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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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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색담론에 대하여 백색담론에 대하여백색담론에 대하여 백색담론에 대하여

한국인의 미의식 논의에 대한 비판적 고찰 한국인의 미의식 논의에 대한 비판적 고찰 한국인의 미의식 논의에 대한 비판적 고찰 한국인의 미의식 논의에 대한 비판적 고찰 ::::

이 인 범 이 인 범 이 인 범 이 인 범 * ** *

1)

목차

들어가며

백색선호 양상과 전거들 .

담론의 촉발 .

담론의 전개 .

담론의 성격과 근본문제 .

맺으며

들어가며 들어가며 들어가며 들어가며

이 글은 지난 세기 한국에서 전개되었던 백색( ) 담론에 관한 미학적 문제 제기이다 여기서 다루려는 백색 담론이 엄격한 의미에서 미학 예술 논쟁의 범주. 안에 묶일 수 있는 것들인지는 다소 의문이다 정치적 종교적 민속적 인류학적. , , , 문제들이 혼돈스럽게 뒤섞여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학적 논쟁이나 예술 논쟁을. , , 더더군다나 서세동점의 문명사적 전환기에 이질적인 가치관이 충돌하던 근현대기 를 향해 학문적 고유성과 순수성이란 관점에서 따져 묻는 것 자체가 온당한지도

이 글은 지난 년 월 일에서 일 중에 일본 마쿠하리에서 개최된 제

( 2001 8 27 31 15

회 국제미학회 (International Congress of Aesthetics) 특별심포지엄 발제문 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1)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 수석연구원

(2)

생각해 볼 일이다.

어떻든 한국에서 근대적 학문으로서 미학 예술학의 성립 전개 과정이나 예술현, 장에서 백색을 둘러싼 논의들이 무성했고 그 영향도 짙게 드리워졌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한국의 조형물들에 두드러진 백색 양상에 주목하여 한때 비애의. 미를 거론했던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 그 이래로 전개되어 온 일련의 한국 예술 , 의 아이덴티티 논쟁들, 1930, 40년대에 민족의 상징 삼아 여러 화가들에 의한 흰 소들이나 흰 옷 입은 인물상들 그리고 지난, 1970년대 후반 국제주의의 만연 속에 화단을 풍미했던 백색 모노크롬 회화 경향들에 이르기까지 그러한 예들은 매우 많 다 이러한 전후사정을 고려해 볼 때 백색에 관한 담론들을 비껴서 지난 세기 한. , 국의 미학이나 예술론의 역사에 다가서기란 그리 쉽지 않다.

이미 민주식은 백색을 한국인들의 삶의 근원상징으로 보고 한국미의 계보 마련 을 위하여 그 미적 의미를 살핀한국고전미학사상의 전개 고전문헌에 나타난 미- 학사상 을 발표한 바 있다. 2) 다른 한편 백의를 한국인들의 복식의 상징적 전형으 로 보고 연구한 논문들은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여기에서 다루려는 것은 한국미. 의 계보를 확인하거나 그 역사적 문헌과 사실의 고증에 목표를 둔 것은 아니다.

백색이라는 색채에 관한 인식론적 문제나 심리학적 접근과도 그다지 관련이 있지 않다 지금까지의 색채학의 성과들로 미루어 보면 색채는 우리 눈이 빛에서 기록. , 할 수 있는 시계의 차이를 나타내는 말을 의미하고 흔하게는 전자 스펙트럼에서, 빛의 파장에 따른 차이를 가리키기도 한다 잘 알다시피 뉴튼에게는 지각된 색채. , 의 본질은 빛의 파장이었던 반면에 괴테에겐 색채는 그 자체가 실재였다 이러한, . 견해 차이는 전자가 색채의 원인에 후자가 그 결과에 눈을 둔 데에서 비롯된다, . 하지만 이 글의 목표는 색채현상의 규명 같은 근대의 자연과학적 관심사들과도 무 관하다.

다만 이 글은 백색을 민족국가 공동체의 미의식의 본질을 지시하는 상징적 기, 호나 혹은 미의식의 특질이라는 생각들 그리고 이러한 한국예술의 정체성에관한, , 근대적 논란의 성립 전개가 안고 있는 의미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과제로 삼을 뿐 이다 다시 말해 근대이래의 한국예술의 정체성 담론 한민족의 미의식을 둘러싼. , ,

2) 민주식 , 「 한국고전미학사상의 전개 고전문헌에 나타난 미학사상 - 」 『 , 한국

미학시론 』 , 고려대학교 한국학연구소 , 1994, 19-24 쪽

(3)

일련의 논란들을 비판적으로 재고하는 데에 있다.

백색 선호 양상과 전거들 백색 선호 양상과 전거들 백색 선호 양상과 전거들 백색 선호 양상과 전거들 .

..

.

