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고일_2021.02.10 심사기간_2021.03.01-14 게재확정일_2021.03.22 DOI https://doi.org/10.47294/KSBDA.22.2.3
책의 물성과 ‘비가시적 틈’의 관계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Materiality of the Book and the Invisible Gaps
김도희, 홍익대학교 대학원 / 안병학(교신저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Kim, Do Hee_Graduate School of Hongik University /
Ahn, Byung Hak_(Correspondent author)_Professor of Fine Arts, Hongik University
차례 1. 서론
1.1. 연구 목적과 배경 1.2. 연구 방법과 대상
2. 물성과 본다는 것 2.1. 물질과 기억
2.2. 가시적 공간과 비가시적 공간의 관계
3. 매체로서 책의 속성과 역할 3.1. 책의 물리적 성질과 가치 3.2. 북 디자인의 역할 3.3. 책의 형식과 감각 작용
3.4. 시각적 책 읽기와 경험적 책 읽기
4. 북 디자인의 ‘비가시적 틈’ 탐색
4.1. 감각을 통해 인지하는 일상적 공간으로서의 ‘틈’
4.2. 물성의 관계가 만들어 내는 ‘틈’
4.2.1. 문자와 문자 사이에서 시간을 관리하는 ‘틈’
4.2.2. 글줄과 글줄 사이에서 호흡을 연결하는 ‘틈’
4.2.3. 단락과 단락 사이를 환기하는 ‘틈’
4.2.4. 책장과 책장 사이에 놓인 사색의 ‘틈’
4.3. 북 디자인에서 ‘비가시적 틈’의 역할 5. 결론과 제언
References
책의 물성과 ‘비가시적 틈’의 관계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Materiality of the Book and the Invisible Gaps
김도희, 홍익대학교 대학원 / 안병학(교신저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Kim, Do Hee_Graduate School of Hongik University /
Ahn, Byung Hak_(Correspondent author)_Professor of Fine Arts, Hongik University
요약
중심어 북 디자인 책의 물성 기억과 경험 시간과 공간 비가시적 공간
연구자는 ‘물질’과 ‘비가시적 공간’의 관계를 기억과 경험에 따라 다르게 인지되는 북 디자인의 ‘틈’을 통해 탐구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물질을 이성적 판단 이전에 감각으로 지각하며, 책은 그 감각 적 지각 활동의 가장 대표적인 매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연구의 목적은 책을 구성하는 ‘물질’과
‘비가시적 틈’을 통해 자극받는 인간의 감성을 검토하여 비가시적 공간의 역할과 가능성을 밝히는 데 있다. 연구 대상은 책의 물성과 책 속에 존재하는 ‘비가시적 틈’의 상호 관계이고, 이를 밝히기 위한 분석 대상은 ‘북 디자인’이다. 연구 방법은 첫째, 뤼징런(Lu jingren)의 ‘북 디자인’에 관한 이론과 앙 리 베그르 송(Henri Bergson)의 ‘물질과 기억’에 관한 이론을 참조했다. 둘째, 책에 대한 시 ‧ 공간 개 념을 바탕으로 물질과 비 물질을 연결하는 일련의 문자, 글줄, 단락, 책장의 물성에 주목하여 북 디자 인의 ‘비가시적 틈’에 기여하는 요인들을 탐구했다. 물성을 가진 매체인 책의 외형적 형식은 독서 행위 를 시각적 책 읽기와 경험적 책 읽기로 확장하고, 인간의 감각과 감성을 자극해 독자의 심리와 지각 변화에 영향을 준다. 독자의 책장을 넘기는 반복 행위는 시간의 흐름을 타고 내용적 공간 이동에 기여 한다. 이처럼 책은 형식과 내용, 물질과 비물질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매체로서 형식미와 구성미를 동 시에 담고 있다. 따라서 디자인이 내포하는 상징적 의미는 비가시적 틈을 통해 독자의 능동적 경험과 물성에 대한 기억, 감각을 자극하고 지각과 인식에 작용한다. ‘물성’과 ‘비가시적 틈’의 작용에 주목하 는 이 연구는 비물질 커뮤니케이션의 대표 채널인 디지털 매체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매체 확장을 통한 후속 연구가 필요한 이유이다.
ABSTRACT
Keywords book design the materiality of a book
memory and experience time and space non-visible space
The researcher intends to explore the relationship between ‘material’ and ‘non-visual space’
through the ‘gap’ of book design, which is recognized differently depending on memories and experiences. This is because humans perceive matter as sensory before rational judgment, and books are the most representative medium of sensory perception. Therefore,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human sensibilities stimulated by the ‘material’ and ‘non-visual gaps’
that make up the book to reveal the roles and possibilities of non-visual spaces. The object of the study is the interrelationship between the natural properties of the book and the ‘non-visual gap’ that exists in the book, and the analysis target is the ‘book design’ to reveal it. The research methods first referred to Lu Jingren’s theory of ‘book design’ and Henri Bergson’s theory of ‘materials and memories’. Second, based on the concept of time-space for books, we explored factors contributing to the ‘non-visual gap’ of book design by noting the nature of a series of letters, letters, paragraphs, and bookshelf linking matter to non-materials. The outward form of a book, a medium with physical properties, extends reading behavior to visual and empirical reading, and stimulates human senses and sensibilities, affecting readers’ psychological and perceptual changes. The repetitive act of turning the reader’s pages contributes to the movement of the content space through the passage of time. As such, the book is a medium consisting of a combination of formalities and contents, matter and non-materials, and contains both formalities and composition. Thus, the symbolic meaning implied by the design stimulates the reader’s memory, sense of active experience and physicality through non-visual gaps, and acts on perception and recognition. This study, which focuses on the action of ‘materiality’ and
‘non-visual gap,’ also suggests a lot to digital media, which is a representative channel of non-material communication. This is why further research through media expansion is needed.
1. 서론
1.1. 연구 목적과 배경
인간은 사물을 볼 때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몸의 감각으로 지각한다. 사물에 대한 과거 경험이 있고, 그에 대한 기억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감지하고-느끼고-생각하고-행동한다.
