의 탈을 쓴 재화이거나 유행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하나의 자극적인 현상일뿐 예술적 가치가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의 예술 도전에 대한 현 상황을 단순히 인공지능 기술 분야의 놀라운 발전으로 방관할 수는 없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창의적 예술 활동에 도전하면서, 인공지능 그림은 다양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 논 쟁들은 주로 인공지능이라는 비주체적 기계의 예술 창조 가능성에 관한 것이거나, 또는 인공지 능 작품에서 저자와 저작권의 문제들과 연관된다. 이미 인공지능은 인간의 예술작품과 유사한 그림을 생산하고 있고, 우리는 이제 어렵지 않게 이 생산물을 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새로운 현상에 대하여 가장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은, ‘인간은 이러한 인공지능의 작품을 어떻 게 수용하고 경험할 것인가?’이다. 인공지능이 생산한 결과물은 이미 우리 앞에 있으며, 따라 서 인공지능이 예술을 창작할 수 있는가에 관한 논의는 우리가 이를 예술로 수용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결론지어질 수 있다. 또한 인공지능 생산물의 저자와 저작권의 문제 역시 인공 지능의 작품을 우리가 어떻게 수용하는지에 따라, 즉 그 작품을 경험하고 수용하는데 인공지능 기술이 핵심이 되는지, 아니면 그 기술을 적용한 개념이 핵심이 되는지에 따라 기술 개발자가 혹은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저자로 상정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논문은 2000년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한 인공지능 그림을 어떻게 수용하 고 감상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찰을 진행할 것이다. 이는 미적 경험을 주요 개념으로 하여 연구 할 것이다. 인간의 예술작품은 관람자에게 미적 경험을 불러일으키며, 이는 예술의 고유한 역 할로 여겨져 왔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 우리는 미적 경험에 대하여 살피고, 그러한 경험을 인공 지능 그림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지 알아볼 것이다. 이를 위하여 첫 번째 장에서는 인공지능이 어떤 제작 방식으로 그림을 생산하는지, 그리고 그 결과물로서의 그림을 살펴볼 것이다. 이어 지는 장에서는 미적 경험이란 무엇인지 알아보고, 앞의 장에서 살펴본 인공지능의 그림이 과연 인간의 예술과 마찬가지로 미적 경험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알아볼 것이다. 나아가 만일 인

는 생각에 이 모두를 언급하는 단어로 ‘그림’과 ‘작품’을 선택하였다. 물론 인공지능이 제작한 디지털 이미지의 경 우 말 그대로 ‘디지털 이미지’가 ‘그림’이라는 용어보다 적합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작품이나 인공지능의 작품 모두를 총칭하기 위한 용어가 필요하고 이를 위하여 ‘그림’이라는 용어가 적합하다고 판단한다. 디지털 이미지의 경우 픽셀로 이루어진 것으로 물리적 그림은 아니지만, 이 역시도 컴퓨터 화면을 통해 나타난다. ‘화면’ 역시도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따위에서 그림이나 영상을 나타내는 면’(표준국어대사전 참고)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그 림’이란 용어가 디지털 이미지에 적용되지 못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또한, 본 글에서는 일반적으로 인공지능과 인간이 만든 모든 이미지를 ‘그림’으로 부르지만, 전시에 선보여졌거나 판매된 경우 이를 ‘작품’이라 부르기도 한 다. 물론 본문에서 언급하듯이 ‘작품’이라 부른다고 하여서, 혹은 전시나 판매가 되었다고 해서 예술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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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능의 그림을 통해 우리가 어떠한 미적 경험을 얻을 수 있다면, 그 미적 경험은 우리가 인간 의 예술작품을 통해 얻는 것과 다른, 오직 인공지능의 그림만이 제공할 수 있는 어떤 새로운 경 험일 수 있는지 고찰할 것이다.

Ⅱ. 인공지능-그림 (AI-ART)

인공지능의 발전은 그 기간에 비해 상당히 빠른 속도로 발전하였다. 물론 인공지능이라 명명 되고 그 개념이 현대적 의미에 가깝게 정의된 것은 1956년 한 무리의 과학자들에 의해서이지 만,6 인간이 지능을 통해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기계를 통해서 구현하고자 시도한 것 은 이미 그 이전부터였다.7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간단하게는 기존에 저장된 정보를 검색하여 찾는 일에서부터 복잡하게는 어떤 규칙에 따라 게임을 하고 이미지를 변형하거나 인간과 대화 를 하는 일까지 다양하다. 인간이 지능을 가지고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거나 목표에 도달하는 것처럼, 인공지능 프로그램 역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거나 목 표에 도달하기 위한 능력을 갖는다. 이러한 인공지능이 예술, 특히 그림을 생산하는 방식은 만 들어지는 양상에 따라 둘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으로 디지털 이미지를 생산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에 하드웨어, 예를 들어 로봇과 같은 하드 웨어가 결합하여 물리적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이 두 가지 방식8은 모두 인공지능 기 술을 기반으로 하며,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여전히 일정 정도 인간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1. 인공지능 프로그램의 디지털-그림

인공지능 프로그램으로 디지털 이미지를 생산하는 방식9의 예로 본 절에서는 가장 최신의 인 6. 인공지능이라는 용어는 다트머스 대학교에서 1956년에 열린 워크숍에서 명명되었다. 당시 이 워크숍에 참여하 였던 존 메카시외 10여 명의 과학자는 인간의 지능을 흉내내는 기계를 구축하고자 하였고, 이를 인공지능이라 이름 붙였다. 스튜어드 러셀, 피터 노빅, 『인공지능: 현대적 접근방식』, 류광 옮김 (제이펍 2016), p. 21.

7. 기계가 지능을 가질 수 있는가의 문제는 1950년 최초의 컴퓨터를 만든 앨런 튜링에 의해서 논해졌을 뿐 아니라, 19세기 초반에 최초의 프로그래머 에이다 러브레이스에 의해서도 기계의 창의성에 관하여 언급되었다.

8. 물론 이러한 디지털 이미지를 프린터(printer)를 이용하여 인쇄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구분한 방식은 이미지 가 처음 만들어진 방식에 기반한다. 즉 디지털 이미지로 처음 만들어졌지만, 이를 이후에 전시를 위하여 인쇄하 는 방식은 첫 번째에 해당한다. 두 번째 방식은 로봇이라는 기계를 이용하여 물리적인 이미지를 직접 ‘그려’내는 방식이다. 이는 인간의 회화와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종이 혹은 캔버스에 그려 진다.

