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사오디세이
HONYAKUSHI NO PROMENADE by TSUJI Yumi
Copyright ⓒ1993 by TSUJI Yu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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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al Japanese edition published by Misuzu Shobo Korean translation rights arranged with Misuzu Shobo
through BESTUN KOREA Agency Korean translation rights ⓒ2008 CLEMA Publis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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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사오디세이
쓰지 유미 지음 ● 이희재 옮김
번역사 오디세이
초판 1쇄 인쇄일 2008년 5월 15일 초판 1쇄 발행일 2008년 5월 26일
저자�쓰지 유미 역자�이희재 펴낸이�구길원 펴낸곳�끌레마
주소�121-839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377-26 1층 전화�02-3142-2887, 팩스�02-338-2413
e-mail �letter@clema.co.kr
ISBN 978-89-961054-0-4 0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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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은 뒤표지에 있습니다.
‘번역은 한마디로 말의 무게를 다는 것’이다. 저울의 한 쪽에
저자의 말을 얹고 또 한 쪽에는 번역어를 올려놓는다. 그리고
이 둘이 균형을 이룰 때까지 작업을 계속해나간다. 하지만 저
울에 올리는 것은 사전에 정의된 말이 아니라 저자의 말이다.
‘저자의 정신이 투입되어 스며들어 있고 거의 감지할 수 없을
정도이긴 하지만 깊은 수정이 가해진’말이다. 그것은 살아서
고동치는 말이며 원문에서 벗어나 있다 하더라도 다리를 뻗어
작품 전체와 긴밀히 얽혀 있다. 저울에는 그 생명의 무게가 얹
힌다. 따라서 저울의 또 한 편에도‘똑같은 생명의 리듬을 타
고 움직이는 등가의 무게’가 필요하다.
——` 발레리 라르보
들어가는 말… 9
� 젤레니스키라는 사람 � 왜 번역사인가
1 번역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나 … 21
� 번역사 자료의 수집 � 번역은 고대에도 있었다 � 종교 경전의 번역
� 프랑스어 변역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나 � 르네상스 이전의 번역가들
2 바그다드에서 톨레도로 … 51
� 아랍 문화가 이끈 번역의 세기 � 번역의 세기를 이끈 사람들 � 바그다드의 번역 기관`-`‘지혜의 집’� 후나인 이븐 이스하크 � 중세 유럽의 번역 � 번역 의 중심지 톨레도 � 크레모나의 헤랄도
3 프랑스 르네상스의 선구자 … 87
� 번역 붐의 도래 � 16세기의 번역가들 � 성서의 불역을 둘러싼 공방 � 에 티엔 돌레 � 자크 아미요
차 례
4 부실한 미녀`-`루이 14세 시대의 번역 논쟁 … 123
� 프랑스어의 자부심 � 번역이 아직도 위엄을 누리던 시대 � 안 르페브르 다시에 � 뛰어난 것은 요즘 사람인가 옛날 사람인가`—`신구 논쟁 � 문명 논 쟁으로서의 번역 논쟁`—`안 다시에 대 외달 드 라 모트 � 라 모트의 호메로스 공격 � 안의 반론 � 여담`—`일본의 동서논쟁 � 다시 본론으로 � 현대로 이 어지는 논쟁
5 번역에 정열을 바친 작가들 … 163
� 프랑스 번역사의 흐름 � 프랑스 번역사의 작가들 � 앙드레 지드 � 발레 리 라르보 �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6 유명한 무명 번역가들 … 203
� 가브리엘 에밀리 뒤 샤틀레 � 클레망스 루아이에 � 드니즈 클레루앵
7 번역가 조직을 세운 사람들 … 245
� 프랑스번역가협회SFT의 설립 � 출판번역가들의 분리 � 인세라는 원칙
� 엘마 토프호벤 � 아를 출판번역회의 발족 � 스페인과 이탈리아
� 주… 279 �참고문헌… 285 �저자 후기… 295
� 역자 후기… 302 �인명 색인… 305
젤레니스키라는 사람
폴란드에‘`번역의 셰익스피어`’라고 불리던 전설적 번역가가 있었 다. 중세에서 20세기까지의 프랑스 문학을 거의 혼자서 폴란드에 소개했다는 타데우츠 젤레니스키, 별명은 보이. 의사였지만 전업하 여 번역가가 되었다. 시와 노랫말을 썼는가 하면 문학평론과 사회 평론에도 날카로운 필봉을 휘둘렀다.
