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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안05] 포르노그래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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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안05] 포르노그래피(Pornography)

[학습목표]

1. 포르노그래피의 본질과 가치에 대한 다양한 입장들과 그들의 근거에 대해 알아 본다.

2. 포르노그래피 자체의 도덕적 문제점과 검열의 정당성에 대해 알아본다.

3. 포르노그래피의 예술로서의 가능성에 대해 알아본다.

[주요용어] 포르노그래피, 음란물, 내용-기능 정의, 부정적 가치, 검열

[학습과제]

포르노그래피의 도덕적 문제점이 명확해 질수록 그것과 병존한다는 예술적 가치의 옹호는 부담스럽다는 점에 대해 생각해 보자.

[개관]

포르노그래피

포르노그래피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규정하는 데서부터 논쟁을 피해갈 수 없는 주 제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포르노그래피를 둘러싼 논쟁들 중 철학적 조망이 적절하 다고 판단되는 두 주제, 즉 포르노그래피의 본질 혹은 정의에 관련된 논쟁들과 포 르노그래피의 가치에 관련된 논쟁들을 살펴보려 한다. 특히 도덕적 가치 측면에서 는 포르노그래피 자체의 도덕적 문제점과 검열의 정당성, 그리고 미적 가치 측면에 서는 예술로서의 가능성이 검토해 볼 내용이다. 물론 포르노그래피에 관한 종합적 인 이해를 위해서는 개념 분석이나 철학적, 윤리적, 미학적 접근 외에도 사회학적, 심리학적 연구로 대표되는 경험적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실제로, 포르노그래피가 제작, 소비되고 작동하는 방식과 그 정치적, 문화적 함의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진 행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경험과학적 연구 성과들을 거의 반영하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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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그러한 경험적 연구들의 전제에 해당하는 포르노그래피의 본질과 가치에 대 한 다양한 입장들과 그들의 근거를 소개하는 데에 치중할 것이다.

이러한 논의가 포르노그래피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가 될 수 없는 또 하나의 한계 는, 그러한 종합적 시각을 얻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성(性)에 관한 논의를 동반해 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분명 우리 사회 내에서 포르노그래피에 대한 인식과 태도 는 우리 사회의 성과 성차(gender), 성적 취향, 특히 성의 상품화에 대한 인식 및 태도와 깊은 관련이 있다. 양자의 긴밀한 연관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후자와 관 련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논의들이 포르노그래피 논의 그 자체인 것처럼 생각되 기도 한다. 예를 들어, 포르노그래피의 사회적 허용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우리의 성에 대한 ‘건강하지 않은 이중적 태도’와 동일시하고, 포르노그래피에 대한 ‘진보 적’ 관용을 성의 개방과 동일시하는 입장 같은 것이 그것이다. 하지만 성과 포르노 그래피, 혹은 성의 상품화(예를 들어 매매춘)와 포르노그래피는 동일한 문제가 아니 며, 그렇게 단선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문제도 아니다. 성에 관한 철학 역시 간명히 정리될 수 없는 악명 높은 주제이다. 따라서 필자는 이 글에서 포르노그래피의 문 제를 ‘결국’ 성의 문제로 보는데서 오는 감당할 수 없는 논의의 확장은 피하려 한 다.

1. 포르노그래피란 무엇인가? : 정의의 문제

전 지구적 현상이라 할 포르노그래피는 어떤 형태로든 우리 사회에도 분명히 존 재하고 있다. 플레이보이나 허슬러 같은 ‘포르노’ 잡지에 등장하는 성기 노출이 포 함된 누드 사진이나 성행위 사진, 노골적인 성행위만을 다루고 있는 영화나 비디 오, 디지털 영상 등, 현대를 사는 우리들의 관행상 대부분이 동의할 전형적인 포르 노그래피의 사례들이 존재한다. 폭력적이거나 전혀 순화되지 않은 성적 재현으로 대다수 사람들의 가치관과 상치되는 정도가 심각한 소위 ‘하드코아’ 포르노그래피도 역시 ‘전형적인’ 포르노그래피에 포함된다.

