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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열정으로 더불어 함께 하는 세상 만들기 - 율촌재단(栗村財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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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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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매운맛, 병원균, 그리고 통섭: 문화와 유전자의 공진화 전중환.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국제캠퍼스). 1. 서론 향신료는 요리에 소량으로 첨가되어 맛과 향을 높여주는 식물성 재료다. 초본 식물의 꽃/씨앗/뿌리/ 열매, 방향성 이끼, 나무의 일부, 관목이나 덩굴식물의 일부에서 유래한다(Farrell, 1990). 생강, 고추냉이, 강황, 파슬리, 시나몬, 후추, 고추, 마늘, 육두구, 파, 양파, 라임, 파프리카, 겨자 등의 향신료가 저마다 독특한 맛과 향기를 내는 까닭은 식물 종마다 각기 다른 2차 대사산물을 지니기 때문이다. 이들 피토케미컬 (phytochemical)은 식물이 초식 곤충, 세균, 곰팡이, 초식 동물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만든 화학무기다(Walker, 1994). 수십 가지의 피토케미컬들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각각의 향신료 고유의 맵고 자극적인 맛이 만들어진다. 고추에 들어있는 캡사이신(capsaicin)은 대표적인 피토케미컬이다.. 향신료는 각국의 독특한 식문화를 만드는 중요한 요소이다(Pinkas & Keller, 2014). 어떤 향신료를 얼마나 써서 요리하는가는 문화마다 천차만별이다. 이를테면, 일본 요리는 “섬세하고”, 중국의 사천 요리는 “타는듯하고”, 스칸디나비아 요리는 “담백하다.” 문화인류학자들과 음식인문학자들은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서 각 나라의 식문화를 상세하게 기술한다(Turner, 2008). 그러나 향신료 사용에서 나타나는 문화적 차이가 왜 생겨났는가에 대해서는 명확한 합의가 이루어져 있지 않다(Rozin, 1982, 1990). 왜 사람들은 향신료가 가미되어 매운 음식을 즐기는가? 왜 문화마다 매운맛을 선호하는 양상은 제각기 다른가?. 많은 사람들이 이 질문들에 대한 정답은 자명하다고 생각한다. 향신료가 첨가되면 음식의 맛과 향이 매운맛, 병원균, 그리고 통섭: 문화와 유전자의 공진화. 573.

(2) 좋아지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매운 음식을 먹으면 혀에 가해지는 통증을 줄이고자 뇌에서 자연 진통제인 베타-엔도르핀(β-endorphin)이 분비되므로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기분이 좋아진다는 설명이다. 물론 이는 맞는 말이지만, “왜?”가 아니라 “어떻게?”에 답하는 근접 설명이다. 왜 우리의 뇌가 하필이면 식물에서 유래한 향신료를 첨가한 음식을 맛있다고 느끼게끔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궁극적인 설명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근접 설명과 궁극 설명은 서로 배타적이지 않으며 상호보완적인 관계이다. 생명 현상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두 설명이 모두 필요하다(Alcock and Sherman, 1994). 즉, “어떻게 우리의 뇌는 향신료를 선호하게끔 작동하는가?”에 답하는 유전적, 생리적, 사회문화적인 근접 설명도 중요하지만, “왜 우리의 뇌는 향신료를 선호하는가? 왜 다른 방식으로는 만들어지지 않았는가?”에 답하는 진화적인 궁극 설명도 똑같이 중요하다.. 1998년, 코넬 대학교의 진화생물학자 폴 셔먼(Paul Sherman)과 그 동료들은 왜 사람들이 매운 음식을 즐기는가를 진화적으로 설명하는 “항균 가설(antimicrobial hypothesis)”을 제안했다(Billing & Sherman, 1998). 식물이 이차 화합물을 지니는 이유는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런데 인간이 먹는 음식도 종종 식물을 공격하는 세균 및 곰팡이와 동일한 미생물들에 노출된다. 음식에 첨가된 향신료가 여전히 음식 속의 미생물을 죽이거나 미생물이 만드는 독소의 성장을 억제할 수 있다면, 향신료를 요리에 첨가하는 행동은 우리가 식중독에 걸리거나 음식 매개 전염병에 감염되지 않게끔 지켜주는 이점을 주었다는 것이다. 요컨대, 매운 음식이 맛있는 진화적 이유는 그것이 인간의 건강과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다(Billing & Sherman, 1998; Sherman & Billing, 1999; Sherman & Flaxman, 2001). 아래에 서술하듯이, 셔먼과 그 동료들은 항균 가설이 내놓는 다양한 예측들을 일일이 검증하여 가설을 뒷받침하는 다수의 실증적인 증거들을 보고하였다. 가설을 처음 제안한 대표 논문은 그동안 수백 번 이상 인용되면서(Billing & Sherman, 1998) 진화적 관점에서 요리와 식문화를 연구하는 ‘다윈 미식학(Darwinian Gastromy)’을 출범시킨 주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통섭함으로써, 장구한 세월에 걸쳐 진화한 인간 본성이 어떻게 각 지역의 다채로운 식문화를 파생시켰는지를 밝혀낸 모범 사례인 것이다.. 그러나, 항균 가설을 제안한 연구자들은 인간이 향신료를 선호하게끔 특수화된 심리적 적응을 진화시켰다고 제안하지는 않았다. 물론 그러한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대신, 연구자들은 인류가 우연한 사건 혹은 자유분방한 실험을 통해 향신료를 요리에 사용하게 되었으리라고 추측했다. 즉, 더운 지역처럼 음식이 상온에서 쉽게 부패할 수 있는 상황에서 우연히 향신료의 원료가 되는 식물성 재료를 음식에 소량 첨가하여 한 끼를 해결한 사람들은 식중독이나 전염병에 잘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흥미로운 발견이 다른 사람들에게 모방 혹은 언어적인 가르침을 통해 문화적으로 전달되어 마침내 매운 음식에 대한 선호가 널리 전파하게 되었으리라는 제안이다(Billing & Sherman, 1998).. 574. 2016년 기초연구과제 총서.

(3) 자동차를 운전하는 행동을 예로 들어보자. 이 행동은 외부 물체와의 거리를 시각적으로 인식하거나,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측하거나, 자극에 반응하여 팔과 다리를 적절히 제어하는 등의 심리적 적응들이 있어야 비로소 가능하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자동차를 운전하게끔 설계된 심리적 적응을 가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자동차는 고작 수백 년 전에 발명된 문명의 이기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음식에 향신료를 첨가하여 매운맛을 즐기는 행동은 문화적 전달을 가능케 하는 여러 심리적 적응들 - 타인의 행동에 주목하고, 그 행동으로부터 타인의 의도와 목표를 추론하고, 그 행동을 장기간에 걸쳐 기억하고, 나중에 남들 앞에서 직접 그 행동을 실행함 - 덕분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매운맛을 즐기게끔 특수하게 설계된 심리적 적응을 진화시킨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Billing & Sherman, 1998; Sherman & Billing, 1999). 문화 진화론자인 조셉 헨리히 (Joseph Henrich, 2016)는 이러한 입장에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향신료 자체는 암이나 돌연변이를 유발하는 등 몸에 해롭지만, 맛없는 매운 음식을 먹은 사람들이 어쨌든 식중독이나 전염병에 덜 걸려서 더 건강하고 더 자식을 많이 낳았다. 이러한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 더 많이 전파되었기에, 매운 맛을 즐기는 행동이 매운 맛을 기피하는 유전적 본능을 거스르고 문화적 적응으로 정착되었다고 그는 주장했다(Henrich, 2016).. 본 연구자는 매운 맛을 즐기는 행동을 순전히 문화적인 전달의 산물이라 보는 입장을 비판하면서, 매운 맛에 대한 선호 역시 자연 선택에 의해 특수하게 설계된 심리적 적응에서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즉, 매운 맛에 대한 선호는 펩시콜라보다 코카콜라를 더 선호하는 것 같은 문화적 적응이 아니라, 먼 과거의 수렵-채집 환경에서 우리의 조상들이 섭취했던 음식물 속에 들어 있을지도 모를 병원체를 회피해야 한다는 적응적 문제를 잘 해결하게끔 자연 선택에 의해 정교하게 설계된 심리적 적응에서 유래한다는 것이다. 매운 맛에 대한 선호가 진화된 심리적 적응의 산물이라는 본 연구자의 제안은 거시적으로 보면 인간 사회의 다양한 문화적 현상들을 각 지역의 토착 병원균에 대한 심리적 방어로서 설명하는 ‘기생체-스트레스 이론 (parasite-stress theory)’의 틀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Fincher, Thornhill, Murray, & Schaller, 2008; Schaller & Duncan, 2007; Thornhill & Fincher, 2014). 기생체-스트레스 이론의 관점에서, 본 연구는 향신료가 첨가된 음식을 선호하는 행동이 어떠한 설계상의 특질을 지녔을지 엄밀히 분석함으로써 향신료 사용에서 나타나는 문화간의 차이뿐만 아니라 개인간의 차이와 상황적인 차이에 대해서도 새롭고 검증 가능한 예측들을 생산함으로써 매운 맛에 대한 선호를 통섭적으로 이해하는 초석을 놓고자 한다..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먼저, 사람들이 향신료를 음식에 첨가하는 진화적 이유는 향신료가 음식 속에 있는 미생물을 죽이거나 성장을 억제하는 물질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항균 가설을 요약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실증적 증거들을 정리하고, 대안 가설들을 검토한다(2장). 그리고 나서 향신료를 요리에 사용하는 행동은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된 심리적 적응이 아니라 오직 모방과 학습이라는 문화적 전달에 의해 만들어진 문화적 적응이라는 기존의 관점을 소개한다(3장). 다음으로, 어떤 지역의 토착 병원균에 대한. 매운맛, 병원균, 그리고 통섭: 문화와 유전자의 공진화. 575.

