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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기 이전의 한국고대시가와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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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기 이전의 한국고대시가와 신화

1. 한국 문화의 ‘고유성’에 관한 문제

※ 상고·고대문화(고유성) → 중세·근세문화(보편성) → 현대문화(보편성 안에서의 고유성) : 최치원의 <난랑비서(鸞郎碑序)> : ‘풍류(風流)’라는 이름의 국유현묘지도(國有玄妙之道) 소개.

① 37년 봄에 비로소 源花를 받들게 되었다. 처음에 君臣이 인재를 알지 못함을 유감으로 여겨 사람들을 끼리끼리 모으고 떼지어 놀게 하여 그 행실을 보아 擧用하려 하여 드디어 미녀 두 사람을 뽑았다. 하나는 南毛라 하고 하 나는 俊貞이라 하여 徒衆 300여 명을 모아 두 여자가 서로 어여쁨을 다투며 시기하여, 준정이 남모를 자기 집으 로 유인하여 억지로 술을 권하여 취하게 한 후, 이를 끌어다가 강물에 던져 죽여 버렸다. 준정도 이로 인해 사형 에 처하게 되니 徒衆은 화목을 잃어 해산되었다. 그 후 나라에서는 다시 외양이 아름다운 남자를 뽑아 곱게 단장 하여 이름을 花郎이라 하여 받들게 하니 徒衆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혹은 서로 道義를 닦고 혹은 서로 歌樂으로 즐거이 놀며 名山과 大川을 돌아다니어 멀리 가 보지 아니한 곳이 없었으니, 이로 인하여 그들 중에 나쁘고 나쁘 지 아니한 것을 알게 되어 그 중의 착한 자를 가려 조정에 추천하게 되었다.

② 그런 까닭에 金大問의 『花郎世記』에 말하기를, "賢佐[賢相]와 忠臣이 이로부터 솟아나고 良將과 勇卒이 이로 말 미암아 나왔다" 하였고,

③ 崔致遠의 <鸞郎碑序>에는, "우리 나라에 玄妙한 道가 있으니 風流라 이른다. 그 敎의 기원은 仙史에 자세히 실 려 있거니와, 실로 이는 三敎[佛·仙·孔]를 포함하고 중생을 교화한다. 그리하여 i)집에 들어오면 효도하고 나아가 면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魯司寇[孔子]의 主旨 그대로며, ii)또 그 함이 없는 일에 처하고 말없는 敎를 행하는 것 은 周柱史[老子]의 宗旨 그대로이며, iii)모든 악한 일을 하지 않고 착한 일만을 행함은 竺乾太子[釋迦]의 교화 그 대로라"고 하였고,

④ 唐의 令狐澄의 『新羅國記』에는 "귀인 자제 중의 어여쁜 자를 뽑아 분을 바르고 곱게 단장하여 이름을 花郎이라 하여 나라 사람이 다 높이 섬긴다"고 하였다.

- 삼국사기 권4. 신라본기 진흥왕. 이병도 역.

· 난랑비서 해독의 두 가지 관점

① 유·불·선 3교의 장점만을 나열하여 신라의 문화 수용 능력을 과장·과시한 내용.

- <난랑비서>의 내용은 역사적 사실과는 다르며, 실제 고유문화는 무속(巫俗)에 불과.

② 신라의 고유문화가 지닌 우수성을 3교의 특징에 유추하여 설명.

- ‘풍류’라는 명칭의 고유사상이 실재했으나, 현재 자료가 남아있지 않음.

그러나 ‘풍류’는 철학사상이라기보다 예술 작품의 분위기를 묘사하는 용어에 가까움.

· 한국 고대문화로서 ‘풍류’의 실체

① 화랑의 성격 분화 : 6C 후반 무사층[호국선;護國仙]과 예술가층[운상인;雲上人].

