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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 도시, 지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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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국토 제418호(2016. 8) 국토시론

1830년대 찰스 다윈이 비글호를 타고 남아메리카를 돈 것은 「종의 기원」의 기원이 되 었다. 여기서 우리가 잊을 수 없게 된 것은 갈라파고스라는 이름이다. 제도(諸島), 그 러니까 몇 개의 섬들이 군락을 이룬 이곳은 다윈의 진화론이 태어난 모태가 되었다.

에콰도르에서 서쪽으로 가면 펼쳐지는 태평양의 풍경이다. 사실 다윈 이전에 이미 알 렉산더 폰 훔볼트가 여행을 통해 박물학적 지식의 체계를 쌓았기에 다윈의 진화론이 가능했다. 시베리아는 혹한의 땅으로 이미지가 고착되어 있었지만 훔볼트의 시베리 아 여행은 러시아인들조차 부러워하는 탐험의 전설이다.

그로부터 한 세기가 지난 1930년대 중국과 함께 내륙 아시아를 깊게 돌아온 오웬 래티모어는 유목 문명의 뿌리를 세상에 드러나게 한 뛰어난 문명사가였다. 래티모어 에 의해 우리는 중국을 단지 황허문명으로만 이해할 수 없는, 복합적인 구조를 가진 역사로 바라보는 데 주저함이 없게 되었다. 내륙 아시아(Inner Asia)라는 명칭은 실크 로드 연구에 매우 중요한 공간적 개념으로 작용했고, 아시아가 아니라 유라시아라는 보다 광활한 인문지리적 개념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스페인의 톨레도를 가면, 중세의 도시가 그대로 존속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골 목길마다에 그대로 배어 있는 지난 시대의 흔적은 우리를 시간여행자로 만든다. 13세 기 유럽의 학문에 최고의 위상을 누린 코르도바는 암석으로 된 수도원이 오늘날 위엄 에 찬 도서관으로 변모한 것을 보여준다. 코르도바의 상징물이 납작 엎드려 뛰어오르 려는 개구리라는 것은, 학문의 도약을 의미한다고 한다. 하나의 도시가 역사 전체를 꿰뚫어 어떤 가치를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는지를 도시 자체가 말해주고 있는 셈이다.

스페인이 이슬람과 기독교 문명의 교차로에서 문명의 아말감, 그러니까 융합의 미학 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경이롭기조차 하다.

그 이름만으로도

김민웅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 (globalize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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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문명과 자본주의」라는 역저를 쓴 페르낭 브로델은 프랑스 아날 학파의 중심기둥이다. 그를 이런 역사학의 방향으로 이끈 선배는 뤼시엥 페브르다. 페브르가 늘상 강조했던 것은 인문지리학 의 중요성이었다. 지리적 환경과 역사, 자연사와 인문의 역사가 하나로 통합되는 학문이 아니고서 는 문명의 진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일깨움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역사학에서 이런 통찰력 은 망각되고 있는 형편이다. 한국사의 서술에서 인문지리적 고뇌와 탐색이 치밀하게 결합한 경우 는 안타깝지만 보기 드물다.

페르낭 브로델이 지중해를 중심으로 유럽의 16세기 역사를 써내려갈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인식의 축적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지중해라는 이름 하나로 우리는 유럽의 역사 전체를 관통 하는 흐름을 짚어낼 수 있게 된다. 그의 저작 「지중해의 기억」은 구석기 시대 이후 지중해 문명의 탄생과 성장, 그 변모의 진상을 우리에게 이야

기해준다. 「나의 국토 나의 산하」를 쓴 박태순은 이런 세계적 현실에서 우리의 자존심을 그나마 세워주는 경우다. 결국 따져보면, 우리는 우리 의 국토에서 인문학적 가치를 발견하고 그걸 하 나의 광대한 서사로 만들어가는 데 익숙하지 않 거나 아직은 미숙하다.

