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스라엘의 특수 관계: 인지적 동맹의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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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23

인남식

미국과 이스라엘의 특수 관계:

인지적 동맹의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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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일자 2018. 6. 1.

발 표 인남식 미주연구부장

토 론 김태환 유럽아프리카연구부 부교수 박흥경 전 카타르 대사, 전 이스라엘 공사 고경석 외교부 아프리카중동국 심의관

이 문건은 집필자의 견해를 바탕으로 ‘열린 외교’의 구현과 외교정책수립을 위한 이 글은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에서 매주 개최되는

주요국제문제분석 세미나에서의 논의를 참고로 하여 저자가 작성한 것입니다.

발 행 일 2018년 6월 29일 발 행 처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편 집 이지은 연구원

디 자 인 역사공간 인 쇄 웃고문화사

발간등록번호 11-1261021-000001-03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우)06750 서울특별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572 http://www.ifans.go.kr

E-mail: ifans@mof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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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논의 배경 01

미-이스라엘 관계의 시기별 추이 04

미-이스라엘 인지적 동맹 관계의 구성요소 및 함의 08

고려사항 17

2018-23

미국과 이스라엘의 특수 관계:

인지적 동맹의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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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논의 배경

가. 미국의 친이스라엘 기조

트럼프 대통령은 작년 12월 6일 그동안 논란의 중심이 되어왔던 예루살렘 영유권 문제에 관하여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발표하고, 2018년 5월 14일 텔아 비브 소재 주(駐)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전격 이전함.

아랍권 22개국 및 이슬람권 57개국을 포함, 유럽 등 기존 동맹국의 비판을 감수 하면서도 최소한의 금기로 여겨왔던 쟁점들을 정면으로 건드리며 친이스라엘 행보를 계속함.

미국의 중동 정책에 있어 최우선 순위인 우방 국가는 이스라엘로, 속칭 미국 대외 정책상 이스라엘 신화(神話, myth)라 불릴 만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짐.

대(對)아랍, 대(對)팔레스타인 관계에서 이스라엘이 국제규범을 무시하는 일방적 행태를 보이는 경우에도 미국은 거의 예외 없이 이스라엘 편을 들어왔음.

상기 맥락에서 초강대국 미국과 중동 내 적대세력으로 둘러싸인 이민 국가 이스라엘 간의 관계는 일반적 국가 간의 통념적 관계로 해석하기 힘든 특수 우호 관계라 할 수 있으며, 미국의 전폭적 안보 지원 측면에서 볼 때 이는 동맹에 준하는 수준이라 할 수 있음.

1946년부터 2017년까지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은 일반 군사지원 940억 달러, 경제 350억 달러, 미사일 방어체제 구축 57억 달러 등을 포함 총 1350억 달러에 달함.

(미 의회 자료, 이스라엘 베긴-사다트 센터 자료에 의하면 누계액 기준 2054억 달러를 상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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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미국의 여타 군사동맹국에 대한 지원 규모를 압도하는 분량으로 2016년 오바마 행정부의 경우 대외 군사원조(FMF: Foreign Military Financing) 전체 총액의 53%를 이스라엘에 지원했음.

나. 미-이스라엘 동맹 관계의 성격: 인지 요소

냉전기 소비에트 봉쇄 차원에서 형성된 미국의 주요 군사 동맹은 1) 집단 방위체제인 유럽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2) 미군 및 자위대 사령부의 협력 시스템에 의한 병렬형 양자 방위체제인 미일 상호방위조약(미일 동맹), 그리고 3) 한미 연합사령부에 의한 통합형 양자 방위체제인 한미 상호방위조약(한미 동맹) 등으로 분류할 수 있음.

반면 미국과 이스라엘은 가장 중요한 동맹 관계로 각인되어 있으나 실상은 구체 적인 상호방위조약(군사 조약)이 존재하지 않음.

양국 간 상호방위조약, 즉 군사동맹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타 군사 동맹국가와의 관계를 넘어서는 미-이스라엘 간의 관계를 본 보고서는 ‘인지적 동맹 (認知的 同盟, cognitive alliance)’으로 지칭함.