그때 文弩의 일파가 세종을 따라 지방에서 전공을 세웠는데 位를 얻지 못하여, 설원랑에게 불복하고 자립하여 一門을 스스로 세웠다. 그리하여 낭도들이 마침내 나뉘었다. 설원랑의 파는 정통이 자기들에게 있다고 했고, 문노 의 파는 淸議가 자기들에게 있다고 하며 서로 상하를 다투었다. 미실이 걱정을 하여 세종에게 화합하도록 했으나 이루지 못했는데 진흥왕이 죽었다. (중략)

설원랑의 낭도들은 鄕歌를 잘하고 淸遊를 즐겼다. 그러므로 국인들이 文徒를 가리켜 護國仙이라 했고 설도를 가 리켜 雲上人이라 했다. 골품이 있는 사람들은 설도를 많이 따랐고 초택草澤의 사람들은 문도를 많이 따랐다. 서로 의를 갈고 닦음을 주로 했다.

- 필사본 화랑세기(花郞世紀) 7세 설원랑(이종욱 역).

(2)

① 明年 壬午 5월 초 1일【一本에는 天授 元年이라 하나 잘못이다】에 海官波珍湌 朴夙淸이 아뢰되 東海中에 小山이 떠서 感恩寺로 향하여 오는데 물결을 따라 왕래한다 하였다. 왕이 이상히 여겨 日官 金春質【혹은 春日이라고 쓴 다】을 시켜 점을 치니 가로되 聖考가 지금 海龍이 되시어 三韓을 鎭護하시고 또 金公 庾信은 三十三天의 一子로 지금 하강하여 大臣이 되었다. 두 聖人이 덕을 같이하여 守城의 보배를 내주시려 하니, 만일 폐하가 해변에 가시 면 반드시 無價의 大寶를 얻으시리라 하였다.

② 왕이 기뻐하여 그달 7일에 利見臺에 行幸하여 浮山을 바라보고 사람을 보내어 살펴보니 산세가 龜頭와 같고 위에 는 한 줄기 대나무가 있는데, 낮에는 둘이 되고 밤에는 합하여 하나가 되었다【혹은 말하되 산도 대와 같이 晝夜 로 開合한다 하였다】. 사자가 돌아와 그대로 아뢰었다. 왕이 감은사에서 숙박하였는데, 이튿날 午時에 대가 合하 여 하나가 되매 천지가 진동하고 風雨가 일어 7일이나 어둡더니 그달 16일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바람이 자고 물 결이 평온하여졌다. 왕이 배를 타고 그 산에 들어가니, 용이 검은 玉帶를 받들고 와서 바치는지라

③ 왕이 영접하여 같이 앉고 물어가로되 이 산과 대가 혹 나누어지기도 하고 혹 합해지기도 하는 것이 무슨 까닭이냐.

용이 말하되 비유컨대 한 손으로 치면 소리가 없고 두 손으로 치면 소리가 나는 것과 같으니 대란 물건은 합한 후 에야 소리가 나는 법이라 聖王이 소리로써 天下를 다스릴 瑞徵이니 이 대를 취하여 저[笛]를 만들어 불면 천하가 화평할 것이다. 지금 왕의 先考가 海中大龍이 되고 庾信이 다시 천신이 되어 二聖이 同心하여 이 無價의 大寶를 내 어 나로 하여금 갖다 바치게 한 것이라 하였다.

④ 왕이 놀라고 기뻐하여 五色錦彩와 金玉을 주고 사자를 시켜 대를 베어가지고 바다에서 나오매, 산과 龍이 갑자기 보이지 아니하였다. 왕이 감은사에서 자고 17일에 祇林寺 서쪽 시냇가에 와서 수레를 멈추고 점심을 먹었다. 태자 理恭【즉 孝昭大王】이 대궐을 留守하고 있다가 이 소식을 듣고 말을 달려 와서 하례하며 서서히 살펴보고 아뢰기 를 이 玉帶의 여러 쪽이 다 眞龍입니다. 왕이 가로되 네가 어찌 아느냐. 태자 아뢰되 쪽 하나를 떼서 물에 넣어 보 소서 하였다. 이에 왼편 둘째 쪽을 떼서 시냇물에 넣으니 곧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고 그 땅은 못이 되었다. 인 하여 그 못을 龍淵이라 하였다. 왕이 돌아와서 그 대로 저를 만들어 月城 天尊庫에 두었는데, 이 저를 불면 적병이 물러가고 病이 낳고 가뭄에는 비가 오고 비올때는 개이며 바람은 가라앉고 물결도 평정하여졌다. 그래서 이 저를 이름하여 萬波息笛【譯者註=笛名이라기보다 원래 曲名으로 전하는 것을 신비화시키기 위한 조작이라고 보는 것이 좋겠다】이라 하고 국보로 지칭되었다. 효소대왕 때에 이르러 天授 四年 癸巳에 失禮郞이 生還한 奇異한 일로 인 하여 다시 萬萬波波息笛이라 이름하니 자세한 것은 그 傳記에 보인다.

