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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고 위험한 도시를 위한 희망가, 보고타와 메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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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도시 26

문정호 │국토연구원 연구위원([email protected])

무섭고 위험한 도시를 위한 희망가, 보고타와 메데진

영화 ‘Escobar: Paradise Lost’와 드라마 ‘Narcos’

보고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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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

이번에 소개하는 영화와 드라마에 대한 감상평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전설 적 마약사범 파블로 에스코바(Pablo Escobar, 1949~1993)에 대한 잔혹동화 이며 블랙코미디다. 우선은 이 인물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는 게 좋겠다. 파블 로 에스코바는 콜롬비아의 마약왕, 코카인의 제왕이라 불리며, 전 세계 마약시 장의 80%를 차지했던 조직의 보스답게 역사상 가장 많은 돈을 범죄로 벌었다 고 한다. 하루에 6천만 달러를 벌었다는 둥, 현금다발 묶는 고무줄 값만 한 달 에 2,500달러라는 둥 확인할 길이 없는 말도 많이 돌아다닌다. 위키백과에 의 하면, 이 희대의 악당은 콜롬비아 최대 마약밀매 조직인 메데진카르텔을 창설 하고, 세계 최대의 마약 소비국인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코카인을 밀매하였 다. 에스코바의 명령으로 400명 이상이 살해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는 비 행장, 사설 군대, 동물원까지 소유하고 있었다.

들어가기 전에

독자 여러분은 혹시 2014년에 같은 지면에 게재됐던 멕시코 시우다드 후아레스와 미국 엘패소에 관한 글을 기억하실지요? 이번 글은 그 졸고 의 프리퀄(prequel)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것 역시 컴컴하고 우 울한 마약과 범죄에 관한 이야기인지라 제 정체가 의심스러우실 수 있 겠으나, 나름대로는 희망을 말씀드리려 하니 해량하여 주시기 바랍니 다.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영화는 안드레아 디 스테파노(Andrea Di Stefano) 감독의 2014년작 ‘Escobar: Paradise Lost’입니다. 덧붙여 미 국 Netflix의 2015년 야심작인 드라마 ‘Narcos(시즌1 종영)’도 같이 보시 겠습니다.

Escobar: Paradise Lost

(파라다이스 로스트: 마약 카르텔의 왕, 2014) 감독: 안드레아 디 스테파노

(Andrea Di Stefano)

출연: 베니치오 델 토로(Benicio Del Toro), 조쉬 허처슨(Josh Hutcherson) 출처: www.imdb.com(화면 캡처)

Narcos(나르코스, 2015) 감독: 호세 파딜하(Jose Padilha) 출연: 와그너 모라(Wagner Moura), 보이드 홀브룩(Robert Boyd Holbrook) 출처: www.imdb.com(화면 캡처)

보고타, 메데진 위치

● 보고타(Bogota)

● 메데진(Medellin) VENEZUELA

COLOMBIA

BRAZ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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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코바는 무자비한 범죄자이면서도 자신의 고향 메 데진에서는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고 현금다발을 뿌리면 서 주민들을 포섭하여 시의원으로 당선되기도 하였다. 콜 롬비아 당국의 검사와 판사들마저 에스코바에게 매수당해 수차례에 걸친 기소에도 그의 혐의는 언제나 증거 불충분 으로 종결되곤 했다. 미국 마약단속국(DEA)과 콜롬비아 특수부대가 끈질긴 추격 끝에 에스코바를 검거했지만, 그 는 사법당국을 매수해 개인교도소를 만들어 그 안에 볼링 장과 수영장을 두는 등 호화로운 생활을 이어나갔다. 나중 에 미국 사법당국이 범죄인 인도협약에 따라 에스코바의 신병을 요구했는데, 이 소식을 들은 에스코바는 유유히 개 인교도소를 탈옥했다. 이후 미국의 거센 추격에 꼬리를 밟 혔고 결국 자신의 고향 메데진의 뒷골목에서 비참하게 사 살됐다(정진우 2015).

실낙원(失樂園), Paradise Lost

2015년 가을, 처음 가본 콜롬비아는 참으로 아름다운 나 라였다. 사시사철 온난한 기후와 푸르른 사바나, 남미 대 륙에서 유일하게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안으로 가진 나라, 광활한 국토와 천혜의 자연자원, 유쾌하고 낙천적인 사람 들……. 영화 ‘Escobar: Paradise Lost’의 중심인물인 젊은 미국인 닉(조쉬 허처슨)에게, 특히 아름다운 마리아와 사랑

에 빠진 그에게 콜롬비아는 그야말로 낙원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거기에 다 정하고 부유한 일가친척까지. 문제는 마리아의 삼촌이 파블로 에스코바였 고, 에스코바의 비자금 은닉과정에 새 조카사위인 닉도 피치못하게 개입하 면서 점점 나락으로 떨어져갔다는 것 이다. 친절하고 너그러운 사업가의 가 면을 벗은 맨얼굴의 에스코바는 필요 하면 가족과 동료조차도 제거할 수 있 는 절대 악마였으니, 그 관계의 끝은 결국 17세기 존 밀턴 (John Milton)이 그려냈던 실낙원보다 더욱 야비하고 처절 한 파국일 수밖에…….

