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제3편 근대 과학의 발전

N/A
N/A
Protected

Academic year: 2022

Share "제3편 근대 과학의 발전"

Copied!
52
0
0

로드 중.... (전체 텍스트 보기)

전체 글

(1)

제3편 근대 과학의 발전

14.뉴튼과 뉴튼주의 -서론

일대기가 씌어진다는 것을 정당화할 필요가 없을 정도의 생을 산 사람은 드물다.

아이작 뉴튼은 역사상 가장 훌륭한 과학자중의 한사람이었으며, 많은 사람들의 의견에 의하면 그들 중에서서도 최고의 과학자이다. 그는 현대 과학을 탄생시킨 지적 전환기였던 16세기에서 17세기에 걸친 과학혁명의 정점에 있었으며, 이 시기의 대표자로 20세기의 세계를 틀지우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아이작 뉴튼은 17~18세기를 살면서

<뉴튼역학>으로 대표되는 과학 혁명을 주도한 위대한 인물이다. 뉴튼은 물리학자․ 수학자․ 천문학자. 자연철학자로서, 막대한 신학․ 연금술의 논고․ 유고도 있기 때문에 신학자 또는 최후의 연금술사로 불리기도 한다. 여기서 뉴튼의 전반적인 일생에 대해 살펴보고, 그의 업적과 현대 사회에 미치는 영향, 또, 그의 일화에서 뉴튼의 성품에 대해 알아보고, 사후 뉴튼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평을 살펴보겠다. 마지막으로, 본문을 바탕으로 우리의 생활들을 반성해보고, 앞으로 뉴튼의 삶과 견주어 앞으로 우리의 행동에 뉴튼식 사고와 관찰력과 집중력을 본받아보고자 한다. 또한 한가하게 사과나무 아래에 있지 않고 세상의 원리를 찾아 과학, 경제학, 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늘 연구했던 천재 과학자 뉴튼을 더 가깝게 인간적인 뉴튼으로 보고싶다. 뉴튼의 일생을 그의 생활의 변화, 즉 환경의 변화에 따라 유년기와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로 나누어 보았다.

장년기와 노년기의 뉴튼에 대해서는 뉴튼의 업적부분과 상당부분 겹치는 내용이므로 간단히 정리했고, 유년기와 청년기와는 달리 장년기와 노년기는 인터넷상에 너무나 잘 나와있어서 인용한구절이 많이 있음을 밝혀둔다.

-본론

1. 뉴튼의 일생

(2)

◦ 유년기

아이작 뉴튼은 1642년 크리스마스 아침에, 링컨셔의 그랜섬에서 남쪽으로 12킬로미터 떨어진 콜스터워드 마을 근처 울즈소프영주의 저택에서 태어났다. 이 해에 갈릴레오(뉴튼의 과학적 경력의 대부분은 이 사람이 발견한 것들에 직접적으로 의존하게 된다)가 사망했기 때문에, 1642년은 상당한 의미를 지닌 해이다. 그가 태어나기 전에는, 뉴튼 가는 알려진 집안도 아니었고 집안에 교육을 받은 사람도 없었다. 그럼에도 뉴튼이 탄생하기 전까지 이 집안이 그 세기(17세기)동안 계속해서 경제적으로 성장했다는 사실(뉴튼과 그의 사후,뉴튼을 연구하던 사람들에의해 밝혀짐)로 볼 때, 이들이 근면했을 뿐 아니라 노력을 헛되게 하지 않을 만큼의 지혜도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뉴튼이 태어나기 3개월 전에 그의 아버지 아이작 뉴튼1세는 방대한 토지와 재산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다. 이 아이작 뉴튼 1세의 유일한 아이인 유복자는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이작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미 아버지를 잃은 데다가, 미숙아 였던 이 아기는 너무 작아서 누구도 이 아기가 살아남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그의 목숨이 적어도 일주일 동안은 어찌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어서 1643년 1월 1일이 되어서야 세례를 받았다. 뉴튼이 세 살 되던해 막대한 재산가이며 이웃 마을의 교구 목사인 바나바스 스미스라는 사람과 뉴튼의 어머니가 재혼하게 되었다. 그로인해 많은 재산이 생겨나게 됬지만, 어린 뉴튼은 어머니와 떨어져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함께 울즈소프에 스미스 목사가 지어준 집에 남겨졌다. 아버지 없는 세 살짜리 사내아이가 어머니마저 잃는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입는 사건일 수밖에 없다. 물론 어머니 역할을 대신 할 외할머니는 있었지만, 그가 외할머니에 대해 조금도 애정 어린 추억을 간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는 외할머니의 죽음에 조차 무심했다. 더 중요한 것은 외할아버지이다. 뉴튼의 어느 기록에도 그에 대한 단 한마디의 언급도 없었을뿐더러 외할아버지의 유언장에서 뉴튼을 완전히 빼놓았다는 사실도 알려져 있다. 앞으로 보게 되겟지만, 뉴튼은 성격이 비틀린 사람으로, 최소한 중년이 될 때까지는 언제난 정신병이 경계를 넘나들던, 불안정하고 신경증적인 셩격의 소유자였다. 단순히 어머니가 세 살때

(3)

재혼하여 떠나버렸다는 사실과, 아버지가 없는 유복자로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뉴튼의 성격의 원인을 찾아서는 안될 것이다. 뉴튼의 성격은 그러한 상황에 미운털이 밝힌 아이로 대하는 주위의 반응에 비롯해 상당히 어긋났을 것이다. 여기서, 사람의 가정환경의 중요성과 그것이 그 사람의 인격화에 얼마나 큰 비중을 주는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1653년 8월 바나바스 스미스 목사가 사망하자, 뉴튼의 어머니는 울즈소프로 돌아왔다. 그러나 가문이 다른 남동생 한 명과 두 명의 여동생이 함께 있었고, 여동생 중 한 명은 채 돌도 지나지 않았으며, 다른 한명은 두 살이었다. 결국 어머니의 관심이 주로 이 두명에게 쏠릴 수밖에 없었고, 뉴튼은 이들과 어머니의 관심을 나눠가져야 했다. 그로부터 2년이 채 안 되어 아이작은 그랜섬에 있는 공립 중학교로 보내졌다. 그의 나의 열두 살 때였다. 보통의 평범한 교육을 받았을 거라 생각되는 이시기는 뉴튼에게 매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후 몇 년동안 늘상 접해야 했던 수학서적, 그이 자연철학의 출처가 되었던 대부분의 책들과 마찬가지로 예외 없이 라틴어로 씌어진 것이엇는데, 그는 여기서 라틴어를 배웠기 때문이다. 이섬에서 뉴튼은 처음엔 공부를 잘 하지 못했다. 또한 뉴튼은 조부모 이외의 사람들로부터 고립된 상태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다른아이들과 달랐으며 따라서 그가 이들과 사이 좋게 지내기힘들었다. 어느정도 자리가 잡혀가자 그는 그 학교에서 일등으로 부상하였다. 또한 여러 가지 물건을 만들어 사람들을 놀래켰다.

한참 게임에 열중할 나이의 뉴튼은 천재성을 발휘해 많은 기계장치를 만들어 냈다.

1659년 말에 뉴튼의 어머니는 재산을 관리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그를 울즈소프의 집으로 불러들였다. 하지만, 뉴튼은 이시기를 매우견디기 힘들어 했다. 그랜섬에서 그는 배움이라는 것이 얼마나 달콤한 것인지를 밧보기 시작했기에 그의 머릿속은 항상 다른 생각 뿐이었다.

양을 지키라고 내보내면, 그는 상사식과 하사식(물을 바퀴앞쪽으로 가게하는 방식)의 물방아 모형을 만들어 댐과 수문과 함께 개천에 설치하여 그동안 양을 잃어버리는등 말썽만 피우게 된다. 전혀 집안일에 관심이 없자, 예전부터 뉴튼의 천재성을 알고있던

(4)

어머니의 외삼촌과 교장선생이 어머니에게 천재를 썩히지 말라는 충고와 다시 학교로 보내라는 권유로 뉴튼은 1660년에 다시 학교로 돌아오게 된다.

