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동전을 구멍에 넣고 레버를 잡아당기면 서로 다른 문양들이 핑그르르 돌다가 멈추고 그것이 같은 문양으로 나란히 맞 추어지면 동전이 철철 쏟아져 나오는 기계가 파친코인 줄 알았었다. 하지만 그것은 슬롯머신이었고 일본에서 처음 마주한 파친코는 오히려 핀볼 머신 같았다. 작은 구슬을 넣 고 구슬이 여기저기로 굴러갈 때 레버로 그 구슬을 타이밍 좋게 튕겨서 원하는 구멍으로 넣는 게임이라고 하는데, 몇 번 설명을 들어도 어떻게 타이밍을 맞춰야 하는지 잘 알 수가 없었다.
파친코장은 슬롯머신이 있던 호텔이나 크루즈의 카지노 와는 분위기가 매우 달랐다. 카지노가 짙은 색의 카펫과 컬 러풀하면서도 약간은 어두운 조명, 게임 종류별로 구획된 공간과 널찍한 통로, 단정하게 제복을 입은 직원들로 화려 하고 약간은 웅장한 느낌을 준다면, 파친코장은 딱딱한 바 닥과 밝은 조명, 오락실마냥 빽빽하게 줄지어진 파친코에
구슬 돌아가는 소리와 음악 소리가 무도장처럼 귀청 떨어 질 만큼 시끄럽고, 파친코 앞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 로 공기가 뿌옜다. 탁한 공기와 소음으로 정신이 어벙해져 게임이 신기하다거나 집중해야겠다는 마음보다는 한시라도 빨리 그 자리를 떠나고 싶어졌다.
내·외국인 구분에, 출입이 자유롭지 않고 장소도 호텔 이나 특정 지역으로 한정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카지노와 는 달리, 일본의 파친코장은 성인들을 위한 오락실에 가깝 다. 일과 후 맥주 한잔 하듯이, 파친코에 들러 게임을 하고 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된 것은 일본 드라마를 통해 서였다. 일본에서도 도박은 불법이기 때문에 파친코장에서 딴 구슬은 돈이 아닌 상품으로 받게 된다. 과자, 음료수, 아 이스크림과 같은 먹을 것에서부터 인형이나 액세서리 등 꽤 다양한 상품들이 있는데,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은 담배라고 한다(파친코장의 담배 연기를 보면 파친코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흡연자일 거란 생각마저 들 정도다). 파나 감자 같 은 식료품을 경품으로 받아오던 드라마 장면이 기억에 남는
지 않았다. 한참 후에 알았다. 그건 좋은 자리를 선점하려고 파친코 개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었다.
파친코장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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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생활 밀착형 상품이 파친코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애환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 같아서였을 것이다. 파친코장 주변 뒷골목에는 받은 상품을 다시 현금으로 교환해주는 은 밀한 곳이 있어 이를 통해 파친코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도박이 아닌 게임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도박의 성격이 강 한 파친코는 음(陰)의 공간을 창출한다. 즐겁고 행복한 사람 보다는 딱히 만날 사람이나 할 일이 없는 사람들, 쌓인 스트 레스를 풀고 싶은 사람들, 또는 인생의 반전을 꿈꾸는 사람 들이 더 많이 찾는 곳이다. 그리고 많은 도박장이 그렇듯 이 곳에서는 언제든지 폭력이 일어날 수 있으며, 그 폭력은 야 쿠자라는 조직폭력배와 연결되어 있다. 이민진의 소설 「파 친코」는 이 음의 공간을 매개로 일제강점기 때 고국에서 넘 어간 재일교포들의 어두우면서도 절실한 삶을 그리고 있다.
부산 영도에서 순자가 만나 사랑을 하게 된 고한수는 일본 야쿠자 조직의 데릴사위로, 파친코장을 운영하고 있다. 조금 더 나을 거라는 희망을 갖고 일본 오사카로 넘어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와중, 순자의 둘째 아들 모자수는 파친코에 취직을 한다. 영어 선생님이 꿈이었던 첫째 아들 노아는 자 신의 아버지가 지금껏 존경하던 이삭이 아니라 고한수라는 것을 알고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파친코에서 일을 한다.
파친코는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살아가는 재일교포 자이 니치(在日)들이 선택한, 몇 안 되는 경제적 윤택함을 보장할 문학과 공간 15
수 있는 삶의 수단이다. 좋은 교육을 받고 다양한 선택권을 가진 이들이 선택하는 직업이 아닌 때때로 주먹을 써서 골 치 아픈 일을 해결해야 하고 사람들의 편견을 감내해야 하 는 그런 직업이지만, 그들이 사랑하는 가족을 먹여살릴 수 있는 일이었다.
