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맛있게 그림보기] ④ 정답 없는 <무제, Untitled>의 맛 찾기

N/A
N/A
Protected

Academic year: 2021

Share "[맛있게 그림보기] ④ 정답 없는 <무제, Untitled>의 맛 찾기"

Copied!
6
0
0

로드 중.... (전체 텍스트 보기)

전체 글

(1)

그림보기

④ 정답 없는 <무제, Untitled>의 맛 찾기

무제 1-VI-70 #174 (Untitled 1-VI-70 #174), 김환기, 1970년.

(2)

정답이 없는 그림

막 7살이 된 딸과 우연히 모 갤러리의 김환기 회고 전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아이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서 벽에 걸린 그림들을 보는 모습에 신기해 하면서 연신 미소를 머금고 조용히 작품들 사이를 돌아다녔 다. 한참을 제목 한번, 그림 한번 보던 아이는 <무제>

라는 작품 앞에서 멈추어 한참을 바라보았다.

“엄마, 무제가 뭐야?”

“어, 그건‘제목 없음’이라는 뜻이야.”

“왜 제목이 없어?”

“글쎄……그건 아마도 작가가 자기 생각보다는 보 는 사람 마음대로 그림을 보라고 해서 그런 것 아닐 까? 너는 이 그림이 무얼 그린 것 같아?”

“음. 어, 나는 하늘을 나는 새들이 막 같이 움직이는 거 같은데. 맞나?”

“글쎄, 맞을껄. 정답은 없거든.”

“정답이 없어? 왜 정답이 없는데?”

“……”

이쯤에서 나는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아이 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 저 무수히 많은 푸른 점들이 알알이 박혀 있는 김환기 의 <무제>에 대해, 이것이 한국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한국 추상화의 거장 김환기가 말년에 그린 작품이며, 유명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의 작품의 연작 시리즈 중 하나라고 이야기 해준들, 아이의 눈높 이에 맞는 설명이 되지 못할 것이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산월>, <항아 리> 등, 분명한 지시적인 단어가 제목으로 달린 작품 들을 뒤로 하고, 아이는 유독 <무제>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제목이 없는 그림, ‘이것은 무엇이다’라는 그 어떤 지시도 없는 그림, 정답이 없는 그림 앞에서 아이는 무슨 재미난 수수께기라도 만난 듯, 멀리 떨어 져서 보기도 하고, 코 앞에서 다시 보기도 하면서 제 재주껏 그림을 맛 보았다. 정해진 맛이 없기 때문에,

아이는 제 입맛대로 즐겼을 것이다.

지금까지 3회에 걸쳐, 맛있게 그림을 보는 간략한 몇 가지 시식법들을 소개하였다. 맛있게 그림을 보는 첫 번째 열쇠는 스토리텔링, 즉 그림 속 이야기를 추 리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림의 내용과 형식이라는 것을 이분해서 그 관계를 살펴보는 것이며, 세 번째는 그림 속의 화자를 찾아서 작가의 시선을 따라 가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으로(결코‘끝’일 수는 없 겠지만), ‘아무 것도 없음’, ‘無의 상태’라는 제목이 달린 그림의 시식법을 소개하려 한다. 이 마지막 <무 제> 바라보기는 앞서 소개한 그림 보는 방식들과는 이율배반적이라 할 수 있다. 기껏 그림 안에 있는 스 토리를 찾아 보고, 형식과 내용도 쪼개어 보고, 그 안 에 있는 작가의 시선이나 화자의 시선을 찾아보라 하 더니만, 이제 와서 이 모든 것을 잊으라 하니, 그럴 법 도 하다. 그러나 <무제> 맛보기는 뷔페 레스토랑에 들 어서는 것과 같다. 이 안에서 모든 시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맛있게 그림보기 - ④ 정답 없는 <무제, Untitled>의 맛 찾기

무제, 김환기, 1965년.

(3)

현대 미술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우는 전시회를 둘러 보다 보면, 작품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그림 의 내용과 형식도 모르겠고, 화자의 시선 따위도 없는 그림들을 만나게 된다. 오리무중인 관람자 앞에 제목 이라도 한 줄 붙여주면 수수께끼라도 풀리련만, 작가 는 그마저‘불친절하게도’지워버리고 떡 하니 <무제, Untitled>라는 제목을 걸어두기도 한다.