- 삼국유사 권2 기이. 만파식적 (이병도 역).

③ 영재(永才)와 <우적가(遇賊歌)>의 가창 현장 : ‘운상원(雲上院)’의 역할.

僧 永才는 천성이 滑稽하여 재물에 매이지 않고 향가를 잘하였다. 만년에 장차 南岳에 은거하려고 하여 大峴嶺에 이르렀을 때 도적 60여 인을 만났다. 적이 장차 加害코자 하매 才는 그 칼날 앞에 조금도 두려워하는 빛이 없고 화 기롭게 대하였다. 적이 이상히 생각하여 그 이름을 물으니 永才라고 대답하였다. 賊이 평소에 그 이름을 들은지라 命 하여 노래를 짓게 하였다.

그 가사에 가로되 「내 마음에 모든 形骸를 모르려 하던 날 멀리 □□ 지나치고 이제란 숩〔藪=寺〕에 가고쇠다 오직 그르친 破戒僧을 두려워할 形骸에 또 돌아가노니, 이 칼을 지내고나면 좋은 날이 새리러니 아-오직 요맛 善은 새집이 안되니다」. 도적이 그 뜻에 감동하여 綾 二端을 주었다. 才가 웃고 사례하여 가로되 「財賄가 지옥에 가는 근본임을 알아 장차 窮山에 숨어 일생을 보내려고 하거든 어찌 감히 이것을 받으리요」하고 땅에 던졌다.

도적이 또 그 말에 감동되어 모두 그 가졌던 칼과 창을 버리고 머리를 깎고 才의 徒弟가 되어 같이 智異山에 숨어 다시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才의 나이 90이니 元聖大王 때이었다. 讚하노니 「지팡이 집고 산에 돌아가니 그 뜻은 더욱 깊은데 비단 구슬이 어찌 마음을 다스리랴. 綠林의 君子가 서로 膳物을 하였으나, 지옥은 다름아닌 寸金이 根因 이다」.

- 삼국유사 권6 피은. 영재우적 (이병도 역).

(3)

2. 동아시아 신화로서 건국신화와 오늘날의 관점에서 한국신화의 의의 1) 한국신화의 기층

·미시나 아키히데(三品昌英)의 문화권역설

- 한국민족 = 북방계(퉁구스, 예맥족) + 남방계(한족)

- 한국신화 = 수조신화(獸祖神話; 북방) + 감응신화(感應神話; 만주·몽골) + 난생신화(卵生 神話; 남방계통) + 방주표류신화(方舟漂流神話; 남방 해양계통).

* 문제점 : 한국문화의 남방기원설을 통해 일본으로부터의 영향·파생관계를 왜곡·과장.

단일민족으로서 한국민의 정체성을 손상시키려는 정치적 의도.

한국의 난생신화·방주표류신화의 기원은 남방이 아닌 캄챠카 반도에 있었음.

(석탈해의 출생지 : “왜국으로부터 동북 1천여 리에 있었다.”) ·김화경(한국신화의 원류, 2005)의 관점

: 한국신화의 발생을 여성의 노동에 의한 농경문화의 형성과 긴밀하게 연관시키고 있음.

① 출현신화 : 땅 속[농토=어머니]에서 사람이 출현하는 모티프.

예) 제주도 삼성신화(三姓神話), 동부여 금와왕[‘다산’을 상징하는 개구리].

② 곡모신 신화 : 새를 부리는 혈거신(穴居神=동물신) 신모(神母)가 곡식을 아들에게 주어 정 착시키는 모티프.

예) 유화부인이 오곡의 씨앗을 비둘기를 통해 주몽에게 줌(<동명신화>), 곡모신으로서 관 음보살의 형상(삼국유사 탑상 제4 관음 정취 조신).