인지적 동맹 개념은 구성주의적 시각의 일종으로, 현실주의 동맹 이론의 고전적 분류 유형에 포함되는 개념은 아니며 미-이스라엘 관계 외의 다른 사례를 찾아보기는 어려움.

가시적, 물리적 계약 관계를 넘어 가치 공유 및 심리적, 종교적 연대감 등 비가시적 인지 요소로 형성되는 동맹으로 설명할 수 있으며, 이는 미-이스라엘 관계의 특수성을 반영하는 것임.

강대국과 동맹을 맺는 상대적 약소국은 동맹의 딜레마 상황에 직면할 수 있는바, 1) 자율성-안보 교환(autonomy-security trade-off)의 딜레마 2) 후견/피후견 (patron-client) 국가 관계의 딜레마, 그리고 3) 방기 및 연루(abandonment and entrapment)의 딜레마에 노출될 우려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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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경우 상기 동맹의 딜레마에 전혀 노출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대미 자율성 면에서 미국과의 여타 동맹국가 보다 더 우위에 있는 것으로 파악됨.

이는 미-이스라엘 관계를 설명하는 이익 기반 현실주의 국제관계 층위와는 달리 심층적인 기저 요인이 존재할 수 있음을 의미함.

본 보고서는 이러한 미국의 일방적 이스라엘 지지의 이유를 탐색, 정리하여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친이스라엘 정책에 나타난 미국과 이스라엘 간 동맹의 기저를 구성하는 인지 요소의 본질을 파악하고자 하였음.

나아가 미-이스라엘 양국 간 긴밀한 상호관계의 형성 배경과 이를 통해 이스 라엘이 시현하고자 하는 국가 전략과의 상관성을 추적함으로써 한국 외교에의 함의를 찾아보고자 하였음.

본 보고서는 여타 군사동맹 관계를 넘어서는 미-이스라엘 관계를 인지적 동맹으로 지칭하고, 이 동맹의 기저를 구성하는

인지 요소의 본질을 파악하고자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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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미-이스라엘 관계의 시기별 추이

가. 2차 대전 및 이스라엘 건국 시기: 발아 및 태동기

고립주의 기조를 유지했던 미국은 1940년 이전까지 중동지역에 정치, 전략적으로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음.

걸프 및 메소포타미아 지역 부존 석유가 계속 발견됨에 따라 1920년부터 이른바 석유 메이저를 중심으로 중동지역 전역에 관한 경제적 관심이 급증함.

미국은 1941년부터 중동을 전략적 주요 지역으로 재인식, 1942년부터 지금의 사우디아라비아 다란, 담맘 기지 진출의 시원이 되는 군사적 존재감을 각인시켰으며, 업스트림 개발에 주력하는 석유 메이저사의 진출도 적극 추진함.

현재의 긴밀한 관계와는 달리 2차 대전 및 이스라엘 건국(1948년 5월) 과정에서 미국 정부와 건국 추진 세력이었던 시온주의 유대인 정치그룹과의 관계는 소원했음.

특히 나치의 홀로코스트에 대한 미국의 대응이 소극적이었던바, 특히 전쟁 당시 미국 국무장관으로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던 코델 헐(Cordel Hull)의 ‘S.S. 세인트 루이스 사태’는 오래 각인됨.

1939년 나치 학살을 피해 미국에 망명을 시도한 950명의 유대인들의 미국 입국을 거부하고 돌려보내 이들 다수가 홀로코스트에 희생된 사건으로, 미국의 소극적인 반홀로코스트 개입의 상징이 되었음.

* 이외에도 나치 학살계획이 담긴 1942년 게하르트 라이그너(Gerhart Riegner) 전문 발표 금지 사건, 1943년 얀 카르스키(Jan Karski) 보고서 무시 등 일련의 사건은 미국이 당시 적극적으로 유대인 학살을 막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음.