미국 드라마 ‘Narcos’는 에스코바의 성장(?)과 몰락의 과정을 연대기적으로 그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를 검 거하기 위한 미국 마약단속국 요원과 콜롬비아 경찰의 집 요한 추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에스코바는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말까지 세계 최대 마약조직 메데진카 르텔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반대파나 경찰, 군인, 관료 등 을 가차 없이 살해했고 ‘역사상 가장 잔인하고 무자비하며 야망에 가득 찬 위험인물 1위의 마약상’이라는 악명을 얻 었다(홍승완, 이연주 2015). 자국 콜롬비아의 정치인과 공 무원들에게 뇌물 공세는 기본이고, 말을 잘 듣지 않거나 자신을 손해보게 만드는 사람은 자신이 직접 나서서 죽이 곤 했다. 뿐만 아니라 1990년 세 명의 대선후보 살인사건, 아비앙카 항공 여객기 폭파사건, 보고타 시내 빌딩 폭파사 건 등 테러사건도 주도했다. 심지어 드라마에서는 반정부 테러조직을 사주하여 대법원 판사의 절반을 살해하는 사 건도 저지른 것으로 묘사되었다.

어느 누구도 다른 이의 불행을 초래하는 행복을 누릴 권 리는 없다. 실낙원의 은유는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지만, 필자는 “에스코바의 낙원은 그를 제외한 다른 모 든 사람들, 특히 콜롬비아 국민, 메데진 시민에게는 지옥이 영화와 도시 26

영화 ‘Escobar: Paradise L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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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을 것”이라고 해석한다. 콜롬비아 중앙정부만큼 돈 많은 에스코바가 지역사회에 아낌없이 돈을 뿌리니 한때나마 그 의 근거지인 메데진에서 일부 시민들은 그를 너그러운 자 선가·사업가이자 정치인으로 보기도 했을 것이다. 메데진 이나 자신의 돈과 권력이 통하는 수도 보고타는 에스코바 에게는 낙원이었을 법도 하다. 물론 에스코바 덕을 보는 부 하, 친지들이나 일부 메데진 시민에게도. 그러나 그런 낙원 의 향유는 결코 정당하지도 않고 지속되지도 않는 기만적 인 신기루였다. 그의 마약은 수많은 사람들과 가정을 파탄 으로 몰아가고, 그의 조직과 폭력은 도시와 지역사회를 무 섭고 위험한 야만적 상태로 만들었으며, 그의 기만과 양면 성은 결국 모든 이의 불행을 가져오고 말았다.

아름다운 도시 보고타, 더 아름답다는 메데진

Mac Hardy(2012)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 10곳에 콜롬비아 보고타를 포함시켰다. 그 이유는 마약조직, 납 치, 폭력 등이 만연하다는 것이었다.1) 그러나 지난 가을 우연찮은 기회로 가서 보게 된 보고타는 매우 평화롭고 활 기차 보였다. 물론 도시의 이면에서 일어나는 무섭고 위험 한 일들을 며칠 머무는 나그네가 어찌 다 알아챌 수 있을 까마는, 적어도 일상으로 오가는 시민들의 표정은 매우 평 온해 보였다. 에스코바 이후 20년이 넘었으니 그 악영향 도 많이 옅어졌을 것이고, 완전히는 아니겠지만 치안·방 범 상태도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덕분에 필자도 짬이 날 때 보고타 시내와 인근지역을 제법 돌아볼 수 있었다.

1) 2012년에 포스팅된 것이고, 엄정한 기준도 없어 전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수긍이 가는 기사라고 생각함.

3 4 1 2 1 구시가지(La Canderalia)를 오가는 시민들

2 볼리바르 광장 3 공원과 벼룩시장

4 멀리 몬테라세 언덕이 보이는 Trans Milenio 정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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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시대의 고풍스런 구시가지, 19세기 초반 중남미 독립투쟁의 영도자 볼리바르 장군을 기리는 광장, 보고타 시내가 한눈에 굽어보이는 몬테라세 언덕, 콜롬비아가 자 랑하는 ‘뚱보 모나리자’의 화가 보테로 미술관, 보고타 북·

서쪽의 신시가지, 남쪽의 저소득 지역, BRT 역할을 하는 Trans Milenio, 강남스타일 분위기의 소나 테(Zone T) 등 보고타는 매우 아름답고 활기 넘치는 도시였고, 그러면서도

주택, 교통 등 해결해야 할 도시문제가 산적한 필자와 같은 직업의 사람에게는 너무나도 매력적인 곳으로 느껴졌다.