③ 시체 화생 신화 : 시체[특히 여성의 시체]로부터 음식이 생겨났다는 모티프.

예) 5개의 시체로 갈라져 죽은 박혁거세, 제주도 설문대할망.

2) 한국신화와 동아시아 신화

·아시아 지역의 일반적인 신화 형태

- 하늘과 연관된 신격으로서 시조 부(모)가 등장하여 수조신(獸祖神) 관념 혹은 토테미즘과 연관 된 지상의 인격과 혼인하여 부족을 이룬 후 그 부족 중에 영웅적인 한 인물이 나라를 세워 왕이 되는 것.

- 신화의 구조 : 세계의 기원 ▶ 부족 시조의 기원 ▶ 국가의 기원

* 단군신화 : (환인) (환웅;追尊王) (단군)

* 동명신화 : (천제) (해모수) (동명왕)

3. 신화적 세계관에서 가요(歌謠)의 역할 1) <구지가>·<해가>의 주술성

龜何龜何 거북아 거북아 首其現也 머리를 내어라 若不現也 내놓지 않으면

燔灼而喫也 구워서 먹으리

(4)

후한 세조 광무제(A.D 42년)때, 가락국의 서울 김해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천지가 개벽한 후로 아직까지 나라의 이름도 없고 군신의 칭호도 없었다. 다만 구간(九干:가락국 아홉 마을 추장)이 있어 이들이 추장이 되어 백성을 거느 리니 그 수효가 일백 호, 칠만 오천 인이었다. 사람들은 산과 들에 모여 살면서 우물을 파서 물을 마시고, 밭을 일구 어 곡식을 심으면서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마을 북쪽에 있는 구지봉에서 마치 누군가를 부르는 듯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을 사람 3백여 명이 그 곳에 모이니, 사람의소리가 나는 것 같은데 그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또 다시 소리만 들리는데, "여기 에 사람이 있느냐?"라는 말이었다. 그 마을 구간들은 "우리들이 여기 와 있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또 이르 기를 "내가 와 있는 곳이 어디냐?"하고 물으니, "여기는 구지봉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다시 이르기를, "하늘이 내게 명하시기를 이곳에 나라를 세우고 너희들의 임금이 되라 하시어 여기에 온 것이니, 너희는 이 봉우리의 흙을 파면서 노래(구지가)를 부르며 춤을 추어라. 그러면 곧 하늘로부터 대왕을 맞게 될 것이니, 너희들은 매우 기뻐하며 즐거워 하게 될 것이다." 그 말에 따라, 마을 구간들과 사람들이 모두 함께 기뻐하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얼마후, 보랏빛 줄이 하늘에서 내려와 땅에 닿았다. 줄 끝을 살펴보니 붉은 보자기에 금합자(金合子)가 싸여 있었 다. 그것을 열어 보니 해처럼 둥근 황금알 여섯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것을 그대로 두었다가 이튿날 새벽에 다시 열어 보니 황금알 여섯 개가 여섯 동자로 나타났다. 그들은 나날이 성장해 10여 일이 지나자 키가 9척이나 되 었다. 그들은 모두 용모가 빼어났으며, 그 달 보름달에 즉위하였는데, 세상에 처음 나왔다 하여 왕의 이름을 '首露'라 하고 나라를 '대가락' 또는 '가야국'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여섯 사람이 각각 가야의 왕이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여섯 가야국인 것이다.

龜乎龜乎出水路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놓아라

掠人婦女罪何極 남의 婦女 빼앗은 죄 얼마나 큰가

汝若悖逆不出獻 너 만약 거스르고 바치지 않는다면

入網捕掠燔之喫 그물로 잡아 구워 먹으리라

·주술의 종류 : 유감주술, 감염주술, 구속주술.

·‘구속주술(拘束呪術)’의 원리에 따른 위협의 어조 ▶ <원왕생가>·<도천수관음가>.

- 화자가 ‘부르면’ 강림하는 신의 형상 : 한국 무속의 독특한 관념.

- 왕이 천손(天孫)이 아닌 ‘신(神)’ 그 자체로서 존숭되기 시작함.