지난 세기에 미학이 이 땅에 근대적인 학문으로서 자리 잡는 과정에서 백색이, 라고 하는 조형 요소가 한국의 미나 혹은 예술에 관한 논의에서 화두가 된 것은 근거 없는 일이 아니다 역사서나 고문헌들에서 유독 백색에 관련된 기록들이 심. , 심치 않게 발견되고 있으니 말이다.3) 특히 인간의 일상적 미감을 지배하기 마련인 복식문화와 관련하여 한국인들이 흰옷을 즐겨 입었다는 민속학적 사실은 여기저, 기서 확인된다 한국 고대의 각종 신화나 설화 속에서 역시 백색에 관련된 사례들. 은 무수하게 발견되고 있다 스스로에 의해 혹은 타자들에 의해 한민족이 많은 색. 채들 가운데 특히 백색을 선호함으로써 흔히 흰색은 민족의 색, 4)으로 이야기되고, 한민족은 백의민족 ( )’으로 표상되어 왔다.

타 민족 구성원들에 의해 특히 한국인들이 흰옷을 선호했다고 묘사되고 있는 것 은 여러 장소에서이다 가장 거슬러 올라나는 기록은 삼국지. <위지동이전(

이다 년에서 년경 진나라 진수가 지어 사기 한서 후한서와 더불

)> . 220 280 , ,

어 중국에서 사4 ( )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이 책 부여( ) 편에는 흰옷을 좋아 하여 국내에서는 흰 베로 만든 소매가 넓은 도포와 바지를 입고 가죽신을 신는, 다”5)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 성종. 19년에 명나라 사신으로 왔던 등웨 역시 조선부 에서 조선 사람들이 모두 흰 옷을 입는다고 묘사한 바 있다 근대기 이

< > .

후 서세동점의 시기에는 서구인들의 기록들도 눈에 띤다 예컨대. , 1868년 대원군의 양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도굴했던 독일인 오페르트는 금단의 나라 조선여행 에서

남자나 여자나 옷 빛깔이 모두 희다 고 적고 있다

.

3) 민주식은 고전문헌에 펼쳐져 있는 백색 혹은 백자를 심도있게 발굴하여 그 미학적 의미를 논하고 있다 민주식 위의 논문 . , , 1994, 19-24 . 쪽

4) 구미래는 자신의 저서 한국인의 상징세계 에서 민족의 색 흰색 이라는 장 ‘ , ’ 제목 아래흰색을 한국인의 상징으로 다루고 있다 구미래 . , 한국인의 상징세 계 , 교보문고 , 2000, 54-63 . 쪽

5) 김재선 엄애경 이경 역편 , 한글 동이전 , 서문문화사 , 1998, 57-8 . 쪽

(4)

이렇듯이 타자들에게 한민족의 일상복이 고금을 막론하고 흰색으로 표상되고 있 다 이러한 사례들은 한민족의 생활 습속이나 이에 따른 미의식의 정체성 규정과. 관련하여 백색이 한민족의 상징색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 주는 매우 유의미한 기, 록으로 판단된다.

여러 차례 흰 옷 착용이 금지되었지만 흰옷이 거듭 일상화되었던 역사적 사례, 들에서도 우리 민족에게 흰 옷이 얼마나 일상화되었는지가 반면으로 확인된다 고. 려 충렬왕 이래 조선시대의 태종 세종 숙종 인조 현종 영조 등 여러 왕들은 백, , , , , 의을 금하는 칙령을 내린 예는 수 없이 많다 이유원의 금하필기 에서 기록되고. < >

있는 백의금제와 관련된 다음과 같은 내용은 흰옷 착용 금지라고 하는 나라의 정 책에도 불구하고 한민족에게 흰색이 얼마나 선호되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명종 을축 이후 누차의 국휼을 거쳐 소의( )를 입으니 중국인이 이를 비웃 었다 선조 때 이를 신금하여 사인 무직자들도 홍의 직령을 입었다 현종조에 다시. . 백의를 금해 사대부들이 모두 지켰는데 수십 년이 지난 뒤 다시 문란해지자 거듭, 이를 금하고 청의를 입으라 하였다 영조 년 교지에 이르기를 자고로 나라의 복. 2 , 색에는 숭상하는 바가 있는데 우리나라는 동쪽에 있으니 의당 청색을 숭상해야, 할 것인즉 위로는 공경으로부터 아래로는 사서에 이르기까지 모두 청의를 입으라, 하였다. 6)

그렇지만 이러한 여러 차례의 백의금제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효과가 없었음, 은 다음과 같은 영조14년 월 우참찬 이덕수의 상소에서 확인된다8 .

만물은 동에서 시작하여 서에서 마치는 것이니 동방사람들이 서방의 색을 숭 상하는 것은 유시유종을 위함이다 동방이라하여 청색을 숭상하는 것은 실로 시작. 은 있으나 마무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풍속은 백색을 숭상한다는. 것이 옛 사기에 많이 기록되어 있거니와 이와 같은 풍속을 수천 년이나 이어왔는, 데 지금 바꾼다는 것은 불가하다. 7)

6) 이유원 , 임하필기 , 권 15, 문헌지장 편

7) 영조실록 14 년 8 월조 .

