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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발견된 가집 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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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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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뺷신정가보(新正歌譜)뺸의 성격과 의의

1)

김명준 **

목 차 1. 서론

2. 구성 및 체재 3. 편찬 목적 4. 편찬 시기 5. 신출 작가와 작품 6. 의의와 전망 7. 결론

<국문초록>

이 논문은 새로운 가집 뺷신정가보뺸에 관한 내․외적 사실들을 소개하고 이 가 집이 갖는 의의와 전망을 살피는 데 목적이 있다.

이 가집은 가집으로서 갖추어야할 기본적인 것들을 유지하고 있어 비교적 안정적 인 체계를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분량은 총 72장이며 내용은 서문, 가법(창법), 작품 순으로 되어 있으며, 작가는 시대에 따라 유명 작가, 무명 작가 순으로 배열하고 있다. 작품은 모두 329수이며 유명 작가는 152명을 등재하고 있다. 초중대엽부터 초삭대엽까지와 이삭대엽에 해당하는 40수 그리고 삼삭대엽 이하는 모두 작자 미상 으로 처리하였다. 이에 비해 이삭대엽 시작 부분은 군왕의 작품을 먼저 소개하고 이후 시대별 유명 작가의 작품을 수록하고 있다.

본 가집의 서문에는 시가의 효용론, 편찬 배경 및 이유, 편찬 과정이 드러나 있 * 이 논문은 2019년도 한림대학교 교비 학술연구비(HRF-201909-001)에 의하여 연구되

었음.

** 한림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전공 교수 및 디지털인문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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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효용은 개인의 정서적 쾌감과 사회적 풍속 교화에 두고 있고 편찬 이유에는 전승․유통된 노랫말에 오류 교정을 들고 있다. 편찬 과정에서 작품의 상한선을 삼국시대까지, 작가의 범위에는 신분과 계급에 제한을 두지 않았으며, 작품은 정 대하고 한아한 것을 추려 고증과 논의를 거쳤음을 밝히고 있다. 이를 통해 편찬자 는 언어예술로서 시조시의 가치를 재확립하고 시조시의 역사적 전통을 드높이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본 가집의 곡조 분류가 18세기 후기에서 19세기 전기 사이에 편찬된 가집들과 비슷하며 우조와 계면조의 뚜렷한 분화가 보이지 않고 유명 작가의 하한선에 ‘英 宗(영조)’의 묘호만 보이고 정조(1752∼1800)의 묘호가 없는 점에서 본 가집의 편찬 시기는 적어도 영조 이후 정조 사망 이전인 18세기 후반으로 볼 수 있다.

신출 작가는 김석화, 김상흡, 연취도, 장우벽, 백경문, 이봉희, 정동로, 방필 기, 표한장 등 9명으로 대부분 한 작품만 수록하고 있으나 연취도의 것은 8수, 정 동로는 2수를 남기고 있다. 신출 작가 중 장우벽과 정동로만 기록을 찾을 수 있고 나머지 작가들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정보를 확인할 수 없으나 대부분 영조 이후에 활동한 중인층 가객들로 볼 수 있다. 신출 작품들은 평시조 18수로 평시조가 만들 어온 관습적 주제들을 노래하고 있다. 대부분 자연에서의 삶, 현재 위치에 대한 자족, 늙음, 사람과 세상과의 번민 등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정서적 차원의 주제들 이라 할 수 있다.

본 가집의 의의는 알려지지 않은 중인 작가 9명을 대거 수록하고 있는 점이다.

특히 이들을 장우벽과 한꺼번에 등재한 것으로 보아 이들을 장우벽과 함께 활동한 작가단으로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이미 활동했던 김천택이 주도한 여항 육인과 김수장이 이끈 뺷청구가요뺸 작가들의 동시대 다른 집단 혹은 후속 가단일 가능성이 높은데, 편찬자는 이들을 김천택(여항육인), 김수장(가단)과 수준으로 인식하여 이들의 위상을 높이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김천택 집단과는 계승적 차원에서 다소 긍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으나 김수장 가단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려 했다고 할 수 있다.

본 가집의 발견을 통해 연구 방향을 전망하면 첫째, 가법(창법)을 중심으로 본 가집과 뺷해동가요뺸(주씨본), 뺷청구영언뺸(장서각본), 뺷청구영언뺸(가람본) 등과의 비교이며, 둘째, 이삭대엽 부분에서 본 가집과 친연성을 보이는 뺷악부(곤)뺸(나손본) 과의 계보 관계 파악이라 할 수 있다. 본 가집에서 성음, 사성, 오음, 14조목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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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담고 있기 때문에 악론의 차원에서 이들 가집과 함께 다룰 가치가 있고 그간 뺷악부(곤)뺸(나손본)을 둘러싼 의문을 해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18세기 가집사의 구도를 설정하는 데 일정 정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주제어 :뺷신정가보뺸, 뺷악부(곤)뺸(나손본), 춘지당, 연취도, 장우벽, 여항육인, 뺷청구가요뺸

1. 서론

이 논문은 새로 발견된 가집인 뺷신정가보(新正歌譜)뺸의 내외적 사실들 을 소개하고 이 가집의 의의와 이 가집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연구 방향을 살피는데 목적이 있다.

