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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체-스트레스 이론과 그 실증적 증거들

우리가 보통 “문화”라고 부르는 현상에는 “유발된 문화”와 “전달된 문화”라는 두 가지 범주가 혼재되어 있으며, 이를 개념적으로 잘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술하였다. “유발된 문화”의 경우, 모든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내재한 진화된 심리 기제가 각 지역의 고유한 생태적, 사회적 환경에 의해 촉발되어 그 지역에서 적응적인 행동을 만든다. “전달된 문화”의 경우 먼 과거의 수렵-채집 환경에서 조상들의 번식 성공도를 높여주었던 특정한 정보에만 선별적으로 더 관심을 두고, 선별적으로 더 잘 기억하고, 선별적으로 더 잘 전파하는 심리적 적응이 문화적 현상을 만든다. “유발된 문화”에 해당하는 사례로, 2000년대 이후 일단의 진화심리학자들이 이른바 ‘기생체-스트레스 이론(parasite-stress theory)’를 제안하여 인간 사회의 다양한 문화적 현상들을 각 지역의 토착 병원균에 대한 행동적 방어로서 매끄럽게 설명함으로써 큰 관심을 끌고 있다(Fincher, Thornhill, Murray, & Schaller, 2008; Schaller & Duncan, 2007; Thornhill & Fincher, 2014). 이 이론은 개인주의/집단주의, 외향성/내향성, 종교적 성향, 민주주의, 인지 능력, 성적 충실성, 살인,

이 장에서는 기생체-스트레스 이론의 주장과 실증적 증거들을 간략히 요약한다. 다음 장에서 향신료를 사용하는 양상의 문화적 차이 역시 기생체-스트레스 이론의 틀 속에서 설명이 가능한지 탐구하고자 한다.

어떻게 전염성 병원균이 인간의 다양한 문화를 설명하는 열쇠가 되는가? 저명한 통섭학자 자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 1997)가 [총, 균, 쇠]에서 강조하듯이, 전염병은 수백만 년에 걸친 인류의 역사 경로를 크게 뒤흔들어 놓은 중요한 요인이었다. 예컨대, 14세기 중세 유럽을 휩쓴 흑사병은 유럽 전체 인구의 3분의 1을 쓰러뜨렸다. 200년이 지난 후, 흑사병의 재앙에서 다행히 살아남은 사람들의 후손이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하러 대서양을 건너갔다. 스페인 군인들과 함께 천연두, 홍역, 장티푸스도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전파되었다. 이 질병들에 대한 저항력이 없었던 멕시코 전체 원주민의 무려 75% 이상이 전염병에 걸려 목숨을 잃었다. 1918년에 발생한 스페인 독감은 전 세계에서 약 5000만 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Diamond, 1997). 얼마 전 메르스(중동 호흡기 증후군)로 인해 우리나라에 36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듯이, 오늘날에도 전염병은 인간의 생존 가능성을 낮추는 중대한 요인이다. 세계보건기구는 인플루엔자, 결핵, 에이즈 같은 병에 감염된 사망자가 매년 1500만 명에 이른다고 추정한다(Wolfe, Dunavan, & Diamond, 2007).

이처럼 병원균이 인류의 진화 역사에서 항상 심각한 위협이었음을 고려하면, 우리의 몸과 마음이 병원균에 대한 효율적인 방어 기제를 진화시켰으리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몸 안으로 일단 침입한 병원균을 포착하여 무력화시키는 면역계는 가장 대표적인 방어다. 그러나 면역계는 병원균이 우리 몸에 들어오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활동을 시작하는 사후 조치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즉, 자신에게 병원균을 옮길 가능성이 있는 사람 혹은 사물을 주변에서 탐지하여 그와의 접촉을 처음부터 피하는 심리적 방어도 질병에 대한 선제적인 예방 조치로 진화했을 것이다(Schaller & Duncan, 2007). 실제로 어떤 지역의 토착 병원균에 대한 심리적 방어가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사회성과 가치 체계를 포괄하는 여러 측면들에 큰 영향을 끼침을 입증하는 증거들이 많이 보고되고 있다.

예를 들어, 가족내의 유대가 문화마다 차이가 나는 현상을 기생체-스트레스 이론으로 설명해 보자. 어떤 문화권에서는 가족 사이에 정이 흘러넘치는 반면, 다른 문화권에서는 가족사이라도 맺고 끊음이 분명하다.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진화심리학자 랜디 쏜힐과 코리 핀처(Thornhill & Fincher, 2012)는 강한 가족내 유대는 위험한 병원체를 옮길지도 모르는 외집단과의 접촉을 피하게 해준다고 제안했다. 만일 전염병에 걸려 앓아눕는다면, 가까운 가족과 친척들이 기꺼이 환자에게 음식물을 주고 보살펴 주는 등 든든한 보호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실제로 인류학자들은 에콰도르 아마존 지역의 원주민 쉬위아르(Shiwiar) 족에서는 전염병에 걸렸을 때 친인척들의 극진한 보살핌이 사망률을 낮추는 중요한 요인임을 발견했다

(Sugiyama, 2004). 그러므로, 쏜힐과 핀처는 병원체가 창궐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보다 가족내 유대가 더 강하리라고 예측했다. 이 예측을 검증하기 위해, 쏜힐 연구팀은 전 세계 72개국을 대상으로 가족 내 유대가 끈끈한 정도를 측정했다. 여기에 포함된 설문에는 “가족은 당신의 인생에 얼마나 중요합니까?”, “부모의 자질 혹은 부모가 한 잘못과 상관없이, 자식은 항상 부모를 사랑하고 존경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합니까?” 등이 있었다. 이들 국가에서 홍역, 결핵, 뎅기열, 나병 등 28개 전염병에 따른 사망률의 증가도 아울러 조사했다.