빈이라는 도시의 이름을 듣고 떠올리게 되는 문화적 상징은 너무나도 많다. 「세기말 빈」을 쓴 칼 쇼르스케가 파고든 이 도시의 음악, 미술, 정 신분석학, 건축학, 의학의 세계는 하나의 도시가 어떤 문명사적 보고를 지니게 되는지 새삼 깨닫

게 된다. 알렉산더의 헬레니즘이 응축된 고대 이집트의 알렉산더 도서관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일 본 도쿄의 진보초 거리는 또 어떤가? 책의 도시라는 명성이 하나도 퇴색하지 않는 모습 앞에서 숨 이 턱턱 막힐 지경이다. 국토, 도시, 지리는 인문적 가치와 만나 새로운 생명을 획득할 때 그 이름 만으로도 이미 빛난다.

그뿐이 아니다. 그 도시, 그 지리적 환경이 불러일으키는 상상력과 문화예술적 가치, 그리고 지 적 열정은 그 국가의 문명사적 발전에 중대한 에너지가 된다. 이스탄불의 거리를 거닐면서 바라보 게 되는 보스포루스 해협과, 서울의 야경과 함께 보게 되는 한강의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역사와 예술, 문명과 인간의 이야기가 하나로 엉켜 전개되는 풍경이 있는가 없는가의 차이가 아닐까? 한 강을 지나면서 역사의 전설을 하나의 이미지로 볼 수 없는 것은 우리가 어떤 삭막함에 싸여 살고 있는지 알게 한다.

작은 마을의 이야기에서부터 큰 도시에 이르기까지, 이름 없는 들판에서 산등성이에 걸쳐 있는

국토, 도시, 지리는

인문적 가치와 만나

새로운 생명을 획득할 때

그 이름만으로도

이미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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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국토 제418호(2016. 8) 국토시론

성곽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어떤 이야기와 문명의 흔적을 우리의 후대, 세계시민들과 나누고 있을 까? 발길 닿는 곳마다 사실은 너무나도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담겨 있을 텐데, 그걸 발굴하지 못하 고 있는 우리의 책임은 무겁다. 1960년대 급속한 산업화의 과정에서 동대문 일대와 청계천, 그리 고 전차와 시장의 변모만 가지고 이야기를 해도 우리는 한도 끝도 없는 국토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다.

이 뜨거운 여름, 동대문 전동차 역에서 뚝섬까지 가서 겨우 휴가철을 지냈던 이들이 살았던 시 대의 소문을 오늘에 와서 다시 들으면 정겹기 짝이 없다. 영화 ‘마부’가 보여주는 서울의 풍경을 지 금의 서울과 대조하면서 국토의 역사인문학적 서사를 이루어낸다면 어떨까? 정겨운 시대의 숨결 이 오늘에도 느껴지지는 않을까? 톨레도의 성곽 사이로 난 골목과 가로등이 만들어낸 그림에 못

지않은.

누구의 발길이 닿았던 곳인지, 어떤 사연이 사 라진 장소인지, 알지 못하게 된 현실에 놓인 국 토는 그저 무심한 풍경일 뿐이다. 기억이 삭제된 도시와 자연에서 우리가 걸러낼 수 있는 것은 혹 시 숫자나 통계 정도는 아닐까?

피렌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이탈리아, 라스코 동굴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선사시대의 상상력을 모아낼 수 있는 프랑스. 사마르칸트와 「천일야화」가 하나가 되는 역사.

그런 이야깃거리를 세계와 나눌 수 있는 우리 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어떤 동물과 식물들이 우리 산하 어디에 살았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어느 도시의 거리를 거닐면 어떤 시와 소설이 나오는지도 모르는 형편이다. 김삿갓이 있 는 나라인데, 어디 다시 시작하면 뭔가 괜찮은 게 나오지 않을까? 성주에는 참외만이 아니라 성산 가야가 있었다는 것도 요즘들 새삼 알게 된 일이니까.

발길 닿는 곳마다

사실은 너무나도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담겨 있을 텐데,

그걸 발굴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책임은 무겁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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