하지만 한국에서 포르노그래피는 공식 용어가 아니며, 대신 이런 부류를 지칭하 는 용어는 아마도 ‘음란물’인 것 같다. 하지만 ‘음란물’과 포르노그래피는 서로 같은 것을 지칭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전자를 후자에 대한 우리식 표현이라고 할 수는 없다. 우선 ‘음란물’은 포르노그래피(아니면, 성적으로 노골적인 표현물)에 대한 가 치중립적 지시어라기보다는,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시각까지도 포함된 용어로 들린다. 음란은 외설과 마찬가지로 주관적 가치 평가어이며, 대상의 부정적 가치를 평가하는 말이다. ‘음란물’은 대개 규제와 처벌의 대상인데, 어떤 대상(예를 들어 성적으로 노골적인 표현물)이 정말 ‘음란’하다면 이러한 규제와 처벌은 어쩌면 정당 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우리 논의가 도달할 수도 있는 결론의 하나이지 논의를 시작하기도 전에 미리 규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비록 포르노그래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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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본성이 부정적인 성격의 것이라는 결론은 타당하더라도, 그것이 곧 음란하기 때 문은 아닐 수도 있다. 둘째, ‘음란물’은 위에서 언급한 우리가 알고 싶은 포르노그 래피의 사례들이 아닌 것들까지 포함할 수 있는, 보다 폭넓은 외연을 가진 용어라 고 생각된다. 예를 들어, 폰섹스는 음란물일 수 있고, 또 더 나아가 성의 상품화라 는 점에서 포르노그래피와 유사한 점이 있지만, 우리가 여기서 논하고자 하는 포르 노그래피의 사례라고 하기는 어렵다. 또 연인이나 부부간에 자신들의 성적인 흥분 을 위해 사적인 목적으로 제작된 사진이나 공연은, 비록 음란하다고 할 수는 있을 지 몰라도, 이 역시 우리가 생각하는 포르노그래피의 사례는 아닐 것 같다. 따라서 우리의 논의는, 음란물인 포르노그래피가 아니라, 음란물로 규정될 수도 있는 포르 노그래피가 과연 어떤 성질의 것인지를 묻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주어진 대상이 포르노그래피인가라는 질문은 두 가지로 이해될 수 있다. 하나는 우리의 관행에 대한 질문이다. 즉, 우리는 실제로 주어진 대상의 내용과 형식을 판 단하여 이를 포르노그래피로 분류하는 관행을 가지고 있는가를 묻는 것으로 이는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예측함으로써 답변될 수 있 다. 비록 어느 관행을 적용할 지 애매하거나 기존의 관행으로 포섭되기 어려운 ‘경 계선’에 선 대상들이 가끔 있어 모든 경우마다 답이 가능한 것은 아니더라도, 원칙 적으로는 그러하다. 이런 기준에서 우리는, 예를 들어 일본 성인 비디오들을 ‘영락 없는 포르노’라고 분류하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질문이 이해되는 또 다른 방식이 있는데 이는 우리가, 예를 들어, 위의 일본 성인 비디오들을 전형적인 포르노그래 피로 분류하는 그 관행은 옳은가를 묻는 것으로, 이는 과연 무슨 근거에서 그들을 포르노그래피로 분류하는가를 묻는 것이다. 철학적으로 의미 있는 질문은 이것이 며, 이를 위해서는 관행 이상이 필요하다. 정의가 있다면 도움을 줄 것이다.

포르노그래피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다음의 두 요소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첫째, 그것이 글이건 이미지(사진, 영화, 비디오)이건, 그 내 용에 있어 성이, 가려지는 것 없이 노출되어야 한다. 물론 어느 만큼이 노골적인 성적 노출인지는 시대적, 문화적, 문맥적 차이가 있다. 발목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성적인 노출이라고 생각한 시대가 있었다면, 성기가 드러나더라도 노골적인 성적 노출이 아닌 문맥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문맥 상대적이기 때문 에 포르노그래피의 내용을 규정하는 노출의 특징은 없다고 강변할 수는 없을 것이 다. 대부분의 문맥에서 노골적인 성적 노출로 간주될 수 있는 것들은 또한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성교 행위, 남녀의 생식기 (특히 발기한 남성 성기) 등이 그에 해당될 것이다. 성기와 성교는 여러 가지 양태로 묘사될 수 있다. 플레이보이 사진 에서처럼 그저 노골적으로 성을 노출하고만 있는 경우도 있고, 두 사람이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하는 비폭력적인 성교 장면을 재현한 경우도 있을 것이며, 매우 폭력 적인(강간되고 고문되고 심지어 살해되기까지 하는) 성행위의 묘사도 있을 수 있다.

특별히 폭력적이지는 않더라도 대체로 여성을 비천하게 묘사하거나 굴종적이고 수 치심이 들게 묘사하는 경우도 있고, 어린이, 동물, 시체 등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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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하지만 성을 노골적으로 묘사하고 재현했다고 해서 바로 포르노그래피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해부학 책의 적나라한 생식기 사진들이 포르노그래피는 아니기 때문 이다.

두 번째는, 노출된 성 행위나 성기의 재현이, 보는 이에게 성적인 흥분을 일으킬 것을 최우선의 목적으로 한다는 조건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최우선의 목적’이 라는 구절이다. 다른 정치적 혹은 예술적 목적이 우선적인 작품이 부수적으로 성적 인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경우, 그것들은 보통 포르노그래피로 간주되지 않는다. 물 론 작가의 의도나 작품의 의도가 매번 명백한 것은 아니어서 논란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례들을 찾는 것 역시 그리 어렵지는 않다.

