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국해 분쟁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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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긍찬 아시아·태평양연구부 교수

요약

Ⅰ. 문제의 제기: 미‧중 경쟁과 ASEAN의 딜레마

Ⅱ. 중국의 대(對)ASEAN 접근 1. 중-ASEAN 관계 정상화 2. ASEAN의 전략적 중요성 3. 대(對)ASEAN 외교의 양면성 4. 중국의 “2+7 이니셔티브”

Ⅲ. ASEAN의 전략적 대응 1. 동남아국가들의 대(對)중국

위협인식

2. 대(對)중국 포용정책으로의 전환 3. ASEAN의 대(對)중국 위험회피

전략

4. 중국의 2+7 이니셔티브에 대한 반응

5. ASEAN의 내부적 취약성

Ⅳ. 미국 변수와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1.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 2. 최근의 남중국해 문제 3. 향후 전망

Ⅴ. 한국의 고려사항

부록: <표-1> 2015년 남중국해 주요연표

미‧중 경쟁과 ASEAN의 전략적 대응:

남중국해 분쟁을 중심으로

목 차

2015-07 정책연구과제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를 바탕으로 공공외교의 구현과 외교정책 수립을 위한 참고자료로 작성된 것으로서, 외교부 및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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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약

최근 동남아 국가들의 최대 딜레마는 미·중 경쟁과 갈등이 첨예화되어 궁 극적으로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양자택일을 강요당하거나, 또는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으나 향후 미·중이 합의하여 이 지역을 공동지배할 가능 성이다. 이러한 두 가지 시나리오 하에서는 모든 동남아 중소국가들이 무력 화될 수밖에 없을 것인바, ASEAN에게는 이러한 가능성을 회피하기 위한 외교적 수단 강구가 중요한 정책적 관심사가 되고 있다. 물론 대다수의 동 남아 국가들은 기본적으로 미국, 중국 모두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하나, 향후 제로섬(zero-sum)적 양상을 보일 가능성이 높은 미·중 경쟁 하 에서 이는 쉽지 않은 사안이라 할 것이다.

특히 2015년에 들어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은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ASEAN 국가들에게 또 다른 도전을 안겨주고 있다. 중국이 남중국 해상에서 대규모 인공섬을 매립하고 군사시설을 구축하기 시작했기 때문이 다. ASEAN이 이에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한 이래 미국이 이 문제에 직접 적으로 개입함으로써, 남중국해 문제는 기존의 중국-ASEAN 간 분쟁에서 미국-중국 간 뜨거운 안보논쟁으로 비화되고 있다. 향후 이 문제는 미‧중관 계를 가름하는 핵심적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으로 보이며, 동남아지역의 새로운 안보지형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 분명하다.

이와 관련하여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문제는 향후 국제관계 전반에 대해 중국이 주장하는 새로운 가치와 신념이 미국의 기존 가치와 신념과 공 존할 수 있는가를 가름하는 일종의 시험대가 되고 있다. 만약 이러한 양대세 력 간 이해관계의 차이가 궁극적으로 타협 불가하거나 회피할 수 없는 것이 라면 미국과 중국 간 군사적 대결 양상이 초래될 수도 있으며, 2016년 미국 의 대선과정에 주요 쟁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차기 미국 행정부도 중국과의 기존의 전략적 파트너쉽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접어버리고, 중국 으로부터의 심각한 도전에 정면으로 대응하는 대(對)중 견제 강화 또는 나아 가 봉쇄정책으로 방향전환을 시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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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전망과 관련하여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는 미국과 중국이 상호 전 략적으로 순응, 타협하는 방안이다. 단 이러한 경우에도 몇 가지 전제조건 들이 충족되어져야만 한다. 일단 미국이 중국의 높아진 국제적 위상을 존중 하고 이에 상응하는 중국의 이익을 배려해 주어야 한다. 대신 중국은 미국 이 주장하는 항행의 자유, 국제법적 지배원칙, 분쟁의 평화적 해결, 아태지 역의 미군사력 유지 등을 받아들여야 한다. 동시에 미국과 중국 그리고 ASEAN 국가들은 일반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분쟁의 해결 또는 관리방안에 합의해야 하며, 기존의 국제법적 규범과 제도가 적용될 수 있어야 할 것이 다. 즉 아태지역에 개방적이며 포괄적이고 협력적인 안보공동체가 필요하 다는 것이며, 현재 중국과 ASEAN이 진행 중인 COC 협상의 성공적 결과가 중요한 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핵심은 보다 높아진 국제적 위상과 이와 관련한 자국의 안보이익을 관철하려는 중국과 기존의 국제법적 질서를 유지하려는 미국과 어떻게 조 화와 타협점을 찾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양측 간 이러한 조화와 타 협이 이루어진다면, 중국은 보다 안정된 환경 하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아시 아 운명 공동체를 건설하려는 노력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며, 미국은 자신 이 강조하는 항행의 자유, 국제법적 지배, 아시아지역에 대한 전략적 접근 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의 외교당국자들과 전문가들은 미‧중관계를 관성적으로 한 반도 문제와 동북아 4강 관계의 차원에서만 접근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항 상 미국의 대(對)중 정책을 한‧미관계, 미‧일관계, 중‧러관계 등 주요 강대국 관계에서 파악하려는 동시에, 이를 언제나 북한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그러나 최근의 남중국해 문제는 우리에게 보다 광역 차원의 접근 필 요성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남중국해 문제는 이제 더 이상 중국-ASEAN 간 지역적 안보 쟁점이 아니라 아시아지역 전체 나아가 세계적 차원에서 미‧

중관계를 새롭게 규정하는 중요한 시험대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그간 남중국해에서 우리의 이해관계를 고려하여 원칙적 입장을 표명해 왔으나, 2015년 EAS 정상회의에서 비군사화 공약준수를 언급한 것 은 기존의 입장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향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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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이 항해의 자유와 비군사화의 개념과 해석을 어떻게 할 것인가 따라 이 문제들은 지속적인 쟁점 사안으로 부상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 이 문제들에 대해 국제법적 검토와 함께 국익을 극 대화할 수 있는 외교적 대응방안들을 지속적으로 검토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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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문제의 제기: 미‧중 경쟁과 ASEAN의 딜레마

최근 아시아 지역은 미국과 중국 간 치열한 전략경쟁의 무대가 되고 있는 바, 물론 동남아 지역도 그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동남아 10개 중소국가들 로 구성된 아세안(ASEAN: 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은 미·중 간 영향력 경쟁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취약한 상황에 처해 있다. 동남아 국가들은 날로 과열되고 있는 미·중 간 전략경쟁의 와중에서 양대 강대 세력들에 의해 피동적으로 선택을 강요당할 가능성을 내심 우려 하고 있으며, 최악의 상황을 회피하기 위한 다각적인 외교적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1980년대 이후 고도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국제무대에서 자신감을 회복한 중국은 동남아국가들의 친중화를 목표로 1990년대 말부터 ASEAN 국가들에 대한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증대시켜 왔다. 냉전 종식 이후 중국은 1990년대 초반 과거 적대적 관계에 있었던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필리 핀, 베트남 등 ASEAN 국가들과 국교를 정상화했으며, 특히 1997년 동아시 아 경제위기 이후에는 활발한 경제협력과 매력적 외교공세를 통해 ASEAN 국가들의 주요 협력 파트너로서 입지를 착실히 다져왔다. 동시에 중국은 라 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등 인도차이나의 전통적 우호 국가들에 대해서도 지 속적인 정치, 경제, 군사, 외교적 지원을 아끼지 않음으로써 이들과 긴밀한 관계를 계속 도모해 왔다.