(4) 심리적 방어가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사회성과 가치 체계를 포괄하는 여러 측면들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기생체-스트레스 이론을 요약한다(4장), 이상의 논의를 바탕으로, 전염성 병원체에 감염될 가능성과 연관되는 외부의 환경적 입력을 처리하여 요리에 향신료를 첨가하는 적응적 행동을 만들어내는 진화된 심리 기제를 제안한다(5장). 이러한 적응주의적 분석을 바탕으로, 매운 음식을 찾는 행동이 개인에 따라, 시간적, 공간적 상황에 따라, 지역에 따라 어떻게 달라질지 새롭고 검증가능한 예측들을 도출한다(6장). 논의를 마무리하면서 본 연구자의 제안이 실제로 매운 음식을 선호하는 소비자 행동 분석이나 마케팅에 응용될 가능성을 간략히 검토한다(7장).. 2. 향신료의 항균 가설 앞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향신료 사용에서 가장 흥미로운 측면은 각국의 요리 문화마다 향신료를 사용하는 양상이 제각각 다르다는 것이다. 어떤 문화권에서는 여러 가지 향신료를 자주 사용하는 반면, 다른 문화권에서는 향신료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Dalby, 2000). 이러한 문화적 차이를 만드는 원인에 대해서는 연구자들마다 견해가 엇갈린다(그림 1 참조).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향신료 사용에서 나타나는 문화적 차이는 단순히 각 지역마다 구할 수 있는 향신료 식물의 양과 종류가 다르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Billing & Sherman, 1998).. 그림 1. 음  식에 향신료를 첨가하여 요리하는 행동의 문화적 차이. 왼쪽은 아이슬란드의 구운 치킨 요리. 오른쪽은 한국의 ‘불닭’ 요리. 576. 2016년 기초연구과제 총서.

(5) 향신료를 섭취하면 이득과 비용이 모두 따른다. 향신료가 주는 이득을 먼저 살펴보자. 향신료는 일종의 천연 약제이다. 향신료가 되는 식물은 초식동물, 초식곤충, 세균, 곰팡이 같은 천적을 막기 위한 이차 화합물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식물의 천적이 되는 곰팡이와 세균의 상당수는 인간의 음식도 공격한다. 문자로 기록된 인류 역사를 통해서, 음식에 내재한 세균 - 특히 클로스트리듐속(Clostridium), 대장균속(Esherichia), 리스테리아속(Listeria), 살모넬라속(Salmonella), 시겔라속(Shigella), 비브리오속 (Vibrio)의 세균들 - 은 인류에게 심각한 생존상의 위협이 되었다(Hui et al., 1994). 이 사실에 착안하여, 셔먼과 동료들은 인간이 향신료를 음식에 첨가하는 까닭은 음식 속에 잠복한 병원체를 죽이거나 병원체가 만드는 독소의 성장을 억제하여 인간이 음식을 먹고 식중독이나 음식 매개 전염병에 걸리지 않기 위함이라고 제안했다고 이미 서술한 바 있다(Billing & Sherman, 1998; Sherman & Billing, 1999; Sherman & Hash, 2001).. 향신료 섭취에 따르는 비용은 결코 적지 않다. 첫째, 고농도의 식물 이차 화합물은 알러지, 암, 태아의 기형, 유산을 일으킬 수 있다(Ames, Profet, & Gold, 1990; Beier & Nigg, 1994; Surh & Lee, 1996). 향신료가 요리에 쓰일 때 아주 적은 양만 첨가되는 현상, 그리고 유아나 임신부는 맵고 자극적인 음식을 일반적으로 싫어하는 현상은 이처럼 향신료가 상당한 생리적 비용을 부과하는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Cashdan, 1998; Profet, 1992). 유아나 임신부에서는 체내에서 세포 분열이 활발히 일어나므로 이런 사람들은 특히 돌연변이 유발물질이나 기형아 유발물질에 취약하다. 둘째, 세균이나 곰팡이에 오염된 향신료를 섭취했을 경우 그 사람도 질병에 걸릴 수 있다. 셋째, 그 지역에서 나지 않는 향신료 식물의 경우, 이를 구매하고 수송하고 가공하는데 따로 경제적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향신료를 섭취하는데 이처럼 비용이 따름을 고려하면, 잠재적인 이득이 잠재적인 비용을 능가하리라 기대되는 상황에서만 주로 향신료를 섭취하리라 예측할 수 있다. 예컨대, 돌연변이나 암 유발물질에 매우 취약한 유아나 임신부의 경우 향신료 섭취에 따르는 비용이 식중독이나 음식 매개 전염병을 피하는 잠재적 이득을 능가했기 때문에 매운 음식을 회피할 것이다.. 폴 셔먼과 그 동료들은 항균 가설을 검증하고자 일련의 실증 연구들을 수행하였다. 그들은 전세계 36 개국의 전통 요리책 93권을 조사하였다. 이는 지구상의 모든 대륙에 걸치며 총 19개 주요 언어군 가운데 16 개 언어군을 포괄하는 방대한 규모였다. 각 나라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통적인 요리법을 기술한 이 책들은 그 지역에서 대대로 살아온 사람들과 음식에 잠복하는 토착 병원체 사이의 진화적 군비 경쟁(evolutionary arms race)을 기록한 역사서에 비유할 수 있다. 셔먼 연구팀의 데이터베이스는 총 4,758개의 고기 요리법과 2,129 개의 야채 요리법, 그리고 여기에 동원된 총 42종의 향신료에 대한 정보를 포괄했다. 염분도 항균제 역할을 수행하며 수백 년 동안 음식 가공과 보존에 중요한 역할을 하긴 했지만(Alford & Palumbo, 1969), 염분은. 매운맛, 병원균, 그리고 통섭: 문화와 유전자의 공진화. 577.

(6) 식물성 원료가 아니라 광물이므로 연구 프로젝트에서 제외되었다(Billing & Sherman, 1998; Sherman & Billing, 1999; Sherman & Hash, 2001).. 셔먼 연구팀의 데이터베이스는 모든 미식가들이 익히 알고 있는 사실, 즉 각 나라마다 즐겨 사용하는 향신료와 그 빈도는 천차만별임을 다시 확인시켰다. 가장 널리 사용되는 향신료는 후추와 양파였다, 이들은 전세계 모든 고기 요리법 가운데 60% 이상에서 사용되었다. 마늘, 칠리 페퍼, 레몬/라임 주스가 그 뒤를 따라서 많이 사용되었다. 대다수 향신료는 사용 빈도가 그리 높지 않았다. 향신료들 가운데 약 80%는 고기 요리법 가운데 10% 미만에서만 사용되었다. 가장 드물게 쓰이는 향신료는 양고추냉이(horseradish), 회향 (fennel), 그리고 세이버리(savory)였다(Billing & Sherman, 1998).. 2.1. 항균 가설로부터 도출된 예측들과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들 항균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셔먼 연구팀은 다섯 가지 예측을 도출하고 이를 전세계 전통 요리법의 데이터베이스와 미생물학 문헌에 기대어 확인하였다. 그 예측들을 하나씩 살펴보자.. 예측 1: 요리에 쓰이는 향신료들은 실제로 곰팡이와 세균을 억제시키는 능력이 있을 것이다. 예전부터 미생물학자들과 식품영양학자들은 음식에 침투하는 곰팡이, 효모, 세균에 향신료 식물로부터 추출한 피토케미칼을 처리함으로써 향신료의 항균 능력 여부를 실험실에서 조사해 왔다. 연구들마다 각기 다른 환경에서 다른 실험 기법을 채택하여 데이터는 균질하지 않지만, 다수의 향신료가 강한 항균 능력을 실제로 가지고 있음은 뚜렷하게 확인되었다(Shelef, 1984; Deans & Ritchie, 1987; Beuchat, 1994; Nakatani, 1994; Hirasa & Takemasa, 1998; Pinkas & Keller, 2014). 효모나 곰팡이보다 세균이 일으키는 음식 매개 전염병이 인류에게 더 심각한 위협이 되므로(Varnam & Evans, 1991), 셔먼 연구팀은 향신료가 세균을 억제하는 능력을 보고한 문헌들에 주로 초점을 맞추었다. 지금까지 항균 능력 여부가 조사된 30종의 향신료 모두는 여러 미생물학 연구들에서 실험한 세균 종들 가운데 적어도 25%를 죽이거나 성장을 억제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이 중 15종의 향신료는 세균 종의 75% 이상을 죽이거나 성장을 저해하였다. 모든 세균 종을 죽임으로써 가장 강력한 항균작용을 과시한 향신료는 마늘, 양파, 올스파이스, 그리고 오레가노였다.. 항균 가설은 전통 요리법에서 음식에 첨가하라고 지시하는 향신료의 양은 의도한 항균 효과를 내기에 충분한 양이며, 불을 사용하여 음식을 조리하는 과정이 피토케미컬을 파괴시키지 않으리라고 암묵적으로. 578. 2016년 기초연구과제 총서.