2012 년 기존의 가집(문헌)들과 고시조들을 집대성한 뺷고시조대전뺸과 뺷고 시조문헌해제뺸에 따르면 고시조를 담고 있는 문헌은 316종, 가집은 127종이 있으며, 여기에 수록된 작품은 46,431수로 5,563개의 유형과 6,845개의 군집으 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

이 작업 후에도 심심치 않게 가집(문헌)과 신출 작품이 발견되고 소개되 면서 고시조 기초 연구는 뿌리와 줄기를 더욱 단단히 하게 되었고 미세한 틈들을 점차 채워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에 새로 발견된 뺷신정가보뺸는 이러한 흐름에 비상할 관심을 끌만큼 중요한 특징을 보듬고 있는 가집이라 할 수 있다. 기존의 가집 가운데 서문이나 발문, 편찬자가 뚜렷한 가집이 드문 것에 비해

2)

이 가집은 서문이 있고 서문 작성자가 드러나 있으며, 편

1) 김흥규 외 편, 고시조대전(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12); 신경숙 외 저, 고시조 문헌해제(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12). 고시조대전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은 권순회, 「고시조대전의 편찬 과정과 주요 특성 개관」, 민족문화연구 57권(고려대학 교 민족문화연구원, 2012)에 있다.

2) 중복된 내용이 없이 새로운 서․발문을 담고 있는 가집은 22종이다. 「시조 문헌 서발문」,

고시조대전, 1223∼124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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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체재가 비교적 단정하고 편찬 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정보가 구체적인 점 등에서 우리의 주목을 요한다.

이 가집은 한글서예가인 김해동이 영남 지역에서 수집된 고서를 원주에 서 구매한 것으로, 필자는 2019년 6월 11일에 실물을 확인하였다. 예비조사 를 통해 이 가집이 기존 가집(문헌)의 이본이 아닌 새로운 가집임을 알게 되었고 동년 8월 26일에 소장자가 사진 자료를 필자에게 제공해 줌으로써 본 연구를 수행할 수 있었다. 이에 본 가집을 김해동 소장본 뺷신정가보뺸로, 약칭으로 <신정>으로 명명하고자 한다.

이 논문이 새로 발견된 가집에 대한 정보 차원의 소개와 문헌 연구의 기 초적인 성격을 전제하기 때문에 가집의 체제, 편찬 시기 그리고 가집사적 의의와 전망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앞으로 이 연구가 예상대로 안착될 수 있다면 가집 연구사에서 비교적 이른 시기의 가집 편찬의 모습을 조망할 수 있고 고시조 작가 연구에서는 새로운 작자를 통해 고시조 작가군의 외연을 확장할 수 있으며, 작품론에서 도 신출 작품의 추가를 바탕으로 고시조 작품을 더욱 풍성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리고 특히 본 가집의 위치를 필자의 가설처럼 긍정적으로 자리 매김할 수 있다면 고시조 연구사에서 적지 않은 기여를 할 것으로 본다.

2. 구성 및 체재

<표 1> 신정가보전체 체재

구분 내용 비고

서문 新正歌譜序 작성자는 춘지당(春芝堂).

가법 (창법) 歌法

성음, 사성, 평조․우조․계면조, 오음, 가지풍도형용(歌之風度形容) 14조목 등 창법에 대한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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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 初中大葉 1∼33)(3) - 二中大葉 4(1) - 三中大葉 5∼6(2수) - 初北殿 7(1) - 二北殿 8(1) - 初數大葉 9∼11(2수)

- [이삭대엽(二數大葉)] 12∼308(297) - 三數大葉 309∼321(13수)

- 騷聳 (此調出朴後) 322∼324(3) - 樂時調 蔓數大葉 編[數大葉] 並附

325∼340(16수)

- 表漢章 341(1) / 무명씨 342∼358 (18수)

- 가법에서 초후정화(初後庭花))와 이 후정화(二後庭花)’초북전(初北殿) 과 이북전(二北殿)’으로 표기됨. - ‘이삭대엽’은 따로 표기 되지 않았으

며, 이삭대엽 작품은 유명 작가 151 의 257수와 무명 작가의 40수가 있음. - 341번부터는 계락에 해당하는지

분류’인지 알 수 없음.