<무제> 타이틀을 단 작품들은 현대 미술 중에서도 이른바, ‘모더니즘 회화’라고 분류되는 추상화 작품들 이 대부분이다. 모더니즘과는 다른 것으로 정의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경향을 담고 있는 작품들에도 <무 제>가 많다. 결국, 무제는 20세기 이후의 회화를 포함 한 예술의 한 경향으로 볼 수 있겠다.

흥미로운 사실은 유럽에서 명작들이라 부르는 많은 고전 작품들이, 작가가 실제로 작품 제목을 붙인 것이 아니라 화상이 작품들을 구분하여 보관하기 위해 재 고번호를 붙이거나 별명을 붙인 것에서 유래하였다는 점이다. 지난 호에서 보았던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작품도 작가가 제목을 단 것이 아니라 후대에 별명처 럼 붙여진 것이다. 사진이 출현하기 이전 시대의‘그 림’이 가졌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가 현실 또는 사물의‘재현’이었으며, 작품의 제목은 자연적으로 작 품 속의 표현 대상, 즉 선명한 주제(theme) 또는 대 상(object)이 바로 제목이 되었다. 르네상스 시대 이 후부터 산업혁명 이전까지, 그림은 예술성의 표출이 기 이전에‘현장의 기록’이었다. 그러나 사진이 출현 하면서 더 이상‘똑 같은 모방’의 의미가 그 설 자리 를 잃게 되었고, 더욱이 산업 혁명 이후에 인간 존재 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가중되면서, 회화는 작가주의 영역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 즈음의 화가들은 패트론 (patron, 후원자)에게 돈을 받고 그림을 그리는 하청 업자가 아닌, ‘자의식’을 가진 주체로서 자기의 욕망 에 따라 그림을 그렸고, 이렇게 자식처럼 만들어낸 작 품에 제목을 지어주고, 서명을 남겼다. 그러다가 다시

는 다르게, “이름을 정하지 않은”작품이다. 과거에는 딱히 이름을 부를 이유도, 그럴 필요도 없었던 것에서, 이제는“감히 함부로 내 이름을 부르지 못하게”이름 자체를 지워버린 것이다. 이렇게 고상하고 고매한 본 질 앞에 그 어떤 설명적인, 지시적인 제목조차 필요 없다고 주장하며 알짜배기 그 자체로 향유하고자 하 는 것이 모더니즘 예술의 특징 중 하나다.

모더니즘은 결코 단 몇 줄의 요약으로 정리할 수 없 지만, 회화에서 모더니즘의 경향이 추상화로 이어졌 다는 것은 분명하다. 20세기 초부터 시작된 서구의 추 상화 경향에 따라 일부 작가들은 자연, 사람, 물건 등 구체적인 형상의 재현보다는 선, 면, 색채 등의 시각적 요소들로 함축하여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모 더니즘적 회화의 시각에서는 형상의‘재현’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진정한 예술의 의미라고 본다. 더 이상 환원될 수 없는‘본질적 상태’로 들어가는 것이 야말로 바로 인간 이성의 완성이라고 보는 것이다. 일 종의‘열반’이다. 모더니즘을 주장하는 작가들은 이러 한 작품들을 순수미술 혹은 추상미술이라고 부르면서 지시적 제목들이 지우는 작업들을 하였다.

네 멋대로 내 이름을 불러다오 - 포스트모더니 즘의 <무제>

작품을 <무제>라고 이름 지웠다고 해서, 작가가 실 제로 자신의 작품을 더 어렵게 보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이 좀 더 자유롭기 를 원하는 차원에서 제목을 주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리하여 작품은 감상자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저마 다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수용자 중심의 해석 은‘저자의 죽음’으로 귀결된다며 20세기 초반의 철 학자들 간에서 설전을 벌이게 된다. 프랑스 구조주의 철학자이자 비평가인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는「저자의 죽음(The Death of the Author)」(1968) 에서“독자의 탄생은 저자의 죽음으로 가능해진다”

(4)

