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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칠자(前七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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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명대(明代) 문학

1. 문학 사조(文學思潮)

명대의 문단에는 ‘문장은 반드시 진·한(秦漢), 시는 반드시 성 당(盛唐)’이라고 하는 의고주의적(擬古主義的)문학 사조가 성 하게 일어났다. 이와 같은 사조는 이몽양(李夢陽)·하경명(何景 明) 등에 의해서 뚜렷해지기는 했지만 그 발단은 명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영락(永樂)에서 성화(成化)에 이르는 수십 년 간은 권 신들이 영도하는 대각체(臺閣體)가 유행했는데 이런 작품은 아 무런 사상도 기풍도 없는 공덕을 노래한 평범한 시문에 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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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이 시기 문단의 대표는 양사기(楊士奇)·양영(楊榮)·양부 (楊溥)의 ‘삼양(三楊)’과 다릉시파(茶陵詩派)의 이동양(李東陽) 이었다.

이동양(李東陽;1447~1516)은 조정에서 50년 동안 있으면서 후진들을 많이 돌보아 길러서 그의 문인들이 많았으며 문단의 영수(領袖)로 활약했다. 그의 작품은 전형적인 대각체로 생기 가 전연 없었다.

이와 같은 문풍에 반기를 들고 명 초의 의고사조(擬古思潮)를 계승하여 스스로 의고 학파를 형성한 것은 이몽양(李夢陽)·하 경명(何景明)을 중심으로 서정경(徐禎卿)·변공(邊貢)·왕정상(王 廷相)·강해(康海)·왕구사(王九思) 등의 이른바 ‘전칠자(前七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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였다.

이몽양(李夢陽;1472~1529)은 자가 헌길(獻吉), 경양(慶陽) 사 람, 하경명(何景明;1483~1521)은 자가 중묵(仲默), 신양(信陽) 사람이다. 이들의 주장은 대체로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문장은 진·한(秦漢)을 숭상하고 시는 반드시 성당(盛唐) 의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의고의 목표는 문장은 진·

한을 표준으로 삼고, 5언 고시는 한·위·육조(漢魏六朝), 그리고 7언 고시와 근체시는 성당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둘째, 모방한다는 것이 문학을 창작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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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시대의 문장이나 성당의 시가 작가에 따라서 풍격이 같 지 않고 광채도 다르지만, 그들은 모두 한 가지씩 독특한 방 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후세 사람들은 반드시 이 방법을 준 수해서 한 글자 한 문구씩 모방해나가야 점점 옛 사람의 경지 에 도달해서 스스로 유명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의식적으로 이·하 일파에 대해서 반항을 한 것은 가 정(嘉靖) 연간의 왕신중(王愼中)과 당순지(唐順之)의 송문운동 (宋文運動)이었다. 이 운동은 곧 모곤(茅坤)과 귀유광(歸有光) 의 지지를 얻어 이·하를 크게 좌절시킨 바 있는데, 이들은 문 학의 시대성과 작가의 개성을 뚜렷이 파악하고 있었고, 또 훌 륭한 작품이란 성률(性律)을 맞추고 문구를 다듬는 것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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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중에 있는 것을 솔직하게 서술하되 쉽고도 내용이 있고 감 정이 있어야 함을 주장하였다. 이들의 문학관은 또 그 뒤의 성령(性靈)을 주장한 공안파(公安派) 문학의 선구가 되기는 했 지만 결국 오래 못가고 후칠자(後七子)에 의해서 좌절되고 문 단은 또 다시 의고주의 사조로 바뀌어지고 말았다.

후칠자는 이반룡(李攀龍)·왕세정(王世貞)을 필두로 사진(謝 榛)·종신(宗臣)·양유예(梁有譽)·서중행(徐中行)·오국륜(吳國倫)을 가리키며, 이들은 이 · 하의 문풍을 이어받고 전 칠자의 주장 을 옹호하며 당순지 일파의 이론을 반대하면서 문단의 영도권 을 쟁취했다. 이들은 전칠자의 의고노선을 그대로 견지하였으 되 그 모의(模擬)의 추태는 더욱 심하여 작품의 가치는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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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졌다.