생각하고 행동하기 전, 먼저 감지하고 느낀다.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인간의 이성적 활동이라 면 감지하고 느끼는 것은 감각적 활동이다”(kim. J., 2020. p14). 이것은 인간이 대상을 감각적 으로 직감 한다는 의미로, 사물은 감성과 이성을 자극 하는 매개체로서 인간의 지각활동에 영향 을 준다. 또한, 사물은 홀로 독립해 존재하지 않고 그것이 놓여있는 공간을 통해 지각된다.
그렇다면, ‘사물이 관찰자의 감각을 자극할 때 사물과 맞닿아 있는 공간은 사물과 어떤 관계 위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이 연구는 이런 질문으로부터 시작했다. 따라서 사물의 근본을 물질로 보고, 이에 대한 고찰, 분류, 그리고 공간과의 연관성을 살피고자 한다.
물질은 사회·문화적 배경 위에서 인간의 행위와 삶의 방식을 담는다. 다시 말해, 물질은 문화를 반영하고 문화가 바뀌면 물질도 그에 따라 변화한다. 따라서 우리는 물질을 통해 시대상과 삶의 양식을 예측할 수 있다. 물질에 대한 인간의 지각은 개별 행위와 그것이 발생하는 공간이 서로 다른 지각 경험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매우 주관적인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런 생각 위에서 연구 자는 인간의 감성과 문화에 관여하는 심리적 공간을 ‘비가시적 틈’으로 분류했다. ‘틈’은 물질로 인해 존재하고, 물질은 ‘틈’을 지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지각이 가능한 이유를 시간과 공간이 제공한다. 그렇다면 ‘틈’은 물질과 물질 사이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물질로부터 존재하는 틈과 인간의 감성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나아가 감성적 영역을 다루는 디자인은 ‘비가시적 틈’의 유형이나 분류를 통해 어떻게 정보를 수용하는가? 감성을 자극하는 매개체 역할의 측면 에서 물질은 디자인에서 소통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연구자는 인간의 감성이 ‘물질’
과 ‘비가시적 틈’에 의해 자극 받는 관계를 밝히는 데 목적 두고 이 둘의 개념을 살피고, 유형을 분류하여, 상호 영향을 탐구하고자 한다.
1.2. 연구 방법과 대상
인간이 소통하기 위해 몸짓이나 소리로 표현했던 다양한 언어들은 ‘문자’라는 시각적 언어기호 로 발전했고, 인간의 생각과 감정을 가시적으로 기록하고 전달하는 도구가 되었다. 이 도구는 읽고 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음성이나 표정, 몸짓으로 표현되며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순환적 연결고리다. 행동, 음성, 사건 등은 문자로 물질화되어 기록되고 문자는 다시 비물질적 감성을 전달한다. 이런 순환은 인간의 감각을 자극하고 지각활동에 영향을 준다. 따라서 연구자는 감각 적 지각활동의 대표 매체인 북 디자인을 대상으로 정하고 다음과 같은 순서로 연구를 진행했다.
첫째, 물질의 개념과 특징을 기억의 측면에서 고찰하여 책의 가시적 공간과 비가시적 공간의 관계를 살폈다. 둘째, 정보를 전달하고 기록을 남기기 위한 목적으로 발전해온 북 디자인의 역할은 무엇이고, 그것이 책 읽기 방식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검토했다. 셋째, 르페브르 (Henri Lefebvere)의 ‘공간재현’ 이론을 통해 일상적 공간으로서의 ‘틈’과 책 공간의 유사성을 발견하고 비가시적 측면에서 탐구했다. 넷째, 북 디자인의 ‘물질’과 다양한 ‘틈’을 분류하고 사 례를 들어 독자와 교감을 이끌어내는 책의 ‘물성’과 ‘비가시적 틈’의 상호 관계와 역할에 대해 탐색했다.
연구자는 북 디자인에서 물질의 범위를 시각적 인지가 가능한 문자, 글줄, 단락, 책장으로 정하 고 물질 사이의 ‘틈’에는 인간의 심리에 작용하는 무수히 많은 ‘비가시적 공간’이 존재한다고 판단했다. 책장을 넘기는 반복 행위는 시간의 흐름과 내용적 공간의 이동에 관여해 독자의 심상 에 사색, 기대, 환기, 연결 공간을 만든다. 또한 책은 작가의 기록 시간, 디자이너의 창작 시간, 독자의 독서 시간을 하나의 공간에서 만나게 한다. 이런 비가시적 공간과 책의 물질적 특성의 관계에 관한 연구를 위해 뤼징런(Lu jingren)의 ‘북 디자인’에 관한 이론과 베르그송(Henri Bergson)의 ‘물질과 기억’에 관한 이론을 고찰했다. 이를 바탕으로 연구자는 책이 내포하는 디자인적 의미를 ‘물성과 비가시적 틈의 관계’에서 찾고자 한다.
2. 물성과 본다는 것 2.1. 물질과 기억
“물질은 사물의 기본이 되는 바탕이나 자연의 구성요소로, 인간 주변의 사물은 모두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크기나 겉모습에 중점을 둘 때는 사물로, 그 사물을 이루는 재료에 중점을 둘 때는 물질로 말한다”(Doopedia, 2020). 다시 말해, 책 그 자체는 감각할 수 있는 사물로, 책을 구성하는 재료나 소재는 물질로 규정할 수 있다. 책의 물성은 독자의 ‘감각하는 행위’에 의해 기억 속에 상징으로 자리 잡는다. 메를로 퐁티(Ponty, 1994/2004)는 ‘진정한 사물에 도달하는 것은 눈으로 바라봄으로써 가능하다. 두 눈은 함께 지각해야 진정한 기능을 한다. 자신의 지각 이 사물 속에 들어감과 동시에 지각이 자기의 몸 밖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렇듯, 눈으로 바라본 물질은 정신세계에 도달하여 사물에 대한 진정한 지각을 돕는다. 책의 물성은 책을 보는 사람의 눈을 통해 정신적으로 교감하게 하고 감성적 자극에 관여한다.