당시 ‘근(近)아랍 - 원(遠)유대’ 기조의 배경에는 미국 정치 주류의 정체성, 즉 ‘백인- 앵글로색슨-개신교(WASP: White-Anglo Saxon-Protestant)’의 전통적 반유대주의 (anti-Semitism)와도 연결이 되어 있을 것으로 분석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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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냉전 전반기: 격변기

특히 냉전 초기 소련의 위협에 대한 미국의 봉쇄정책이 가시화됨에 따라 소비에트 출신 이스라엘 이민자들의 다수가 볼셰비키 출신이라는 의혹과 함께, 이스라엘 건국을 미국이 지지할 경우 반소 진영으로 포섭해야 할 아랍 국가 다수가 반미 노선을 취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작동하여 미국은 이스라엘과 거리를 둠.

이스라엘 건국 당시 조지 마셜(George Marshall) 국무장관을 비롯, 미국의 냉전 전략(봉쇄정책)의 설계자라 할 수 있는 조지 케난(George Kennan) 등의 전략가들은 상기 우려에 따라 이스라엘 건국 승인에 반대하는 입장을 피력함.

이스라엘 건국을 위요(圍繞)한 제반 우려에도 불구하고 트루먼(Harry S. Truman) 대통령은 이스라엘 건국을 적극 지원함으로써 현 양국 관계에 초석을 놓음.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행정부 시기에는 냉전 심화와 함께 공산주의 확산 우려와 맞물려 다음과 같은 사건과 함께 미-이스라엘 관계가 악화되었음.

1956년 2차 중동전쟁(수에즈 전쟁) 당시 이스라엘의 시나이반도 철군 압박 매카시즘 관련 유대인들 대거 검속

1953년 6월 로젠버그 부부 간첩단 처형 사건

대미관계가 긴장 국면으로 전개되자 이스라엘은 1954년 미-이스라엘 공공 위원회 (American Israel Public Affairs Committee) 출범을 추진, 적극적 대미 공공외교에 나서는 계기를 조성함.

아이젠하워 정부 이후 양국 관계는 협력과 긴장 관계를 반복, 케네디 정부는 이스라엘 과의 관계를 중립적으로 복원했으며, 존슨 행정부는 우호적인 기조를, 닉슨 정부는 갈등 관계를 지속함.

위기감을 느낀 이스라엘은 베트남 전쟁을 계기로 자국의 정보자산을 실시간으로 미국과 공유하기 시작했고, 미국은 이스라엘의 전략적 가치 및 정보 자산이라는 실용적 가치에도 주목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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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냉전 후반기: 성장 및 안정기

1970년대 초반 그동안 협력과 갈등 관계를 반복하던 양국 관계가 급속히 개선된 계기는 1973년 4차 중동전쟁(욤 키푸르 전쟁)에서 아랍의 급습으로 인해 이스라엘이 최대 안보 위기에 봉착한 것으로, 이때부터 이스라엘은 미국과의 관계 심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됨.

스티븐 아이작(Stephen D. Isaac)은 1974년 출간한 ‘유대인과 미국 정치(Jews and American Politics)’에서 미국 유대인의 소극적 국내정치 참여의식이 적극적인 방향으로 전환되는 계기를 4차 중동전쟁으로 규정함.

이스라엘 측은 선거를 통해 바뀌는 미국 행정부의 성향에 따라 유대인에 대한 인식 및 이에 연동된 미국의 대(對)이스라엘 관계가 급변하는 경험을 하면서 새로운 대미 접근을 시작함.

‘정부 대(對) 정부’의 전통적 외교 노선과 더불어, ‘국민 대(對) 국민’이라는 새로운 공공외교의 측면을 강조함.

행정부는 바뀌어도 국민들은 변화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미국 국민들을 친(親) 이스라엘화(化) 할 수 있는 접근법을 모색하기 시작함.

이후 카터, 레이건 행정부를 거치면서 냉전 구도를 흔드는 다양한 사건들이 있었음 에도 미-이스라엘 관계의 근본은 흔들리지 않았음.