예측대로, 병원체의 피해가 심한 국가일수록 가족내 유대가 더 끈끈했다 (덥고 습한 동아시아나 아프리카는 춥고 건조한 유럽이나 북미보다 병원체가 더 창궐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두 변수 사이의 이러한 상관관계는 1인당 국내 총생산(GDP), 경제적 불평등의 정도, 표현의 자유 정도 같은 혼동 요인을 통계적으로 제거한 뒤에도 여전히 유의미했다. 다시 말해서, 전염성 병원체 가설에 맞서는 대안 가설로서 빈곤한 나라의 국민은 그저 가족이 주는 안전망에 더 매달리게 되므로 가족내 유대가 더 끈끈해지리라는 설명을 할 수 있다. 병원체가 아니라 그 나라의 부가 끈끈한 가족내 유대를 만드는 진짜 원인이라는 대안적 설명은 실제로 얻어진 자료에 근거해 안전하게 기각할 수 있음을 아울러 입증한 것이다 (Thornhill & Fincher, 2012).

쏜힐과 핀처는 자신에게 병원균을 옮길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사전에 탐지하여 그와의 접촉을 미리 피하게 해주는 심리적 적응을 제안하였다. 이 심리적 적응이 만약 병원체가 창궐한 환경에 처하면, 그에 반응하여 강력한 가족 내 유대라는 적응적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보다 구체적으로, 성장 과정에서 전염병에 걸려 고생했었던 개인적 경험이 끈끈한 가족 내 유대를 유발시킬 것이다. 물론 주변에서 전염병에 걸린 환자를 관찰하거나, 가족의 우애를 강조하는 민담이나 설화를 접하는 등의 사회적 학습도 상당한 역할을 할 것이다(Thornhill & Fincher, 2012).

또 다른 예로, 각 문화마다 배우자의 신체적 매력에 부과하는 중요성, 그리고 미에 대한 기준이 조금씩 다르다는 현상을 기생체-스트레스 이론의 관점에서 살펴보자. 인간은 남녀가 장기간에 걸친 짝결속(pair-bonding)을 이루어 갓난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함께 돌보게끔 진화한 종이다. 따라서 배우자를 고를 때 깨끗하고 균일한 피부, 생기 있는 걸음걸이, 잘록한 허리, 윤기 있는 머리카락, 고른 치아, 대칭적인 신체 등의 외부적 단서를 통해 (1) 지금 당장 병원균을 갖고 있지 않은 건강한 상대, 혹은 (2) 병원균에 대한 면역 능력이 우수하며 이 유전적 형질을 나중에 태어날 자녀에게 전해줄 수 있는 상대를 고르게끔 진화했을 것이다(Tybur

& Gangestad, 2011). 달리 말하면, 배우자에게 기대하는 중요한 특성 중의 하나가 건강임을 고려해 볼 때,

많은 연구를 통해 확증되었다. 예컨대 진화심리학자 스티븐 갱지스태드(Steven Gangestad)와 동료들은 남들로부터 신체적 매력을 인정받는 사람들은 심각한 건강상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산화 스트레스 수준이 낮음을 발견했다(Gangestad, Merriman, & Thompson, 2010). 다른 연구에서는 ‘건강하다’고 평가되는 얼굴은 또한 신체적으로 매력적이라고 평가 받는 경향이 있음이 확인되었다.

각 문화권마다 조금씩 다른 미의 기준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과거 각 지역의 전염성 병원균의 득세 정도가 저마다 달랐기 때문일까? 1993년에 갱지스태드와 버스(Buss)는 이 분야에서 선도적인 연구를 수행했다(Gangestad & Buss, 1993). 전세계 29개국 사람들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하여 경제적 능력, 헌신, 지능, 사회적 지위, 친절함 등등 배우자에게 바라는 여러 특질 가운데 신체적 매력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조사하였다. 그리고 이들 각국에서 과거 전염병의 창궐 정도를 아울러 조사하였다. 예측대로, 과거에 전염병이 많이 분포했던 나라일수록 배우자의 신체적 매력에 더 큰 중요성을 부여했다. 이러한 상관관계는 각국의 성 평등지수나 국민총생산 같은 잠재적인 혼동 요인들을 통계적으로 제거한 이후에도 여전히 존재하였다. 즉, 배우자의 외모에 부여하는 중요성이 각 나라마다 다른 까닭은 그저 문화가 그렇게 만들어서가 아니라 각 나라가 직면했던 전염성 병원균의 위협 수준이 달랐기 때문이다(그림 5 참조).

각 지역의 병원균 전파 정도

배우자선택시신체적매력이차지하는중요성

낮음 높음

그림 5. 각 지역에서 전염성 병원균의 전파 정도와 장기적 배우자를 선택할 때 배우자의 신체적 매력을 중시하는 정도 사이의 상관관계. 동그라미는 조사된 각각의 문화권을 나타냄.

Gangestad & Buss(1993)에서 변형하여 인용함.

최근에 수행되는 연구들은 배우자의 신체적 매력이 차지하는 중요성뿐만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떤 신체적 특성이 문화마다 매력적으로 인식되는가에 대해서도 전염성 병원균이 기여했음을 밝혀내고 있다. 이를테면,

최근에 수행되는 연구들은 배우자의 신체적 매력이 차지하는 중요성뿐만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떤 신체적 특성이 문화마다 매력적으로 인식되는가에 대해서도 전염성 병원균이 기여했음을 밝혀내고 있다. 이를테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