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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조 모란디(Giorgio Morandi)의 작품에 나타나는 동양적 표현 연구- 도가(道家) 사상을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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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일_2019.06.10 심사기간_2019.07.01-14 게재확정일_2019.08.21

조르조 모란디(Giorgio Morandi)의 작품에 나타나는 동양적 표현 연구 - 도가(道家) 사상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Oriental Expression in Georgio Morandi's Works - focusing on Taoist ideas -

이진선_국민대학교 대학원 도예학과 / 이상용(교신저자)_국민대학교 조형대학 도자공예학과 Lee, Jin Sun_Department of Ceramics, Kookmin University Graduate School /

Lee, Sang Yong(Corresponding author)_Department of Ceramic Art & Crafts, college of Design, Kookmin University

차례 1. 서론

1.1. 연구 배경 및 목적 1.2. 연구 범위 및 방법

2. 조르조 모란디의 작품 형성 배경 2.1. 조르조 모란디의 생애

2.2. 조르조 모란디의 작품 배경

3. 동양적 표현

3.1. 동양적 표현의 형성 배경

3.2. 도가사상을 통한 동양적 표현의 특징

4. 조르조 모란디의 작품에 나타나는 동양적 표현 분석 4.1. 작품 분석

4.2. 동양적 표현 분석

5. 결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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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조 모란디(Giorgio Morandi)의 작품에 나타나는 동양적 표현 연구 - 도가(道家) 사상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Oriental Expression in Georgio Morandi's Works - focusing on Taoist ideas -

이진선_국민대학교 대학원 도예학과 / 이상용(교신저자)_국민대학교 조형대학 도자공예학과 Lee, Jin Sun_Department of Ceramics, Kookmin University Graduate School /

Lee, Sang Yong(Corresponding author)_Department of Ceramic Art & Crafts, college of Design, Kookmin University

요약 20세기 이탈리아 화가 조르조 모란디(Giorgio Morandi)는 정물화를 통하여 가시적 세계에 대한 깊은 통찰력 을 보여주었다. 그는 유럽에서 동양 사상이 유행했던 1차 세계대전 이후 활발히 활동하였는데 그의 작품에 나 타나는 사물에 대한 표현과 화폭을 바라보는 시각은 많은 부분 동양적인 특징을 포함한다고 생각되어졌다. 이에 본 연구자는 조르조 모란디의 회화에 나타나는 동양적 표현을 논해보고 이를 통해 동서양이라는 이질적인 것과 의 융합이 새로운 표현을 창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해보고자 하였다. 연구 방법으로 먼저, 문헌을 통하여 모란디의 생애와 그의 작품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 후, 동양 미학에 다양한 영향을 끼친 도가 사상을 바탕으로 동양적 표현을 규정한 후 모란디의 작품과 비교 분석하였으며,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었다. 첫째, 그 의 작품에 나타난 여백은 텅 빈 공간이 아닌 실체가 잠재해 있는 공간으로 표현되었다. 이는 도가 사상에서 나 타나는 충만의 무(無)와 연결되며 동양화의 조형관을 이루는 근간이 된다. 둘째, 그의 화폭에 나타난 물체들은 상호의존적인 하나의 집단으로 존재한다. 이것은 동양 문화 전반에 바탕이 되는 관계 중심적 태도와 연결된다.

셋째, 그는 사물을 완벽히 재현하는 것에 목적을 두지 않았다. 오히려 물체와 물체 사이에서 나타나는 비가시적 관계에 의해 형태가 변형된 모습을 표현하였다. 이는 도가 사상의 기(氣)를 통해 이해할 수 있으며, 동양화에서 추구하는 기운생동(氣韻生動)의 목표와 연결 지을 수 있다. 넷째,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불안정한 선의 표현은 형태의 전개 과정을 담았다고 보여 진다. 이는 동양화에서 만물이 기의 이합집산을 통해 끊임없이 운동하고 있 는 상태로 보고 이것을 화폭에 담아내기 위해 선을 통해 형태의 진행 과정을 나타냈다는 것과 같은 맥락을 지 닌다. 이번 연구를 통해 모란디의 사례가 동서양의 융합에 의한 새로운 창작의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기를 기대 해 본다.

Italian painter Giorgio Morandi of the 20th century showed deep insight into the visible world through still life painting. He has been active since World War I when Eastern ideas were popular in Europe, and his expression of objects and his view of the canvas was thought to contain many of the Eastern features. This researcher discussed the Oriental expression in Giorgio Morandi's paintings and tried to confirm the possibility that the convergence of the East and West with the disparate could create a new expression. As a way of doing research, I first learned about Morandi's life and his work through the literature. Afterward, Oriental expression was defined based on Taoist ideas that had various influences on Oriental aesthetics. And then, i compared and analyzed Morandi's work, and i was able to get the following results. First, the margins in his work were expressed not as empty space but as space where the substance was latent. This is connected to the fullness of the empty, which appears in Tao's ideas, and forms the basis for the Oriental painting's construction. Second, the objects on his canvas exist as an interdependent group. This is linked to a relationship-oriented attitude based on the whole of Eastern culture. Third, he did not aim at perfect reproducing things. Rather, the shape was altered by the non-visual relationship between the object and the object. This can be understood through the discipline of thought, and linked to the goal of energy revitalization sought in Oriental painting. Fourth, the unstable expression of lines in his work is believed to contain a process of development in form. This is in the same context as indicating the process of the form through a line to capture the ever-moving object in the Oriental painting. I hope that the case of Morandi will provide a new direction for creation through the convergence of the East and the West.

중심어

조르조 모란디 동양적 도가 현상과 본질

ABSTRACT Keyword

Giorgio Morandi Oriental

Taoist ideas Phenomenon and ess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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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1.1. 연구 배경 및 목적

인류는 대상의 고유성을 유지하기보다는 다양한 방면에서 이질적인 것과의 융합을 시도하며 발전해왔다. 예술 분야에서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동서양의 교류가 시작된 이래 그들은 서로 간의 유·무형적 결합 또는 융합을 통해 새로운 형식과 기법을 만들어냈으며, 이는 새로운 작품 을 창출할 수 있는 배경을 제공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연구자는 20세기 이탈리아 화가 조르 조 모란디(Giorgio Morandi, 1890-1964)의 작품에 나타난 동양적 표현을 분석해 보았다.

