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
동남아지역과 ASEAN 국가들의 국제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장 중 요한 외부적 변수는 물론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중 국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고, 1945년 이후 자신이 구축한 기존의 국제질서를 유지하려는 패권국이 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계 여느 지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아시아 지역에서 미 국의 정책은 동남아 국제관계의 모든 부분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치는 핵심 적 변수라 아니할 수 없다.
주지하다시피 1980년대 후반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은 동남아에 대해 상대 적으로 무관심했고 이 지역을 정책적 우선순위에 두지 않아 왔다. 이는 일 차적으로 미국이 중동지역과 테러와의 전쟁에 몰두했기 때문이기도 하지 만, 1990년대 이후에는 미국이 동남아지역을 대(對)중국정책의 하위 변수 로 보아왔기 때문이다. 미국이 동남아에 새로운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2009년 오바마 정부가 출범하면서부터이다. 2009년 이후 미국이 아시아를 전략적으로 중시(pivot to Asia)하기 시작했고 재균형(rebalancing) 전략 을 추구해 왔지만, 이는 기본적으로 미국의 대(對)중 정책의 일환이며 동남 아만을 대상으로 하는 특별한 전략 지역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미국-ASEAN 관계를 분석하려면 먼저 미국의 대(對)아시아 및 대 (對)중 정책의 변화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의 대(對)아시아 정책은 일차적으로 기존의 양자동 맹관계(일본, 한국, 태국, 필리핀, 호주 등)를 유지함으로써 역내 불안정 요 인들에 대비한 미군사력의 지속적 주둔에 있었다. 다만 미국이 1990년대 초반 고비용의 문제로 필리핀 내 대규모 해공군 기지를 철수하기는 했지 만, 기존의 정책에 근본적인 변화를 도모한 것은 아니었다. 이와 함께 미국 은 부상하는 중국의 현대화 과정을 계속 지원하여 상호신뢰를 쌓고 장기적 인 전략적 파트너쉽 관계를 구축해 나감으로써, 중국을 미국 주도의 국제질
서에 편입시켜 기존의 질서를 유지해 나가고자 했다. 클린턴 행정부의 중국 세계무역기구(WTO: World Trade Organization) 가입 지원과 중국에 대 한 부시 행정부의 “책임 있는 이해상관자(responsible stakeholder)” 역 할 강조 등은 이를 대변하는 사례들이다. 뿐만 아니라 소위 G-2로 상징되 는 중국에 대한 오바마 행정부의 “상호 전략적 재확신(mutual strategic reassurance)” 추구 역시도 미‧중 간 전략적 동반자 관계 구축을 통해 미국 주도의 기존 국제질서를 유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중국은 세계적 차원에서 이러한 미국의 패권적 지도력에 선택적, 부분적으로 거부하려는 의지를 보이기 시작했으며, 지역적 차원에서도 중 국의 “핵심 이익”과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중국 주변의 동중 국해와 남중국해가 바로 그런 지역이다. 이미 2010년 동남아국가들이 주도 하는 ASEAN 지역 포럼(ARF)에서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이 설전을 벌인 것은 미국과 중국 간 이견이 공개적으로 표출되 는 시발점이 되었다.
이후 2011년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아시아 중시정책과 전략적 재균형 정 책을 공식화하고, ASEAN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정상회의(EAS)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 역시도 미국이 기존의 전략, 즉 양자동맹 유지를 통해 역내 불 안정에 대비하고 중국을 포용하여 미국 주도의 기존 국제질서를 유지하려 는 큰 틀 안에서 마련된 것이다. 특히 오바마(Barack Obama) 미국 대통령 은 집권 2기에 들어 군사 안보적으로 아시아에 대한 재균형 정책을 통해 대 (對)중 견제를 본격화하고 있으며, 경제적으로는 TPP 성사를 통하여 이 지 역에서 미국의 존재감을 회복하려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동맹국인 일본, 한국과 호주는 물론 인도와도 전략적 파트너쉽 강화를 통하 여 광역의 대(對)중국 견제구도를 형성해 나가는 동시에, ASEAN과 정치안 보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필리핀과 군사훈련 강화, 베트남과 긴밀한 전략 적 연계 모색, 미얀마의 외교 다변화 등을 유도해 나가고 있다.