수결 甲午正月念六日 ※ 소장자의 수결로 추정됨.

이 가집은 가로 15.5cm, 세로 22.5cm, 책 높이 1.4cm의 크기로, 한지의 이면지를 활용하였으며 선장(線裝)을 하였다. 장수는 72장으로 표지 2장, 서지 3장, 간지 1장, 작품은 66장에 담고 있다. 내용은 전체적으로 ‘서문, 가 법(歌法), 작품’ 순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작품은 곡조별, 시대별, 유명씨, 무명씨 순으로 배열하고 있으며 끝장에는 소장자의 것으로 보이는 수결이 있다. 곡조는 ‘초중대엽-이중대엽-초북전(초후정화)-이북전(이후정화)-초 삭대엽-[이삭대엽]-삼삭대엽-소용-낙시조․만삭대엽․편삭대엽(-계락)’

순으로 되어 있고 우․계면조의 분화는 뚜렷하게 보이지 않고 있다. 붉은 색 글씨의 수결은 ‘갑오(甲午) 정월(正月)[1월] 염육일(念六日)[26일]’이라 적혀 있는데, 이것이 이루어진 연도는 작가 정보에 ‘영조[영종(英宗)]’ 묘호 가 기록된 것으로 보아 1774년, 1834년, 1894년 중 하나의 1월 26일이 아닐 까 한다.

3) 숫자는 가집에 부여한 번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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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신정가보 서」 <그림 2> 수결

서문은 본 가집의 편찬자로 추정되는 춘지당이 작성했으며 내용은 시가 가 갖는 효용론, 본 가집을 편찬하게 된 배경 및 이유, 편찬 과정 등을 밝히 고 있다.

가법은 창법에 관한 것으로 성음에 대한 일반적인 진술, 평성․상성․거 성․입성에 대한 정의, 평조․우조․계면조와 오음과 관계, 가지풍도형용 (歌之風度形容) 14조목에 대한 설명 등이 서술되어 있다.

작품은 초중대엽부터 초삭대엽까지 곡조별로 1∼2수만 수록하고 있고 대부분 작자 미상으로 처리하고 있으며, 이삭대엽에 해당하는 40수와 삼삭 대엽 이하에서도 작자 한 명[표한장(表漢章)]을 제외하고는 작자를 밝히지 않고 있다. 이에 비해 이삭대엽 시작 부분은 군왕의 작품을 먼저 소개하고 이후 시대별 유명 작가의 작품을 수록하고 있다.

(1) 열성어제: 太宗大王 12(1수) / 孝宗大王 13∼15(3수) / 肅宗大王 16(1수) (2) 삼국시대: 薛聰 17(1수) / 成忠 18(1수) / 乙巴素 19(1수)

(3) 고려시대: 李兆年 20(1수) / 禹倬 21∼23(3수) / 徐甄 24(1수) / 元天錫 25∼26(2수) / 李穡 27(1수) / 鄭夢周 28(1수) / 吉再 29(1수) / 郭輿 30∼31(2수) / 崔瑩 32(1수) / 崔沖 33∼34(2수) (4) 조선시대: 李之蘭 35(1수) / 趙浚 36수(1수) / 鄭道傳 37(1수) / 成汝完

38(1수) / 黃喜 39(1수) / 鄭希良 40(1수) / 孟思誠 41∼44(4수)

(7)

/ 金宗瑞 45(1수) / 金時習 46(1수) / 王邦衍 47(1수) / 成三問 48∼49(2수) / 朴彭年 50(1수) / 河緯地 51∼52(2수) / 柳成[誠]

源 53(1수) / 李塏 54(1수) /兪應孚 55(1수) / 李存吾 56(1수) / 南怡 57∼58(2수) / 南孝溫 59(1수) / 朴誾 60(1수) / 金宗直 61∼62(2수) / 金馹孫 63∼64(2수) / 金宏弼 65∼67(3수) / 李賢 輔 68∼70(3수) / 宋寅 71(1수) / 李滉 72∼84(13수) / 宋純 85(1 수) / 曹植 86(1수) / 徐敬德 87(1수) / 李彦迪 88(1수) / 趙光祖 89(1수) / 朴英 90(1수) / 李珥 91∼102(12수) / 金玄成 103(1수) / 徐益 104(1수) / 洪迪 105(1수) / 李陽元 106(1수) / 鄭澈 107∼