1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동양 사상이 유행했던 시기에 제작된 그의 작품에는 이때까지 서양에서 볼 수 없었던 독특한 표현이 강하게 나타난다. 그의 작품에서는 일상의 평범한 사물들이 시공간 속에서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상호의존적으로 존재하고 그 뒤에 존재 하는 배경은 형상을 낳는 모태로써 표현되어있다.1) 이러한 현상을 통해 형성된 화폭 속 공간 은 보는 이의 관조와 응시를 자아내어 현실 세계에 대한 성찰을 유도한다.2) 이에 본 연구자는 모란디의 독창성의 근원을 동양 사상에서 찾고자 했으며,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동양적 표현을 분석함으로써 동서양 문화의 융합을 통한 새로운 표현의 창출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모란디와 그의 작품에 대한 연구는 활발히 진행되고 있지는 않지만, 많은 작가들에게 그의 작품은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공예 분야에서 그웬 한센 피곳(Gwyn Hanssen Pigott, 1935-2013)3)이라는 도예가는 그의 영향을 받아 물체와 여백의 상호 작용을 통해 나타나는 네거티브 스페이스(Negative space)에 중점을 두고 작업하였다. 디자인 분야에서는 소니아 페드라치니(Sonia Pedrazzini)4)가 그의 화폭에서 느껴지는 독특한 색감과 고풍스러운 정물의 형태에 영감을 받아 그림 속 2차원의 정물을 3차원으로 재탄생 시켰다. 또 사진 분야에 서 조엘 메이어로위츠(Joel Meyerowitz. 1938)5)는 모란디가 생전에 사용했던 볼로냐 작업실 의 책상에서 그가 사용했던 사물들을 카메라에 담고 시간의 흔적과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을 사진으로 나타내었다. 이렇듯 세상을 떠난 지 50년이 지난 지금도 현대 예술계에 유의미 한 영향을 주고 있는 모란디의 작품에 드러난 동시대적 가치를 대변하기 위한 심도 있는 연구 의 필요성을 느꼈고, 이 연구를 통해 그의 작품에 관한 다양한 해석과 시각이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1.2. 연구 범위 및 방법

본 연구에서는 이탈리아 화가 조르조 모란디의 작품에 나타나는 동양적 표현을 확인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연구를 진행하였다.

첫째, 단행본을 통해 조르조 모란디의 생애와 작품에 대해 살펴보고 인터넷 웹 사이트를 통해 그의 유화, 수채화, 드로잉과 같은 작품을 스크랩하고 분석하였다.

둘째, 서양과 구분되는 동양적 표현의 형성 배경을 문헌을 통해 알아보았다.

셋째, 유가(儒家)와 함께 동양 미학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도가(道家) 사상을 바탕으로 동양적 표현을 해석하였다. 이는 유가 사상보다 도가 사상의 미학이 후대에 더 다양한 영향을 끼쳤다 고 생각했기 때문이며 실제로 중국에서도 도가적 측면에서의 동양 미학에 대한 예술 철학적 연구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에 도가 사상에서 강조하는 사상적 특징을 조사하였고 그 특징이 동양 회화에서 나타나는 방식을 살펴보고 본 연구에서 다루고자 하는 동양적 표현의 범위를 규정하였다.

1) 윤남순, 김재호, 『GIORGIO MORANDI』, 국립현대미술관, 2014, p.34-35.

2) 윤남순, 김재호, 『GIORGIO MORANDI』, 국립현대미술관, 2014, p.37.

3) 그웬 한센 피곳(Gwyn Hanssen Pigott): 호주 도예작가. 조르조 모란디의 영향을 받았으며 정물 그룹들이 배경과 어울려 만드는 형상 밖의 공간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했던 작가이다.

4) 소니아 페드라치니(Sonia Pedrazzini): 이탈리아의 디자이너. 모란디의 그림에 등장하는 사물을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여 실물로 제 작하였다.

5) 조엘 메이어로위츠(Joel Meyerowitz): 미국의 사진작가. 주로 일상의 풍경들과 다양한 색채를 사진에 담았던 그는 모란디의 사물 에 담긴 일상성과 그의 정물화에 등장한 독특한 색감을 사진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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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조르조 모란디가 동양 사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문헌 자료가 부족했기 때문에 본 연구는 그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표현 요소들을 동양화의 표현과 연결해 비교·분석하였다.

또한, 그에 관한 연구 자료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발행된 단행본과 인터넷 웹 사이트의 정보를 참고했음을 미리 밝혀둔다.

2. 조르조 모란디의 작품 형성 배경 2.1. 조르조 모란디의 생애

조르조 모란디는 1890년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0부터 1964년에 생을 마감 할 때까지 폰다차(pondazza)가에 위치한 아파트에서 미혼으로 세 명의 누나들과 함께 살았다.

그는 1907년 볼로냐 국립 미술 아카데미(Accademica di belle arti di bologna)에서 예술에 대한 교육을 받게 되었고 1913년까지 학업을 지속하였다. 그는 학창 시절 동안 베니스, 피렌 체, 로마 등 짧은 국내 여행을 통해 여러 작가의 작품과 직접 마주할 수 있었다. 1914년 초 모란디는 미래파의 전시를 관람하기 위해 피렌체를 방문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움베르토 보치 오니(Umberto Boccioni,1882-1916)6)와 카를로 카라(Carlo Carra, 1881-1966)7)를 만나 게 된다. 이후 그는 로마에서 열린 ‘제1회 미래파 독립전(First Independent Futurist Exhibition)’

에 참가했으며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제2회 분리파전(Second Secession Exhibition)’에도 참가하게 된다.

이탈리아의 전쟁으로 그는 1915년에 파르마(Parma)의 근위 보병연대로 징집되지만, 얼마 지 나지 않아 건강 악화로 복무 6주 만에 제대한다. 제대 후 1918년 카라와 조르조 데 키리코 (Giorgio De Chirico, 1888-1978)8)와 함께 『발로리 플라스티치(Valori Plastici)』 잡지에

‘형이상회화파(Pittura metafisica)’9)의 성향의 연간지를 출판하지만, 이 연간지는 세 번의 출 판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지속되지 못한다. 이후 형이상회화파는 점점 약화되어 소멸하였고 모란디는 더욱더 독자적 활동에 몰입하게 된다. 또한, 그는 교원자격증을 취득하여 1930년 볼로냐 국립 미술 아카데미의 에칭(etching)10)전공 교수로 임명되었고 1956년까지 교단에 머물렀다. 1939년 이후에는 이탈리아 로마와 스위스에서 여러 차례 그의 회고전이 열렸으며 그는 생을 마감하기 2년 전까지 붓을 놓지 않았다. 1964년 6월 18일 모란디는 긴 투병 끝에 폰다차가의 아파트에서 세상을 떠나게 된다.11)

2.2. 조르조 모란디의 작품 배경

조르조 모란디는 어떠한 주류 화파에도 속하지 않고 이탈리아 내부에서 주로 활동했던 은둔 화가로 유명하다. 그는 실제로 예술 작품을 관람하기 위해 로마, 피렌체, 밀라노를 방문한 것, 전쟁 중에 피난을 가기 위해 그리차나(Grizzana)에 잠시 머문 것, 자신의 전시에 참여하기 위해 스위스에 방문한 것 이외에는 그 흔한 파리, 뉴욕조차 방문하지 않았다. 그는 생전에

“전 세계를 여행한다 해도 아무것도 보지 못할 수 있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지금 보고 있는 것을 성실하게 보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고 실제로 그는 일생 동안 4평 남짓의 작업실과

6) 움베르토 보치오니(Umberto Boccioni):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미래파 화가이자 조각가. 1910년 미래파 운동에 참여했으며 물체와 공간의 상호 관련성을 추구하고 조각에서의 공간 개념을 넓히는데 일조하였다.

7) 카를로 카라(Carlo Carra): 이탈리아 화가. 1910년 미래파 운동에 참여했으며 조르조 모란디와 함께 형이상회화파의 일원이었다.