◦ 청년기

1661년 6월초에 뉴튼은 켐브리지로 출발했다. 그의 인생에서 이 이상의 분수령은 없었다. 그 이후 18년 동안 전염병이 돌았던 시절에 있었던 두 번의 오랜 체류를 포함해 이따금씩 울즈소프로 돌아오는 일이 있었지만, 정신적으로 시골생활로부터 완전히 떠난 것이다. 뉴튼은 즉시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허가를 받았고, 요즘의 근로 장학생과 같은 신분의 학생이었는데, 장차 장원의 영주가 될 뉴튼이 왜 그렇게 공부를 했을까 하는 아이러니가 생긴다. 뉴튼 사후 그의 행적을 조사했던 이들에 의하면, 우선 뉴튼을 계속 교육시키지 않으려 했고,그의 어머니가 경제적으로 충분히 여유가 있었음에도 아들에게 들어갈 대학비용을 아까워했다고 한다. 그래서 뉴튼은 다른 자비 학생들의 심부름을 대신해주는 등, 일을 하면서 학교에 다녀야만 했다. 다른 한편으로, 일상 생활에서뿐 아니라 공부에서도 어려움이 있었다. 1661년경에 와서는, 거의 한세기 전에 만들어진 켐브리지의 공식 교과 과정은 붕괴의 제 2단계를 맞고 있었다. 4세기 전에 만들어진 아리스토텔레스 중심의 주형으로부터 주조된 켐브리지의 학풍은, 이 틀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 주형은 최첨단의 유럽 철학을 구체화한 것이었다. 그러나 1661년에 이르러 유럽 철학은 크게 변화했고 학문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주의는 지적인 정체 상태의 표현으로 부분적으로는 하나의 규범으로서 법제화된 교과 과정의 법적 명령에 의해서, 또 부분적으로는 이 시스템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이 교과 과정을 지속시키려는 비상한 관심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었다. 지적인 활기는 이미 오래전에 떠나버렸다. 따라서 켐브리지 대학은 뉴튼을 새로운 철학으로 이끄는데 거의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 뉴튼은 데카르트등이 쓴 무수히 많은 다른 서적들을 탐독했다.

그는 45개 소제목을 만들어 그 아래에 독서를 통해 얻은 것들을 정리 하였는데, 물질,

(5)

장소, 시간, 운동의 성질과 같은 일반적인 주제에서 시작하여 우주의 질서로 이어지고, 다음으로 희박함, 유동성, 부드러움과 같은 수많은 촉각적 성질들이 등장하며, 격렬한 운동, 이어서 초자연적 성질들, 빛, 색깔, 시각, 감각 일반,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중 일부는 최초의 리스트에서 등장하지 않았던 세부적인 주제들로 끝을 맺는다. 이것은 훗날의 뉴튼이 남기게 될 과학사 업적의 중요한 소재들이 된 것이다. 뉴튼은 열심히 공부했다. 이러한 분야에서 안정된 결실을 맺기 위해서, 그는 캠브리지에서 안정된 자리를 획득해야만 했다. 뉴튼이 관심있는 것은 캠브리지대학에서 가르치는 아리스토텔레스학파의 자연학이 아니었지만, 뉴튼은 공부해서 어려운 장학생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근로장학생 생활을 그만두고, 아무런 제약없이 연구를 계속할 수 있다는 보장을 받았다. 또 그가 연구원 자격을 얻는다면 이는 무제한으로 연장될수 있었고, 그는 그가 찾아낸 분야의 연구에 완전히 몰두할 수 있었다. 초창기의 망설임은 사라지고 이를 대신하여 열정적으로 연구하는 뭔가에 홀린 듯한 남자의 모습이 나타나게 되었다. 1665년 여름 캠브리지를 위시한 영국의 많은 지방에 재난이 닥쳤다. 흑사병이 퍼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뉴튼은 울즈소프에 돌아갔다. 울즈소프에 있던 약 2년의 시간동안 많은 연구를 하게 된다. 이 시간들은 뉴튼의 과학적 기초를 세우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1667년에 다시 대학에 돌아온 뉴튼은 연구원으로 선발됨으로서 앞길은 확실해 졌고, 대학 공동체에서 영구적으로 멤버 자격을 부여받았다. 아홉달 뒤엔 석사 학위를 받음으로 자동으로 상급 연구원지위로 승진하게 된다. 다시 1669년에 교수직을 받아 14년간 강의를 하였다.

ο 장년기. 노년기

1669년 케임브리지대학에서의 최초의 강의도 광학이었으며, 초기 연구는 광학분야에서 두드러졌다. 광학에 대해서는 이미 울즈소프 시절부터 스스로 수집․ 정비한 실험기구를 이용해 빛의 분산현상을 관찰하였으며, 특히 굴절률과의 관계에 대하여 세밀히 조사하였다. 한편 망원경 제작도 연구, 굴절광은 스펙트럼을 만들지만, 반사광은 그렇지

(6)

않다는 사실을 기초로, 반사식이 수차와 효율면에서 한층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아내어 1668년 뉴튼식 반사망원경을 제작했다. 이 망원경은 천체관측 등에 크게 공헌하여 이 공적으로 1672년 왕립협회회원으로 추천되었다. 그 해에 《빛과 색의 신이론》이라는 연구서를 협회에 제출하였는데, 그 내용은 백색광이 7색의 복합이라는 사실, 단색이 존재한다는 사실, 생리적 색과 물리적 색의 구별, 색과 굴절률과의 관련 등을 논한 것이었다. 1675년 박막의 간섭현상인 뉴튼의 원무늬 를 발견하였으며, 빛의 성질에 관한 연구로 광학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고, 《광학》(1704)을 저술했다. 수학에서는 1665년 이항정리의 연구를 시작으로, 무한급수로 진전하여 1666년 유분법, 즉 플럭션법을 발견하고, 이것을 구적 및 접선 문제에 응용하였다.

1676년 그와 동일한 미분법을 발견한 라이프니츠와 우선권 논쟁이 격렬하게 벌어졌는데, 이 무렵부터 그의 사고방식도 실험적 방법에서 수학적 방법으로 그 중점이 옮겨져 스스로를 수학자라고 하였다. 1687년 대저서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프린키피아):Philosophia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가 출판되었다.

1688년 명예혁명 때는 대학 대표의 국회의원으로 선출되고, 1691년 조폐국의 감사가 되었으며, 1696년 런던으로 이주, 1699년 조폐국 장관에 임명되어 화폐 개주라는 어려운 일을 수행하였다. 1703년 왕립협회 회장으로 추천되고 1705년 나이트 칭호를 받았다. 또 방정식론 등의 대수학(代數學) 분야의 여러 업적은 《Arithmetica universalis sive de compositione et resolutione arithmetica liber》(1707)로 간행되었다.

한편 신학에도 관심을 보여 성서의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고대사 해석을 검증하고, 천문학적 고찰을 첨가해 연대기를 작성하였다. 이 성서 연구를 통해 삼위일체설을 부정하는 입장을 가지게 되었다. 뉴튼은 평생을 독신으로 보냈으며, 런던 교외의 켄징턴에서 죽었다. 장례는 웨스트민스터사원에서 거행되고 그 곳에 묻혔다.

2.일화들

1)뉴튼이 그랜섬의 중학교 다닐때의 일이다. 뉴튼은 그의 방을 어머니에게 받은 돈을

(7)

전부 털어 사들인 연장들로 가득 채웠다. 친구들과 사이가 원만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이 게임을 하고 놀 때 혼자 방에서 여러 가지 물건을 만들었을수도 있지만, 그는 무척이나 이런 시간을 즐겼다. 그랜섬의 북부에 풍차가 하나 지어졌는데, 물방앗간은 당시 이 지역에서 흔했지만 풍차는 거의 없었고, 따라서 풍차가 만들어지는 것을 구경하러 가는 것은 그랜섬 주민들의 소일거리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 과정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퐁차의 모형을 만든 것은 중학생이었던 뉴튼뿐이었는데, 그의 모형은 원형에 버금가는 훌륭한 작품으로 지붕 위에 올려놓으면 진짜처럼 움직였다. 더구나 이 모형은 진짜 풍차보다 나은 점도 있었다. 뉴튼의 풍차에는 생쥐가 돌리는 쳇바퀴가 달려 있어, 쥐의 꼬리에 맨 줄을 당기거나 쥐 앞에 먹을 것을 갖다 놓으면 바퀴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뉴튼은 이 쥐를 <방앗간 주인>이라고 불렀다. 그는 자신을 위해 작은 수레를 만들기도 했다. 그것은 속에 들어가 앉아 직접 크랭크를 돌려주면 작동되는 사륜마차였다.

또 어두운 겨울날 아침 등굣길을 밝혀줄 주름잡힌 종이로 만든 초롱을 만들기도 했다.