베르그송(Bergson, 1939)은 ‘정신과 물질의 관계’에서 ‘순수한 지각’과 ‘기억력’에 집중하여
‘순수한 지각이 여전히 물질적이라면, 순수한 지각과 순수한 지각 사이의 연결점에 놓아야 한 다. 순수한 기억과 마음이 상호 작용을 일으키고 인식하게 하는 것은 물질이다. 모든 지각은 물질로 인해 일정 기간 지속되고, 과거의 현재를 연장하고, 그 과정을 통해 기억 일부가 된다.’
고 했다. 즉, 마음과 물질을 통해 기억의 합성물 같은 구체적인 물질 인식의 바탕 위에서 영혼과 신체는 서로 상호적 관계에서 결합을 시도한다. 물질과 이마주(image)1)(Doopedia, 2020)를 대등한 관계로 연결하며 물질의 세계에 접근하고자 했다.
내가 보는 물질과 타인이 보는 물질은 각자의 기억과 심리 상태, 살아온 환경에 따라 다르게 지각된다. 같은 텍스트를 읽고 다른 결론을 얻거나 다른 감정을 느끼는 것은 가시적 물질과 비가시적 감성이 서로 관계를 맺어 상호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고 만질 수도 없는 정신세계와 기억은 물질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기억에는 회상과 수축이 있다. 즉, 기억 은 다수의 순간을 함축해 정신과 물질을 중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무수히 많은 양적인 빨강 을 질적인 빨강으로 전환하는 역할을 한다. 정신과 물질도 긴장(tension)의 다양한 단계 속에 위치한다. 물질의 외연성(extension)이란 바로 그 긴장 이완의 극단에 있다’(Ken et al., 2011) 회상과 수축을 통한 기억의 중심에 물질이 있다. 여러 단계의 순간들 중에 물질이 구체적으로 떠오른다면, 그에 관련된 기억들로 인해 과거를 회상하고 경험의 순간을 떠올릴 수 있다.
2.2. 가시적 공간과 비가시적 공간의 관계
책은 지식과 감정 교류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책 읽기를 통한 경험과 감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면 디자인도 그것에 맞게 견고하고 아름다워야 한다. 북 디자인은 형태적 측면과 미학 적 측면이 고루 갖춰져야 한다. 따라서 책에는 형태와 예술을 논할 수 있는 가시적 공간과 비가 시적 공간이 존재한다. 즉, 물질로부터 사유하는 정신적 세계가 존재한다. 또한, 정신에 관여하 는 비가시성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의 자극을 통한 감각 자극이 있어야 지각 할 수 있다. 심신이원론2)에서처럼 “세계가 물질과 영혼으로 분리되어야 한다면 어떻게 물질적 인 신체가 비 물질적인 영혼에 또는 그 반대로 서로 영향을 미치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예를 들어, 몸이 아플 때 인간은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굳이 설명하 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다”(Ahn, B. 2018. p.29). 다시 말해서, 사용하는 용어 는 달라도 감성과 이성은 서로 밀접하게 관련된다는 것이다. 물질의 가시성과 정신세계의 비가 시성은 상반된 개념이나 지배 관계가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다.
1) 이마주는 의식과 대상 그리고 표상과 사물에 선행한다. 가령 우리가 지각하고 있는 색채의 덩어리들과 형태의 배치들이 바로 대상 그 자체이다. 이것은 단순한 심적 관념이나 영원불변하는 물질이 아니며, 관념론자의 표상과 실재론자의 사물 사이에 있는 존재이다.
(Doopedia. 2020. 10. 13)
2) 정신과 물질은 전혀 다른 것으로 뚜렷하게 구분될 수 있는 다른 근원을 가진다는 생각이다. 정신의 근본은 생각이며 나눌 수 없는 것인데, 물질의 근본은 크기와 운동이다. 사유하는 것(res cogiton)이 정신적 실체의 본성이요, 연장된 것(res extensa), 즉 크기를 가진 것이 물질적 실체의 본성이다. 따라서 물질은 정신과 달라서 크기를 가지고 있고, 기하학적 공간에 위치하기 때문에, 섞여 있 거나 겹치지 않는다.(Nam. Y., 2016. p.53)
물질은 시각적 감각으로 가장 먼저 지각된다. 물리적 측면에서 우리는 시각적으로 지각할 수 없을 때,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시각적으로 규정할 수 없는 비가시적 지각활동은 언제나 일어난다. 책의 페이지와 페이지 사이 종이 두께만큼의 빈 공간은 인쇄된 문자의 물성에 의해 형성된 가시적인 지면 공간과 어우러져 인간의 정신세계를 자극한다. 즉, 문자와 종이 같은 가시적 물성이 독자의 감각활동을 통해 감성을 자극하는 비가시적 공간으로 전환된다.
다만, 독자의 시각적 감각은 문자의 물성에 집중하여 그 의미를 찾기 때문에 정신세계에 관여하 는 비가시적 공간을 의식하지 못하게 하고 무의식 속에 남긴다. 우리는 책 속에 존재하는 다양 한 공간들 사이에서 ‘시간의 연속성’을 느끼고 ‘사색’한다. 책장을 넘기는 짧은 찰나에도 의미를 파악하고, 과거를 기억하며, 다음 장과의 연결을 기대한다.
3. 매체로서 책의 속성과 역할
‘책은 언어를 담은 글자를 내려놓는 공간으로, 책이 놓여있는 공간과 그것을 들고 있는 독자의 정신이 조화를 이루는 일까지 고려해야하기 때문에 그 시대와 잘 맞는 디자인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Lu. 2008). 여기서 말하는 디자인 언어는 문자뿐만 아니라 소통의 기능이 있는 책의 구 성요소와 감각을 자극하는 시각 언어를 포함한다. 책을 구성하는 물질은 독자의 인식과 정서에 관여하고, 시간의 흐름과 사색 공간을 마련하여 과거‧현재‧미래를 연결한다. 따라서 책의 물성은 인간의 정서와 감정에 영향을 주어 다양한 감성을 탐색하게 한다.