맛있게 그림보기 - ④ 정답 없는 <무제, Untitled>의 맛 찾기

하였다. 이어 미셸 푸코는「저자란 무엇인가」라는 에 세이에서 저자는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작 가와 텍스트(회화에서는 작품의 내용과 형식), 그리 고 독자(회화에서는 관람자)가 결합된 것으로 파악하 였다. 이와 관련한 많은 비평 이론들이 인문학자들 사 이에서 설왕설래하였지만, 어쨌거나 20세기 이후, 전 통적인‘작가’개념은 위협을 받았고, 스스로 그 자리 를 박차고 나오면서 독자나 관람자와의 소통의 방법 이 달라졌다는 것은 분명하다. 게다가 유비쿼터스 시 대를 살아가는 21세기에는 수용자가 곧 저자가 되는 길이 더욱 다양해지고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저자의 죽음’논쟁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 더니즘이 서로 왈가왈부하는 내용 중 하나다. 포스트 모던을“탈근대”(여기서 근대는 modern, 즉‘현대’ 다) 혹은‘후기 근대’로 번역된다. 말 뜻 그대로 보자 면 포스트모던은 모던의 이후의 시대 혹은 관념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시간의 흐름으로 구별되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 철학자, 쟝-프랑소아 리오타르 (Jean-François Lyotard)는 포스트모던은 특정한 시 대에 대한 명칭이 아니라 특정한 견해에 대한 명칭으 로 보았다고 한다. 리오타르가 포스트모던에 대해 설 명한 부분을 살펴보자. 리오타르는 과거 계몽주의 전 통에서 이어져 온 모든 진리주장을‘메타내러티브 (metanarrative)’또는‘거대담론(grand discourse)’

이라고 부르면서, 모더니즘은 이러한 거대한 이야기들 중 하나라고 보았다. 그런데 이러한 큰 이야기들은 스 스로가 진리라고 믿으며 나름을 실천윤리를 세계에 강요하는데, 전체주의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시작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체주의와 싸우는 방법은‘거 대한 이야기’의 반대편에 서 있는, ‘작은 이야기들 (petits récits)’을 사용하는 것이라 했다. 좀 쉽게 풀 어보자면, 윤리적이고 권위적이며 도덕적인 어떤 것 앞에 이와는 정반대되는 보잘것없고, 어둡고, 세부적 이며, 경우에 따라 부도덕한 것으로 가득 찬 어떤 것 을 마주 보게 하는 것이다. 우아하고 완벽한 것 앞에 서 제대로‘망가지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리오타르는

이들 사이에서 발생하는‘갈등이나 차이 (different)’

의 미학이 곧 포스트모던의 조건이라고 설명한다. 그 가 생각한 포스트모던 예술의 과제는 작품의 관람자 가 시간과 공간 안에서 길을 잃고 어리둥절하게 하는 것이다.

(모더니즘+포스트모더니즘)vs(직관+설정의 역습)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이라는 것 자체가 논란의 여지 가 있다. 애당초 모더니즘이니 포스트모더니즘이니 따위의 구분 자체에 회의적인 학자들도 있으며, 정치 적인 이데올로기를 구별하기 위한 것으로, 피상적이 며 위선적이라는 주장도 더러 있었다. 그 시끌벌쩍을 굳이 이 곳에 옮길 필요는 없겠다. 어쨌거나, 20세기 후반의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간의 논쟁으로 예 술이 더욱‘가까이 하기엔 먼 당신’이 된 것만큼은 어 느 정도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꼬여있는 것처럼 보여도, 가까이 다가서 보면 생각보 다 맛있게 그림을 맛 볼 수 있다.