9.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김전희, 김진엽, 「인공지능 시대의 예술 창작: 들뢰즈의 예술론을 중심으로」, 『예술과 미디어』 19권, 2호 (2020), pp. 81-112, pp. 93-102를 참고하라. 여기서 언급되는 프로그램들은 모두 인공지능에 서 심층학습(deeplearing; 딥러닝) 기술을 이용한다. 인공지능 러닝(learing; 학습) 기술이란 인간이 학습을 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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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능 프로그램 몇 가지를 살펴볼 것이다. 가장 일반적으로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통해 기존에 존재하던 인간의 그림, 예를 들어 반 고흐 혹은 칸딘스키와 같은 인간 예술가의 작품을 변형하 여 유사한 스타일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방식이 있다. 이러한 그림들은 주로 ‘합성곱 신경망 (ConvolutionalNeuralNetworks)’10 11이라는 기술을 적용하여 만들어진다. 이 기술을 활용해 만들어진 그림들은 기존의 인간 그림 스타일과 유사한 그림을 재생산하는 경우가 주를 이룬다.

즉 [도 1] 좌측의 사진과 같은 이미지를 업로드하면 이를 중앙의 칸딘스키 작품 스타일의 그림 으로 변형시켜 준다 ([도 1] 우측).

이 인공지능 역시도 학습을 통해 스스로 어떠한 문제를 수행할 수 있도록 개발된 기술이다. 예를 들어 이미지에 서 특정 대상을 분류하는 일을 하는 인공지능의 경우, 그 대상의 특징을 이미지에서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 인공 지능이 스스로 학습하기 이전에는 이 특징값을 알려주는 것은 인간의 몫이었다. 하지만 기계학습을 통해 인공지 능은 스스로 그 대상의 특징을 파악하고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인공지능에게 ‘학습’이란 ‘특징 찾기’와 같 다. 그리고 이 기계학습은 바로 인공 신경망으로 인해 가능해졌다 (인공신경망 관련 설명은 아래 각주 11 참고) 여기서 심층학습이란 기계학습의 일종으로 인공 신경망이 여러 층으로 ‘깊게(deep; 심층)’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 에서 심층학습이라 불린다. 심층학습에 관한 더 자세한 설명은 본문 Ⅲ장 2절에서 언급된다.

10. 인간의 뇌가 신경망으로 구성되어 있듯이, 인공지능의 프로그램 역시도 인공 신경망의 구성을 통해 어떠한 문 제를 해결하게끔 만들어진 것이다. 인간의 신경망을 모방하여 만들어졌다고 하여, 인공 신경망이라 불린다. 이 인공 신경망은 다양한 용어로 불리는데, 퍼셉트론(perceptron), 층(layer), 신경망(neural networks) 등으로 불린 다. 인간 뇌의 신경망처럼, 하나의 값이 입력되면 다른 값이 출력된다. 그러나 모든 입력값이 다 출력값으로 나 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신경망이 일정 정도 이상의 강도만을 출력하듯이, 인공 신경망 역시 일정 수(數)의 값 을 설정하여 그 이상만을 출력값으로 한다.

11. 합성곱 신경망은 시각 이미지 인식 기술을 위하여 만들어졌다. 인공 신경망에 합성곱을 이용한 것으로, 시각 이미지의 특징을 찾는 과정에 합성곱을 활용하였다. 합성곱을 활용하면, 신경망에서 출력값이 너무 많아지는 것 을 방지하여 계산을 실용적이고 효율적으로 줄이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출력값을 줄이는 과정에서 소실되는 정 보들이 많이 발생한다. 바로 이 소실되는 정보들을 활용하여 이미지 스타일 변형 기술에 적용한 것이 합성곱 신 경망을 통한 이미지 제작 방식이다. 소실되는 정보들 덕분에 오히려 이미지는 더 추상적으로 변화한다. 본 논문 에서 설명하는 합성곱 신경망을 활용한 이미지 제작 방식은 ‘예술적 스타일의 신경 알고리듬(a Neural Algorithm of Artistic Style)’ 기술이다. 이는 합성곱 신경망을 개발한 레옹 개티스(Leon A. Gatys) 외 연구팀이 이 기술을 이 미지 스타일 변형에 적용한 인공지능 신경망이다. 이 기술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김전희, 김진엽, 「인공지능 시 대의 예술 창작」, pp. 96-98을 참조하라.

[도 1] 원본 사진(좌측), 칸딘스키의 작품(중앙), 합성곱 신경망을 활용한 결과물(우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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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렇게 기존의 작품만을 단순히 변형시키는 방법보다 더 인간의 예술 창작 방식과 유 사한 기술도 있다. ‘생성적 적대 신경망(GenerativeAdversarialNeuralNetworks)’을 이용한 기술이다. 이는 생성자(generator) 신경망과 분류자(discriminator) 신경망, 두 모델로 이루어 져 있다. 마치 인간 예술가가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을 스스로 평가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그 림을 완성해 나가듯이, 이 두 신경망은 서로 평가하고, 경쟁하고 보완하는 일을 한다. 생성자 신경망은 이름 그대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분류자 신경망은 생성자 신경망이 만들어낸 이미 지가 새로운 이미지인지, 아니면 기존에 존재하던 이미지인지 분류해 낸다. 이렇게 분류한 이 미지의 결과는 생성자 신경망에게 피드백으로 전달된다. 두 신경망의 경쟁을 통해 생성자 신경 망은 점점 더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방향으로, 분류자 신경망은 기존에 존재하던 이미지 와 생성자의 이미지를 더 잘 분류하는 뱡향으로 발전해나간다.

이 적대 신경망 기술이 인공지능의 그림 생산에 본격적으로 적용된 것이 ‘창의적 적대 신경 망(CreativeAdversarialNeuralNetworks)’이다. 창의적 적대 신경망은 위의 생성적 적대 신 경망처럼 두 신경망이 서로 경쟁하게끔 만들어져있다. 하지만 여기에 추가로 ‘창의성’이 부여 된다. 여기서 ‘창의성’이 있다는 것은, 인간의 예술작품을 학습하여 이미 존재하는 인간의 예술 작품이 아닌 새로운 스타일의 예술작품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이 창의적 적대 신경망이 인간에게 없던 새로운 그림을 만들어내게 하는 기술이다. 창의적 적대 신경망에서 분 류자 신경망은 자신에게 들어온 그림이 생성자 신경망이 만든 그림인지 아니면 인간이 그린 그 림인지 분류한다. 이에 덧붙여 그 그림이 기존의 ‘예술 스타일’12 중 어떤 것에 속하는지도 분류 한다. 반대로 생성자 신경망은 분류자 신경망을 속이기 위해 인간의 예술작품과 구분되지 않을 수준의 그림을 그려낸다. 나아가 이 그림을 분류자 신경망이 인간 예술 스타일 중 하나로 구분 하지 못하도록 기존에 없던 새로운 스타일로 만들어내려 노력한다. 그 결과 창의적 적대 신경 망의 생산물은 분류자 신경망이 인간의 그림인지 인공지능의 그림인지 쉽게 구분하지 못하도 록 인간이 만든 예술작품과 비슷하게 보이면서도, 동시에 기존 인간 예술 스타일 중 하나로 분 류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인간 예술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스타일의 그림을 만들어낸다 [도 2].