(따라서 ‘혼인(부모 세대)→건국(자식 세대)’이 아닌 ‘건국→혼인(단일세대)’의 모습).

·수로부인 전승과 고대인의 미의식 : ‘美’ 특히 여성적 아름다움에 주술적 권능이 깃들었다는 관념.

- 화랑(花郞)과 영육일체관(靈肉一體觀). 서동설화(薯童說話)와 미륵사 창건.

2) <공무도하가>·<황조가>의 서정성

公無渡河 님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公竟渡河 님이여, 기어이 물을 건너시네

墮河而死 물에 빠져 돌아가시니

當奈公何 이제 님을 어이 할까나

翩翩黃鳥 펄펄 나는 저 꾀꼬리

雌雄相依 암수 서로 정답구나

念我之獨 외로울사 이내 몸은

誰其與歸 뉘와 더불어 돌아가랴

(5)

공후인은 조선(朝鮮)의 진졸(津卒) 곽리자고(涇里子高)의 아내 여옥(麗玉)이 지은 것이다. 자고(子高)가 새벽에 일 어나 배를 저어 가는데, 머리가 흰 미친 사람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호리병을 들고 어지러이 물을 건너고 있었다. 그 의 아내가 뒤쫓아 외치며 막았으나, 다다르기도 전에 그 사람은 결국 물에 빠져 죽었다. 이에 그의 아내는 공후(謙 隷)를 타며 ‘공무도하(公無渡河)’의 노래를 지으니, 그 소리는 심히 구슬펐다. 그의 아내는 노래가 끝나자 스스로 몸 을 물에 던져 죽었다. 자고가 돌아와 아내 여옥(麗玉)에게 그 광경을 이야기하고 노래를 들려주니, 여옥이 슬퍼하며, 곧 공후로 그 소리를 본받아 타니, 듣는 자가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여옥은 그 소리를 이웃 여자 여용(麗 容)에게 전하니 일컬어 공후인이라 한다.

- 한치윤, 해동역사.

10월에 왕비 松氏가 돌아갔다. 왕이 다시 두 여자를 취하여 繼室을 삼으니, 하나는 禾姬란 이로 鶻川人의 딸이요, 하나는 雉姬란 이로 漢人의 딸이었다. 두 여자가 사랑다툼으로 서로 불화하므로, 왕이 凉谷이란 곳에 東西 두 궁을 짓고 그들을 각각 두었다. 그 후 왕이 箕山이란 곳에서 田獵을 행하고 7일 동안 돌아오지 아니하였는데, 두 여자 사 이에 싸움이 일어나, 화희는 치희를 꾸짖어 말하기를, "너는 漢家의 婢妾으로 무례함이 어찌 그리 심하냐?"고 하니, 치희는 부끄럽고 분하여 도망하였다. 왕이 듣고 말을 채찍질하여 쫓아갔으나 치희는 노하여 돌아오지 아니하였다. ○ 왕이 어느 날 나무 밑에서 쉬다가 黃鳥(황조:꾀꼬리)가 모여드는 것을 보고 느낀 바 있어 노래하기를, "꾀꼬리는 오 락가락, 암놈 수놈 놀건마는, 외로운 이내 마음 누구와 더불어 돌아갈거나." 하였다.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유리왕(이병도 역).

·후대에 지속되는 측면 :

- 상대방과의 괴리(사별·이별)로 인한 정서의 하강·쇠락과 그로 인한 한탄[何·誰]이 주조임.

: 신화시대의 주·객체 사이의 조화가 깨어진 불안감을 종교가 극복해주지 못하는 상황 - 정해진 문맥(context)에 따라 작품의 성격이 규정됨.

: <황조가>의 경우 시적 화자를 유리왕의 실연 또는 짝짓기 제의 등의 맥락에 따라 다 양하게 이해할 수 있음.

·후대와는 구별되는 측면 :

- 과거의 사건으로 인한 슬픔의 정서에 깊이 침잠하고, 슬픔을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가 없음.

- 후대의 향가에서 보이는 슬픔의 초월, 종교적 승화와는 구별되는 모습.

4. 향가 이전 삼국문학의 편린(片鱗) (1) 고구려의 문학

① 향악의 발전 : 악령(樂令)의 반포와 왕산악의 칠현금 계량.