매년 30억 달러 이상의 직간접 경제지원이 지속되었고(현재까지 1180억 불 추산),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한 유엔안보리 동의안 절반 이상이 이스라엘 편들기였던 것으로 알려짐.

양국 관계가 급속히 개선된 계기는

1973년 4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최대 안보 위기에 봉착한 것으로,

이때부터 이스라엘은 미국과의

관계 심화에 적극 나서게 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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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냉전 이후: 탐색 및 조정기

냉전의 종식은 주적 소련 진영의 부재를 의미했으며, 이는 중동의 전략적 거점인 이스라엘의 가치 및 위상 변화와 연결됨.

따라서 미-이스라엘 관계에도 일정 부분 변화가 도래할 것을 사전 감지, 우려한 이스라엘 측은 미국의 적극적 중재에 응답하여 1993, 1995년 오슬로 평화 협정을 수용함.

9·11 이후 부시 행정부가 등장한 이래 미국의 대외정책은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과 맞물린 구조적 변화와 연결됨.

헌팅턴(Samuel Huntington)의 문명 담론이 주요 논제로 등장하고, 이슬람권에 대한 우려가 점증하면서 상대적으로 이들 지역에서 대테러전 관련 이스라엘의 전략적 가치가 유지되는 상황이 조성됨.

네오콘은 부시 독트린을 상정, 도덕적 절대주의(moral absolutism)에 기반한 진영론, 즉 새로운 유대-기독교(Judaeo-Christian) 진영 대 이슬람권의 대립 구도를 상정함.

이후 이라크 전쟁 실패에 따른 중동정책의 반성적 성찰을 통한 오바마의 조정 작업은 일종의 탈신화화(demythification)를 거치면서 이스라엘 거리 두기 및 이란 핵합의 타결 등으로 발현되었으나, 트럼프 등장 이후 신화의 복원 현상으로 귀결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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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미-이스라엘 인지적 동맹 관계의 구성 요소 및 함의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미국과 이스라엘 양국 관계는 전통적 조약에 근거한 동맹 관계로 규정할 수 없으나, 미국의 대이스라엘 경제지원 규모 및 외교무대에서의 일방적 지원 등의 모습은 동맹국 이상의 밀접한 관계를 방증하고 있음.

이렇듯 정부 간 조약 및 구체적 약속에 구속되는 관계가 아니라 국민들의 심리 기저에 착근한 우호 관계를 바탕으로 양국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볼 때 미-이스라엘 관계는 미국의 동맹 연구에 시사하는 바가 큼.

본 장에서는 미-이스라엘의 인지적 동맹을 구성하는 단위를 아래와 같은 4개의 층위로 분류하여 양국 간 동맹의 성격을 탐색하고자 하였음.

층위는 가시적(물리적) 형태 또는 비가시적(인지적) 형태로 나뉘며, 각각에 따라 강조점, 대상 및 수단이 상이함.

구분 제1 층위 제2 층위 제3 층위 제4 층위

핵심요소 사람(people) 효용(utility) 가치(value) 정체성(identity)

동맹요소 성격 특수성 보편성 일반성 특수성

형태 물리적 물리적 인지적 인지적

강조점 유대계 영향력 전략적 유용성 민주주의 가치 종교적 연대감

대상 의회/유권자 정부 정부/학계 교계/대중

수단 이스라엘 로비 정보/전략 자산 학술 아웃리치 교계 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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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제1 층위(사람): 이스라엘 로비

미어샤이머(John Mearsheimer)와 월트(Stephen Walt)는 ‘이스라엘 로비와 미국의 대외정책(The Israel Lobby and US Foreign Policy)’ 제하의 저서를 통해 미국의 중동정책이 이스라엘 측의 로비에 의해 좌우되고 있음을 강조함.

전 세계 1400만 유대인 중 이스라엘 내 유대인 전체 인구에 육박하는 600여만 명이 미국에 거주하면서 일종의 제2 조국과 같은 강력한 동질감을 형성하고 있어, 이를 통해 유대-이스라엘 정체성의 강화 및 필요시 미국 내 정책 결정 과정에 개입할 역량을 구축함.