(7) 가정한다. 조리가 끝난 요리에 들어 있는 향신료의 양, 그리고 그들의 항균 능력에 대한 정밀한 분석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 가정이 합리적임을 암시하는 근거들이 발견되었다. 예컨대, 셔먼 연구팀은 전통 요리법들이 일반적으로 0.25~0.3g의 향신료를 첨가하라고 지시함을 발견하였는데, 이는 실험실에서 향신료가 음식에 잠복하는 세균을 죽이거나 저해하는 농도 범위에 속한다(Hirasa & Takemasa, 1998; Ismaiel & Pierson, 1990). 즉, 요리에 첨가되는 향신료의 농도가 가설이 제안하는 것처럼 실제로 항균작용을 하기에 충분함을 보여준다.. 불을 사용한 조리 과정이 식물의 이차 화합물을 파괴하지 않을 것이라는 항균 가설의 가정은 어떠할까? 몇몇 연구들은 불로 익히는 조리 과정을 겪으면 큐민(cumin)과 같은 향신료의 항균 능력은 파괴되지만 캡사이신(capsaicin) 같은 향신료의 항균 능력은 영향을 받지 않음을 보고하였다(Chen, Chang, & Chang, 1985; Srinivasan, Sambaiah, & Chandrasekhara, 1992). 사실, 향신료로부터 올레오레진(oleoresin)과 정유(essential oil)를 상업적으로 추출할 때는 대단히 높은 온도에서 수증기로 증류한다. 수증기 증류를 거친 향신료 화합물과 CO2 증류를 거친 향신료 화합물을 가스 크로마토그래피로 비교해보면 차이점이 없다. 이는 향신료가 고열에도 안정적임을 입증한다. 디벨과 바나와트(Diebel & Banwart, 1984)는 오레가노, 세이지 (sage), 정향(clove)을 25℃와 42℃에서 각각 16시간을 끓인 이후에도 이들이 식중독을 일으키는 주요한 세균인 캠필로박터 제주니(Campylobacter jejuni)를 여전히 억제시킴을 보고했다. 즉, 상당수의 향신료는 불로 익히는 과정을 거친 후에도 항균능력을 잃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예측 2: 상온에서 보관된 음식이 쉽게 부패하는 더운 국가에서는 향신료를 더 많이 사용할 것이다. 아직 요리하지 않은 식재료나 미처 다 먹지 못하고 남은 음식들을 - 특히 고기 음식들을 - 냉장고가 아니라 상온에 몇 시간이라도 보관하면 곧바로 세균이 다량으로 증식한다. 평균기온이 높고 음식에 침투하는 병원균이 다양한 열대 기후에서는 더더욱 그렇다(Hobbs & Roberts, 1993). 그러므로 항균 가설은 각 지역의 연평균 기온과 향신료 사용 사이에 양의 상관관계가 있으리라고 예측한다. 이 예측은 각 지역의 전통 요리법이 약 100여 년 전 냉장고가 전 세계에 널리 보급되기 이전에 이미 형성되었다는 가정 하에 도출된 것이다. 대다수 전통 요리법들이 적어도 100년 전에 만들어졌으리라는 이 가정은 합리적으로 보인다.. 셔먼 연구팀은 36개국의 연평균 기온을 모두 조사했다. 연평균 기온은 2.8℃(노르웨이)에서부터 27.6℃( 태국)까지 다양했다. 예측대로, 연평균 기온이 높은 나라일수록 1) 요리법 중에서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의 향신료를 사용할 것을 규정한 요리법이 차지하는 비율, 2) 요리법 하나당 사용되는 향신료의 평균 가짓수, 그리고 3) 그 나라에서 사용되는 향신료의 총수가 증가했다 (그림 2 참조). 예를 들어, 인도의 요리에서 모두 25가지의 향신료가 사용되었으며, 요리법 하나당 평균 9.3가지의 향신료들이 사용되었다. 반면에. 매운맛, 병원균, 그리고 통섭: 문화와 유전자의 공진화. 579.

(8) 노르웨이 요리에서는 모두 10가지의 향신료만이 사용되었으며, 요리법 하나당 평균 1.6가지의 향신료들이 사용되었다. 온대 기후에 속하는 헝가리의 요리는 모두 21가지의 향신료를 사용했으며, 요리법 하나당 평균. 향신료의 총 가짓수. 요리법당 향신료 수. 향신료 요리법의 비율. 3.0가지의 향신료들을 썼다.. 연평균 기온(℃). 그림 2. 연평균 기온과 34개국의 향신료 사용의 관계. (a) 1개 이상의 향신료를 사용하는 고기 요리법의 비율과 연평균 기온의 관계 (r=0.74, df=32, P< 0.001) (b) 요리법 당 향신료의 가짓수와 연평균 기온의 관계 (r=0.572, df=32, P = 0.002) (c) 각 나라에서 사용하는 향신료의 총 가짓수와 연평균 기온의 관계 (r=0.216, df=32, P = 0.286). Biling & Sherman(1988)에서 변형하여 인용함.. 580. 2016년 기초연구과제 총서.

(9) 각각의 향신료가 사용되는 양상도 기후에 따라 체계적으로 변화했다. 연평균 기온이 올라갈수록 향신료가 더 많이 사용되는 경향은 “매우 억제적인(highly inhibitory)” 향신료들, 즉 실험실에서 시험된 세균 종의 75% 이상을 죽이거나 저해시키는 것으로 밝혀진 향신료들 - 칠리, 마늘, 양파, 아니스(anise), 계피, 고수, 큐민, 생강, 레몬그라스, 강황, 바질, 월계수 잎, 소두구(cardamom), 셀러리, 정향, 피망, 민트, 육두구(nutmeg), 사프론, 오레가노 -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연평균 기온이 올라갈수록 오히려 더 적게 사용되는 경향을 보인 향신료는 파슬리와 딜 뿐이었으며, 이 두 향신료는 애초에 강력한 항균 작용을 보유하지 않은 것들이다(Billing & Sherman, 1998; Sherman & Billing, 1999).. 예측 3: 각  국가에서 사용되는 향신료는 그 나라에 많이 분포하는 토착 세균을 죽이거나 억제하는데 특별히 더 효율적일 것이다. 이 예측 역시 항균 가설로부터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것이지만, 셔먼 연구팀은 각 국가에서 집중적으로 분포하는 토착 세균들의 완전한 목록을 구하지는 못했다. 연구팀은 대신 전세계에 광범위하게 분포하면서 심각한 음식 매개 전염병을 일으키는 주범이 되는 세균들 - 대장균(Esherichia coli), 살모넬라 플로럼 (Salmonella pullorum), 황색포도상구균(Staphylococcus aureus), 스트렙토코쿠스 패칼리스(Streptococcus. faecalis) 등 - 30종에 대해서 각 나라의 요리법에서 무작위적으로 골라낸 30개의 표본 요리법들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항균 작용을 하는지 조사했다. 예측대로, 연평균 기온이 증가할수록 각 나라의 향신료에 의해서 억제되는 음식 매개 세균의 비율은 증가했다. 즉, 더운 나라의 요리법은 추운 나라의 요리법보다 더 강한 항균 작용을 함이 밝혀졌다.. 예측 4: 한  나라 안에서도 위도와 고도가 높은 곳(즉, 상대적으로 추운 곳)은 위도와 고도가 낮은 곳보다 향신료를 적게 쓰고 강하지 않은 향신료를 쓸 것이다. 셔먼 연구팀은 이 예측을 검증하고자 미국과 중국의 지역별 전통 요리법들을 분석했다. 예측대로, 미국과 중국 모두에서 한 지역 내에서 쓰이는 향신료의 총 가짓수, 적어도 하나의 향신료를 사용하는 요리법의 비율, 그리고 “매우 억제적인” 향신료의 사용 빈도는 북쪽 지역보다 남쪽 지역에서 더 높았다. 요리법 하나 당 사용되는 향신료의 평균 가짓수는 중국 북부보다 중국 남부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더 많았으나, 미국에서는 그러한 차이가 발견되지 않았다. 두 나라 모두에서 남쪽 지역의 전통 요리법에서 사용하는 향신료는 남쪽 지역에서 사용하는 향신료보다 더 강한 항균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예측 5: 각 나라의 전통 요리법에서, 고기 요리는 야채 보리보다 더 강한 향신료를 더 많이 사용할 것이다. 똑같이 상온에서 보관한 음식이더라도, 고기 요리가 야채 요리보다 심각한 음식 매개 질병을 더 많이 일으킨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는 음식에 침투하는 미생물이 일반적으로 야채에서는 쉽게 살아남거나. 매운맛, 병원균, 그리고 통섭: 문화와 유전자의 공진화. 581.