간단히 접어서 낮에는 주머니에 넣어둘 수 있었던 이 초롱은 다른 쓸모도 있었다. 그는 밤에 이등을 연의 꼬리에 매달아 올려서 얼마동안 근처에 살고 있는 주민들을 놀래켰고, 이 일은 장날 마을 사람들의 술자리에서 적지 않은 화젯거리가 되었다고 한다. 이 일화에서 뉴튼의 천재성을 엿볼 수 있다.

2)뉴튼이 캠브리지로 가기전 어머니의 밑에서 집안일을 배우고 있을 때 곡식을 팔러 시내에 나갔다가 말을 타고 집으로 오고 있을 때 마을 건너편에 있는 언덕을 오르려고 말에서 내렸다. 언덕을 오르는 동안에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그는 말이 미끄러져 떨어졌는데도 말의 빈 고삐만을 잡고 한참동안을 몰랐다. 언덕 위에 올라서 다시 말을 타려고 했을 때에야 비로소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또 이와 비슷한 일화로, 뉴튼이 몇몇 친구를 초대하여 저녁을 대접할 때, 포도주 한병을 가지러 방에서 나갔다가 딴 생각에 사로 잡히게 되어 자기가 왜 나왔는지조차 잊어 버리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중백의를 걸쳐 입고 교회당으로 가 버렸다는 일화가 있고, 또 뉴튼의 친구인 스턱켈리 박사가 닭요리로 저녁을 먹기로 하여 그를 방문하였는데 뉴튼은 외출중이었으나

(8)

식탁에는 이미 요리된 닭이 뚜껑 덮힌 접시에 차려져 있었다. 저녁 약속을 잊어 버린 뉴튼은 약속시간을 너무 지체하였고 스턱켈리박사는 마침내 뚜껑을 열고 닭요리를 먹고 나서 뼈를 뚜껑 덮힌 접시에 담아 놓았다. 뉴튼이 나중에 와서 친구와 인사하고 식탁에 앉아서 뚜껑을 열었으나 뼈맊에 없었다. 그러자, "아참, 우리가 이미 저녁을 다 먹었다는 것을 잊었군."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일화들로 뉴튼의 놀라운 집중력을 엿볼수 있다.

3.뉴튼의 업적

뉴튼의 과학상의 업적은 3개의 대발견이라 불리는 빛의 스펙트럼, 만유인력의 법칙, 미적분법과 3가지의 새로운 운동법칙을 발견하였고, 그랜섬시대부터 화학과 연금술에 흥미를 가져 여러 합금을 만들었으며, 열의 냉각법칙(1701) 등 광범위한 분야를 연구했다.

17세기 중엽은 과학이 전환기를 맞은 시대였다. 17세기 초기에는 망원경이 발명되어 천문학 연구 전반에 걸쳐 커다란 혁신이 일어났다. 때마침 영국의 철학자 베이컨과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 등이 전 유럽의 과학자들을 부추겨, 지난날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물리학)에만 의존하던 것을 지양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실험 관찰할 것을 주장했다. 이 베이컨과 데카르트의 주장을 그대로 실천에 옮긴 사람이 저 위대한 이탈리아의 과학자 갈릴레이었다.

뉴튼은 스스로 창안한 망원경을 사용해 천체 관측을 함으로써 천문학 연구에 커다란 혁신을 가져오게 했다. 그리고 나아가 기계와 기구등의 실험을 통해 오늘날까지도 유명한 '뉴튼의 운동의 제1법칙'을 확립했다. 운동의 제1법칙은 조용히 멈추어 있거나 한결 같은 직선운동을 하는 물체는 이것에 힘이 작용하지 않는 한 그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을 설명한 것이다. 이 무렵에 많은 과학자가 나타났다. 예컨대 하비는 인체내의 혈액 순환을 발견했고, 케플러는 태양 주위에 있는 행성 운동에 관한 세가지 법칙을 발견했다. 이것은 실로 당시의 과학계에 새로운 기초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 하지만 그 당시의 순수과학은 거의 '장난거리'에 지나지 않았으며 베이컨이 예언한 대로 순수과학이 기술에

(9)

응용되리라는 것을 증명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는 고대 과학의 잘못된 개념을 말끔히 쓸어 버리고, 우주 전체에 대해서만 매달리지 않고 더욱 폭넓게 이해시키는 데 이바지했다. 그러나 이렇게 상호관계도 통제도 없이 수립된 과학적 사실의 집합으로부터 과학적 판정으로까지 이끌어가는 통일된 이론체계를 세우기 위한 원리원칙은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았다. 그러한 이론들을 통일하여 그 뒤 오늘날까지 현대과학의 궤도에 올려놓은 사람이 바로 뉴튼이었다.

뉴튼은 자기의 연구성과를 드러내어 널리 알리는 것을 꺼렸다. 그의 업적이 거의 모든 뒷받침이 되는 기본 개념은 이미 1669년까지 체계화 되어있었으나. 대부분의 이론은 그보다도 훨씬 뒤에야 발표되었다. 발견으로서 처음 공표된 것은 빛의 성질에 관한 것으로 건축공사의 기공식처럼 아주 초보적인 연구성과였다. 그 뒤로도 열심히 실험을 계속한 그는 일반적인 '빛' 곧 광선은 무지개와 같은 여러 가지 색의 혼합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다시 빛의 반사와 굴절의 법칙에서 오는 여러 가지 결론을 꼼꼼히 분석해냈다. 이들 여러 법칙을 이용해서 그는 1668년에 최초의 반사 망원경을 설계하고 직접 그것을 만들었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 대부분의 천체관측에 사용되고 있는 망원경의 유형으로 되어있다. 이러한 발명 발견 이외에 그가 행한 광학 실험의 성과들은 29세 때 영국 왕립 학사원에서 발표되었다.

뉴튼은 이 광학 연구의 성과만으로도 정말 위대한 과학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광학분야의 공헌도 순수과학과 역학분야에 대한 그의 기여에 비하면 꽤 보잘 것 없는 정도이다. 우선 수학에서의 중요한 공적을 들면 적분학의 발명을 들 수 있는데, 이 적분도 실은 23, 24세 대에 거의 완성한 것이었다. 이 발명은 근대 수학에서 가장 중요한 성과의 하나로 이것을 씨앗 삼아 그 뒤 많은 현대 수학이론이 싹텄다. 만약 이 발명이 없었더라면 현대과학의 진보는 지금처럼 자랄 수 없었을 것이다. 적분의 발명 하나만 가지고도 그는 그밖에 달리 아무런 공적이 없다 하더라도 위대한 과학자라고 불릴 자격이 있다.

하지만 뉴튼 최대의 발견을 물체가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과학적으로 살피는 역학

(10)

분야에서 이루어졌다. 갈릴레이는 '운동의 제1법칙'을 발견하고서, 만약 외부로부터 힘의 작용을 받지 않는다면 - 이라고 물체의 운동에 대해 서술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물체는 외부로부터 '힘의 작용'을 받고 있으며 역학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그와 같은 환경 밑에서 물체가 어떻게 움직이는가 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뉴튼이 풀었고 유명한 제2법칙으로 고전 물리학의 가장 기본적인 법칙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제2법칙'은 물체의 가속(예컨대 속도의 변화)은 물체의 질량으로 분할된 물체에 보태지는 실질적인 힘과 등일하다는 것이다. 이 제1법칙(관성의 법칙) 제2법칙(운동 방정식)에다 그는 '제3법칙'(작용․ 반작용의 법칙)을 덧붙였다. 그리고 다시 그의 업적 중 가장 유명한 '만유인력의 법칙'을 확립했다. 이 네 가지 법칙을 설정하고, 거기에다 힘의 법칙을 곁들인 태양 궤도의 행성운동에 관한 법칙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모든 거시적인 기구역학적 시스템을 조사할 수 있도록 통일된 시스템을 창출하고 그 움직임을 예측했던 것이다. 뉴튼은 비단 역학의 법칙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미적분을 위해서 기계와 도구를 사용하여 이 기본법칙이 문제를 현실적으로 해결하는데 얼마만큼 활용될 수 있는가를 실제로 증명했다. 이렇게 하여 뉴튼의 여러 법칙은 과학적 문제라든지 기술적 문제에 아주 폭넓게 적용되고, 또 실제로 응용되었다. 그의 생존 중에 이들 법칙의 응용으로 가장 극적이었던 것은 천문학 분야였다. 이 분야에서 뉴튼은 너무도 훌륭한 길잡이 노릇을 했다고 할 수 있다. 1687년에 출판한 불후의 명저 ≪프린키피아≫(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Philiosophia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은 근세에 씌어진 수학적 물리학서로 후세 200년간 역학의 기초가 되었다. 그의 역학에 관한 업적은 모두 여기에 수록돼 있다. 시간․ 공간․ 질량의 정의, 만유인력과 운동의 법칙이 그 주요 부분을 이루고 있다. 3부로 된 이 라틴어 저서는 간단한 유율법의 설명에서 시작하여 역학의 원리, 인력의 법칙과 그 응용, 유체의 취급, 태양 행성의 운동에서 조석의 이론 등에 이르기까지 계통적으로 논술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천체역학의 근본문제이다. 별의 위치와 온동을 정확히 예측하는 문제는 이처럼 뉴튼이 행한 매우 훌륭한 한번의 작업으로 완전히 해결되어 버렸다. 그 때문에 그는 곧잘 최고의 천문학자라는 평을

(11)

들어왔다.