이스라엘 측의 로비는 다양한 경로로 작동하고 있지만 대표적으로 AIPAC 등의 공식적 그룹이 전면에서 양국 관계를 조정하고 있으며, 이스라엘 정부 및 미국 내 주요 유대계 인사들이 범 네트워크 차원에서 직간접으로 연계되어 있다고 알려짐.

가장 핵심적이고 유효한 로비 대상은 의회로, 특정 정치인의 대(對)이스라엘 성향에 따라 이스라엘은 적극적 지원 또는 적극적 낙선 운동 등을 펼치면서 일부 대표 지역구를 중심으로 한 표의 위력을 행사함.

나. 제2 층위(이익): 전략적 유용성(strategic utility)

두 번째 구성요소는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이스라엘이 갖는 전략적 유용성을 생산, 강조, 확산함으로써 미국으로 하여금 전략 이익을 제공하는 불가분의 동맹 관계임을 지속적으로 인식시키는 것임.

동맹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공통의 위기 인식(common threat perception)’을 바탕으로, 현존하는 위기에 공동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유용성을 각인시킴으로써 여하한 경우에도 불가분의 관계임을 확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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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초기 이스라엘은 아랍을 한편으로 만들어야 하는 미국의 중동 내 소련 봉쇄 전략에 있어서 일종의 부채(liability) 같은 부담스러운 존재였으나 이를 상쇄하는 이스 라엘의 전략적 유용성을 입증, 제공하는 데 성공함.

동유럽과 러시아에서 이주해 온 유대인(아슈케나지, Ashkenazi Jew)들 중 지식 인층은 소련의 주요 인사들과의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이 네트워크를 최대한 가동하여 소련의 대아랍 활동 관련 정보 및 첩보를 최대한 획득, 이를 분석하여 워싱턴에 제공함.

동시에 아랍 및 지중해권에 산재한 유대인 공동체(디아스포라, Diaspora)를 통해서 획득한 정보자산도 미국과 실시간으로 공유함.

이스라엘이 제공한 냉전기 소련 활동 관련 정보자산은 미국이 이스라엘의 가치를 재평가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특히 베트남전을 수행하던 케네디 및 존슨 행정부에서 이를 높게 평가하며 양국관계가 급진전됨.

이스라엘 대외 정보기관 모사드, 국내 정보기관 신베트 및 군 보안부대는 각각 미국 CIA 및 FBI 등과 정보 공동체를 구성, 세계 각처의 정보 자산 획득 공조 및 분석 공유를 하는 것으로 알려짐.

정보 자산 차원의 전략적 유용성은 냉전 종식 직후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가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 국면에서 다시 부상함.

아랍·이슬람권을 압도하는 테러 네트워크 정보 및 현지 대테러 작전 노하우를 가진 이스라엘의 중요성은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전쟁 및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다시 입증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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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제3 층위(가치): 민주주의 체제(democratic system)

미국이 이스라엘을 동맹 국가로 인지하는 요건 중 민주주의 가치 역시 중요한 요소로, 이는 미-이스라엘 양국 간 가치 공유의 동질감을 구성함.

건국 이전 러시아 및 동유럽으로부터 이주하여 정착한 유대인들 중 지식인 및 정치 지도자들 상당수가 러시아 혁명 사상에 영향을 받은 경향이 있어 냉전 초기 이들에 대한 미국의 의구심이 있었음.

공동생산, 공동소유, 공동분배를 통한 경제 공동체 단위인 집단농장 키부츠 시스 템으로 상징되는 이스라엘 건국 초기 국가 운영 형태는 일견 공산주의 분위기로 비치기도 했으나, 후일 의회 운영 및 자유로운 여론 생산 구조 등을 통해 공산주의 성향 의혹 관련 우려는 희석됨.