명대(明代) 말엽 낭만 사조의 흥기는 부패된 의고 사조에 대 한 직접적인 반항인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으나 또 한 가지 원인은 그 당시 낭만적 철학 사상으로부터 받은 간접적인 영 향도 있었다. 즉, 왕양명(王陽明)이 개인 양지(良知)의 자유를 제창한 심학(心學)은 곧 철학과 문예 혁신의 동기가 되었으며 사상적 속박을 해방시키는 데 막대한 작용을 했다. 이와같은 신흥 철학 사상은 왕용계(王龍溪)·왕근계(王近溪)·하심은(何心 隱)·이지(李贄) 등 왕학(王學)의 좌파(左派)라 불리는 인사들에 의하여 계속 발휘되어 결국은 유·선(儒禪)을 가릴 것 없이 호 되게 매도(罵倒)하는 지경으로까지 발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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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李贄;약1567전후)는 자가 탁오(卓吾), 진강(晉江) 사람이 다. 일찍이 혁신적인 사상을 가지고 공맹(孔孟)을 헐뜯었으므 로 유학자들과 반목하였으며, 결국은 성교(聖敎)를 훼손하고 풍화(風化)를 손상시켰다는 죄명을 씌워 투옥되었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그의 사상이 담긴 서적은 금서(禁書)가 되었다. 그렇지만 그의 사상은 의고적인 위도학(僞道學)을 반 대했고, 또 그가 추구한 것은 진정한 시비(是非)와 개인 사상 의 자유였다.

사람은 희생되었지만 그의 사상은 공안파(公安派)인 제자들에 의하여 계승되었다.

공안파는 곧 원종도(袁宗道)·원굉도(袁宏道)·원중도(袁中道)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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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를 말하며, 이들을 ‘삼원(三袁)’이라고 한다. 이들 3형제는 모두 이지(李贄)의 제자들로서 호북(湖北)의 공안 사람이기 때 문에 ‘공안파’라고 일컫게 되었다.

공안파의 문학론은 대략 다음의 다섯 가지를 들어 말할 수가 있다.

첫째, 문학이란 진화하는 것이다. 역대 문학의 변천을 보면 그 시대에는 그 시대의 특징이 있다. 창작이든 혹은 비평이든 간에 모두 이와 같은 시대적 특성을 분명히 알아야 비로소 문 학의 진화하는 원리에 위배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것만 숭상하고 현재를 천하게 본다는 것은 작자의 개성을 상실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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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옛것을 모방하는 것을 반대한다. 문학이 기왕에 진보하 는 것일진대 모방만 한다는 것은 문학의 퇴보를 의미하는 것 이다.

옛것의 모방보다는 개성있는 창작이 오히려 더 큰 가치가 있 음을 말해주고 있다.

셋째, 격투(格套)에 얽매이지 않고 다만 성령(性靈)을 나타낸 다. 옛것을 모방하는 사람은 심중에 고인(古人)만이 도사리고 있지 자아(自我)는 망각하고 만다. 사상이 자기의 심중으로부 터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독창적인 정신과 뚜렷한 개성이 결핍되어 결국은 아무런 존재 가치도 없는 작품이 되 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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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을 나타낸다는 것은 곧 문학에서 개인의 감정을 나타낸 다는 말로서 뜻(志)을 말하는 것이지 도(道)를 담는다는 것은 아니며 개성을 나타내는 것이지 병없이 신음하는 것이 아니 다.

넷째, 문학작품에는 내용이 있어야 한다. 내용이란 성인(聖人) 들의 인륜 대도를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고 감정이 있고 사상 이 있고 충실하고 병없이 신음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다섯째, 소설이나 희곡의 문학적 가치를 중시한다. 중국은 자 고로 소설을 경시하는 풍조가 있었고 소설·희곡이 점점 흥기 하던 송·원 시대에 이르러서도 이와 같은 관념은 가셔지지 않 았다. 그러던 것이 이지(李贄)·원굉도에 이르러서는 그와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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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합리한 관념이 과감하게 타파되고, 따라서 소설·희곡 등에 새로운 문학적 가치를 인정하게 되었다. 이지는 전기(傳奇)·원 본(院本)·잡극(雜劇) 그리고 <<서상기(西廂記)>>와 <<수호전(水 滸傳)>>을 진·한의 산문이나 육조의 시와 함께 비유했으며

<<수호전>>을 발분지작(發憤之作)이라고 했다.