(5)

이러한 현상은 우리 민족의 사상의 밑바탕에서 규제적인 원리로 작동해 왔다고 보여지는 음양오행사상이 적어도 흰색의 사용에 관한한 일률적으로 적용되지 않았 음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한편 고대 신화 특히 국가 탄생 신화 등에서 확인할 수 있는 선호 색 역시 백, , 색이 지배적이다 삼국유사 의 경우 흰색과 관련된 내용의 신화들이 적지 않다. , . 예컨대 햇빛이 부인을 비추어 알을 낳게 되었다는 주몽신화 백마 한 마리가 번개, , 빛을 보이며 알을 놓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박혁거세 신화 황금궤가 걸린 나무 밑, 에서 백계가 울었다는 김알지 신화 등이 그것들이다.8) 이러한 한국의 건국신화는 한국이라고 하는 개별 문화 속에서 존재해 온 이상 그 신화 언중들이 가졌던 세, 계관과 인생관이 알알이 박혀있는 문화유산’9)이라는 점에서 이들이 미학적 가치, 관에 드리워 놓은 의미망이 무엇인지 역시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이와 더불어 대다수 신화의 탄생 모태이기도 한 이른 바 한국의 성산( )들의 이름에는 백‘ ( )’이라는 글자가 들어 있는 것이 숱하게 발견된다 최고의 민족 신. 화라고 받아들여지는 단군신화 속에 나오는 산은 삼위태백( )이었다 백두. 산 장백산 태백산 소백산 백운산 백월산 백암산 백마산 등 현재까지 우리에게, , , , , , , 일컬어지는 산 이름들에도 백 자가 들어간 산 이름은 적지 않다‘ ’ .

담론의 촉발 담론의 촉발 담론의 촉발 담론의 촉발 ...

.

이렇게 민속학적 사실이나 신화소로서 한국에 만연했던 백색이 본격적으로 담론 의 대상이 되기 시작한 것은 제국주의 물결아래 일제에 의해 한국이 식민지로 전 락한 이후의 일이다.

그 최초의 예로서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 )의 문제제기를 들 수 있다 야. 나기는31운동 직후 한국 조형예술에 처음 접하면서 그 주조적인 특징 가운데 하나로 백색을 꼽았다 그리고 이를 민족성 풍토와 관련지어 이를 한국예술의 조. , 형적 특질로 설명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백색 주조 경향을 두드러진 또 다른 하.

8) 삼국유사 , 권제일

9) 나경수 , 한국의 신화연구 , 교문사 , 1993, 21 . 쪽

(6)

나의 선적인 요소와 관련하여 지적했다 그는 수많은 불상들 금동미륵반가상 범종. , , 의 형태와 그 위에 부조된 비천문( ), 고구려 시대 벽화의 선녀도와 사신도, 도자기를 포함한 대부분의 공예품들 지붕의 기와 신발 버선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 , 온갖 예술품이나 인공물들에는 어디에나 곡선이 물결치고 선, ( )이 가늘고 길게 흐르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리고 조선예술이 이렇게 선적인 요소에 지배됨. 으로써 형태의 힘이 부족하고 결과적으로 색채의 결핍으로 이어졌다고 보았다, .10)

야나기가 본 백색 양상은 색의 결핍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그는 한국의 백자. 와 흰옷을 그 예로 들고 있다 그에게 한국의 백자는 은근하긴 하지만 화려하고. 맑지 않은 것이었다 현란한 도자기 색깔을 지닌 중국 일본과 다르게 유약 위에. , 그림을 그리는 수법이 도자기가 흥했던 한국에선 채택되지 않았으며 모두가 은근 한 색조라는 것이다 동북아 국 중 유독 조선에서만 적색 황색 녹색 도자기가. 3 , ,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한국 사람들이 즐겨. , 입는 흰옷이야 말로 그러한 조형적 특징을 드러내는 전형적 사례라고 보았다.

야나기가 한국예술의 조형적 특징을 선적인 요소와 함께 색채의 결핍 현상으로 본 것은 종래의 외래인들의 인상적인 언급 수준을 벗어난 것이었다 그는 이웃나. 라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와 비교하여 한국예술이 지닌 독자성을 확인 하고자 했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예술의 조형적 특징의 원인을 민족의식으로서 비 애미의 표출이라며 미학적 견해로 표명하고 있다 그에게 백색 현상의 근본 원인. 은 생활에서 즐거움의 상실로 읽혀졌다 그에게 한국인들이 즐겨입는 흰옷은 언제. 나 상복이었다 쓸쓸하고 조심성 많은 마음의 상징이었다 백성은 흰옷을 입음으로. . 써 영원히 상( )을 입고 있다.”11)

최남선( , 1890-1957)역시 민족의 기원과 관련하여 한국인들의 백색 선호 에 관해 언급했다 옛 자료들과 현장조사에 근거한 그의 백색관은 백자. ( ) 함축되어있는 것은 종교사상 내지 전문화과정의 핵심을 이루었다.”12)는 그의 말에

10) , の , 6, , 1980, pp. 89 110.

11) 같은 책 , 155 . 쪽

12) 최남선 , 불함문화론 , 신동아 1972 년 1 월호 부록 107 . 쪽 불함문화론 (

은 최남선이 년 발표한 글로서 동방문화의 연원을 밝히고자

) 1925

그 원류로 (Park) 사상에 주목하였고 이 사상의 발원지가 단군신화에 등 ,

장하는 태백산 ( ) 을 중심으로 중국의 동북부 몽고 중앙아시아 일본에 , , ,

이르는 고대사회 대문화권을 이룬다고 제시함 . Park 의 가장 오래된 자형 (

(7)

함축적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야나기와 달리 그는 한민족의 백색 선호경향을 종교. 적인 데에서 찾았다 태양과 하늘을 숭배하던 한국을 중심으로 동북아시아 일대에. 확산되어 있는 사상이라는 신화적 기원이야말로 한국인들의 백색 선호의 기원 이라 본다 그리고 이를 불함문화론. ( )’으로 펼쳤다 백색이라는 지각현. 상을 빛이라는 근원적인 고대 신화적 모티브로 이해한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백‘ ’ . 색이 천공( )을 숭배하던 고대 민족들에게 공통적인 것이라는 종교학자 엘리아 데의 견해를 어렵지 않게 연상시킨다.