8) 조르데 키리코(Giogio De Chirico): 그리스 출신의 화가, 1917년 조르조 모란디와 함께 형이상회화파의 일원이 되었으며 이 화파 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익숙한 사물들과 건축물을 표현의 대상으로 삼았지만 어딘가 기괴하고 불안한 느낌을 주는 것이 그의 작 품의 특징이다.

9) 형이상회화파(Pittura metafisica): 1917년에 조르조 데 키리코와 카를로 카라에 의해 발생된 이탈리아 미술 운동. 알베르트 사비 니오(Alvert Savinio), 조르조 모란디 등도 이 운동에 참여했지만 이는 채 2년도 안 되어 소멸해버렸다. 현실 사물의 이질적 조합 으로 이루어진 신비로운 풍경이나 정물 속에 형이상학적 세계를 암시하는 것이 작품의 특징이며 훗날 키리코를 통해서 쉬르레알리 슴의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10) 에칭(etching): 판화 용어. 금속이나 유리 표면 위에 바늘과 같은 도구를 이용하여 얇은 선을 그리고 표면 위에 화학 약품을 발 라 바탕을 부식시키는 기법이다. 약품이 닿은 곳은 오목하게 부식되고 닿지 않은 부분은 튀어나오게 되어 명암과 같은 효과를 줄 수 있다.

11) 윤남순, 김재호, 『GIORGIO MORANDI』, 국립현대미술관, 2014, pp.138-139.

<그림 1> 조르조 모란디 (Giorgio Morandi), 1961, photo by Antonio Masotti, Bolog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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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동네를 벗어나지 않았으며, 10호를 넘지 않는 크기의 캔버스에 비슷한 사물을 지속적으 로 그려냈다. 이러한 행위를 통해 그는 보이는 것 너머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표현하고자 하였 다. 모란디는 볼로냐에 머물며 지인들이 보내주는 다양한 외국 작가들의 작품 사진을 보며 영감을 얻기도 하였다. 실제로 그의 서재에는 샤르댕(Jean-Baptiste-Siméon Chardin, 1699-1779), 르누아르(Pierre Auguste Renoir, 1841-1906), 코로(Jean-Baptiste-Camille Corot, 1796-1875), 세잔(Paul Cézanne, 1839-1906) 등 많은 인상주의 화가의 책들이 꽂 혀있었다. 한편 이탈리아에서 모란디의 작품을 연구해 온 크리스티나 반데라(Maria Cristina Bandera)는 그가 특히 일본의 우키요에(Ukiyo-e , 浮世絵)12)에 관심을 가졌던 모네(Claude Monet, 1894-1926)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13)

1917년부터 1919년까지 그의 초창기 작품에는 형이상회화의 색채가 강하게 나타난다. 그것 은 조르조 데 키리코와 카를로 카라와 만남을 가지며 시작되었는데 현실의 사물로 이루어져 있는 화폭 안에서 왜인지 모를 불안함과 황량함, 시공간의 모호함 등이 이 사실을 암시한다.

하지만 이 화파는 채 2년도 안 되어 소멸하였고 이후 모란디는 자신만의 예술 체계를 갖추고자 하였으며 정물화 더욱 몰두하게 된다. 1920년대에 이르러 그는 지속적인 실험 끝에 자신만의 표현법을 구축하게 된다. 기하학적 형태와 모란디 특유의 색채는 이 시기에 탄생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1930년대에는 그의 회화에서 성숙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떨림과 같은 미세한 감정을 화폭에 담고 넓은 여백에 정물을 배치하여 대상의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이 시기 모란 디는 유화 이외에 판화에도 관심을 가졌으며 그의 엄격한 질서와 규칙을 판화에도 적용하기 시작하였다. 판화 기법은 주로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 앵그르(Jean-Auguste-Dominique Ingres, 1780-1867), 피사로(Camille Pissarro, 1830-1903) 와 같은 작가의 책을 참고하였고 판화 기법을 배우기 위해 몇 개의 작품을 실제로 소유하기도 하였다. 1940년대에는 전쟁으로 인해 볼로냐에서 그리차나로 잠시 거주지를 옮기게 된다. 이 시기에는 주로 풍경화나 꽃, 조개껍질과 같은 정

물을 그렸다. 이때 탄생한 모란디의 풍경화에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으며 주위 풍경의 아름다움을 예찬하기보다는 정적이고 수평적인 집과 하늘에 서 느껴지는 전쟁의 공포와 침묵을 표현하였다.

이후 세상을 떠나기 전 몇 년간 그는 수채화를 통 해서 자신의 사상을 완성시킨다. 불안전한 외곽선 과 배경 속에 스며드는 듯한 정물은 동양의 수묵 화를 떠올리게 한다. 수채화를 통해 모든 불필요 한 요소를 제외하고 오로지 대상 간의 관계, 대상 과 배경과의 관계만을 표현함으로써 그가 말하고 자 했던 궁극의 상태를 나타내었다.

3. 동양적 표현

3.1. 동양적 표현의 형성 배경

예술에서 나타나는 동양과 서양의 표현의 차이는 사물에 대한 인식과 시각 차이에서 기인한다 고 할 수 있다.14) 서양에서는 개체들의 개별적 특성에 주목하는 반면 동양에서는 개체 간의 관계에 주목하였다.15) 이러한 동서양의 시각 차이는 각 문화의 생태 환경의 차이에서부터

12) 우키요에(Ukiyo-e, 浮世絵): 17세기에서 20세기 일본의 에도 시대에 성립된 목판화의 형식으로 생산된 풍속화(風俗畵). 유럽인들 에게 이국적인 소재와 과감한 색채, 유려한 형태는 반 고흐, 모네 등 다양한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13) 크리스티나 반데라(Maria Cristina Bandera)는 모네와 모란디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평면성, 비대칭적 구조, 연작의 특성을 근거로 모란디가 모네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보았다.

14) 본 연구에서 ‘동양 문화’는 중국, 한국, 일본, 베트남 등을 포함하는 동북아시아를 바탕으로 발생한 문화를 지칭한다. 이 국가들은 생태적, 지리적, 경제적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며 한자 문화권, 유교 문화권 등으로 묶을 수 있다.

15) 리처드 니스벳, 『생각의 지도 - 동양과 서양,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 김영사, 2004, pp.192-193.

<그림 2> 조르조 모란디, Landscape, 캔버스에 유채, 32.8 × 38cm. 1943, 모란디 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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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되었고 이는 경제적, 사회 구조적 차이를 초래하였다. 동양 문화의 대표적 발상지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은 생태적으로 폐쇄적 지형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16) 이것은 다른 국가와의 교류와 이동을 차단하였으며 중앙집권적 권력 구조를 유도하였다.17) 또한, 동양 문화권의 대 륙성 기후는 많은 노동력과 공동작업을 요구하는 벼농사에 유리해 사람들에게 서로 간의 화합 을 이끌었다. 개인을 결속시키는 지리적, 사회적 구조 속에서 동양인들은 안과 밖으로 눈을 돌려 상대방과의 관계를 살펴야 했다. 반면 서양 문화의 발상지인 유럽은 온화한 기후와 사면 이 바다인 지리 조건 덕분에 농업 이외에 수렵과 항해가 가능하였고, 개방적 지리 조건을 형성 할 수 있었다. 이것은 타인과의 협동, 화합보다 개인의 자율성을 중시하게 하는 배경이 되었다.