117(11수) / 李後白 118(1수) / 成守琛 119∼122(4수) / 林悌 123(1수) / 李恒福 124∼125(2수) / 李德馨 126(1수) / 成運 127(1수) / 成渾 128∼130(3수) / 金長生 131(1수) / 柳自新 132(1수) / 申欽 133∼137(5수) / 朴明賢 138(1수) / 李廷龜 139(1수) / 趙纘韓 140(1수) / 權韠 141(1수) / 李安訥 142(1수) / 金瑬 143(1수) / 洪瑞鳳 144(1수) / 李舜臣 145(1수) / 金尙憲 146(1수) / 趙存性 147∼150(4수) / 趙憲 151∼152(2수) / 李元翼 153(1수) / 奇大升 154(1수) / 白光勳 155(1수) / 韓濩 156(1수) / 梁應鼎 157(1수) / 李仲集 158(1수) / 朴仁老 159∼161(3수) / 金光煜 162∼165(4수) / 鄭蘊 166∼167(2수) / 金應河 168(1수) / 洪翼漢 169(1수) / 林慶業 170(1수) / 金尙容 171(1수) / 李明 漢 172(1수) / 鄭忠信 173(1수) / 張晩 174(1수) / 具仁垕 175(1 수) / 鄭太和 176(1수) / 蔡裕後 177(1수) / 鄭斗卿 178∼179(2 수) / 尹善度[道] 180∼181(2수) / 姜栢年 182(1수) / 曺漢英 183∼184(2수) / 金堉 185(1수) / 李浣 186(1수) / 張炫 187(1수) / 李華鎭 188(1수) / 宋時烈 189∼190(2수) / 南九萬 191(1수) / 李畬 192(1수) / 李澤 193(1수) / 柳赫然 194(1수) / 朴泰輔 195(1수) / 具志禎 196(1수) / 金聲㝡 197(1수) / 申靖夏 198(1 수) / 金昌業 199(1수) / 尹斗緖 200(1수) / 兪崇 201(1수) / 朴尙 侃 202(1수) / 朱義植 203∼206(4수) / 金三賢 207∼208(2수) / 金聖器 209∼210(2수) / 金裕器 211∼213(3수) / 朴後䧺 214∼

216(3수) / 尹游 217(1수) / 尹淳 218(1수) / 張鳳翼 219(1수)

(8)

/ 李渘 220∼222(3수) / 李廷燮 223(1수) / 趙顯命 224(1수) / 趙載浩 225∼226(2수) / 李在 227(1수) / 趙明履 228(1수) / 李鼎 輔 229∼232(4수) / 洪鳳漢 233(1수) / 曹命采 234(1수) / 鄭逑 235∼237(3수) / 金天澤 238∼243(6수) / 金友奎 244(1수) / 金碩 華◯

4)

245(1수) / 金尙洽◯ 246(1수) / 朴文郁 247(1수) / 朴凞 瑞 248(1수) / 文守彬 249(1수) / 金兌錫 250(1수) / 鄭大維 251(1수) / 延就道◯ 252∼259(8수) / 庚世信 260(1수) / 張友璧

261(1수) / 金黙壽 262(1수) / 金振兌[泰] 263(1수) / 白敬門

264(1수) / 李鳳禧◯ 265(1수) / 鄭東魯◯ 266∼267(2수) / 方必基◯ 268(1수)

※ 삼삭대엽 이하 유명 작가: 表漢章◯ 341(1수)

유명 작가는 모두 151명이 등재되어 있으며 군왕 3명, 삼국시대 인물 3명, 고려시대 인물 10명, 조선시대 인물은 134명이며, 이 가운데 본 가집에서 새로 소개되는 작가는 9명이다.

군왕의 작품은 가집에 따라 ‘열성어제(列聖御製), 어제(御製)’ 등으로 별 도 표기를 하고 있으나 본 가집에서는 작가 정보 부분에 ‘太宗大王御製’,

‘孝宗大王御製’, ‘肅宗大王御製’ 등으로 각각 표기하고 있다.

그 다음에는 삼국 시대 작가인 설총, 성충, 을파소의 작품을 수록하고 있는 데, 신라, 백제, 고구려를 대표한다고 생각하는 인물들과 작품을 배치한 것으 로 보인다. 이들 작가의 작품을 수록한 가집은 뺷동가선(東歌選)뺸, 뺷병와가곡 집(甁窩歌曲集)뺸, 뺷동국가사(東國歌辭)뺸, 뺷악부(樂府) 곤(坤)뺸(나손본) 및 가곡원류계 가집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본 가집과 매우 유사하게 수록하고 있는 가집은 뺷병와가곡집뺸과 뺷악부(곤)뺸(나손본)이라 할 수 있다. 다른 가집 들은 세 인물의 작품을 함께 두지 않고 곡조에 따라 거리를 두고 수록하고 있으나 이 두 가집은 함께 놓고 있다. 다만 뺷병와가곡집뺸에서는 본 가집의 순서인 ‘설총-성충-을파소’와 달리 ‘설총-을파소-성충’ 순으로 놓고 있으며,

4) ◯: 신출작가 표시이다.