그런데 새삼스럽게 백색이 근대기 식민화된 조선에서 왜 논란의 대상이 된 것, 일까 근대 민족국가주의의 성립 전개 과정 속에서 말살과 부정의 대상이 된 한? , 민족 국가의 존재와 도처에서 확인되는 한민족의 흰색 선호 양상 그리고 백색이

민족의 색으로서 지닌 상징성은 어떠한 관련이 있는 것일까

?

무엇보다도 일본인 야나기에서 한국예술에 대한 글쓰기가31독립운동과 한민족 의 수난으로부터 받은 충격에서 시작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그. 의 입장이 한국문화의 독자성의 입증에 초점을 모으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중국. , 일본과 비교하여 한국예술의 독자성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이상하게도 동양의 세 나라에서 세 개의 다른 자연이 대표되고 세계의 다른, 역사가 표현되고 세계의 다른 예술의 요소가 시현되었다 대륙과 섬나라와 반도, . , 하나는 땅에 안정되고 하나는 땅에서 즐기고 하나는 땅을 떠난다 첫째의 길은 강, , . 하고 둘째의 길은 즐겁고 셋째의 길은 쓸쓸하다 강한 것은 형태를 즐거운 것은, , . , 색채를 쓸쓸한 것은 선을 택하고 있다 강한 것은 숭배되기 위해서 즐거운 것은, . , 맛보기 위해서 쓸쓸한 것은 위로 받기 위해서 주어졌다, . 13)

이에 따라 중국이 의지의 예술이고 일본이 정취의 예술인데 비해 한국예술은, , 비애의 미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이 백색의 상징성에 대한 관심은 한. 민족의 미의식의 정체성 규정이라는 첨예한 과제와 동반한다 그런 점에서 백색. 담론은 한국인들에게 정서적 호소력은 강렬했다 백색 담론이 촉발되는 장소는 서.

인 불함 이란 말을 빌려 을 숭상하던 문화권을 불함문화로 일컬음

) ‘ ’ Park .

13) 위의 책 , 99 . 쪽

(8)

세동점과 일제 강점으로 식민화된 현실 근대적인 학문으로서 미학 예술학의 성, 립 전개 민족 국가의 주권 회복을 위한 실천적 노력들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한, 다.

담론의 전개 담론의 전개 담론의 전개 담론의 전개 .

..

.

이렇게 백색담론이 촉발된 것은 서세동점의 시기 일제에 의해 한국의 존재가 부 정되어 식민화되고 식민주의 논리가 집요하게 전개되던 때의 일이다 그것은 억압. 적인 타자에 대한 대항으로서 민족의 미의식 혹은 민족의 기원의 상징화의 성격을 지닌다 그런 점에서 민족이 처한 정치적 위기나 근대 민족국가주의와 무관하지. 않다 최남선은 백색논의를 통해 민족의 근원 설화를 추구하고 있으며 그리고 일. , 본인 야나기는 일제 식민주의를 비판하고 한국미술의 고유한 미적 특질을 규명함 으로써 반제국주의적인 문화 논쟁의 불을 지피고 있다, .

특히 한국인의 미의식을 비애미로 단정하는 실마리로 백색을 끌어 들인 야나, 기의 견해는 논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예컨대 페미니스트 운동과 독립운. , 동으로 투옥되기도 했던 화가 나혜석(1896-1948)은 그의 견해를 그대로 받아들여 한국인들의 평상복인 흰옷이 한색( )이며 음색( )으로된 비애색 ( )” 니 다양한 색채를 사용함으로써 전통의복을 개량운동을 벌일 것을 주장했다.14) 그런가 하면 훗날 한국 철학계의 중심인물이 된 박종홍은 야나기의 비애미론이, 한국인들에게 식민지적 현실을 운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할 위험이 있다며, 야나기를 근대인의 외관상의 선입견에 지배된 견해 15)라고 비판했다 어떤 의미. 에서이든 야나기의 견해는 자연스럽게 민족주의를 고무시켰으며 또한 이후 전개, 된 한국인들의 탈식민주의적 시도에 핵심 쟁점을 제공했다.

우선 백색 양상의 사실 인식의 오류에 관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김양기는 야나, .

14) 나혜석 , 부인 의복 개량문제 김원주 형의 의견에 대하여 ― , 東

년 월 일 월 일자 이구열 나혜석 일대기 에미는 선각자였느니

1921 9 29 -10 1 . , ―

라 , 동화출판공사 , 1974, 67 쪽 참조 .

15) 박종홍 , 조선미술의 사적 고찰 , 개벽 제 27 (1922 호 년 9 월호 ), 25 . 쪽 박

종홍은 조선미술의 사적 고찰 을 개벽 1922 년 4 월호부터 같은 해 10 월호

까지 연재했다.