중동 및 북아프리카의 아랍 22개국 대부분이 왕정, 공화정 및 신정 등 다양한 정치 체제 형태와 상관없이 권위주의 행태를 나타내는 가운데, 이 지역에서 실질적인 민주 주의를 시행하는 국가는 이스라엘밖에 없다는 인식이 공유됨.

아이젠하워 행정부 당시 미-이스라엘 관계가 악화일로였던 반면 케네디 정부 들어서서 변화의 계기가 마련된 것도 백악관이 이스라엘의 민주주의 체제를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었다는 분석이 있음.

라. 제4 층위(종교): 종교적 정체성(religious identity)

양국의 동맹 관계를 규정함에 있어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기저 요인은 종교적 정체 성과 관련된 것으로, 이른바 ‘성서의 종말론적 공감’에 기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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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을 이해하는 데에 대표적인 착시(錯視) 중 하나가 유대교와 기독교 간 친화성 및 유대교와 이슬람 간 배타성이나, 역사적으로 실상은 반대 궤적을 나타냈음.

유대인들에 대한 반감(anti-Semitism)과 러시아 짜르의 포그롬(pogrom),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holocaust) 등 일련의 집단 학살은 기독교적 맥락에서 조성, 시행된 것이었음.

실제로 일부 연구에 의하면 유럽 내 반유대주의는 로마 시대인 5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감.

반면 아랍 이슬람권에서는 유럽 기독교권의 반유대주의 정서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아랍지역 내 디아스포라 유대 공동체는 무슬림들과 큰 충돌이나 갈등이 없었음.

미국 역시 18세기, 19세기 주류 기독교권에서는 유대인에 대한 반감이 상존하고 있었고 이는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서 기독교권이 표출한 부정적 시각과 연관되어 있음.

양국 관계에 있어서 걸림돌이 될 만한 종교적 인식론은 1970년대 이후 대반전이 일어나, 현재는 종교요인이 불가분리의 친밀성을 구성하는 요소로 역전됨.

이스라엘의 벤구리온(David Ben-Gurion) 총리는 미국의 중요성을 인식, 양국 정부 간 우호 관계 증진에 진력했으나 공공외교의 필요성도 발견, 양면 접근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 종교적 인식론을 다루기 시작함.

대통령 중심제의 미국 정부는 1인 리더십에 따라 완연히 다른 대외전략을 추구 하기에 임기에 따라 대통령이 바뀔 경우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 정부의 입장과 태도가 여일하게 유지될 것이라는 보장이 없었음.

이러한 맥락에서 이스라엘의 벤구리온 및 베긴(Menachem Begin) 총리는 미국의 주류인 WASP의 유대인에 관한 인식 변화를 통한 양국 간 친화 전략을 추구하기 시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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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친화적인 ‘성서적 서사(biblical narrative)’를 다음과 같이 생산, 미국 보수 주의 기독교인 복음주의(evangelical) 계열의 지도자급 인사들에 대해 우호적으로 접근하여 적극적으로 전파함.

1) 아브라함의 자손(Abraham and his “Seed“) - 선민 정체성 공유

2) 약속의 땅 가나안(promised land of Canaan) - 영토(Eretz Ysrail) 의미 부각 3) 종말론적 세대개념(eschatologic dispensation) - 형제 종교 개념/예루살렘 쟁점

1981년부터 베긴 총리는 정부 무역관광부 하에 성지순례진흥과(the Pilgrimage Promotion Division)를 설치, 주로 미국 복음주의 대표들을 초청하여 친화하는 작업에 나섬.

제리 폴웰(Jerry Fallwell) 목사 등 미국 복음주의 보수 기독교 성직자들을 이스라엘 성지순례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시키고 극진히 대우하며 하나의 정체성임을 강조함.

성서 역사상 이스라엘을 구원한 페르시아 제국의 고레스 대왕(Cyrus the Great)이 현대의 미국이라고 해석하며 소련과 아랍의 위협으로부터 현대 이스라엘을 지켜 주듯, 정치적으로도 공동운명체임을 설득함.