이러한 인공지능 그림들은 대부분 디지털 이미지로 그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물론 앞에서 언 급한 구글의 딥드림 프로그램 작품들은 전시를 위하여 출력되어 벽에 걸렸지만, 여전히 일차적 생산물은 디지털 상태로 존재한다.

12. 여기서 예술 스타일의 기준은 Wiki Art 데이터 세트이다. 이 데이터 세트는 15-20세기의 예술가 1,119명의 작 품 81,449장을 25개의 스타일(추상표현주의, 입체주의, 인상주의 등)로 분류하여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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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공지능 로봇의 물리적-그림

위에서 언급한 경우 외에도,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그림 제작에 사용하는 방식은 훨씬 더 다 양하다. 본 절에서 선보일 기술들은 위의 경우와 달리 하드웨어(기계나 로봇 등)를 통해 물리 적으로 그림을 ‘그려’낸다.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애론(Aaron)이다. 영국의 예술가 해롤드 코 헨(HaroldCohen)은 1973년 ‘그림 그리는 기계’를 만들었다. 코헨이 만든 초기 모델은 ‘거북 이(turtle)’라 불리는 조그만 로봇이 종이 위를 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었다 ([도 3] 좌 측). 이 초기 모델은 작은 기계가 하얀 종이 위에 검정 선으로 그림을 그렸고, 그 기계의 드로잉 에 코헨이 색을 칠했다. 이때의 작업들은 편지지 크기의 작은 그림에서부터 벽화까지 다양하게 나타났다. 1979년에는 샌프란시스코 현대 미술관(SanFranciscoMuseumofModernArt)의 벽에 커다란 벽화를 애론의 드로잉과 코헨의 색칠로 제작하여 전시하였고, 1983년에는 영국의 테이트 갤러리(TateGallery)에서도 전시를 가졌다. 커다란 벽화 작업의 경우, 애론이 드로잉을 종이에 그리면, 코헨이 이를 크게 확대하여 벽면에 옮기고 여기에 아크릭 물감으로 색을 입혔 다. 1980년에 들어 코헨은 초기 버전의 애론에게 사물과 사람 등에 대한 더 많은 규칙과 정보 를 집어넣음으로써 그 실력은 더 발전하였다. 그러나 당시만 하여도 코헨은 “애론에게 드로잉 하는 것을 가르치는데만 20년이 걸렸는데, 내가 죽기 전에 어떻게 애론에게 색칠하는 것을 가 르칠 수 있을지 모르겠다”13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초기 모델이 기계학습과 함께 급속한 발전을 이룩하였듯이, 애론 역시 코헨이 새로운 기술을 익히면서 빠르게 변화하였다. 1995년 새로운 버전의 애론이 등장하였 다. 기존의 ‘거북이’ 기계에서 벗어나 애론은 새로운 로봇 팔을 장착했으며, 가장 큰 변화는 드 로잉에만 제한되었던 그림 방식에서 벗어나 색칠까지도 가능해졌다 ([도 3] 우측). 당연히 이는 13. Chris Garcia, “Harold Cohen and Aaron - a 40-year Collaboration”, Compurter History Museum (August 23, 2016), https://computerhistory.org/blog/harold-cohen-and-aaron-a-40-year-collaboration/ (2021년 2월 1일 최종 접속).

[도 2] 창의적 적대 신경망을 통해 생산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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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복잡한 소프트웨어를 필요로 했는데, 코헨은 자신이 사용하던 C-언어에서 벗어나 인공지능 을 위한 링구아 프랑카를 활용했다.14 이를 통해 애론은 드로잉뿐 아니라 색도 칠할 수 있게 되 었다. 물론 이는 그의 ‘스승’ 코헨을 통해 가능해졌다. 코헨은 애론에게 드로잉 방식, 즉 대상의 형태를 그리는 기술을 ‘가르쳤을’ 뿐 아니라, 초기의 협업에서 벗어난 이후에는 애론에게 색을 사용하는 방식을 ‘가르쳤다.’15 그 결과 애론은 스스로 그림을 그리고 색을 칠하여 하나의 완성 된 그림을 생산해 낼 수 있게 되었다 ([도 4] 참고). 물론 그것이 오롯이 애론의 기술만으로 가능 한 것은 아니다. 애론은 대략 2분에 한 장 정도의 속도로 엄청난 양의 드로잉을 만들어낸다. 코 헨은 애론이 생산한 이미지들을 선별하여 다시 애론의 프로그램에 업로드 하고, 이 프로그램은 애론의 로봇 팔을 조종하여 업로드된 드로잉에 색을 입힌다. 따라서 이는 그림을 선별하고 작 동시키는 코헨의 작업인지, 아니면 실제로 그림을 ‘그리는’ 애론의 작업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 다. 코헨은 이와 관련된 질문, ‘코헨과 애론 중 누가 작품의 예술가인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자 14. ‘C-언어’란(C-language)란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운영 체제나 언어 처리계 등의 시스템 기술에 적합하게 만들 어 놓은 프로그래밍 언어이다. (컴퓨터 인터넷 IT 용어 대사전 참고) 코헨이 이후 습득한 ‘인공지능을 위한 링구 아 프랑카(국제언어)’(Lingua Franca for Artificial Intelligence) 역시 컴퓨터의 소프트 웨어를 위해 만들어진 언어 이지만, 이는 특별히 인공지능 기술의 디자인 언어를 위하여 만들어졌다. 링구아 프랑카는 모든 인공지능 시스 템에서 작동 가능한 디자인 언어이다. Lingua Franca, https://linguafranca.polytopal.ai/ (2021년 2월 3일 최종 접 속) 참조.

15. 코헨은 애론에 대한 자신의 논문에서 애론이 색을 칠하는 방식은 인간이 하는 방식과 당연히 다르다고 설명한 다. 그러나 그 둘이 서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색을 칠함에도, 여전히 그들은 색을 칠하는 같은 일, 다시 말해 이미 지의 빛의 구조를 조정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도 3] 애론 초기 모델 거북이(좌측), 1995년 이후 로봇 팔을 가진 애론(우측)

[도 4] 애론의 작업 모습(좌측), 애론이 만든 작품(우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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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애론의 관계는 르네상스 화가들과 그들의 조수들과의 관계와 비교할 수 있다고 답한다.