(9)

기의 반제국주의적 태도는 높이 평가하지만 비애미론에서 단서가 된 백색에 대한, 인식이 민속학적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국인들이 즐겨 입는 사. ( ) 나 면( )으로 된 흰색 평상복을 삼베로 된 상복( )으로 오인하여 흰색의 의미 를 비애로 잘못 읽었다는 것이다 최남선을 따라 그는 한국문화에서 흰색을 단지. , ( , 하늘 즉 태양을 상징하며 밝다는 의미에서 천공), , , ( , 하늘 과 절대신) 하느님 에 대한 믿음에서 천손 을 상징하는 한민족의 심볼 컬러 로

( , ) ( )

이해하고자 했다.16) 한민족의 백색선호가 비애의 표현이기보다는 오히려 주위의 다양한 색채로부터 자타를 구별하기 위한 불멸의 색 궁극의 색이라 말하는 김달, 수의 입장도 다르지 않다.17) 한편 시인 김지하는 선적인 요소과 백색에 대한 야, 나기의 강조가 한국문화에서 다양한 다른 측면을 간과한 부분적인 인식의 결과라 말한다 그는. 18세기의 진경산수화파 고구려 고분벽화 그밖에 조선시대 속화 같, , 은 그 밖의 많은 사례들은 야나기가 언급한 것들과 현격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으 며 비애보다도 약동 내면화보다도 저항과 극복을 고취하는 활력 있는 남성적 특, , 질을 드러낸다고 말했다.18)

이들 비판의 초점은 근대의 문화적 식민성으로부터 벗어나 민족 정체성의 올바 른 이해 유지 보수 더 나아가 새로운 구축에 모아져 있다 즉 한국예술의 특색, , . , 과 전통을 추구하여 그것이 조선미술의 줏대 ( )’라고 고집하는 일은 자아의식의 자각이자 확충이며 독자성의 발휘라는 입장에서 자아의식이 몰각된 생활 자주의, ‘ , 식이 몰각된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백색담론의 전개는 . 민족주의의 강화라는 측면과 탈식민주의의 실현이라는 측면을 보여준다.

예술 현장에서 팽배했던 백색에 대한 관심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서구 문화. 수용의 초기에 화가들이 채택한 방법은 한국인의 미의식을 구별 짓는 상징적 소재 들을 재현해 내는 것이었다 이들의 관심은 서구의 재료 및 기법 양식들의 수용. , 초기에는 소박하게 향토색을 주조색으로 채택하거나 덜 문명화된 자연을 농경문, 화로 묘사하거나 무속 같은 민속적 소재나 전통을 드러내는 기물들을 재현하여, 민족적 자기정체성을 구현해 내는 것이었다 서구 초현실주의의 영향 아래 몇몇.

16) 김양기 , 한국의 미는 비애의 미인가 야나기 무네요시 씨의 정설은 고쳐 ― 져야 한다 , 신동아 , 1977 년 9 월호 , 333 . 쪽

17) 金達 , について , 講 제 13 , 1968 권 年 8 .

18) 김지하 , 현실동인 제 선언 1 , 1969.

(10)

화가나 시인들은 민족의 수난 극복의 미학적 상징으로서 흰소 백마 같은 한국의, 설화나 신화적 소재를 채택하기도 했다 이러한 관심은. 1945년 해방 이후에도 식 지 않았다 서구의 현대미술이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가운데에서도 예컨대. , 년대에 들어 옵 아트 경향은 발생론적 배경의 이질성에도 불구하고 전통의 이 1960

름 아래 용인되고 있다.

백색담론이 미술현장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한 것은1970년대이다 이 시기. 엔 백색단색주의 미술이 집단적인 획일성을 드러내며 전면화 되었다 미니멀리즘. 이 국제적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한국적 모더니즘을 주창하며 수많은 화가들이 흰, ‘ 색으로 뒤덮인 올 오버 페인팅을 그리며 집단적 획일성을 드러냈다 탈 이미지론. 에 입각한 흰색 일색의 평면작업이 중심이 된 에콜드 서울 전< > (1975) 출품작가들 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도쿄에서 개최된. <한국 5인의 작가 개의 백색-5 >(1975) 같은 국외전도 흰색을 집단적 개성으로 내세웠던 이 시대 경향을 집약 적으로 보여준다 국제적인 조류에 민감하면서도 대부분의 작가들이 백색을 민족. 고유의 미적 체험으로 용인한 결과였다.

이들 화가들은 흰색이 우리에게 고유의 미적 감각의 표상일 뿐만 아니라 정신적 기상의 상징으로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다 평론가 이일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백색은 우리의 사고를 규정짓는 가장 본질적인 하) 나의 언어이다 중략 요컨대 우리에게 있어 백색은 단순한 하나의 빛깔 이상의. ( ) , 것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빛깔이기 이전에 백이라고 하는 하나의 우주인 것이다. ‘ ’ . 중략 백색은 역시 흑색과 더불어 모든 가능한 빛깔의 현존을 시사하고 있다 중

( ) ( ) . (

략 한 마디로 백색은 스스로를 구현하는 모든 가능의 생성 마당인 것이다 물리) , .”