3.1. 책의 물리적 성질과 가치
책은 지식을 공유하는 물리적 사상이나 감정을 교류하는 정서적 기능을 한다. “르네상스는 인 간중심주의가 중시되던 시기인 만큼 책에도 독자를 위한 변화가 일어났다. 책의 외형뿐 아니라 내부에도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해서 다양한 폰트와 활자를 담아 본문과 내용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기능적 필요에 의한 책의 형태 변화 시도는 결국 예술적 가치를 높인다”(Lu. 2008.
p92). 책의 기능성과 전달력을 높이기 위한 물리적 시도는 책 읽는 환경과 독자의 정서에 영향 을 준다. “과거 어떤 형태의 책을 들고 다니고 읽느냐가 지위를 나타내고, 화려한 장식으로 부를 과시하던 시기가 있었다. 책의 표지는 보호기능뿐만 아니라 장식의 역할도 한다. 가죽이나 금속, 황금이나 상아, 보석 등 값비싼 재료를 이용해 화려하게 장식하기도 했다. 예술적 가치를 높이려는 순수한 마음도 있었지만, 소유자의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려는 욕심도 있었다”(Lu.
2008. pp.89-90).
17세기에 제작한 라 아라우카나(La Araucana)
<Figure1>은 ‘페데리코 줄리 호르’ 도서관에 소장된 책으로 ‘마로 퀸 브라운(Marro Quin Brown)’이 금장식과 철을 이용해 직접 손으로 만들었다. 화려한 패턴과 골든 컷팅은 책에 대 한 관심과 디자인의 가치를 높였다. 이런 금장 식, 컬러, 형태와 같은 물성이 책의 가치를 높이 고 소유자에 관한 판단기준이 된다는 것은, 물 질이 인간의 환경, 취향, 감정 등 심리적 상태를 표상한다는 의미다. 책을 대량 생산할 수 없던 시기에 개인의 취향에 따라 표지에 화려한 장식을 덧붙이고 조각해 욕망과 만족감을 드러내고 사회적 지위를 과시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화려한 장식과 조각은 그 시대 북 디자 인의 배경과 트렌드를 파악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책이 오랜 세월 인류의 지식 문화와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책에는 이처럼 시대의 문화를 이어 미래를 연결하는 정서적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Figure 1> La Araucana, 1626.(Federico Joly Hohr Library-Braun Maro Queen)
3.2. 북 디자인의 역할
“북 디자인에는 입체적 사고가 필요하다. 평면적인 디자인에 시간 요소를 투입해 3차원적 공간 인 책이라는 ‘건축물’을 빚어야하기 때문이다. 디자인은 단지 책 한 권의 형태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독자가 읽으며 책 곳곳에서 감동과 깨달음을 얻도록 독자와 책을 상호 소통 관계에 놓는 일이다. 북 디자인은 풍부한 감성을 갖춘 창조적 활동으로, 논리를 담아 질서를 제어하는 과정이다. 또한 북 디자인은 ‘구조학’이다. 외적으로는 책의 모양을 만들고, 내적으로는 정보를 전달하는 종합적이고 이성적인 사고가 필요하다”(Lu. 2008. pp.12-13). 이처럼 북 디자인은 이성과 감성을 담은 종합적 사고를 함축해 독자에게 의미와 감동을 전달하는 구조적 창조활동 이다.
책은 작가, 디자이너, 독자가 내용을 읽는(쓰는) 시간의 흐름과 책장을 넘기는 지면 공간의 이동으로 얽혀있다. 시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것은 책을 구성하는 물질과 그들 사이의 공간이다.
‘북 디자인의 기반을 이루는 도큐멘테이션은 지면을 통해 인간의 기억을 오래 도록 유지하게 하므로 ‘내부의 생각을 드러내는 외부의 형식’이다. 그것은 저자의 생각을 시대에서 시대로 물 려줄 수 있게 해주며, 수명과 지역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재현되고 출판되며 전 세계에 수백년을 이어 남아 있게 한다’(Haslam. 2008. p.40). 이처럼 책의 가시적인 물성으로부터 지각되는 비가시적 공간은 단순히 문자와 이미지를 담은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감상의 가치와 예술성을 가지고 있는 총체적 공간으로 역할하며 인간의 정신과 심리, 새로운 책 읽기 방식과 독서 환경 에 영향을 준다. 따라서 책의 물성과 감성의 결은 함께 해야 한다.
3.3. 책의 형식과 감각 작용
“북 디자인은 서적, 제본 또는 표지 장정, 조판디자인, 편집디자인의 세 분야가 포함되어있다.
진정한 북 디자인은 이 셋이 하나를 이루어 진행되는 ‘총체적인 디자인’을 말한다”(Lu. 2008.
p.7). 책은 ‘종이’, ‘문자’와 같이 질감 있는 구체적 물질을 통해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종이 본연의 결과 느낌이 독자의 감각을 자극해 책의 내용에 걸 맞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따라서 책은 개성 있는 물성을 활용해 독특한 디자인을 창조하고, 북 디자인의 문화와 예술적 가치에 영향을 준다.