이런 모든 것이 아마도 뉴튼의 위대한 업적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점이다. 곧 그는 과학이란 고립된 하나하나의 사실들과 법칙이 얼기설기 뒤섞인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부분적 현상은 어느 만큼 설명할 수 있으나, 그 아주 작은 부분밖에 예측할 수 없는 것이라고 보고 있었다. 때문에 이들 여러 법칙을 통합한 시스템을 제시하고 그것을 폭넓은 물리현상의 모든 영역에 응용할 수 있도록 했으며 나아가 정확한 예측도 가능하게 한 것이다.

한편 뉴튼은 열역학이라든지, 음향학에도 큰 공헌을 남기고 있다. 그리고 '운동량 보존의 법칙'과 '각 운동량 보존의 법칙'이라는 매우 중요한 물리학적 원칙을 그는 발표했다. 또 수학에서는 '이항정리의 연구로 시작하여 무한급수로 진전시켰고 양의 기원에 대해 처음으로 사람들이 알아 듣고 따르도록 설명하고 있다. 이렇듯 뉴튼은 모든 과학자 가운데서도 가장 빛나는 인물일뿐더러 과학이론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사람으로서 뉴튼 이상의 인물을 없다. 뉴튼이 주장한 "자연은 일정한 법칙에 따라 운동하는 복잡하고 거대한 기계"라는 역학적 자연관은 18세기 계몽사상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4. 뉴튼에 대한 평

1)20세기 경제학자 케인즈(John Maynard Keynes) : "그의 특수한 천부의 능력은, 순수하게 추상적인 문제라도 그 깊은 비밀을 통찰할 수 있을 때까지 지속적으로 정신집중을 할 수 있다는 데 있다. 한번이라도 순수한 과학이나 철학적인 사상에 도전해 본 사람이면, 또 한 순간이라도 그 문제를 붙들고 꿰뚫어 보려고 정신을 집중해 본 사람이며, 그 집중력이 어떻게 해이해지며 오래 가지 않고 중단되는가를 경험할 것이다.

결국 공백만 남게 된다. 그러나 뉴튼은 마음속에 한 문제를 붙들면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몇 주일이고 그 문제의 비밀이 풀릴 때까지는 집중력을 지속한다. "

2)뉴튼의 회고 : "나는 내가 세상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12)

나에게는 자신이 오직 해변 가에서 놀고 있는 어린애로 비칠 뿐이다. 아직도 발견되지 아니한 큰 대양이 내 앞에 누워 있는데 매끄러운 조약돌이나 보통 것보다는 더 예쁜 조개 껍질을 찾으며 기분풀이를 하고 있는 어린애와 같다."

3)뉴튼의 묘비에 새겨진 글 : "경은 신의 그것과도 같은 정신력에 의하여 행성의 운행, 혜성의 궤도의 형상, 해양의 조석을, 경 스스로 발견한 수학에 의하여 처음으로 밝혔으며, 일찍 아무도 의심하지 않고 있던 광선의 본성을 발견하였다. 경은 또 자연, 고대사, 성서에 관해 세밀하고도 예민, 확실하게 해명하여, 만능의 신이 존엄하심을 철학적으로 증명하였다. 인류가 신 곁에 이토록 가까이 있었다는 것은 실로 우리의 큰 기쁨이 아니고 무엇이랴?"

4)라플라스(Laplace) : " 뉴튼은 지금까지 생존했던 가장 위대한 천재였으며, 우주의 체계를 두 번 다시 정립할 필요를 없게 한 행운아였다."

5)라이프니츠(Leibniz:1646~1716) :" 태초부터 뉴튼이 살았던 시대까지의 수학을 놓고 볼 때, 그가 이룩한 업적이 반 이상이다."

6)라그랑주(Joseph Louis Lagrange:1736~1813): 뉴튼은 최상의 행운아이다.

왜냐하면 단지 한 번만으로 우주의 체계를 세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참고자료

1. 1993년판, 전파과학사

2. ‘ 에피소드과학사’ A.셧 클리프 , 조경철옮김, 1991년판, 우신사 3. 네이버 지식 검색

4. ‘ 물리이야기’

<<참조-프린키피아>>

프린키피아의 원제는 Philosopiae Naturalis Proncipia Mathematica(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이다. 뉴튼이 역학 및 우주론에 관한 연구를 집대성하여 저술한 것으로 이른바

(13)

만유인력의 원리를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것으로 유명하다. 이 책은 라틴어로 쓰여졌으며 모두 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권과 제2권에서는 운동에 관한 일반적 명제를 논술하고 있는데 특히 제2권에서는 매질 속에서의 물체의 운동을 다루고 있다. 제3권에서는 제2권에서 증명된 명제로부터 천체의 운동, 특히 행성의 운동을 논의하고 있다. 또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의 문제와 케플러의 행성의 타원궤도 문제를 해결하였다.

이 책에서 뉴튼은 미적분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당시의 사람들의 이해력을 고려해서라고 한다. 1687년 초판, 1712년 증보개정판 그리고 1726년 3판이 출간되었다.

1) 제1권 : 물체의 운동(The Motion of Bodies)

프린키피아의 내용을 보면 제1권에 앞서 질량, 운동량, 관성 및 구심력등에 관한 8개의 정의(definition)와 공리(axioms), 관성의 법칙, 가속도의 법칙 그리고 작용 및 반작용의 법칙인 운동 법칙들과 6개의 계(係, corollary)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절대적인 시간, 절대적인 공간 및 절대 운동에 대해서도 논의하고 있다.

제1권은 저항없는 공간에서의 물질 입자의 운동을 분석하고 있는데, 그 구성은 모두 14장(sections)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은 11개의 보조정리(lemma)로 이루어져 있고 극한등 미적분학의 기초가 되는 것들을 설명하고 있다.

2장은 10개의 명제(proposition), 5개의 정리(theorem)와 5개의 문제(problem), 1개의 보조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구심력의 영향을 받으면서 운동하는 물체는 케플러의 면적의 법칙, 즉 행성이 그리는 궤도 면적은 같은 시간동안에 같은 면적을 그리면서 운동한다는 법칙을 설명하고, 거꾸로 곡선을 따라 운동하면서 이 면적법칙을 만족시키는 운동을 할 경우 이 물체의 운동은 구심력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미적분학을 사용해서 기하학적으로 증명하였다.

3장은 7개의 명제, 4개의 문제, 2개의 보조정리 그리고 3개의 정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14)

구심력이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4장과 5장에서는 타원, 2차곡선 및 쌍곡선을 작도하는 기술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2개의 보조정리, 4개의 명제와 4개의 문제로 이루어진 4장은 초점이 주어졌을 때의 작도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5장은 11개의 보조정리, 8개의 명제와 8개의 문제로 이루어져 있는데 초점이 주어지지 않았을 때의 작도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6장은 2개의 명제, 2개의 문제와 1개의 보조정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어떤 주어진 시간에 타원궤도를 그리는 물체의 위치를 결정하는 문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7장은 8개의 명제, 4개의 문제와 4개의 정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구심력이 작용하는 물체를 직선 상승 및 하강시켰을 때의 궤적에 관한 문제에 대해 다루고 있다.

8장은 3개의 명제, 2개의 문제와 1개의 정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구심력이 작용하는 물체가 회전할 때 그 물체의 궤도를 결정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9장은 3개의 명제, 2개의 문제와 4개의 정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고정되어 있지 않은 움직이는 궤도 위에서의 물체의 운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10장은 8개의 명제, 4개의 문제와 4개의 정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궤도면이 힘의 중심을 지나는 궤도의 운동에 대해 다루었다.