(9)

작가 정보에 대한 표기는 없이 작가 이름만 기록하고 있다. 이에 비해 뺷악부 ( 곤)뺸(나손본)은 수록 순서가 일치하고 작가 정보 기록 방식도 본 가집과 거의 일치하고 있다.

5)

본 가집과 뺷악부(곤)뺸(나손본)의 유사점은 고려시대 인물들은 물론 조선 시대 중인가객에 이르기까지 매우 높다. 이조년부터 최충까지 고려 인물로 소개하여 그들의 작품을 수록하고 있는데, 이들의 작품으로 수록한 가집은 적지 않으나 뺷악부(곤)뺸(나손본)의 경우 작품 수록 순서만 약간 다를 뿐 작 가와 작품(수), 작자 정보 표시 방식 등에서 거의 일치하고 있다. 이러한 수 록 방식은 조선시대 작가와 작품 표기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으며 김묵수 까지

6)

두 가집이 공유하고 있어 관련성을 살피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이외에도 본 가집은 중인 작가를 따로 두지 않고 함께 배열하 고 있는데, 이점 또한 뺷악부(곤)뺸(나손본)과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뺷신정가보뺸는 가집으로서 갖추어야할 기본적인 것들을 유지하고 있어 비교적 안정적인 체계를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실명(實名)은 아니지만 편찬자로 보이는 춘지당의 서문이 있고, 창법에 대한 서술이 있으며 작품이 곡조 및 시대별로 배열된 점에서 그러하다. 다만 (간기를 포함한) 가집의 발문과 작가 및 작품의 서․발문 등이 없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3. 편찬 목적

우리나라의 노래는 오로지 우리말만을 사용하여 비록 고시, 악부와 같지 않지

5) 신정가보: 薛聰 字聰志 新羅 弘儒侯, 成忠 百濟 諫官, 乙巴素 高句麗 隱士.

악부(곤)(나손본): 薛聰 新羅人 字聰志, 成忠 百濟 諫臣, 乙巴素 高麗 隱士 故國 川王時 西鴨綠呑左句村人.

이 두 가집의 관계에 대해서는 6장에서 상술하고자 한다.

6) 조명채까지는 두 가집이 일정한 흐름에서 작가와 작품을 표기하고 있으나 김묵수의 경우 악부(곤)(나손본)에서는 조명채로부터 거리를 두고 기록하고 있다.

(10)

만 외물에 감응하여서 슬퍼하거나 기뻐하는 것은 (노래와 고시, 악부가 모두) 같 다. 또한 그것으로 풍교가 어떠한지를 볼 수 있으니 관계한 바가 크다.

지금 세상에 유행하는 노래책에는 오자와 잘못된 글자가 간간이 많이 있다.

노래하는 사람이 그 자모(字母)가 말의 흐름의 아정한 것을 흐리고 있음을 살피 지 않아서 식견이 있는 사람이 듣는 데에 장애가 있으니 어찌 개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에 신라시대로부터 지금까지 여러 계층에서 지은 것 중에서 외설스럽고 잡 스러운 것은 삭제하고, 정대하고 한아한 것을 선별하되 착오가 있는 곳은 고본 을 살피고 여러 논의를 채록하여 대략 이렇게 바로잡아 쓴다. <신정가보 서>

춘지당퟇.

7)

본 장에서는 서문을 통해 본 가집의 편찬 목적을 살피고자 한다. 서문은 춘지당이

8)

작성하였으며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시가의 효용론, 편찬 배경 및 이유, 편찬 과정 등 여느 가집 서․발문의 관습에 기대면서 비교적 간결하게 서술하고 있다. 이와 같은 서문의 서술 양상은 본 가집만 의 특징이 아니며 여타 가집 및 문헌에서 익숙한 양상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이렇게 요약적으로 제시한 것은 이미 이러한 의식이 가집 편찬자들 사이에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첫째 부분에서는 국문 시가가 한시(고시)와 형식적 차이는 있지만 효용론 의 관점에서 보면 동일하다고 말하고 있다. ‘외물에 감응하여서 슬퍼하거나 기뻐하는 것은 (노래와 고시, 악부가 모두) 같다’고 한 데서 수용자 각 개인이 느끼는 정서적 쾌감을, ‘풍교가 어떠한지를 볼 수 있’다고 한 것에서 사회적

7) <新正歌譜 序> 春芝堂퟇. “惟我東歌謠 專由方言 雖與古詩樂府不同 其感於物而 哀樂則一也 亦足觀風敎之如何 所係大矣 今之流行歌譜 誤字錯語間多有之 唱者 不審字母之濁 語脉雅鄭 有碍於識者之耳 豈不慨然也哉 故今自新羅至國朝諸公所 作中 刪其淫褻雜戱 選其正大閑雅者 而誤錯處 考古本採諸論略 此釐正而書焉.”

