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안10] 사회학적 미학(루카치, 블로흐, 아도르노, 벤야민, 그람시)
[학습목표]
1. 루카치의 총체성 개념과 전형성 개념과의 관계에 알아본다.
2. 블로흐의 가상의 미학(Ästhetik des Vorscheins)에 대해 알아본다.
3. 아도르노의 가상의 구원과 비판으로서의 미학에 대해 알아본다.
4. 벤야민의 복제기술론과 그람시의 문화이론에 대해 알아본다.
[주요용어] 총체성(Totalität), 전형성, 가상(Vorscheins), 가상의 구원과 비판, 아우 라, 문화이론
[학습과제]
1920-30년대의 정치, 사회, 이론적 상황에 대한 고찰로부터, 사회학적 미학사상의 이론적 출발점을 재확인하는 것이야말로 이들의 미학사상이 어떤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 전개, 완성되었는가를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의 하나가 될 것이라는 점에 대해 생각해 보자.
[개관]
예술사회학
1. 우리가 여기에서 다루게 될 사상가들은 모두 예외 없이 일찍부터 마르크스주의 의 세례를 받았던 인물들이며, 자신들의 시대와 불화했던 이들 가운데 그람시는 11 년에 걸친 무소리니의 감옥에서의 오랜 수형생활 끝에 이미 일찍이 1937년 사망했 고, 벤야민은 나치스의 마수로부터 벗어나려는 절망적인 도피의 도정 가운데서 1940년 자살을 선택했다. 한편 2차대전 이후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루카치, 블로 흐, 아도르노 역시도 오랜동안 망명자의 삶을 강요받았을 뿐 아니라, 살아 있는 동
안에는 결코 지울 수 없었던 깊은 정신적 상흔을 지닌 채 살아야 했다.
때문에 이들의 철학과 미학 사상들이 표면적으로 보이고 있는 모든 단절과 차이 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상의 근저에는, 그들의 사상의 성립기에 해당하는 1920-30년대의 이론사적 및 역사적 상황이 공통적으로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1920년대에서 1930년대에 이르는 역사적, 정치적 상황 가 운데서 마르크스주의적 지식인이었던 이들 사이에서 핵심적인 화두가 되었던 <잃어 버린 혁명>의 문제와, <프로레타리아트 계급의 붕괴>와 <나치스의 집권> 및 정치 적 망명이라는 시대사적 사건들이 이들의 개인사적 경험의 핵심을 이루고 있으며, 이들의 철학과 미학 사상도 당연히 이러한 개인사적 경험에 의해 깊이 각인되고 있 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 지식인으로서 이들이 직면했던 1920-30년대의 정치, 사 회, 이론적 상황에 대한 고찰로부터, 이들의 미학사상의 이론적 출발점을 재확인하 는 것이야말로 이들의 미학사상이 어떤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 전개, 완성되었는 가를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의 하나가 될 것이다.
우리는 개별적으로 자세히 다뤄지게 될 이들 사상가들 각각의 미학사상을 사후적 으로 단지 몇 개의 키 워드를 중심으로 압축 요약하여, 입문적인 단편적 정보를 나 열하는 손 쉬운 길을 가기보다는, 문제사적 관점에서 이들 미학사상이 출발, 성장 해온 정치, 역사, 이론적 상황에 대한 간단한 스케취를 통해 이들의 미학사상이 역 사적 문맥 가운데서 차지하는 좌표와 근본적 성격을 분명히 하는 길라잡이가 되고 자 한다.
2. 1920년대의 정치적 상황 및 이론사적 상황과 철학의 문제: <잃어버린 혁명>
가. 루카치의『역사와 계급의식』과 <총체성>의 문제
1917년의 러시아 혁명 직후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의 희망 찬 확신과는 달리, 1919 년 1월 15일의 로자 룩셈부르크의 피살로 마감되는 독일에서의 스파르타쿠스 사건 을 마지막으로, 1920년대 들어 서유럽에서는 프로레타리아트 혁명은 지연, 불발되 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실종될 조짐까지 보이게 된다. 서유럽 선진 국가들 가운데 서의 자본주의 사회가 노정할 수 있는 모든 정치, 경제적 위기 상황의 출현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가 예언하고, 제2차 인터네쇼날이 역사의 필연성으로 선언했던 혁명이 이처럼 지연되고 후퇴하고 있는 역사적 현실 앞에서,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그 이유를 합당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한, 현실을 이론적으로 합당하게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전면적으로 의심받게 될 위기에 처하게 된다. 루카치의 철학적 주저인
『역사와 계급의식』(1927)은 바로 이러한 마르크스주의 이론이 처했던 위기에 대
한 마르크스주의 진영의 이론적 반성들 가운데서 가장 빛나는 결과물이다.