적 현상으로서의 백색은 색의 부재를 의미하지만 우리에게 있어 백색은 단순히, 어떤 물리적 현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듯이 최근의 미술운동에서도 백색 담론은 운동논리로서 채택되고 있다 분, . 명히1970년대 한국미술을 특징짓는 백색 모노크롬 회화는 당대의 외적인 요인으 로서 그린버그가 일컬었던 이른바 모더니즘적 평면성의 문제와 그동안 한국에 내 재해 왔던 백색담론이 어우러져 형성된 것이었다 서구의 강력한 영향아래 전개되. 었지만 그래서 그것은 서구적인 형식주의로 묶을 수 없는 그 너머의 세계를 향, 한다 해방이전 식민 상황에서 민족적 상징성의 회복을 위해 제기되었지만 해방. ,

(11)

이후 국제주의가 지배하는20세기 후반에도 백색담론은 여전히 예술현장에서 지, 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백색 모노크. , 롬 유행은 국제주의의 무분별한 확산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그것은 전통적인 정신. , 적인 색채의 논리의 가능성을 정신공간으로서의 여백과 우주가 담긴 물성과 장 소의 개념에 근거해 연장하고 있는 것이다.

담론의 성격과 근본문제 담론의 성격과 근본문제 담론의 성격과 근본문제 담론의 성격과 근본문제 ...

.

세기 한국이 처한 특수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민족 고유의 미의식의 상징으

20 ,

로서 백색 논의들은 이렇게 타자의 출현에 대항한 민족문화의 독자성 확립이라는 요청에서 전개되고 있다 이에 따라 백색논쟁은 식민주의와 탈식민주의 국제주의. , , 와 민족주의 사이에서 민족국가주의적인 색채로 관념화되었다.

위에서 살폈듯이 그 전개 양상은 대체적으로 처음 백색을 색의 결핍으로 이해하 여 비애미로 인식한 야나기의 미학적 입장과 빛으로 이해한 최남선의 종교적 신화 적 입장으로 대체되고 있는 것으로 요약된다 예술 현장에서 역시 재현 대상으로. 서의 백색 소재에 대한 관심에서 벗어나 점차 생성의 마당으로서 백색이 거론되기 에 이르렀다.

그만큼 백색은 한국문화에서 독특한 양상이며 민족의 생활과 깊게 관계되어 왔, 다 그런데 그렇긴 해도 백색만이 한국인의 색채감각을 전적으로 반영한다고 할. , 수는 없다 한국문화에서 흰색과 대립적인 양상의 다채로운 색채 현상 역시 무시. 할 수 없다 예컨대 고구려벽화 신라의 금동문화 색동옷 오방색 관혼복 장식. , , , , , , , 사찰과 궁중의 단청 탱화 민화 등 다양한 사례들이 있다 그렇다면 백색 논쟁이, , . 어떻게 이러한 여러 양상들을 포월하여 민족문화 정체성 담론으로 지속되고 있는 가 그 이유는 백색이 단지 지각적 사실을 넘어서 한국예술 특유의 존재론적 지평? 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그러한 단서는 한국어에서 백색과 관련된 어원 속에 이미 내재되어 있다, . 한국어에서 흰색을 가리키는 말은 고유의 한글 희다와 한자어 백 ‘ ( )’, ‘ ( )’ 이다 희다는. ' ' 즉 해 다시 말해 태양이라는 말에서 기원한다 그리고 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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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어 백‘ ’, ‘ ’소 가운데 백은 밝다는 뜻이며 그‘ ’ , ‘ ’ 또는 그것의 활용인 애 역시 태양을 가리키는 말 해로서 하 또는 하 님을 가리킨다 한편

( )’ ‘ ’ . ,

희다는 의미의 또 다른 한자어 소 는 희다는 뜻 외에 본디 바탕 물건

‘ ( )’ ’, ‘ ’, ‘ ’, 질박함 성심 원래 비어있음 순색 이라는 의미를 함께 갖는다

’, ‘ ’, ‘ ’, ‘ ( )’, ‘ ( )’ .19) 위와 같은 언어 관습에서 보자면 한국인에게 흰색은 결코 단지 지각적 사실로, 서 다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각적으로 지각된 사태로서 흰색이나 혹은. , 특정한 정서나 미의식을 가리키는 미적 형식이나 기호학적 씨니피에 너머의 것이 다.20) 신화적 상상력 속에서 흰색은 태양 그리고 하느님을 뜻하며 존재론적 자원, 에서는 자연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특히 주자학적 이념이 지배했던 최근세의 조. 선시대의 가치관에서 보면 한국예술에는 남의 눈을 끄는 색이 그다지 미덕이 아, 니며 드러나지 않은 미 21)만이 미였다.

백색논쟁이 때로는 저급한 차원의 민족주의적 양상으로 드러나지만 백색을 신, 화적 종교적 상징의 문제로 환원시켜 간 것은 부분적으로는 그러한 언어습관을 포 함한 한국인들의 세계관에 기인한다 식민 상황 속에서 외국인의 외면적 인상 기. 술에서 촉발되었던 백색논쟁이 종교적 신화적 문제와 접목되게 된 것도 그것이, 예술의 존재론적 조건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으로 대체되는 과정을 거친 것도 자연 스런 일이었다.