궁극적으로 세계 강대국으로 도약을 목표로 하고 있는 중국이 동남아 국 가들과 관계 강화에 몰두했던 이유는 동아시아 지역강대국으로서 지위를 우선적으로 확보할 필요가 있었으며, 이를 위해 주변 동남아 국가들의 친중 화와 ASEAN의 지지 확보가 무엇보다도 시급했기 때문이다. 급성장하는 경 제력과 매력적 외교공세를 통하여 중국의 대(對)ASEAN 접근강화는 적어도 2000년대 말까지 매우 성공적으로 진행되었으며, 중국의 동남아 지역에 대 한 영향력은 비약적으로 증대되었다. 2000년대 말 동남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이 지역을 거의 방치하다시피 했던 미국의 기존 영향력을 위협하 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일부의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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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1975년 월남전 패배 이후 동남아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관심은 현 저하게 줄어들었다. 월남전 이후 미국은 동남아에서 베트남 군사기지를 중 심으로 한 소련의 해군력 신장을 견제하기 위해 필리핀 내 군사기지를 유지 해 왔으나, 1980년대 말 소련방의 붕괴와 냉전 종식 이후 방만한 군사비 지 출삭감을 위해 더 이상 동남아에 대규모 군사기지를 유지할 필요성이 없어 졌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92년 필리핀의 대규모 해공군 기지 철수를 전격 단행한 미국은 상당 기간 동남아 지역을 전략적 우선순위에서 배제해 왔다. 더욱이 2001년 9.11 사태로 미국 대외정책의 초점이 “테러와 의 전쟁”과 중동지역으로 옮겨지면서 미국은 계속 동남아의 전략적 가치를 평가절하해왔으며,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이 지역에 대해 여전히 압도적인 군사력 우위 를 유지해 왔고, 특히 남중국해를 포함한 광범위한 아·태 해역에 대한 지속 적 감시와 순시를 통해 이 해역을 지배하는 유일한 역외세력으로서 미국은 결코 동남아를 완전히 떠났던 적은 없었으며, 다만 전략적 우선순위에 두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2010년을 전후로 동남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증대 현상이 역전 되고, 미국이 이 지역에 대한 새로운 전략적 관심을 표명함으로써 동남아 지역은 미·중 간 영향력 경쟁의 새로운 장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2009년 부터 2010년 사이 중국이 보인 강경하고 공세적인 대외 행태는 동남아 국 가들의 대(對)중국 위협인식과 중국의 영향력 증대에 대한 내부적 우려를 증폭시켰는바, 이 시기 중국은 동남아 국가들과 영유권 분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남중국해에 대해 이를 양보할 수 없는 중국의 “핵심 이익”으로 규정하 고 외교적 타협의 여지를 배제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중국은 갑자기 동남아 외교 무대에서 “공적”으로 각인되었으며, 지금까지 중국과 우호적 관계를 맺어왔던 다수 역내 국가들은 중국과 일정한 거리를 두기 시작함으로써 그 간 축적했던 신뢰를 상당 부분 상실하게 되었다.

한편 2009년 출범한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는 테러문제와 중동지역에 몰 입했던 부시 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한 반성으로서 “아시아 중시정책(pivot to Asia 또는 rebalancing)”을 새삼 강조하기 시작했는바, 이는 물론 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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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에서 약진하고 있는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2010년 ASEAN 지역 안보 포럼(ARF: ASEAN Regional Forum)에서 중국이 보여준 남중국해에 대한 비타협적 자세는 미국의 대(對)ASEAN 관계강화를 위한 시의적절한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

미국은 아시아 중시정책의 일환으로 동남아 국가들과 안보, 경제협력 관계 를 재강화하기 시작했는바,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태국, 필리핀 등 전통적 우호 국가들은 물론, 중국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의 핵심 당사국인 베트남 과 새로운 민주화 여정을 시작한 미얀마 등과도 양자 관계 강화를 적극 모 색하기 시작했다. 또한, 2011년부터는 ASEAN이 주도하는 동아시아정상회 의(EAS: East Asia Summit)에 공식 참여함으로써 대(對)중국 견제 구도를 가시화했으며,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PP: Trans-Pacific Economic Partnership)에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들의 참여 를 유도하기 시작했다.

한편 동남아 국가들은 대체로 대(對)중국 견제를 위해 이 지역에 대한 미 국의 개입 강화를 환영하고 상대적으로 소원했던 미국과의 양자 및 다자관 계 증진에 노력하고 있으나, 동시에 미·중 간 과도한 전략경쟁이 자신들에 게 미칠 수 있는 부정적 파급 효과를 우려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수 동 남아 국가들에게 중국은 경제적 관점에서는 필요한 존재이나 안보적 차원 에서는 여전히 위협적 존재이며, 미국도 대(對)중 견제를 위해서는 필요한 존재이나 미국과의 과도한 의존적 관계 또한, 자신들에게 전략적 부담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ASEAN은 각 회원국들 마다 중국에 대한 친밀도 내지는 선 호도가 서로 달라 중국의 영향력 증대에 대해 일관된 태도를 유지하기도 어 려운 상황이다.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베트남 등은 중국견제에 상 대적으로 적극적인 입장인 반면, 태국, 말레이시아,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 마 등은 상대적으로 친중적 성향을 보여 왔으며, 특히 캄보디아는 대표적 친중 국가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미국 주도의 TPP 협상에 참여하고 있는 말레이시아와 민주화 과정에 들어서기 시작한 미얀마는 보다 미국에 가까 워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국과 같이 대다수의 동남아 국가들은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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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적으로 미국, 중국 모두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하나, 향후 제로 섬(zero-sum)적 양상을 보일 가능성이 높은 미·중 경쟁 하에서 이는 쉽지 않은 사안이라 할 것이다.

현재 동남아 국가들의 최대 딜레마는 미·중 경쟁과 갈등이 첨예화되어 궁극적으로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양자택일을 강요당하거나, 또는 가능성 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으나 향후 미·중이 합의하여 이 지역을 공동지배 (condominium of power)할 가능성이다. 이러한 두 가지 시나리오 하에 서는 모든 동남아 중소국가들이 무력화될 수밖에 없을 것인바, ASEAN에게 는 이러한 가능성을 회피하기 위한 외교적 수단 강구가 중요한 정책적 관심 사가 되고 있다.

최근 특히 2015년에 들어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은 새로운 양상으로 전 개되고 있으며, ASEAN 국가들에게 또 다른 도전을 안겨주고 있다. 중국이 남중국 해상에서 대규모 인공섬을 매립하고 군사시설을 구축하기 시작했 기 때문이다. ASEAN이 이에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한 이래 미국이 이 문 제에 직접적으로 개입함으로써, 남중국해 문제는 기존의 중국-ASEAN 간 분쟁에서 미국-중국 간 뜨거운 안보논쟁으로 비화되고 있다. 향후 이 문제 는 미‧중관계를 가름하는 핵심적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으로 보이며, 동 남아지역의 새로운 안보지형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 분명 하다.

이 연구는 미‧중 경쟁과 이에 대한 ASEAN의 전략적 대응양식을 검토해 보려는데 있다. 따라서 먼저 중국의 대(對)ASEAN 접근과정을 분석보고 이 에 대한 ASEAN의 대응양식을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최근 중-ASEAN관 계와 미‧중관계의 주요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미국의 대(對)아시아 정책 과 남중국해 문제를 분석해 보고, 향후 한국의 고려사항을 도출해 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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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중국의 대(對)ASEAN 접근

1. 중-ASEAN 관계 정상화

중국은 냉전기 미소 양극체제 하에서 동남아에 대해 지역적 차원의 정책 을 추구할 여력이 없었다. 중국이 동남아와 ASEAN의 전략적 중요성을 전 면 재평가하게 된 계기는 냉전 종식과 동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중국의 부상 이 가시화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냉전 종식 이후 중국은 새로운 국제환 경의 변화에 대응하고 1989년 천안문 사태로 초래된 외교적 고립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과거 적대관계를 유지했던 ASEAN에 대해 새로운 관심을 갖 게 되었다. 중국은 자국의 경제성장을 위하여 ASEAN 국가들의 시장, 자원, 자본, 기술, 경영기법 등을 적극 활용해 나가고, 구소련방 해체 이후 인도차 이나 지역에서 자국의 영향력 증대를 도모해 나갈 새로운 기회를 엿보게 되 었다. 또한, 남중국해의 잠재된 에너지 자원을 개발하고, 미얀마를 통해 인 도양에 대한 해양 접근권을 확보해 나갈 필요성도 제기 되었다.