영국에서 활동하는 프랑스 출신의 예술가 패트릭 트레셋(PatrickTresset) 역시 자신만의 드 로잉 로봇 폴(Paul)을 만들었다. 폴은 앞의 애론과 달리 실제 대상(사람 얼굴)을 카메라를 통해 보고 로봇 팔을 이용해 종이에 그림을 그린다. 이러한 기술은 트레셋이 2009년 영국 골드 스미 스 대학의 AIKON-II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시작되었다. AIKON-II 프로젝트는 스케치하는 과정을 이해하고 이를 수행하는 로봇을 만들 목적으로 진행되었다. 여기서 얻은 기술에 트레셋 은 자신의 예술적 지식을 더하여 폴을 개발하고 2011년 런던의 한 갤러리에서 선보였다. 폴의 하드웨어는 책상, 볼펜을 쥐고 있는 로봇 팔, 카메라, 그리고 그 옆에 달린 조명과 의자로 구성 되어 있다 ([도 5] 좌측). 그 의자에 초상화의 모델이 자리하면, 폴은 카메라를 통해 모델의 얼굴 을 인식하고 얼굴의 형태를 로봇 팔로 그리기 시작한다. 어느 정도 형태가 그려지면 폴은 여기 에 명암을 입힌다. 이 역시도 볼펜을 통해 수행되기에 폴의 결과물은 항상 흑백의 드로잉 형식 의 초상화로 나타난다 ([도 5] 우측). 그러나 이는 모델에 따라, 그리고 모델을 비추는 조명의 양 과 위치에 따라 매번 다른 그림을 생산한다.

코헨과 마찬가지로 트레셋은 자신이 드로잉하는 방식을 폴에게 ‘가르쳤다’. 이는 자신이 대 상을 관찰하고 어떻게 얼굴을 스케치하는지, 그리고 여기에 어떠한 방식으로 명암을 넣는지 등 을 프로그램화하여 폴의 소프트웨어에 업로드한다. 하지만 그는 한 인터뷰에서 폴이 생산한 드 로잉들이 자신과 폴 중 누구의 작품인지를 묻는 질문에, 자신이 작품의 작가라고 대답한다.16 그는 자신이 폴을 만들었으며, 나아가 폴이 그린 그림에 대하여 마치 자신의 그림인 듯 평가하 고 판단한다고 설명한다.

폴이나 애론이 만든 그림들은 기존에 존재하던 인간의 예술 작품을 모방하는 수준을 넘어 인

16. Johan Nosta, “The Artistic Side of Artificial Intelligence”, in: Psychology Today (March 22, 2017), https://www.

psychologytoday.com/us/blog/the-digital-self/201703/the-artistic-side-artificial-intelligence (2021년 1월 28일 최종 접속)

[도 5] 폴이 모델을 보고 그림 그리는 장면(좌측), 폴이 제작한 그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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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처럼 대상을 관찰하고, 색칠하는 행위의 결과로 그림을 만들어낸다. 나아가 창의적 적대 신 경망과 같은 인공지능은 지금까지 인간이 만들어내지 않은 새로운 그림을 만들고자 시도한다.

이러한 기술의 결과물은 언뜻 보기에 인간 예술가의 그림, 특히 추상 형식의 현대 미술과 식별 불가능할 정도이다. 실제로 창의적 적대 신경망을 개발한 연구팀은 자신들의 신경망이 생산한 그림을 가지고 ‘튜링 실험’17을 진행하였다. 연구팀은 창의적 신경망으로 생산된 그림 3세트와 인간의 예술작품 2세트를 무작위로 18명의 피실험자들에게 보여주면서 이 중 어떤 그림이 인 간 예술가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혹은 컴퓨터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구분하게 하였다. 실험 결과 53%의 피실험자들이 인공지능의 그림을 인간이 그렸다고 생각했다. 즉 절반 이상의 사람들 이 인공지능의 그림을 인간의 작업으로 믿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트레셋 역시 폴의 그림 과 자신의 그림을 관람객이 구분할 수 있는지 때때로 실험해 보고는 한다. 그러면서 트레셋은

“놀라운 점은 폴이 마치 내가 화가였을 때 그린 그림들과 유사한 그림을 그려낸다”고 말한다.18 인공지능 그림에 대한 튜링 실험의 결과는 놀랍지만, 그리 충격적인 일은 아닐 수 있다. 앞에 서 보았던 인공지능의 디지털 그림들은 사실 우리가 아트페어나 갤러리에서 접하는 인간의 현 대 미술과 흡사해 보인다. 우리가 칸딘스키의 작품 모두를 속속들이 아는 것이 아니라면, 합성 곱 신경망이 만들어낸 칸딘스키 풍의 그림을 진짜 칸딘스키 작품과 구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 다. 이처럼 우리가 인공지능의 그림과 인간 예술가의 작품을 쉽게 식별할 수 없다면 우리는 인 공지능의 그림 역시 인간의 예술작품과 마찬가지로 예술로 받아들여야 할까? 하지만 단순히 인간의 예술작품과 유사해 보인다고 해서 인공지능의 그림을 예술로 인정할 수는 없다. 우리가 위작이나 모조품을 예술로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외형의 유사성은 예술성의 근거가 될 수 없 다. 인간 예술작품과의 외형적 유사성이 인공지능 그림의 예술성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창의적 적대 신경망의 그림은 어떠한가? 단순 모방이 아니라 인간의 기존 예술에 없던 새로운 스타일 17. 튜링 실험(Turing Test)은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이 고안한 실 험이다. 우리는 기계가 생각을 하는지, 혹은 인간이 생각을 하는지 겉으로 보아서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들의 행 동이나 말이 이를 답해 줄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튜링은 자신의 논문에서 이를 실험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였 다. 사람을 격리된 방에 두고 상대방과 대화를 하게 하는데, 이때 대화 상대는 기계이지만, 격리된 방에 있는 사 람은 이를 알지 못한다. 이 대화를 통해 사람이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기계는 최소한 인간 정도의 지능 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는 방법이다 (표준국어대사전 참고). 튜링 실험에 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앨런 튜링의

“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 in: Mind, New Series, vol. 59, no. 236 (Oct. 1950), pp. 433-460 (DOI:

10.1093/mind/LIX.236.433) 참고. 이러한 튜링 실험을 예술에 적용한 것은 1960년대 미국의 컴퓨터 아트의 선 구자 Michael Noll에 의해서이다. 그의 ‘몬드리안 실험(Mondrian Experiment)’은 몬드리안의 그림과 컴퓨터의 그 림을 무작위로 섞어 진행하였다. 그 결과, 단 28%의 사람들만이 몬드리안의 작품을 제대로 구별해냈다.