백색담론의 조망을 통하여 우리는 한국예술이 지닌 특수한 성격을 이해하는 데, 에 몇 가지 실마리를 발견하게 된다 그동안 미술뿐만 아니라 시 음악 공예 건. , , , 축 등의 여러 분야들은 색채적으로 단조( )하다는 언급 외에도 한국예술의 미 적 특질은 다음과 같이 언급되었다 정제성이 부족하여 왜곡된 파형. ( )을 이루 고 있다든가 치밀하게 마무리되지 않고 질박 담소, , , ( ), 간소미 둔후, ( ), 진하게 형태의 파조( )를 이루며 어른 같은 아이의 성격을 드러낸다가 하는 내용들이다 이들은 간단히 말해 예술성에는 배치되는 무기교. ( )의 기교’,

19) 한국문화상징사전 , 동아출판사 , 1992, 647-650 쪽 참조 .

20) 다만 백색이 오방색과 같이 명백하게 기호학적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예외적이다 음양오행설에서 음양이 낳은 다섯 가지 원소 즉 목 화 토 . , , , , 금 수에 직결되었다고 인식되어온 청 , ( ), 적 ( ), 황 ( ), 백 ( ), 흑 ( ) 색에서 백은 분명한 비교적 기호학적 명료성을 지니는 색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21) , の と , 季刊 1978 년 봄호 , 1978, 56 . 쪽

(13)

무작위 같은 역설적인 말로 일갈되기도 한다

( )’ .

그러한 점에 있어서는 외국인들의 관점도 다르지 않다 한국예술을 두고 독일인. 에카르트(Andreas Eckardt)는 미의 자연적 취향 (the natural taste for the 평범한 단순성으로 젝켈 은 조작 없는 자연성 기술적 beautiful)’, ‘ , (D. Seckel) ’, ‘ 인 완벽에 대한 무관심 등으로 말한다 이 가운데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처음 . , 백샘담론을 촉발시킨 야나기 무네요시의 입장 전환이다 야나기는 백색양상을 비. 애미로 이해하던 초기 입장에도 불구하고 이미 그러한 한국예술의 조형적 특징을, 자연성으로 읽어내며 이를 실마리로 삼아 자신의 독특한 예술론을 꽃피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의 백자를 두고 자연에 대한 무심한 신앙에서 비롯되고 있으. 며 그 미는 단순화로 복귀하고 있으며 한국의 도자기는 천진하고도 자연스럽게, , 빚어진 그릇이어서 탄생된 것이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22)라고 말했다.

백색 담론은 서구의 모방론이나 재현론 혹은 근대적 예술 개념 같은 근대주적, 진리관의 바탕에서 제기되었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그 전개 과정에서 백. 색담론은 처음 그것이 전제했던 형이상학적 가정에 대한 질문으로 향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비로소 한국인의 자연관과 세계관의 바탕 위에서 예술의 존재에 대하여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한국문화에 나타나는 이러한 백색양상에 대. 한 미술사학자 김원룡의 다음과 같은 언급은 참고할 만하다 백에 대한 동경이라. “ 기보다 무장식에 대한 사랑이었다 삼베고 무명이고 그저 원재료가 가지는 원색을. 즐겼던 것이고 그 인공장식 없는 조용하고 평화롭고 자연스런 분위기를 좋아했던, 것이다.”23) 달리 보면 이러한 태도는 자기주장이나 개성을 앞세우지 않고 작위를 싫어하고 자연과 더불어 무명( )으로 살며 현실 외에 또 다른 세계를 만들지도 꿈꾸지도 않기에 인간 중심주의도 근대 문명의 우상도 환상도 없이 중성적이고 구 조적인 세계관의 차원인 것이다 .

이상과 같은 논의들을 통해 보건대 백색담론은 한국예술의 자연성과 그 형식의, 몰 형식성을 가리키는 포괄적 현상에 관련된 것이었다 즉 백색은 구극. , (究極) 색 즉 자연성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런 점에서 백색담론은 한국예술이 차지하는, , . 근본적인 존재론적 위상을 재고하게 해 준다 그렇다면 그것은 정신과 자연 이념. ,

22) , 陶 の , 6, , 1980, 166 . 쪽

23) 김원룡 , 한국미의 탐구 , 열화당 , 1978, 25 .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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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인 것과 현상적인 것을 나누며 예술미는 정신으로부터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자연미보다도 고급한 것이다 고 하고 자연미는 정신에 속하는 미의 대상으로서.” , 완성되지도 완전하지도 못한 것 이라는 헤겔의 예술인식과 같은 서구 근대 예술관 과는 크게 다른 차원의 것이다 흰색을 바탕색으로 사용한. 1970년대 백색 모노크 로미즘에서 뿐만 아니라 한국미술 일반에서 흰색은 그러한 물질적 에센스이며 고 차원화된 구체적인 장소로서 바탕( )이다 그것은 존재론적으로 불이. ( ), 의 세계관에서 어떻게 감성적 영역의 가치가 모색 가능한가에 대한 궁 ( ), ( )

리의 과정이다.

조선 후기 문인화가 추사( ) 김정희( , 1786-1856)의 세한도 나 난초< >

그림< >은 우리의 논의에 하나의 시사점을 던지기에 충분하다. <부작난 도 의 자제> ( )를 살펴보자.