(10) 증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향신료를 굳이 첨가하는 과정이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죽은 식물 세포가 죽은 동물 세포에 비하면 미생물의 공격을 잘 견디는 까닭은 1) 전술했듯이 대다수 식물은 피토케미컬을 포함하고 있으며, (2) 동물과 달리 식물은 셀룰로오스(cellulose)와 리그닌(lignin)을 포함한 세포벽이 있어서 미생물의 공격을 물리적으로 잘 방어하고 (Adams, Moss, & McClure, 2015), (3) 식물 세포의 pH 범위인 4.3~6.5 는 대부분의 세균에게 이상적인 증식 조건인 pH 6.6 ~ 7.5의 범위보다 낮기 때문이다. 반면에 죽은 동물의 세포는 화학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미생물의 공격을 방어하지 못하며, 내부 pH도 대개 5.6 이상이다. 물론 동물은 미생물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자 면역 체계를 진화시켰지만 면역계는 동물이 죽으면 함께 작동이 정지된다. 이상의 요인들을 고려해 보면 특히 더운 기후에서 음식 매개 질병의 대량 발생을 일으키는 주범이 야채 요리가 아니라 주로 고기 요리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Sockett, 1995; Todd, 1994).. 이 예측을 검증하고자, 셔먼과 해쉬(Sherman & Hash, 2001)는 이전의 36개국 전통 고기 요리법의 데이터베이스에 각국의 2129개의 야채 요리법을 새로 추가하였다. 예측대로, 36개국의 고기 요리법은 평균적으로 한 요리법 당 3.9개의 향신료를 사용했지만 야채 요리법은 평균적으로 2.4개의 향신료만을 사용했다. 이러한 경향은 36개국을 하나하나 일일이 조사해도 그대로 나타났다. 즉, 36개국 모두에서 야채 요리는 고기 요리보다 요리법 하나당 사용되는 향신료의 가짓수가 적었으며, 이는 27개국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였다. 41가지의 향신료를 하나씩 분석해보면, 41가지 가운데 38가지의 향신료가 야채 요리에서는 적게 사용되었으며 이 중 30가지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였다.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개의 향신료 사용을 요구하는 요리법의 비율, 그리고 “매우 억제적인” 향신료를 여러 개 사용할 것을 요구하는 요리법의 비율도 역시 야채 요리에서 더 낮았다. 즉, 어떻게 분석하더라도 야채 요리는 고기 요리보다 향신료를 덜 써서 덜 맵고 자극적이었다 (그림 3 참조).. 582. 2016년 기초연구과제 총서.

(11) 그림 3. 세 기후 지대의 15개 국가의 전통 요리법에서 고기 요리(검은 막대)와 야채 요리(흰 막대) 하나 당 사용되는 향신료의 가짓수. 한 국가 내의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는 *를 써서 나타냄(양측 t 검증, ** P < 0.001, * P < 0.01). 괄호 안의 숫자는 국가당 분석된 요리법의 수. Sherman & Billing (2001)에서 변형하여 인용함.. 매운맛, 병원균, 그리고 통섭: 문화와 유전자의 공진화. 583.

(12) 2.2. 향신료 사용을 설명하고자 제안된 대안 가설들 왜 인간이 음식에 향신료를 첨가하여 맵게 먹는가를 설명하고자 제안된 가설은 항균 가설 외에도 있다. 그러나 셔먼 연구팀은 이들 대안 가설들을 일일이 검토한 다음에 모두 치명적인 한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테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대안 가설로 사람들이 상한 음식의 고약한 맛과 향을 감추고자 향신료를 첨가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Govindarajan & Salzar, 1985). 이 근접 가설은 연평균 기온이 높은 나라에서 더 강력한 향신료를 더 많이 사용한다는 빌링과 셔먼(Billing & Sherman, 1998)의 연구결과를 설명할 수 있다. 더운 지역에서는 고기 요리가 더 빠르게 부패하므로, 향신료로 나쁜 맛과 향을 “감추어야” 할 경우도 더 빈번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가설의 난점은 세균이나 곰팡이로 오염된 음식을 굳이 향신료를 듬뿍 뿌려가며 억지로 먹으면 건강과 생존 이 더욱 더 위협 받음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향신료로 동원하여 이미 부패한 음식을 자주 섭취한 사람들은 낮은 번식 성공도를 거두어 자연 선택에 의해 제거되었을 것이다(Sherman & Flaxman, 2001).. 또다른 대안적인 근접 가설로, 더운 기후에서는 매운 음식을 먹어서 땀을 많이 흘림으로써 그 기화열을 통해 체온을 낮출 수 있기 때문에 음식에 향신료를 첨가한다는 가설이 있다. 그러나, 칠리와 양고추냉이가 땀을 흘리게 하긴 하지만, 대다수 향신료는 이러한 발한 효과를 갖지 않는다(Rozin and Schiller, 1980). 이는 기화열을 통한 체온 하락은 더운 기후에서 향신료가 선호되는 현상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이 되지 못함을 의미한다. 무엇보다도, 체온을 안정적으로 조절해주는 생리 기제가 이미 진화한 마당에 굳이 피토케미컬이 주는 잠재적인 비용을 감수하면서 향신료를 발견하고, 가공하고, 섭취하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야 겨우 체온을 낮추어주는 기제가 덤으로 또 진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역시 또다른 대안 가설로, 향신료는 음식을 부패시키는 미생물을 억제한다는 효과 이외에도 건강을 증진시키는 효과를 주는 일종의 천연 약제라는 가설이 있다. 예컨대, 몇몇 피토케미컬들 - 특히 마늘과 양파에 함유된 것들 - 은 소화를 돕고, 에너지 신진대사를 조절하고, 암이나 당뇨병 같은 일부 퇴행성 질환의 진행을 억제한다는 증거가 있다(Johns and Chapman, 1995). 정향, 로즈마리, 세이지, 고추, 메이스(mace) 등에 포함된 다른 피토케미컬은 강력한 항산화제다(Lin, 1994; Hirasa &Takemas, 1988). 지방이나 기름의 산화를 지연시킴으로써, 피토케미컬은 음식을 보전할 뿐만 아니라 암이나 노화를 초래하는 자유 라디칼의 발생을 감소시킨다. 물론 이는 중요한 긍정적인 효과지만, 모든 향신료가 이러한 순기능을 하는 것은 아니므로 인간이 향신료를 선호하는 이유에 대한 일반적인 답은 되기 어렵다. 그뿐만 아니라, 항산화제로서 향신료가 쓸모가 있다는 가설은 더운 지역에서 향신료가 더 많이 쓰이고, 야채 요리보다 고기 요리에 향신료가 더 많이 첨가되는 현상을 잘 설명하지 못한다(그림 2, 3 참조).. 584. 2016년 기초연구과제 총서.

(13) 마지막 대안 가설로서, 향신료는 기실 어떠한 이득도 주지 않으며, 사람들은 순전히 자기가 사는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방향성 식물을 첨가해서 음식의 맛을 좋게 한다는 가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아마도 피토케미컬이 지방이나 당분처럼 인간이 선천적으로 선호하는 요소들과 우연히 유사하기 때문에 향신료가 맛있다고 느껴질 것이라는 설명이다(Rozin and Vollmecke, 1986). 이 가설이 맞는다면, 사람들은 향신료가 아주 맛이 좋다고 느낄 것이며,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풍부하게 자생하는 향신료 식물을 주로 음식에 첨가해 섭취할 것이라는 예측이 도출된다.. 그러나, 이 두 예측은 모두 근거가 미약하다. 시나몬, 바질, 백리향(thyme)처럼 본래 맛이 좋다고 말할 수 있는 향신료들도 있긴 하지만, 마늘이나 생강, 칠리, 아니스처럼 자극적인 향신료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맛이 없다는 반응을 즉각적으로 불러일으킨다. 영유아들에게는 특히 심한 거부반응을 불러일으킴은 주지의 사실이다(Rozin, 1980). 사실, 캡사이신 수용체는 고통을 유발하는 경로에 존재하는 이온 채널이다(Caterina et al. 1997). 일반적으로 음식에 대한 회피 학습은 처음에 단 한 번의 불쾌한 경험만으로도 그 회피 반응이 평생에 걸쳐 지속된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영유아들은 성장하면서 대개 부모의 지도를 통해 향신료에 대한 거부가 선호로 변화한다. 부모들이 자녀에게 향신료를 사용할 것을 권유하고, 절대다수의 유아들은 결국 향신료를 좋아하게 되거나 적어도 피하지 않게 된다.. 사람들은 그저 자기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향신료를 음식에 첨가할 뿐이라는 일종의 귀무 가설(null hypothesis)도 상당한 문제점이 있다. 이 가설은 더운 지역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강력한 향신료들을 추운 지역에서보다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향신료를 많이 사용할 뿐이라고 설명하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향신료 식물이 자생하거나 재배되는 국가의 숫자와 그 향신료 식물을 섭취하는 국가의 숫자 혹은 연평균 기온과는 아무 관계가 없었다(Billing & Sherman, 1998). 그러므로, 향신료 사용과 연평균 기온과의 비례 관계는 더운 나라에서 나는 사람들이 그 지역에서 나거나 타국으로부터 수입해서 확보가능한 향신료를 다량으로 사용하기 때문인 것으로 잘 설명된다. 실제로 30종의 향신료 가운데 22종의 향신료는 그 향신료가 자생하지 않는 나라보다는 그것이 자생하는 나라에서 더 많은 양이 전통 요리법에 사용되었다. 이 중 14종에서는 그 차이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했다 (P < 0.05, Mann-Whitney tests).. 매운맛, 병원균, 그리고 통섭: 문화와 유전자의 공진화. 585.