② 시가 : <황조가>, <내원성>(오랑캐의 귀순), <연양>(비장한 노동의 각오), <명주>(애정·정절 주제).

“나무가 불을 도우면 스스로는 해치는 화를 불러오지만, 긴요하게 쓰이는 것이나 다행으로 여겨 재가 되어 다 없어질 망정 사양하지 않으리.” (<연양>)

③ 설화 : 호동왕자설화, 견우직녀설화, 미천왕설화, 온달설화, 고구려 멸망설화.

④ 금석문 : <광개토왕릉비문>(고대 한국에서 처음 등장한 ‘천하’ 관념), <모두루묘비명> 등.

⑤ 한문학 : <여수장우중문시> 등.

(6)

1) 향악의 발전 : 백제 사람 미마지(味摩之)가 기악(伎樂)을 일본에 전함(13C 교훈초 수록).

2) 시가 : <선운산>, <무등산>, <방등산>, <정읍>, <지리산>, <산유화>, <숙세가(가칭)>.

“전생에 업보를 맺어 한 곳에 함께 태어났네. 옳고 그름을 물어 어쩌리! 하늘을 우러러 아뢸 수밖에.”

(宿世結業 同生一處 是非相問 上拜白來).

- <宿世歌> : 능산리 고분군 출토 백제목간에서 나온 현존 최고(最古)의 이두 시가.

① <禪雲山> : 장사 사람이 부역을 나갔는데, 기한이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아내가 그리워하여 선운산 에 올라가 바라보며 부른 것이다.

② <無等山> : 무등산은 광주의 진산이며, 광주는 전라도의 큰 고을이다. 이 산에 성(신라 말기 축조된 성으로 밝혀 짐)을 쌓아서 백성들이 의지하며 편안하게 여겼으니 이를 기뻐하여 노래한 것이다.

③ <方等山> : 방등산은 나주의 속현이며 장성의 경계에 있다. 신라 말에 도적떼가 크게 일어나서 이 산을 근거지 로 삼았다. 양가의 자녀들이 납치되어 끌려온 바가 많았는데 장일현에 사는 여자가 이 노래를 지어 그 남편이 즉시 와서 구해주지 않음을 풍자한 것이다.

④ <智異山> : 구례현 사람의 딸이 얼굴이 고왔고 지리산에 살았는데 집은 가난했으나 부녀자의 도리를 다했다. 백 제왕이 그 미모를 듣고는 거두어 들이고자 하였으나 여자가 이 노래를 지어 죽기를 맹세하고 따르지 않았다. (≒ 한산기의 <도미설화>)

⑤ <山有花歌> : 산유화가 한 편은 남녀상열지사인데, 음조가 처량하여 옥수후정화와 짝을 이룰 만하다고 했다. (이 상은 백제가곡인데 아마도 지금 많이 전해지지 않는 것인가 한다.)

- 삼국사기 악지 백제속악.

~ 백제 당대의 것이라기보다 신라시대 ‘백제문화권’에서 향유된 것들임.

이밖에 일본의 만엽집(萬葉集)에 145명의 백제계 도래인의 작품이 남아 있음.

3) 설화 : 곰나루전설, 서동설화, 견훤설화, 백제 멸망설화, 도미설화(신라인에 의한 백제 폄하).

4) 금석문 : <칠지도명>, <무녕왕릉동경명>, <사택지적비명>, <부여융묘지명> 등.

5) 한문학 : 4·6변려문 형식의 외교문서 수종(數種).

※ 백제문학의 특징(조재훈, 백제의 문화와 생활, 충청남도 역사문화연구원, 2007.) : ‘섬세한 정서’와 ‘현실적 윤리성’으로 정리됨.

① 가난한 피지배층 즉 서민이 주체를 이루고 있음.

② 여인들 그것도 남편이 있는 부녀자가 중심에 있음. → 고려속요에 계승되는 경향.

③ 사회적 불만을 담고 있음.

④ 남녀의 정사(情事)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

⑤ 전파성과 지속성 : <산유화>는 상당히 여러 지역에, <정읍사>는 매우 오래도록 전승되고 있음.