18. Catherine Mason, “An Artistic Turing Test”, in: British Computer Society (2012). http://www.catherinemason.

co.uk/an-artistic-turing-test/ (2021년 3월 4일 최종 접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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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예술작품을 인공지능이 만들어낸다면 우리는 이것을 예술이라 부를 수 있을까? 만일 인공 지능의 생산물이 예술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하여 이를 예술로 수용할 수 있을까?

만일 우리가 예술이 무엇인지 정의할 수 있다면, 바로 그 정의를 근거로 인공지능의 그림을 예술로 수용할지 아니면 거부할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인간 예술에 있어서 도 예술은 하나로 정의되지 못할 뿐 아니라, 설사 정의된다 하더라도 이 정의는 기존에 존재하 던 예술 제도에 의존하기에 새로운 현상을 예술의 범위 안으로 수용하는데 한계를 갖는다.19 렇다면 우리는 인공지능의 그림이 예술인지 아닌지 판단하기에 앞서, 이를 어떻게 수용해야 하 는지, 더 정확히는 어떻게 감상하고 경험할 수 있는지 알아보아야 한다. 그 감상과 경험의 과정 을 통해 우리는 인공지능 그림이 인간의 예술작품과 마찬가지로 미적 경험을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나아가 단순히 인간의 기존 예술과 ‘같은’ 미적 경험을 넘어 인공 지능의 그림이 다른 어떤 새로운 미적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지도 알아볼 것이다.

Ⅲ. 미적 경험

우리는 어떠한 작품을 접할 때, 그것이 예술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전에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느낌을 주는지 먼저 생각한다. 그 작품이 우리에게 미적 경험을 가져다주는지, 만약 가져 19. 예술 정의의 문제는 대표적으로 모리스 와이츠에 의해서 제기된 예술 정의 불가론이 있다. 와이츠는 가족을 구 성하는 구성원들 간에 비슷한 유사성을 가지고 있지만, 이 구성원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공통적인 요소가 존재하 지 않는다는 비트겐슈타인의 ‘가족 유사성’ 개념을 예술에 적용하였다. 따라서 예술 역시도 다른 예술들간의 유 사성을 통해 예술이라는 개념을 유지하지만, 그와 동시에 예술에 대한 하나의 절대적인 정의가 부재함으로 새 로운 예술작품이 등장하는 것을 허용하는 열린 개념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와이츠의 예술 정의 불가론은 유사한 외형을 가진 예술작품과 비예술작품을 구분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앤디 워홀의

<브릴로 박스> 작품은 동일한 외형의 비예술(실제 상품으로서의 브릴로 박스)와의 완벽한 유사성으로 인해 예술 이라기보다는 비예술에 가깝게 된다. 이러한 예술 정의 불가론을 극복하고자, 조지 디키는 예술에 대한 새로운 정의, 예술 제도론을 제시한다. 비트겐슈타인의 가족 유사성 개념이 외형상의 유사성만을 찾는다는 한계를 지적 하고, 가족들 사이의 유전적 연대라는 비전시적 속성을 제시한 만델바움의 영향으로 디키는 예술에서도 비전시 적 속성을 공통성으로 하여 새로운 예술 정의를 찾고자 하였다. 그는 단토의 예술계(art world)를 예술의 비전시 적 속성으로 제시한다. 예술계란, 예술작품 ,예술가, 관람객, 예술계의 체계로 구성된 예술의 사회적, 역사적 배 경으로 둘러싸인 개념을 의미한다. 만델바움과 단토의 영향 아래 탄생한 디키의 제도론은 예술작품을 “예술 제 도를 대표하는 사람들에 의해 감상을 위한 후보라는 지위를 수여 받은 인공물”로 정의한다. 이러한 예술 정의에 관한 논의는 무수히 다양한 예술 형태가 존재하는 현대에 들어 미학자들이 내놓은 최선의 이론들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예술 제도론과 같은 예술 정의는 기존 예술의 역사, 문화 등 기존의 체계를 기준으로 하여 새로운 예술을 예술 범위 안으로 분류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기존의 제도적 틀을 벗어난 새로운 예술의 등장에 제한적이고 소 극적인 입장을 취할 수 밖에 없다는 한계를 갖는다. 즉 인공지능 그림과 같이 기존의 체계가 존재하지 않거나 그 체계의 범위 밖에서 등장한 경우, 분류적 의미의 예술 정의는 결국 제대로 된 분류의 기준으로 작동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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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준다면 어떤 미적 경험을 주는지 생각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공지능의 그림 역시 우리에게 어떤 미적 경험을 가져다주는지를 살피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인간의 예술작품이 우리에 게 미적 경험을 제공한다는 전제하에, 만일 인공지능 그림에서도 우리가 미적 경험을 얻는다 면, 우리는 인간 예술작품과 마찬가지로, 인공지능 그림도 우리에게 미적 경험을 제공하는 가 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인공지능 그림을 어떻게 수용할 수 있는지, 즉 어떻게 감상하고 경 험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하여 미적 경험에 관한 논의가 필요하다.20

미학 내에서 미적 경험의 문제는 손꼽히게 복잡한 논의들로 엮여 있다. 특히나 미적 경험과 미적 가치, 예술적 가치, 미적 태도 등 다양한 논의들이 미적 경험의 논의와 얽혀있기에 미적 경험이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것만으로도 난해한 논의의 길이 될 것이다. 미적 경험은 여러 미 학자들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정의된다. 이 모두를 다룰 수는 없기에, 본 장에서는 미적 경험에 대한 초기적 정의를 제공한 비어즐리의 미적 경험을 살피고, 이를 보완하고 발전시킨 노엘 캐 롤의 미적 경험에 대한 설명을 살펴볼 것이다. 이 두 미학자의 미적 경험은 미적 대상의 내용에 기반하여 미적 경험을 설명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따라서 이들의 설명에 따라, 미적 경험을 제공하는 내용이 대상에서 발견된다면 우리는 그 대상을 통해 미적 경험을 얻는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미적 경험 논의는 인간의 예술작품뿐 아니라 인공지능의 그림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20. 미적 경험에 대하여 논하기 전에 우리는 미적 경험과 예술적 경험의 구분 문제에 대하여 간략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당연히 미적 경험과 예술적 경험은 구분된다. 미적 경험의 경우 그 대상이 인공물이 아닌 경우도 있을 수 있으며, 나아가 예술적 경험 역시 미적이지 않은 경험도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미적 경험을 목적으로 하지 않 는 종교적, 교육적, 선동적 예술작품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논문에서는 미적 경험을 통하여 인공지 능 그림의 탐구를 이어가는 데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현 인공지능 그림의 경우 미적 경험 외의 교육적, 종교적, 선동적 등과 같은 경험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는 없다. 나아가 미적 경험의 대상은 인공물을 넘 어서지만, 예술 영역에 있어서 ‘미적 경험을 제공하는 인공물’로 한정할 경우 이는 일반적으로 예술작품을 의미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인공지능의 그림이 다른 예술 작품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미적 경험을 제공한다면 우리는 이 그림들을 미적 경험을 제공하는 인공물로서 예술의 일부로 수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될 것이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미적 경험과 예술적 경험을 구분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예술적 경험을 제공한다 는 것 자체가 예술이라는 정의를 내포하고 있기에, 인공지능 그림이 인간에게 미적 경험을 제공하는 ‘인공물’이 라면 우리는 이를 당연히 예술적 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간주할 것이다. 즉 미적 경험이 예술적 경험의 유일한 것 은 아니며,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만, 우리가 인공지능 그림에서 인간의 그림과 마찬가지의 미적 경험 을 얻는다면, 우리는 그 인공물이 인간의 작품만큼 우리에게 미적 경험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할 수 있 다. 나아가 미적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어떠한 미적 가치를 제공하는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 역시 미적 경험에서 중요한 난제이지만, 이 모두를 다루는 것은 본 논문의 범위를 넘어서기에 다루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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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술 작품과 미적 경험