이는 냉전 종식 이후 중국이 ASEAN에 대해 경제협력과 같은 일반적 이 해관계를 넘어서는 전략적 이해관계를 갖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미 국뿐만 아니라 일본, 인도, 러시아 등 역내·외 강대국들과 전략적 경쟁 관계 에 있는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동남아 중소국가 연합체인 ASEAN은 결코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이들과 실질협력을 확대, 강화해 나감 으로써 자신의 외교적 입지를 넓혀 나갈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1990년대 초반 중국은 미수교국이었던 인도네시아, 필리핀, 싱가 포르, 브루나이, 베트남 등 다수의 동남아 국가들과 연이어 국교 정상화를 이룩하였다. 이러한 중국-ASEAN 관계의 극적인 변화는 양측 간 국교정상 화와 함께 ASEAN 확대외무장관회의(PMC: Post Ministerial Conference) 와 ASEAN 지역 포럼(ARF) 등 ASEAN이 주도하는 지역협력구도에 대한 중 국의 긍정적 참여로 나타났다. 그러나 1997년 이전까지 중국의 대(對)동남 아 접근은 주로 인도차이나 국가들에 집중되었는바, 중국은 ASEAN 국가들 과 공식수교하기 이전부터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등 인도차이나 국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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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대한 정치, 경제, 군사, 외교, 이념적 지원을 계속함으로써 동남아 진출 의 전초기지를 확보하려는 노력을 경주했다.

2. ASEAN의 전략적 중요성

중-ASEAN 관계의 또 다른 분기점은 1997년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 시아, 한국 등 다수 동아시아 국가들을 강타했던 동아시아 경제위기였으며, 이는 중국의 대(對)ASEAN 접근을 본격화하는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무 엇보다도 1980년대 이후 지속적인 고도 경제성장을 이룩해 왔고, 당시 역 내 경제위기로부터 한발 벗어나 있었던 중국은 지역 문제 해결에 더욱 자신 감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1990년대 후반 동아시아 지역의 전략적 가치에 대한 중국의 인식에도 중요한 변화가 나타났다. 즉, 지역강대국인 중국이 세계강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속해 있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확고한 영향력을 발휘 해야 하며, 이를 위해 동아시아는 중국이 반드시 장악해야 할 사활적 지역 으로 간주되기 시작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중국이 동아시아에서 자신의 리 더쉽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역내 주요문제 해결에 참여하고 협력하는 수준 을 넘어서 필요시 주도적 역할까지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중 국의 인식변화는 지역강대국에서 세계강대국으로 도약하려는 중국의 의지 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서, 대외적으로 “중국의 부상(Rise of China)”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중요한 점은 중국의 동아시아 전략에서 동남아와 ASEAN이 핵심적 중요 성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비록 경제, 군사적으로 일본, 한국 등 동북아가 동남아에 비해 월등히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동 북아보다는 동남아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중국 이 자신보다 경제발전 수준에서 앞서있고 미국의 동맹국인 일본과 한국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려운 반면, 미국이 동남아에 대해 특별한 관심 을 보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영향력도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 에, 장기적으로 이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상쇄, 추월해 나갈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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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했던 것이다. 즉, 동남아를 미국의 대(對)중국 견제 망의 가장 취약한 연결고리로 간주했던 중국은 ASEAN 국가들에게 다양한 경제적 인센티브 (incentive)를 제공할 경우 ASEAN의 친중화를 통하여 궁극적으로 이 지역 을 자국의 영향권 하에 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며, 장기 경제침체에 빠 진 일본의 역내 영향력을 추월하는 것도 시간문제로 보았다. 따라서 중국은 대(對)ASEAN 접근 강화가 동아시아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제고하는 첩경이 며, 동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는 것은 중국이 세계강대국으로 도 약하는데 필수적이라고 판단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중국의 동아시아 전략과 ASEAN 중시정책의 주요 목표는 역내 국 가들의 대(對)중국 위협인식을 해소하고,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에 대해 전략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이 지역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증대시켜 나가려는 데 있었다. 이에 따라 중국은 1990년대 초중반 남중국해와 대만에 대한 일 방적 무력행사와 같은 자국 중심의 호전적 행위를 지양하고, 소위 “책임 있 는 강대국”으로서 역내문제 해결에 앞장섬으로써 주변국들의 의구심 해소 를 목표로 삼았다. 항상 미국의 대(對)중 견제구도 형성 가능성을 경계하는 중국은 ASEAN이 주도하는 역내 다자협력에 대한 적극적 참여를 통해 미국 의 대(對)중 견제 심리를 완화시키는 동시에, ASEAN+3와 같이 미국이 배 제된 지역협력 기제를 활용하여 미국 주도의 양자동맹체제에 대응할 수 있 는 전략구도를 형성함으로써 자신의 역내 영향력 확대를 도모코자 했다.

3. 대(對)ASEAN 외교의 양면성

1997년 이후 중-ASEAN 관계의 전개과정에서 중국은 시기적으로 확연 히 구분되는 대(對)ASEAN 외교의 양면성을 노정해 왔는바, 중국은 ASEAN 에 대해 “유인과 압박(또는 협박)” 또는 “보상과 배제(또는 처벌)”라는 매 우 대조적인 외교행태를 시기에 따라 상이하게 보여 왔다. 즉, 1997년부터 2008년까지는 중국의 적극적인 대(對)ASEAN 외교공세(charming offensive) 를 통해 협력과 발전의 상생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했던 반면, 2009년부터 2012년 사이는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중국의 강경한 태도로 양측 관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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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에 냉각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1997년 이후 중국의 대(對)ASEAN 접근 강화는 정치, 외교, 안보, 경제, 문화 등 각 분야에서 다차원적으로 이루어지기는 했으나, 그 핵심은 기본적 으로 중국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경제협력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다. 이 는 역내 국가들에게 중국의 경제적 부상이 위협이 아니라 기회라는 점과 책 임 있는 강대국의 면모를 각인시키기 위한 것이다. 1997년 금융위기가 발 생하자 중국은 태국과 인도네시아에 45억 달러를 직접 지원했으며, 캄보디 아, 라오스, 미얀마 등 역내 최빈국들에 대해서는 대규모 부채 탕감을 해주 는 동시에,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를 자제함으로써 동남아국가들의 경제 적 타격을 최소화하려는 정치적 배려를 과시했다. 이어 중국은 2000년 ASEAN에 전격적으로 자유무역협정(FTA: Free Trade Agreement)을 제 안했으며, 2002년 중국-ASEAN FTA 기본협정을 체결함으로써 2005년부 터 관세 인하 및 철폐를 단행하기 시작했으며, 2007년에는 ASEAN과 서비 스무역협정도 체결했다. 중국이 ASEAN과 FTA를 체결한 이후 무역적자 폭 이 더욱 늘어날 것임에도 불구하고, ASEAN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FTA를 체 결한 것은 동남아국가들에게 확실한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써 정치 적으로 ASEAN을 친중화하기 위한 것이다.

한편 정치, 외교적 측면에서 중국은 1997년 ASEAN과 “동반자 관계”를 구축했으며, 2003년에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켰다. 중국은 동남 아 국가들에 대한 집중적인 정상급 및 고위급 방문외교를 통하여 1999년부 터 2000년 사이에 ASEAN 10개국 전체와 개별적으로 양자 차원의 미래 협 력을 강조하는 공동선언을 채택하였는바, 이를 통해 “하나의 중국정책”을 재확인하였다. 중국은 말레이시아와 방위산업 협력, 태국과 군사외교, 인도 네시아와 전략대화,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와는 군사교류를 강화함으로 써, 상호협력의 범위를 통상적인 정치, 경제, 문화 분야를 넘어서는 포괄적 군사안보 협력 분야까지 점진적으로 확대해 왔다. 이와 같은 양측 관계의 급속한 발전은 2006년 중국 난닝에서 중국-ASEAN 대화 관계 수립 15주년 기념 정상회의 개최로 극적으로 가시화되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은 군사 안보적 측면에서 ASEAN과의 신뢰구축에도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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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있는 진전을 이룩했다. 중국과 ASEAN은 2002년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해결과 관련하여 「남중국해 행동선언(DOD)」을 채택했는바, 동 선언은 비 록 법적 효력과 구속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양측 간 쟁점이 되 어온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의 평화적 해결방안을 도출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했다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이다. 또한, 중국은 역외 국가로서는 최초로 2003년 동남아국가들의 주권과 안보를 보장하고 ASEAN과 신뢰구축 증진 을 위한 선언적 의미를 담고 있는 「동남아 우호협력 조약(TAC: Treaty of Amity and Cooperation in Southeast Asia)」에 가입하였고, 향후 「동남 아 비핵지대 조약(TSEANWFZ: Treaty on the Southeast Asia Nuclear Weapon Free Zone)」에 서명할 의향까지도 천명했다.

