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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을 수 있는 도시, 살고 싶은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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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의 서가 • 42

걸을 수 있는 도시, 살고 싶은 도시

김진유 경기대학교 스마트시티공학부 도시·교통공학전공 교수 ([email protected])

걸어다닐 수 있는 도시

(원제명: Walkable City)

제프 스펙 지음 박혜인 옮김

사람에게 걷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직립보행이 인류에게 가져다준 많은 특혜를 오 늘 우리는 잊고 사는 경우가 많다. 지구상의 생명체 중 유일하게 서서 걸어 다니는 존재 임에도 불구하고 기회만 있으면 걷기를 포기한다. 그런데 찬찬히 살펴보면 신이 우리에 게 부여한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능력은 그리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네 발로 걷는 것에 비해 훨씬 높은 위치에서 앞을 바라볼 수 있으니 주위를 살필 수 있는 능력이 크게 향상 되었다. 땅으로부터 앞발을 해방시켜 손을 만들었으니 걸으면서 다양한 일을 볼 수도 있 다. 이를테면 아이스크림을 먹는 즐거움 말이다. 코와 입도 그만큼 높아졌으니 땅에 묻어 있는 여러 세균으로부터 훨씬 안전해졌다.

마차를 타던 시대를 지나 자동차와 킥보드까지, 수많은 탈것은 걷는 사람들을 유혹한 다. ‘걷지 말고 타고 가자’라고. 탈것의 전성시대에 걷기는 이제 그 가치를 잃은 것일까.

아니다. 오히려 날이 갈수록 걷기는 훨씬 더 중요해지고 있다. 현대인의 최대 관심사인 건강은 걷기와 직결되어 있다. 걷지 않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기 껏 자동차를 타고 피트니스센터에 와 러닝머신 위에서 걷는 것이 아니겠는가.

미국 도시계획가 제프 스펙(Jeff Speck)의 「Walkable City(걸어다닐 수 있는 도시)」는 도시에서 우리가 왜 걸어야 하는지, 걷기 좋은 도시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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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고 유익한 이야기들을 풀어 놓는다. 80개가 넘는 도시계획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미국 8개 대도시 시장들의 모임인 ‘도시 디자인 시장 협의회(Mayors' Institute on City Design)’에서 4년간 간사 역할을 했던 저자는, 이 책에서 미국 대도시들의 자동차 중심구 조가 가진 폐해를 지적하고 비판한다. 예를 들어 미국 도시의 구조는 차를 중심으로 설계 되어 있는데, 주차장 한 면을 만드는 데는 평균 4천 달러가 필요하고 지하주차장은 그 10 배인 4만 달러가 들어간다는 UCLA 도널드 슈프(Donald Shoup) 교수의 분석결과를 전 하고 있다. 이 결과는 얼마나 많은 도시의 토지가 주차장으로 낭비되며, 거대한 주차장이 얼마나 도시를 걷기 싫은 공간으로 만드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리나라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통상 주차장 한 면을 만들려면 진입로와 회차로 등 을 포함해 30㎡가 넘게 필요하다. 서울시청의 경우 1면의 토지 가치는 공시지가로만 따 져도 1억 5천만 원 정도다. 100대가 주차할 공간을 확보하려면 땅값만 150억 원이 드는 것이다. 우리가 도시에서 차를 놓고 걸어 다니면 이 비싼 땅값을 절약할 수 있고 더 많은 공간을 온전히 시민들에게 돌려줄 수 있다.

저자는 또한 자동차도로의 확장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한다. 차량 소통을 위해 더 많은 도로를 놓고 기존 도로를 확장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이롭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도로 확 장과정에서 가로수를 없애면 보행자는 더 위험해지고 더 걷기 싫은 거리가 된다고 역설 한다. 더 많은 도로는 더 많은 교통량을 유발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랜 디 샐츠먼(Randy Salzman)의 연구에 의하면 ‘고속도로 길이를 10% 늘리면 짧은 시간 안 에 차량 이동거리가 4~10% 증가한다’. 저자는 도시가 좀 더 지속가능하고 안전하기 위 해서는 도로 폭을 줄이고 나무를 많이 심어서 더 많은 사람들이 걸어다닐 수 있는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 중반부터 걷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되었 다. 시민단체와 도시계획가들이 참여하여 다양한 활동들을 펼치며 도시가 왜 걷기 좋은 공간이 되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는지를 연구하고 실천해오고 있다.

대표적인 학자인 강병기 교수는 ‘걷고 싶은 도시 만들기’ 운동을 주도하였으며, 서울시청 앞 광장을 최초로 제안하기도 하였다. 그 역시 도시에서 걷기가 활성화되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엄청난 효과에 대해 역설한다. 개인의 건강뿐 아니라 탄소배출을 저감시키고 교 통사고도 감소시킨다. 더불어 걸으면서 더 많은 지역주민과 소통하고 지역상점을 이용하 므로 커뮤니티와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강 교수가 대학원 수업 때 한 이야기가 기억이 난다. 청계천 고가를 철거하려는 움직 임에 교통혼잡을 우려하는 전문가들을 향해 이렇게 논평했다. ‘사람들은 매우 현명해서 차가 막힐 것 같으면 대체도로를 찾거나 다른 교통수단을 찾는다.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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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도 난리가 난다고 했지만, 많은 시민들이 전철이나 버스를 이용해 한강을 건너면서 큰 문제가 없었다. 청계 고가를 철거해도 도심도로는 큰 문제 없을 것이다.’ 지금 종로와 퇴 계로를 보면 그 당시 그가 옳았다. 대신 우리는 청계천이라는 귀중한 보행 인프라를 얻 었다.

아직도 우리는 탈것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어디를 가든 튼튼한 두 다리를 놔두 고 무언가를 타고 가야 안심이 된다. 걷다가 차에 치일 수도 있고 킥보드와 충돌할 위험 도 있으니 그만큼 보도가 안전하지 않은 곳이 많다는 반증이다. 절대 강자인 자동차를 피 해 많은 탈것이 보도를 침범하니 보도에서 걸을 때조차 우리는 긴장을 늦출 수 없다.

교통정책도 걷기 싫게 만든다. 눈이 오면 차도는 쏜살같이 치우지만 보도에는 며칠이 지나도 눈이 쌓여 있다. 낙상이라도 당하면 그해 겨울은 우울한 시간이 될 것이니 안전하 게 자동차를 타는 것이 좋다. 덴마크 코펜하겐은 눈이 오면 가장 먼저 자전거도로와 보행 로를 치운다. 이것만 봐도 어째서 그 도시에 자전거와 보행자가 많은지 알 수 있다.

제프 스펙의 책, 「걸어다닐 수 있는 도시」는 재미 있으면서도 큰 울림을 준다. 일반 시 민들이 읽어도 어렵지 않을 만큼 쉬운데, 현대 도시에서 우리가 어떤 지향점을 가져야 하 는지 오랜 경험과 많은 연구결과들을 토대로 설득력 있게 기술하였기 때문이다. 도시에 사는 누구라도 일독을 권한다. 도시계획이나 교통계획, 주택 및 부동산 관련 분야의 전문 가라면 여러 번 읽어도 좋을 것이다.

연구자의 서가 43회 예고

이길제 국토연구원 부연구위원이 다음 호 필자로 나섭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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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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