쓰루하시
쓰루하시(鶴橋)는 660년 나당 연합군의 사비성 함락으로 백 제가 멸망했을 때 일본으로 건너간 백제인들이 정착한 곳이 고, 일제강점기 때에는 제주도와 부산 등에서 넘어간 사람 들이 터를 잡아 정착한 곳이다. 쓰루하시에는 대규모 코리 아타운이 자리 잡고 있는데, 거주 등록된 외국인 중 80% 이 상이 한국인이다. 면적이 0.33㎢에 인구는 6천 명이 채 못 되는 넓지 않은 지역이지만, 오사카의 번화가인 난바(難波) 역에서 동쪽으로 3㎞밖에 떨어지지 않은 오사카의 중심부 에 위치하고 있다. 쓰루하시 상점가는 김치, 부침개, 김밥, 떡, 한국 식재료 같은 한국 재래시장에서 볼 수 있는 먹거리 뿐만 아니라, 한복, 한국식 이불 등 생필품도 판매하고 있어 단지 관광객을 위한 코리아타운이 아닌 재일교포의 생활터 전임을 실감할 수 있다.
쓰루하시의 코리아타운은 도쿄 신주쿠에 있는 코리아타
쓰루하시 상점가의 모습.
한국 음식이나 한국 식재료, 한 복 등을 파는 재래시장
운이나 LA, 뉴욕에 있는 코리아타운보다 훨씬 더 지역에 밀 착된 듯한 인상을 받았다. 부러진 팔을 지지하기 위해 넣은 철심에 시간이 지나면서 근육이 엉겨 붙어 더 이상 분리해 낼 수 없는 것처럼, 쓰루하시의 코리아타운은 쓰루하시 자 체였다. 우리에게 익숙한 한국음식을 팔지만 간판이나 메뉴 는 전부 일본어를 사용하고 있다. 재일교포들도 이미 3세대 를 거쳐온 만큼 한국어보다는 일본어가 편한 사람들이 대부 분이다. 오히려 우리나라의 재래시장은 백화점이나 대형마 트에 대한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현대화·개량화 를 거듭하여, 쓰루하시의 상점가는 세월을 건너뛴 우리나라 의 재래시장을 연상케 했다.
이삭과 순자가 일본에 건너가 처음으로 정착한 곳도 쓰루 하시다. 이들을 초대한 이삭의 형, 요셉이 그의 아내 경희와 터를 잡은 곳이 쓰루하시이기 때문이다. 고지식하고 가부장 적 사고방식을 지닌 요셉은 공장에서 일하더라도 자신이 식 구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자들이 돈을 벌거나 심지어는 패물을 팔아 빚을 갚는 것에도 역정을 낸 다. 하지만 순자는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 목사인 남편 이삭 이 신사참배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끌려가자 김치를 만들어 수레를 끌고 시장에 나가 장사를 시작한다. 냄새때문 에 시장 사람들에게조차 싫은 소리를 들었지만, 생활력이 강 한 순자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맛있는 김치 사이소’를 외치 며 그곳에서 자리를 잡아간다. 그리고 1940년 중일전쟁으로
인한 물자 부족으로 배추를 구하기 어려워질 무렵, 쓰루하시 역 근처에서 큰 숯불구이 식당을 운영하는 김창호의 제안을 받고 그의 식당에서 김치를 만들게 된다.
쓰루하시라는 이민자들이 모여 있는 공간에서 요셉은 조 선인 행색이 얕잡아 보일까봐 늘 조심하는 반면 순자는 자 신이 어릴 적 다니던 부산의 시장을 떠올리며 용기를 낸다.
매일 단정하게 머리를 빗어 넘기는 노아는 일본인이 되고 싶다는 꿈을 남몰래 키우고, 쓰루하시에서 파친코와 고리대 금을 운영하고 있는 고한수는 언젠가 자신은 고향인 제주도 로 돌아가 살 것이라 기대한다.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 을 받고, 전쟁이라는 환경 때문에 부족한 물자를 꾸려나가 는 가난한 이들의 공간인 쓰루하시에서도 이들은 일하고 꿈 꾸고 사랑하며 삶을 살아간다.