(14) 3. 향신료에 대한 선호는 순전히 문화적 전달의 산물인가?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항균 가설을 처음 제안한 셔먼 연구팀은 정작 인간으로 하여금 향신료를 선호하게 하는 특수화된 심리적 적응을 명시적으로 주장하지는 않았다. 빌링과 셔먼(Billing & Sherman, 1998: 3)은 “향신료를 사용하는 근접 원인은 물론 음식의 맛을 좋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궁극적인 원인은 향신료가 음식 속의 병원균을 억제함으로써 매운 음식을 맛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건강, 수명, 그리고 번식 성공도에 기여하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셔먼 연구팀은 향신료를 사용하는 관습이 처음에 어떻게 시작되었을지 논의하면서 “(매운 음식을 먹고) 건강해진 가족들의 식습관을 다른 사람들이 관찰하고 모방함으로써 향신료를 쓰는 관습이 사회 전체에 널리 퍼졌을 것”(29-30쪽)이라고 서술하여 마치 향신료에 대한 선호가 오직 문화적 전달의 산물인듯한 모호한 인상을 주었다.. 향신료를 선호하게끔 자연선택에 의해 특수하게 설계된 심리적 적응이 과연 진화했는가, 아니면, 향신료 사용은 자동차를 운전하거나 비디오 게임을 즐기는 행동처럼 순전히 문화적 전달의 산물인가? 이 구분이 중요한 까닭은 만약 향신료를 선호하는 행동이 진화된 심리적 적응의 산물이라면 제안된 적응적 문제를 잘 해결하게끔 그 심리가 어떠한 설계상 특질을 지닐지 적응주의적(adatationist) 관점에서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Williams, 1966; Barkow, Cosmides, & Tooby, 1992). 반면에 향신료 사용이 순전히 문화적 학습에서만 유래한다면, 마찬가지로 이러한 관점에서 도출되는 예측들을 검증할 수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논점은 이 질문이 향신료에 대한 선호가 선천적이고 고정된 본능인가, 아니면 후천적이고 유연한 학습인가라고 묻는 낡은 이분법적 관점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 분명히 해 두고자, 먼저 인간 마음과 행동에 대한 진화적 접근이 어떤 것인지 정리한다(1절). 그러고 나서 심리적 적응이 어떻게 “유발된 문화” 와 “전달된 문화”를 만드는지 요약한 다음(2절), 최근의 문화 진화론자들이 향신료에 대한 선호를 어떻게 순전히 문화적 전달의 산물로 해석하는지 살펴보자(3절).. 3.1. 인  간의 마음은 수렵-채집 생활에서 직면했던 문제들을 잘 해결하게끔 설계 되었다 생명계에는 마치 누군가 의도적으로 설계한 것처럼 보이는 복잡하고 정교한 구조들이 많다. 눈은 사물의 상을 맺게끔 만들어졌다. 간은 유해 물질을 잘 해독하게끔 만들어졌다. 고래는 마치 물고기처럼 몸이 유선형이어서 물의 저항을 적게 받는다. 생명체의 이러한 ‘설계’는 어떻게 생긴 걸까? 찰스 다윈(Charles 586. 2016년 기초연구과제 총서.

(15) Darwin, 1859)은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가 복잡한 ‘설계’를 만들었음을 입증했다. 자연 선택은 다음의 세 가지 조건만 충족되면 무조건 일어난다. 첫째, 개체들이 조금씩 다르다. 둘째, 변이 중의 일부는 부모에서 자식으로 전해진다. 셋째, 개체들이 후대에 남기는 자식 수는 각기 다르다. 이 셋에 따른 결과, 개체의 자식 수를 늘리는 데 이바지하는 유전적 변이는 그렇지 않은 변이보다 개체군내에 점차 흔해지게 된다. 예컨대, 먹이를 더 잘 잡게 해주거나 병원균에 대한 저항성을 부여하는 형질은 개체군에 빠르게 퍼진다.. 진화를 일으키는 기제는 자연 선택 외에도 더 있지만, 자연 선택은 특별하다. 오직 자연 선택만이 마치 누군가 의도적으로 설계한 듯한 복잡한 적응을 빚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종의 진화 역사에서는 개체의 번식에 줄곧 영향을 끼쳤던 적응적 문제들을 생각해 보자. 이를테면, 포유류이지만 바다에서 생활하게 된 고래의 먼 조상들은 물의 저항을 되도록 줄여야 한다는 문제에 직면했다. 고래 몸의 형태에 원래 존재했던 변이들 가운데, 물의 저항을 조금이라도 더 줄여주는 유전적 변이가 후대에 더 많이 전해진다. 이런 선택이 여러 세대에 걸쳐 누적된다. 결국, 앞부분은 매끈하고 뒷부분은 날카로워서 물의 저항을 최소화하는 유선형 몸매가 고래에게 장착된다. 요컨대, 적응적 문제에 꼭 맞는 해결책으로 복잡한 적응이 만들어진다. 달리 말하면, 복잡한 구조를 꼼꼼히 살펴보면 그 구조가 지향하는 진화적 기능을 파악할 수 있다(Williams, 1966, 1992; Dawkins, 1986).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은 종종 ‘약육강식’이나 ‘생존경쟁’, ‘최적자 생존(survival of the fittest)’같은 어구와 등치되면서 일반인들에게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다윈 이론은 크고 건강하고 힘센 개체가 다른 작고 연약한 개체들을 언제나 제압함을 의미하는 수구적인 보수반동 이데올로기라는 것이다. 이 말은 틀렸다. 다윈 이론은 크고 건강하고 힘센 개체가 항상 선택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어떤 형질이든지, 개체군이 처한 특정한 생태적 환경하에서 번식 가능성을 높여주는 형질이라면 무조건 선택된다. 예컨대 여우라는 포식자를 피하는 문제가 관건인 가상의 토끼 개체군을 생각해 보자. 여우에 맞서 싸울 무기가 마땅치 않은 토끼의 처지에서는, 여우에게 용감하게 맞서 싸우는 형질보다 여우를 보면 겁먹고 달아나게 만드는 형질이 생존과 번식에 더 유리할 것이다. ‘용감함’은 항상 선택되고 ‘겁많음’은 항상 도태되리라는 우리의 선입견과는 달리, 이 가상의 토끼 개체군에서는 ‘겁많음’이라는 형질이 점차 개체군내에 널리 퍼지게 된다. 다시 말하면, 어떤 형질이 선택될지 여부는 어떤 생태적 환경하에서 어떤 선택적 압력이 작용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는 눈, 심장, 간, 콩팥, 팔다리 같은 신체 기관들만 만들진 않았다. 우리가 느끼고 생각하고 움직이게 만드는 정신 기관도 신체 기관 못지않게 복잡하고 정교하다. 이는 곧 우리의 심리적 적응들도 오랜 세월에 걸친 자연 선택의 산물임을 뜻한다. 그렇다면, 심리적 적응은 어떤 기능을 잘. 매운맛, 병원균, 그리고 통섭: 문화와 유전자의 공진화. 587.

(16) 수행하게끔 자연 선택이 빚어낸 걸까? 마음은 정보를 처리한다. 당면한 외부 환경으로부터 입력된 정보를 처리하여, 그 상황에서 적절한 행동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 숲길을 걷다가 내게 다가오는 뱀을 보았다고 하자. 두말할 필요 없이, 신속히 도망가는 편이 이 상황에서는 적절하다. 여기서 ‘적절하다’는 말은 종의 진화 환경에서 번식 가능성을 높여주었다는, 즉 ‘적응적’이라는 의미다. 뱀을 보고 인류의 조상이 취할 수 있었던 행동의 가짓수는 사실 수없이 많았다. 그 수많은 선택지 가운데 뱀을 보자마자 도망치는 선택지가 번식에 가장 유리했기 때문에, 뱀에 대한 공포는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적 적응이 되었다. 이상의 예에서 보듯이, 심리적 적응은 외부에서 들어온 정보를 처리하여 우리 종의 진화 역사에서 번식에 도움이 된 적응적 행동을 만들어내는 기능을 수행하게끔 선택되었다. 즉, 인간의 마음은 인류의 먼 조상들이 과거에 수렵-채집 생활을 하면서 직면했던 여러 적응적 문제들을 잘 해결하게끔 자연 선택이 설계해 낸 다양한 심리적 적응들의 묶음이다(Tooby & Cosmides, 1992, 2016; Buss, 2015).. 임신한 여성들이 특정한 음식물을 회피하거나 구역질과 심지어 구토까지 경험하는 입덧(pregnancy sickness) 현상은 적응주의적 접근의 유용성을 잘 보여주는 예다. 입덧은 흔히 임신으로 인한 호르몬의 변덕스러운 변화 때문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왜 호르몬의 변화가 폭력성의 증가나 성욕 급증 등이 아니라 하필이면 구역질과 음식 회피를 일으키는가, 왜 임신을 하면 더 많은 영양분을 섭취해야 할 텐데 오히려 영양분 섭취를 방해하는 행동을 호르몬이 일으키는가에 대한 설명은 대개 빈 칸으로 남겨진다. 진화생물학자 마지 프라핏(Margie Profet, 1992)은 입덧이 태아를 식물성 독소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심리적 적응이라고 제안했다. 식물은 자신을 초식동물이나 곤충, 미생물로부터 지키기 위해 우리가 흔히 ‘쓰다’고 느끼는 다양한 독소를 몸속에 지닌다. 이에 맞서서 우리 인간은 간에서 해독 작용을 수행하는 등의 다양한 대응책을 진화시켰다. 하지만 수정된 지 얼마 안 된 태아가 간과 같은 대응책이 있을 리 없으므로 태아는 산모가 무심결에 먹는 식물성 독소에 사실상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다. 따라서, 태아를 보호하고자 임신부는 평소에는 별 문제없이 섭취하던 특정한 음식들에 갑자기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는 가설이다.. 입덧이 정말로 식물성 독소로부터 태아를 보호하기 위한 적응이라면, 그 기능을 잘 수행하기 위한 설계상 특질(design feature)들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프라핏은 배아 보호 가설로부터 여러 가지 예측들을 도출해낸 다음, 수많은 문헌 조사를 통해 이 예측들이 실제로 지지됨을 확인하였다. 예컨대 (1) 입덧은 임신 초기 2-3 개월 사이에 가장 심한데 이 시기는 배아의 신체 기관이 발달하는 결정적 시기와 일치한다. (2) 입덧을 경험한 임산부가 입덧을 하지 않은 임산부보다 자연유산이나 사산할 가능성이 더 낮았다. (3) 입덧을 일으키는 음식들은 대개 식물성 독소를 포함하는, 쓰고 자극적이고 향내가 강한 음식들이나 (예를 들어 커피나 차, 향신료, 야채, 알코올 등등) 발암물질을 포함하는 바비큐 고기 같은 음식들이었다(Profet, 1992).. 588. 2016년 기초연구과제 총서.

