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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토 시 론
포스트성장시대,
계획스타일도 당연히 달라져야
권원용 | 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
지난 11월 22일 국토연구원 지하 강당에서 ‘국토계획 수립 40주년 기념 세미 나’가 열렸다. 각급 법정 국토계획의 현재 모습을 성찰적으로 평가하고 그 위 상과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매우 뜻깊은 행사였다. 지구촌 수많은 개 도국들은 지난 40년간(1970~2010년) 1인당 소득이 80배로 늘어난 한국의 발전모델을 진심으로 배우고 싶어 한다. 우리로서는 오히려 압축성장의 후유 증을 힐링하는 데 바빠 학습과 전수를 위한 역사와 기록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이론적인 틀마저 엉성한 가운데 요청이 빗발치니 당황스러울 뿐이다.
우리나라의 국토 및 도시계획 분야의 ‘한류 현상’은 이미 스스로가 반사체가 아닌 발광체로 감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첫째 의문은 ‘포스트성장시대에 진입하면서 국토미래상을 대상으로 거대 담론적이고 포괄적인 계획작업(예: 국토종합계획)이 과연 필요한가?’다. 도 시화가 왕성하게 진행됐던 개발연대에는 지역 간 인구이동이 활발하였으나 지금처럼 국토공간구조가 거의 골격형성을 마친 상황에서는 개편이 대단히 어렵다. 예컨대 1990년대 이후 수도권 아파트단지 출생 세대의 향배에 비교 한다면, 마지막 농촌 출신 세대인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들은 귀농·
귀촌 잠재력이 있는 까닭에 장기적으로 약간의 역도시화 가능성이 열려 있을 뿐이다. 하지만 정부부처의 세종시 이전과 공공기관의 지방 분산이 가져올
‘공간적 민주화’ 효과나 지방도시권의 원도심 쇠퇴, 기후변화와 녹색성장 등 국토 스케일의 도시정책은 명백한 지침을 요구하고 있다.
둘째 의문은 ‘우리나라 도시계획은 “용적률 게임”이라는 관점에서 주택(아 파트)공급이 좌우하지 않았나?’다. 작금의 내수 부문 침체는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개발이익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내 경기를 사실상 주도 하던 성장엔진이 연료부족으로 멈춘 것이다. 그간에는 급속한 도시화의 물결 만 잘 서핑하면 개발이익의 사유화를 만끽할 수 있었다. 정부가 판을 깔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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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금융과 건설자본이 독식하고 언론이 부추겨왔던 부동산 시장이 유례없는 불황에 직면한 것이다. 세 수증가, 사업수익, 광고수입으로 맺어진 ‘철의 삼각 동맹’이 와해될 지경이다. 우발이익의 단맛에 길들 어 도시경관이나 스카이라인은 어찌 되든 전 국토를 잠실 한강변 같은 고층고밀 아파트숲으로 만들던 토 건국가적 개발지상주의를 잊지 못한 채 금단현상에 시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포스트성장시대에는 ‘거번먼트(통치)’형 계획이
‘거버넌스(협치)’형 계획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개 발연대에는 가부장적인 정부가 고도경제성장을 견 인하기 위한 집권적 계획 형태가 필요하였다. 고속 도로, 다목적 댐, 항만 등 SOC를 건설하고 국토 전 체를 대상으로 토지이용을 규제하였다. 그 당시에는 정부가 무엇을 하든 최초, 최고, 최대, 최선이었지만 현재는 민간부문이 팽창하여 정부 개입의 영향력이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각 부처에서 계획을 남발하 는 바람에 공신력이 떨어지고 국민의 혼란만 가중된 다. 향후에는 인구감소·저출산, 노령화 등으로 신 규 개발수요가 위축되고 유지·관리, 보수·대체가 주종을 이룰 것이다.
지난 40년 동안 도시화율이 50%(1970년)에서 90% 이상으로 급격히 증가해 지금은 도농 간 구분 이 무의미한 후기도시화시대다. 기실 1960년 이래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의 공시적 전개는 ‘마을’ 떠 나기, 또는 ‘마을’ 버리기에 다름 아니었다. 이웃, 나 눔과 공생, 협동과 연대 같은 공동체적 가치는 예전 의 ‘마을’이라는 정주단위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것 이었다. 이제 다시 원점으로 회귀하여 ‘거버넌스’형 계획의 대표 사례로서 마을만들기를 추진하는 것은
‘도시화의 역설’이라 아니할 수 없다.
앞서 밝힌 대로, ‘거번먼트’형 계획은 ‘경제성장’ 과 ‘큰 정부’의 산물이다. 반면에 ‘거버넌스’형인 마 을만들기는 분권화와 주민참여를 핵심으로 한다. 앞
으로 대도시가 분권형 시민사회를 지향하더라도 마 을만들기는 행정이나 주민 모두에게 낯설고 색다른 경험일 수밖에 없다. 자주 이사를 다니거나 익명성 을 선호하는 사람은 아파트가 지닌 자산가치에는 관 심이 있지만 지역공동체에는 귀속감이나 애정을 느 끼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지방자치가 실시된 지 20년 이 지났건만 아직도 주민이 행정의 대상에서 주체 가 되는 진정한 ‘주민자치’를 찾아보기 힘들다. 도리 어 전면철거방식의 재개발사업이 매우 낮은 재입주 율에서 드러나듯 지역공동체를 철저히 파괴하고 있 다. 또한 공리주의와 토지이용 효율을 내세운 강압 적 도시성형수술로 말미암아 사회적 약자(세입자, 영세상인 등)는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다. 이와는 달리 사회적 이상도시(social city)를 기치로 내세운 Howard의 최초 전원도시 Letchworth가 현재 일종 의 마을공동체인 사회적 기업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끝으로, 포스트성장시대를 맞아 새로운 계획스타 일이 요청된다면 계획가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과거의 계획가는 전문성을 내세워 행정가와 함께 주 민을 통치의 대상으로 생각하였으나, 이제는 주민을 계획 수립과 집행의 파트너로, 계획의 소비자이자 공동생산자로 여겨야 한다. 대등한 눈높이에서 정 보를 공유하는 대화상대인 만큼 전문용어도 알기 쉬 운 용어로 바꾸고 겸허하게 상호 학습하는 열린 자 세를 보여야 한다.
뿐만 아니라 계획가는 숙명적으로 고도의 정치적 수완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모든 이해관계자나 집 단 사이를 부지런히 누비면서 설득하고, 때로는 첨 예한 갈등을 해소하여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촉진 자 역할을 수행하여야 하는 까닭이다. 계획가에게 필수적인 자질은 원대한 비전과 예리한 분석력, 종 합적 판단력과 실용적인 의사소통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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