11장은 13개의 명제, 3개의 문제와 10개의 정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제까지의 제한적인 논의를 보다 일반화시켜서 고정된 중력 중심이라는 개념을 부정하여 두 물체간의 상호 동등한 인력 작용을 인정하고 있다. 또 둘이 아니라 셋 사이의 상호관계를 가정하여 그 해결을 시도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달의 여러 가지 불규칙한 운동들을 분석하고 있다.

12장은 15개의 명제, 1개의 보조정리와 12개의 정리 그리고 3개의 문제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제까지 가정했던 질량점(point mass)대신 ‘ 작은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구’ 라는 개념을 사용해서 물체사이의 힘이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가를 설명하고 있는데, 결국 모든 질량이 구의 중심에 모여 있는 것과 같다는 결론을 유도하였다.

13장은 9개의 명제, 3개의 문제와 6개의 정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구면체가 아닌

(15)

물체사이의 인력에 관해서 설명하고 있다.

1권의 마지막 장인 14장은 5개의 명제, 2개의 문제와 3개의 정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 구심력으로 자극된 아주 작은 입자들의 운동’ 을 다루면서 스넬법칙과 같은 몇 개의 광학 법칙을 유도해 냈다.

전체적으로 볼 때 1권은 몇 개의 기본적인 정의들과 공리들 그리고 정리들을 먼저 제시하고, 그 다음 이를 현상 설명에 적용하는 순서를 따르고 있다.

2)제2권:저항있는 매질 속에서의 물체의 운동(The Motion of Bodies in Resisting Medium)

제2권은 9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저항이 있는 매질속에서의 운동 특히 유체역학에 관한 내용이 돋보인다.

1장은 4개의 명제, 2개의 정리, 1개의 보조정리 그리고 2개의 문제로 이루어져 있으며 매질이 그 속에서 운동하는 물체에 저항하는 정도를 여러 가지 속도와 관련지어 분석하고 있다. 물체가 속도에 비례하여 저항을 받는다면 저항에 의하여 잃어버리는 운동량은 그 운동에 의하여 이동한 거리에 비례한다. 또 속도에 비례하여 저항을 받는다면 각 시간 간격 내에 그려지는 거리는 속도에 비례한다. 포사체 운동에서 속도와의 관계르 분석하고 있다.

2장은 6개의 명제, 5개의 정리, 1개의 보조정리 그리고 1개의 문제로 이루어져 있으며 한 물체가 그 속도의 제곱에 비례하는 저항을 받아 운동할 때 거리와의 관계, 균일한, 그리고 같은 구형체가 속도의 제곱에 비례하는 저항을 받고, 관성에 의해서만 운동을 할 때 거리와의 관계, 일정한 매질속에서 중력에 의해 작용 받았을 때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3장은 4개의 명제, 4개의 정리로 이루어져 있고 일부는 속도에 비례하여 또 일부는 속도의 제곱에 비례하는 저항을 받는 물체의 운동에 관해 증명하고 유체내에서의 속도와 거리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16)

4장은 4개의 명제, 2개의 정리, 1개의 보조정리 그리고 2개의 문제로 이루어져 있고 저항이 있는 매질 속에서의 원운동은 나선 형태임을 보이고 있다.

5장은 유체의 정의에 대해 먼저 설명한 뒤 5개의 명제와 5개의 정리를 이용하여 유체 현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유체가 서로 반발하고 작은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고 입자사이에는 역제곱의 법칙을 따르는 힘이 있다고 설정하여 유체정역학(hydrostatics)의 일반적인 원리들을 유도해 내고 있다.

6장은 8개의 명제, 7개의 정리, 1개의 문제로 이루어져 있으며 서로 다른 매질 안에서의 진자 운동을 분석하고 있는데, 관성 질량과 중력질량이 같다는 중요한 사실을 매우 정교한 실험을 바탕으로 제시하고 있다. 6장은 이밖에도 진자를 이용한 정교한 실험데티터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7장은 9개의 명제, 6개의 정리, 4개의 보조정리 그리고 3개의 문제로 이루어져 있는데 프린키피아에서 가장 긴 장으로서 매질 안에서의 투사체 운동을 역시 많은 정밀한 데이터들을 이용하여 분석하고 있다.

8장은 10개의 명제, 7개의 정리 그리고 3개의 문제로 이루어져 있는데 유체내에서의 파동운동에 대해 쓰고 있다.

9장은 하나의 가설(hypothesis)에 대해 설명하고 있으며 3개의 명제와 3개의 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제2권을 살펴 보면 그 내용의 대부분들이 물학적 내용과 수학적인 분석 사이에 명확한 구별없이 혼합되어 씌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 제3권:우주의 구조(System of the World)

제3권은 1,2권과는 달리 장으로 나뉘어져 있지 않고 규칙들(Rules of Reasoning in Philosophy Ⅰ~Ⅳ), 현상들(Phenomena Ⅰ~Ⅵ) 그리고 명제들(Propositions)로 구성되어 있다.

네가지 규칙은 현상을 설명하는데 올바르고 충분한 원인만을 받아들일 것, 동일한

(17)

원인은 동일한 효과를 발생한다는 것, 일차성질(primary qualities)은 보편적이라는 것, 현상으로부터 귀납적으로 유추된 명제들은 정확하고 진리에 가깝다는 것들이다.

여석가지 현상이란 목성과 토성 위성들이 각각 케플러의 제2, 3법칙을 따른다는 사실,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돌며 케플러의 제2, 3법칙을 따른다는 사실, 달이 케플러의 2법칙을 따른다는 사실 등이다. 명제들은 천체의 운동과 현상들을 중력(또는 만유인력)을 사용하여 더욱 세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명제 1~3까지는 태양계안의 모든 물체들이 태양을 중심으로 역제곱법칙을 따르는 힘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명제 4~12까지는 중력의 성질과 작용을 설명하고 있으며, 명제 13~19는 행성궤도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명제 20은 진자를 사용하여 지구의 여러 다른 지역에서 측정한 무게의 차이를, 명제 21은 춘(추)분점의 이동과 지구축의 장동운동(nutation)을, 명제 22~35는 달의 불규칙한 운동에 관한 분석을, 명제 37, 37은 조수현상을 각각 다루고 있다. 명제 38은 달의 모양을 알아내기 위해서, 명제 39는 춘(추)분점의 세차운동(precessional motion)을 밝히기 위해서 씌어졌다. 그리고 40~42와 보조명제(Lemma) 4~9는 혜성의 운동과 그 궤도에 관해서 분석하고 있다.

제3권은 뉴튼이 제1권에서 보여준 방법들을 사용하면서 실제 천체현상들을 아주 잘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천문학적 데이터를 적절하게 사용함으로써 뉴튼의 세계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실제 현상을 설명해주었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제3권은 프린키피아 가운데서도 가장 인기있는 부분이다.

(18)

16.라부아지에와 근대 화학 체계의 형성

(1) 불의 사용과 화학

불의 발견 - 원시 공동사회 형성 - 음식의 가열 조리 - 토기 제작 필요 -고온처리의 야금기술로 발달

고대의 일곱가지 금속

금 속:금, 은, 구리, 철, 납, 주석, 수은 비금속:탄소, 유황

-구리

B.C 6000년 이집트 고왕국 제1왕조시대때 알려져 있었음 B.C 3200년경 이집트 묘지-프라이팬 출토

시나이반도 구리광산은 2000년동안 지속 銅 은 金 과 같다同 는 의미

-금, 은 : 비슷한 시기에 사용 조공물로 요구 -철

히타이트인들이 제련

B.C 1300년 이집트 람세스2세가 히타이트왕에게 철 구함 람세스3세-철제무기로 무장

-주석

B.C 1000년경 청동제조기술 알려짐 -납

B.C 3400년경 신상출토

그리스인:배에 납산화물 칠함, 로마:수도관으로 사용

(19)

-수은

B.C 1500년경 이집트 묘지에서 발견

1세기 무렵 그리스군의관 디오스코리데스 : 증류에 의한 수은 정제방법 기술

최초의 합금-청동

B.C 3000년경 나타남.

