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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고려사항

문서에서 남중국해 분쟁을 중심으로 (페이지 34-43)

동남아지역에서 미‧중 경쟁과 ASEAN의 전략적 대응과 관련한 문제는 한 국외교에 중요한 시사점과 함의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남중국해 분쟁과 관 련한 외교적 대응의 문제는 우리에게도 매우 현실적이고 시급한 과제로 부 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중 경쟁은 동남아에서뿐만 아니라 이미 한국외교에 있어서도 핵심 이 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오랜 전통적 동맹국인 한국 은 1990년대 초 중국과 수교함으로써, 한국외교의 중요한 다변화를 이룩해

왔다. 그러나 한국이 중국과 경제적 이해관계가 크고 깊어지는 동시에, 미‧

중관계가 상호 호혜적 협력관계에서 차츰 경쟁 관계로 변모해 나감에 따라, ASEAN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한국도 보다 더 어려운 선택을 강요받을 가능 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최근 미국조야 일각에서 나타나고 있는 한국의 “중 국경사론”이 이를 대변하고 있다. 이는 한‧중관계가 지난 수년간 경제적, 외 교 안보적 차원에서 보다 중요해지고 긴밀해지고 있는 반면, 한‧일관계는 상 대적으로 냉각되고 있는 가운데, 다분히 일본의 왜곡된 대미 공공외교의 결 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물론 한국은 여전히 미국의 핵심적 동맹국으로 남아 있다.

지금까지 한국의 외교당국자들과 전문가들은 미‧중관계를 관성적으로 한 반도 문제와 동북아 4강 관계의 차원에서만 접근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항 상 미국의 대(對)중 정책을 한‧미관계, 미‧일관계, 중‧러관계 등 주요 강대국 관계에서 파악하려는 동시에, 이를 언제나 북한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그러나 최근의 남중국해 문제는 우리에게 보다 광역 차원의 접근 필 요성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남중국해 문제는 이제 더 이상 중국-ASEAN 간 지역적 안보 쟁점이 아니라 아시아지역 전체 나아가 세계적 차원에서 미‧

중관계를 새롭게 규정하는 중요한 시험대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2015년부터는 미국이 동맹국인 한국에 대해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명시적 이고 공개적인 입장표명을 직간접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제 이 문제 는 더 이상 피하기 어려운 과제가 되었다.

지금까지 한국은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일반적이고 원론적 차원의 대응 을 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최근의 사태발전에 따라 한국도 전략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이번 EAS에서 한국은 미국, 일본, 호주 그리고 싱가포르, 베트남, 필리핀 등 일부 ASEAN 국가들과 항행의 자 유와 비군사화 원칙에 입장을 함께했다. 한국은 그간 남중국해에서 우리의 이해관계(원유 수입량 90%, 교역량 30% 이상)를 고려하여 원칙적 입장을 표명해 왔으나, 이번 정상회의에서 비군사화 공약준수를 언급한 것은 기존 의 입장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향후 미국과 중국이 항해의 자유와 비군사화의 개념과 해석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따라

이 문제들은 지속적인 쟁점 사안으로 부상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 다. 따라서 한국은 이 문제들에 대해 국제법적 검토와 함께 국익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외교적 대응방안들을 지속적으로 검토해 나가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중 경쟁과 ASEAN의 전략적 대응이라는 차원에서 동남아 최대국가이자 ASEAN 내 실질적 리더쉽을 제공해온 인도네시아의 외교행 태를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인도네시아는 영토, 인 구, 자원, 경제력 측면에서 동남아 최대국가이다. 따라서 과거 인도네시아 는 자연스럽게 동남아지역에서 리더쉽을 발휘해 왔다. 30년 이상 장기집권 했던 수하르토(Haji Mohammad Soeharto) 대통령은 1967년 ASEAN 창 설 이래 동남아 지역 협력을 사실상 주도해 왔다. 물론 ASEAN은 공식적으 로 주도국을 인정하지 않으며, 의사결정도 실제로 만장일치제에 가까운 “협 의와 합의” 방식을 취하고 있으나, 인도네시아는 ASEAN의 내부 논의 과정 을 통해 주요 정책 결정에 직간접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미쳐왔다.

다만 1998년 수하르토 퇴진 이후 과도기적 상황하에서 인도네시아는 한때 과거와 같은 영향력은 발휘하지 못했으나, 2004년 집권한 유도요노 (Suslio Bambang Yudhoyono) 대통령이 2009년 재선에 성공하고 견고한 성장세를 회복함으로써 지난 10여 년간 ASEAN 내에서 또다시 자연스럽게 지도력을 발휘할 여력이 생겨났다. 유도요노 대통령의 외교정책을 한마디 로 압축한다면 “동적 평형(dynamic equilibrium)” 독트린이 될 것인바, 이 는 미‧중 경쟁에 대한 또 다른 ASEAN의 전략적 대응양식이라 할 수 있다.

이 독트린은 인도네시아 유도요노 대통령 집권 2기(2009년~2014년) 외교 장관 마티 나탈레가와(Marty Natalegawa)에 의해 제시되었다.