모더니즘은 순수, 원형 그 자체로 접근하고자 형상 을 지우고, 설명을 빼고, 제목 마저 사라지게 했다. 그 러하다면, 작품에서 원액 그대로를 채취하여 마치 아 무런 양념 없는 감자 한 톨을 그냥 입 안에 넣고 씹어

Orange, Red, Yellow, 마크 로드코, 1961, 캔버스에 아크릴, 개 인소장

(5)

무런 간도 되어 있지 않는 감자의 원초적 맛, 당근의 원초 맛을 사실 가만히 음미하노라면, 그 안에 쓰고 달 고 짜고 새콤한 온갖 맛을 느낄 수 있다. 이 그림들도 이와 다를 바가 없다. 그림에서 느껴지는 것은 저 옛날 플라톤이 부르짖던 이데아(idea, 이상/원형)일 수도 있고, 리오타르가 말하는“숭고의 미 (aesthetics of the sublime)”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모더니즘 회화를 대표하는 추상화가 마크 로드코 (Mark Rothko, 1903

∼70)의 작품을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그저 종이 위 에 세 가지 색상으로 칠해져 있다는 사실 외에 도저히 무언가를 느낄 수 없다면, 저 작품이 지난 2012년 5월, 뉴욕 크리스티에서 8,688만 달러(당시 약 987억원)에 팔린 작품이라는 것을 다시금 상기해보자. 김환기 화 백이 1965년에 그린 <무제> 작품은 2012년 5월 홍콩 크리스티에서 1억 6000만원에 낙찰되었다. 아무리 거 품가격이 붙었을지언정, (그리고 예술 작품의 가격과 예술성과 그 가치의 상관 관계가 반드시 비례하는 것 은 아니지만!) 마크 로드코의 작품이 미술사에서 차 지하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도 차지할 위상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며, 이를 인정하면서 추상 회화가 세계사

반드시 어떤 강렬한 감동을 느껴야만 하는 것은 아니 다. 하나의 작품을 통해 어떤 사회를, 역사를, 작가라 는 어떤 사람을 회고하고, 보고, 느끼면 되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대변한다는 작품들에 감상 또한 이와 다를 것이 없다. 신디 셔먼(Cindy Sherman)은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의 지평에서 셀프 포트레이트 (self-potrait)로 주목 받는 구성사진(설정사진) 예술 가다. 그녀의 사진 작품 대부분이 <무제>다. 신디 셔 먼의 1970년대 <무제> 시리즈는 우리가 현대를 살면 서 언제 어디서든 한번은 보았음직한, 그저 어떤 여인 의 사진들이다. 그녀가 1980년대 이후에 전개하였던 패러디 시리즈와 섹스-마네킹 시리즈 등에서는 탈구 조적, 해체적‘차용(appropriation)’을 보여주는 대표 적 작품으로 종종 소개된다. 그녀는 자기 자신을 모델 로 하여 평범하고, 어둡고, 불쾌하여 어딘가‘미 (beauty)’와는 먼 것처럼 설정한다. 그러나 오히려 자기 자신을 하나의 예술적 대상으로 삼으며, 그 자체 로 예술의 완성이라고 주장하는 포스트모더니티의 강 한 자의식만큼은 모더니즘의 그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유혈이 낭자하고 비속한 섹스가 넘쳐나는 B급

<무제 필름 스틸, Untitled Film Stills, #15>, 1979. <Untitled # 216>, 1989.

(6)

맛있게 그림보기 - ④ 정답 없는 <무제, Untitled>의 맛 찾기

호러 영화와 같은 작품이 오히려 극단의 이성주의를 보여준다는 것이 가능하겠냐고 할 수 있겠지만, 실제 로 이러한 역습은 예술의 세계에서 종종 일어나고 있 다. 이러한‘망가짐 보여주기’로 표현 방법을 바꾼 현 대미술 또한 쉽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하나의 점, 하나의 색만을 던져놓은 모더니즘 추상화보다는 포스트모던 취향의 작품들을 맛보는 것이 아무래도 수월하긴 할 것이다. 이러한 작품들을 맛 볼 때는 직 관보다는 숨겨진 코드를 찾아내고, 그 안에 설정 또는 차용된 것에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신 디 셔먼이 아기 인형을 안고 가짜 유방을 가슴에 달 고, 르네상스 시대의 성모상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포 즈로 서 있는 작품을 보자. 관람자가 이를 성모상에 대한 조롱으로 여기든, 그냥 중세시대 의상을 입은 정 신 나간 여자가 인형에게 젖을 주려 하는 공포영화의 한 장면으로 상상하든, 아마도 신디 셔먼에게는 보는 이의 관점이 그 어느 쪽이어도 관계 없을 것이다. 분 명 그녀 자신에게는 어떤‘의도’가 있었을 것이나, 그 것이 관철되지 못했다고 해서 그녀가 슬퍼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이미 그녀 자신을 하나의 예술적 대상 으로 삼은 사진이 예술이라는 지위로서 당신에게 보 여졌고, 그것이 그녀가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머지의 여타의 해석은 즐거운 유 희로 즐기면 된다.