젤레니스키가번역한작품을한번훑어보면감탄사가절로나온다.
중세 문학인『롤랑의 노래』와 비용의 시집, 고전주의 작가 라파예 트, 또 데카르트와 파스칼 같은 철학자, 볼테르와 디드로 같은 계몽 사상가, 19세기 작가 스탕달과 발자크, 나아가 지드, 프루스트 같은 20세기 작가에 이르기까지 젤레니스키는 무려 35명의 프랑스 저자 의 작품을 폴란드어로 번역했다. 35명 작가의 작품을 35개의 문체 로 옮긴 것이다.
날마다 번역으로 고생하는 한 사람으로서 시대도 작풍도 다른 수 많은 작가의 작품을 잘도 옮겼구나, 그저 경탄할 뿐이다. 번역은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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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이 쌓일수록 어려움이 눈에 보인다. 언어의 벽이 가로막는 듯한 중압감이 날이 갈수록 절실해진다. 나 자신이 통감하는 바이지만, 나와 같은 느낌을 갖는 번역자가 적지 않은 듯하다. 젤레니스키는 과연 번역의 셰익스피어라 불릴 만했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젤레니스키에게 남다른 호감을 갖게 된 것은 의사였던 그가 파리 체류를 계기로 번역가로 변신했다는 사실 때문 이었다. 이런 파격적인 번역가와 비교하기는 좀 무엇하지만 실은 나도 생물물리 연구자의 길을 걷다가 파리에 살면서 번역가의 길로 들어섰다. 언어의 세계라는, 자신과는 별로 인연이 없던 세계를 우 연히 발견하고 정신없이 언어 공부에 매달리던 무렵의 저 신선한 놀 라움과 감동을, 이 폴란드 번역가의 이야기는 나에게 되살려주었다.
이문화`異文化와의 접촉은 때때로 한 사람의 인생을 크게 바꾸어 놓는다. 번역가 중에는‘`전직한 사람들`’이 제법 많다.
타데우츠 젤레니스키는 1874년 바르샤바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유명한 음악가, 남부럽지 않은 예술적 분위기에서 자랐지만 그가 선택한 길은 의업이었다. 파리에 온 것은 무엇보다도 의학 공부를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젤레니스키는 금세 이 거리의 매력에 사로잡힌다. 병원도 연구실도 내팽개치고 오직 파리 순례에 정력을 쏟아 부었다. 이런 도시에 와서‘`내 나라에서 하던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폐와 간 장을 진단하면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정신 나간 짓`’이라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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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센 강변의 고서점에서 발견한 프랑스 문학은 그를 매료시켰 고 샹송의 발견은 그를 번역의 길로 이끈 마지막 결정타였다.
폴란드에 돌아온 젤레니스키는 문화의 향기가 풍성한 고도`古都
크라쿠프에서 파리풍의 예술 카바레를 세우는 데 관여하여 그 카바 레를 위한 풍자시와 노래를 쓰고 아울러 프랑스 문학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은 아직 내키지는 않았지만 의사 일을 계속했다.
작사와 처방전에 같은 이름을 쓰기는 곤란했기 때문에 예술가로서 는‘`보이`’라는 필명을 썼다. 프랑스 문학 번역가가 영어 필명을 가 졌다는 게 조금 우습지만 젤레니스키는 오히려 이 독특한 필명으로 이름을 날린 모양이다.
젤레니스키가 이 카바레를 위해 쓴 풍자시는 커다란 인기를 모아 그 일부는 작자의 이름이 잊힌 지 오래인데도 여전히 살아 있을 만 큼 대중적인 뿌리를 내려 마치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격언처럼 지금도 폴란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고 한다.
의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번역과 평론 활동에 전념하기 시작한 것은 30대 초반부터다. 당시 폴란드 자유주의 인텔리겐치아의 기 수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젤레니스키에게 프랑스 문학을 소개하는 것은 문화 개혁이라는 의미가 있었다.