B.C 2700~2000년경 전성기 : 무기, 갑옷

B.C 1200년경 트로이 전쟁에 사용 : 시인 호메로스 기록 물감

이집트 7색-종교 관련

로마 - 적색 5종, 청색 3종, 녹색 2종기록(플리니우스, 23~79)

-적색물감

이집트-적색황토 -황색물감

이집트-황토사용

황색 갈철광, 황색 비소(페르시아, 메소포타미아, 소아시아에서 수입)사용 -등색물감

이집트-적색+황토

이산화납-B.C 4000년경 발견 -갈색물감

이집트-다그파 오아시스산 황토 사용 -녹색물감

이집트, 바빌로니아 - 염기성 탄산동, 규산동 수화물 -흑색물감

(20)

이집트-매연사용

눈화장용-방연광(PbS), 이산화망간(MnO2) 잉크-숯

중국-탄 -백색물감

백토, 석고(CaSO4-2H2O), 석회석(CaCO3)

염색

B.C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 - 명반을 매염제로 사용 청색염료-청남사용 (B.C 1500년경 이집트~)

붉은염료-꼭두서니 (B.C 1500년경 이집트~) 홍색, 자색-연지벌레 사용

자색염료-B.C 2000년경 크레타섬 발효

신석기시대-벌꿀

이집트-과즙, 벌꿀의 발효 수메르-보리, 곡물로 맥주제조

함무라비왕-저도수의 술만 판매, 정치적 음모 도모는 사형

향장

종교, 주술, 의약용에서 세속화됨 이집트 - 35종

B.C 1600년 이전 22종 13종-화장용, 1종-약제 제조방법 (냉침, 침적, 압축)

(21)

세제

천연소다:이집트의 방부제, 유리나 도자기의 원료 이집트 - 탄산소다+중조+황산염+염화물

탄산칼륨+기름(비누)

의약

수메르,아시리아인 - 500종이상 사용

이집트, 바빌로니아 - 자연물이용(볶기, 끓이기, 우려내기, 여과, 분쇄, 발효) 그리스,로마-아시리인의 약처방 기초

고대 화학적 기술의 우수성

야금기술의 발전, 그림 채색 지구력, 공구의 제조기술등 발전 경험의 축적과 전승에 의한 발전

괴테-“ 고대의 기술은 전승에 의해서 진보하였다. 이 습관은 보수적 민족에게 있었는데 예를 들면 이집트, 인도, 중국 민족에 있어서 염색술이 높은 단계의 영역에 도달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보수적 민족은 종교를 바탕에 두고서 기술을 취급하였다.”

영국 박물학자(1922~28년 발굴)-“ 수메르인의 문명은 원시인에 깊이 스며든 세계를 비춰주고 있다. 그리스의 천재는 크레타, 바빌로니아, 이집트 등 동반민족의 생명수를 흡수했지만, 그 모든 배후에는 수메르인이 숨어 있다.”

유사이전이나 초기 문명 단계에서는 경험적, 실제적인 기술이었음.

(22)

(2) 고대 화학적 기술의 싹틈 -무제이온 : 국립학술원 알렉산드리아시 소재

B.C 332년 프톨레마이오스왕조가 설립

회원의 공동신탁기금으로 자치단체 구성-경비 지출 소장 : ‘ 에피스터트’ -출납관, 회계관

회원들에게 식사 지급, 납세의무 면제 건물 : 교실, 산책길, 기숙사

연구원수 : 100명의 학자

70만권 장서보유, 동식물원, 찬문관측소 보유

-고대연금술

그리스 철학 + 이집트의 기술 + 동방의 신비주의 1885년 네덜란드 레이덴 파피루스

1913년 스톡홀름 파피루스

최초의 연금술사-헬레니즘 과학자

금속변화 작업

죽은물질 제조-흑색화 은의 제조 -백색화 금의 제조 -황색화 승려의 개입-부의 축적

-고대 연금술사 : 조시모스

(23)

그리스 연금술사

300편 정리 - 28권 백과사전

신비주의 사상-전문용어 사용, 난해한 기호사용

-케미스트리 알렉산더대왕후

케미아(Chemia) : 이집트 실제연구 + 그리스 이론 융합

296년 로마황제 가이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분서명령에 등장 이집트의 검은(khem)땅 유래설

이집트의 기술 : khemia 설

중국의 금액 : chini 혹은 kimga 설

(3) 뿌리 내린 연금술 아랍의 연금술사

ⓐ게베르(Geber, 721~815) 저서 : ‘ 완전한 전서’

사상 : 물질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냉,온,건,습에 기초 실제의 금속은 황 과 수은

연금술사의 임무 : 기본 두 성질 물질의 성분비 결정 순수한 성질을 제조하는 일 적절한 양을 결합하는 일 직접적 화학조작

반복 실험을 강조-700번 요구

화학실험법에 대한 기록 남김-염화암모늄과 백반, 질산 및 초산제법 도료와 니스, 금속의 정련법등

(24)

ⓑ알 라지(Al-Razi, 850~923) 직업 : 의사

저서 : 비밀중의 비밀(secret of secrets)-실제 기술 처방,

물질/기구/방법 세부분으로 구성 ⓒ이븐 시나

서양이름 : 아비센나(Avcenna, 979~1307)

저서 : 의학경전(The Canon of Medicine)-광물생성 광물분류-석류, 가융물, 유황류, 염류 사상 : 금속 변환은 불가능

11~13세기 아랍의 신비적인 사상 번창으로 과학에서 멀어짐.

중세 서양 연금술

남성적인 황과 여성적인 수은의 결합 - 에릭서(elixir) 혹은

현자의 돌(philosopher's stone) 필요 금속을 유기체로 생각-성장, 변화

실재물은 종자로부터 발전-지적계획에 의해 특징이 결정됨 변색, 착색에 관심

승려의 후원

중세 동양의 연금솔 -갈홍(중국, 283~343)

저서 : 포박자(내편 20권, 외편 50권) 사상 : 금단(불로장생의 신선약) 황백(현실적인 금 제조)

(25)

연금술의 부산물

-실험기구의 발전 : 솥, 도가니, 내화성증류기, 부집게, 플라스크, 시약병, 여과기 -실험법의 발전 : 증발, 증류, 결정, 침전, 연소등

-화학약품 : 알콜, 에테르, 아세트산, 질산, 황산, 왕수, 백반, 염화암모늄, 질산은, 비누, 알칼리등

(4) 근대화학의 징검다리-의화학파(latrochemists)의 등장 -파라셀수스(Paracelsus,1493~1541)

스위스태생 독일인, 로마시대 대학자 셀수스를 능가(para)한다는 의미.

본명 : Aureolus Philippus Theophrastus Bombastus von Hohenheim 갈레노스, 아비센나의 고대 의학 반박-1527년 바젤시에서 서적 태움 라틴어 대신 독일어로 강의 주장-의학의 루터

200여권의 저서 남김-문예부흥기의 의학,화학의 일인자로 추앙 약화학의 창시자-광물성 의약사용 주장, 단일 물질 복용 주장 인체는 화학체계-수은, 황, 소금의 삼원소

‘ 화학의 참된 목적은 금을 만드는것이 아니고 질병을 치료하는 약제를 만드는 것’

‘ 이 세상에서 완전한 것이 없으므로 이를 완전한 것으로 만들 수 없다. 이를 완전하게 하는 것이 연금술 즉 화학이다‘

-의화학파 후예들 및 화학자

ⓐ리바비우스(Libavius, 1540~1616)-독일 파라셀수스의 공상적 이론 배격

1597년 ‘ 연금술’ 저술 - 염산, 4염화주석, 황산암모늄, 황산, 왕수제조법 기술

(26)

ⓑ헬몬트(Helmont, 1577~1644)-네덜란드 자칭 ‘ 불의 철학자’ .