우선 루카치는 당시의 마르크스주의 진영의 이론적 입장을 대변했던 제2차 인터 네쇼날이 역사발전과 프로레타리아트 혁명의 필연성에 대해 채택했던 공식적 입장 들, 즉 프로레타리아트 혁명은 자본주의 사회 가운데서의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변 증법으로부터 비롯하는 객관적 모순의 격화와, 이로 인한 혁명적 주체로서의 프로 레타리아트 계급의 탄생이라는 역사의 법칙에 따라 필연적으로 도래한다는 <혁명 의 물리학>을 정면으로 부정했다. 루카치에게 있어서, 혁명은 단지 자본주의적 모 순의 심화라는 객관적인 역사적 조건이 성숙되면 역사의 필연적 법칙에 의거하여 자동적으로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혁명은 역사의 과정을 주체와 객체, 당위와 존 재, 이론과 실천 사이의 역동적 매개과정으로 꿰뚫어봄으로써 현실을 그것의 총체 성 가운데서 인식하고, 이러한 인식을 근거로 역사적 주체가 실천을 통해 역사과정 에 적극적으로 개입함으로써만 가능한 것이다.
때문에 루카치는 제2차 인터네쇼날의 공식적 입장이 사로잡혀 있었던 혁명에 대 한 실증주의적이며 기계적 유물론의 입장을 극복하기 위해서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게 있어서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변증법적 방법을 통해 사회와 역사의 발전과정에 대한 인식의 <총체성(Totalität)>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보게 된다. 총체적 인식이야 말로 개별적이며 순수한 사실과 존재들을 물신화하고 있는 실증주의를 넘어서, 역 사를 주관과 객관, 당위와 존재, 이론과 실천의 매개 과정으로 파악하게 함으로써, 개별적이며 순수한 사실들과 존재들을 끊임 없는 변혁의 과정으로서의 역사발전의 생성과 경향성 가운데서 파악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총체성이 라는 범주야말로 혁명적 원리를 온전히 담아내는 것을 가능케 하는 핵심적 범주로 서,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브루주아 과학으로부터 구분하는’ 결정적 기준이라고까지 주장하게 된다. 뒤에 루카치 미학의 핵심적 구상들은 바로 이 <총체성>의 구상의 연장에서 이루어진다.
(나) 루카치의 프로레타리아트 계급의식론
한편 확신에 찬 마르크스주의자답게 루카치는, 현대의 자본주의적 상황 아래서 이처럼 역사발전의 과정을 주체와 객체의 상호작용으로 파악할 수 있는 총체적 인 식이 가능한 유일한 역사적 주체를 프로레타리아트 계급이라고 본다. 브루죠아 계 급은 자신들의 특수한 계급적 이해관계 때문에 부분적, 이데오로기적 인식밖에는 가질 수 없는데 반해, 프로레타리아트는 그들이 역사적-사회적 발전과정 가운데서 놓이게 된 계급적 처지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의 소외와 자기분열을 가장 심각하게 겪게 됨으로써, 이를 극복하여야하는 당위성 역시 가장 강하게 의식하게 된다. 그 리고 이러한 사실이 프로레타리아트로 하여금 필연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극복을
위해 자신들이 직면하고 있는 역사적 상황에 대한 올바른 인식 즉 역사와 사회 전 체에 대한 총체적 인식을 획득 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나아가 자신들의 특수하고 편협한 계급적 이해관계를 넘어서 인류 전체의 보편적 이해를 실현하는 <집단적 메 타 주체>가 될 수 있는 <객관적 가능성>을 갖는 유일한 특권적 계급이 될 수 있도 록 만든다.