8) 춘지당은 가집 편찬자와 매우 가까운 인물이거나 편찬자로 추정할 수 있으나 아직 이 인물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그리고 ‘춘지당’ 다음 글자가 판독이 어려워 비워 두었으나 의미상 ‘書’[序, 識 등]가 아닌가 한다.

(11)

차원에서 풍속 교화의 효용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뺷청구영언뺸(김천택 편)이 나 뺷해동가요뺸(주씨본)에서 볼 수 있는 내용과

9)

거의 같은 것으로 이를 통해 그 시대 가집 편찬에 관여한 이들이 갖는 공통된 생각을 확인할 수 있다.

둘째 부분에서는 유행하는 가집에 수록된 노랫말에 오류가 적지 않아 와 전의 우려가 있으며 이를 바로잡아야 하는 소명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10)

오자와 착어(잘못된 글자)로 인해 노래하는 자는 어맥(말의 흐름)의 아정을 살피지 못하고 식자는 듣는 데 장애가 발생하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다시 말해 연행 환경에서 창자와 청자, 전달과 수용 사이의 긍정적이지 못 한 상황이 초래될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노래 의 효용적 가치를 훼상할 수 있기에 오자, 착어를 꽤 심각한 문제로 인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춘지당은 오자와 착어는 정상적이고 원활한 예 술 활동에 장애를 미칠 뿐만 아니라 정서적 감응과 풍속 교화에도 장애가 될 수 있는 근본적인 문제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교정을 주요 편찬 이유로 두었던 것이다.

한편 ‘지금 세상에 유행하는 노래책’이라는 언급은 편찬 당시 이미 복수 의 가집 존재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것들은 본 가집에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춘지당은 이 책들 대부 분을 비판적 대상으로 삼은 것인지 그 가운데 일부만을 삼은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가 접한 노래책은 한두 종에 그치지 않았을 것이고 이들 중 일부는 본 가집과 어느 연관을 갖지 않았을까 생각해 볼 수 있다.

셋째 부분은 편찬 과정을 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작품의 수록 기점을

9) 청구영언(김천택 편) <청구영언 서>. “其詞固皆艶麗可玩 而其旨有和平惟愉者 有 哀怨悽苦者 微婉則含警 激昻則動人 有足以懲一代之衰盛 驗風俗之美惡 可與詩家 表裏竝行而不相無矣.”; 해동가요(주씨본) <해동가요 후서>. “我國歌譜 …… 其亦 風敎之一大關也.”

10) 김천택과 김수장 또한 가집 편찬 이유로 잘못 전해진 것을 바로잡기 위함을 들고 있다.

<청구영언 후발>. “正訛善寫 釐爲一卷 名之曰 靑丘永言.”; <해동가요 서>. “正訛繕 寫 厘爲一卷 名之曰海東歌謠.”

(12)

신라시대까지 올려놓고 있으며, 작자층은 모든 계층으로[제공(諸公)]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작품 선별 과정에서 외설스럽고 잡스러운 것들은 제거하 고 정대하고 한아한 것들을 추려내어 문헌 고증과 여러 논의를 거쳐 수록 했다고 한다.

작품의 수록 기점을 삼국시대로 소급하려한 점은 편찬자의 부주의 내지 엄밀하지 못한 결과로 판단할 수도 있으나 시조시의 전통이 유구하다는 자 부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김천택과 김수장이 고려 말부터 시조시의 전통을 세웠던 것과

11)

달리 편찬자는 시조시의 유구함을 강조하려 했던 것 으로 보인다. 그리고 작가 계층의 외연을 확대하고자 한 것은 시조시의 영 향력을 다대함으로 채우려는 의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작품의 선별 과정은 두 단계를 보여주고 있는 바, 내용에서 정서적 감응과 풍속 교화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것을 먼저 골라내고 그 다 음으로 전승된 원전 내지 정본을 통한 문헌 고증과 당대 전문가의 집단 논 의를 거쳤다고 한다. 이는 수록 과정이 주관적이거나 일관적 기준이 없이 진행된 것이 아니라 체계적이고 합리적이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실제 삼국시대 인물부터 조선시대 군왕, 사대부, 중인 그리고 무명 작가의 작품을 수록한 것에서 시대와 다양한 작가층에 대한 편찬 의도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기생의 작품이 없고 수록된 작품 전체가 정대하고 한아한 것으 로 볼 수 있는지와 문헌 고증과 여러 논의를 거친 결과라 보기에는 작자 문제와 표기 등에서 의문이 있어 의도와 다른 양상이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춘지당은 이 가집을 통해 당시 에 유행하던 가집에서 보이는 노랫말의 오류를 바로잡고 작가와 작품을 삼 국시대까지 소급함으로써 언어예술로서 시조시의 가치를 재확립하고 시조 시의 역사적 전통을 드높이려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11) <청구영언 후발> 및 <해동가요 서>. “自麗季至國朝以來.”