사실 폴란드에서는 독일 문학의 영향이 강했기 때문에 프랑스 문 학의 소개는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젤레니스키는 과감한 논 객이었다. 그는 시민생활에 강한 지배력을 행사하던 가톨릭 도덕률 에 통렬한 비판을 퍼붓고 종교에 속박당하지 않는 결혼과 여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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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지에 입각한 출산을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젤레니스키가 당시 폴란드의 젊은 지식인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비중 있는 존재였는가는 폴란드의 저명한 문예비평가 얀 코트가 최 근에 펴낸 자서전『집행유예의 인생』`1에서도 엿볼 수 있다. 얀 코트 도 그에게 심취했던 한 사람으로, 젤레니스키가 남긴 격언의 상당 수를 줄줄 외우고 다닐 정도였다고 한다.
1912년『몰리에르 전집』의 번역 출판이라는 대작업을 마무리한 다. 번역을 거듭하면서 젤레니스키는 나이브한 형태이기는 했지만 독일 낭만주의라는 지배적 조류에 프랑스의 합리주의, 회의주의를 갖고 도전한다는 자세를 점차 선명하게 드러냈다. 곧 젤레니스키는
‘`보이의 도서관`’이라는 프랑스 문학 총서를 만들어 이전에 출판된 것과 개역한 것을 이 안에 포함시켰다. 1929년에는 이 총서가 100권 을 넘어섰다고 하니 거의 초인적인 작업량이었다.
젤레니스키는 작가에 따라 번역문의 문체를 바꾸는 묘기를 주특 기로 삼았고 조어에도 발군의 기량을 과시했다. 19세기에 꽃을 피 운 폴란드 문학에는 17세기 프랑스 고전주의 문학에 대응하는 문체 가 없었기 때문에 그는 라파예트와 데카르트를 번역하기 위해 폴란 드어의 고전주의 문체까지 고안했다. 젤레니스키의 번역은 폴란드 문학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흔적을 아로새겼다.
번역이 새로운 말을 만든다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나 벌어진 현상 일 것이다. 일본에서는 메이지 유신 이후 서양 문화∙사상의 도입이 새로운 말을 만들어냈다. 프랑스에서도 중세부터 르네상스의 프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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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어 형성기까지 번역에 의해 수많은 신어가 탄생한 것은 잘 알려 진 사실이다.
젤레니스키는 늘 자연스럽고 친숙하며 쉬운 문장을 구사했다. 그 것은 인명을 폴란드식으로 고쳐 쓴다거나 프랑스어 특유의 표현을 폴란드어다운 표현으로 옮겨놓는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남 달리 풍부한 어휘의 소유자였던 그는 모국어의 가능성을 철저히 살 려냈다.
물론 그런 그에게도 까다로운 저자가 있었고 오역도 있었다. 사실 번역에서 거의 피해갈 수 없는 것이 이 오역일 것이다. 젤레니스키 는 자신의 번역에는 끝까지 책임을 져서 새로운 판을 낼 때에는 반 드시 수정을 했다.
젤레니스키는 사업 수완도 상당했던 모양이어서 출판, 배본, 홍보 를 자기 손으로 해치웠다. 그의 천부적인 홍보 감각을 보여주는 예 가 있다. 데카르트의『방법서설』을 번역했을 때 이런 책을 읽어줄 사람이 과연 있을까 불안해진 젤레니스키는 독자의 호기심을 끌기 위해‘`성인물`’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머리말에는 이런 난해하고 심각한 책을 젊은이가 이해할 리 만무하다고 썼다.
이것이 먹혀들었다. 폴란드어판『방법서설』은 데카르트가 살아 있었다 해도 과연 그 정도까지 기대할 수 있었을까 싶게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 순식간에 4판을 찍었다(지금 같으면 이 정도의 전략은 어느 출판사나 하기 때문에 이렇다 할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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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건한 신체를 타고난 젤레니스키는 1927년 파리 소르본 대학에 서 강연을 하면서 자기는 부친이 84세까지 산 것처럼 자신도 84세 까지 살 거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점칠 수 없는 것 이 사람의 운명이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1939년 폴란드는 독일군과 소련군에 의해 분할 지배되고 바르샤바는 독일군의 점령하에 놓였다. 젤레니 스키는 소련측에 병합된 리보프로 피신한다. 하지만 소련에 점령된 지역도 안전하지는 않아 백 수십만의 폴란드인이 시베리아와 카자 흐의 수용소와 집단농장으로 강제이주 당했다. 젤레니스키도 하마 터면 시베리아로 끌려갈 뻔했다가 간신히 빠져나와 그 뒤 리보프 대학에서 프랑스 문학을 강의했다.