(17) 진화심리학자들은 자연 선택이 대단히 많은 수의 영역 특수적인(domain-specific) 심리 기제들을 우리의 마음속에 장착시켰다고 본다. 진화심리학자들이 영역 특수성을 강조하는 까닭은 수렵-채집 생활을 했던 우리의 진화적 조상들이 풀어야 했던 적응적 문제가 식물성 독소의 섭취를 피하는 문제 외에도 수없이 많았기 때문이다. 생존과 번식에 관련되었던 적응적 문제들은 바람직한 배우자 고르기, 음식물 고르기, 잠자리 확보하기, 배우자의 바람기 다스리기, 근친상간을 피하기, 길 잃어버리지 않기, 포식동물을 피하기, 타인과 협동하기, 자녀를 무사히 낳기, 자녀를 잘 길러내기, 형제와의 우애를 유지하기, 타인과 효과적인 동맹을 형성하기, 전염병에 걸리지 않기, 친족과 비친족을 구별하기,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기, 정확하게 의사소통하기, 자연재해를 피하기, 전쟁에서 승리하기 등등 참으로 많았다. 어느 한 문제에 특화된 해결책은 다른 문제를 푸는데 비효율적이기 마련이다. 송곳은 구멍을 내기 위한 도구인데 널빤지를 두 부분으로 쪼개는 일에 톱 대신 송곳을 동원한다면 둘로 쪼개기도 훨씬 더 어려울 뿐만 아니라 쪼갠 결과물도 보기 흉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컨대 신선하고 영양분이 풍부한 음식물 고르기라는 적응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젊고 매력적인 배우자 고르기라는 적응적 문제에 대한 알맞은 해결책이 동시에 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진화심리학자들은 인간의 마음은 많은 적응적 문제들에 맞추어 자연 선택에 의해 제각각 설계된, 다수의 영역 특수적인 심리 기제들의 집합이라고 주장한다(Buss, 20015; Tooby & Cosmides, 1992, 2015).. 자연 선택은 복잡하고 정교한 적응을 만들어내지만, 한계점도 많다. 그중 하나는 적응을 만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매 세대 번식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유전적 변이가 장구한 세월에 걸쳐 누적 선택됨으로써 비로소 적응이 빚어진다. 즉, 오늘날 존재하는 모든 적응은 과거의 적응적 문제들을 잘 해결했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이다. 만약 생물이 처한 환경이 갑자기 변했다면, 과거의 시각에 맞추어진 적응이 낯설고 새로운 환경에서도 여전히 번식 성공도를 높여 주리라는 보장은 없다. 인류는 약 7백만 년 전에 침팬지와의 공통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이래 대부분 시간을 아프리카 초원에서 작은 집단을 이루어 수렵채집 활동을 하면서 보냈다. 인간의 몸과 마음은 이러한 수렵-채집 사회에 맞추어 설계되었다. 약 1만 년 전에 시작된 농경 사회나 수백 년에 불과한 현대 산업 사회에 요구되는 심리적 적응이 진화할 시간은 없었다. 한마디로, “현대인의 두개골 안에는 석기 시대의 마음이 들어 있다.” (Tooby & Cosmides, 1990).. 과거의 적응과 새로운 환경 사이의 불일치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예를 들어 보자. 우리의 진화적 조상들이 수렵과 채집으로 얻을 수 있었던 에너지의 양은 언제나 조금씩 부족했다. 아직껏 남아있는 수렵채집민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들은 산업사회를 사는 현대인보다 매일 두 배 더 돌아다니지만 고작 2,200 ㎈ 정도만 얻는다. 인간이 진화해 온 거의 전 기간에 걸쳐서, 가능한 한 신체 활동을 줄이고 게으름을 피워 에너지를 비축하는 성향이 번식에 더 유리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장기간 몸을 쓰지 않고도 소파에 파묻혀 편히 살 수 있게 된 오늘날, 게으름이라는 심리적 적응은 운동 부족으로 이어져 암, 당뇨병 등 갖가지. 매운맛, 병원균, 그리고 통섭: 문화와 유전자의 공진화. 589.

(18) 성인병을 일으킨다(Lieberman, 2015). 너무 달고 기름진 가공 음식, 쌩쌩 달리는 자동차, 알코올이나 마약 등의 향정신성 약물, 포르노그래피 동영상 등의 새로운 환경 요소들도 수렵-채집 생활에 맞추어 진화된 우리의 마음과 충돌을 일으키는 또 다른 예이다(Alvergne, Jenkinson, & Faurie, 2016).. 유감스럽게도, 마음에 대한 이러한 진화적 접근은 학계와 일반 대중으로부터 많은 오해에 시달렸다. 지면 관계상 이 오해들을 모두 다룰 수는 없지만, 본 연구의 주제와 밀접하게 관련된 오해, 즉 “진화심리학은 외부 환경과 무관하게 유전자가 인간 행동을 전적으로 결정한다고 주장하는 유전자 결정론 아닌가? 만약 어떤 행동이 문화로 잘 설명된다면, 이 행동은 진화 이론으로는 설명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라는 주장을 살펴보자.. 흔히 동물은 본능에 의해 선천적으로 고정된 행동만 하지만, 인간은 뛰어난 학습능력으로 다양한 행동을 후천적으로 습득한다고 믿는다. 유전자와 환경, 본성과 양육, 생물학과 문화, 선천성과 후천성을 엄격히 구분하는 전통적인 이분법은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상식처럼 받아들여진다. 이 이분법은 인간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굳이 생물학 같은 자연과학을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는데 활용되기도 한다 (Pinker, 2002). 예컨대, 다른 동물들이 특정한 이성을 배우자로 선호하는 이유는 유전적 진화 때문일지 몰라도, 인간 남성들이 젊고 아름다운 여성을 신붓감으로 원하는 이유는 진화 때문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외모지상주의를 학습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본성과 양육, 생물학과 문화, 선천성과 후천성을 엄격히 구별하는 전통적인 사회과학 모델은 왜 틀렸는가? 우선 학습을 정의하자. 학습은 경험을 통해 행동이 변함을 말한다. 아이가 구구단을 외우거나, 돌고래가 조련사의 훈육으로 묘기를 부리게 되는 것 등은 모두 학습이다.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는 선천적인 행동만을 만들 뿐, 각 개인의 개별적인 경험에서 나오는 학습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고 전통적인 모델은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어떤 환경에서든 무조건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본능적 행동조차도 실은 특정한 환경적 입력이 있어야만 일어난다. 특정한 환경 요소가 없으면 발현되지 않는다(Gallistel, 1995). 일례로, 형제자매에 대한 끈끈한 정은 그야말로 유전자에 새겨진 천성 같다. 그러나 주의 깊게 살펴보면 친동기간의 우애 역시 가까운 혈연을 알려주는 환경적 정보를 ‘학습한’ 결과임을 알 수 있다.. 인류의 진화 역사에서 부모는 나이가 각기 다른 어린 자식들을 한 보금자리에서 함께 키웠다. 따라서 생후 6~10살에 이르기까지 내가 누군가와 줄곧 한집에서 함께 자랐다는 사실은 그 사람과 내가 피를 나눈 친동기 사이임을 암시하는 강력한 단서가 된다. “어릴 때 한솥밥을 먹고 자란 동년배에게는 친밀하게 대하라.” 라는 지침은 우리의 먼 조상들이 겪었던 웬만한 ‘정상적인’ 환경에는 잘 작동했다. 이 지침은 낯설고 새로운. 590. 2016년 기초연구과제 총서.

