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
인생의 버스는 엉뚱한 곳에 우리를 내려놓곤 한다.
사는 일에는 우연(偶然)도 많고, 때로는 자신이 정 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살기도 하다가 문득 돌아보면 엉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다. 그러나 돌이켜보건대 엉뚱하게 내린 정류장에 서 내가 만난 사람들은 모두 경이로웠다. 물론 경 이(驚異)는 여러 가지 스펙트럼을 갖지만, 그들과 의 관계 속에서 나의 삶은 또 다른 공간과 시간으 로 확장되고, 풍요로워졌음을 부인할 수 없다.
「개구리가 참선을 한다」는 살면서 만나는 타인 은 물론 사물까지도 모두 친구이자 스승이라는 철 학이 담긴 불교 수상집이다. 이 책의 부제는‘황 명찬 교수의 선지식 이야기’다. 불교 용어로‘지 식(知識)’이란 우인, 친구를 말하고, ‘선지식(善 知識)’이란 좋은 친구이며 정도(正道)로 인도해 주는 사람이라고 한다. 마음공부를 하며‘천천히’
사는 사람들에게는 개구리마저 스승이며, 개구리 의 침묵도 참선으로 보이는 것이다.
복잡하게 얽힌 삶을 푸는 실마리
국토연구원의 제3대 원장을 지냈고 현재 건국대 행정학과 명예교수인 저자가 젊은 시절부터‘마 음 다스리기’공부를 하면서 터득한 불교의 가르 침을 이 책에 적고 있다. 그래서 불교용어들이 많 이 나오지만, 문장이 편안하고 간결하여 불교에 문외한인 나 같은 사람에게도 그 의미가 쉽게 다 가온다. 긴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지만, 읽다보면
‘눈과 귀가 깨끗해지는’느낌이 든다.
특히 이 책의 소제목들이 마음을 끈다. ‘다도 (茶道)’, ‘국수의 맛은 무엇인가’, ‘그 마음을 항 복받으려면’, ‘길은 여러 개’, ‘흐르는 생각을 지 켜보다’, ‘나는 무엇인가’, ‘혼자 힘만으로는 어렵 K R I H S
서 평
겨울 어귀에서 만난 화두( 話頭 )
김현식|국토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개구리가 참선을 한다: 황명찬 교수의 선지식 이야기』
황명찬 | 254쪽|지혜의 나무|9,800원
다’, ‘나무와 그림자’‘눈과 귀가 깨끗해지면’등, 의 제목은 우리를 성찰로 이끄는 힘이 있다. 우리 의 삶은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와 같다. 실타래를 풀려면 실마리를 찾아내야 한다. 소제목들은 삶의 비의(秘意)를 푸는 실마리와도 같은 화두를 우리 에게 던진다.
이 책에 의하면, 화두(話頭, 말머리)란 한 생각 이 일어나기 전이며, 한 생각이라도 일어나면 이 미 화미(話眉, 말꼬리)를 이루게 된다고 한다. 생 각이 일어나지도 없어지지도 않는 것이 바로 화두 이며, 결국 화두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이라는 것이다(본문 101쪽). 좀 어렵다. 실마리를 찾았다고 실타래가 풀리는 것은 아닌가보다.
그러나 저자는 의외로 간단한 실천방법을 제시 한다. 몸이 있는 곳에 마음을 두는 것이다. 황벽선 사의 선(禪)은‘밥 먹을 때 먹고 잠 잘 때 그냥 자 는 것’이다(본문 20쪽). 소설가 박완서 선생은 일 생을 살아오는 동안 자신의 삶을 바꾸어 놓았거나 영혼에 큰 울림으로 다가왔던 한마디의 말로‘걸 을 때는 걷는 생각만 하라’를 꼽았다. 스펜서 존 슨의 소설「선물」에서도 누구에게나 주어지는‘현 재(present)’, 즉‘지금 이 순간’이 사람의 일생을 좌우하는 가장 위대한 선물이라는 점을 강조하였 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불교의 여러 고승들이 이 미 오래 전부터 이러한 진리를 얼마나 향기롭게 가르쳐 주셨는지를 알려준다. 이 책의 첫 번째 화 두(소제목)는‘다도(茶道)’다.
“내 마음이 차 마시는 지금 이 순간에 전일하 게 머문다면 비로소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진솔하 게 온전히 사는 것이다”(본문 22쪽).
전철을 이용하는 나는 매일 아침저녁 전철역과
사무실 사이를 걷는다. 이것저것을 생각하다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은 이후 걷는 것에만 집중하려 노력한다. 발을 땅에 내딛는 순간 발바닥의 감촉, 다리로 전해지는 땅 의 울림, 내 몸 안으로 들어오는 공기를 느낀다.
걷는 속도를 생각하고, 걷는 내 모습을 생각한다.
내 마음이 내 몸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요즘 행하는 7분간의 화두선(話頭禪)이다.
아수라장의 삶 속에서
그러나 경쟁과 욕망이 충만한‘무한경쟁’의 시대 에서 어찌 아수라의 삶을 피해갈 수 있으랴. 속세 를 사는 우리는 결국 아수라의 삶을 벗어나기 어 렵다. 그래서 이 책의 의미는 더욱 값지다. 요즈음 의 다른 책들처럼 욕망 뒤의 비의에 집착하는 대 신, 그 의미조차 넘어서라고 설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관계로부터 벗어나라는‘초탈(超 脫)’이나‘초연(超然)’을 말하지는 않는다. 관계 를 긍정하되 경계를 넘어서라는 것이다. 양평의 시골마을에서 사는 저자는 새벽에 새소리에 깨어 나 방안 가득한 봄 향기를 느낀다. “소리 내는 놈 이나 듣는 놈이나 다 보배로다”(본문 32쪽)라는 구 절에서 세상과 넓게 화해하고, 자신을 깊이 긍정 하는 마음을 읽는다.
이 책은 지역개발 및 주택 토지정책 연구에 일 가를 이룬 저자가「한 손으로 치는 손뼉소리」, 「무 위도 넘어서」에 이어 세 번째로 낸 수필집으로, 은 퇴 후에 정갈하고 평화로운 모습으로 살아가는 저 자의 품격을 느끼게 한다. 삶을 가지런히 정돈하 려는 마음가짐을 일깨워주는 잠언들은 스산한 겨 울 어귀에 후학들에게 주는 값진 선물이다.
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