이상의 두 조건을 결합하면 ‘전형적인 포르노그래피는 그 내용 면에서 성적으로 노골적인 신체부위, 자세, 행위의 재현이며, 그 제작 의도(목적) 혹은 효과 면에서 성적 흥분을 목적으로 한다’는 정의가 얻어진다. 이것이 윌리암스 보고서(Williams 1983)를 비롯한 많은 논의에서 전제하고 있는 포르노그래피에 대한 중립적인 정의 이다. (이하 이것을 ‘내용-기능 정의’로 부르기로 하자.) 이는 가치 없음, 외설적임, 예술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음 등과 같은 규범적(normative) 요소들을 정의에서 최 대한 배제하여 기술적(descriptive)이며 가치중립적인 정의를 얻고자 하는 요구조건 을 만족시킨다.

그러나 ‘내용-기능 정의’는 두 가지 방향에서 반론에 부딪친다. 그 하나는 ‘내용- 기능 정의’에 대한 반례를 찾을 수 있으므로 이것이 엄밀한 의미의 정의로서 실패 했음을 주장하는 것이다. 레이(Rae 2001)의 논문은 그 좋은 예이다. 다른 하나는

‘내용-기능 정의’가 추구하는 가치중립성이 포르노그래피에 대한 올바른 성격규정 이 아니라는 반론이다. 포르노그래피에는 무언가 본유적으로 나쁜 것이 그 개념 속 에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뿌리 깊은 것이며, 따라서 규범적이고 가치 평 가적인 측면이 배제된 중립적인 정의는 오히려 이에 대한 왜곡된 이해를 반영한다 는 것이다. 우선 첫 번째 유형에서 제기하는 반례들에 대해서 살펴본 후, 두 번째 입장을 살펴보고, 이를 매개로 포르노그래피의 가치에 관한 논의로 옮겨가기로 하 자.

레이는 논문에서 포르노그래피에 대한 기존의 정의들의 불충분함을 지적하면서 다음의 네 가지 경우를 고려한다. 우선 그는 포르노그래피의 전형적 사례와 그것의 맥락 의존성을 지적하는데, 전형적인 포르노그래피의 사례인 플레이보이지의 사진 과 똑같은 종류의 사진도 다른 맥락, 예를 들어 다큐멘터리나 성형외과 의사의 포 트폴리오에 포함된다면 포르노그래피는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로, 위에서 언급한 부부간의 사적인 제작물도 포르노그래피가 아니다. 만일 우리가 이 점에 있어 레이 에 동의 한다면, ‘내용-기능 정의’를 만족시키고도 포르노그래피가 아닌 사례가 존 재하게 되어 정의의 문제점을 즉석에서 드러내게 된다. 즉, 소위 ‘개인 비디오’(우 리가 포르노그래피가 아니라고 동의하는 것)가 성적으로 노골적인 내용을 담고 있 으며 보는 이, 즉 배우자의 성적 흥분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내용-기능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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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두 조건 만족). 물론 이 경우에는 보는 이의 성적 흥분이 최우선의 목적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이 논란이 될 수는 있다.

레이의 세 번째 경우는 가상적 상황을 다루는데, 이는 사고 실험(thought experiment)을 통하여 ‘내용-기능 정의’의 문제점을 보다 적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서이다. 우선 제작자가 소비자의 성적 흥분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포르노그래피가 될 수 있는 경우의 사고 실험으로, 레이는 주어진 상황에서 무엇을 팔아야 가장 이윤이 남는지를 계산해 스스로 기업을 운영하는 가상의 컴퓨터 시스 템을 상상해보라고 한다. 포르노그래피라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는 어느 섬의 자료 를 입력받고, 이 시스템은 플레이보이와 유사한 잡지를 만들어 팔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우리 사회에서 포르노그래피가 유통되는 이유와 같은 이유들로 그 섬에서 도 그 잡지가 유통되기 시작하였다. 이 경우에 대한 레이의 주장은 다음의 두 가지 이다. (1) 이 경우, 그 섬에서 유통되기 시작한 잡지는 명백히 포르노그래피이다.