또한, 개방적 지리 조건은 다른 국가로의 자유로운 이동과 교류를 허용하였다. 그들은 이 과정 속에서 서로 다른 인종, 관습, 사고와 자연스럽게 마주하며 직· 간접적 교류 속에 다양한 문화 가 충돌하여 발생하는 의견 차이를 해결하기 위한 사고 체계를 형성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의 결과로 서양에서는 사물의 개별적 속성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들은 대상의 공통 규칙을 파악함으로써 세상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고 여겼다.18) 반대로 동양인들은 지속적으로 사회적 상황에 귀를 기울이려 하였으며, 개체의 속성보다 개체와 개체의 관계를 통해 현상을 이해하려 하였다. 이것은 동양 사상의 기반이 되는 유교, 불교, 도교 형성에 원동력이 되어 정치, 예술, 사회 분야 전반에 영향을 끼쳤다.

3.2. 도가 사상을 통한 동양적 표현의 특징

본 연구에서는 위와 같이 형성된 동양적 사고 체계를 바탕으로 발생한 사상 중 도가 사상이 동양 미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보았다. 도가 사상은 자연과 동화된 삶을 살고자 했던 동양의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고, 도가에서 주장하는 음양의 조화, 기운(氣韻), 충만한 무(無)와 같은 개념은 동양의 예술 철학으로 받아들여져 서양 예술과 구분되는 동양적 특징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정의한 동양의 미(美)란, 꾸밈없는 자연과 같은 순수성을 추구하고 본질로 회귀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도가 사상에서 주장하 는 진리이며, 그 자체이기도 하다. 본 연구에서는 도가 사상을 통한 동양성을 규정하기 위해 동양의 화가들이 화폭에 나타내었던 다양한 표현을 여백, 전신(傳神), 선(線) 이 3가지로 나누 어 분석해 보았다.

도가 사상은 노자(老子)19)와 장자(老子)20)에 의해 발전하였다. 노자와 장자의 사상은 자연 친화적으로 살고자 했던 동양의 정신과 일치하였는데, 그들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을 통해 인 간 본연의 모습을 발휘할 것을 주장하였다.21) 또한, 도(道)와 자연을 동일시하며 도를 통해 자연에 가까워질 것을 강조하였다. 도가 사상에서 도(道)란, 천지만물의 생성 원리이자 근원을 의미하며 형체가 없는 도 안에는 이미 만물이 잠재해 있어 도가 형체를 갖게 되면 유형의 사물 이 된다고 보았다.22) 즉, 도는 만물을 낳으며 도가 바로 만물의 실체라는 의미를 지닌다.23)

3.2.1. 여백을 통한 표현

한편 노자는 만물의 어머니가 되는 도를 무(無)와 연결 지었다. 이는 “천하 만물은 유(有)에서 생겨났고, 유는 무에서 생겨났다”24)고 말한 것에서 알 수 있다. 그러나 유를 낳는 무는 독립적

16) 최영진, 『동양과 서양: 두 세계의 사상·문화적 거리』, 지식산업사, 1998, p.29.

17) 리처드 니스벳, 『생각의 지도-동양과 서양,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 김영사, 2004, pp.190-191.

18) 리처드 니스벳, 『생각의 지도-동양과 서양,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 김영사, 2004, pp.192-193.

19) 노자(老子): 중국 고대의 사상가. 도덕경의 저자이기도 하며 제자백가(諸子百家)를 대표하는 사상가. 유가에서 주장하는 인위를 거 부하고 무위자연을 강조하였다.

20) 장자(老子): 중국 고대의 사상가. 노자의 사상을 계승하였고 그의 사상에는 다양한 예술 철학이 존재한다. 장자의 사상은 노자의 사상을 받아들였지만 도(道)의 발생과 같은 측면에서는 약간의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21) 권상우, 엄진성, 『전통과 현대의 대화를 위한 동양의 지혜』, 계명대학교 출판부, 2015, pp.88-89.

22) 풍우란, 박성규 옮김, 『중국 철학사-상』, 까치, 1999, p.283.

23) 도이명, 「노자사상의 예술 철학적 함의」, 계명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18, p.11.

24) 도덕경 제40장, “天下萬物生禦有 有生於無”

<그림 3> 강희안(姜希顔),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 종이에 수묵, 23.5 × 15.7cm, 조선 전기,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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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존재하지 못하며 유(有)와의 관계 속에서 설명되고 있다. <도덕경(道德經)>25) 5장에 서는 하늘과 땅 사이를 불을 피울 때 바람을 일으키는 기구인 ‘풀무’와 같다고 보았다. 풀무 는 비어있는 내부에 의해 바람이 통할 수 있으며 그 속에 바람이 들어가 불을 지필 수 있게 된다. 즉, 하늘과 땅 사이의 그 비어있음이 만물을 생성한다고 본 것이다. 이렇게 도가 사상 에서 무는 만물의 기초가 되고 유를 만나 분화된다고 보았다. 그래서 유와 무는 원래 동일하지 만 그 겉모습을 달리할 뿐인 것이고 무는 비어있는 상태가 아닌 충만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26) 도가 사상의 이러한 역설적 관계는 동양 회화에서 여백을 통한 텅 빈 충만으로 나타난다. 여백 은 서양 회화와 대비되는 동양 회화의 가장 큰 특징이다. 서양에서는 빈 공간을 형상을 통해 채워야 하는 부분으로 보았지만, 동양에서는 형상과 형상을 존재하게 하는 나머지 빈공간의 침묵을 통해 진리를 파악할 수 있다고 여겼다.27) 또한, 동양 회화에서는 그려지지 않은 부분에 대해 무한으로 그려질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하였다.28) 이 공간은 관찰자의 자유로운 상상 을 가능하게 하는 장(場)이 되며 그 속에서 작가와의 만남이 이루어질 수다고 본 것이다. <그 림 2>는 이와 같은 여백의 정수를 보여주는 김홍도(金弘道, 1745-1806?)의 선상관매(船上 觀梅)라는 그림이다. 선상관매에서는 강변에 배를 대어놓고 안개 속에서 능선 위에 핀 매화를 감상하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표현하였다. 이 그림에서는 매화를 감상하고 있는 두 사람과 능선 위에 핀 매화 사이에 넓은 여백이 존재한다. 우리는 이것을 따로따로 나누어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의 여백에 무엇이 존재할지를 나름대로 상상하고, 그 사이를 이어 가며 작품을 감상한다. 김홍도는 자연의 다채로움과 경외를 자세히 묘사하기보다는 빈 여백을 통해 관찰자 가 스스로 상상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유한한 것들 사이에 그려지지 않은 여백은 화폭에 존재하는 대상들을 구속하지 않고 자유로움을 부여하며 무한정성을 지닐 수 있도록 한다.29) 이렇게 동양화가들에게 화폭 아래 무(無)의 배경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아서 채워야 할 공간이 아니라 반대로 어떠한 형상을 낳는 모태가 되는 공간이며 있음이 잠재해 있는 공간인 것이다. 즉, 미완의 여백은 비어있는 충만함을 나타내는 공간이 되고 작가 와 관찰자 모두에게 진리를 파악하기 위한 첫 지점이 된다.