다. 나치스의 집권과 프로레타리아트 계급의 붕괴
그러나 프로레타리아트 계급에 의한 혁명의 유예와 지체라는 1920년대의 역사적 현실을 마르크스주의로 하여금 이론적으로 합당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 를 장만함으로써 마르크스주의가 1920년대에 봉착했던 이론적. 실천적 위기를 타 개할 수 있게 만든 유력한 이론적 시도로 받아드려졌던 루카치의 이론도, 1930년 대에 들어서면서는 더 이상 설명력을 가질 수 없을만큼 현실의 상황은 근본적으로 변화. 악화된다. 1929년 월가의 증권시장의 붕괴로 시작된 자본주의의 위기는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더욱 전지구적 규모로 심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로레타 리아트 계급은 여전히 무력했고, 혁명적 변혁이라는 역사적 소명을 실현하지 못했 다. 그들은 사회주의적 혁명의 주체이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파시즘에 대한 맹목적 지지로 기울었다. 혁명은 완전히 실종되어버리고 말았다.
이제 프로레타리아트 계급에 의해 추동되는 역사적 변혁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되었으며, 그렇다고 다른 역사적 변혁의 주체를 상정할 수도 없는 절망적 상 황이 왔다. 그리고 이같은 역사적 변혁을 담당할 주체의 부재라는 상황인식은, 결 국 역사가 급격히 동결상태에 이를지 모른다는 페시미즘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로 써 역사 가운데서 혁명적 변혁을 지향하던 마르크스주의 지식인들에게 있어서, 유 토피아의 비죤을 현실적으로 확보하는 것 자체가 절체 절명의 과제가 된다. 블로흐 와 아도르노는 유토피아적 전망을 확보하기 위해 예술이 제시해주는 유토피아의 가 상에 의존하게 된다.
(1) 1930년대의 이론의 딜렘마적 상황과 정신분석학적 및 문화이론적 시각의 대두:
그리고 이러한 문제상황은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에 대한 여러 가지 유보적이며, 제한적인 입장에도 불구하고, 프로레타리아트 계급을 여전히 유일하게 정당한 역 사변혁의 주체라고 상정하면서, 프로레타리아트 계급에 대해 특권적 의미와 역할 을 부여하고 있던 루카치의 모델에 대한 근본적 반성을 불가피하하게 만든다.
이 때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들이 새롭게 주목하게 된 것이 종래의 교조적인 기계 적인 경제결정론적 유물론은 물론 루카치의 프로레타리아트 계급의식론도 전혀 고
려하지 않은 채 등한시 했던, 프로레타리아트 계급의 의식을 현실적으로 규정. 구 성하는 경제외적 요인들이었다. 파시즘의 지지라는 자신의 이해에도 결정적으로 반 하는 당황스러운 정치적 선택을 한 프로레타리아트 계급을 이해하려면, - 경제가 변함없이 여전히 인간의 의식과 행동을 규정하는 일차적 요소라고 인정할 때조차 도,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일방적으로 결정한다는 조잡한 반영론의 입장을 포기하 고 - 현실의 인간의 의식형성 및 행동결정과 경제적 하부구조와의 사이에 존재하는 복잡한 심리학적(정신분석학), 문화적 매개항(문화이론)의 섬세한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인식이 싹트게 된다. 이로써 정신분석학적 시각과 문화 이론적 시각이 중요성을 획득하게 된다.
좀 더 상세히 말하면 프로레타리아트 개개인이 현실을 어떻게 경험하고, 규정하 는가, 즉 세계를 어떻게 지각, 수용하고 인식하는가에 대한 심리학적 이해를 바탕 으로, 그들이 어떻게 브루죠아 문화를 수용 학습하며 브루죠아 문화에 흡수 동화되 었는가, 아니면 자신들의 의미나 가치를 즉 고유의 프로레타리아트 문화를 창출했 는가를, 문화이론적으로 밝히는 것이 매우 중요해진다. 이를 통해서만이 혁명이라 는 집단적인 계급적 가치가 형상화되고, 실천되어가는 과정이 어떠한 조건 아래서 가능 혹은 불가능한가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 1920-30년대의 사회적, 문화적 일상과 문화이론적 시각의 등장의 불가피성
그리고 이러한 문화이론적 시각의 등장은 사회사적으로나 문화사적으로 보아 제1 차 대전을 전후하여 문화의 지형 가운데서 나타나는 전면적인 변화에 의하여서도 불가피해진다. 제1차 대전을 전환점으로 하여 한편으로는 기술사적 발전을 통해 영 화와 사진과 같은 새로운 예술장르와 매체들이 확산되어가는 양상이, 또 다른 한편 으로는 사회사적으로는 이제까지의 전통적인 서구근대에 있어서와는 명백히 다른 문화. 예술에 대한 대중적이며 소비주의적인 생산. 유통과정을 통해 팝음악, 대중잡 지, 광고에 이르는 상업적 대중문화가 서구의 대도시들 가운데서 노동자 계급을 포 함한 모든 계급의 일상생활에 깊이 침투해 가는 양상이 현격해졌다.