(2) 그러나 정작 제작자는 판매하는 물건이나 그 내용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로 지 이윤만을 목적으로 할 수 있다. 비록 이 사고 실험이 레이가 원하는 것을 보여 주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최소한의 논리적 설득력은 갖추고 있다 고 생각한다. 어쩌면 어떤 것이 포르노그래피가 되는지 아닌지에 제작자의 목적이 나 의도가 결정적 구실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마지막 사고 실험은 보다 간명한데, 예를 들어 소위 ‘신발 페티쉬’가 있는 사회에 서는 신발의 사진이 플레이보이지 사진과 같은 기능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레이 는 이 경우 역시 명백한 포르노그래피라고 한다. 하지만 만일 그렇다면, 이는 성적 인 노출이 전혀 없는 포르노그래피의 사례가 된다는 것이다. 레이는 최소한 이 네 경우에 모두 우리의 직관과 부합하는 결과를 낳는 정의가 제대로 된 포르노그래피 의 정의라고 주장하며, 이 점에서 ‘내용-기능 정의’는 전혀 적절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즉, 성적 흥분을 목적으로 노골적으로 성을 노출하는 것이 포르노그래피의 일반적 특징이라고는 할 수 있지만 정의적 요소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 레이의 주장이다. 그렇다고 그가 정의의 포기를 권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오히려 가치중 립적 정의가 자신의 독특한 접근법에 의해 이루어져야 함을 주장한다.

그렇다면 레이가 제안하는 엄밀한 정의란 어떤 형태의 것인가? 여기서는 그에 대 한 비판적 검토 없이 그 골자만을 소개하려 한다. 그는 포르노그래피라는 것은 주 어진 대상이 어떻게 취급되느냐에 달린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아무나 어떤 것이건 (예를 들어, 앵그르의 누드화나 백화점의 여성 속옷 카탈로그) 포르노그래피 로 취급하면 그것이 포르노그래피가 된다는 것은 아니다. 레이에게 ‘x는 포르노그래 피이다’라는 명제가 참이 되는 조건은 ‘x가 제작될 때 상정한 주 소비층(target audience)이 x를 포르노그래피로 취급할 것이라고 믿는 것이 합리적인 경우’이다.

그렇다면 다시, ‘x를 포르노그래피로 취급한다’는 것은 어떤 경우에 참인가? 레이는 네 가지의 다소간 전문적으로 보이는 조건들을 열거하는데, 그것을 풀어쓰면 결국

‘사용자 S가 x의 내용을 성적인 흥분을 위한 것으로 사용하며, 자신과 x 속의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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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의 친밀감을 증진하기 위한 의도가 있다고 믿기 때문에는 사용하지 않을 경우’가 된다. 따라서 레이의 정의에 따를 때, ‘개인 비디오’는 포르노그래피로 취급되지 않 기 때문에 포르노그래피가 아니며, 백화점 카탈로그는 주 소비층이 그것을 성적 흥 분을 위한 것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믿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으므로 역시 포르노그 래피가 아니다. 대신 레이 자신이 예로 들고 있는 이윤 실현 컴퓨터와 신발 페티쉬 경우는 모두 이 정의를 만족시키는 포르노그래피에 해당한다.

‘x는 포르노그래피이다’와 같이 술어가 대상의 본유적 성질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 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경우, 오히려 합리적 행위 주체(agent)들이 그 대상을 어떻게 취급하느냐가 더 기본 개념이 된다는 레이의 착안은 흥미롭지만, 과연 그의 가치중 립적이고 엄밀한 정의가 성공적인지는 또 다른 논의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그의 성공 여부와 무관하게, 그리고 이것이 철학적으로 매우 의미있는 시도임에도 불구 하고, 포르노그래피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많은 사람들이 레이와 같이 정의의 문제를 포르노그래피 논의의 중심에 둘 것 같지는 않다. 예를 들어 어떤 이들은 (우리가 이미 대표적 사례를 통해 지적할 수 있는) 포르노그래피가 어떤 기준에 의 해 포르노그래피로 되었는지 보다는 ‘성적 흥분을 목적으로 한 성적으로 노골적인 재현’(그것을 포르노그래피로 부르건 아니건) 정도의 성격을 갖는 그 대표적 사례들 의 도덕적이고 미적인 가치에 관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이러한 이 유로 그들이 정의의 문제를 우회하고 싶다면, 그들은 우선 자신이 포르노그래피로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포르노그래피와 같은 논쟁 적인 주제의 경우, 그 점에 주의하지 않는다면, 논쟁 자체를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 어버릴 오해가 생겨날 가능성이 있다. 이는 특히 포르노그래피가 무엇인지는 그것 의 부정적 가치를 언급하지 않고 답변될 수 없다는 입장들을 취할 때 따르는 위험 이다.

2. 포르노그래피의 무엇이 문제인가?: 부정적 가치

일군의 사람들은 포르노그래피의 경우 가치의 문제와 정의의 문제가 연계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즉, 가치중립적 정의가 오히려 포르노그래피의 본질을 놓치고 있다 는 것이다. 이들은 포르노그래피는 본질적으로 어떤 특별한 방식의 ‘나쁨’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대개 도덕적으로 부정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뜻하고, 비난받을 대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도덕적 비난의 논거들로는 불쾌감의 제공, 외설성(사회와 개인의 타락), 성폭력과의 인과적 연계, 여성 비하 혹은 반-여 성 프로파간다, 인간성에 대한 비하와 모욕 등이 거론된다.