동적 평형이란 원래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으로서 사회현상에 관해서 도 일부 사용되고 있는 용어인바, 일반적인 정의는 “외견상 정지하여 변화 가 없는 상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내용에 있어서는 교체되는 것이 있으며,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체제”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는 국제 정치학에서 현실주의에 입각한 “힘의 균형”과는 차별적 개념이라 할 수 있 으며, 힘의 균형이 제로섬적 게임이라면 동적 평형은 비제로섬적 게임에 비 유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적 평형 독트린은 구체적 내용과 정교한

전략을 포함한 공식적 외교정책이라 할 수는 없다.

다만 큰 틀에서 인도네시아의 오랜 외교적 전통을 바탕으로 향후 방향성 을 제시한 것인바, 단적으로 동남아지역에서 그 어떤 강대 세력도 지배적이 고 완전한 승자로 만들지 않겠다는 전략이다. 인도네시아는 현재와 같은 미 국, 중국 등 강대국들 간 경쟁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결국 영토분쟁, 무력충 돌, 양극화 등 대결적 양상을 띠는 힘의 균형 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 하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따 라서 인도네시아는 역내·외 중견국들(middle powers)이 주도하는 안보 및 경제 분야의 다양하고 중첩된 다자협력체제를 구축, 운영해 나감으로써, 역 내·외 어떤 국가도 배제되지 않으면서 어떤 특정 강대 세력도 주도적 지위 를 확보하지 못하도록 유도해 나가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인도네시아가 속해 있는 동남아국가 연합체인 ASEAN의 역할 이 일차적으로 중요하며, ARF, 국방장관회의(ADMM-plus: ASEAN Defense Ministers’ Meeting-Plus), ASEAN+1, ASEAN+3, EAS 등 ASEAN 중심의 각종 다자협력체제 및 다양한 차원의 양자 또는 삼자 관계 네트워크가 효율 적으로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 중에서도 특히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인도 등 역외 강대국들과 한국, 호주 등 역외 중견국들이 모 두 참여하고 있는 EAS가 가장 중요한 기제라고 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는 중첩된 각종 다차원적 지역협력체제 운영을 통하여 미국, 중국 양대세력을 상호 호혜적이며 상호 분리된 다양한 협력체제에 몰입케 만들어 나감으로써, 양대세력을 복합적 협력의 틀 안에 묶어 두려는 외교적 시도를 하려는 것이다. 즉 정치, 외교, 안보, 경제 등 모든 이해관계를 총망 라하는 복합적 협력틀 안에서 상호불신, 불통, 오해, 오산, 오판 등을 불식 시켜 나감으로써, “우리”와 “상대”를 구분하는 상호 적대적 편가르기를 방 지하고 일방적 승자도 패자도 없는 동적 평형 상태를 유지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는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하여서도 비군사화를 강조하고 있는바, 이는 남중국해 상에서 중국의 군사화뿐만 아니라 미국의 군사적 개 입에 대해서도 유보적 입장을 유지하는 것이다.

ASEAN은 인도네시아의 동적 평형 독트린을 구현하는 일차적 기제이다.

인도네시아는 ASEAN 내 역내 리더쉽을 바탕으로 ASEAN 주도의 다양한 다자협력 메커니즘을 통해 역외 국가들을 자신들이 선호하는 방향으로 유 도해 나가려는 외교적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ASEAN 국가들이 순번제로 의장국을 맡고 있는 ARF, ASEAN+3, EAS 등 각종 다자협력 과정에서 의제 설정과 우선순위 조정을 통해 ASEAN 공동의 이익을 관철하고 역외 강대국 들의 영향력을 최대한 배제하려는 외교적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동적 평형 독트린은 최근 중동지역 터키의 새로운 외교적 이니셔티브인 “Zero Conflict Initiative”와 더불어 21세기 중견국 외교의 새로운 형태를 보여주고 있는 사례로 평가될 수 있다. 북미의 캐나다와 멕 시코, 동아시아의 한국, 인도네시아, 호주 그리고 중동의 터키 등은 오늘날 국제무대에서 대표적인 중견국들이다. 그들 중 오로지 인도네시아와 터키 만이 동남아와 중동이라는 지역 내 리더쉽을 바탕으로 독자적 외교 이니셔 티브를 취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동적 평형 독트린은 여전히 개념이 모호하고, 정치적 구호의 성격 을 띠고 있으며, 실제로 구체적 정책을 결여하고 있다는 외부의 지적을 피 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예컨대 유도요노 대통령은 이 독트린을 설파하 는 과정에서 “국제사회에서 모든 국가와 친구가 되고 어떤 세력에게도 적이 되지 않겠다(million friends, zero enemy).”라는 정치적 수사를 즐겨 쓴 바 있다. 또한, 동적 평형 독트린의 추동력은 인도네시아와 ASEAN의 “소프

그러나 동적 평형 독트린은 여전히 개념이 모호하고, 정치적 구호의 성격 을 띠고 있으며, 실제로 구체적 정책을 결여하고 있다는 외부의 지적을 피 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예컨대 유도요노 대통령은 이 독트린을 설파하 는 과정에서 “국제사회에서 모든 국가와 친구가 되고 어떤 세력에게도 적이 되지 않겠다(million friends, zero enemy).”라는 정치적 수사를 즐겨 쓴 바 있다. 또한, 동적 평형 독트린의 추동력은 인도네시아와 ASEAN의 “소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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