반면 2009년부터는 중-ASEAN 관계가 급속한 냉각기 또는 새로운 조정 기를 맞게 되었다. 이는 중국이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에 대해 전례 없이 강 경한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2009년 중국은 돌연 남중국해를 대만, 티베트, 신장과 더불어 어떠한 경우에도 양보할 수 없는 자신의 “핵심 이익”이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동시에 중국은 UN 안보리에 1947년 당 시 중국 정부(국민당)가 일방적으로 설정한 “구단선(nine-dash line)”을 재 확인하는 외교 노트를 제출했으며, 2009부터 최근까지 필리핀, 베트남과 각종 형태의 영유권 분쟁을 꾸준히 야기해 왔다. 뿐만 아니라, 2012년 중국 은 ASEAN 의장국인 캄보디아에 대해 막후 영향력을 행사하여 ASEAN 외 무장관회의 시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 대한 공동선언 채택을 무산시킴으 로써 국제적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한편 2013년 중국은 동중국해상 에 일방적으로 방공식별구역(ADIZ: Air Defense Identification Zone)을 전격 선포함으로써 일본, 미국과 갈등을 증폭시켰으며, 향후 남중국해에서 도 이와 유사한 조치를 취할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따라서 2009년 이후 중국은 다수 역내·외 국가들에게 동아시아 지역 안 보를 위협하는 “공적”으로 다시 한 번 각인되기 시작했으며, 특히 동남아에 서는 지금까지 쌓아왔던 중국에 대한 신뢰가 현격하게 감소되는 상황이 초래 되었다. 다만 이 기간 중 중국이 보여준 하나의 긍정적 태도는 2012년 9월 ASEAN과 협상하여 향후 법적 구속력을 갖는 「남중국해 행동규범(C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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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 of Conduct)」을 마련키로 합의한 것이나, 이후 중국은 여전히 양자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을 계속 주장하는 등 기존의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 어 이를 시간벌기용으로 활용하려는 태도를 보여 왔다.

4. 중국의 “2+7 이니셔티브”

2013년 초 집권한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중국을 세계적 강대국으로 비 상시키려는 원대한 국가적 아젠다(agenda)와 야심적인 중장기 외교비전들 을 연이어 발표했다.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 “중국의 꿈(中國夢)”, 중국 의 “핵심 이익”, 미‧중 간 “신형 대국 관계”, 주변국들과 “운명 공동체”, 유라 시아 대륙과 해상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아시아의 “신안보” 개념 등이 바 로 그러한 것들이다. 이에 대한 다양한 분석들이 나오고 있으나, 이를 간략 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은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즉, 중국이 부흥하여 세계 강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미국과 대등한 힘의 관계를 구축해 나감으로써 서 태평양지역에서 중국의 핵심 이익을 관철해 나가고, 동시에 아시아 주변국 들과 신안보개념을 바탕으로 육‧해로 상의 신실크로드를 복원하여 중국 중 심의 새로운 유라시아 세력권을 형성해 나가는 것이 중국의 꿈이 실현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동남아와 관련하여 운명 공동체(the community of common destiny), 신해양 실크로드(the 21st Century Maritime Silk Road), 핵심 이익(core interests)이라는 개념들이 중요성을 갖고 있다. 다시 말해서 중 국은 동남아를 관통하는 21세기 신해양 실크로드 건설을 통하여 동남아국 가들에게 커다란 경제적 혜택을 제공해 나감으로써 이 지역을 중국 주도의 새로운 아시아 공동체의 일부로 편입시켜 나가되, 남중국해 영유권 같은 자 신의 핵심적 이익은 반드시 지켜나가겠다는 것이다. 이들 중 신해양 실크로 드는 동남아와 관련하여 특별한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동남아는 해로를 통 하여 중국과 서남아, 중동, 아프리카를 연계하는 21세기 신해양 실크로드의 첫 번째 관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의 신해양 실크로드 구상은 향후 중-ASEAN 관계의 핵심적 사업이 될 수밖에 없으며, 중국은 이를 위해 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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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단기적으로 수백억 달러, 중장기적으로는 천억 달러 이상의 대규모 인프 라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시진핑 주석의 중장기 외교비전을 바탕으로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중국 -ASEAN 관계를 획기적으로 강화, 심화시키기 위한 새로운 대(對)ASEAN 정책구상을 발표했다. 2013년 10월 리커창 총리는 브루나이에서 개최된 연례 중-ASEAN 정상회의에서 소위 “2+7 이니셔티브”를 ASEAN 측에 제 시했다. 2+7 이니셔티브란 정치안보협력과 경제협력이라는 중-ASEAN 관 계의 양대 기본 축과 다음과 같은 7개의 구체적 협상 아젠다를 지칭하는 것 이다.

- 새로운 중-ASEAN 우호협력 조약(the treaty of good neighbourliness and cooperation) 체결

- 중-ASEAN 간 연례 국방장관회의 개최

- 기존의 중-ASEAN FTA를 격상(upgrade)하여 2020년까지 중-ASEAN 양측 간 교역 액 1조 달러 달성

- 새로운 아시아 인프라 투자 은행(AIIB: Asian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 설립

- 중국 인민폐(RMB)의 사용 확대(통화스와프, 무역결제, 은행결제 등) - 남중국해의 해양협력을 위한 중-ASEAN 간 연례 해양장관회의 개최 - 양측 간 문화교류, 과학 및 환경협력 증진 등

이후 리커창 총리는 2014년 미얀마에서 개최된 연례 중-ASEAN 정상회 의에서도 같은 내용의 관계 증진 방안을 재차 강조했으며, 향후 동남아 지 역의 기간산업 건설을 위해 200억 달러의 차관을 ASEAN 국가들에 제공하 겠다는 의사를 추가적으로 표명했다.

이와 관련하여 2013부터 최근까지 시진핑 주석과 리커창 총리는 역할을 분담하여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미얀마, 베트남, 캄보디아, 싱가포 르 등 영토분쟁 대상국인 필리핀을 제외한 거의 모든 ASEAN 국가들을 수 차례 순방하면서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을 강조하고 신실크로드 사업과 관 련한 투자계획들을 분주히 설명하고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현재 중국이 ASEAN 국가들에게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약속하거나 고려하고 있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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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사업들은 중국 윈난성(雲南省)과 미얀마, 태국,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가 광범위하게 연계된 메콩 강 유역 개발사업(GMS: The Greater Mekong Subregion) 추진, 쿤밍-방콕-하노이를 연결하는 고속도로 건설, 쿤밍-비엔 티엔-방콕-하노이-호치민-쿠알라룸푸르-싱가포르를 연결하는 전철 건설, 윈난성과 미얀마를 연결하는 고속도로 및 고속철 건설, 윈난성과 미얀마의 인도양을 연결하는 송유관 및 가스관 건설, 인도네시아 자바의 고속철도 및 대규모 항만확장 그리고 인도양과 태평양을 관통하는 태국 남부 끄라(Kra) 지역의 대운하 건설 등이다.