⑴ 비어즐리

비어즐리에게 있어 미적 경험은 예술 철학이 가진 주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중심 개념이다. 그 는 미적 경험을 통해 예술을 정의하고, 나아가 이를 통해 예술작품의 가치와 평가의 문제까지 도 해결하였을 뿐 아니라, 미적 경험의 가치에 관하여도 다루고 있다.21 비어즐리는 예술작품22 이란 미적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설명한다. 따라서 미적 경험을 제 공하는 목적에 성공한 인공물을 우리는 예술작품이라 설명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작품으로부 터 우리는 어떤 경험을 얻어야, 이것을 예술작품이라 할 수 있을까? 미적 경험이 무엇인지 알 아야만 작품으로부터 우리가 경험한 것이 미적 경험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비어즐리는23 통일성(unitiy), 강도(intensity), 복합성(complexity), 이 세 가지를 미적 경험의 주요 특성으로 설명한다.24 먼저 복합성을 포함하는 설명으로, 미적 경험은 현상적으로 객관적 인 장의 이질적이지만 상호연관된 요소들에 우리의 관심이 강하게 고정되는 경험이다. 예를 들 어 하나의 그림은 서로 다른 색과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색이지만 하나의 형 상을 구성하는 서로 연관된 요소들이다. 우리의 관심은 바로 이 대상에 고정된다. 이처럼 객관 적으로 존재하는 하나의 대상에 우리의 관심이 고정되는 경험이 미적 경험의 첫 번째 특징이 다. 둘째는 강도와 연관되는 것으로, 미적 경험은 현상적 장(field) 그 자체인 미적 대상에 대한 상당한 강도의 경험이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보고 느끼는 감정(emotion)은 주관적인 것이 아 니라 대상으로부터 얻는 미적 경험, 그 자체의 강도를 의미한다. 즉 우리는 어떤 대상을 바라보 고, 그로부터 예외적으로 강한 강도의 경험을 한다. 바로 이 상당한 정도의 강도는 일상의 경험 에서 쉽게 느낄 수 없는 것이며, 이것이 미적 경험의 두 번째 특성이다.

21. Noel Carroll, “On the Historical Significance and sturucture of Monre Beardsley’s Aesthetics: An Appreciation”, in:

The Journal of Aesthetic Education, vol. 44, no.1 (2010), pp. 2-10 (DOI: 10.1353/jae.0.0074), p. 9.

22. 비어즐리는 예술작품이라는 용어 대신 미적 대상, 혹은 예술작업(artworks)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23. 본 장에서 미적 경험을 다루는데, 존 듀이가 아닌 먼로 비어즐리를 초기 이론으로 다루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비어즐리는 미적 경험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는 그의 이론 전반에서 나타나는 경향인 데, 우리가 어떠한 대상에 대하여 ‘좋다’는 평가 역시도 단순히 주관성에 근거하지 않고, 객관적인 논리적 추론의 과정을 통해 도출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는 미적 경험에 대하여도 객관적인 기준과 해석 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존 듀이의 ‘하나의 완결된 경험으로서의 미적 경험’보다, 미적 경험을 객관적으로 해 석하고 있으며, 나아가 미적 경험을 주체의 주관적 경험이 아닌 미적 대상을 기반으로 설명한다는 점에서 인간 작품과 인공지능 그림 모두에 적용하기 용이하다.

24. Monroe C. Beardsley, Aesthetics: Problems in the Philosophy of Criticism (New York: Harcourt, Brace and World Inc.

1958). pp. 527-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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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적 경험에 대한 이후의 설명은 모두 통일성과 연관된다. 세 번째로, 미적 경험은 특이할 정 도로 강하게 결합되거나 일관된(coherent) 경험이다. 하나의 경험이 다음의 경험을 일관되게 불러일으킨다. 예를 들어 음악을 감상할 때, 비록 중간에 전화를 받느라고 혹은 창문을 닫느라 음악을 잠시 멈추더라도 다시 음악을 틀면 그 경험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책을 읽는 것도 마찬 가지이다. 다시 책장을 펴면 그 내용으로 다시금 빨려 들어가 그 이야기를 일관되게 따라가며 경험하게 된다. 물론 이는 다른 경험들의 경우, 예를 들어 수학 문제를 푸는 경험도 마찬가지라 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미적 경험은 감각적이며, 미적 대상과의 연관성 속에 있다는 25에서 다른 경험들과 구분된다. 마지막으로 미적 경험은 예외적으로 그 자체로 완결된 하나 의 경험이다. 그것은 다른 이질적인 요소들로부터 구분되는 경험이다. 미적 경험 내의 요소들 로부터 야기되는 충동과 기대감은 미적 경험 외의 다른 요소들을 해결해주거나 균형을 잡아주 는 것처럼 느껴진다. 따라서 어느 정도의 균형이나 합목적성에 도달하여 즐길 수 있게 된다. 예 를 들어, 우리의 주목을 끄는 미적 대상은 그것에 대한 우리의 충동과 기대감으로 인해, 그 경 험을 할 때 방해가 되는 요소들을 어느 정도 배제할 수 있게 함으로써 우리를 그 대상에 대한 하나의 완결된 경험으로 이끈다.