이 중 전통적인 것이 ‘외설’ 이나 ‘음란’의 혐의이다. 외설적인 내용이란 그것을 접하는 이들을 저속하고 타락한 사람으로 만드는 경향을 가진 것들이라고 한다. 이 견해에 따르면 포르노그래피란 성을 외설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그 결과 ‘일반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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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정서에 불쾌감과 수치심을 불러일으키고, 접하는 이들을 타락시키며, 가 정과 결혼의 가치 같은 미풍양속에도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이것을 성 윤리에 보수적인 사람들의 견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인데, 이들은 대개 성적으로 노골적인 모든 것이 외설적이라고 생각하므로, 성적으로 노골적인 것이면 어느 것이나 곧 포 르노그래피라는 (유지하기 어려운) 견해조차도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성 이나 쾌락 일반에 대해 지나친 엄숙주의를 표방하지 않는 다면, 과연 이러한 등식 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앞서 본대로 모든 성적으로 노골적인 것이 곧 포르노그래 피는 아니며, 외설의 기준, 혹은 ‘성적 타락’의 기준은 매우 작위적이거나 상대적일 수 있으므로, 외설은 포르노그래피의 정의적 요소로서도 부적절하고, 포르노그래피 의 도덕적 문제점의 내용으로도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포르노그래피를 외설과 연 관하여 이해하려는 전통적인 접근에 대한 비판은 많이 개진된 바 있다.

포르노그래피가 무엇인지에 대한 답변을 그것의 부정적 가치와 필연적으로 연계 시키려는 사람들이 모두 외설이나 음란을 거론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여성주의자 들은, 포르노그래피의 부정적 가치는 그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가하는 해악에 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욱 심각하게, 사회적 소수자인 여성에게 가하는 해 악에서 온다고 본다. 이 입장에 서면 포르노그래피는 성적으로 노골적인 것들 중 여성에게 해악을 주는 것으로 정의될 수 있겠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것이 그 해악 의 내용일까? 가장 직접적으로는 포르노그래피가 여성에 대한 성적 폭행과 같은 실 정법상의 범죄를 증가시키는 원인이 된다고 주장할 수 있다. 또한 제작과정에서 참 여하는 여성에 대한 실제적인 인권침해의 문제도 거론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추 상적인 차원에서, 여성을 비열하고 비인격적인 존재로 묘사하는 것을 통해 남성 우 월의 성차별적인 생각을 전파하고 강화하는 것이 모든 포르노그래피가 갖는 일반적 인 해악이라는 주장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러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드워킨(A. Dworkin)과 맥키논(C. MacKinnon)은 여성이 단지 성적 대상인 것 만으로 묘사되거나 모욕이나 고통을 즐기고 성적 공격을 당할 때 쾌감을 느끼는 대 상으로 묘사되는 경우 등이 모두 포르노그래피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 정의는 일단 남성 동성애 포르노그래피를 제외시킨다는 점에서만 보더라도, 포괄적이지 못하다는 약점을 가진다. 또한 과연 포르노그래피가 이러한 해악을 끼 치는가에 대해서는 천착해보아야 할 측면이 없지 않다. 예를 들어, 포르노그래피와 성범죄 증가 간의 인과관계에 대해서는 상반된 경험적 통계자료가 존재한다. 하지 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적으로 노골적인 묘사들 중 일부는 최소한 분명 성차별적 인 관점과 내용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있음은 사실일 것 같다. 론지노(Longino 1980)를 비롯한 일부의 견해는 바로 그러한 것들만 포르노그래피라고 재정의함으 로써 가치의 문제와 정의의 문제에 모두 답하려 한다. 즉, 이들에 의하면 모든 포 르노그래피는 그 정의상 여성에 대한 해악이라는 도덕적 문제를 가진 것이 된다.

이는 우리가 관행적으로 포르노그래피라고 부르는 것의 일부만이 포르노그래피라 는 식의, 포르노그래피를 다시 규정하려는 시도이다. 사실 성적으로 노골적인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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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 중에는 최소한 성차별적인 내용과 관점을 가지지 않은 것이 있을 수 있는데, 론 지노도 그러한 가능성을 언급하며, 그들을 에로티카(erotica)라는 이름으로 부르길 원한다. 즉, 우리가 관행적으로 포르노그래피라고 부르는 것(예를 들어 위에서 언급 된 ‘내용-기능 정의’를 따를 때, 포르노그래피에 해당하는 것)이 사실은 포르노그래 피와 에로티카로 구분된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이렇게 본다면 론지노의 입장을 근 거로 한 ‘모든 포르노그래피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주장과 ‘내용-기능 정의’

를 근거로 한 ‘일부 포르노그래피만 도덕적 문제가 있다’는 주장은 아무런 모순 없 이 양립가능하다. 포르노그래피를 둘러 싼 논쟁이 결국은 정의의 문제가 부각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이다.