(19) ‘비정상적인’ 환경에선 휴짓조각이 된다. 태어나자마자 다른 가정에 입양되어 자란 친동기를 어른이 되어 상봉하면 아무래도 데면데면함은 잘 알려져 있다. 이는 친동기를 향한 끈끈한 정은 무조건 타고난 본능이 아니라 ‘어릴 때 한집에서 자람’이라는 특정한 환경적 입력을 잘 학습한 결과임을 보여준다(Lieberman, Tooby, & Cosmides, 2007). 요컨대, 경험과 상관없이 막무가내로 발현되는 본능적 행동은 없다. 모든 행동은 특정한 환경적 입력을 전제로 한다. 만약 그 환경적 입력을 박탈시키면 (예컨대, 친자매가 각기 다른 가정에 입양되면 “어릴 때 한 집에서 자람”을 경험하지 못하면) 행동은 정상적으로 발현되지 않는다. 모든 행동은 특정한 경험에 의존하므로, 경험에 대한 반응성 유무로 타고난 행동과 학습된 행동을 나누는 이분법은 잘못되었다 (Gaulin & McBurney, 2001).. 본성과 양육 사이에 높은 장벽을 치는 이분법이 잘못되었다면, 둘의 관계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길은 무엇일까? 흔한 정답은 본성과 양육이 상호작용하여 행동을 만든다고 본다. 즉, 둘이 동등한 파트너 관계라고 본다. 이는 물론 정답이지만, 공허하다. 양육이 초자연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존재인 양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사실, 양육은 본성에 의해 만들어진다. 환경은 그냥 환경일 뿐이다. 개체를 특정한 환경에 갖다 놓았다고 해서 학습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학습을 가능케 하는 심리적 적응이 있어야 비로소 학습이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보자. 높은 곳에 대한 공포는 태어날 때부터 있는 것이 아니다. 아기들은 생후 6개월 정도가 되어야 높은 곳에 대한 공포를 학습한다. 왜 그럴까? 생후 6개월이라는 시기는 아기들이 혼자서 기어 다니기 시작하는 시기와 일치한다. 즉, 부모가 잠시 한눈파는 사이에 아기가 혼자 돌아다니다가 위험한 곳을 만나도 혼자서 피할 수 있어야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자들은 나이가 각기 다른 아기들을 투명 유리로 된 탁자 위에 놓고 실험했다. 탁자의 절반까지만 바로 아래에 벽지를 붙여서 마치 절벽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실험 결과, 생후 6개월 이전의 아기들은 “절벽”의 안쪽과 바깥쪽을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6개월 후의 아기들은 절벽을 건너길 주저하고 몹시 겁을 냈다(Gibson & Walk, 1960).. 높은 곳에 대한 공포를 학습하는 사례는 개체를 아무 환경에나 갖다 놓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마법처럼 척척 학습하지는 않음을 잘 보여준다. 높은 곳은 그저 높은 곳일 뿐이다. 높은 곳에 처했을 때 아기는 행복해 할 수도 있고, 질투할 수도 있고, 잠들 수도 있다. 아기가 하필이면 공포심을 느끼는 까닭은 높은 곳을 경험한 다음부터는 높은 곳을 계속 기피하게끔 행동이 변화시키는 선택지가 진화 역사에서 생존과 번식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요컨대, 학습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과거의 진화적 환경에서 번식에 도움이 되었던 방향으로 학습이 이루어지게끔 하는 심리적 적응이 있어야 비로소 학습이 이루어진다.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수많은 환경적 입력 가운데 무엇을 학습할지, 어떻게 학습할지, 얼마나 잘 학습할지 등을 적응적으로 설계한다. 학습 기제 역시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된 심리적 적응이다(Tooby & Cosmides, 2016).. 매운맛, 병원균, 그리고 통섭: 문화와 유전자의 공진화. 591.

(20) 3.2. 진화된 심리적 적응이 ‘유발된’ 문화와 ‘전달된’ 문화를 만든다. 러시아 요리는 향신료를 거의 쓰지 않고 소금과 후추만으로 간을 해서 밋밋하다. 에티오피아 요리는 매콤한 맛을 내는 수많은 향신료로 맛을 낸 소스와 반찬들이 특징이다. 중국의 베이징 요리는 육류를 중심으로 강한 화력을 이용하여 짧은 시간에 조리하는 튀김과 볶음 요리가 주를 이룬다. 이처럼 세계 각국의 식문화만 살펴보아도 그 다양성과 복잡성에 감탄하게 된다. 식문화를 포함하여, 문화 일반을 어떻게 진화적 관점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은 여러 세대에 걸쳐 지식, 기술, 신념, 관습, 가치 등을 사회적 학습을 통해 전달함으로써 고도로 정교하고 복잡한 문화를 이룩했다. 덕분에 인간은 달 표면을 활보할 수 있었다. 덕분에 인간은 극지방에서 사막에 이르기까지 지구의 모든 곳을 점령할 수 있었다. 덕분에 인간은 농업, 민주주의, 시장경제, 인터넷, 가상현실을 만들 수 있었다. 침팬지를 비롯한 다른 동물들도 원시적인 형태로나마 누적적인 문화를 지닌다는 증거가 있지만, 인간의 누적적 문화는 그 양과 질에서 다른 동물들을 단연 압도한다(Boyd & Richerson, 1988; Boy, Richerson, & Henrich, 2011). 이는 인간은 자연적 인과 질서의 그물망에서 벗어나 있는 예외적인 존재임을 보여주는 증거이지 않을까? 진화적 관점은 근친상간 금기, 색깔 종류의 구별, 남녀의 성욕 차이처럼 어디까지나 모든 문화권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행동만 설명할 수 있을 뿐, 인류의 문화적 다양성을 설명하는 데는 아무 쓸모가 없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전통적인 사회과학자들은 서로 다른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다르게 행동하는 까닭을 “문화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이를테면, 명절마다 한국인이 민족 대이동을 하는 까닭은 한국인의 가족주의 문화 때문이라는 것이다. 만족스러운 설명으로 생각되는가? 통섭적인 시각에서, 이러한 ‘설명’은 진정한 인과적 설명이 아니다. 새로 더 알려준 것이 없는 순환논증에 불과하다. 전통적인 사회과학자들은 집단내의 유사성과 집단 간의 차이가 문화에서 유래한다고 설명한다. 문화는 “한 집단에서 고유하게 나타나는 제도, 규범, 생활양식의 총합”으로 정의된다. 따라서 “한 집단이 그렇게 행동하는 까닭은 그들의 문화 때문이다.” 라는 문장을 풀면 이렇게 된다. “한 집단이 그렇게 행동하는 까닭은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명절마다 한국인이 민족 대이동을 하는 까닭은 명절마다 한국인이 민족 대이동을 하게 만드는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우리는 집단 간의 차이를 설명하고 싶었다. 이를테면, 왜 미국인들은 안 그러는데 한국인들만 명절에 민족 대이동을 하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집단 간의 차이에 ‘문화’라는 이름표를 새로 달아준 다음, 설명이 다 되었다고 안심하면 곤란하다. ‘문화’는 집단 간의 차이에 붙은 이름표일 뿐이다. 그 자체가 인과적. 592. 2016년 기초연구과제 총서.

(21) 설명이 될 수는 없다. 한국인의 끈끈한 가족주의 문화가 마치 유기체처럼 한국인들을 조종해서 귀경길 기차표를 억지로 예매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혈연간의 유대가 끈끈하다는 행동적 특성을 ‘가족주의 문화’ 라 불러도 좋고, ‘정 문화’라 불러도 좋다. 아니, ‘트럼프’라고 불러도 좋다. 이름은 상관없다. 왜 한국인들만 ‘트럼프’가 있어서 명절마다 민족 대이동을 감행하는지 알고 싶은 것이다. 요컨대, 집단내의 유사성과 집단 간의 차이는 우리가 설명해야 할 대상이다. 이를 문화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이름표를 새로 달아주는 일에 불과하다(Buss, 2015).. 가치, 지식, 관습, 인공물, 규범, 제도, 생활양식 등에서 발견되는 집단내의 유사성과 집단 간의 차이를 어떻게 진화적인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을까? 새로운 문화적 요소가 발생하여 정착하기까지에는 ‘유발 (evocation)’과 ‘전달(transmission)’이라는 두 가지 경로가 있다. 첫째, 어떤 문화적 요소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보편적으로 장착된 심리적 적응이 각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생태적, 사회적 조건(병원균, 자원량, 가뭄, 온도, 빈부 격차, 성비 등)에 반응하여 각 지역에서 가장 적응적인 행동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생긴다. 즉, 서로 다른 환경 정보가 심리 기제에 입력되어 서로 다른 결과를 ‘유발’한다. 이렇게 유발된 문화적 차이는 외계인이 만든 노래방 기계에 비유할 수 있다. 외계인들이 모든 지구인을 노래방 기계로 대체했다고 하자. 각 기계는 모두 똑같다. GPS가 내장되어서 정확한 위치와 시간을 알 수 있다. 기계가 놓인 장소와 시간에 따라 수천 곡 가운데 하나를 자동으로 연주하게끔 프로그램되어 있다. 따라서 부산에 있는 노래방 기계들은 모두 같은 곡을 연주하며, 그 곡은 영국 런던에 있는 노래방 기계들이 연주하는 곡과 다를 것이다. 노래방 기계의 ‘행동’은 장소마다 다르지만, 모두 내부 구조는 똑같음에 유의하시라. 부산 기계들과 런던 기계들의 차이는 같은 내부 구조가 각기 다른 환경적 입력(위도, 경도, 시각)에 반응해 각기 다른 결과가 유발되었기 때문이다 (Tooby & Cosmides, 1992; Gangestad, Haselton, Buss, 2006). ‘유발된 문화’의 예를 하나 들어 보자. 진화심리학자 마틴 데일리와 고(故) 마고 윌슨은 자원과 사회적 지위를 놓고 남성들 사이에 벌어지는 경쟁의 강도는 경쟁이 끝난 후 승자와 패자가 각각 얻는 자식 수의 편차에 달려 있음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입증했다(Daly & Wilson, 1988). 누가 이기고 지는지가 상대적인 번식 성공도에 별로 영향을 주지 않으면, 굳이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없다. 반면에, 누가 이기고 지는지가 상대적인 번식 성공도를 크게 좌우한다면, 밑져야 본전이니 위험한 일에 과감히 뛰어드는 게 낫다. 그러므로 어떤 국가 내에서 계층 간의 경제적인 불평등 정도가 살인 사건 같은 폭력 범죄의 발생률을 잘 설명해주리라는 예측이 얻어진다. 실제로 범죄통계학자들이 각 국가의 통계자료를 분석한 결과, 나라 안에서 경제적 부가 불평등하게 분배될수록 살인 사건이 더 많이 발생했다. 1인당 국내 총생산이나 근대화된 정도 등의 다른 혼동 요인들은 살인 사건 발생률과 상관관계가 없었다(Fajnzylber, Lederman, Loayza, 2002). 데일리와 윌슨은 경제적 불평등이 한 국가 내의 여러 지역들 사이에 나타나는 살인 사건 발생률의 차이도 잘. 매운맛, 병원균, 그리고 통섭: 문화와 유전자의 공진화. 593.