하지만 1941년 독소불가침조약이 파기되어 리보프에도 독일군이 침입했다. 그 며칠 뒤 젤레니스키는 비밀경찰에 체포되어 다른 24명 의 교수와 함께 총살당했다. 향년 67세였다.
왜 번역사인가
프랑스 번역사를 연구한다고 하면 상대방은 얼른 와 닿지 않는지 묘한 표정을 짓곤 한다. 번역의 역사라니 그게 뭔가. 별다른 이미지 가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문자에도, 책에도 역사가 있는 것처럼 번 역에도 당연히 역사가 있다. 이질적인 언어 사이의 교류는 태곳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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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터 있었다. 번역은 문자와 거의 똑같이 오랜 옛날부터 존재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인류의 보편적 행위이다.
번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은 어떤 시대에 어떤 책이 어떻게 번역되 었는가를 추적하는 것이다. 동시에, 번역을 담당해온 사람들에게 조명을 가하는 일이다. 사실 번역가가 역사의 주인공으로 거론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번역가는 원래 돋보이는 존재가 아니다. 자기를 적어도 어느 수준 까지는 지우지 않으면 번역이라는 행위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역자의 목소리가 커지는 번역은 곤란하다. 하지만 무대 뒤편에서 일해야 마땅한 이 번역가도 어떤 역사적 상황에서는 화려한 조명을 받은 적이 있었다. 번역이라는 행위 안에는 시대에 따라, 장소에 따 라 바뀌는 다른 문화와의 접촉 양상이 응축되어 있다. 번역가들의 생애는 그것을 구체적 형태로 보여준다. 앞에서 소개한 젤레니스키 의 생애가 좋은 예다.
번역은 거의 숙명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상호 모순되는 가치관 을 떠맡고 있다. 다른 문화의 영향을 받지 않은 순수 문화는 어디에 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다른 문화를 흡수하는 능력은 역동성 의 증거라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다른 문화에 대한 동경은 어느 누구의 마음속에나 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어느 문화든 실제 이상으로‘`독자성`’을 주 장하고 싶어 한다. 흉내는 언제나 부끄러운 것이다. 게다가‘`밖의 것`’은 때로는‘`외압`’처럼 여겨지고 기존의 가치관과 질서를 위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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롭게 만든다. 정체성의 위기로 받아들여지는 경우조차 있다.
어느 시대건 번역은 대부분‘`지배적 문화`’로 여겨지는 언어로부 터 이루어지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가령 지금 같으면 거의 모든 나라에서 영어 번역이 압도적으로 다수를 차지할 것이다. 프랑스도 1980년대 중반의 통계로는 번역서의 약 70퍼센트가 영어로 써진 작품을 번역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배적인 것에 대한 동경은 때때로 억압된 반발과 나란히 가고, 그것은 증오로 돌변하기도 한다. 일본의 근대만 해도 그렇다.
예부터 일본인은 중국 문화를 전범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일본 문 화 연구가인 도널드 킨도 지적하듯이`2근대의 여명기에 일본이 중 국에서 서양으로 지향점을 바꾸었을 때 싹튼 것은 그때까지 스승으 로 모셨던 중국에 대한 적대감과 경멸이 아니었던가.
역사적 정황은 전혀 다르지만 근대 유럽에서 일어난 반유대주의 에서도 여기에 견줄 만한 배경을 엿볼 수 있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레옹 폴리아코프는 유럽 세계가 그리스도교 지배로부터 벗어나 선 조를 아담 대신 아리아인에게서 찾으려고 했을 때 그것이 동시에 그리스도교의 원류에 위치한 유대인을 향한 가공할 무기로 변해가 는 양상을 훌륭히 분석했다.`3
그 정도로 극단적인 양상을 띠지는 않더라도 다른 문화를 도입하 는 데는 동경과 반발이 거의 예외 없이 수반되는 듯하다. 번역가는 다른 문화의 위광을 구현하는 존재이면서 다른 문화를 떠맡은 사람 이므로 표면에 나서도 과히 환영받지 못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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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프랑스의 번역사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은 일본에서 일었던 번 역을 둘러싼 논의와 오역론에 촉발되어서다. 가끔씩 이런 논의를 접하는 동안, 그럼 다른 나라에서는 번역가들이 무엇을 논의해왔을 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나는 프랑스에서 우선 다른 외국인들과 같 이 책상 앞에 앉아 완전히 처음부터 프랑스어를 배우고 다시 프랑 스 학생들과 함께 타밀어를 공부한 경험이 있다. 그때 받은 인상은 외국어 습득의 어려움은 어느 나라든 똑같다는 것이었다. 외국어에 능통한 사람은 외국어 공부에 막대한 시간을 들이는 것을 고통스럽 게 느끼지 않는 사람이 아닐까. 그것은 어느 나라 사람이든 마찬가 지다.