중국의 2+7 이니셔티브의 의도는 상대적으로 분명해 보인다. 중국의 2+7 이니셔티브는 의도적으로 동남아국가들의 관심과 주의를 영유권 분쟁 으로부터 경제적 이득으로 되돌려 놓기 위한 방책으로 보여진다. 무엇보다 도 2+7 이니셔티브는 역내 최대 안보 이슈(issue)인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에 대해 어떠한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즉, 중국은 AIIB 설 립을 통한 대규모 인프라 투자와 기존 중-ASEAN FTA 격상을 통한 획기적 무역 확대 등 전례 없는 광폭의 물질적 혜택을 동남아국가들에게 제공하는 대신, ASEAN이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침묵하거나 최소한 강한 이의를 제 기하지 않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중국은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서 이는 중국의 양보할 수 없는 주권사항임을 확고히 하고 필요시 무력사용 도 불사할 것임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시진핑 정부의 2+7 이니셔티브는 과거 중국이 대 (對)ASEAN 접근과정에서 시기별로 상이하게 보여왔던 두 가지 대조적 외 교행태, 즉 “유인과 압박(협박)” 또는 “보상과 배제(또는 처벌)”를 이제는 동 시 병행 추구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서 중국이 제시하는 중 -ASEAN 간 상호 호혜 관계란 ASEAN이 중국을 존중하면 중국은 이에 상 응하는 물질적 혜택을 제공할 것이나, ASEAN이 중국을 존중하지 않을 경 우 중국은 이들을 배제, 처벌할 방안들을 강구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2013년 중국을 국제해양법 재판소에 제소하고 최근 미국, 일 본, 호주 등과 합동군사 훈련을 실시하고 있는 필리핀을 신실크로드 구상에 서 사실상 제외하고 있는 점 등은 이를 시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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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이니셔티브의 또 다른 목표는 ASEAN의 내부적 분열을 조장하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중국이 경제적 이득을 모든 ASEAN 국가들에 게 제공한다 해도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영유권 분쟁 당사국들이 중국에 반발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는 만큼, 중국은 물질적 혜택을 선호하 는 여타 ASEAN 국가들과 분쟁 당사국들 간 내부 분열을 유도하여 ASEAN 이 집단적으로 중국에 공동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을 유도해 나가려 하고 있 기 때문이다. 2012년 ASEAN 외무장관회의 시 중국이 친중적인 의장국 캄 보디아를 배후 조정하여 영유권 분쟁 관련 성명서 채택을 무산시킨 것이 대 표적 사례라 할 것이다.

향후 중국은 ASEAN에 대한 2+7 이니셔티브를 계속 추진해 나갈 것이 며, 신해양 실크로드와 관련한 세부계획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나감으로 써, 동남아국가들의 친중화 작업에 박차를 가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또한, 중국은 필요하다면 추가적인 대(對)ASEAN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할 가능 성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하여 당분간 ASEAN에게 어떠한 의미 있는 양보를 허용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며, 동 시에 이 문제와 관련하여 ASEAN 국가들의 내부 분열을 지속적으로 조장해 나갈 것이다. 다만 최근 공개적으로 표출된 ASEAN 국가들의 우려를 감안 하여, 현재 진행 중인 남중국해 행동규범(COC) 협상 과정에서 다소의 진전 가능성을 시사할 수 있는 외교적 제스쳐(gesture)를 보여줄 수도 있을 것으 로 보인다.

Ⅲ. ASEAN의 전략적 대응

1. 동남아국가들의 대(對)중국 위협인식

동남아국가들이 대(對)중국 위협인식을 갖게 된 역사적 배경은 중국이 주 변국들에 대해 조공과 책봉체제를 강요했기 때문이며, 동남아 고대왕국들 도 중국 중심의 전통적 지역 질서에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전통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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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동남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대체로 제한적이었는바, 실제로 중국이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지역은 오랜 기간 식민 지배를 했던 베트남 북부지역에 국한되었으며, 중국은 여타 동남아지역에 대해 체계적 인 군사적 정복을 도모하지는 않았다. 다만 예외적으로 원나라가 버마(미얀 마)와 베트남을 침공하고 동남아 향료교역을 독점하려는 목적으로 인도네 시아 자바에 대한 대규모 군사원정을 시도했으나 실패로 그치고 말았는데, 이는 동남아국가들이 중국에 대해 안보적 위협인식을 갖게 되는 역사적 계 기를 제공하였다.

동남아 근대사를 통하여 동남아인들의 부정적 대(對)중국관이 확산된 이 유는 역내 화교 문제 때문이다. 중국인들의 동남아 유입은 오랜 역사를 가 지고 있으나,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에 대규모로 이루어진 중국인의 동남아 이주는 후일 동남아국가들의 정치와 경제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동남아 각국에 정착한 화교들은 대체로 현지에 대한 동화를 거부하고 서구 식민 세력과 결탁하여 토착민을 경제적으로 착취하는 중간 계층을 형성하 였는데, 이는 토착민들의 강력한 반화교 정서와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1949년 중국대륙의 공산화와 동서냉전 시대의 도래는 동남아국가들의 전통적 대(對)중국 위협인식을 한층 더 강화시켜 주었으며, 오늘날 동남아 국가들이 대(對)중국 위협인식을 갖게 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중국 은 동남아 각지의 친공산계 게릴라 운동과 반정부 소수민족 반란세력들을 군사, 이념적으로 지원했으며, 이러한 지원은 1980년대 말까지 계속되었 다. 특히 문화혁명기 중국 공산당은 자국의 혁명모델을 동남아 각국에 수출 하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전개했으며, 북베트남 공산세력을 정치, 군사적 으로 후원함으로써 베트남의 공산화를 통하여 인도차이나 전역의 공산화를 시도하려는 노력을 계속하였다.

따라서 동남아 비공산 국가들은 중국 및 북베트남 등 공산세력의 팽창주 의와 이와 연계된 역내 공산 게릴라 세력의 준동에 맞서 집단적 대응책을 모색하게 되었는바, 1967년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 르는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ASEAN을 창설하게 되었다. ASEAN은 당시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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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적으로 점증하는 공산세력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반공 주의는 냉전 종식이 이루어진 1980년대 말까지 ASEAN 국가들의 가장 중 요한 이념적 공통분모가 되었다.

2. 대(對)중국 포용정책으로의 전환

냉전 종식 이후 ASEAN은 아시아 외교무대에 새롭게 등장한 중국에 어떻 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직면했는바, ASEAN 국가들은 과거처럼 중 국을 계속 적대시하기보다는 적절하게 포용해 나가는 것이 역내 안정에 보 다 바람직하다는 전략적 공감대를 형성했다. ASEAN은 냉전 종식 이후 역 내 미군철수(1992년 필리핀 미군기지 철수)에 기인한 안보환경의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하기 위해서 동아시아의 강대국으로 재부상한 중국을 더 이 상 외면하기보다는 적극적인 포용정책을 통하여 역내 안정을 도모해 나갈 수 있는 현실적 접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수 ASEAN 국가들은 1990년대 초 중국과 연이어 수교하고 1994년 ARF에 중국을 끌어들여, 중 국과 신뢰구축을 도모함으로써 역내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유도하려 했던 것이다.

특히 1997년 이후 ASEAN에 대한 중국의 적극적인 외교공세로 중국에 대한 동남아국가들의 태도와 인식이 부정적인 것으로부터 점차 긍정적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즉, 중국의 이미지가 과거의 위협적 존재로부터 냉전 종식 이후 새로운 협력시대의 동반자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과정에 서 중국의 소프트 파워(soft power)를 바탕으로 한 대국민 외교(public diplomacy)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는 동남아국가들이 일본을 대신하 여 동아시아 경제성장의 새로운 견인차로서 등장한 중국을 더 이상 위협이 아니라 하나의 기회로 간주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또한, 1990년대까지 만 하더라도 중국을 경쟁 상대로 간주하고 ASEAN 자유무역지대(AFTA:

ASEAN Free Trade Area) 추진 등을 통해 해외직접투자를 적극 유치하려 했던 동남아국가들이 2000년대 초반 중국과 FTA에 합의한 것은 사실상 중 국과 경쟁을 포기하는 대신, 중국과의 경제통합을 통하여 실질적 이득을 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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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하겠다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에 대한 ASEAN 국가들의 위협인식이 근본적으 로 해소된 것은 결코 아니며, ASEAN은 자체적으로 중국에 대한 전략적 견 제를 지속적으로 추구해 왔다. 대표적으로 ASEAN은 중국의 대(對)인도차 이나 접근에 대해, 중국의 과도한 영향력 행사를 견제하고 이 지역 국가들 이 중국의 실질적 위성국으로 전락하는 것을 방지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ASEAN이 베트남(1995년)에 이어 라오스(1997년), 캄보디아(1999년) 그리 고 특히 국제사회의 비판을 무릅쓰고 미얀마(1997년)까지 차례로 회원국으 로 받아들인 것은 다수 ASEAN 국가들이 공유하고 있던 대(對)중국 위협인 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ASEAN은 인도차이나 국가들을 계속 방치할 경우 이들이 궁극적으로 중국의 위성국가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이들을 회원국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코자 했다.

