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 은 글 긴 생 각
4
참을 수 없는 말의 가벼움, 바벨탑의 붕괴
하
이데거는 언어를‘존재의 집’이라고 표현한다. 인간의 정의에 이 성과 더불어 언어를 또 하나의 특성으로 더하며, 언어의 자기 확장성에 주목하였다. 여기서 자기 확장성은 일상의 규범에 속박되지 않는 일탈을 말하며 언어가 무한한 의미 로 생성됨을 말한다.
요즘의 참을 수 없는 언어의 가벼움은 그렇게 시작된 것인지 모른다. 성장기에 한번쯤 빠져드는 은어의 즐거움. 기성규범에서 벗어나 자신들만의 존재 의미를 생성하고 확대하는 그런 폐쇄적인 즐거움. 그러나 소규모 특정 계층과 집단의 은어가 일상어의 영역을 침범하고, 나아가 주인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과정 은, 데페이즈망(dépaysement)의 즐거움이기도 하다. 낯선 단어에서 새로운 관계와 의미를 찾아내는 작업 은 언제나 시인의 몫이었다. 다의성과 모호함에서 특정 의미를 수렴시킬 수 있는 언어놀이가 문학이라면, 어쩌면 이제 모든 이가 이 시인놀이에 참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짱’, ‘쩌는’현상이다.
네트워크를 떠돌아다니는 정체모를 언어들은 그래서 한편으론 재치이고 창작이며, 그러나 걱정 많은 나 에게는 망령이다. 한 시대의 유행이어야 할 시쳇말들이 떳떳이 신생어로 발표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연 금술사는 사라지고 입 속에는‘검은 잎’만 남았다. 아우라는 사라지고, 그저 재간만 남았음에 한탄스럽고, 그리하여 결국 트롱프 뢰유(trompe-l’oeil)뿐이다. 어쩌면‘ ’스런 사회의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를 일이다.
생산보다는 포장이 더 큰 가치를 갖는 사회, 이리저리 말을 바꿔 변신할 수 있는 기문둔갑술의 사회, 속 깊 은 의미보다 스피드가 필요한 사회에선, 어쩌면 바르고 정직하지만 무거운 언어가 제 자리를 잃는 게 당연 하다. 80자 SMS면 될 것을 왜 장문의 편지를 쓰겠는가.
한 가지 말을 쓰던 창세기 속 인물들은 신에게 다가가기 위해 바벨탑을 쌓았다. 그러나 신은 탑을 무너 뜨리고 함께 소통하지 못하도록 언어를 섞어놓는다. 이후 인간들은 갖가지 언어에 시달리게 되고, 급기야
‘바벨피시(Babel Fish)’가 등장한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나오는 바벨피시는 사람의 뇌 속에 사는 작은 물고기 이름이다. 이 물고기는 말하는 사람의 뇌파를 식량으로 살아가며, 말을 듣는 이의 머릿속에 배설한다. 해서, 바벨피시를 뇌 속에 넣고 다니는 사람은 모든 언어를 해독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좀 다른 얘기가 되었지만, 아마도 좀 나이가 든 사람이라면, 휴대폰 문자를 해석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 바벨피시가 생각날 법하지 않은가. 각양각색으로, 쉴 새 없이 생겨나는 외계어를 해득하기 위한, 또는 그 침투에 대항하기 위한 항균외피라도 입어야 할 판이다.
박순업|국토연구원 홍보커뮤니케이션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