오사카
내가 느낀 오사카(大阪)의 첫 번째 이미지는 박력이었다. 도 시 미관을 위해 네온사인을 지양하고 간판은 작고 건물을 압도해서는 안 된다는 교육을 받아왔던 내게 오사카의 도시 풍경은 기존의 선입견을 한순간에 깨버렸다. 당시 나의 상 식을 깨는 엄청난 규모의 네온사인과 움직이는 모형이 달린 간판들은 알에서 깬 오리가 처음 본 물체를 엄마로 인식하 듯, 내게 ‘오사카’의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글리코의 달리는
글리코 전광판(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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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토너와 거대한 다리를 휘적거리는 대게는 한때 일본 제 일이자 세계 6위의 경제산업도시였던 오사카의 위용과 자 신감을 유쾌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오사카는 인구 275만 명(2021년)에 시내총생산 20조 엔 (2016년 기준, 약 210조 원)의 상업 중심도시로, 도쿄에 이 은 일본의 2위 도시이다. 메이지 시대(1968~1912년)에는 조폐국, 섬유산업, 금속공업 등을 중심으로 도쿄보다 인구, 면적, 산업 규모에서 앞선 1위 도시로 ‘동양 제일의 상공업 지’로 불리기도 했다. 특히 관동대지진(1923년) 이후 도쿄에 서 이주자들이 몰려들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으나, 중일전 쟁(1937~1945년)을 준비 중이던 일본이 1935년 전시체제 로 전환하며 문화, 예술, 교육, 산업을 도쿄로 집결시키면서 상대적으로 쇠퇴하게 되었다.
문학에서 배경이 되는 도시는 그 소설의 사실적이며 구체 적인 공간을 제공해주지만 동시에 추상적인 이미지로 소비 된다. 소설 「파친코」에서 순자네가 쓰루하시에서 장사를 하 고 살아가는 모습은 당시의 쓰루하시의 모습이 반영되어 사 실감을 더해준다. 쓰루하시는 0.33㎢밖에 되지 않는 공간으 로 제법 균일한 이미지를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 설에서 장소를 오사카라고 명명하는 순간, 독자의 상상의 범위는 0.33㎢에서 187,44㎢(1943년 당시 오사카시의 면적) 로 넓어지고, 오사카시 내의 다양한 공간만큼이나 구체성은 줄어든다. 쓰루하시는 오사카의 일부임에도 불구하고, 가난 하고 열악하며 한국에서 온 이민자들이 모여 있는 동네라는 이미지를 구성하는 반면, 오사카는 대도시의 번화함을 대변 한다. 처음 이삭과 순자가 일본에 와서 정착했던 쓰루하시 가 앞으로 그들이 겪을 일본 생활의 막막함, 그들을 초대해 준 요셉과 경희의 친근한 환대, 한국인에 대한 차별과 동시 에 이를 뚫고 생활해 나가야 하는 공간이었다면, 오사카는 이들의 아이들인 노아와 모자수가 자이니치 2세로서 살아 가는, 일본인들과 좀 더 얽혀 있는 공간이다. 이들은 언젠가 는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1세들과는 달리, 일본인보다 더 일본어를 잘하고, 딱히 한국으로 돌아가거나 한국인으로 살고자 하거나 꼭 한국인과 결혼해야 한다고 생 각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들의 공간은 쓰루하시가 아니라 오사카다. 순자의 둘째 아들 모자수는 파친코에 취직을 하 고, 파친코 주인인 조선인 고로의 철학에 따라 좋은 옷을 입 고 일하며, 지배인으로 승진을 한다. 훗날 오사카 내 여섯
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일곱 번째 파친코의 운영자까지 맡게 되는 모자수는, 자신의 양복을 맞추는 도토야마의 가게에서 재봉사로 일하는 조선인 유미와 사랑을 하고 가정을 꾸미며 아이를 낳는다.
자이니치
‘자이니치’는 재일(在日)의 일본식 발음으로, 원래는 ‘일본에 있다’ 혹은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을 칭하는 말이다. 하 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일본에 살고 있는 한국 사람을 일컫 는 말로 주로 쓰인다. 그리고 이 단어에는 차별적 의미가 내 포되어 있는데, 오랫동안 한국인이 일본에서 받았던 차별 이 단어에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가 일본 에서 만난 재일교포 언니는 3세대였다. 일본에서 태어난 부 모님이 한국어를 할 줄 모르셨고 언니도 일본인 학교에 다 녔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 연세대학교 어학당을 다니며 한 국어를 배웠다고 한다. 어릴 적 친척을 만나러 한국에 가면
‘한국 사람인데 한국어를 할 줄 모른다’라는 이유로 여러 어 른에게 꾸지람을 들었다고 했다. 언니네 가족은 대한민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특히 아버님께서는 ‘왜 일본 국 적을 취득하지 않느냐?’라는 질문을 받으면 역정을 내실 정 도로 한국인임에 자부심을 갖고 계신다고 했다.
