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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강의안03] 셸리『프랑켄슈타인』- ‘이름 없음’에서 탄생하는 비극 [학습목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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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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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안03] 셸리『프랑켄슈타인』- ‘이름 없음’에서 탄생하는 비극

[학습목표]

1. 예술은 개인들을 사회 안에서의 기능적 존재와 실행으로부터 소외시키 는 세계의 지각에 참여한다는, 즉 미적 변형은 인식과 고발의 수단이 된다는 주장에 대해 알아본다.

2. 예술은 기존적인 것의 법칙을 넘어서면서도 여전히 그 지배 밑에 있다 는 주장에 대해 알아본다.

[주요용어] 미적 형식(aesthetic form), 카타르시스, 부정과 긍정의 변증법

[학습과제]

1. 메리 셀리의 ‘프랑켄슈타인’이란 작품의 감상과 분석을 통해 ‘대립의 객 관화’를 통해 ‘소통’이란 키워드가 어떻게 다루어지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

2. 메리 셀리의 ‘프랑켄슈타인’이란 작품의 감상과 분석을 통해 미적 형식 의 법칙 아래 주어진 현실은 필연적으로 승화된다는 주장에 대해 생각 해 보자.

메리 셸리『프랑켄슈타인』

사람들은 프랑켄슈타인을 잘 알고 있다. 그 모습을 묘사하라고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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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큰 거구, 기형적으로 벌어진 어깨, 여기저기 꿰맨 자국들, 반쯤 감은 듯 일그러진 눈, 붉은 혈관이 드러날 정도로 헤진 피부 등으로 그릴 것이다. 사람들이 이렇게 묘사하는 데에는 물론 이 괴기한 인물을 주인공 으로 여러 번 제작된 영화의 영향이 크다.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이름은 한 마디로 ‘괴물’을 연상하게 한다.

그런데 사실 메리 W. 셸리(Mary W. Shelly)가 19세라는 젊은 나이에 쓰 기 시작해서 21세인 1818년에 출판한『프랑켄슈타인, 또는 현대의 프로메 테우스(Frankenstein, or The Modern Prometheus)』에서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만든 사람의 이름이다. 그가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이고, 괴물은 이 름이 없다. 그래서 소설 속에서는 그냥 ‘괴물(monster)’이라고 불리거나, 다른 추악한 말들로 불린다.

이름 없는 존재

‘이름 없는 존재’, 여기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청년 과학도 빅토르 프 랑켄슈타인은 사물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비법을 발견하고는 복받치 는 감격에 외친다. “믿을 수 없을 만큼 힘든 작업과 피로로 점철된 밤낮을 보낸 다음, 나는 탄생과 생명의 비밀을 발견하는 데 성공했다. 아니 그 이 상이었다. 이제 생명이 없는 물체에 생명을 부여할 수 있다.”

그는 곧 여러 시체로부터 얻은 인체의 각 부위를 접합해서 머리와 몸을 만든 다음에 에너지 발생장치로 충격을 가해 인간을 ‘닮은’ 생명체를 창조 한다. 그러나 이 순진한 창조자는 자신의 피조물이 너무나 추하고 무서워 서 실험실에서 도망친다. “내가 창조한 존재의 모습을 더는 쳐다볼 수 없 어서 방을 뛰쳐나오고 말았다.” 그러면서 빅토르는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고 만다. 자신의 피조물에 이름을 붙여주지 않은 것이다.

이름도 없이 홀로 남은 괴물은 이 세상에 첫발을 내디디면서 이미 다른 사람들에게 ‘부정된 존재’가 된다. 아무도 그를 부를 수 없다는 사실은 존 재 자체가 부정될 가능성을 의미한다. 창조 신화에서도 조물주는 자신의 피조물에 이름을 지어주어 그 존재를 확인한다. 아담과 이브도 그렇게 탄 생했고, 그들 역시 에덴 동산의 다른 생명체에 이름을 짓는 것으로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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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한다.

작명은 아무렇게나 부르지 않겠다는 것을 선언하는 일이다. 내게 이름이 있다는 건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을 제약한다. 그것은 ‘나를 함부로 부르지 말라’고 알리는 일이며, 곧 ‘나를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이다.

그런데 탄생한 뒤 이름이 없다는 건 비극의 시작이다.

왜 그런가? 비극의 본질은 결국 운명이 나를 함부로 대하고 말았구나 하고 인식하는 데 있다. 이름이 없다는 건 이미 이 세상이 나를 함부로 대 할 가능성을 제공하는 일이다. 빅토르의 피조물은 타인들이 자신을 함부로 대할 수 있는 가장 비극적인 삶을 시작한 것이다.

빅토르는 예기치 못한 우연의 사건이 이런 비극을 초래하리라고 미처 생 각하지 못한다. 하지만 비극의 특성은 바로 우연처럼 보이는 모든 사건에 사실 필연성이 철저하게 내재한다는 데 있다. 그래서 메리의 소설은 한 번 더 비극적이다.