그때까지 음란하고 도적의 책으로만 알아왔던 <<금병매(金甁 梅)>>와 <<수호전>>이 그에 의해서 ‘일전(逸典)’으로 간주되어

<<육경(六經)>>·<<이소(離騷)>>·<<사기(史記)>> 등 서적과 나 란히 서가에 꽂히게 되었고, 연구 감상하게 되었으니 이 얼마 나 혁신적인 대담한 견해인가?

이상과 같은 만명(晩明) 공안파의 이론은 실로 낭만적 정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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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적 태도로 전통적인 숭고(崇古)사상을 배격하고 개성과 자 유 그리고 내용과 감정을 중시하는 풍조를 일으켜서 문단을 지배했다. 뿐만 아니라 이런 풍조는 명 말 풍몽룡(馮夢龍)·김 성탄(金聖歎) 등에 영향을 미쳐 속문학을 연구하고 평가하는 기풍을 크게 일게 하기도 했다.

2. 소설(小說)

1)장편소설(長篇小說)

명대의 장편 소설은 그 내용에 따라 역사소설 · 영웅소설 · 신 마(神魔)소설 · 염정(艶情)소설 등으로 나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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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소설(歷史小說)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나본 (羅本)의 손에 거친 <<삼국연의(三國演義)>>이다.

이는 원래 원 지치(至治)연간(1321~1323), 신안(新安) 우씨 (虞氏)가 간행한 <<전상삼국지평화(全相三國志平話)>>를 개편 하여 하나의 통속적인 역사 소설로 만든 것이다.

나본(羅本; 약1367전후)은 자가 관중(貫中), 원말 명초 사람 이다. 그가 지은 소설은 매우 많아 전하는 바로는 <<수당연의 (隋唐演義)>>·<<북송삼수평요전(北宋三遂平妖傳)>> 및 <<분장 루(粉粧樓)>> 등이 있으나 그 중 <<삼국연의(三國演義)>>가 가장 유명하다.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의 최초본은 홍치(弘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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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인년(1494)에 간행된 판본으로 진수(陳壽)의 <<삼국지(三國 志)>>에 근거하여 송·원 양대에 유행되어오던 삼국 시대의 고 사를 섞어서 역사 소설로 엮은 것이다. 나관중의 <<삼국지통 속연의>>는 모두 24권으로 중국 최초로 장편 소설의 형식을 이루어놓았다.

오늘날 전해오는 120회본의 <<삼국연의>>는 나관중이 쓴 원 본이 아니고, 청 강희(康熙) 연간 모종강(毛宗崗)이 나씨 본을 고쳐 쓴 것이다.

영웅 소설(英雄小說) 가운데서 처음으로 장편 장회 소설(章回 小說)로 이루어져 <<삼국연의>>와 더불어 민간에 널리 성행한 것은 곧 <<수호전(水滸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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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송·원(宋元) 수백 년 간을 구전(口傳) 또는 <<선화유 사(宣和遺事)>> 등 서책을 통해 전해 내려오던 양산박(梁山泊) 영웅들의 고사와 전설들을 모아서 엮은 것으로, “<<수호전>>

은 시내암이 그 초고를 쓰고 나 관중이 그 다음으로 개편했 다.”라고 한 기록을 미루어 시내암 쪽이 가능성이 짙다.

시자안(施子安; 1290 전후~1365전후)은 호가 내암거사(耐菴 居士), 원말 명초 때의 전당(錢塘)사람이다. 원본<<수호전>>은 없어진지가 이미 오래 되었으며, 현존하는 <<수호전>>은 대략 6가지 판본이 있는 그 중 중요한 것이 4종이 있다.