<Figure 2> 구운몽은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이 디자인 한 책이다. 천의 질 감이 느껴지는 종이에 밑 그림을 그리고 종이가 찢 어지지 않게 바느질로 한 땀 한 땀 수를 놓는 자수 기법을 도입해 한국적인 정서와 전통적인 느낌을 표현했다. 구름의 이미지 를 질감 있는 자수로 강조 해 ‘인생무상’을 표현한 디 자인은 한국 고전 구운몽만의 정체성을 작품 속에 구현했다. 자수 기법으로 강조한 높은 산과 흘러가는 구름의 물성이 한국의 정서를 느끼게 하고 인생을 돌아보게 한다. “디자인의 표현적 접근은 저자나 디자이너의 감성적 의도를 시각화함으로써 유발된다. 그것은 심장으로부터, 때 로 오장육부로부터 나온다. 그것은 본능이고 열정적이며 색깔과 표시와 독자를 감성적으로 바 꾸어 놓는 상징성을 통해 얻어진다. 독자는 내용을 흡수하는 사이 디자인을 통해 감성적 영향을 받게 된다”(Haslam. 2008. p.42). 이처럼 책에는 독자에게 신체적 영향을 주는 ‘감각을 자극하 는 공간’과 정신적 영향을 주는 ‘감성을 자극하는 공간’이 있다. 책의 외형을 구성하는 물성과 형태의 아름다움은 독자의 감각을 자극한다. 이런 ‘감각 공간’은 책의 물성으로 인해 시선의
<Figure 2> The Cloud Dream of the Nine(Minumsa World Literature Collection Special Edition, Lee Sang-bong, http://minumsa.minumsa.com/book/2208/)
이동과 고정, 손의 촉감 자극, 마음의 감동을 주어 독자의 감정과 정서변화에 영향을 준다.
‘감각 공간’이 책의 외형적 측면이라면 내용에 기반 하는 ‘감성 공간’은 내재적 측면으로 과거의 경험과 기억, 즐거움, 기대 등을 생성하게 한다. 또한 책을 읽는 동안 지면의 여백과 같은 물리 적 공간은 독자의 시선을 머무르게 하고 휴식을 제공하는 시간적 공간이기도 하다. 이런 정신세 계과 관련된 ‘비가시적 공간’은 의미 전달보다 독자의 감성 자극에 영향을 준다.
3.4. 시각적 책 읽기와 경험적 책 읽기
책의 정보를 독자가 흥미롭게 느끼게 하려면 시각적으로 받아들이기 쉽게 제작해야 한다. “책 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면 텍스트에서 그래픽까지, 개념에서 실제까지, 구조에서 배열까지, 추 상적인 것에서 구체적인 것까지, 외재에서 내재까지, 처음에서 끝까지, 시각적 효과에서 촉각적 느낌까지 전 방위적 사고방식이 필요하다”(Lu. 2008. p.197). 책은 문자를 읽는 형태에서 만져 보고 듣고 상상할 수 있는 감각적 형태로 확대되어 독자가 능동적으로 탐색하고 경험하는 ‘상호 텍스트성’3)을 제공한다. 상호텍스트성은 텍스트뿐만 아니라 텍스트와 텍스트, 텍스트와 과거 경험, 텍스트와 저자의 의도, 저자와 독자, 독자와 독자의 기억, 독자가 읽었던 다른 책, 인간의 심리까지 모두 관여한다.
<Figure 3> 오만과 편견
의 표지는 손의 온도를 감 지해 닿는 부분의 색이 변 한다. 눈으로 보고 정보를 판단하는 ‘시각적 책 읽기’
와 직접 만져보고 온도에 따른 컬러변화를 감지하는
‘경험적 책 읽기’를 가능하 게 한다. 오만과 편견은 온도에 따라 변하는 물질인
‘서모컬러’4)를 사용하여 시 시각각 변하는 인물들의 감정 흐름을 표현했다. 처음에는 차가운 회색빛이었던 이미지가 사람 의 손길이 닿으면 따뜻한 체온으로 인해 붉은색으로 변한다. 이것은 남녀 주인공이 점차 사랑에 빠지게 되는 관계 변화를 색의 변화로 암시한다. 또한 제목, 작가, 책 디자이너와 출판사의 영문명이 차례로 나열되면서 교차하는 방향을 따라가면 ‘PRIDE, PREJUDICE, JANE AUSTEN’이라는 글줄이 형성된다. 내지의 각 시작부분에는 표지와 같은 방식으로 등장인물들 의 이름이 짜여져 주인공 ‘ELIZABETH’와 ‘DARCY’의 인연을 암시한다. 인연의 연결을 글자의 연결로 표현해 시각적 물질화한 것으로, 독자는 등장인물의 이름을 손으로 선 긋듯이 직접 연결 해 가며 그 인연의 관계를 맞추면서 읽어야 한다. 책은 ‘읽는다’는 소극적 개념에서 ‘체험한다’,
‘경험한다’라는 적극적 개념으로 확장되었고 정보를 수용하는 형태와 방법도 세분화 되었다.
오만과 편견은 인간의 감각을 다양하게 자극해 독자가 책의 스토리 안에서 주인공의 감성을 직접 경험하는 방식으로 글자의 짜임을 다른 형태로 연결하면 다른 방식의 스토리 전개 가능성 을 열어두었다. 독자가 저자의 위치에서 주인공의 기억과 감정의 흐름에 참여하고, 내지를 읽기 전 체온으로 인한 색의 변화로 내용을 추측하게 하는 독특한 방식을 취한다.
3) 프랑스의 기호학자 줄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 1941~)가 처음 사용한 용어로 텍스트들 사이의 관계를 의미하며, 롤랑 바르 트(Roland Barthes, 1915~1980)나 제라드 쥬네트(Gérard Genette, 1930~) 등 여러 학자에 의해 문학 작품사이의 관계를 지칭 하는 등 다양한 의미로 쓰였다.(Kim. D., 2020. p.43 ; Kim. D., 2014. pp.97~99)
4) ‘서모컬러(thermocolor)’ 또는 ‘시온 잉크’라고 불리는 이 특수 잉크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다양한 산업재와 소비재에 널리 쓰이고 있는 안료이다.(Jane. A. 2009. cover story)
<Figure 3> Pride and Prejudice(Minumsa World Literature(Minumsa World Literature Collection Special Edition, Lee Don-tae, http://minumsa.minumsa.com/book/2207/)
4. 북 디자인의 비가시적 ‘틈’ 탐색
4.1. 감각을 통해 인지하는 일상적 공간으로서의 ‘틈’
르페브르(Henri Lefevre)는 ‘공간의 생산(The Production of Space, 1974)’에서 “나무에 새겨 진 나이테는 나무의 나이를 말해주듯이 시간은 필연적이다. 이는 공간과 시간 사이의 관계를 내포한다. 시간은 공간과 구별되지만, 분리되지는 않는다”(Kim. Y. 2020. p.19)고 했다. 르페 브르 공간론은 ‘사회적 공간’을 일컫지만, 사회적 공간과 활동 영역이 물질이 있는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확장되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다양한 공간’을 암시한다. 북 디자인 측면에 서 ‘공간의 생산’ 개념을 살펴보면 책은 문자와 종이, 여백 등 구체적인 물질 구조를 갖는다.