이러한 새로운 상황은 이에 대응하는 새로운 이론을 필요로 하게 된다. 특히 잃 어버린 혁명을 시대사적 화두로 삼고 있던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들은 프로레타리아 트 계급에 의한 혁명의 불발의 가장 직접적 원인이, 프로레타리아트 계급이 이데오 로기적 미성숙했기 때문에 브루죠아 문화를 무비판적으로 수용, 학습함으로써 부르 조아 문화에 대한 대항하는 계급 고유의 문화를 창출하는데 실패했다는 점에서 보 았다. 때문에 브르조아 문화에 대한 대항 문화의 창출 가능성을 탐지하기 위해서라 도, 문화이론적 작업은 불가피한 작업이 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작업의 신선함은 이러한 문화 상황을 기계적 유물론에 입각하여 밖으로부터 도식적으로 비판하고,
개입하려는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의 태도를 거부하고, 대중의 일상적 경험 특히 노 동자 계급의 생활의 안쪽으로부터 묻고자 했다는 점에서, 즉 이론을 대중의 생활 세계의 안에 내재화시키려 했던 발상의 전환에 있다.
3.
(가) 루카치 미학의 근본적 범주로서의 <전형성>과 총체성
루카치의 <총체성>을 중심으로 하는『역사와 계급의식』에서의 인식론적, 역사철 학적 입장은 그의 미학적 사고로까지 연장되고 있다. 즉 루카치의 주체와 객체, 보 편자과 개별자의 역동적 매개를 핵심으로 하는 <총체성>의 개념은, 예술을 현실에 대한 <미적 반영=인식>으로 규정하고 있는 그의 미학사상 가운데서 핵심적 개념으 로 기능하는 <전형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루카치는 인간의 인식이 세계를 반영 (인식)하는 방식으로는, <개별성>에 입각한
<일상적 반영>, <특수성>에 입각한 <미적 반영>, <보편성>에 입각한 <과학적 반 영>이라는 세 가지 방식이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서 특히 <미적 반 영>에 주목하여야 하는 이유는, 미적 반영의 본질이 그것이 단지 인간의 인식이 개 별자에서 보편자로 상승.이행하는 과정 속에서 개별자와 보편자를 단순히 량적. 물 리적으로 매개하는 애매한 중간항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개별자와 보편자라는 극단적으로 상이한 양자를 질적. 화학적으로 지양함으로써 대상에 대한 본질적 규 정을 능동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데 있다는 점이다.
즉 세계에 대한 예술의 독특한 인식 방식인 <미적 반영> 가운데서 나타나고 있 는 <전형성>은, <과학적 반영>으로서의 학문이나 이론의 공허하고 추상적인 <보편 성>과 자연주의적으로 대상의 직접적인 표피에만 머물고 있는 <일상적 반영>의 파 편적인 <개별성>을 넘어서, <특수성>이라는 모습 가운데서 대상에 대한 <구체화된 보편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편 이처럼 예술을 현실의 <미적 반영>으로 보면서 반영론의 큰 틀을 고수하는 한, 그의 미학이론은 필연적으로 리얼리즘과 미메시스 개념을 중심으로 전개될 수 밖에 없게 되며, 루카치는 역사적 변혁을 위한 예술만이 진정한 예술이라고 보기 때문에 모든 진정한 예술은 당파적일 수밖에 없다고 본다.
(나) 블로흐의 가상의 미학 Ästhetik des Vorscheins
블로흐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몇몇 사상가를 제외한다면 - 그나마 이들은 전적 으로 프로이드에만 주목하고 있었다 -,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스펙트럼 가운데서
프로이드와 융 모두를 아우르면서 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었던 유일한 인물 이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블로흐는 프로이드의 백일몽(Tagestraum) 이론 등으로부터 얻은 영감에서 출발하면서, 역사철학의 인간적-사회적 소외와 갈등의 문제 (“지나 간 순간의 어두움”, “결핍”, “굶주림”, “충동-동경”, 그리고 유토피아를 배태하는
“백일몽”의 초기적 경험)가 예술이 제시하는 유토피아의 장대한 <가상> 가운데서 어떻게 반영되고, 이상적으로 해결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예술은 인간역사의 미 종결성과 인간존재의 미충만성에 의해 각인되고 있는 현실의 ‘역사적-존재적’ 차원 가운데서, 역사의 완성의 과정을 ‘구성’하거나, 인간적인 ‘우리와 나의 비밀’을 ‘인 간학적’ 차원에서 해명하면서, 유토피아라는 지향점을 정향하게 만드는 본질적 매체 로 기능한다.
