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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칼럼] 음악의 패러다임 전환 - 바그너의 음악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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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업화학 전망, 제23권 제2호, 2020

음악의 패러다임 전환 – 바그너의 음악 드라마

강 정 원 교수 (고려대학교 화공생명공학과)

우리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건이나 인물이 존재한다. 과학 의 역사를 살펴보면 근대 과학과 현대 과학의 분기점에 아인슈타인의 양자역학이 있었고, 고전 미술과 현대 미술의 경 계점에 피카소의 입체주의가 있었다. 음악에서 예외가 없는 듯, 고전과 낭만파 시대를 지나서 후기 낭만파에서 현대를 잇는 시점에 중요한 작곡가가 위치한다. 바로 리하르트 바그너다.

바그너는 음악사의 분기점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작곡가이다. 음악 분야뿐만이 아니라 오페라의 공연을 시대정신 을 대표하는 종합 예술 행사로 승화시켜서 문화의 분기점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와 그의 자손들이 시작한 <바이 로이트 페스티벌>은 한때 나치 선전의 주요 도구가 되기도 했고, 20세기 중반에는 아방가르드-최소주의(Minimalism) 공연 문화를 선보이는 장소가 되기도 했다. 사상적으로 백인 우월주의-유대인 혐오 사상을 지나서, 한때는 부의 상징 으로 여겨지기도 했고, 지금은 그동안 금기시되었던 인종 차별 문제와 성 해방이 주제로 등장할 만큼 변화무쌍한 역사 가 있다. 바그너 자신이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그의 음악과는 별개로 하나의 문화적 풍조처럼 “바그너리 안(Wagnerigan)”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고, 추종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이 격론을 벌일 정도로 하나의 문화적인 흐름으로 인식되어 왔다.

문학자, 사상가들이 말하는 바그너와 별개로 순수히 음악적으로 바그너를 접해도 그저 “충격”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음악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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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C News, Volume 23, No. 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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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없다. 바흐-모차르트-베토벤-슈베르트-브람스로 이어지는 오스트리아-독일 음악의 전통을 깨고, 오페라를 완전히 새로운 형식으로 재탄생시킨 바그너는 음악계의 아인슈타인이라고 부를 만하다.

음악적인 특징은 뒤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먼저 음악의 규모를 살펴보면, 그 공연 시간과 무대 스케일이 압도적이다.

그의 대표작 “니벨룽의 반지(Der Ring des Nibelungen)”는 총 4부작 오페라로 (사실 그는 오페라보다는 Music Drama 라는 말을 더 선호했다) 각 오페라는 약 3~4시간의 공연 시간을 기록하고 있어서, 전곡을 감상하려면 종일 감상해도 모자라는 장대함을 자랑한다. 4부작 중에서 1개의 작품에도 많은 시간이 소요되니, 휴식한다고 하더라도 관객에게는 커 다란 도전일 수밖에 없다.

오페라 각본의 내용은 대부분 오페라가 그렇듯이 별난 점은 없다. 서양의 신화들이 비슷비슷하다 보니 “니벨룽의 반 ”의 내용은 얼핏 보면 영화 “반지의 제왕”과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금에 목숨을 건 난쟁이가 등장하고, 용을 죽 이는 장면, 저주가 얽힌 반지에 관한 이야기 등 서양 신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여러 가지 요소가 혼합되어있다. 단지 결론이 비극이라는 점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재미있는 점은 “방랑하는 화란인”이라는 오페라의 내용은 “카리브의 해 ”이라는 영화에서 약간 각색되어서 사용되고 있으니 오페라의 주제에 관한 한 바그너는 미래의 영화산업을 예측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듯하다.

바그너의 대표적 음악은 대부분 오페라(뮤직 드라마)이다. 3~4시간이나 되는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것이 그다지 쉬 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이 음악을 이해하는데 몇 가지 지름길과 힌트가 존재한다.

첫 번째는 그의 오페라의 서곡/전주곡/간주곡들이다. 특히 바그너의 오페라의 소품들은 오페라 전체의 분위기를 설 명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며, 아주 훌륭한 곡들이 많다. 탄호이저 서곡, 로엔그린 서곡,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주곡/

간주곡, 니벨룽의 반지 중에서 간추린 곡들(발퀴레의 기행, 지크프리트의 장송행진곡, 발퀴레 전주곡, 숲의 속삭임) 등 은 그 자체만으로도 완성도를 가지며, 악극의 전체 내용을 압축하고 있어서 부담 없이 즐기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초보자의 관점에서는 서곡/전주곡/간주곡을 시작으로 바그너의 음악을 시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여전사들이 하 늘에서 말을 타고 날아다니는 모습을 묘사한 발퀴레의 기행(Ride of the Valkyrie, 그림 참조)은 영화 <지옥의 묵시록>