3.2.2. 전신(傳神)의 표현

전신(傳神)이란 사물에 내재되어 있는 생명의 기운을 나타냄을 의미한다. 동양 회화에서는 실물의 외형을 똑같이 재현한 그림에는 결핍이 있다고 보았다.30)아무리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지라도 평면에 그려진 그림은 원래의 사물과 같다고 할 수 없으며, 그렇다고 아예 다른 것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결핍이 발생한다. 동양의 화가들은 이러한 문제를 대상의 내적 정신을 표현하여 형체의 발전성을 획득하는 방법으로 극복하려고 하였다. 실물과 닮아만 있는 그림에 는 충족될 수 없는 결핍이 발생하지만, 그 안에서 형이상학적 내면 정신세계를 이끌어 낼 수 있다면 그것은 결핍이 아니라 무한한 형체의 발전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먼저 도가 사상에서 이야기하는 형(形)과 신(神)의 관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장자는 “형이 온전하면 사람은 신이 온전하며, 신이 온전한 것이 성인(聖人)의 도이다”31)라고 하였다. 이것은 신이 형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형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며, 형을 통해 신이 전달될 수 있음을 나타낸다. 또한 신은 기운(氣韻)을 통해 구체화될 수 있다.32)기운은 음(기)과 양(기)으로 이루어지며 모든 사물에 내재 되어있는데 이것은 “만물은 음을 지고 양 을 품으며 충기(沖氣)로써 조화를 이룬다.”33)는 노자의 말에서 알 수 있다. 노자는 음과 양이

25) 도덕경(道德經): 노자에 의해 지어졌다고 전해지는 책. ‘노자’ 또는 ‘노자도덕경’이라고도 하며 총 81장으로 되어 있다. 상편 37장 의 내용을 도경(道經), 하편 44장의 내용을 덕경(德經)이라고 한다.

26) 킴바라세이고, 민병산 옮김, 『동양의 마음과 그림』, 새문사, 1978, p.33.

27) 이상효, 『여백, 그 순백한 기다림...』, 아트나우, 2006, p.83.

28) 도이명, 「노자사상의 예술 철학적 함의」, 계명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18, p.21.

29) 이상효, 『여백, 그 순백한 기다림...』, 아트나우, 2006, pp.87-88.

30) 킴바라세이고, 민병산 옮김, 『동양의 마음과 그림』, 새문사, 1978, pp.328-329.

31) 장자, 『천지(天地)』, “形全者神全 神全者 聖人之道也”

32) 신성열, 『노장의 예술철학』, 한국학술정보(주), 2010. p.171.

<그림 4> 김홍도(金弘道), 선상 관매(船上觀梅), 종이에 담채, 164 × 76cm, 미상,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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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상반된 기가 만나 격렬히 움직이며 만물의 변화와 생성에 영향을 끼친다고 보았다.34) 또한, 노자의 이러한 만물생성관(萬物生成觀)에는 반(反)이라는 개념이 더해진다. <도덕경>

25장에서는 도에 의해 생겨난 만물이 또다시 돌아가며 그치지 않는 반복 운행을 한다고 보았 다.35) 이는 만물의 원료인 음기와 양기가 생성과 흩어짐을 반복하며 끝내 형태가 없는 기로 돌아가게 된다고 본 것이다. 동양에서는 이러한 기가 느껴지는 작품을 생명력을 지녔다고 보았 다. 사물의 생명력은 외형적 기교에서 벗어나 보이지 않는 내재적 생기(生氣), 풍격(風格), 의미(意味)의 표현을 통해 나타낼 수 있었다.36) 왼쪽에 보이는 윤두서(尹斗緖, 1668-171 5)37)의 자화상은 사실적인 묘사와 함께 대상의 비물질적 특성을 화폭에 나타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받는 작품이다. 화폭의 중앙에서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얼굴은 좌우대칭을 이루며 정교하게 표현되어있는 반면 귀와 몸체는 생략된 체 미완의 상태로 남겨져 있다.38) 얼굴 부분 에서 눈 주변 피부에는 안경 자국과 미세한 주름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있으며, 수염은 생략이 나 왜곡 없이 한 올, 한 올, 표현되어있다.39) 또한, 날카로운 눈매와 진한 눈동자는 상대를 꿰뚫어 볼 듯 강렬한 인상을 준다. 기록에 의하면 그는 관직에 나서지 않고 독서를 즐기며 하층민들의 일상생활에 관심을 가졌던 따듯한 마음의 선비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 자화상 에서 나타나는 매섭고 단호한 눈빛과 장수와 같은 풍채는 여느 선비들에게 나타나는 문약함이 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섬세한 수염의 표현과 매섭고 단호한 눈매와 눈동자의 표현 을 통해 그 자신이 가졌던 선비로서의 올곧은 성품과 외유내강(外柔內剛)적인 면모를 나타낸 것이다.40) 이처럼 윤두서는 무조건적으로 보이는 그대로의 형을 좇는 것이 아닌 깊은 관찰을 통해 전신을 나타낸 것이며, 형태 이면에 존재하는 세계를 표현함으로써 형체의 무한성을 획득 하였다고 할 수 있다.

3.2.3. 선(線)에 의한 평면적 표현

동양 회화에서 의미하는 평면성(平面性)이란, 완전한 평면 이 아닌 면보다 선이 중요하게 다뤄져 약한 입체감을 형성 함에 따라 나타난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노자는 만물 이란 음기와 양기의 총체이며 이와 같은 기는 끊임없는 운 동을 통해 만물의 생성 변화에 관여한다고 보았다. 이에 만 물은 정지해있는 것 같지만 보이지 않는 반복 운동을 하는 움직이는 상태인 것이다. 동양의 화가들은 이러한 사물의 운동성을 화폭에 담아내기 위해 사물을 관찰하는 것을 ‘보 고 있는 것’이 아닌 ‘보아 가는 것’이라 여기게 되었다.41)

‘보아 간다’라는 것은 형태가 형성되는 전개 과정을 나타낸 다는 의미이고 이러한 표현은 선(線)을 통해서 가능했다.

선은 여러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는 충동성을 가지며 점, 면과 달리 형태의 형성 과정을 담는다.42) 형성 과정이라는

33) 도덕경 제42장, “萬物負蔭而抱陽 沖氣以爲和”

34) 여러 가지 견해가 많은 ‘충기’에 대해 충을 음(기)과 양(기) 이외에 제3의 기로 보는 시각 대신 격렬히 움직이는 기를 형상화한 것 이라는 시각을 바탕으로 서술하였다.