언니가 결혼 상대를 인사시키려 집으로 초대했을 때, 아 오사카의 밤 거리
언니 애인의 부모님은 북한에서 이주해온 조총련 소속으로, 두 아들을 북한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조선인 학교’에 보 냈다고 한다. 조선인 학교는 일본어 교육을 제외하고는 모 두 우리말로 이루어지며, 특별활동 및 학예회에서는 ‘통일의 창’과 같은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는 북한 특유의 매스게임 이나 율동, 군무 등이 등장한다. 언니는 아버지가 당신이 가 장 듣기 싫어하던 질문을 미래의 사위에게 던지는 것을 보 고 ‘어떻게 다른 사람도 아닌 아버지가 그럴 수 있냐’라며 아 버지에게 크게 화를 냈었다고 한다.
자이니치에는 이렇게 남한 국적을 가진 사람, 북한 국적 을 가진 사람 외에 조선인 국적을 가진 사람이 있다. 이들은 일제강점기 때 도일(渡日)한 사람들로, 지금은 생존해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가장 오랫동안 차별을 받으며 살았을 것이다.
순자의 첫째 아들 노아는 어려서부터 총명했고 부모님을 잘 도왔으며 공부도 잘했다. 그런 노아에게는 바람이 있었는 데, 바로 일본인이 되는 것이었다. ‘보쿠 노아’라는 이름이 평 범한 일본인 이름이 아니기 때문에(보쿠는 성 ‘박(朴)’의 일본 식 발음이다), 자이니치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버리곤 했다.
노아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일본인 같은 깔끔한 옷차림을 하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 의 친아버지가 존경하던 아버지 이삭이 아닌 야쿠자 가문의 데릴사위인 고한수라는 사실과, 그가 자신의 대학 학비와 생 활비를 지원해줬다는 사실을 알고는 절망한다. 그는 학교도 그만두고 가족들과 연락을 끊은 채 아무런 연고가 없는 나고 야로 간다. 그리고 자신이 경멸해 마지않던 파친코에 취직해 번 돈으로 고한수에게 빌린 학비를 다 갚고 자살로 생을 마 감한다. 성취감이 강했던 만큼, 본인의 절망적인 상황에 쉽게 좌절하고 타협하지 못한 채 극단적인 선택을 한 노아는 자이 니치로 살아간 이들의 또 다른 단면이다.
타국
이 소설을 쓴 작가 이민진은 한국에서 태어나 어릴 적 미국 으로 이주한 재미교포 1.5세대로, 일본계 미국인인 남편을 따라 일본에서 4년간 생활하면서 소설 「파친코」를 준비했
에 걸친 삶의 이야기, 생활력 강한 순자와 그의 가족들, 다 양한 인물 구성 등 여러 면에서 박경리의 「토지」를 연상시 킨다. 하지만 「토지」가 주로 우리 땅에서 이루어지는 이야 기라면 「파친코」는 일본이 주요 무대로, 타국에서의 삶이 그 주요 테마가 된다.
지금보다는 더 나을 거라는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시작하 는 이민의 삶은 보통은 현실의 어려움이나 불만족을 바탕으 로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언어와 문화, 제도 등의 차 이점이 핸디캡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시행착오가 따르기 마 련이다. 서로 다른 것에 관대하기보다는 불편하게 여기기 쉬운 인간의 습성상 이처럼 새로운 곳에서의 도전은 늘 쉽 지 않다. 특히 편견과 차별은 그러한 도전을 더욱 힘겹게 한다. 부산 영도를 뒤로하고 일본 오사카로 넘어간 순자의 가족들을 힘들게 한 것은 낯선 공간보다는 차별적 시선과 제도였을 것이다. 종교적 이유로 신사참배를 거부한 이삭 이 2년이라는 감옥살이를 하면서도 그 부당함을 호소할 수 없는 억울함과 오히려 그를 가둔 형사에게 뇌물을 주면서 도 굽실댈 수밖에 없는 사회적 상황이 타국에서의 삶을 절 망적이게 만든다. 소설 「파친코」는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으로 하 루하루를 살아가는 인물들과, 자신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절망하고 아파하는 인물들을 대비시키면서 이민자들의 애 환과 삶을 보여준다.
이민진 지음, 2018년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