책장을 넘기는 ‘틈’에 시간이 흐르고, 시선이 움직이는 ‘틈’을 따라 공간이 이동하는 것과 같이 시간과 공간은 분리 되지 않고 다양한 틈을 포함한다. 르페브르가 본 것, 경험한 것, 삶에 대한 재현을 ‘공간적 실천’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공간재현이란 전문가에 의해 계획 된 인지 공간으로, 기술과 합리적 이성에 의해 만들어진다. 이것은 직접 생산 관계와 그 질서의 연결을 말하며 사회의 지배적인 공간이 되고 있다. ‘재현 공간(생동 공간)’은 규범화된 공간의 재현과 충돌하는 공간적 실천들이 행해지는 공간으로, 상징과 이미지를 통해 체험된 공간이 다”(Kim. Y. 2020. p.21). 그렇다면 공간은 “지각된 공간, 인지된 공간, 체험된 공간과 조응한 것으로 제시할 수 있다. ‘공간적 실천’이란 인간의 활동을 통해서 형성된 지각 공간, 즉, 상식적 인 감각이나 일상생활을 통해 인지되는 일상적 공간을 의미한다. (중략) 공간적 실천은 수동적 인 동시에 자발적이기도 하다”(Choi . B. 2018. pp.156-157). 연구자는 이런 ‘공간 재현’을 서론에서 ‘틈’으로 규정했다. ‘틈’이 찰나, 새(사이)와 같이 ‘시간’의 개념과 물질과 물질 사이에 생긴 작은 공간, 또는 넓이를 알려주는 ‘공간’의 개념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책 역시 감각, 인지, 체험 공간이 존재하며 독자의 감각 또는 책 읽는 행위를 통해 책 속의 공간은 일상적 공간이 된다. “책은 언어로 서술된 것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매개체로서 구성, 리듬감, 배열, 시‧공간 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는 북 디자인의 인식 변화로 구시대적 디자인을 벗어나 새로운 책 형태를 만들고 표지 장정을 뛰어넘어 총체적 디자인으로 바뀌고 있음을 말한다”(Lu. 2008.
p.68). 문자와 이미지를 통해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정지된 사물(책)’은 책장을 넘기는 행위 로 인해 유동적이고 연속된 공간을 창출한다.
4.2. 물성의 관계가 만들어 내는 ‘틈’
4.2.1. 문자와 문자 사이에서 시간을 관리하는 ‘틈’
모든 문자는 수많은 공간 안에 놓여 있다.
<Figure 4>는 문자 사이의 공간을 붉은색 으로 표현했다. 문자와 문자는 서로 연결 되어 연속성을 가짐으로써 이야기를 만든 다. 연속성을 연결하는 중심에 시간을 관리하는 ‘틈’이 있다.
문자 사이의 ‘틈’은 책 지면 안에 인쇄된 문자가 있어야 존재한다. 문자로부터 생긴 ‘틈’, 즉 문자의 ‘속 공간’과 ‘겉 공간’ 또는 ‘문자와 문자 사이의 공간’은 항상 존재하지만, 물질성을 갖는 문자 형태와 그 의미에 집중하기 때문에 지각하지 못한다. 각각의 문자는 공간 안에서 동일선상에 놓이면서 의미를 전달하고 문자 사이의 공간은 시간의 흐름을 조절한다.
문자의 외형에는 말하고자 하는 사람의 정서와 표현하고 싶은 감성이 담겨있으므로, 문자의 외형에 따라 그 형태와 넓이가 달라지는 ‘틈’은 독자가 느끼는 의미, 시간과 공간, 크기, 리듬감, 밀집도 또한 다르게 만든다. 반대로 문자 사이의 ‘틈’은 문자의 형태 지각을 돕고 쉼, 긴장감, 읽는 속도 등의 리듬을 조절해 정지해 있는 문자에 운동성을 부여한다. 따라서 이성에 작용하는 것은 문자의 정보와 그 의미이고, 글 읽기 환경에 작용해 정서적, 심리적 영향을 주는 것은
‘틈’이다.
<Figure 4> Space between Letters
4.2.2. 글줄과 글줄 사이에서 호흡을 연결하는 ‘틈’
단어(의미)들이 연결되어 글줄(생 각)을 형성한다. 4.1에서 언급한 르페브르의 ‘공간적 실천’에서 ‘인 간의 감각과 일상생활을 통해 인 지되는 일상 공간’이란 ‘의미 있는 문장이 책읽기를 통해 지각되는 공간’이다. 건축물 사이 비워진 작 은 공간이 건물을 지각하게 하고 주변 환경을 정서적으로 인지하게 하는 것과 같이 글줄과 글줄 사이 비워진 ‘틈’이 독자의 읽기 방향에 관여해 문장의 의미를 지각하게 하고 책 읽기 호흡을 연결하는 것과 같다. 정해진 공간 안에서 효율적인 글 읽기가 가능하게 하려면 ‘어떤 방식으로 의미를 전달하고, 문자와 공간을 어떻게 배치해야 하는지’ 고려하고 ‘글줄과 글줄 사이의 틈’이 적절한 넓이와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Figure 5>는 글줄로 인해 수평공간이 형성되고 수직방향 글 읽기를 알려준다. 텍스트의 흐름 을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도록 유도하고 독자의 호흡을 연결하는 공간이다. 이 공간은 내용의 전환과 연결, 호흡조절, 속도 조절과 같이 정서적으로 편안한 책 읽기를 돕는다. 효율적인 ‘틈’
은 시선의 흐름을 방해하거나 끊지 않고 ‘편안하다’, ‘아름답다’, ‘좋은 글이다’라고 판단하게 한다. 이는 글줄의 시각적 형식이 내용의 연결을 주도해 ‘이성적 판단’이 ‘틈’으로 인한 ‘감성적 인식’으로 이동하게 돕는다.
