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고고학 영화 감상>
제목: 동굴곰 부족 (1986, The Clan of Cave Bear) 감독: 마이클 챕맨 (Michael Chapman)
주연: 다릴 한나, 제임스 르마, 파멜라 리드, 토마스 웨이츠
줄거리: 현생 인류가(크로마뇽인) 유럽에 도달하던 당시 기존의 네안데르탈인이 서 식하고 있었는데, 크로마뇽인의 한명인 어린 소녀 에일라가 지진에 의해 부모를 잃 고 네안데르탈 부족 중 하나인 동굴곰 부족에 의해 길러지게 된다. 동굴곰을 숭배 하고 언어 소통 능력 및 지적 능력이 자신보다 떨어지는 부족 내에서 항상 핍박과 수난을 당하던 에일라는 자신을 부모처럼 키워준 부족 내 구성원인 크렙과 이자의 도움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아 나간다. 결국 네안데르탈인보다 우월한 신체 적, 정신적 능력을 활용해서 항상 자신을 괴롭히던 새로운 젊은 부족장인 브라우드 를 무찌르면서 부족이 자신에게 굴레 씌운 동굴 사자의 정령이라는 숙명을 극복하 고 또다른 현생 인류의 여정을 새로 시작한다.
1. 영화의 제작 배경
‘동굴곰 부족’은 1980년 미국의 진 M. 아우얼이 라는 아마추어 소설가에 의해 쓰여진 ‘사냥하는 여자 에일라’라는 베스트셀러를 기반으로 한다.
그리고 1980년대까지 축적되어 있던 네안데르탈인 의 고고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현생 인류가 이들과 실제로 같은 시기, 같은 장소에서 함께 거주했을 것이라는 판단 하에 과감한 상상력을 도입해서 영 화화 된 작품이다. 원작인 동굴곰 부족의 주인공 에일라는 영화화 된 1부 이외에 같은 작가에 의해 쓰여진 2부 ‘에일라, 말을 타다’와 3부 ‘맘모스 사냥꾼 에일라’에서도 계속 등장하고 있다. 여성 을 주인공을 해서 페미니즘적인 시각으로 가부장적 이고 폭력적인 권력 투쟁을 비꼬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성향이 현생 인류의 간접적 조상인 네안데 르탈 부족 사회에도 이미 내재하고 있을 것이라는 시각을 견지하고 있으며, 이러한 동굴곰 부족의 사 회적, 문화적 습성을 고스란히 물려 받은 에일라의 개인 여정은 ‘현대성(modernity)’를 형성해 가는 현생 인류의 문화적 진화 과정을 축약해서 보여주 는 사례로 볼 수 있다.
2. 네안데르탈의 문화와 언어
영화에서 등장하는 네안데르탈의 사회적 행태는 다 소 과장되기는 했지만 대부분 고고학적 증거가 제
시해 주는 면모와 부합한다. 특히 현대인과 비교해 서 훨씬 단순한 세계에 내던져진 네안데르탈인의 경우 오감이 발달하고 이와 더불어서 현대인에 비 해 훨씬 뛰어난 육감이 발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영화에서는 이러한 육감을 ‘정령’이라는 존재로 표현하고 있으며, 이러한 육감이 유별나게 발달한 사람은 부족 내에서 선지자라는 역할을 맡으면서 부족의 각종 주술적이고 비물질적인 행위를 주간한 다. 특히 개개인마다 고유의 정령이 깃들여 있다는 신앙은 원시토테미즘의 가장 특징적인 요소이다.