난초를 그리지 않은 것이 아마도 스무 해 우연히 천성에서 그려져 나왔구나

문을 닫고 깊이깊이 찾아드니 여기가 바로 유마의 불이선이구나

맺으며 맺으며 맺으며 맺으며

서세동점 식민화 등으로 인하여 고유문화의 정체성 위기를 극심하게 겪었던 한, 국에서 전개된 백색담론은 옛 한국문화전통의 재현 이론으로서 근대적인 민족 문 화 정체성 논의로 출발했다 전통적인 한국인의 미의식의 성격 해명이라는 학계의. 주 관심사와 관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예술운동의 전개에서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그것은 현실성을 지닌다 그 전개과정에서 때로는 민족국가주. 의에 의해 박제화되기도 했으며 때로는 오리엔탈리즘적 혐의를 드러내기도 했다, .

그러나 다른 한편 식민주의서구 중심주의의 위력적인 타자들과의 대면 속에, , 서 이러한 담론은 한국 고유의 세계관과 예술관을 재고해 내는 동인으로 작동했다.

그런 점에서 탈식민성과 동시에 식민성을 양가적으로 드러낸다 즉 지배적인 타자. ,

(15)

로부터 탈식민화 기능을 수행하면서 동시에 서구 근대기의 이원론이나 근대적인, 예술 개념과는 다른 한국문화 고유의 형이상학적 가정을 자각하는 기능을 수행하

였다.

한국인들에게 여백 흰옷 백자에서 확인되는 흰색은 예술을 통해 자연의 유형, , 적 문화적 이미지의 재현 욕구보다는 불이 자연의 이념의 발로인 것이다 그것은. 그대로 바탕 근원 곧 하늘이며 자연이다 여기에서 하늘과 땅 인간과 자연 현, , , . , , 상과 본질 언어와 삶 기표와 기의는 이원적인 것이 아니다 둘이 아니다 태양신, , . . 앙 그림이되 그려지지 않은 여백 서예 노래이되 노래하지 않는 시 아악 제례, , , , , 악 건축이되 건축하지 않는 종묘나 서원건축 민속 등 한국예술의 조형적 특징들, , 은 이러한 형이상학적 가정을 전제로 할 때 하나의 시야가 열리게 된다 한국예술. 에서 근대성은 역설적이게도 서구와는 반대로 존재론적인 자기 환원을 통해 근대 적인 문화 식민주의에 대항하여 탈식민주의가 성취되는 셈이다 백색담론의 전개. 에서 우리는 한국인의 미의식 논의와 한국예술 해석에 하나의 새로운 전망을 기대 하게 된다.

핵심어

백색 백의 백색담론 한국인의 미의식 문화적 탈식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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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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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선 불함문화론, , 신동아 1972년 월호 부록1 김지하 현실동인 제 선언, 1 ,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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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達 について

, 陶 の , 6, , 198024)

원고제출일 년 월 일 최종심사일 년 월 일

원고제출일 년 월 일 최종심사일 년 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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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 3 19 , 2004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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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ies on the Issue of Korean Aesthetic Consciousness

Lee, Ihn Bum * Lee, Ihn Bum * Lee, Ihn Bum * Lee, Ihn Bum *

25)

This essay is about the whiteness which was a main theme of aesthetic debates in the last century of Korea and seemed to be a symbol color of the national identity. Probably it is controversial whether a color can be accepted as a sign to indicate the aesthetic consciousness of a racial community or not. In addition, I am still doubtful whether a race has its own original consciousness of beauty. However, "the color white" has been the very important subject of the aesthetic debate of Korea in the last century. And the debate is related to elucidate the traditional attitude of beauty theoretically and to develope the artistic movement practically.

In this essay, I verify the birth and development of the debate. Finally, I explain the real meaning of the whiteness and to present a perspective of Korean aesthetics through it.

The problem of the whiteness raises the question about the metaphysical assumption for the art. Eventually it leads to the question what is the ultimate meaning of art for Korean. The whiteness was not an admiration of white color itself but a love of non-decoration. Korean just enjoyed the original color of the raw material and liked the quiet, the peaceful, and the natural moods without an artificial decoration.

Korean neither made nor dreamt another world beyond here and now, therefore made the neutral and structural outlook on the world in where no such things as the humanism, or the idol, or the fantasy of modern civilization. In a word the notion of the whiteness was about the naturalness and the formlessness of Korean art. To put it in plain terms whiteness is accepted as the ultimate color, namely naturalistic one, not a sort of signifier. In this sense the whiteness revealed the metaphysical assumptions, namely the non-dualism, the

* Chief Fellow of The Korean National Research Center for Arts, The

Korean National University of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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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rn Europe.

Here is a good example to confirm the nature of the whiteness.

The orchid painting <Boo-jak-ran-do>, which was painted and written by Kim Jung-Hee(1786-1856), who was one of the most famous literati painters, is a good example. In this painting we can read a poem as follows:

Perhaps Twenty years have gone without painting the orchid By chance this was painted instinctively

Closing the door, gone to the deep place

Where is the non-dual zen of Vimalakirti(an Indian monk)

Here we can find more clearly the metaphysical assumptions allowing such paradoxical expression as "non-technical technique" or "non-artificiality": the non-dualism, the nothingness and the emptiness.

Key Words Key Words Key Words Key Words

whiteness, white clothes, debate about whiteness, aesthetical conciousness of

Korean, cultural post-colonialism

참조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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