포르노그래피의 도덕적 문제점을 성차별에 관한 것으로 인식하는 한편, 성차별적 이지 않은 성적으로 노골적인 재현(그것을 성차별적이지 않은 포르노그래피로 부르 건, 아니면 다른 이름을 부여하건)의 존재를 인정하는 이러한 입장은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모든 이들이 이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내용-기능 정의’에 의해 포르노 그래피로 부를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여성에게 유해하거나 아니면 다른 어떤 방식으로 도덕적으로 비난 받을 소지가 있다는 견해를 취하는 경우도 있으며 (따라 서 이들은 에로티카 같은 것의 존재를 부인할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로, 소위 유 해하다고 하는 일부 포르노그래피의 존재도 인정하지 않는, 즉 도덕적으로 비난받 아야 할 포르노그래피는 없다는 입장도 있다. 후자는 제작과정에서 폭력과 인권 침 해가 없다면, 보려 하지 않았던 의사에 반하여 보게 된 경우를 제외하고, 포르노그 래피 그 자체는 도덕적으로 중립적이라는 입장을 취한다. 포르노그래피는 성적 환 상을 전개하기 위한 발판일 뿐이라는 것이다.

3. 포르노그래피를 막아야 하나?: 검열의 도덕적 위상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포르노그래피에 관한 찬반론에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윤 리적 차원이 개입되어있는데, 이 점은 자주 간과된다. 그 한 차원은 앞에서 본 바 와 같이 포르노그래피 자체의 도덕성에 관한 것이고 또 하나는 포르노그래피의 사 회적 허-불용, 즉 검열에 관한 문제이다. 즉, 우리는 포르노그래피는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할 것인가를 물을 수 있으며, 이와는 다른 질문으로 과연 검열이라는 수단을 통해 국가가 포르노그래피의 문제에 개입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정당한가를 물을 수 있다. 이 둘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만 엄연히 별개의 두 질문이다. 논 리적으로 한 질문의 답변이 자동적으로 다른 질문의 답변을 함축하지는 않는다. 흔 히 포르노그래피 논쟁의 가장 낯익은 부분은 후자, 즉 우리 사회에 그러한 것들을 허용할 것이냐 아니면 검열하고 규제할 것이냐를 놓고 벌어진다. 그리고 그 이유 로, 포르노그래피의 도덕적 문제점이 주로 거론된다. 혹은 포르노그래피의 도덕적 문제점을 인식하기만 하면 포르노그래피 규제는 거기에 당연히 함축되어 있는 것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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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생각되기도 한다. 물론 도덕적 문제가 있는 것은 검열해야할 좋은 이유가 될 것 이다. 그러나 그 연계가 자동적인 것은 아니다. 포르노그래피가 도덕적으로 비난받 아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받아들인다 해서, 포르노그래피는 검열되어야 할 논리적 이유는 없다. (같은 원리로, 포르노그래피 자체의 도덕성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더라도, 그 사실이 곧 그것이 사회적으로 용인되어야 함을 함축하는 것 은 아니다.) 어떤 사람이 공리주의적인 입장에 서서, 비록 포르노그래피 그 자체가 도덕적인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 해도 그것을 검열하는 것이 더 큰 사회악이라 는 인식을 가지고, ‘포르노그래피는 도덕적으로 비난 받아야함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으로 허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면, 거기에 논리적인 문제는 없다. 이러한 입 장은 단지 논리적 가능성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포르노그래피 검열에 반대하 는 이들이 실제로 차용해온 전략이다.

검열과 관련하여 주로 쟁점이 되는 것은 그것이 표현의 자유라는 또 다른 도덕 적, 정치적 가치의 구현과 상충된다는 것이다. 사상과 믿음, 표현과 언론에 대한 검 열은 자유주의 사회의 기본 원칙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간주된다. 개인은 독자성 과 자율성을 갖는다는 믿음에 근거한 자유주의는 국가나 권위가 개인의 가치와 취 향, 삶의 방식을 특정한 방식으로 추구하길 강요하거나 금지하는 것을 거부한다.

포르노그래피가 표현인 한 (물론 일반적인 포르노그래피를 가치있는 표현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그에 대한 검열은 그 자체로 우리가 가진 자유에 대한 침해로 간주 된다. 검열을 지지하는 논거가 무엇이 되건, 검열 혹은 검열의 남용에 대한 이러한 우려의 심각성은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검열을 지지하는 논거로 외 설을 비난하는 것과 같은 이유를 제시한다고 해보자. 혹은 사회가 일정 수준의 품 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자체의 도덕적 위상과는 상관없이, 성적으로 노골적인 재현이나 표현을 제한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해보자. 검열의 반대자도 이것의 문제 의식에는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자유주의 원칙이 지배적인 한, 만일 이것만이 문 제라면, 이는 등급제나 제한상영관제 같은 방식으로 포르노그래피의 공공노출을 제 한하는 방식으로 해결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검열을 도입해야 하는 논리로는 부족하 다고 생각할 것이다. 만일 범죄예방 차원에서 검열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편다면, 검열 반대자는 포르노그래피와 범죄간의 확정하기 힘든 인과관계를 거론하면서, 그 러한 불확정적인 자료로 인간의 매우 소중한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을 우려할 것이 다. 표현의 자유가 버티고 있는 한, 검열 옹호 쪽으로 저울추가 기울기는 쉽지 않 아 보인다.