네안데르탈인은 숙련된 사냥꾼이며 식생활 대부분을 육류 소비에 의존하고 있다. 그 이유는 네안데르탈이 거주하던 유럽의 중기-후기 홍적세 기간의 경우 대부분 빙하기에 해당하며, 이런 상황 에서 식량 자원은 식물보다는 동물자원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부족 내에서 월등한 사냥 능 력을 가진 개인은 집단 내의 우두머리로 등극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며, 꾸준한 동물자원을 획득하 기 위해서는 10- 20명 정도의 집단 생활이 필수적 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네안데르탈인의 언어는 현생 인류의 그것 과는 자못 다른데, 그 이유는 분절음을 가능하게 해 주는 목구멍의 성대가 미발달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네안데르탈인의 음성 언어는 다분히 원초적 이고 또 폐쇄적이며, 긴 문장을 발음하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짤막한 언어를 손짓발짓과 함께 구사 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비록 미흡하나
마 이 정도의 의사소통 수준이 없다면 사냥이나 매 장 행위와 같은 집단 양식이 불가능하다. 영화 내 에서 등장하는 네안데르탈 언어는 가장 기본적인 표현에 해당하는 의사소통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한글 자막은 이러한 생경함을 여실 없이 보여주기 위해서 한자어 및 존대어를 의도적 으로 배제하였으며 다양한 어미 변환을 통해 자신 의 복잡한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한국어의 특질을 퇴화시켜서 대부분의 문장은 평서문과 명령문으로 일관되게 변환하였고 접속사나 부사를 통해서 문장 전체를 연결하거나 꾸며주는 어법을 일부러 자제하 였다. 아마 네안데르탈인의 단순한 언어만으로는 가장 기본적인 의사소통만 가능할 것으로 파악되기 때문에, 영화 속에 등장하는 네안데르탈인들은 문 장의 뉘앙스와 화법을 통해서 감정을 드러내기 보 다는 화자의 표정이나 몸짓으로 감정 전달이 더 쉽 게 이루어졌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3. 감상 포인트
본 영화는 복잡한 대사나 사건이 없기 때문에 다분 히 네안데르탈인의 사고와 감정을 스스로 이입하는 데 주력하면서 감상하는 것이 좋다. 우선 당시 빙 하기의 유럽 환경을 보여주는 경관에 주목할 필요 가 있다. 현재와는 전혀 다른 기후와 지형을 보여 주는 당시 환경에서 동굴이라는 폐쇄적인 환경에 집단으로 서식하는게 얼마나 중요한 삶의 방식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특히 동굴에서 추방되서 스스 로 출산을 하고 자신의 자식과 함께 생존해 나가는 에일라의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동굴이라는 삶의 터전이 빙하 기후에서 과연 어느 정도로 막대한 역 할을 차지하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두번째로 에일라의 용모와 함께 거주하는 네안데르탈인의 용모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인 공 에일라 역을 맡은 1980년대의 대표적인 청춘 스 타인 다릴 한나는 전형적인 서구 미인의 형태를 보 여주고 팔다리가 다른 배우들에 비해 늘씬한 형태 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에 비해 네안데르탈인은 대 부분 짤막한 키와 넓은 어깨 및 굴곡이 뚜렷하게 부각되는 안면 형태를 보여준다. 이러한 형태는 육 식을 주로 하고 추운 기후에 적응한 신체적 특징으
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영화에 몰입하다 보면 현생 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의 외모가 뚜렷하게 구분되지 는 않는다. 즉 화석만으로 남겨진 네안데르탈인의 용모는 생존 당시의 실제 모습을 상상할 때, 현생 인류와 비교해서 그다지 높은 생소함을 불러 일으 키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외모상 으로 네안데르탈인과 현생 인류는 서로 간에 괴물 과도 같은 수준의 격차와 이질감을 상호 인식하지 는 않았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주인공인 에일라가 다른 네안데르탈인에 비해 항상 깔끔하고 청결한 모습을 유지하는 것은 영화라는 상업주의적인 성격 상 어쩔 수 없다는 것으로 인식하자.)
마지막으로 네안데르탈인의 사고와 문화체 계의 특성을 들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원시인 과는 다르게 네안데르탈인은 나름대로 복잡한 감정 을 가지고 있고 상호 존중 및 서로 간에 애정의 표 현이 현생 인류만큼이나 고도로 발달해 있다. 특히 출산과 관련해서 아이는 정령이 가져다 주는 것으 로 믿는다는 점이나, 통과의례와도 같이 동굴곰과 결투를 벌여서 살아 남아야만 정식 사냥꾼으로 입 문할 수 있는 의례 행위, 죽은 자를 매장하면서 애 도하고 간단한 매장품을 부장하는 행위들은 비록 영화이고 배우들의 연기와 대사에 의존하지만 대부 분 현재 발견된 고고학 자료에 근거한 의미 있는 표현들이다. 다만 네안데르탈인의 가장 중요한 고 고학적 의미인 석기 도구 제작 기술이 구체적으로 표현되지 않은 점이나 사냥한 식량을 구체적으로 도살하고 저장, 분배하는 행위들이 영화에서 전혀 등장하지 않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부분은 수업 시간의 강의 내용으로 보충하도록 한다.
네안데르탈인이 과연 현생 인류의 조상인 지 아닌지는 아직까지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그 러나 브라우드의 아이를 에일라가 임신하는 것으로 설정한다던가, 동굴곰 부족에서 배운 여러가지 것 들을 기억으로 간직한 채 새로운 현생 인류의 여정 을 떠나는 에일라의 캐릭터 설정으로 볼 때 본 영 화에서는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는 물론 문화적, 사회적 관습이 현생 인류에 충실하게 이식된 것으 로 시각을 유지한다. 과연 영화에서 표현된 스토리 가 실제 고고학 자료와 부합할지는 앞으로의 연구 를 통해서 보다 더 자세하게 밝혀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