정답이 없다는 즐거움, 그 무한한 맛

“엄마, 무제가 뭐야?”

“어, 그건‘제목 없음’이라는 뜻이야.”

“너는 이 그림이 무얼 그린 것 같아?”

“음. 어, 나는 하늘을 나는 새들이 막 같이 움직이는 거 같은데. 맞나?”

“글쎄, 정답은 없거든.”

“정답이 없어? 왜 정답이 없는데?”

왜 정답이 없느냐는 딸 아이의 질문에 그 즉시 해주 지 못했던 답을, 이제 다시 해주어야 할 것 같다. 그림 을 보는 방법에는 하나의 정답이란 있을 수 없다. 그 림 자체가 하나의 질문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푸코가 지적했듯이, 그림이 던지고 있는 질문에 대한 답은 작가의 몫도 아니며, 오롯이 관람자의 몫도 아닌, 그림을 둘러싸고 있는 외부의 모든 것과 삼자대면으 로 찾아나가는 답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모범답안이 있을지는 몰라도 정답이라는 것은 없다.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통해 인간 스스로가 고백했듯이 모 든 것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며, 이 불확실성이 우리에 게 즐거움, 유희를 주는 예술의 에너지다. 그림 앞에서 두려워하지 말자. 마음껏 이 에너지를 당신 안에 채우 고 누리길 바란다.

“응, 정답은 없단다. 지금 네가 보는 같이 막 움직이 는 새들은 분명히 저 그림 속에 있을거야. 그런데, 네 가 20살이 되고 40살이 될 때, 그때 다시 저 그림을 보 렴. 아마 그때는 또 다른 답이 보일거야. 기대되지?”

송주영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예술학과에서 미술사, 미학, 예술경영을 배우 고 오하이오 주립 대학(The Ohio State University)에서 미술교육 으로 석사(MA)를 받았다. 수년간 디자인 전문지 기자로 근무하면 서 디자인과 예술에 관한 다양한 저술을 하였고, 서울디자인페스티 벌, 디자인코리아 등 다수의 국제 디자인 전시를 기획, 연출하였다.

현재는 예술관련 서적의 번역과 편집을 하며 프리랜서 저술가로 활 동하고 있다.

참조

관련 문서

인간 이외의 살아 있는 유기체에 대한 음악의 영향에 대한 일 부 실험들은 유명하다. 특별한 음악 작품들이 연주되었을 때, 암탉들 은 더 많은 알을 낳았고 젖소들은 더

n 엘리자베스 시대는 정치, 지리상의 발견, 문학, 고전 연구 등 르네상스 적 요소들이 한 데 모여 세익스피어를 비롯하여 크리스토퍼 말로우, 벤 존슨 등 수 많은

자동차 왕이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는 미국의 헨리 포드는 1908년 가솔린뿐만 아니라 알코올을 사용하는 모델로 포드-T를 내놓으면서 이 모델은 알코올 자동차의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사용빈도와 기간에 따라 구분하여 필요 없는 것을 제거하는

따라서 힌데미트의 &lt;Sonata forfl ute and pi ano(1936)&gt;을 분석대상으로 선정하였다.이 곡은 많은 작품 가운데 그의 음악관이 스며들어 있을 뿐만

현재 고추는 그 자극적이고 독특한 맛 그리고 여러 항산화성분 및 c aps ai c i n에 의 한다는 다이어트효과로 인해 국내뿐만 아니라 고추를 즐기지 않았던 다른 여러

절대자적인 시점에서는 작가가 산수화를 통해서 표현 하려고 하는 이상향의 완성 뿐 아니라 작품 내에서 존재 하는 또 다른 관점 보다 더 높은 곳에서 그림의 틀

포스트잇에 적인 내용들을 마인드맵 형식으로 나누어봅시다.. 여름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