(13)

4. 편찬 시기

본 가집의 편찬 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단서는 곡조 분류, 유명 작가의 하한선 등이다. 물론 본 가집과 관련이 있는 가집들과의 계보학적 연구가 수행된다면 그 편찬 시기를 보다 구체적으로 정할 수 있을 것이나 이는 이 후의 과제이며, 본 장에서는 거시적 윤곽을 살피는 수준에서 편찬 시기를 탐색하고자 한다.

18 세기 후기에서 19세기 전기 사이에 초삭대엽, 이삭대엽, 삼삭대엽, 소용, 우락, 계면, 편삭대엽 등으로 곡조가 분화되나 우조와 계면조가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고 있음을

12)

상기한다면 본 가집의 곡조 분류에 우조와 계면조를 나타나지 않은 점으로 보아 이 사이에 놓인 가집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편찬 시기가 비교적 뚜렷한 가집인 뺷청구영언뺸(김천택 편; 1728), 뺷해동가요뺸 ( 주씨본; 1763), 뺷해아수(解我愁)뺸(1761), 뺷동가선뺸(18세기 후반), 뺷병와가곡 집뺸(1790년 추정), 뺷청구영언뺸(가람본; 1805), 뺷시여뺸(김씨본; 1805) 등과 비 교해 볼 때, 본 가집도 이들과 비슷한 곡조 분류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본 가집에는 작가 정보에 묘호를 부기하고 있는데, 조재호부터 이 봉희까지는 영조(英祖) 초기 묘호인 ‘英宗(영종)’으로 표기하고 있으며 정 동로와 표한장에게는 묘호를 표기하지 않았다. 대개 가집 편찬 관습에서 당 대까지 작가를 하한선으로 두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유명 작가의 마지막 에 놓인 그들이 살던 시기를 편찬 시기로 근접해 볼 수 있다. 영조의 묘호만 등장하고 정조(1752∼1800)의 묘호가 나타나지 않은 점으로 보아 편찬 시 기는 적어도 영조 이후 정조 사망 이전으로 볼 수 있겠다. 정동로와 표한장 의 경우 그들이 영조 때에 활동한 인물이 아니고 정조 때 인물이기 때문에 묘호 표기를 하지 않았고 영조 표기를 한 인물들인 경우 영조 때부터 활동 하여 편찬 시기까지 이어온 것은 아닌가 한다.

따라서 본 가집의 편찬 시기는 19세기 우조와 계면조가 본격 분화되기

12) 송방송, 증보 한국음악통사(민속원, 2007), 405면.

(14)

이전이며 정조가 살았던 시기인 18세기 후반으로 추정할 수 있다.

5. 신출 작가와 작품

<표 2> 신정가보의 신출 작가 및 작품 정보

작가 작가 정보 작품번호 소재 및 주제

김석화(金碩華) (字)는 영숙(英叔), 영종(英宗)

[英祖] 때 산인(散人) 245 강호 한정 김상흡(金尙洽) (字)는 성여(聖餘), 영종(英宗)

때 산인(散人) 246 늙음

연취도(延就道) (字)는 성관(聖寬), 영종(英宗)

때 산인(散人) 252∼259

취락(252), 번민(253), 안빈(254), 순응(255), 회의(256), 시름(257), 은거(258), 이념(259)

장우벽(張友璧)

자(字)는 명중(明仲) (號)는 풍 죽당(風竹堂),

영종(英宗) 때 산인(散人)

261 자족

백경문(白敬門) (字)는 효백(孝伯), 영종(英宗)

때 산인(散人) 264 안빈

이봉희(李鳳禧) (字)는 운경(雲慶), 영종(英宗)