따라서 어떤 언어로 쓴 것을 다른 언어로 옮기는 어려움에도 공통 점이 틀림없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침 아는 프랑스 사람 가운 데 번역을 직업으로 가진 여성이 있어 그녀도 나와 비슷한 난제에 부딪쳤다는 이야기를 들은 탓도 있다.
나는 일본이라는 공간, 현재라는 시간을 조금은 새롭게 보고 싶어 서 프랑스의 번역사를 조사하기로 마음먹었다. 먼저 파리 국립도서 관에서 문헌을 찾기로 했다. 프랑스에서는 역사적으로 번역에 관해 어떤 책이 씌어졌는지 호기심이 일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처음부터 큰 기대를 품지는 않았다. ‘`중화사상`’이라는 지적을 받을 정도로 자부심이 강한 이 나라가 다른 문화를 도입하는 데 그다지 적극적 이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고, 번역가가 사회적으로 높은 평가 를 받고 있다는 인상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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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손때에 절은 도서카드와 서적목록을 뒤져 가는 동안 차츰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드넓은 파노라마였 다. 이렇게 아득한 옛날부터 번역론이 이야기되고 오역이 도마 위 에 오르고 번역가가 거론되어왔다니! 나는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것은 나에게는 하나의 발견이었으며 마치 지하 수맥을 흐르는 또 하나의 문화사와 만난 듯했다.
그렇지만 조사를 계속하는 동안 이 숨겨진 수맥을 찾아내는 작업 의 어려움도 절감하게 되었다. 그 수맥은 때로는 대하처럼 흐르는 가 하면 금세 좁은 미로로 빠져들어 갔다.
프랑스에서 번역가의 지위는 17세기 중반 무렵까지는 아주 높았 고 번역에 대한 생각도 역사와 함께 변천해왔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의 가치관을 지닌 시대가 다른 가치관을 지닌 시대에 대해 내리는 판단을 어느 정도까지 신뢰할 수 있을까. 당연 히 다각적으로 파고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번역사와 함께 다른 분 야의 역사에도 고개를 들이밀어야 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문학사 책은 번역은 극히 일부분밖에 언급하지 않지만 과학사 책 중에는 번 역을 비중 있게 다루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나로서는 조금 의외였다.
어떤 역사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겠지만, 하나의 사건이라 도 자료에 따라 커다란 차이가 나는 법이다. 때문에 다양한 종류의 문헌을 구하다 보니 작업량은 점점 늘어났다.
나는 몇 번인가 파리에 머무는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내야 했다. 프랑스의 지인들은 모처럼 여행을 와서는 일만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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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고 은근히 비난하는 듯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그럴 때는‘`일밖 에 모르는 일본인`’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 싫어서 도서관에 처박 혀 있던 사실을 숨기고 오늘은 파리 시내를 산책하고 왔다고 적당 히 둘러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열심히 도와준 친구도 있다. 대학 도서관의 사서로 근무하 는 프랑수아즈 콩베르 씨는 번역에 관한 잡지 기사와 논문이 눈에 띌 때마다 복사해서 나에게 보내주었다. 폴란드의 번역가 젤레니스 키를 안 것도 그녀 덕분이었다. 같은 번역사라 하더라도 여러 가지 접근 방법이 있다. 번역론의 추이를 중심에 두는 것도 하나의 방법 이라고 생각하지만 내 경우는 가급적 번역가라는 인간의 모습을 추 적하고 싶었다. 그것은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자료는 그런 대로 있다 하더라도 어차피 무대 뒤편을 그려야 하는지라 인간상을 총체적으로 포착하기에는 빈틈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 었다.
나와 함께 번역사를 산책해주실 분들이 문화의 그늘에 선 이 주역 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공감해주신다면 더없는 다행으로 여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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