35) 도덕경 제25 장, “有物混成 先天地生 寂兮寥兮 獨立而不改 周行而不殆 可以謂天下母 吾不知其名 字之曰道 强爲之名曰大 大曰逝 逝曰遠 遠曰反 故道大 天大 地大 王亦大 域中有四大 而王居其一焉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36) 도유연, 「동서양 미술 비평의 보편적 원리로서의‘기운생동(氣韻生動)’」, 영남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13, pp.12-13.

37) 윤두서(尹斗緖):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선비 화가. 해남 윤 씨 가문의 종손으로 젊은 시절 과거시험에 매진하여 과거에 합격하였지 만 윤 씨 집안이 속한 남인 계열의 당쟁이 심해지자 벼슬을 포기하고 은거하며 남은 인생을 학문 연구와 그림에 받치게 되었다.

38) 처음부터 그려지지 않았을 것이라 여겨졌던 윤두서 자화상의 몸체와 귀는 유탄(柳炭)으로만 형태를 잡고 먹선을 올리지 않아 보관 하는 과정에서 언젠가 지워져버려 미완의 상태로 남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39) 오주석,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솔출판사, 1999, p.86.

40) 오주석,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솔출판사, 1999, p.84.

41) 이상효, 『여백, 그 순백한 기다림...』, 아트나우, 2006, p.58.

42) 킴바라세이고, 민병산 옮김, 『동양의 마음과 그림』, 새문사, 1978, pp.178-179.

<그림 5> 윤두서(尹斗緖), 자화상, 종이에 담채, 종이에 담채, 38.5 × 20.5cm, 조선 후기, 개인 소장

<그림 6> 정선(鄭敾), 총석정(叢石亭), 종이에 담채, 42.8 × 56.0cm, 미상, 간송미술관

(9)

의미는 미완성이라는 의미와도 상통하며 이는 동양에서 추구하는 미완의 미와 연결 지을 수 있다. 동양에서는 이러한 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회화에 관한 이론이 다양하게 등장했는 데, 중국의 남북조(南北朝)시대 남제(南齊)의 사혁(謝赫)이 지은 <고화품록(古畵品錄)>에 서 나타난 육법(六法)이 대표적인 예이다. 육법에는 첫째, 대상이 가진 생명력을 그려내야 한다는 ‘기운생동(氣韻生動)’, 둘째, 형상의 골격을 나타냄에 있어서 선에서 드러나는 운치를 적절히 사용해야 한다는 ‘골법용필(骨法用筆)’, 셋째, 대상의 실제 모습을 충실히 그려나가야 한다는 ‘응물상형(應物象形)’, 넷째, 사물이 가진 색상의 표현에 대한 법칙을 나타낸 ‘수류부채 (隨類賦彩)’, 다섯째, 화면 구도에 대한 법칙을 나타낸 ‘경영위치(經營位置)’, 여섯째, 옛 그림 의 모사를 통해 전통을 이어받고 그 속에서 창의력을 발휘할 것을 권유하는 ‘전이모사(傳移模 寫)’가 있다.43) 그러나 이러한 여섯 가지 법칙은 결국 골법용필로 귀결된다. 골법용필에서 골법은 부가적인 형태를 덜어내고 나타난 최간형체(最簡形體)를 표현하는 기법이고 이러한 형체를 붓을 통해 선으로 구사하는 방법이 바로 용필이다. 이를 합쳐 골법용필이라 부르며 이것이 바탕이 된 뒤에 응물상형이나 수류부채, 경영위치와 같은 표현의 기교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전이모사 또한 골법의 전개에 대해서 배우는 것으로 골법용필과 연결된다. 덧붙 여, 용필과 같이 선의 운용을 중요시 했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 동양의 선은 형태를 재현하 기 위함이 아니라 본질을 나타내기 위함이고, 작가 내면의 표출하기 위함이다. 서양 회화에서 는 선을 형태간의 경계, 윤곽선 정도로 생각해 왔지만 동양에서는 선에서 나타나는 굵기, 옅고 진한 정도, 힘의 강약, 거칠기의 정도를 통해 작가의 호흡을 시각화 하고 이를 형에 전달할 수 있다고 여겼다. 이것은 작가로 하여금 유형의 세계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을 갖게 하였 으며, 동시에 작가 개개인마다의 개성적인 표현을 가능하게 하였다.44)또한, 선은 면으로의 전개를 필연으로 하는데, 이러한 선과의 관계 속에서 탄생한 면은 결코 정지되어 있는 덩이를 나타내는 것이 아닌 형태를 전개해 나가는 하나의 경향으로 존재하여 생명력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동양 화가들은 선을 통해 형태의 정확성과 사실성만을 추구하는 대신에 사물의 본질적인 모습을 구현해내려고 하였고, 이는 서양에서 단순히 현상을 포착하려 했던 것과 차이를 보이는 동양적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4. 조르조 모란디의 작품에 나타나는 동양적 표현 분석 4.1. 작품 분석

<그림 7> still-life, 1919 <그림 8> still-life, 1919 <그림 9> still-life, 1920

조르조 모란디의 초기 작업에는 형이상회화파적 성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현실 사물의 부자연 스러운 조합과 그 속에서 나타나는 묘한 긴장감은 이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하지만 얼마 지나 지 않아 형이상회화파는 소멸하였고 모란디는 기하학적 실험을 통해 엄격하고 일관적인 자신 만의 표현법을 정립하는데 성공한다.45) 이후 그는 감각적이고 물리적인 정물을 통해 비감각적 이고 형이상학적인 존재를 표현하는데 남은 열정을 받치게 된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조르조 모란디의 작품을 크게 형태, 구도, 표현으로 나누어 살펴본 뒤 그의 작품에서 나타난 표현을 동양화에 나타나는 표현들과 비교·분석해 보았다.

43) 왕야오팅, 오영삼 옮김, 『중국회화 산책』, 아름나무, 2007, p.131.

44) 킴바라세이고, 민병산 옮김, 『동양의 마음과 그림』, 새문사, 1978, p.188.

45) 윤남순, 김재호, 『GIORGIO MORANDI』, 국립현대미술관, 2014,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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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 형태

모란디의 정물에는 주로 일상의 물건들이 등장한다, 그는 병, 램프, 나무상자, 원통 용기, 주전 자 등을 표현의 대상으로 삼았지만, 사물의 질감이나 투명성과 같은 물성에는 주목하지 않았 다.46) 그는 사물을 소재로 사용하기 전에 붙어 있던 라벨을 제거하고 표면에 물감을 덧발라 사물의 형체와 색만 남긴 채 구성에 방해되는 요소들을 모두 지워냈다. 또한, 유리병 같은 경우 먼지가 수북이 쌓이도록 한 뒤 정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개별성이 지워진 사물 은 화폭에서 서로의 관계를 강화시킨다. 또한, 모란디는 일반적으로 정물화에 등장하는 대상의

<그림 10> still-life, 1951 <그림 11> still-life, 1951 <그림 12> still-life, 1957

정형화된 모습에 집착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저그(jug)를 그린다고 하자. 어느 각도로 그릴 것이냐를 결정할 때, 일반적으로 저그의 특징이 잘 드러난 옆모습을 그리거나 살짝 사선으로 놓인 모습을 그릴 것이다. 하지만 모란디는 전체 화폭의 질서 속에서 조화를 이루는 각도를 포착하여 그려내었다. 주인공이 되는 물체를 강조해서 그리거나 돋보이게 그리는 것이 아닌 전체의 어울림을 위한 방향으로 그림을 이끌어 나갔던 것이다. 이렇듯 모란디는 물체를 독립적 인 대상이 아닌 상호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대상으로 보았으며 그것을 화폭에 표현하는데 주저 함이 없었다.