미국 유대 위원회(American Jewish Committee)의 지도자인 랍비 마크 탄넨바움 (Mark Tannenbaum)은 복음주의 진영의 대표 격인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 목사와 협력 구도를 구축하고 미국과 이스라엘은 세대주의 종말론을 공유하며 궁극적 으로 하나인 국가라는 인식론을 기독교 내에서 확산시킴.

물론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기독교 진영과 세속주의 유대인들의 경우 이러한 일체 의식에 대한 거부감이 높음에도, 이들이 정치적 결집력 면에서 근본주의적 복음주의 세력보다 약하기에 정치적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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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기독교와 유대교, 미국과 이스라엘 간 공동운명체 인식론은 현재까지 이어지며 주로 보수 공화당 기독교 정치인들의 지지 배경이 되어왔고,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친이스라엘 행보 즉, 예루살렘 수도 선언 및 대사관 이전과도 맞물려있음.

마. 인지 요소의 차별성과 함의: 이스라엘 대미 공공외교의 배경

동맹의 기본 전제는 위협 인식을 공유하고 이에 대한 공동 방어 및 합동 공격 등의 대응을 추구하는 것이며, 따라서 동맹의 가장 중요한 핵심 사안은 양자 공동의 적 규정 이라 할 수 있음.

미국과 이스라엘의 동맹과 관련, 사실상 공동의 적을 규정하기란 어려운 상황임.

이스라엘 안보의 최대 위협은 인근 아랍 국가였지만 냉전기 미국은 이들 아랍 국가와도 전략적 협력 구도를 유지해야 했고, 미국의 최대 주적은 소련이었지만 이스라엘과 소련 관계는 일정 정도 적대적 공생관계였으므로 엄밀한 의미에서의 군사 동맹 필요조건은 충족하지 못함.

전통적 동맹을 구성하는 안보 관련 공통 필수요소가 약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이스라엘 간 일반적 동맹 수준을 초월하는 긴밀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앞에서 살펴본 4개 층위에 걸쳐 유기적으로 작동하며 양국관계를 묶어내는 복합적 친밀도, 즉 일종의 그물망 관계가 조성되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음.

양국의 복합적 친밀도를 구성하는 요소를 바탕으로 한 이스라엘의 대미 외교, 특히 공공외교에서 발견되는 여타 동맹국과의 차별성은 바로 제1 층위 및 제4 층위로 이스 라엘 로비라는 행위 행태와 종교적 정체성이라는 인지적 요소의 결합에서 발견됨.

제2 층위인 이익 요소나 제3 층위인 가치 요소는 여타 국가와의 동맹을 구성하는 요인으로 작동하지만, 특히 제4 층위의 종교 정체성 요소는 이스라엘 시온주의 이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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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근본주의적 복음주의 계층에 독특 하게 착근된 것으로 강한 기저 요인으로 작동함.

이러한 맥락에서 복합적 친밀도 중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종교적 정체성임.

이성과 합리성을 초월하여 신앙과 신 념의 가치로 연대하게 됨에 따라 향후에 도 양국 보수 종교지도자들은 정치에 영 향력을 계속 확대하여 미-이스라엘 간

정상적 외교 관계의 셈법을 넘어서서 1차 집단적 동질감과 유사한 공동체성을 확산시 키려 할 것임.

제1, 2, 3 층위의 경우 미국의 정치 상황 및 리더십의 성향에 따라 도전에 직면할 수 있음.

실제로 미어샤이머와 월트의 이스라엘 로비 공론화 이후 여론의 각성, 다양한 정보 원천의 발전 및 외교 다변화에 따른 이스라엘 유용성 문제 제기, 그리고 이스라엘 보수 연정의 시온주의 보수화 성향 가속화에 의한 민주주의의 약화 현상 등이 맞물리며 가변적인 성격을 보이고 있으며 이는 양국 동맹 관계에 있어서 도전 요인임.

반면 제4 층위인 양국 보수 주류의 종교적 정체성 연대는 더욱 심화되는 추세를 나타내고 있어, 미국 내 보수 정치인 그룹의 심리적 이스라엘 친화 추세는 일정 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됨.