그러나 중국에 대한 ASEAN 국가들의 인식변화는 국가별로 상당한 차이 를 보여 왔는바, 이는 중국에 대한 동남아 각국의 상이한 전략적 이해관계 를 반영하는 것으로서 역내 국가들이 대(對)중 관계진전에 통일된 행보를 취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중국과의 관계진전 에 가장 적극적인 국가는 태국과 말레이시아인바, 동남아 국가 중 1970년 대 중국과 최초로 국교를 수립한 태국은 국내적으로 반화교 정서가 부재하 여 중국의 가장 이상적인 전략적 파트너로서 사실상의 동맹국으로까지 간 주되어 왔으며, 여타 역내 국가들과 중국과의 관계증진을 측면에서 지원할 정도로 친중적이며, 말레이시아는 ASEAN+3 등 동아시아 지역협력을 주도 해 나가기 위한 목적으로 중국과 긴밀히 협조하는 전술적 차원의 파트너라 할 수 있다.

반면 중국의 부상을 가장 경계하고 있는 국가는 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 인바, 역내 최대국가로서 동남아의 주도국을 자임하는 인도네시아는 전통 적으로 중국을 잠재적 적대세력으로 간주해 왔으며, 역외 강대 세력들 간 세력균형을 강조해온 싱가포르는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의 개 입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수준이다. 또한, 역사적으로 반중 정서가 강하고 중국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의 당사자인 베트남은 표면적으로는 중국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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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하지만, 내면적으로 중국의 과도한 영향력 행 사를 항상 경계해 왔으며, 중국과 수차례 남중국해에서 무력충돌을 경험한 필리핀도 중국과의 관계진전에 매우 신중하게 대처해 왔다. 주지하다시피 친중 노선을 견지했던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는 미국, EU 등 서구세력들 이 인권과 민주주의 문제 제기 등 정치적 이유로 접근을 스스로 제한해 왔 기 때문에, 중국에 의존하는 것 이외에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3. ASEAN의 대(對)중국 위험회피 전략

동남아 중소국가 연합체인 ASEAN은 전통적으로 역외 강대국들 간 세력 균형을 모색함으로써 역내 안정을 도모하려는 유연한 외교 전략을 구사해 왔다. 다시 말해서 동남아 약소국가들은 역외 강대국들과의 관계설정에 있 어서 어느 특정 세력에게 일방적으로 경사되지 않은 균형적 관계를 유지함 으로써 자신들의 취약한 주권을 수호하려 했는바, 이는 냉전기 ASEAN의 비동맹 중립외교로 표방되었다.

동남아국가들은 중국의 부상과 대(對)ASEAN 접근강화에 대응하여 중국 과 관계증진을 통하여 “경제적 실리”를 취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남 중국해 영유권 분쟁과 같은 “안보적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양면적 전략 (hedging strategy)”을 강구해 왔다. ASEAN은 중국과의 관계에서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방책으로 미국을 비롯하여 일본, 인도 등 여타 역외 강대국 들을 동남아에 끌어들임으로써, 중국의 과도한 영향력 행사를 방지하려는 노력을 경주해 왔다. 중국의 적극적인 외교공세로 ASEAN의 대(對)중국 위 협인식이 완화되어 왔던 것은 사실이나, 대다수 동남아국가들은 이 지역에 서 중국의 일방적 영향력 행사를 원치 않고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ASEAN은 중국의 대(對)ASEAN 외교공세를 역으로 동 아시아 지역협력의 중심 축(ASEAN Centrality)이 되겠다는 자신들의 전략 목표를 구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적절히 활용해 왔던 측면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중국-ASEAN FTA는 일본, 한국뿐 만 아니라 호주, 인도, 뉴질랜 드 등 역외 국가들이 경쟁적으로 ASEAN과 FTA 체결을 서두르게 되는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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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제가 됨으로써, ASEAN은 자연스럽게 동아시아 FTA의 중심 축[예컨대 최근 협상 중인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 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으로 부상하고 있다. 또한, 중국이 ASEAN과 신 뢰구축을 위해 동남아 우호협력 조약(TAC)에 서명한 이래 일본, 한국, 호 주, 인도, 미국, 러시아 등 다수의 역외 국가들이 앞 다투어 이 조약에 서명 하게 되었다. 한편 ASEAN은 중국의 외교공세를 ASEAN+3 협력의 틀 안에 서 중국의 경쟁국이자 최대 원조공여국인 일본과 한국으로부터 보다 많은 대(對)ASEAN 지원을 얻어내기 위한 카드로 활용해 왔다.

뿐만 아니라 ASEAN은 2000년 중반 EAS 조기개최 및 제2차 EAS 유치를 통하여 동아시아 지역협력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기 존의 ASEAN+3 정상회의는 물론 EAS까지도 ASEAN이 주도한다는 원칙을 확고히 하는 동시에, 역외국인 인도, 호주, 뉴질랜드를 EAS의 신규 회원국 으로 받아들였다. 이와 같은 EAS 회원국 확대 이면에는 중국의 역내 경쟁국 인 일본은 물론 중국의 부상을 경계하는 미국의 측면지원이 있었기 때문이 다. 또한, 인도네시아는 2011년 미국을 EAS에 공식참여 시켜 남중국해 영 유권 분쟁에서 중국을 직접적으로 견제하기 위한 또 다른 역학 구도를 만들 어 내기도 했다.

4. 중국의 2+7 이니셔티브에 대한 반응

중국의 2+7 이니셔티브에 대해 ASEAN 국가들은 매우 신중한 반응을 보 이고 있다. 일단 중국의 일대일로와 신해양 실크로드 구상에 대해서는 모든 ASEAN 회원국들이 환영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으나, 기타 민감한 정치안보 제안들에 대해서는 유보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즉, ASEAN은 중국과의 관계에서 경제적 실리는 챙기되 정치적, 안보적 위험은 회피하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2015년 말 ASEAN 공동체(ASEAN Community)를 출범시킬 예정인 동 남아국가들은 역내 국가들 간 인프라망 구축을 위해 2009년부터 추진 중인

“ASEAN 연계성(ASEAN Connectivity)” 강화 사업과 관련하여 중국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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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 실크로드 구상이 자신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역 내 최대국인 인도네시아도 2014년 집권한 조코위(Joko Widodo) 대통령이 인도네시아의 “해양세력 비전(maritime power vision)”을 제시함에 따라 중국의 신해양 실크로드 구상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2+7 이니셔티브에 대해 현재까지 ASEAN이 동의한 것은 AIIB 설립, 중 -ASEAN FTA 격상, 문화교류 및 과학, 환경협력 등 3개 사항뿐이며, 신우 호협력 조약 체결, 연례국방장관회의 개최, 위안화 사용 확대, 해양장관회 의 개최 등 여타 4개 항에 대해서는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다.

다수의 ASEAN 국가들은 신실크로드 구상과 관련한 중국의 “숨은 의도 (hidden agenda)”에 대하여 여전히 의구심을 감추지 않고 있으며, 특히 남 중국해와 관련한 최근 중국의 움직임에 강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주지하 다시피 2015년 4월 ASEAN 정상들은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빠른 속도로 건 설하고 있는 인공섬과 대규모 매립(land reclamation) 문제에 대해 “심각 한 우려를 공유한다(shared the serious concern)”는 유례없이 높은 수준 의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하여 중국과 조용한 외교를 펼쳐왔던 말레이시아도 최근 중국 순시선이 자국 영해를 수 차례 침범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군부는 수상으로 하여금 중국에 이를 공식 항의해야 한다고 반발하고 있어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또한,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다수 ASEAN 국가들은 중국의 신실크로 드 구상을 원론적으로 지지하면서도 중국이 아직도 구체적인 세부계획들 을 제시하지 않고 있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동시에 이들 국가들은 기존 양 자 FTA의 포괄적 수준에서 격상이 아닌 단순히 관세만을 추가적으로 인하 하는 수준의 FTA라면 큰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신중한 견해도 표명하고 있다.