4.1.2. 구도

모란디의 작품에서 가장 독특한 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구도이다. 그는 넓은 여백 속에 정물을 밀집시켜 배치하여 정물들이 한 덩어리로 보일 수 있도록 하였다. 이것은 대상의 개별적 모습보다 그룹 지어진 전체적 형상에 주목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정물의 전체적 형상을 강조한 구도는 일상의 사물들을 통해 또 다른 형상을 은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나타낸다. 아래 에 보이는 길쭉한 병과 저그로 구성된 <그림 14>는 정물들이 모여 마치 성벽을 이루는 것처 럼 보인다. 불투명한 낮은 병과 주전자가 화면 중앙에 모여 구성된<그림 15>는 병들이 주전 자를 호위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또한, 그의 화폭에 등장하는 사물들은 주로 부수적인 장식 없이 이분할 된 색면(色面)으로 존재하는 넓은 배경 앞에 위치해 있다. 이와 같은 화면 구도는 수사적인 기교를 제외하고 오로지 사각형의 화면에 등장하는 정물과 정물, 정물과 배경 사이의 관계에만 시선을 집중하도록 하였다. 그 결과, 관찰자는 고요함이 느껴지는 색면의 배경 속에

<그림 13> still-life, 1948 <그림 14> still-life, 1955 <그림 15> still-life, 1962

서 정물과 얼굴을 마주하게 되고, 화폭 속의 정물에 이끌려 그 속에 자신을 이입하게 되며

46) 윤남순, 김재호, 『GIORGIO MORANDI』, 국립현대미술관, 2014, pp.3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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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조할 수 있게 된다. 덧붙여 모란디는 드물게 지평선을 생략하고 사물의 약한 그림자만을 통해 공간을 표현하기도 했는데 이것은 공간 속에 정물들이 떠다니듯 한 느낌을 주게 된다.

이로 인해 현실에 존재하는 것과 닮아있는 정물의 리얼리티에 대해서 물음을 던지게 되고 물리 적 세계에 대해 성찰할 수 있게 된다.47) 모란디는 현실의 사물들을 그렸지만 그림을 통해 현실에 존재하는 사물의 눈에 보이지 않는 관계들을 표현해내려고 하였다.

4.1.3. 표현

모란디는 일상의 사물들을 화폭으로 가져올 때 그것이 가지고 있는 외적인 형태를 정확히 구현 해 내는 것에 집착하지 않았다. 반대로 일상사물의 형태를 차용하였지만 실물로 느껴지는 사물 의 이미지와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표현하였다. 예를 들어, 철재로 반듯하게 이루 어진 용기 일지라도 그의 화폭에 등장하게 되면 각진 모서리는 무뎌지고 반듯했던 선도 살짝휘 고 느슨해진다. 그는 같은 사물을 그리더라도 화폭마다 조금씩 다른 형태와 색을 사용하였다.

<그림 16> still-life, 1941 <그림 17> still-life, 1960 <그림 18> still-life, 195

그날의 빛과 그림자에 따라 사물의 색상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이것은 그가 사물이 가진 항상성에 대해 의문을 가졌던 증거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드로잉((Drawing)과 수채화를 통해 심화되었다. 그는 드로잉과 수채화에서 최소한의 표현을 통해 형상을 나타내었 다. 드로잉에서는 형상을 감싸는 외곽선을 불확실한 선을 통해 나타내었는데 불확실한 선은 형체를 이루다가 배경에 조금씩 스며들어 사라지도록 표현하였다. 그의 화폭에 나타난 선은 형태의 형성 혹은 해체 과정을 나타냈다고 보인다. 이것은 동양화에서 선을 통한 형태 전개 과정을 나타낸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드로잉과 수채화에서 보이는 형태들 은 선이나 면으로 완결 지어지지 않았다. 대신 작품의 완결을 관찰자에게 맡기며 이를 통해 감각적 존재를 화폭 안에 가두지 않고 무한한 변화 가능성을 나타낸 것이다. 모란디의 선은 도가 사상에서 기가 모여 형상을 이루었다가 다시 무형의 기로 돌아가는 모습과 유사하며 동양 회화에서처럼 미완을 통해 대상의 영원성을 획득하려 하였다. 한편 그는 사물과 사물 사이에 나타나는 여백을 빈 공간이라고 보지 않고 또 다른 형상으로 인식하였다. <그림 17>과 <그림 18>에서는 흰 바탕과 좁게 채워진 흑색 면을 통해 병과 용기와 같은 형상을 나타내었다. <그 림 18>은 검게 채워진 면 속에 흰 바탕을 드러냄으로써 병의 형상을 표현하였다. 모란디는 화폭에서 배경과 형상을 분리하여 인식하지 않고 서로 의존하는 상생 관계라고 여겼으며 배경 은 형상을 낳는 모태로써 표현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2. 동양적 표현 분석

조르조 모란디의 작품에서 동양적 표현이 드러나는 부분을 세 가지로 압축해볼 수 있다.

47) 윤남순, 김재호, 『GIORGIO MORANDI』, 국립현대미술관, 2014,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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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1. 여백을 통한 사물 표현

작품 설명

<그림 19>

Still life, 1961

<그림 20> Still life, 1931

∙ 흰 종이 자체를 공간으로 인식

∙ 여백에 어두움을 첨가하여 형태를 드러냄

∙ 동양화의 여백과 같은 맥락을 지니며 도가 사상에 나타나는 유와 무의 상생 관계를 통 해 이해할 수 있음

<표 1> 조르조 모란디의 작품에 나타나는 동양적 표현 분석 - 여백의 표현

첫 번째로, 그는 비워둠으로써 대상의 존재성을 강조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이 모습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하였다. 그는 유화에서 장식 없이 색면으로 표현된 벽과 바닥을 통해 여백을 나타내었고 에칭, 수채화, 드로잉에서는 배경이 되는 흰 종이 자체를 공간으로 인식하고 표현 하였다. 이것은 도가 사상의 이야기하는 유와 무의 상생 관계를 바탕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동 양화에서 대상에 내재된 끊임없는 기의 순환 운동을 나타내기 위해 여백 위에 사물의 일부를 표현한 것과 같은 맥락을 지닌다. 동양화와 모란디의 작품은 여백을 통해 존재하는 것들의 비물질적 요소를 시각화하고 작가에 의해 표현되지 않은 부분이 관찰자를 통해 완성되어 무한 히 존재할 수 있게 된다고 할 수 있다.