첫째는, 나관중이 편집했다고 하는 115회본의 <<충의수호전 (忠義水滸傳)>>으로 이는 명 숭정(崇禎) 말년에 <<삼국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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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합각(合刻)하여 <<영웅보(英雄譜)>>로 낸 것인데, 여기에는 송강(宋江) 등의 양산박(梁山泊)에서 취의(聚議)한 고사 및 조 정에 불리어 방랍(方臘)을 토벌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둘째는, 명 중엽 가정(嘉靖) 연간에 이르러 무정후(武定侯) 곽훈(郭勳)의 집에서 전해온 100회로 된 번본(繁本) <<수호전 (水滸傳)>>인데, 내용이 비교적 풍부하고 또 송강 등이 조정에 불려들어간 후 방랍을 토벌하기 전에 요(遼)를 정벌하는 일단 이 더 추가되어 있다. 이 판본의 작자는 ‘천도외신(天都外臣)’

이라 서명하고 있는데 이것은 아마 서(序)를 쓴 왕태함(汪太 涵)일지도 모른다.

셋째는, 천계(天啓)·숭정(崇禎) 연간에 양정견(楊定見)이 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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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회본의 <<충의수호전서(忠義水滸全書)>>이다. 양정견은 여 기에 스스로 이지(李贄)를 사사(師事)하고 원무애(袁無涯)의 청 에 따라 이 전(傳)을 각본한다고 서(序)를 붙이고 있는데, 그는 요(遼)를 정벌한 다음에 다시 전호(田虎)·왕경(王慶)을 정벌한 일단을 더 증가시켜 놓았다. 실로 가장 완비된 판본이라고 할 수 있다.

넷째는, 김인서(金人瑞)가 전한 70회본의 <<수호전(水滸傳)>>

이다. 여기에서는 김인서가 120회본에서 송강 등이 조정에 불 려들어간 이후의 이야기를 산거해버리고 ‘동도시내암찬(東都施 耐菴撰)’이라고 제(題)한 원서(原序)를 붙여서 스스로 고본을 구독했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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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은(吳承恩)의 <<서유기(西遊記)>>는 낭만적인 문학의 대 표작으로 들 수 있다. <<당삼장취경시화(唐三藏取經詩 話)>>·<<당삼장서천취경(唐三藏西天取經)>> 및 <<서유기전(西 遊記傳)>> 등 자료를 종합하고 이를 작자의 새로운 상상 및 창조력을 발취하여 삼장(三藏) 및 손행자(孫行者) 등이 81종의 고난을 겪으면서 서행(西行)하여 불경을 취해 온다는 일종의 장편 신마소설(神魔小說)을 이룩해 놓았다.

오승은(吳承恩 ; 약 1500~1582)은 자가 여충(汝忠), 호가 사 양산인(射陽山人), 회안(淮安)사람이다. 벼슬은 장흥현승(長興 縣丞)을 지냈다. 시서(詩書)에 능하였으나 집안이 가난하고 자 식이 없어 그가 죽은 후 유고들이 많이 산실되었고, 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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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존고(射陽存稿)>>와 <<서유기(西遊記)>>만이 후세에 전 해오고 있다.

<<봉신연의(封神演義)>> 100회본도 역시 신마소설 중에서 잘 알려진 작품이다. 원작자는 알 수 없으나 이는 허중림(許仲琳) 이 원인(元人)의 <<무왕벌주서(武王伐紂書)>>의 평화본(平話 本)을 근거로 하여 편찬한 것으로 내용은 주 무왕(武王)이 주 왕(紂王)을 치는 것인데, 편자는 <<무왕벌주서(武王伐紂書)>>

에다가 명대에 성행하던 도·불·선(道佛仙)에 관한 이야기를 삽 입하여 하나의 허황 무계(無稽)한 신마 소설을 이루어놓았다.

<<금병매>>는 신마 기괴(神魔奇怪)의 내용도, 호협 검술(豪 俠劍術)의 신기함도 아닌 순수한 인간의 현실적인 문제를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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룬 일종의 사회 소설이다. 내용은 <<수호전>> 중의 서문경(西 門慶)과 반금련(潘金連)의 염사(艶史) 및 무송(武松)이 형수를 살해는 짧은 한 장면을 확대시켜 무려 100회의 장편 장회 소 설로 이루어놓은 것이다. 작자는 또 여기서 그의 아름다운 문 장과 대담한 표현으로 명 말의 음란하고 부패한 어두운 사회 의 뒷면을 여지없이 폭로하기 위하여 한 탕아 곧 서문 경의 성장·환경·방종 그리고 멸망을 엮은 일대기를 쓴 것이다.