이스라엘 공공외교의 주요 전략이기도 함.

최근 이스라엘 쟁점을 다루는 트럼프의 경우, 본인은 이러한 정체성 연대에 동의 하지 않을지 모르나 금번 예루살렘 선언 등과 같이 보수 유대인들 위무를 통한 지지율 반등의 계기로 삼는 등 도구화하고 있음.

미국과 이스라엘 간 일반적 동맹 수준을 초월하는 긴밀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4개 층위에 걸쳐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복합적 친밀도가

조성되었기 때문인데, 그 중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종교적 정체성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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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외교 전략상 원활한 대미외교를 위해서 민주당을 지지하는 유대인 주류를 포섭하기 위한 기존 네트워크 공고화와 공화당 지지층 중 표 결집력이 높은 근본주의적 복음주의 세력을 확고한 친이스라엘 그룹으로 만들기 위한 장기간의 프로젝트가 필요 했고 후자를 위한 정체성 규정 및 확산이 실행된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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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고려사항

가. 한국의 외교 자산 정리 및 활용 방안 구축

안보 위기에 처했던 이스라엘이 미국과 동맹 수준의 관계 구축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자국이 가진 자산과 가치 및 정체성 요인을 발굴, 조직적으로 활용했던 사례는 향후 한국 외교정책에 유용한 시사점이 될 것임.

한국의 역사, 문화, 사회 공동체적 특성 등 다양한 부분을 외교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는 창의적 아이디어가 필요함.

한국이 가진 피식민지배, 분단, 전쟁, 빈곤 및 권위주의 등의 비극적 경험들도 역설적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국가의 글로벌 공감 외교 공간을 창출할 수 있을 것임.

신북방, 신남방 외교를 비롯 아시아 플러스 및 인도-태평양 구상 등 외교 전략 구축에 필요한 시사점을 정치(精緻)하게 도출해야 할 시점임.

나. 심리적 연대감 기반 공공 외교 전략 모색

공공외교 역량 확충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 외교는 상대 국가별로 비가시적인 기저 요인들을 발굴, 활용할 필요가 있으며 무엇보다 주재국 국민의 역사 인식과 정체성 구조에 천착하는 프로젝트 구현이 시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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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부분 적대감까지 존재했던 미국 주류 기독교계를 우호적 대상으로 전환시킨 이스라엘 벤구리온 및 베긴 총리의 대미 접근 전략에서 보듯, 한국의 제반 외교 관계 대상 국가에 대한 면밀한 연구 및 이에 조응하는 접근 전략을 준비할 필요가 있음.

다. 한인 디아스포라 네트워크의 활성화 지원

미국 내 유대계의 형성 역사, 특성 및 영향력을 재외 한인 그룹과 평면 비교할 수는 없으나, 공공외교의 저변 확대 차원에서 미국 내 한인 2세, 3세 그룹에 대한 보다 체계 적인 접근과 소통 채널 확보가 필요함.

라. 미-이스라엘 관계 변수 탐색 및 신중한 중동 정책 고려

미국과 이스라엘 양국 간 인지적 동맹 관계는 비가시적인 주관성에 의해 작동되는 부분이 있으므로 세밀한 관찰과 분석, 평가가 필요함.

특히 금번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에서 나타나듯 국제사회에서 발현되는 양국의 긴밀한 협력 구도가 다자무대 주류의 입장과 배치되는 경우가 상존 하므로, 이에 대한 면밀한 검토 분석에 따른 정책 결정이 요구됨.

한국 외교의 주축이라 할 수 있는 한미 동맹을 심화, 발전시키는 기조를 유지하되 이스라엘 현안 관련 국제사회 다수가 합의하는 원칙을 존중하는 입장도 동시에 유지해야 할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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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되는 것은 보완적인 것이다

CONTRARIA SVNT COMPLEMEN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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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itute of Foreign Affairs & National Security

Korea National Diplomatic Academy

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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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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