4.2.2. 선을 통한 형태의 발전적 표현

작품 설명

<그림 21> Still life, 1959 <그림 22> Still life, 1960

∙ 최소한의 선과 색을 사용하여 형태를 표현

∙ 완료형의 형태가 아닌 형성 과정의 형태를 담아냄

∙ 정물을 정지된 상태가 아닌 끊임없이 움직이 는 상태로 봄

∙ 동양화에서 사물의 기를 나타내기 위해 골법용 필을 중요시 여겼던 것과 연결 지을 수 있음

<표 2> 조르조 모란디의 작품에 나타나는 동양적 표현 분석 - 선적 표현

두 번째로, 그는 일반적인 서양의 회화에서 나타나는 완료형을 표현하지 않고 형성 과정을 화폭에 표현하였다. 이는 그의 작품 후기에 집중적으로 발생한 연필 드로잉과 수채화를 통해서 뒷받침될 수 있다. 그는 드로잉과 수채화에서 최소한의 선과 색을 사용하였으며 특히 선적인 표현을 통해 사물의 융해 과정을 나타내었다. 이와 같은 모란디의 선은 동양화에서 나타나는 선의 의미와 비슷한 맥락을 띄고 있다. 도가 사상에서 사물은 기의 반복 운동을 통해 존재할 수 있다 보았고 이것을 동양화에서 선적 표현을 통해 화폭에서 대상들이 정지해있는 것이 아닌 움직임을 가지며 상호작용하도록 표현한 것이다. 모란디도 대상이 화면 속에서 움직이며 다양 한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나타내었고 선을 통해 형태의 완결 짓지 않는 미완성의 미(美)또한 보여주었다.

4.2.3. 사물의 정신적 측면 표현

작품 설명

<그림 23> Still life, 1964

<그림 24> Still life, 1965

∙ 정물의 보이는 그대로를 그리지 않음

∙ 형상과 형상, 형상과 배경이 만나 융해됨

∙ 기의 이합집산의 형태를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음

∙ 형태 이면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나타냈다는 점 에서 동양화의 신(神)의 표현과 연결됨

<표 3> 조르조 모란디의 작품에 나타나는 동양적 표현 분석-전신(傳神)의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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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 그는 정물화를 통해 대상을 그대로 묘사하는 것에 의의를 두지 않았다. 물체가 가진 외관을 나타내되 정제되지 않은 울퉁불퉁한 외곽선을 활용하여 형태를 표현하였다. 이는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겠지만 본 연구자는 이러한 표현이 사물에 내재된 기운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그의 작품은 보이는 것에 대한 끊임없는 관찰을 통해 보이지 않는 세계 에 도달하려 시도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48) 보이지 않는 세계란 대상의 내부에 존재하는 세계라고도 볼 수 있으며 이것을 도가 사상에서 이야기하는 음과 양의 내적 움직임과 연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와 같은 가능성은 그가 작품의 대상이 되는 정물을 그려 나갈 때 정물의 외형을 그대로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 근접한 위치에 있는 대상과 대상 사이의 외곽선이 합쳐서 서로에게 침투하여 형태가 결락되거나 변형된 듯 표현한 것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이것은 정물의 내부에서 발산되는 기가 느슨하게 연결된 외곽선을 넘어 만나면서 형성되 는 형체가 작가의 상상력과 합쳐져 나타난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다. 모란디의 이러한 표현은 정물에 생명력을 불어 넣었다. 그는 정물을 단순히 유형을 가진 무생물이라고 여긴 것이 아닌 고유의 정신을 가진 물체라고 생각하였고,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정물의 신적 표현을 통해 그것에 대한 애정을 나타내었다.

5. 결론

조르조 모란디는 화폭 속의 평범하고 단순한 사물을 통해 보이는 것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졌고 그러한 과정 속에서 가시적 세계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보여주었다. 이에 본 연구에서 는 그가 보이는 것 속에 가려져 있는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 화폭이라는 공간을 동양적 시각으로 바라보았음을 증명해 보고자 하였다. 이것을 뒷받침하기 위해 도가 사상을 바탕으로 동양적 표현을 여백, 전신, 선 세 가지로 규정하였고 그의 작품과 비교하여 아래와 같은 결과를 도출해 내었다.

첫째, 모란디의 화폭 속에 무의 공간은 잠재적 존재가 내재되어 있는 유의 공간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도가 사상의 무와 유의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과 연결 지을 수 있으며, 동양화에서 드러나는 여백에 대한 표현과도 일맥상통한다.

둘째, 그의 회화에 나타나는 모든 물체는 엄격한 질서 속에서 상호의존적으로 존재한다. 그는 대상을 표현하는 데 있어 주제 부분을 강조하고, 돋보이도록 하지 않고 대상끼리 얽혀있는 관계를 포착하여 표현하였다. 이렇게 화면 구성에서 개체의 특성보다 관계와 어울림이 중요시 된 정물들을 통해 동양 사상의 전반에 걸쳐있는 관계 중심적 태도를 떠올릴 수 있다.

셋째, 그는 일상의 사물의 외형보다 이들이 모여 만드는 관계나 사물에 내재하는 힘과 같은 비가시적인 요소의 표현을 통해 정물화가 가지는 결핍을 극복하려 하였다. 이것은 동양화에서 사물의 내적인 기의 표현을 이용하여 형태의 발전성을 획득하려한 것과 연관 된다.

넷째, 그의 드로잉과 수채화에서는 선적인 표현을 통한 형태의 전개 과정이 나타난다. 이러한 선적인 표현은 동양화에서 물체의 운동 형태를 담고자 했던 의도와 상통한다.

자신에 관한 책조차 출판되기를 반대할 정도로 자신을 드러내기를 거부했던 모란디의 삶에 대한 가치관 때문에 다양한 자료를 통해 연구를 진행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작품들은 그가 남기지 않은 것들에 대해 말해주고 있었다. 본 연구자는 그의 유화, 수채 화, 드로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을 접하였고, 그 속에 드러나는 독특한 표현에서 동양적 특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넓은 여백, 선에 의한 평면성에 대한 긍정, 형태의 결락은 그가 현상이 아닌 본질에 다가가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은 도가 사상에 영향을 받은 동양의 화가들이 예술에서 도달하고자 했던 목표와는 다르지 만 그 방향성은 같았다. 즉, 그의 정물화는 현상의 복제가 아닌 본질을 인식하기 위한 수단이었 으며, 그것을 풀어 나가는 데에 있어서 그는 지극히 동양적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본 연구자는 모란디의 작품을 모더니즘 시대에는 제기되지 않았던 동양적 시각에서 해석을 진행하였다. 그의 작품에서는 서양이라는 주류 문화와 동양이라는 비주류 문화를 동시에 찾아

48) 윤남순, 김재호 『GIORGIO MORANDI』, 국립현대미술관, 2014, pp.3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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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수 있었으며, 이것이 수직이 아닌 수평 관계를 이뤄 상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양한 문화가 뒤섞여 문화의 수평성을 요구하는 현시대에서 모란디의 작품에 드러난 동양적 표현에 관한 해석은 그의 작품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고, 현대의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치 며 현존함으로써 동시대적 가치를 지니는 근거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연구를 통해 모란디의 예술에 대한 인내와 집념이 모든 시대를 아우르는 귀감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며, 그에 관한 다양한 연구가 시작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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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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