비어즐리에 따르면 위에서 언급한 미적 경험의 세 가지 특성들, 통일성, 강도, 복합성이 바로 미적 경험을 다른 경험들과 구분할 수 있게 해준다. 다른 경험들에서도 통일성, 강도, 복합성 등이 개별적으로 발견될 수 있지만, 이 세 특성들의 조합은 오직 미적 경험만이 유일하다.26 적 경험과 비교되는 다른 경험을 몇 가지 예로 들어보자. 앞에서 언급한 수학 문제를 푸는 경험 외에, 축구 경기를 보는 것은 우리에게 분명 어느 정도의 강도를 가져다주는 통일된 경험이다.

하지만 이는 일반적으로 복합성을 결여하는 경우가 많다. 즉 이질적이고 다양한 요소들의 상호 연관된 조합을 통해 우리의 관심을 강렬하고도 일관되게 고정시키는 경험이 아니라는 점에서 미적 경험과 구분된다.27

물론 미적 경험 외에도 우리는 다양한 다른 경험을 통해 즐거움이나 좋은 감정을 얻을 수 있 다. 친구들과 여행을 하거나, 산책하는 경험 역시도 미적 경험 못지않게 쾌를 불러일으키는 의 미 있는 경험일 수 있다. 하지만 미적 경험은 다른 경험과 구분되는 가치, 즉 다른 경험과 구분 되는 어떠한 긍정적 효과를 가져다준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굳이 미적 경험을 가져다 25. Monroe C. Beardsley, “Aesthetic Experience Regained”, in: The Journal of Aesthetics and Art Criticism, vol. 28

(1969). pp. 3-12 (DOI: 10.1111/1540_6245.jaac28.1.0003), p. 5.

26. Beardsley, Aesthetics: Problems in the Philosophy of Criticism, p. 530.

27. 그러나 만일 아주 예외적으로 이러한 세 가지 특성을 가진 경험을 우리가 스포츠를 통해 혹은 어떤 다른 경험으 로 얻을 수 있다면 비어즐리는 이 역시도 미적 경험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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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는 인공물에 예술이라는 지위를 내릴 필요가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미적 경험의 개 념만큼이나 그 효과 역시 다양하지만, 비어즐리의 설명28을 빌리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미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설명되었듯이 미적 경험은 긴장을 완화시키고 파괴적인 충동을 멈추 게 한다. 둘째, 미적 경험은 또한 사소한 갈등들을 스스로 해소하고 통합 또는 조화를 이루게 한다. 예를 들어 예술작품을 통해 경험하는 명료함은 우리가 어떤 문제로 인해 고민하는 상황 에 처했을 때, 우리의 마음을 더 확실하고 결단력 있는 상태로 만들어준다. 셋째, 미적 경험은 지각과 안목을 세련되게 만들어준다. 넷째, 미적 경험은 상상력을 발달시켜, 타인의 입장을 이 해하는 능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 다섯째, 미적 경험은 의학적으로 볼 때, 정신 건강에 도 움이 된다. 물론 치료라기보다는 예방적 차원에서 도움이 된다. 여섯째, 미적 경험은 서로를 공 감하고 이해하게 한다. 일곱째, 미적 경험은 인간의 삶에 이상(ideal)을 제공한다. 예술의 사회 적 역할을 쉽게 정의할 수는 없지만, 미적 경험은 목적과 수단 사이의 관계를 우리가 연결지어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이는 여러 철학자들이 말하듯이 파편화된 현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에 게 필요한 경험이다. 이상의 효과들은 미적 경험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들이며, 이러한 효과로 인해 미적 경험은 그 가치를 갖는다.

이상으로 살펴본 비어즐리의 논의는 자칫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경험으로 치부될 수 있는 미 적 경험에 대하여 타 경험들과 구분되는 객관적인 기준과 특성들을 제시하고자 했다. 나아가 미적 경험의 가치를 그 효과를 통해 설명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비어즐리의 미적 경험에 대한 설명은 그 정합성에도 불구하고 본 논문의 목표인 인공지능 그림에 적용하기에는 충분치 못하 다. 비어즐리에게 제기되는 다양한 비판 중 하나는 바로 아방가르드 예술을 반례로 한다. 아방 가르드 예술, 예를 들어 ‘다다’처럼 반미학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예술작품’들은 비어즐리의 미 적 경험 설명에 따르면 예술이라 보기 힘들다. 그 이유는 그가 미적 경험을 쾌로 설명하기 때문 이다.29 다다와 같은 작품들은 비어즐리가 설명하는 즐거운 미적 경험을 제공하지 않음에도 예 술작품이고, 여전히 우리에게 미적 경험을 주는 대상으로 여겨진다. 비어즐리 역시 이에 대하 여 답하고자 하였지만, 그의 대답이 석연찮음은 피할 수 없었다. 그는 이러한 작품들도 어느 정 28. 그러나 만일 아주 예외적으로 이러한 세 가지 특성을 가진 경험을 우리가 스포츠를 통해 혹은 어떤 다른 경험으

로 얻을 수 있다면 비어즐리는 이 역시도 미적 경험으로 본다.

29. Beardsley, “Aesthetic Experience Regained”, p. 9. 그는 미적 경험에 대하여 “쾌라는 용어가 모든 긍정적인 정서 적 상태들을 포함하게 하자, 그리고 나에게 미적 경험은 분명히 즐거운(pleasurable) 것이며, 사실 근본적으로 그 래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 이는 비어즐리의 논의에서 모순되는 지점이다. 1958년의 책에서 그는 미적 경험 과 가치의 문제를 설명하는데 도구주의적 관점을 채택하여 설명함에도 불구하고, 1969년 논문에서는 미적 경험 은 즐거운 경험이며, 필연적으로 그래야 한다고 설명한다. 또한 그는, 예술적으로 더 나음에 대한 자신의 논의에 있어서 미적 경험은 항상 즐거운 경험이라는 전제가 놓여있다고 언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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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의 강렬한 반응을 불러일으킨다고 설명하며, 그러한 강도 역시 여전히 미적 경험의 크기라고 언급한다. 다만, 이러한 경험들은 ‘새로움’일 때만 의미를 갖는다고 말하며 이후의 반복은 그 의미가 퇴색된다고 설명한다. 결국 그는 자신의 글 말미에, 그들이 가진 경험의 강도에도 불구 하고 솔직히 말해 이러한 작업들이 미적 경험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라고 언급한다.

쾌가 아닌 부정적 경험을 제공하는 예술 작품들을 미적 경험으로 설명하는데 어려움을 가진 비어즐리의 이론은 따라서 새로운 예술, 새로운 경험 즉 쾌나 불쾌 모두를 야기할 수 있는 예술 작품들을 설명하는데 한계가 있다. 인공지능 그림은 과거의 인간 예술을 모방하는 경우도 있지 만, 대체로 인간의 현대 미술과 같은 것을 제작하고자 한다. 현대 미술의 경우 쾌의 경험을 제 공하는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따라서 이와 유사한 인공지능 그림도 쾌가 아닌 미적 경험을 제공할 수도 있다. 그러한 경우, 비어즐리에 따르면 우리는 인공지능의 그림뿐 아 니라 현대 미술의 상당수를 미적 경험을 주지 못하는 대상으로 배제해야 할 것이다.