향후 ASEAN은 AIIB 참여, 중-ASEAN FTA 격상, 환경 및 과학 등 기능 적 협력 사안 이외에 우호협력 조약 체결, 연례 국방장관회의 개최 등 기타 민감한 정치안보 사안들에 대해서는 계속 유보적 태도를 취해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견제를 위해 미국의 안보동맹이 될 수도 없고 중국과 적대적 관계도 원치 않는 ASEAN은 미국, 중국 양측 모두와 모호한 “전략적 동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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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strategic partnership)”를 유지해 나가려는 외교적 노력을 경주해 나 갈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과거와는 달리 향후 남중국해 문제가 계속 악화 될 경우 ASEAN은 보다 더 공개적이고 직접적 형태의 외교적 대응을 모색 해나갈 가능성은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ASEAN은 미국 및 일본이 동남아 국가들의 경제성장을 위한 인센티브 제공을 기대할 것이다.

결국, 향후 중-ASEAN 관계의 핵심은 중국의 신해양 실크로드 구상의 실 현과 남중국해 문제 해결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과연 ASEAN이 중국의 의도대로 순응해 나갈지는 여전히 미지수라 할 것이다. 2009년 이 후 중국이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고수함으로써 그 이전에 동 남아국가들에게 쌓아왔던 신뢰를 크게 상실했는바, 여전히 중국은 이를 회 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향후 신해양 실크로드 건설사업이 다수 동남 아국가들의 공동이익보다는 중국의 이익만을 기본적으로 반영할 경우, 중 국의 대(對)ASEAN 친중화 작업도 순조롭지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향후 남중국해 행동규범(COC) 협상 등 남중국해 문제 해결에 중국이 보다 더 전 향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을 경우, 중국에 대한 동남아국가들의 신뢰회복에 는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5. ASEAN의 내부적 취약성

한편 2+7 이니셔티브와 같은 최근 중국의 대(對)ASEAN 외교공세에 대응 해야 하는 ASEAN은 여전히 내부적으로 많은 문제점과 취약성을 안고 있어 서, 향후 공격적인 중국의 대(對)ASEAN 접근에 대한 공동의 효과적인 외교 적 대응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중국에 대한 ASEAN 국가들의 경제적 의존도가 지속적으로 증대하고 있다 는 점이 문제이다. 중국은 ASEAN 국가들의 최대 교역 파트너가 된 지 오래 이며, 해를 거듭할수록 중국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 영토분쟁 당사국인 베트남과 같은 일부 국가들은 이를 시정하려는 노력을 경주해 왔지만, 오히려 최근 무역 의존도가 보다 더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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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ASEAN은 개별 국가별로 중국과의 관계증진에 다양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항상 공동의 대응에 일정한 한계를 노정할 것으로 전망 된다. 특히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서도 분쟁 당사국인 필리핀, 베트남, 말레 이시아, 브루나이와 비당사국인 태국,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간에는 일 정한 간극이 존재해 왔으며, 분쟁 당사국들 간에도 중국과 직접적인 충돌 을 경험한 필리핀, 베트남과 그렇지 않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간에도 입 장차이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5년 4월 ASEAN 정상들이 채택한 성명서의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외교적 표현에서 모든 ASEAN 국가들이 아닌 “일부(some) 국가”들이 우려를 표명했다고 표기한 것은 이를 반영하 고 있다.

더욱이 최근 ASEAN의 역내 리더쉽에도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ASEAN은 전통적으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싱가포르 4개국이 핵 심 국가(core states)들로서 ASEAN의 운영을 주도해 왔는바, 최근 인도네 시아, 말레이시아, 태국은 국내 정치적으로 많은 불확실성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 사업가 출신의 인도네시아 조코위 대통령은 외교에 대한 이 해와 관심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메가와티(Megawati Soekarnoputri) 전 대통령이 이끄는 집권여당(PDIP: Partai Demokrasi Indonesia Perjuangan) 조차 전혀 장악하지 못하고 있어 외교 문제에 집중할 여력이 거의 없어 보인 다. 말레이시아의 나집(Najib Razak) 수상은 야권은 물론 집권당(UMNO:

United Malays National Organization) 내 마하티르(Mahathir Mohamad) 전 수상 지지세력으로부터 국부펀드 관리부실로 인한 대규모 손실 발생과 펀드의 개인적 유용 문제로 사임하라는 강력한 내부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2014년 쿠데타로 집권한 태국의 프라윳(Prayuth Chanocha) 군사정부는 미국 등 서구국가들로부터 비판과 배제의 대상이 되고 있어 외교적으로 사실상 고립되어 있으며, 헌법개정과 총선실시, 경제 회생과 같은 산적한 국내 문제에 봉착해 있다. 따라서 향후 ASEAN은 역내 운영을 주도해 나 갈 리더쉽이 부재한 상황에서 내부적 단합을 도모하고 외부적으로 공동의 대응을 모색해 나가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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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미국 변수와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1.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

동남아지역과 ASEAN 국가들의 국제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장 중 요한 외부적 변수는 물론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중 국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고, 1945년 이후 자신이 구축한 기존의 국제질서를 유지하려는 패권국이 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계 여느 지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아시아 지역에서 미 국의 정책은 동남아 국제관계의 모든 부분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치는 핵심 적 변수라 아니할 수 없다.

주지하다시피 1980년대 후반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은 동남아에 대해 상대 적으로 무관심했고 이 지역을 정책적 우선순위에 두지 않아 왔다. 이는 일 차적으로 미국이 중동지역과 테러와의 전쟁에 몰두했기 때문이기도 하지 만, 1990년대 이후에는 미국이 동남아지역을 대(對)중국정책의 하위 변수 로 보아왔기 때문이다. 미국이 동남아에 새로운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2009년 오바마 정부가 출범하면서부터이다. 2009년 이후 미국이 아시아를 전략적으로 중시(pivot to Asia)하기 시작했고 재균형(rebalancing) 전략 을 추구해 왔지만, 이는 기본적으로 미국의 대(對)중 정책의 일환이며 동남 아만을 대상으로 하는 특별한 전략 지역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미국-ASEAN 관계를 분석하려면 먼저 미국의 대(對)아시아 및 대 (對)중 정책의 변화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의 대(對)아시아 정책은 일차적으로 기존의 양자동 맹관계(일본, 한국, 태국, 필리핀, 호주 등)를 유지함으로써 역내 불안정 요 인들에 대비한 미군사력의 지속적 주둔에 있었다. 다만 미국이 1990년대 초반 고비용의 문제로 필리핀 내 대규모 해공군 기지를 철수하기는 했지 만, 기존의 정책에 근본적인 변화를 도모한 것은 아니었다. 이와 함께 미국 은 부상하는 중국의 현대화 과정을 계속 지원하여 상호신뢰를 쌓고 장기적 인 전략적 파트너쉽 관계를 구축해 나감으로써, 중국을 미국 주도의 국제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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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에 편입시켜 기존의 질서를 유지해 나가고자 했다. 클린턴 행정부의 중국 세계무역기구(WTO: World Trade Organization) 가입 지원과 중국에 대 한 부시 행정부의 “책임 있는 이해상관자(responsible stakeholder)” 역 할 강조 등은 이를 대변하는 사례들이다. 뿐만 아니라 소위 G-2로 상징되 는 중국에 대한 오바마 행정부의 “상호 전략적 재확신(mutual strategic reassurance)” 추구 역시도 미‧중 간 전략적 동반자 관계 구축을 통해 미국 주도의 기존 국제질서를 유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중국은 세계적 차원에서 이러한 미국의 패권적 지도력에 선택적, 부분적으로 거부하려는 의지를 보이기 시작했으며, 지역적 차원에서도 중 국의 “핵심 이익”과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중국 주변의 동중 국해와 남중국해가 바로 그런 지역이다. 이미 2010년 동남아국가들이 주도 하는 ASEAN 지역 포럼(ARF)에서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이 설전을 벌인 것은 미국과 중국 간 이견이 공개적으로 표출되 는 시발점이 되었다.