이에 발맞춰 동맹국인 일본도 미국과 안보동맹 강화, 호주 및 인도와 전 략적 협력관계 증진, 중국과 영유권 분쟁 대상국인 필리핀, 베트남 등과 군 사협력을 모색하는 동시에, 일부 ASEAN 국가들과 비공식적 차원에서 반중
연합을 모색하고 있다. 또한, 일본은 중국 주도의 AIIB 출범에 대응하여 이 와는 별도로 1,000억 달러 규모의 민관자금을 조성하여, 자신이 주도하고 있는 아시아개발은행(ADB: Asian Development Bank) 등을 통해 아시아 지역에 인프라 투자를 늘려나가려는 계획도 수립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2012년 남중국해 상의 필리핀 도서[스카버러 암초(Scarborough Shoal)]를 행정적으로 지배하려는 시도와 함께 동중국해 상의 조어도[일본 명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에 대해 강력한 영유권 주장으 로 대응했다. 2013년 시진핑 주석의 집권과 함께 중국은 보다 더 공공연히 자기주장(assertiveness)을 강하게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시진핑 주석은
“중국몽” 등 새로운 국가 비전을 제시하면서, 독자적 강대 세력으로서 중국 은 국제관계의 새로운 규칙수립을 위한 협상을 개시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 하기 시작했으며, 특히 아시아지역에 대한 중국의 특별한 이익이 보장받아 야 한다고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에 더하여 남중국해 전역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을 되찾아야 한다는 점도 각별히 부각되기 시작했다.
사실상 중국은 남중국해 자신의 배타적 경제수역(EEZ: Exclusive Economic Zone) 내 외국 군함의 자유로운 항행을 금지시킬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으며, 인공섬 매립과 군사시설 건설을 강행함으로써 실질적으로 남 중국해에 대한 배타적 지배권을 구현하려는 시도를 계속해 왔다. 이는 물론 남중국해에 대한 기존의 미군함의 항행의 자유를 제한하겠다는 점을 의미 하는 것이다. 심각한 문제는 만일 미국이 중국이 주장하는 남중국해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실질적으로 인정하게 된다면, 미국은 아시아 지역에서 자신 의 해양 영향력과 특권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미국이 중국의 주 장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에는 양측 간 무력 충돌의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 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점이다. 반면 중국이 미국의 압박에 굴복 할 경우에는 강대국으로서 중국은 체면을 손상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중국 이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려 할 경우에는 무력 충 돌의 위험성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문제는 향후 국제관계 전반에 대해 중 국이 주장하는 새로운 가치와 신념이 미국의 기존 가치와 신념과 공존할 수
있는가를 가름하는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고 있다. 만약 이러한 양 대세력 간 이해관계의 차이가 궁극적으로 타협 불가하거나 회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미국과 중국 간 군사적 대결 양상이 초래될 수도 있으며, 2016년 미국의 대선 과정에 주요 쟁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차기 미국 행 정부도 중국과의 기존의 전략적 파트너쉽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접어버리 고, 중국으로부터의 심각한 도전에 정면으로 대응하는 대(對)중 견제 강화 또는 나아가 봉쇄정책으로 방향전환을 시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 황이다.
2. 최근의 남중국해 문제
주지하다시피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는 중국과 일부 ASEAN 국가들 간 오 랜 분쟁의 대상이 되어왔다. 중국은 남중국해 전체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해 온 반면,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는 각각 그 일부에 대한 영 유권을 주장해 오고 있다. 이들 중 베트남과 필리핀은 1970년대부터 최근 까지 중국과 이미 수차례의 크고 작은 규모의 무력충돌과 해상 대치상황이 이어져 왔다.
1990년대 초반 중국과 ASEAN 국가들 간 공식수교가 이루어진 이래 이 문제는 양측 간 협상의 대상이 되어 왔다. 중국은 ASEAN 당사국들과 각기 개별적 양자협상을 통해 해결하자는 입장인 반면, ASEAN은 이 문제가 ASEAN 전체의 이익과 맞물린 사안이기 때문에 중국과 ASEAN 간 다자협 상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즉 강대국인 중국은 양자 협상을 통해 힘으로 당사국들을 각개격파하겠다는 것이며, 동남아 국가들 은 중국 대 ASEAN 간 다자협상 구도를 만들어 힘의 열세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2012년까지 양측 간 본격적인 양자 또는 다자협상은 이루어지지 않아 왔 으며, 다만 양측은 문제의 평화적 해결원칙에 입각하여 2002년에 “남중국 해 행동선언(DOC: 2002 Declaration on the Conduct of Parties in the South China Sea)”에 합의했지만, 이는 법적 구속력을 갖지 않은 선언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ASEAN 측은 이 행동수칙을 법적 구속력을 갖는 하 나의 규범(COC)으로 전환해 나가는 것을 문제 해결의 핵심으로 보는 반면, 중국은 여전히 이에 상대적으로 유보적 태도를 견지해 왔다. 하나의 진전은 2012년 9월 중국과 ASEAN이 COC 체결을 위해 협상 개시에 합의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15차례의 실무협상을 진행시켜 왔으나, 아직까지 어떠한 구체적 결과를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특히 2015년 들어 미국이 동남아 국제관계에 새삼 중요한 변수가
최근 특히 2015년 들어 미국이 동남아 국제관계에 새삼 중요한 변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