⑥ 부조리한 권력에 대한 저항성 : 도미설화, 지리산녀.

⑦ 산의 이름을 딴 가요의 명칭.

⑧ 지역적으로 고른 분포 : 부여·공주·정읍·고창·장성·남원·광주 등.

(7)

3) 신라의 문학

1) 부전가요(不傳歌謠) : 정치적 맥락에서 이루어진 작품이 다수 남아 있음.

① 유리왕 <도솔가(兜率歌)> : “가악(歌樂)의 시작이다.” (삼국사기). ~ 예악 혹은 악장의 의미.

“차사사뇌격(嗟辭詞腦格)을 갖추었다.” (삼국유사).

② 유리왕 <회소곡(會蘇曲)> : 육부의 한가위 길쌈 경쟁에서 패배자가 부른 노래.

③ 유리왕 <회악(會樂)>, <신열악(辛熱樂)>.

④ 내해왕 <물계자가(勿稽子歌)> : 신분 때문에 군공(軍功)을 포상받지 못한 물계자의 자탄.

⑤ 눌지왕 <우식곡(憂息曲)> : 박제상의 노력으로 돌아온 아우를 환영한 눌지왕의 노래.

⑥ 눌지왕 <치술령곡> : 박제상의 아내가 남편을 그리워하여 부른 노래.

→ 6세기말 진흥왕대에 우륵을 맞아들여 가악의 큰 진전을 이룸.

2) 설화 : 신라수이전(新羅殊異傳) 일문.

① 아도 : 승려 아도의 출생과 불교적 행적, 죽음을 전언하는 이야기

② 원광 : 늙은 여우 요괴가 원광의 중국 유학을 도와 주고 원광이 여우의 왕생을 구제한다는 내용

③ 보개 : 보개라는 여인이 관음보살에게 발원한 결과 장사 갔다 조난당한 아들이 돌아왔다는 이야기

④ 영오세오 : 영오와 세오는 부부가 일본으로 떠나 신라의 해와 달이 빛을 잃자, 세오가 짠 비단으로 지내 빛을 되 돌린다는 이야기

⑤ 죽통미녀 : 김유신이 서울로 가는 길에 이상한 나그네를 만나 함께 남산에 놀러갔는데, 나그네가 죽통 속의 두 여 자를 김유신에게 소개하고는 사라졌다는 이야기

⑥ 노웅화구 : 김유신의 집을 찾은 한 노인에게 신술이 예전 같냐고 묻자 노인은 여러 짐승으로 변하다 마지막으로 개로 변하여 나가버렸다는 이야기

⑦ 석탈해 : 알로 태어나 궤짝에 담겨 세상에 버려진 탈해가 신라로 와서 왕의 사위가 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

⑧ 선덕여왕 : 당태종이 모란씨와 꽃을 그림을 보내오자 선덕여왕은 그림을 보고 꽃이 이쁘기는 하나 향기는 없을 것이라고 했는데, 씨를 심고 꽃이 피기를 기다려 보니 과연 향기가 없었다는 이야기

⑨ 최치원(선녀홍대) : 최치원이 초현관에 놀러 갔다가 요절하여 죽은 장씨의 두 딸을 만나 시를 주고 받고 사랑을 나누다 헤어진 하루 밤의 일을 서술한 이야기

⑩ 김현감호(호원) : 김현이 우연히 호랑이 낭자와 연분을 맺었다가 그녀의 도움으로 발신하는 내용

⑪ 수삽석납 : 부모의 반대로 첩과 만나지 못하여 애를 태우다 죽은 최항이 장사지내기 전날 밤 첩을 찾아가 부모가 허락했다며 집앞으로 데려간다. 날이 밝은 후 첩의 말을 듣고 사람들이 관을 열자 최항이 다시 살아났다는 이야기

⑫ 심화요탑 : 활리역 사람 지귀가 선덕여왕을 사모하여 초췌해졌다. 왕이 절에 갔다가 자신을 기다리다 잠든 지귀의 가슴에 팔찌를 빼어 놓았는데, 잠에서 깬 지귀가 슬퍼하다 마음에서 불이 일어나 불귀신이 되었다는 내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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