4.2.3. 단락과 단락 사이를 환기하는 ‘틈’
단락은 여러 개의 글줄이 모여 하나의 주제를 담고 있는 문장의 단위다. 하나의 주제를 담는다 는 것은 하나의 단락에는 하나의 생각만 담고 있다는 것으로, 외형상 새로운 글줄이 시작되는 부분부터 다음 새 글줄이 시작되기 전까지다. 따라서 생각이나 주제가 바뀔 때 단락을 구분해 공간을 만든다. 단락과 단락 사이의 공간은 한 페이지 내에서 가장 큰 ‘틈’이다. ‘단락을 구분하 면 정보와 사고의 구분이 명확해져 많은 양의 정보를 간결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고 독자의 이해와 공감을 높일 수 있다. 또한 긴 내용을 읽을 경우 정보의 지루함을 없애고 글을 읽다가 잠시 쉬어갈 공간을 제공한다. 시각적인 이해를 높이면서도 지면 자체에 활력과 생동감 을 줄 수도 있다’(Lee. H. 2015). 단락사이의 틈은 다음 내용을 예측하고 상상할 수 있는 공간 이다. 하나의 생각이 또 다른 하나의 생각과 이어지는 연결공간이기도 하다. 이는 행을 바꾸거 나 들여 짜기(Indent), 내어 짜기(hanging indent) 등의 물리적 형태를 취해 단락이 구분되는 공간으로 생각을 전환하는 환기의 ‘틈’이다.
4.2.4. 책장과 책장 사이에 놓인 사색의 ‘틈’
독서를 하면서 책장을 넘기는 행동은 평범한 행위가 아니라 이야기의 끝인 동시에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이고, 한 공간에서 다른 한 공 간으로의 이동이며, 시간에서 시간으로의 흐 름이다. 의식의 연결과 단절, 휴식과 사색의
‘틈’이다. 책장과 책장 사이에는 낱장의 종이 와 그 사이 공간이 있다. 책장의 ‘가시적 공간’
과 책장 사이 ‘비가시적 공간’은 독자에게 또 다른 언어가 되고 감성을 전달하는 상호 보완 적 관계다. 책장을 넘겨 지면을 전환 시키는 행위로 인해 독자는 책장과 책장 사이의 ‘틈’
<Figure 6> Visible Space and Non Visible Space
<Figure 5> Space between a Line and a Letter
에서 간접경험을 한다. 이는 ‘과거의 아련한 향수를 느끼고, 현재를 즐기며, 미래를 내다보며 예측할 수 있기 때문’(Lee. Y. 2006)에 책 읽는 행위를 지속시켜 정서를 자극하는 언어가 된다.
“책에는 렉토(recto)’5)와 베르소(verso)6)가 있고 눈앞에 펼쳐지는 렉토에는 공간이 있다. 이 미지와 텍스트, 여백은 독자의 눈으로 빨려 들어가 현재는 순간 과거가 되고 베르소는 다시 렉토가 된다. 시간은 운동으로써 이미지를 드러내고 페이지의 움직임은 시간이 되어 공간을 표현한다”(Lee. Y. 2006). 렉토가 베르소로 전환되는 시점은 내용이 끊어지는 순간이 곧 다음 내용으로 이어지는 연결의 순간이며 책장의 물성이 ‘사색의 틈’을 만드는 순간이다. 그 시간은 무의식적으로 빠르게 지나가기도 하고, 책장의 틈을 통한 상상과 회상으로 현실에 영향을 주기 도 한다.
4.3. 북 디자인에서 ‘비가시적 틈’의 역할
공간은 물질을 채우며 지각되기도 한다. 또는 공간이 있기 때문에 ‘물질’과 ‘틈’을 지각할 수도 있다. 공간은 “물질이 존재하고 여러 가지 현상이 일어나는 장소, 또는 사람이나 사물이 점하고 있는 장소와 인간의 활동이 행해지는 장, 사물의 운동이 그 속에서 전개되는 넓이다”(Ken et al., 2011. p.38). 물질은 문자, 존재하는 곳은 책, 현상은 독자의 책 읽기 행동일 수 있다.
<Figure 7>은 ‘나의 진실의 말_창의성’이라는 작품으로 ‘The chaos of my mind is the creativity of my future’라는 문장을 의도적으로 겹치고 반전 시켜 마음속의 혼란을 표현했다.
문자사이의 공간이 복잡하게 얽혀 숨 쉴 틈 없이 답답해 보이고, 풀리지 않는 실타래와 같은 형상이 작가의 심리적 상태를 드러낸다.
<Figure 8> ‘City by Landscape’는 조경과 도시 계획에 관한 프로젝트 중심의 에세이집으로 독일 건축가 레이너 슈미트(Rainer Schmidt, 1948년)의 작품이다. 도시의 건물 위치를 ‘CITY BY LANDSCAPE’의 영문철자와 그 사이 공간으로 표현해 도시계획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내용을 표현했다. 문자는 건물을, 문자 사이의 틈은 도시의 공간을 연상시킨다. <Figure 9>는 뉴욕 타임즈(New York Times)의 첫 페이지로 비행기 실루엣으로 비워진 물리적 공간은 사라 진 비행기를 의미하며 비행기 테러에 대한 경각심과 현실감을 시각적으로 전달한다. 비행기 형태의 빈틈은 독자가 글을 읽기 전에 주제를 예고한다. <Figure 10>은 ‘What Is a Catholic Family?’라는 질문을 던지며, 스포트라이트를 연상하게 하는 글줄의 배치로 네 명의 가족에게 시선을 집중시킨다. 스포트라이트 중간 발문 ‘Under Pope Francis, the church is struggling to figure out who belong’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교회에 누가 속하는지 알고자 하는 내용이다.