하지만 과연 포르노그래피가 보호받아야 할 표현이기는 한가? 포르노그래피의 제 한에 국가가 개입하기를 원하는 측의 전략은 포르노그래피의 표현으로서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다. 사실 표현의 자유가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져야 하는 절대적 권리 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의 명예와 관계된 거짓을 유포하는 것, 근거 없는 저주나 증오의 표현 등은 예외적으로 제한 받을 수 있는 표현일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포르노그래피는 만일 그것이 표현이라 하더라도 표현의 자유에 의해 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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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지 않아도 되는 종류의 표현이라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론지노는 이 생각을 발 전시켜, 포르노그래피가 예를 들어, 여성이 폭력적인 성행위로부터 쾌를 느낀다는 식의 여성의 성적인 복지를 저해할 수 있는 거짓을 유포시키고 있다는 사실이 바로 포르노그래피를 검열하고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주장한다. 명예훼손에 해 당하는 포르노그래피는 표현의 자유와 충돌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론지노 식의 이해는 여성에 대한 해악을 인과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데에서 오는 문제를 해 결해 줄 수 있다. 가령, 포르노그래피가 여성에게 해악을 끼치기에 비난할 수 있다 는 주장은 통상 포르노그래피가 실제로 사람들에게 성차별적인 믿음을 심어주거나 고착시키며, 성차별적인 행위를 유발하는 등 인과적 효력을 가진다는 점을 입증해 야만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이 점을 증명하는 것은 반-포르노그래피주의자 들에게도 곤혹스러운 일이다. 론지노는 그러한 인과 효력이 없어도 된다고 생각한 다.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거짓말이 반드시 그것을 믿게 된 사람과 인과적으로 연계 되어야만 처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듯이, 거짓말 그 자체만으로도 규제할 정당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서, 포르노그래피는 주장이 아니므로, 동화나 우화 가 거짓인 이유 이상의, 명예훼손에 해당할 만한 거짓일 수가 없다는 반론도 존재 한다.

4. 포르노그래피도 예술일 수 있나?: 미학적 관심

포르노그래피 검열의 문제가 윤리적인 차원을 넘어서는 경우의 하나는 그것이 예 술의 이름으로 옹호되는 때일 것이다. 이러한 사례가 생각보다 흔하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성적으로 노골적인 (혹은, ‘음란한’) 작품들이 예술로 의도되었을 때를 포괄하여 생각한다면, 예를 들어 현대 미술가 쿤스(Jeff Koons)의 <Made in Heaven> 시리즈 같은 것들이 과연 예술일 수 있느냐를 묻는 것은, 현대에 와서 드 문 일도 아니고 아둔한 질문도 아니다. 나아가 예술이기만 하면 검열로부터 자유로 워야 하는지 아니면 예술이라 해도 검열할 수 있는지 등, 사회 속에서 예술의 기능 과 역할을 성찰하게 하는 의미있는 질문들을 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것은 순수하게 미학 이론적인 난제는 아닌 것 같다. 이론적으로만 본다면, 쿤스의 작품은 많은 이들의 비난과 회의에도 불구하고 예술 작품이며 이는 현재 우리가 가 진 관행에 따른 것, 즉 소위 ‘예술계의 결정사항’이다. 문제는 이것이 대다수에 의 해 인정되지 않을 경우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이다. 물론 다수의 취향에 의해 소 수의 자유로운 주장과 표현이 억압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우리가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는 이유 중 하나이며, 특히 예술에 있어서는 충격이나 상식의 거부를 통해 인간과 세계에 대한 새로운 지식과 통찰을 얻는 일이 가능하니, 비록 소수에 의해 서라도 예술적 가치와 의미가 의도된 작품을 다수의 취향에 반한다는 이유로 검열 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가장 바람직한 결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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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뜻은 아니며, 무엇이 가장 바람직한지는 우리가 사회적으로 어떤 합의에 도달 하느냐에 많은 부분 좌우된다.