이후 2011년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아시아 중시정책과 전략적 재균형 정 책을 공식화하고, ASEAN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정상회의(EAS)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 역시도 미국이 기존의 전략, 즉 양자동맹 유지를 통해 역내 불 안정에 대비하고 중국을 포용하여 미국 주도의 기존 국제질서를 유지하려 는 큰 틀 안에서 마련된 것이다. 특히 오바마(Barack Obama) 미국 대통령 은 집권 2기에 들어 군사 안보적으로 아시아에 대한 재균형 정책을 통해 대 (對)중 견제를 본격화하고 있으며, 경제적으로는 TPP 성사를 통하여 이 지 역에서 미국의 존재감을 회복하려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동맹국인 일본, 한국과 호주는 물론 인도와도 전략적 파트너쉽 강화를 통하 여 광역의 대(對)중국 견제구도를 형성해 나가는 동시에, ASEAN과 정치안 보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필리핀과 군사훈련 강화, 베트남과 긴밀한 전략 적 연계 모색, 미얀마의 외교 다변화 등을 유도해 나가고 있다.

이에 발맞춰 동맹국인 일본도 미국과 안보동맹 강화, 호주 및 인도와 전 략적 협력관계 증진, 중국과 영유권 분쟁 대상국인 필리핀, 베트남 등과 군 사협력을 모색하는 동시에, 일부 ASEAN 국가들과 비공식적 차원에서 반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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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을 모색하고 있다. 또한, 일본은 중국 주도의 AIIB 출범에 대응하여 이 와는 별도로 1,000억 달러 규모의 민관자금을 조성하여, 자신이 주도하고 있는 아시아개발은행(ADB: Asian Development Bank) 등을 통해 아시아 지역에 인프라 투자를 늘려나가려는 계획도 수립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2012년 남중국해 상의 필리핀 도서[스카버러 암초(Scarborough Shoal)]를 행정적으로 지배하려는 시도와 함께 동중국해 상의 조어도[일본 명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에 대해 강력한 영유권 주장으 로 대응했다. 2013년 시진핑 주석의 집권과 함께 중국은 보다 더 공공연히 자기주장(assertiveness)을 강하게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시진핑 주석은

“중국몽” 등 새로운 국가 비전을 제시하면서, 독자적 강대 세력으로서 중국 은 국제관계의 새로운 규칙수립을 위한 협상을 개시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 하기 시작했으며, 특히 아시아지역에 대한 중국의 특별한 이익이 보장받아 야 한다고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에 더하여 남중국해 전역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을 되찾아야 한다는 점도 각별히 부각되기 시작했다.

사실상 중국은 남중국해 자신의 배타적 경제수역(EEZ: Exclusive Economic Zone) 내 외국 군함의 자유로운 항행을 금지시킬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으며, 인공섬 매립과 군사시설 건설을 강행함으로써 실질적으로 남 중국해에 대한 배타적 지배권을 구현하려는 시도를 계속해 왔다. 이는 물론 남중국해에 대한 기존의 미군함의 항행의 자유를 제한하겠다는 점을 의미 하는 것이다. 심각한 문제는 만일 미국이 중국이 주장하는 남중국해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실질적으로 인정하게 된다면, 미국은 아시아 지역에서 자신 의 해양 영향력과 특권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미국이 중국의 주 장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에는 양측 간 무력 충돌의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 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점이다. 반면 중국이 미국의 압박에 굴복 할 경우에는 강대국으로서 중국은 체면을 손상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중국 이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려 할 경우에는 무력 충 돌의 위험성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문제는 향후 국제관계 전반에 대해 중 국이 주장하는 새로운 가치와 신념이 미국의 기존 가치와 신념과 공존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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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가를 가름하는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고 있다. 만약 이러한 양 대세력 간 이해관계의 차이가 궁극적으로 타협 불가하거나 회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미국과 중국 간 군사적 대결 양상이 초래될 수도 있으며, 2016년 미국의 대선 과정에 주요 쟁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차기 미국 행 정부도 중국과의 기존의 전략적 파트너쉽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접어버리 고, 중국으로부터의 심각한 도전에 정면으로 대응하는 대(對)중 견제 강화 또는 나아가 봉쇄정책으로 방향전환을 시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 황이다.

2. 최근의 남중국해 문제

주지하다시피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는 중국과 일부 ASEAN 국가들 간 오 랜 분쟁의 대상이 되어왔다. 중국은 남중국해 전체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해 온 반면,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는 각각 그 일부에 대한 영 유권을 주장해 오고 있다. 이들 중 베트남과 필리핀은 1970년대부터 최근 까지 중국과 이미 수차례의 크고 작은 규모의 무력충돌과 해상 대치상황이 이어져 왔다.

1990년대 초반 중국과 ASEAN 국가들 간 공식수교가 이루어진 이래 이 문제는 양측 간 협상의 대상이 되어 왔다. 중국은 ASEAN 당사국들과 각기 개별적 양자협상을 통해 해결하자는 입장인 반면, ASEAN은 이 문제가 ASEAN 전체의 이익과 맞물린 사안이기 때문에 중국과 ASEAN 간 다자협 상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즉 강대국인 중국은 양자 협상을 통해 힘으로 당사국들을 각개격파하겠다는 것이며, 동남아 국가들 은 중국 대 ASEAN 간 다자협상 구도를 만들어 힘의 열세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2012년까지 양측 간 본격적인 양자 또는 다자협상은 이루어지지 않아 왔 으며, 다만 양측은 문제의 평화적 해결원칙에 입각하여 2002년에 “남중국 해 행동선언(DOC: 2002 Declaration on the Conduct of Parties in the South China Sea)”에 합의했지만, 이는 법적 구속력을 갖지 않은 선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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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ASEAN 측은 이 행동수칙을 법적 구속력을 갖는 하 나의 규범(COC)으로 전환해 나가는 것을 문제 해결의 핵심으로 보는 반면, 중국은 여전히 이에 상대적으로 유보적 태도를 견지해 왔다. 하나의 진전은 2012년 9월 중국과 ASEAN이 COC 체결을 위해 협상 개시에 합의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15차례의 실무협상을 진행시켜 왔으나, 아직까지 어떠한 구체적 결과를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특히 2015년 들어 미국이 동남아 국제관계에 새삼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는 이유는 남중국해 문제 때문이다. 중국이 이 지역에서 군사적 차 원에서 위협 신호로 간주될 수 있는 대규모 매립을 통한 인공섬 건설을 가 속화하자, 미국은 이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항해의 자유를 내세우며 중국령 12해리 내 미국의 군함과 군용기를 진입시키겠다는 강수를 밀어붙이기 시 작했다. 미국과 일본은 중국이 인공섬 건설을 통하여 활주로, 격납고 및 포 대 등 일정한 수준의 군사시설을 구축할 경우, 동중국해에서와같이 남중국 해에서도 항공식별구역(ADIZ)을 선포하고 이 해역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 나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5년 4월 ASEAN 정상회의에서 공개적으로 이 문제에 대한 동남아국 가들의 우려가 표명된 이래, 5월 싱가포르 개최 아태국방장관회의 그리고 6 월 독일 개최 G7 정상회의에서도 동 문제에 대한 서방 선진국들의 우려가 표명되는 등 미국은 중국에 대한 전방위적 외교압박을 가해 왔다. 따라서 남중국해 문제는 중-ASEAN 간의 쟁점에서 이제는 미국과 중국 간 핵심적 안보 쟁점으로 비화되기 시작했다. 결국, 6월 16일 중국은 인공섬 건설의 일부가 완성되었다고 선언하면서 (잠정적으로) 공사를 계속 진행하지 않겠 다는 점을 시사했다. 이어 2015년 9월 말 워싱턴에서 개최된 미·중 정상회 의 시 시진핑 주석이 비군사화 공약을 통해 미국과 더 이상의 외교적 마찰 을 회피하려는 자세를 보여주었다. 이후 미국은 중국의 계속되는 강력한 반 대에도 불구하고 자국의 군함과 군용기를 12해리 내 진입을 수차례 시도한 바 있다.

한편 2015년 11월 동아시아 정상회의(EAS)를 통하여 최근 격화되고 있 는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한 최대의 화두는 단연 “항행과 상공비행의 자유

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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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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