에서 잔인하게 헬기 사격을 하는 장면에 사용되어서 유명해진 곡이다. 약 10~20년 전에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게 임 <스타크래프트>에 등장하는 발퀴리라는 비행기의 이름도 독일의 전설에서 따온 것을 연상해 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유도동기(Leitmotif, 라이트 모티프)”라고 불리는 작곡 기법이다. 이 기법은 가사의 의미를 알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바그너의 오페라의 많은 부분에서 이전의 이야기를 노래로 전개하는 경우들이 있다. 이때, 난쟁이, 거 인, 칼, 반지, 사랑하는 사람 등에 대한 언급이 이루어지는데, 바그너는 난쟁이의 선율, 칼에 해당하는 선율, 사랑하는 마음에 대한 선율을 미리 지정해 놓고, 가수가 가사를 노래할 때, 라이트 모티브(각 명사에 대응하는 선율)를 교묘하게 조합하여 곡을 완성해 놓았다. 따라서 독일어를 이해하거나 가사가 자막에 등장한다면, 가사와 라이트 모티프가 일치하 는 것을 느끼면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이런 면이 하나의 장벽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약간의 노력만 있으면, 아주 재미있게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세 번째는 바그너는 “무한선율”을 추구한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오페라의 경우에는 각개의 곡 들이 분리되어 있다. 예를 들어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을 감상한다면 사람들은 “어느 개인 날”이라는 아리아를 기다리며 감상할 것이다. 바그너의 오페라에는 <아리아>의 개념이 없다. 모든 것이 극 일부일 뿐이며, 모든 가사는 서로 주고받는 말이기 때문에 곡의 구분이 없다. 심지어 서곡이나 전주곡/간주곡도 그대로 이어져서 전체 오페라는 통짜 음 악이 된다. 유명한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사랑의 이중창은 무려 40분이나 전개된다. 그저 음악이 지속해서 이어지기만 한다. 바그너는 이런 특성 때문에 자신의 곡들이 <오페라>라고 불리는 것을 싫어했고, 자신이 Music Drama라는 새로 운 장르를 개척했다고 생각했다. 매니아들은 환영할 만한 요소일 것이고, 초보자들에게는 음악회를 졸리게 하는 또 다 른 요소일 것이다. 바그너의 음악은 <무한선율>이다. 그저 음악이 끝없이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바그너의 음악에서 이해해야 하는 부분은 <반음계>의 시작이다. 바흐의 평균율에서 시작된 장조/단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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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업화학 전망, 제23권 제2호, 2020

체계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서곡에서 시작된 반음계의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아픔은 이 후의 작곡가들에 의하여 철저히 해부되어서 이제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음악들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 었다. 그래도 바그너의 반음계는 들을 만하다. 하지만 후배 작곡가들의 음악은 수십 년을 음악을 들은 사람들도 이해하 기 어려운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서 관객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다. 아널드 쇤베르크나 존 케이지의 음악을 “나의 베스 트 음악”이라고 부를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바그너를 처음 접하는 분들에게는 서곡/전주곡/간주곡을 모은 Highlight 음반을 추천하고 싶다. 이런 종류의 음반에 는 섬세한 표현이 뛰어난 카라얀의 연주가 빠질 수가 없고, 다소 느릿하지만, 감성이 풍부한 칼 뵘의 음반도 강력히 추천한다.

본격적으로 전곡 감상에 돌입하고 싶은 분들은 게오르그 솔티의 <니벨룽의 반지> 전곡 집을 추천하고 싶다. 반드시 한국어 번역판의 가사집도 함께 구해야 한다. 이 녹음은 <반지의 신화>에 어울리는 어두움을 갖추고 있고, 영웅담에 어 울리는 박력 있고 힘찬 연주를 들려준다. 독주자들도 당시 최고의 바그너 가수들을 고용하고 있음으로 이 음반보다 더 나은 음반을 찾기는 그다지 쉽지 않은 듯하다. 제임스 킹/비르기트 닐슨/한스 호터/크리스티나 루트비히 등 가수들의 중량감이 돋보인다. 바그너의 최고 지휘자로 여겨지는 한스 크나퍼츠부쉬의 명반도 있지만, 모노 녹음인 데다 녹음의 상태가 좋지 못해서 솔티 음반을 따라가기는 힘든 듯하다. 재미있는 점은 <반지의 제왕>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중의 일부 음악은 바그너의 음악을 벤치마킹한 듯 “라이트 모티프”를 사용하고 있고, 오케스트레이션도 비슷하다는 점이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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