괴물은 자신의 조물주 빅토르를 찾아가 처절하게 외친다. “프랑켄슈타 인, 나는 당신의 피조물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오. 나는 당신에게 아담과 같은 존재여야 하는데, 당신은 나를 타락한 천사로 취급하는군요. 아무 잘 못도 없는데 나를 기쁨으로부터 몰아내다니.” 하지만 괴물 역시 자기가 겪 는 비극의 원인을 잘 모른다. 그는 아담과 같은 존재여야 하지만, 아담처 럼 이름을 선사받지 못했기에 아담과 같이 될 수 없다. 원인도 모르는 사 건에 말려들어 고통받는 것만큼 비극적인 일도 없다.

문화철학적 주제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비극의 주제는 운명과 연관해서 존재론적이거나, 인간관계의 뒤틀림과 연관해서 사회철학적이었다. 인간이 뭔가를 창조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들, 곧 문화적 행위와 연관된 비극성은 별로 다뤄지지 않았다. 문학사가들은 과학소설(science fiction)의 모든 특 질을 갖춘 최초의 소설이 막 소녀티를 벗은 한 여성의 손에 의해 쓰였다는 데 별 이견이 없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 견해를 더하고 싶다. 아마도 메 리의 작품은 비극이 문화철학적 주제라는 것을 다각적으로 보여준 최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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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일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이름을 짓는다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문화적 특징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름 없이 태어났어도 누구나 이름 을 갖고 있지 않은가.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이 ‘어떤’ 존재에게 결여될 때 또한 비극의 씨앗이 움튼다.

이 밖에도 메리의 작품은 비극의 요소들을 곳곳에 배치해놓고 있다. 창 조자의 무책임성이 비극의 발단일 수 있다는 암시 또한 내포돼 있다. 빅토 르를 찾아간 괴물은 자신을 찾아 죽이려는 자신의 창조자에게 절규하듯 그 책임을 묻는다. “나를 만들어낸 당신조차 당신의 피조물인 나를 미워하고 경멸하는군요. 당신은 나를 우리 둘 중 한 사람이 죽는 경우에나 끊어질 인연으로 묶어놓지 않았습니까? 이제는 날 죽이려 하다니···. 어떻게 생 명을 갖고 이렇게 장난을 칠 수 있습니까?” 이는 창조자가 문제를 일으키 는 피조물을 파괴하고 없애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없음을 암시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가 ‘원수지간’이 된다는 것이 이 비극적 이야기의 기본 틀이다. 피조물이 언제든지 창조자의 적(敵)이 될 수 있다는 역설, 그것이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에서 비극의 조건이다.

빅토르와 괴물의 사이가 점점 악화되면서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최악의 관계가 되는 과정은, 빅토르가 괴물을 부르는 말에서도 알 수 있다. 빅토 르는 어떤 의미에서 자기 ‘자식’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를 ‘혐오스런 괴물 (abhorred monster)’, ‘악귀(fiend)’, ‘악마(devil)’, ‘악령(daemon)’ 등으로 부르거나, 아니면 그냥 ‘것(being)’이라고 부르다가, 결국에는 ‘나의 적(my enemy)’이라고 부른다. 이런 혐오와 증오는 괴물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 다. 창조자와 그 피조물이 가장 비극적인 관계가 된 것이다. 그 어느 누구 들 사이보다도 질긴 인연으로 맺어 있는 그들이 어이없게도 서로 원수가 된 것이다.

이름을 불러다오

프랑켄슈타인과 괴물의 비극적 상황은 그들 이야기의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된다. 괴물을 찾아 죽이기 위해서 북극까지 간 빅토르는 괴물을 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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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데 실패하고 탈진한 상태에서 조난당한다. 결국 그는 자신을 구조한 월튼 선장의 배에서 숨을 거둔다. 그는 마지막까지 자기 손에 의해 이 세 상에 태어난 자식 같은 존재의 이름을 불러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이들의 이야기에서 비극의 조건으로서 ‘무명씨의 문제’는 명시적으로 드 러나 있지 않다. ‘이름이 없다’는 조건이 ‘괴물’ 또는 ‘악마’같은 다른 일반 적 호칭에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모든 비극의 밑바탕에 깔 린 ‘작지만 섬세하게 치명적인’ 문제인 것이다. 반면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 은 모든 ‘낯섦’과 ‘추함’을 극복하게 해준다. 그럼으로써 너와 내가 관계를 맺게 해준다.

빅토르 프랑켄슈타인도 자신의 피조물을 그냥 ‘것’이라고 부르지 않고, 이름을 지어주고 그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면 좀 더 그에게 가까이 다 가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괴물도 덜 고통스러웠을 것이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상대를 온전하게 인정한다는 뜻이며 관계가 시작됨을 의미한다. 서로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 은, 낯섦과 추함을 넘어서 서로 상대에게 유의미한 ‘무엇’이 되겠다는 신호 이다. 여기 이 시처럼 말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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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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