⑵ 노엘 캐롤

비어즐리와 유사하게, 노엘 캐롤 역시 미적 경험의 내용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한다. 그는 미 적 경험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그 첫 단계로 우리가 예술작품에 관하여 미적 경험이라 불리 는 것을 할 때 무엇을 하는지 묻는다.30 먼저 우리는 대상이 되는 작품의 형태와 구조에 주의를 기울인다. 그리고 우리는 그 작품의 미적이고 표현적인 특성에 관심을 갖는다. 즉 “예술작품의 디자인과 질적인 측면을 이해하고 이에 관심을 두는 것이 바로 미적 경험”31이라고 캐롤은 설명 한다. 따라서 우리가 미적 경험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우리는 그것의 내재적 가치나 평가적 의미가 아닌, 순수하게 미적 경험의 내용이 주는 정보에 집중해야 한다.32

예술작품을 경험한다는 것은 그 작품이 표현 혹은 현현하고 있는 방식을 이해하고 주목하는 것이다. 작품의 내용이 결국 우리가 경험하는 것이고,33 따라서 작품의 내용이 미적 경험의 내 용이 된다. 즉 작품의 내용, 그 정보들을 통해서 우리는 미적 경험이란 무엇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이 캐롤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미적 경험의 내용을 구성하는 것은 무엇일까? 앞에서 언급한 30. Noel Carroll, Beyond Aesthetics Philosophical Essays (New York: Cambridge Univ. Press 2001), p. 42.

31. Carroll, Beyond Aesthetics Philosophical Essays, p. 42.

32. 그렇기에 그는 미적 경험에 대한 자신의 설명이 가치와 평가를 배제하는 ‘수축적(deflationary)’인 설명이며, 그 대상의 ‘내용으로부터 야기된 설명(content-oriented approach)’이고, 또한 그 대상의 내용 정보를 나열하기에 ‘열 거적(enurmerative)’이라고 설명한다. Noel Carroll, “Art and The Domain of the Aesthetic”, in: British Journal of Aesthetics, vol. 40, no. 2 (April 2000), pp. 191-208 (DOI: 10.1093/bjaesthetics/40.2.191), p. 207.

33. 캐롤은 온건한 의도주의적 입장을 취한다. 따라서 작가의 의도가 성공적으로 작품에 투사되고, 그것을 우리가 성공적으로 감상할 때, 우리는 작품을 성공적으로 경험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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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을 다시 상기해보자면, 우리는 그 작품의 형태와 구조 등의 형식에 집중한다. 또한 그 형식들 의 표현적인 특성에 집중할뿐 아니라, 그것의 미적인 특성에도 관심을 갖는다. 따라서 가장 근 본적으로 우리의 미적 경험은 대상의 형식(foraml), 미적(aesthetical), 표현적(expressive) 영 역(properties)들로 구성되어 있다. 사실 캐롤이 설명하는 구성 요소들은 이미 비어즐리가 제 시한 미적 경험의 세 가지 특성들과 연관된다.34 비어즐리가 설명한 통일성, 복합성은 작품의 중요한 형식적 요소들이다. 강도 역시 캐롤이 설명하는 미적이고 표현적인 영역의 정도를 나타 내는 용어이다. 즉 비어즐리의 미적 경험에 대한 설명을 바탕으로, 캐롤은 미적 경험의 내용적 인 측면을 더 강조하여 세분화, 객관화하였다. 왜냐하면, 미적 경험에 대한 비어즐리의 설명은 그 통찰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느 정도의 강도인지, 어떠한 통일성이나 복합성인지 의문이 따라붙기 때문이다. 따라서 캐롤은 이를 대상의 형식이라는 객관적 영역과 관람자의 반응에 의 존하는 표현적이고 미적인 영역으로 구분하여, 이 두 영역이 미적 경험을 구성하고 있다고 설 명한다.

미적 경험에 대한 캐롤의 설명은 미적 판단을 내리는데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 준다. 우리가 어떠한 대상에 대하여 미적 판단을 내려야 할 때, 우리는 이제 캐롤이 제시한 미적 경험의 내용 에 기반할 수 있다. 작품이 훌륭하다, 그렇지 못하다 혹은 이것이 더 낫다 등의 판단을 위하여, 우리는 작품이 가진 형식, 미적, 표현적 영역들이 우리의 관심을 성공적으로 집중시키는지, 그 렇지 못한지 등을 생각할 수 있다.35 다시 말해 우리가 인공지능 그림이 보여주는 형식과 그것 이 가진 미적, 표현적 요소들을 이해하고 거기에 관심을 집중한다면, 우리는 그것들이 우리에 게 미적 경험을 제공한다고 말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비어즐리의 미적 경험이 아방가르드 예 술작품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모호한 태도와 달리, 캐롤의 미적 경험에 대한 설명은 내용에 기 반하는 중립적인 설명이기에 부정적인 혹은 불쾌의 미적 경험에 대해서도 열려있다. 다시 말 해, 캐롤의 미적 경험은 아름답고, 좋은 것만을 미적 경험의 의미로 포섭하는 것이 아니라, 미 적 경험 그 자체는 부정적이지도 긍정적이지도 않다. 다만 그 경험이 가진 기능이 성공적으로 목적한 결과를 불러일으키면 그것은 좋은 경험이 된다.36 따라서 우리가 불쾌를 야기하는 기괴 34. Noel Carroll, “Defending the Content Approach to Aesthetic Experience”, in: Metaphilosophy, vol. 46, no. 2 (April

2015), pp. 171-188 (DOI: 10.1111/meta.12131), p. 172.

35. Noel Carroll, “Recent Approaches to Aesthetic Experience”, in: The Journal of Aesthetics and Art Criticism, vol. 70, no. 2 (Spring 2012), pp. 165-177 (DOI: 10.1111/j.1540-6245.2012.01509.x ), p. 175

36. 노엘 캐롤 역시 비어즐리와 마찬가지로 미적 경험에 대해 도구주의적 관점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비어즐리가 실제로는 미적 경험은 아름다운 경험이라고 설명한 것과 달리, 캐롤은 미적 경험 자체는 아름다운 것도, 내재적 가치를 가진 것도 아니며, 이는 단순히 어떠한 목적(여기서는 대상으로부터 특정한 경험을 하는 것)에 도달한다 면 이는 성공적인 경험이 된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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