미학 이론이 보다 궁금하게 여길만한 것은, 쿤스의 작품들이 과연 포르노그래피 이면서 동시에 예술작품일 수 있는지와 같은 질문이다. 성을 노골적으로 다루고 있 으나 포르노그래피의 전형적 형식을 벗어난 전위 예술 작품의 사례 - 예를 들어 워 홀의 <Blow Job> 같은 것-가 존재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문제는 포르 노그래피의 정의적 성질들, 혹은 전형적인 특징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예술작품을 만들 수 있느냐 이다. 손탁(Sontag 1969)은 분명 그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 에 따르면 포르노그래피적이라고 불러도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생각되면서도 그리 고 동시에 본격적인 문학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글들이 있다는 것이다. 손탁 의 예는 작자 미상의『O 양의 이야기(

Story of O

)』, 바타이유(G. Bataille)의 『눈 (目) 이야기(

Histoire de L'oeil

)』등을 포함한다.

사실 포르노그래피의 필요조건 중 하나로 ‘예술이 아닐 것’을 요구하지 않는 한, 어떤 것이 포르노그래피이면서 동시에 예술일 논리적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하 지만 포르노그래피는 아예 예술일 수 없거나, 예술이라 하더라도 그 가치는 매우 미미할 수밖에 없다는 것 역시 우리가 가진 지배적인 생각이다. 키에란(Kieran 2001)은 포르노그래피적 예술의 가능성을 옹호하면서, 포르노그래피가 예술적 가치 실현에 적대적이라는 고정 관념을 뒷받침하는 이유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그에 따르면, 그 하나는 성적 흥분이 최우선의 목적인 것은 예술 작품일 수 없다는 생각 이라고 한다. 하지만 종교화나 프로파간다에서도 볼 수 있듯이, 비-예술적 목적이 최우선이 되어도 예술적 가치가 공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키에란은 오늘 날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재현이 (TV 멜로드라마, 펄프 픽션 로맨스, 웨스턴, SF 판타지, ‘이발소 그림’ 등) 예술적 의도나 장점이 없기는 마찬가지라고 한다. 하지 만 이러한 장르들에서도 시간이 흐르면 예술적 가치를 지닌 작품들이 출현하는 것 처럼, 포르노그래피라는 장르에도 부도덕하다는 우리의 관념과 통제가 없다면 예술 적 가치를 실현하는 작품이 존재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정형화된 패턴의 극치를 보여주는 포르노그래피의 천편일률적 플롯조차도, 그 자체로는 예술 아님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정말로 어떤 것이 성적 흥분이라는 포르노그래피의 최우선 목적에 봉사하 면서 예술작품일 수 있을까? 비록 포르노그래피에 예술적 의도가 들어가 있다 해 도, 성적인 흥분을 위해서는 그것을 그렇게 감상하기 어려운 것은 아닐까? 포르노 그래피의 본질상, 성적인 흥분을 위해서는 인간의 주관성과 자율성이 무시되고 인 간, 특히 여성을 대체 가능하고 조종 가능하고, 여성 자신의 경험은 전혀 존중되지 않는 대상으로 볼 것이 요구된다는 가정은 그럴듯해 보인다. 키에란은 이것이 포르 노그래피적 관심에 대한 잘 못된 이해에서 기인 한 것이라 주장하고 있지만, 이 부 분에 대한 그의 논증이 충분한 것 같지는 않다. 그를 포함하여 많은 예술로서의 포 르노그래피 옹호자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위해 (음란이 아니라) 여성에 대한 해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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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한 포르노그래피의 도덕적 측면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는지가 명확하지 않은 것 이다.

예술이 인간과 세상에 관한 우리의 이해를 풍부하고 명료하게 하는 것이고, 성 (性)에 대한 이해도 역시 그 중요한 한 부분이라면, 그를 위해 노골적인 성이 드러 나는 방식을 택해야만 할 필요가 있는 경우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포르노그 래피를 만일 우리가 지금껏 보아온 바대로 이해한다면, 이는 단지 노골적인 성 표 현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에게 끼치는 해악에 주목할 경우, 포르노그래피가 유해한 것으로써 도덕적인 문제가 있다고 결론 날 확률은 매우 높다. 그렇다고 그 것이 검열이나 규제와 같은 정부의 개입을 정당화하기에 충분한지는 분명하지 않 다. 하지만 이는 도덕적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검열은 좀 더 숙고해야 한다는 입장 이지 도덕적 문제가 없기 때문에 검열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포르 노그래피의 도덕적 문제점이 명확해 질수록 그것과 병존한다는 예술적 가치의 옹호 는 부담스럽다. 월톤(Walton 1994)이 믿는 척하기를 근간으로 한 자신의 이론과 연 계하여 펼치고 있는 주장 중에는, 우리는 우리의 기본적인 도덕적 입장에 상충하는 것을 상상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즉 도덕적 결함으로 인해 작품이 미적으로 감상될 수 없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입장이 유지될 수 있다면, 포르노그래피적 예술 성립의 난점을 제기해 볼 흥미로운 근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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