(22) 설명해주는지 조사했다. 캐나다에 속한 10개 주와 미국에 속한 50개 주를 분석한 결과, 한 국가 안에서도 경제적 불평등이 심한 지역에서는 살인 사건이 더 자주 일어남을 확인했다(그림 4 참조)(Daly, Wilson, & Vasdev, 2001).. 그림 4. 북  미 60개 주에서 소득 불균형과 살인사건 발생률 사이의 상관관계. 흰 동그라미는 미국의 50개주, 검은 동그라미는 캐나다의 10개 주를 나타냄. Daly, Wilson, & Vadev (2001)에서 변형하여 인용함.. 둘째, 한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문화적 요소(지식, 가치, 신념 등)가 사회적 학습을 통해 다른 사람의 마음으로 전달됨에 따라 점차 복잡하고 정교화될 수 있다. 여러 세대에 걸쳐 누적적인 문화적 진화가 이루어지면서, 화살, 화폐, 법률, 민주주의, 농업, 인터넷 등 우리 종의 놀라운 생태적 성공을 끌어낸 작품들이 탄생했다. 모방이나 가르침을 통한 사회적 학습은 무작위적이지 않다. 우리가 아무 아이디어나 똑같은 효율로 받아들이진 않는다는 말이다. 먼 과거의 수렵-채집 환경에서 조상들의 번식 성공도를 높여주었던 특정한 정보에만 선별적으로 더 관심을 두고, 선별적으로 더 잘 기억하고, 선별적으로 더 잘 전파하는 심리적 적응이 우리의 마음속에 진화했다. ‘유발된 문화’와 마찬가지로, ‘전달된 문화’도 일련의 심리적 적응들로부터 유래한다. ‘전달된 문화’의 예를 들어보자. 누군가에게 벌어진 사적인 일을 남에게 입소문을 통해 알릴 때, 특히 자신의 번식 성공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정보를 우선적으로 전파하리라 기대할 수 있다. 진화심리학자 프란시스 맥앤드류(Francis McAndrew)는 자신의 잠재적인 경쟁상대나 자신보다 사회적 지위가 매우 높은 594. 2016년 기초연구과제 총서.

(23) 인물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는 긍정적인 정보보다 더 잘 전파되는 경향이 있음을 발견하였다(McAndrew & Milenkovic, 2002). “나의 경쟁자 홍길동이 알고 보니 숨겨놓은 자식이 있다더라.”는 등의 부정적인 정보를 퍼뜨리면 경쟁 상대의 평판을 떨어뜨릴 수 있으니 나에게 유리하다. 반면에 “홍길동이 그동안 수십억 원을 남몰래 기부했다더라.” 등의 긍정적인 정보는 굳이 내가 나서서 퍼뜨릴 이유가 없다. 요컨대, 남의 마음속에 있는 아이디어를 사회적으로 학습하되, 특정한 아이디어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더 잘 기억하고, 더 잘 전파하는 보편적인 심리적 적응이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양한 문화를 만드는 한 요인이다.. 3.3. 항  신료를 선호하는 심리적 적응이 진화했는가? 폴 셔먼과 문화 진화론자들의 관점 직립 보행이나 턱수염과 마찬가지로, 문화 역시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된 심리적 적응에서 유래함을 위에서 살펴보았다. 보편적인 심리 기제가 각 지역의 고유한 생태적, 사회적 환경에 의해 유발된 반응 (“유발된 문화”)과 개인들 사이의 선별적인 정보 교환(“전달된 문화”)이 문화를 만든다고 하였다. 불필요한 논쟁을 피하고 보다 생산적인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이처럼 “유발된 문화”와 “전달된 문화”를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둘을 쉽게 구별하는 방법은 “어떤 행동 X를 만드는 유전자가 진화했는가?”라고 물어보는 것이다. “유발된 문화”를 논의하면서 예를 든 것처럼, 경제적 불평등이 심한 환경에서 남성들로 하여금 위험한 일에 과감히 뛰어들게 하는 유전자는 당연히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했을 것이다. 그러나, 허니버터칩이 대단히 인기라는 소문을 들어서 슈퍼마켓에 가서 무조건 허니버터칩을 고르게 하는 유전자가 인류의 진화 역사를 통해 선택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남들을 따라서 허니버터칩을 구매하는 이러한 행동은 전달된 문화의 예에 해당한다. 즉, 이러한 행동은 타인의 어떤 문화적 요소를 받아들일 때 개체군 내에 그 문화적 요소가 이미 높은 빈도로 존재하고 있으면 그 요소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증가하는 심리적 적응의 산물이다. 인류의 진화 역사에서 허니버터칩이 지속적으로 존재했을 리도 없는데, 허니버터칩을 다른 스낵보다 더 선호했던 유전자가 자연선택되어 개체군에 널리 퍼진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전술했듯이, 항균가설을 최초로 제안한 행동생태학자 폴 셔먼(Paul Sherman)은 향신료를 사용하게끔 특수하게 설계된 심리적 적응이 진화했다고 명시적으로 주장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이 문제에 관한 그의 입장은 이렇다.. 매운맛, 병원균, 그리고 통섭: 문화와 유전자의 공진화. 595.

(24) 어떻게 사람들은 향신료를 사용하기 시작했을까? 우리는 사람들이 [시나몬, 바질처럼] 맛이 원래 좋은 향신료나, 먹고 난 다음에 기분이 나아지는 (이를테면, 소화제나 구충제의 역할을 함) 향신료를 음식에 처음 첨가하기 시작했으리라 추측한다. 그 결과, 향신료를 요리에 사용하는 가정은 향신료를 사용하지 않는 가정보다 음식 매개 질병이나 식중독에 덜 시달렸을 것이다. 더운 기후에서는 특히나 그랬으리라 생각된다. 그뿐만 아니라, 향신료를 쓰는 가정은 부패할 염려 없이 음식을 더 오래 저장할 수 있었으므로 기근이 닥쳐도 더 오래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다. 건강한 가정의 이러한 식습관은 관찰과 모방을 통해 이웃들에게 전파되어 사회 전체에 퍼졌다. 적절하게 향신료를 사용한 가정은 아마도 더욱 건강한 자식을 키웠을 것이고, 그 자식들은 부모로부터 향신료를 사용하는 식습관을 물려받았을 것이다. 특정한 향신료가 전통적으로 줄곧 사용된 지역에서 살아 온 사람들은 심지어 그 향신료의 피토케미컬을 맛있게 여기게끔 생리적으로 활성화된 능력을 갖게 되었으리라 추측할 수도 있다(Sherman & Billing, 1999: 461).. 이상의 인용문으로 미루어보아, 셔먼은 향신료를 선호하게끔 특수하게 설계된 심리적 적응이 진화했으리라고 확신하지 못했다고 판단된다. 1990년대는 아직 문화 현상에 대한 엄밀한 진화적 접근(3장 2 절 참조)이 제대로 확립되기 이전이므로, 셔먼의 모호한 입장은 이해할 만하다.. 최근 들어 크게 발전하고 있는, 유전적 진화와 문화적 진화의 상호 영향을 강조하는 학파인 문화 진화론자 (cultural evolutionist)은 향신료를 사용하는 행동은 “전달된 문화”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향신료 사용은 문화가 매운 맛을 기피하는 인간의 선천적인 기호를 억누르고서 특정한 행동 양식을 개체군내에 널리 퍼뜨린 좋은 예라고 주장한다(Richerson & Boyd, 2005; Chudek, Muthukrishna, & Henrich, 2015; Henrich, 2016). 예컨대, 문화 진화론자 조셉 헨리히(2016)은 (1) 다른 동물은 음식물에 향신료를 첨가하지 않고1), (2) 향신료는 워낙 소량으로 쓰여서 영양소 측면에서는 거의 이바지하지 못하고, (3) 향신료에 포함된 피토케미컬은 식물이 천적을 내쫓기 위해 개발한 방어용 무기임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향신료는 항균 작용을 하기 때문에 향신료를 쓰는 가정의 식습관이 모방과 가르침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 퍼졌다고 역설했다 “요점은, 문화는 포유류로서 우리의 선천적인 기피 반응을 - 필요한다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 압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Henrich, 2016: 112). 즉, 사람들은 본래 매운 향신료를 통각으로 인식하면서 기피하지만, 향신료를 사용하게끔 권고하는 식문화가 이러한 선천적인 선호를 제압하고 사람들이 매운 음식을 즐기게 우리의 마음을 변형시켰다는 것이다.. 1) 나중에 서술하겠지만, 다른 동물들은 향신료를 음식에 첨가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명백히 틀린 주장이다(예컨대, Krief, Daujeard, Moncel, Lamon, & Reynolds, 2015).. 596. 2016년 기초연구과제 총서.

수치

그림 3. 세 기후 지대의 15개 국가의 전통 요리법에서 고기 요리(검은 막대)와 야채 요리(흰 막대) 하나  당 사용되는 향신료의 가짓수. 한 국가 내의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는 *를 써서 나타냄(양측 t 검증,
그림 4.  북미  60개  주에서  소득  불균형과  살인사건  발생률  사이의  상관관계.  흰  동그라미는  미국의 50개주, 검은 동그라미는 캐나다의 10개 주를 나타냄
그림 6.  수컷 침팬지 무리가 그들이 함께 사냥한 붉은 콜로버스 원숭이를 나누어 먹고 있는 모습   (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davidbygott/402000431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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