과학과 종교의 융합 시도

아리스토텔레스 4원소설 부정 - 남는 것은 물 공기와 유사 물질 존재 인식

기체는 완전한 혼란(chaos)한 물질-chaos의 플란더스식 발음인 가스 사용 나무연소시 발생 가스 연구-‘ 나무로부터 나오는 기체(gas sylvestre)'

ⓒ아그리콜라(Agricola,1490~1555) - 독일 '광물학‘ 저술 - 광물학의 아버지

영어판-1912년 미국 13대 대통령 후버에 위해 출판 아연, 코발트, 비스무트 언급

ⓓ글라우버(Glauber, 1604~1668) - 독일 암스텔담-황산, 질산공장 설립

‘ 화학대전’ - 유기화학공업의 최초 연구 시도 ‘ 독일의 복지’ 저술

ⓔ브란트(Brandt, 1694~1768) - 스웨덴 비소 연구가

암청색 물감용 광석 연구-코발트 명명

(5) 보일과 근대화학

Robert Boyle (1627~1691) - 영국 귀족의 14번째 아들

(27)

기계론적 화학 주장 8세 이튼학교 입학 12세 유럽에 유학

14세 이탈리아 갈릴레오 연구 시도

1662년 왕립학회 설립 주역, 1680년 왕립학회 회장 고사 진공으로 공기의 성질 연구 - 보일의 법칙

새로운 원소관 수립 - 근대 원자론 도입의 실마리 1680년 소변에서 인 추출

“ 화학의 임무는 물체의 성분과 조성을 알아내는데 있다” -과학의 한 분과 참된 연구 방법 - 관찰과 실험

‘ 회의적인 화학자’ 저술

(6) 플로기스톤 이론 - 화학 발전의 걸림돌

플로기스톤(Phlogiston) - 그리스어로 ‘ 불타는 것’

파라셀수스의 황 성분을 발전시킨 것 베허(Jochim Becher,1635~1682) - 독일 궁정 의사

고체를 3종류로 구분 그중 하나가 ‘ 기름진 흙’ -가연성분, 연소시 도망 슈탈(Georg Ernst Stahl, 1660~1734) - 독일 화학자

1697년 ‘ 기름진 흙’ 을 프로기스톤이라 부름.

연소, 금속의 탄화, 호흡, 부패에 대한 통일적인 해석

연소란 가연성 물질로부터 플로기스톤이 튀어나가는 현상이며 : 산화 (금속 = 금속재 + 플로기스톤)

금속재가 플로기스톤과 결합하면 순수한 금속으로 돌아오는 현상. : 환원

(28)

칸트 ‘ 순수이성비판’ - “ 슈탈의 플로기스톤설은 모든 자연과학자에게 한가닥 빛을 비춰주었다.”

문제점 -하소 후 질량이 증가하는 문제

(7) 기체화학자 - 화학혁명의 전야

고대 라틴 - anima 는 혼, 호흡, 바람

그리스어 - pneuma 는 대기, 바람, 인간정신 호머의 ‘ 오딧세이’ -아황산가스 기록

갈레노스 - 공기에 불을 보존하는 성분과 억제하는 성분이 존재

1766년~1785년 가스발견 13건, 성분/조성 분석 4건, 비활성가스예상 1건등 18세기말 무기화학분야의 발전 - 플로기스톤 이론 추방계기

ⓐ헬몬트

가스란 확실한 모양이나 체적이 없고 무한히 팽창하는 무형의 물질.

이산화탄소, 염소가스, 아황산가스, 산화질소등 언급 기체의 성질과 종류를 과학적으로 처음 언급.

ⓑ메이요(John Mayow,1645~1679) 산소를 어느 정도 예견

ⓒ헤일즈(Stephan Hales,1677~1761) - 영국 목사, 생리학자

돌턴의 정량적 연구를 화학에 도입.

식물 가열시 기체가 발생 발견 1727년 수상치환법 창안

(29)

ⓓ블랙(Joseph Black,1728~1799)

1754년 의학학위논물 발표 - 1756년 출간

이산화탄소 제조법(탄산마그네슘이나 탄산칼슘 가열)과 성질 밝힘.

수산화칼슘,수산화칼륨에 흡수

- 흡수로 생긴고체 즉 탄산염에는 항상 이산화탄소가 존재:고정공기 연구 의의

-실험적, 정량적 연구 도입:근대화학의 시작

-기체의 신비성 제거 : 고체나 액체와 동등위치에서 반응, 결합 -공기의 원소성 부인

-다른 기체의 발견 예상

싱거-“ 기체를 분리하고 연구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기체의 성질이나 결합법칙을

발견한 것은 18세기 초기의 화학적 노력의 중요한 성과“

크라우저-“ 블랙은 화학자로서 여러 재능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화학 분석을 하기 위한 논리적 도구로서 천칭을 처음으로 상한 사람“

ⓔ러더퍼드(Daniel Rutherford,1709~1819) - 블랙의 제자 질소의 발견 - ‘ 생명이 없는것’ , ‘ 독기체’

플로기스톤화 공기

ⓕ캐빈디쉬(Henry Cavendish,1731~1810) - 영국 잉글랜드 은행 최대 주주, 최대 재벌

수소-금속을 산에 녹일 때 발생하는 기체

(30)

질소에 1/20 정도의 다른 가스 존재 밝힘-불활성 기체 존재 예상 수질검사 기술의 창시자

ⓖ프리스틀리(Joseph Priestley,1733~1804) 1774년 8월 1일 산소발생-산화수은 가열

‘ 탈플로기스톤 공기’ - 라부아지에가 산소로 부름 1781년 산소+수소=물

1791년 7월 14일 장서와 실험실 불에 탐.

1794년 4월 8일 도미

“ 나는 지금 이 바다를 건너 바다 저편 낯선 땅으로 가려고 한다. 그러나 떠나 는 나에게는 아무런 원한도 없고, 어떤 분노의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다.

단지 때가 와서 좋은 시절이 될 때 까지 내 명이 남아 있으면 다시 이 고국 땅에 돌아오기를 바라는 희망만을 안고 고국을 떠나는 것이다. 이러한 뜻을 품는것은 내 뼈를 묻을 곳은 단지 나를 길러준 내 고향땅 밖에는 아무곳도 없기 때문이다. 잘 있으라. 내 사랑하는 동포여! 평안하라”

ⓗ셸레(Karl Wilhelm Scheele,1742~1786) - 스웨덴 14세 때부터 8년간 약국에서 일한 천재

1771년 산소 발생

1772년 질소 발생 - 1777년 발표

신조-“ 우리들이 알려고 하는 것은 오직 진리뿐이다”

(8) 라부아지에(1743~1794.5.8)와 화학혁명 징세청부인, 14세 소녀와 결혼

금속 연소후 질량 증가-플라기스톤 이론 부정 - 산소와의 결합

(31)

원소의 명확한 표현과 화학단위표 작성-33종 원소 화학변화전후 질량측정-정량적 방법 취함

1787년 ‘ 화학명명법’

1789년 ‘ 화학원론’ 출판 - 3부로 구성: 연소의 개념, 새로운 원소관, 질량불변의 법칙 강조

라그랑주-“ 그의 목을 자르는 것은 순식간이지만 그와 같은 두뇌를 출현시키는데는

100년 이상 걸린다“

(9) 라부아지에 이후

ⓐ 돌턴(John Dalton,1766~1844) - 영국 "화학철학의 신체계“ 저술

원소를 원자라고 부름 색맹 연구 - 돌터니즘

ⓑ 게이뤼삭(Gay Lussac,1778~1850) - 프랑스 분자론

1804년 400미터 상공의 기체연구 - 기구사용 기체반응법칙 수립

ⓒ 아보가드로(Amedeo Avogadro,1776~1856)

아보가드로 법칙-같은 온도, 같은 압력, 같은 부피내의 기체는 모두 같은 수의 분자를 가진다.

ⓓ 베르셀리우스(Jons Jakob Berzelius,1779~1848) 1828년 원자량표 발표

원소기호를 라틴어 첫문자 사용 제안

산소-O, 질소-N, 구리-Cu(Cuprum), 금-Au(Aurum) 등

(32)

1801년 “ 화학교과서” 출판 56세때 24세 여자와 결혼

ⓔ 멘델레예프(Dmitri Ivanovich Mendeleev,1834~1907) 1867년 “ 화학의 기초” 저술-무기화학을 체계화 생각 주기율표 발표

ⓕ 램지(William Ramsay,1852~1916) 비활성기체 5종 발견

[참고도서] 오진곤, 화학의 역사, 전파과학사(2002) 17. 수학사

(1) 고대의 수학

수학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오래 되었다. 교역·분배·과세 등 인류의 사회생활에 필요한 모든 계산을 수학이 담당해 왔으며, 농경생활에 필수적인 천문 관찰과 역(曆)의 제정, 토지의 측량 등은 직접적으로 수학이 관여해왔다. 수학이 학문 또는 과학으로서 주목된 것은 고대 그리스(희랍)시대, 대체로 서력 기원 6세기경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일찍 문명의 꽃을 피운 고대의 인도·중국·바빌로니아·이집트 등에서는 수학을 비롯하여 괄목할 만한 문화가 발달되었다.