스포트라이트의 물리적 ‘틈’에 따라 시선이 집중되어 내용에 대한 호기심과 집중력을 높인다.
이처럼 글줄의 물성으로 인한 ‘틈’은 수평과 수직, 또는 사선 방향으로 시선을 끌어 사건을 암시 하고 주제를 연상하게 한다. ‘물질’과 ‘틈’을 통해 직 ‧ 간접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은 북 디자인이
5) recto: 페이지의 앞면, 오른쪽 페이지 6) verso: 페이지의 뒷면, 왼쪽 페이지
<Figure 8> City by Landscape(Rainer Schmidt)
<Figure 7> Word of My Truth Creativity(Made in the USA-Unknown author)
<Figure 9> Missing Malaysian jet(New York Times–Mathildas Welt)
<Figure 10> What Is a Ca –tholic Family?(Matt Dort –man)
가진 ‘물질성’과 ‘비물질성’ 때문이다. 책의 물성은 독자의 심리적 공간, 이성과 감성에 관여하 는 ‘비가시적 공간’과 상호관계를 맺는다. “르페브르는 ‘건축 공간’, ‘문학 공간’과 같이 공간을 구분하는 기준이 오히려 공간의 개념을 조각조각 나눈다고 비판하면서 일상생활과 사회를 포 괄하는 공간을 창출하는 비가시적인 영역에 대한 공간 이론을 제시했다”(Choi . B. 2018). 인간 의 정신적 영역을 해체하여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는 ‘비가시적인 공간’에 주목하는 것이다. 공 간은 ‘물질’이 가진 고유한 성질과 ‘비물질’이 가진 에너지, 시간, 운동성 등이 상호작용하면서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이는 형태를 지각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뿐만 아니라 심리적, 정신적, 감성적 공간을 모두 이르는 것으로서 ‘물질’과 ‘틈’, ‘가시적 공간’과 ‘비가시적 공간’의 관계에 따라 다양한 역할을 제시한다.
5. 결론과 제언
책은 외형과 내재적 요소의 결합, 물성과 감성의 결합으로 육면체 구조물 안에 정지된 미와 유동적 미를 담은 이중 구조다. 인간의 경험과 감성에 대한 인식 변화는 ‘물질’과 ‘비가시적 틈’을 통해 책 읽는 방식을 독자가 직접 참여하는 적극적 방식으로 확대해왔다. 책은 텍스트를 읽고 이미지로 보완하는 형태에서 보고, 듣고, 만지고, 연상해 다중 감각을 사용하고 참여할 수 있는 형태로 확대되었다. 다시 말해 북 디자인은 시각적 디자인에서 경험적 디자인으로 확대 되며 물리적, 심리적, 인식적 감각을 활용하여 가시적 공간과 비가시적 공간의 경계를 허물고 때로는 서로 전환해 다양한 감성을 자극한다. 북 디자인은 의식적으로 분석하고 판단해 결론짓 는 것이 아니라 책의 물성이 무의식과 심리에 상호 작용해 창의적 공간과 감성적 영역을 재생산 하는 것이다. 종종 의식적 사고가 아닌 경험과 기억에서 비롯된 본능적 사고를 하는 것은 다양 한 디자인영역에 영향을 준다. 연구자는 북 디자인에서 물질로부터 사유하는 ‘비가시적 틈’이 감각에 미치는 영향과 감성적 교감을 끌어내는 다양한 방식을 탐색했다. 이는 북 디자인의 ‘감 각 공간’과 ‘감성 공간’이 내포하고 있는 상징적 의미를 능동적 경험 탐구와 물질에 대한 기억 소환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북 디자인은 시각적 측면을 주로 강조한 표상적 장식에 치우치 기 보다는 디자인의 다양한 시도와 활용을 통해 독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창조적 활동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북 디자인의 본질은 정보전달의 목적 뿐만 아니라 독자에게 시간과 공간을 제공하 고 사고의 폭을 넓히며, 독서의 여유와 가치를 높여주는 것에 있다. 최근 북 디자인이 글이 전달하는 의미와 지식에만 목적을 두지 않고 다양한 형태와 구조를 시도 하며 감각적으로 발전 하는 이유다. 따라서 북 디자인은 이성에서 감성으로, 시간에서 공간으로, 가시적 공간에서 비가시적 공간으로 폭넓게 사고하는 과정과 맞물려 표현되어야 한다. 책은 독자의 눈을 통해 정신적 교감과 감성적 자극에 관여하기 때문이다. 이런 책의 감성적 역할은 물성의 자극으로 시작된다. 물질은 시대성과 문화를 반영하므로 북 디자인 또한 물질문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 며 그 변화와 결을 같이 해야 한다. 물질이 가진 고유한 성질과 비물질이 상호작용하면서 끊임 없는 책 공간이 재생되기 때문이다. 연구자는 책의 물질과 물질 사이의 ‘틈’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발현되는 감성적 측면을 탐색했다. 따라서 이 연구는 책의 내적 영역과 외적 영역의 밀접 한 상호관계 속에서 디자인을 연구하고 확장하는 데에 의미가 있다. 이를 토대로 다음과 같이 후속 연구를 제안한다.
첫째, 문화는 역사, 환경, 시대적 배경을 포함하므로, 북 디자인 문화를 고찰하기 위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며 시대상을 반영하는 사물과 물질에 관한 연구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책에서 ‘비가시적 틈’은 인간의 심리와 감성자극에 영향을 주므로 정체성에 대한 고찰과 다양한 디자인 활용방안에 대한 창조적 연구활동이 필요하다. 셋째, 책의 ‘물성’과 ‘비가시적 틈’의 관계에 관한 이 연구결과를 감각적으로 제한된 온라인 매체에 확장하고 적용할 수 있는 후속 연구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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