<<금병매사화(金甁梅詞話)>>의 작자는 난릉(蘭陵)의 소소생 (笑笑生)이라고만 전할 뿐 그 소소생이 누구인지 알 길이 없 다. 그리고 판본은 동오 농주객(東吳 弄珠客)이 만력(萬曆) 정 사(丁巳)년에 쓴 <서(序)>가 붙어 있는 <<금병매사화(金甁梅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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話)>> 본이 현존하는 <<금병매>>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간행 본이며 원작의 면모에 가장 가까운 판본이다.

<<금병매>>는 <<삼국지통속연의>>·<<수호전/지>>·<<서유 기>>와 더불어 중국 ‘사대기서(四大奇書)’로 일컬어지는 명작 이다.

2)단편소설(短篇小說)

명대에서 단편 소설이 대량으로 간행된 것은 천계(天啓)·숭정 (崇禎) 연간의 일이다. 이러한 작업에 공로가 가장 컸던 사람 은 곧 풍몽룡이다.

풍몽룡(馮夢龍 ; 약 1574~1646)은 자가 유룡(猶龍), 호가 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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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재(墨憨齋), 장주(長洲) 사람으로 수녕현 지현(壽寧縣知縣)을 지냈다. 그는 <<평요전(平妖傳)>>을 보(補)하였고, <<삼언(三 言)>>을 편찬했으며, 한편 희곡도 좋아하여 여러 편을 지었다.

그 가운데서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삼언>>이다. <<삼언>>

이란 <<유세명언(喩世明言)>>(40종)·<<경세통언(警世通 言)>>(40종)·<<성세항언(醒世恒言)>>(40종)을 말한다. 이 중의

<<유세명언>>은 곧 풍몽룡이 무원야사(茂苑野史)라는 조년(早 年)의 필명으로 가장 먼저 편집했던 <<고금소설(古今小說)>>

이다. 그리고 이 <<삼언>>에 실린 120종의 평화(平和)는 송·

원·명대에 이르기까지 성전되어 오던 유명한 이야기들이다.

능몽초(淩濛初 ; 약 1584~1644)는 자가 현방(玄房), 호가 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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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관주인(卽空觀主人), 오정(烏程) 사람이다. 그의 <<세설신어 (世說新語)>>·<<서상기>>·<<비파기>>·<<수유기(繡襦記)>>·

<<남가기(南柯記)>> 등의 각본(刻本)은 참으로 정미(精美)하다.

능몽초가 지은 유명한 화본(話本)은 양각(兩刻) <<박안경기 (拍案驚奇)>>이다. 이 초각(初刻)은 천계(天啓) 7년에 간행되었 는데 36편이 실려 있고, 이각(二刻)은 숭정(崇禎) 5년에 간행 되었는데 여기에는 소설 39편과 끝에 가서 <<송공명뇨원소잡 극(宋公明閙元宵雜劇)>> 40회를 실어놓았다. 이각(二刻)은 자 료가 부족한데도 불구하고 영리를 위하여 무리하게 진행했기 때문에 내용도 신괴적(神怪的)인 것이 많고, 전인의 화본(話 本)을 개작한 것도 있으며, <<고금소설>>에서 자료를 취해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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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도 있으며, 심지어는 초각(初刻)에 있는 것을 다시 실은 것 도 있다.

그 후에 <<삼언>>과 <<이박(二拍)>>이 너무 방대하여 민간 에서 사서 보기가 힘들었던 사실을 감안해서 포옹노인(抱甕老 人)은 숭정(崇禎) 말년 경에 <<삼언>>에서 29편, <<이박>>에 서 10편을 뽑고 거기에다 따로 <염친은효녀장아(念親恩孝女藏 兒)> 1편을 첨가하여 <<금고기관(今古奇觀)>>(40편)을 만들었 다. <<금고기관>>은 만명(晩明)의 평화 선본(平話選本)이며,

<<삼언>>과 <<이박>>이 수백년 간 흔적을 감추고 있는 동안 그 당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 으며 읽혀온 작품이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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