① 바빌로니아와 이집트

이집트의 나일강, 바벨로니아의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양강, 인디아의 갠지스강, 중국의 황하 등의 유역에서 문명은 흥하기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특히 나일강은 정기적으로 범람하므로 그 피해를 막기 위하여 통치자는 이것을 정확히 예견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정확히 정기적인 변화를 나타내는 天空에 눈을 돌려서 그 결과 曆을 만들어 냈으며, 이집트인은 지금으로부터 수천년전에 이미 1년이 365일과 1/4 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또 당시의 지배자는 국민이 입은 피해의 정도에 맞추어 그 세금을 절감해야 했으므로 이로 인하여 수의 계산기술도

(33)

상당히 진보되었다고 한다. 현재까지 알려져 있는 세계최고의 수학서는 대영 박물관의 Rhind 수집품 중에 있는 아메스의 파피루스이다. Rhind 는 1858년에 이것을 구입했다.

이 파피루스에 기재된 고문서는 1877년 독일의 고고학자 아이젠로올에 의하여 현대어로 번역되었다. 아메스의 파피루스에 의하면 이집트 사람들은 이론적인 성과를 몰랐던 것으로 생각되며, 그 증거로 거기에는 定理가 없음을 들 수 있으며 일반법칙도 거의 없었다. 대개가 같은 종류의 문제를 몇 개고 계속 풀고 있는 것이다. 이 작업에서 귀납적으로 쉽게 일반법칙을 발견할 수 있겠으나 그것을 하지 않고 있다. 아메스의 파피루스에는 神官문자로 분수의 계산을 표기하고 있고, 또한 1개의 미지수를 가지는 1차방정식 및 2차방정식에 귀속되는 문제도 다루고 있다. 조잡한 경험적 기하학의 시초는 계산법과 마찬가지로 먼 옛날임이 틀림없을 것 같다. 또 아메스의 파피루스에는 여러 가지 기하문제 등이 있고, 원주율 π 로서는 (16/9)2 = 3.1604… 를 이용하고 있다.

또한 원과 동면적인 정 4각형의 존재도 인정했던 흔적도 있다. 이집트의 고문서에는 등차급수, 등비급수 등에 해당되는 예를 볼 수 있다. 아메스의 파피루스와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아마도 기하학적 지식을 표시하고 있는 최고의 증거품일 것이다. 고대의 과학은 미신과 결부되어 있다. 바벨로니아의 기하학적 도형이 길흉을 점치는 데에 사용되었던 증거도 있다. 그들의 도형 중에는 평행선, 정 4 각형, 오목각을 포함하는 도형 등이 있다. 바빌로니아의 기호 *는 원의 6등분과 60진법의 기원과 관계가 있는 듯하다.

여기서 6개의 부분으로 나누는 것을 바벨로니아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는 것은 당시의 마차의 살이 6개로 되어 있었다는 고서에 의해서도 알 수 있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1차방정식, 2차방정식도 풀고 있었다.

②. 그리스의 수학

그리스인들은 이집트에서 기하학을, 바빌로니아에서 대수학(代數學)을 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스의 탈레스나 피타고라스, 또 플라톤도 이집트에 유학하여 그 문화에 접하였다. 그리스는 이들 문화를 받아들여 새로운 문명의 한 시기를 형성하였다.

(34)

예술에도 과학에도 많은 성과를 보이고 있으나 특히 수학에서는 불멸의 업적을 남기고 있다. 유클리드의 《기하학원본(스토이케이아)》, 아르키메데스의 많은 연구업적, 아폴로니오스의 《원뿔곡선론:Konikon biblia》, 디오판토스의 《수론(數論)》 등이 그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플라톤 등으로 대표되는 여러 학자들의 관심사는 철학과 수학이었다. 이오니아란 고대 그리스의 식민지였던 소아시아의 서안지방의 고대지명이다.

그리스 최초의 철학파인 이오니아 학파의 창시자는 탈레스(B.C. 640- 546)이다.

기하학을 그리스에 소개한 것도 탈레스이며 또한 그는 피라미드의 그림자를 측정하여 그 실제의 높이를 재어 아마시스 왕을 경탄시켰다고 한다. 탈레스는 그 본질에 있어서 추상적인 직선과 각의 기하학을 창설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 이집트 사람들은 주로 실험적 성질을 갖는 면적과 입체의 기하학을 취급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탈레스가 발견한 정리로는 다음과 같다.

◆ 두 직선이 만날 때 그 맞꼭지각은 같다.

◆ 이등변삼각형의 밑각은 같다.

◆ 두 개의 삼각형에 있어서 두 변의 길이와 그 끼인각이 같으면 두 삼각형은 합동 이다.

◆ 두 개의 삼각형에 있어서 그 두 내각과 끼인 변의 길이가 각각 같으면 두 삼각형은 합동이다.

◆ 반원에 내접하는 각은 직각이다.

◆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2직각이다.

◆ 두 개의 삼각형에 있어서 대응하는 변이 모두 평행 되게 놓여 있으면 두 삼각형은 서로 닮음이다.

탈레스는 위의 정리들에 엄밀한 증명도 붙였고 또한 이들을 실용적으로 응용한 제 1인자이었다고 한다. 예컨대 삼각형의 합동에 관한 정리를 이용하여 해상에 떠 있는

(35)

배의 위치를 측정하는 것 등이었다. 탈레스의 학문을 이어받은 것은 피타고라스(B.C. 580 - 500 ? )이었다. 그는 사모스섬에서 출생하여 이집트에 유학했고 남부 이탈리아의 크로톤에 학교를 세웠으며 그 곳에서 이오니아 학파의 합리주의를 더욱 더 철저히 했고 우주의 조화, 합리성의 이상으로서의 수학을 목표로 하여 「만물은 수이다. 」라는 근본원리를 주장하였다. 수학이라는 말도 이 학파가 창시한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우주의 근원을 이루는 법칙으로 그들이 배워야 할 것으로서 기하학, 산술, 천문학 및 음악을 들었다. 또한 그들은 비밀결사를 만들었으며 그들의 교재는 비법이었고 외부로의 누출이 금지되었다.

- 피타고라스 학파

피타고라스와 피타고라스 학파의 독특한 방법은 기하학과 산수와의 연락을 꾀한 것이다.

즉 산수적 사항을 기하학 중에 유사한 형으로 포함되어 있고, 역으로 기하학적 사항은 산수 중에서 유사한 형으로 포함되어 있다. 이와 같이 피타고라스는 그의 정리와 연락해서 직각 삼각형의 변의 길이를 나타내는 정수를 발견하는 법칙을 연구했다.

피타고라스의 학파들이 발견한 정리는 다음과 같다.

◆ 직각 삼각형에 관한 피타고라스의 정리

평행선의 이론으로부터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2 직각이라는 정리.

◆ 정오각형의 작도법의 발견 ◆ 무리수의 발견

무리수의 존재는 눈으로 암시되는 어떠한 기하학적 도형에도 없다. 그것은 순수한 추상적 사색에서가 아니면 발견할 수가 없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무리수를 말할 수 없는 것의 상징으로 생각했다.

◆ 조화수열의 발견

1, 2/3, 1/2 이 3 음의 가장 잘 조화된 음정이라고 하였다.

참조

관련 문서

• Infinite process의 이론 정립은 직선상의 점과 수의 대응에 관한 문제를 재발견.

100 lux 조건 하에 동영상 촬영을 진행하 고, 모든 동영상 촬영이 끝난 후 Noldus의 Ethovision(ver. 8.0)으 로 mouse가 open arms에 머문 시간과 mouse가 open

7%의 부정적인 응답을 보였고 “교실에 학생수를 줄여야 한다”의 의견 또한 50%의 부정적인 응답 을 함으로서 교사가 시연하는 컴퓨터 활용 수업에 있어서 컴퓨터의

­ 자연・생태, 역사・문화 등 섬의 고유 자원과 연계한 섬 특화 관광콘텐츠 개발 사업, 섬 에코 투어, 섬 문화 체험 등의 섬 관광 수요 창출 및 편의 개선 사업, 옹진군

학업 및 기타 등의 스트레스를 풀기위한 여러 행사 시행. “

지속가능 측면에서 신재생 에너지의 특징과 파력 발전, 조력 발전, 연료 전지의 원리를 정성적으로 설명하고, 에너지 문제 를 해결하기 위한 현대 과학의 노력과 산물의 예를

18) Regnum은 ‘투르크메니스탄 국가사회경제발전프로그램 2011∼2030’과 ‘투르크메니스탄 석유가스 산업 발전 프로그램 2030’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Through this study I know that using the journal Writing of mathematics helps improve students' mathematical disposition in mathematics and rai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