보고타에서 당시 필자의 공식적인 일정은 콜롬비아의

‘제3차 국가도시포럼: 도시와 교훈, 분쟁종식 후 평화의제 (The 3rd National Urban Forum: Cities and Lessons, a Post-Conflict Agenda)’2)에 참석하는 것이었는데, 이 자리에서 전국 여러 도시에서 온 시장, 공무원 등 많은 사 영화와 도시 26

2) 콜롬비아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무장혁명군(FARC)이 발호하여 고통을 겪어왔는데, 지난해 정부와 반군 간 ‘화해’에 합의함. 이 포럼의 주제는 향후 콜롬비아 주요 도시의 평화 정착을 위한 방안 및 국토·도시개발을 통한 콜롬비아의 발전방향을 논의하는 자리로 마련됨.

지금은 관광용으로 활용되는 협궤열차(좌), 나치 아이콘 낙서가 못내 궁금했던 주택가(우) 메데진 보테로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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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물론 필자의 가장 큰 관심은 메데 진에 있었다. 에스코바와 마약카르텔을 염두에 둔 필자의

“메데진은 어떤가요?”라는 우려 섞인 물음에 메데진 출신 을 포함한 많은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얘기는 “보고타 정도는 비교도 안 되게 아름다운… 반드시 와봐야 할… 특 히 여성들이 아리따운…”이었다. 이방인의 무지한 우려는 기우였고, 다음엔 꼭 메데진에 가보리라는 생각만 가득 들 었다. 메데진시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이제는 안 전하다’라는 점이 매우 강조되어 있다는 점만 참고삼아 말 씀드린다.

다시 일어서는 도시는 아름답다

패티 김의 노래 ‘서울의 찬가’를 기억하시는가? 1969년 발 표된 “아름다운 서울에서, 서울에서 살렵니다”라는 노래는 그야말로 국가대표 건전가요다. 전쟁 후 16년, 경제개발 5개 년계획 8년차, 동족상잔의 악몽과 절대빈곤의 질곡을 지나 이제 막 경제성장의 궤도에 오른 대한민국, 서울의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판자촌과 시궁창, 콩나물 버스에 무 엇 하나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을 가난한 나라의 대책 없이 팽창하기만 하는 대도시, 그런 서울이 아름다웠을까?

그랬다! 그래야만 했다! 서울의 아름다움은 겉모습에 있 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희 망과 활력이, 그 순수한 에너지가 뿜어내는 향기와도 같았 을 것이다. 메데진과 보고타 역시도 아름답다. 아직은 가 난한 편에 속하는 나라 콜롬비아, 국가도 어찌 못하던 극 악무도한 마약사범 집단에 20년을 시달리던 도시들, 백주 대낮에도 어디선가 총소리가 들려오고, 자고 나면 골목 한 쪽에 시체가 나뒹구는 처절함을 겪어낸 사람들. 그 도시들 이, 그 사람들이 이제 도시찬가와 희망가를 부르고 있으니 그저 아름답다.

참고문헌

정진우. 2015. [Saturday] ‘공공의 적’ 세계의 마약왕. 중앙일보. 7월 18일.

http://news.joins.com/article/18265903. (2016년 1월 6일 검색).

파블로 에스코바르.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 (2016년 1월 6일 검색).

홍승완, 이연주. 2015. 美 드라마 ‘나르코스’로 다시 주목받는 자산 30조원

‘전설의 마약왕’ … ‘파블로 에스코바르’. 9월 19일. http://superich.

co.kr/superich/view.php?ud=20150918001093&sec=01-74-03 (2016년 1월 6일 검색).

Mac Hardy. 2012. Top 10 Most Dangerous Cities In The World.

GetTopTens.Com. May 4. http://gettoptens.com/top-10-most- dangerous-cities-in-the-world/ (2016년 1월 6일 검색).

글을 마치며

세상에는 죽은 도시도 많고, 죽어 가는 도시도 많이 있습니다. 모진 시련을 겪고 있는 도시도 많지요. 특 히 개발도상국에는 우리가 잘 모르는 엄청난 일을 당하는 도시들이 많습니다. 지난 1월 2일 ‘범죄와의 전쟁’을 선언한 멕시코 테믹스코시의 새로 선출된 여 성 시장이 취임 선서를 하고 24시간도 채 되지 않아 괴한의 총격으로 피살됐다는 뉴스가 있었지요. 콜롬 비아 메데진카르텔이 와해된 후 요즘 마약전쟁으로 제일 심한 홍역을 앓는 나라가 멕시코랍니다. 그런 곳에서도 부디 도시찬가와 희망가가 들려오기를 소 망해봅니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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