예술은 한편으로 역사적 공간 가운데서 <인간적인 것의 현현>을 열어보여줄 뿐 아니라, 또한 미적 가상 가운데서 세계의 가능한 완성된 모습을 보여준다. 예술을 통해서 획득된 미적 경험은, 한편으로는 충만된 인간의 존재태를 다른 한편으로는 아직은 완결되지 않은 세계의 과정이 어떠한 가능한 완성에로 다가갈 수 있는가에 대해서 보여준다.
(다) 아도르노: 가상의 구원과 비판으로서의 미학
아도르노는 프로레타리아트 계급의 역량을 철저히 불신했기에, 아도르노도 블로 흐와 마찬가지로 예술의 <가상>에 의존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로흐가 미 적 가상을 통해 적극적으로 유토피아를 제시하려는데 반해, 아도르노는 다만 규제 적 의미에서 소극적으로 밖에는 예술의 유토피아 제시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양자의 입장은 결정적 차이를 갖는다. 이 점에만 국한시킨다면 유토피아의 제시에 있어서 금욕적이며 소극적인 아도르노의 <가상의 미학>은, 적극적으로 장대 한 유토피아를 제시하고 있는 블로흐의 <가상의 미학>과는 대척점에 선다.
(라) 벤야민의 복제기술론
벤야민은 파사쥬 론에서 오늘날의 대중소비사회 문화론의 선구를 이루는 대도시 에서의 일상적 소비문화에 대한 전방위적 분석을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복제기 술론이나 사진론 등에서 <아우라>의 붕괴라는 현상을 통해 영화 사진과 같은 복제 기술에 근거한 새로운 예술들의 새로운 표현 가능성과, 이들 새로운 매체를 통해 이루어지는 인간의 지각양식의 급격한 변화 등에 대한 연구를 통해, 현대 예술의 생산과 수용의 사회적‧ 기술적 조건에 있어서의 구성적 변화를 분명히 함으로써 미 학의 새로운 차원을 열고 있다.
(마) 그람시의 문화이론
한편 그람시는 지배를 군대나 경찰과 같은 국가의 억압적인 물리적 강제력에 입 각해서 이해하기보다는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자발적 동의를 이끌어내는 문화의 이 데올로기적 기능과 역할에 근거하여 이해하려는 헤게모니론에 입각하여, 대중의 관 습적 일상 (민속)에서 노동에 의해 점철되는 현실적 일상(테일러리즘)을 거쳐 대중 문화 (추리소설)에 이르는, 대중문화에 대한 광범한 이론적 연구를 시도했다.
특히 그가 관심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은, 전지구적으로 확산되어 가는 대중소비 문화 가운데서, 그 때까지 마르크스주의 운동의 궁극적 근거였던 노동자 계급의 생 활세계가 어떻게 변용되고 있으며, 그 변용의 한 가운데서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얼터나티브한 문화적 가치를 갖는 프로레타리아트 계급의 대항 문화가 창조될 수 있는 집단적 계기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그의 이 론은 마르크스주의가 현대적인 문화상황과의 조우하여 대중의 일상적인 생활세계 가운데서 이론을 정립하고자 했던 최초의 생산적 예의 하나이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문제의식은 이후 아도르노가 망명지 미국에서 경험했던 라디 오 음악 및 헐리우드 영화 등의 대중예술에 대한 부정적 경험을 바탕으로 전개했던
<문화산업론(Kulturindustrie)>론과 부분적으로 궤를 함께 할 뿐 아니라, 특히 1964 년 버밍엄 대학 부속기관으로 창립된 <현대문화연구 센터(C.C.C.)>에 의해 본격적 으로 추진되게 되는 이른바 <문화연구(Cultural Studies)>의 성립에도 결정적 영향 을 미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