때 산인(散人) 265 취락

정동로(鄭東魯) (字)는 원례(元禮) 266∼267 자연 방필기(方必基) (字)는 여관(汝寬), 영종 때 명

가(名歌) 268 늙음

표한장(表漢章) 자(字)는 사삼(士三) 341 태평성대

5.1. 신출 작가

본 가집의 작품은 모두 359수이며 이 가운데 신출 작품은 18수로 모두

신출 작가 9명의 것들이다. 신출 작가는 김석화, 김상흡, 연취도, 장우벽, 백

경문, 이봉희, 정동로, 방필기, 표한장 등이며, 작가별로 대부분 한 작품만

수록하고 있으나 연취도의 것은 8수, 정동로는 2수를 남기고 있다. 본 가집

(15)

의 특성상 다작 작가라 할지라도 한두 작품만을 싣고 있는 점에 비추어 볼 때

13)

연취도의 작품을 비교적 많이 수집하여 수록한 점이 눈길은 끈다. 그 리고 표한장의 경우 이들과 떨어져 가집 말미에 기록되어 있어 이 또한 특 이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 둘과 편찬자 사이에 특별한 관계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신출 작가들에 대한 정보는 본 가집에 간략히 소개되어 있는데, 대개 영조 때 인물들이다. 이 가운데 장우벽은 당대에 널리 알려진 인물로 보이며, 나머 지 작가들에 대해서는 자료가 전하지 않는다. 장우벽(1735∼1809)은 뺷호산외 사(壺山外史)뺸에 입전된 인물로, 영조 때 중인 가객으로서 가곡창에 능했고 이후 그의 가법(歌法)을 후학에게 전했으며 매화점장단을 만들었다고 한 다.

14)

지금까지 장우벽과 관련된 정보들은 있었지만 그의 작품은 발견되지 못했다. 앞으로 그의 작품에 대해 면밀한 검토가 따라야 하겠지만 본 가집에 서 그의 작품이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그에 대한 연구가 재점화 할 수 있으리 라 생각한다. 장우벽 이외에 정동로에 대해서도 주변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데, 이에 따르면 그는 정조 8년(1784년) 무과에 합격한 인물로 보인다.

15)

아직 까지 이 둘을 제외하고는 아직 나머지 작가들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정보를 확인할 수 없으나 정황상 대체로 중인층 가객들로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뺷신정가보뺸에 신출 작가는 9명으로 이 가운데 당대 노래로 이름이 있었던 장우벽등 대부분 영조 이후에 활동한 중인층으로 추정할 수 있다.

13) 연시조를 남겼거나 많은 작품을 남긴 작가의 경우에도 이현보와 윤선도는 2수를, 신흠 은 3수, 김광욱과 주의식은 4수를 수록하고 있다. 다만 이황, 이이, 정철 등에 대해서는 연시조 작품 전체 혹은 10수 이상을 수록하고 있다.

14) 조희룡․유재건 저, 남만성 역, 호산외사/이향견문록(삼성미술문화재단, 1980), 47∼

48쪽.

15) 정동로는 1784년 정시(庭試)에서 병과(丙科)로 합격하였으며, 당시 37세였다. 갑진왕 세자책봉경용호방(甲辰王世子冊封慶龍虎榜)(국립중앙도서관[古朝26-28-65])

(16)

5.2. 신출 작품

벼 뷔여 쇠게 싯고 고기 낙가 여 들고 아희로 져블리며 을 여 도도라오니

아마도 협리(峽裏) 한졍(閑情)은 이인가 노라 <김석화, 245번>

16)

이 작품은 가을 전가의 일상을 노래하고 있다. 벼를 베고 고기 잡는 삶을 분주하거나 고단하게 그리기 보다는 한가한 삶을 인식하는 화자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비록 사는 곳은 깊은 산속이지만 그곳에서 자족하고 사는 모습을 여문 곡식, 물고기, 차오른 달 등을 가을 안에서 담고 있는 것이다.

익숙한 전가 소재와 주제 의식이 이 작품에도 찾아볼 수 있다.

무심(無心) 운슈간(雲水間)에 무심(無心) 이내 몸이 무심(無心) 풍월(風月)에 무심(無心) 흥(興)을 계워

무심(無心)히 (醉)야 누어시니 셰(世事)ㅣ 무심(無心)여라

<연취도, 252번>

17)

화자는 ‘무심’을 주요 시어로 활용하고 있다. 무심한 것들을 운수(雲水), 화자 자신, 풍월(風月), 흥(興), 취락(醉樂), 세사(世事) 등으로 모두 화자 가 인식하는 대상들이기 때문에 결코 무심한 것은 아니다. 다만 세사에 대 해서는 그 의미를 달리 읽힌다. 나머지 것들은 화자와 혼융되어 무위(無爲) 적 도취에 다다르고 있으나 화자에게 세사는 무심하기 어려운 대상이라 할 수 있다. 자연과의 즐거움을 노래한 작품들에서 보이는 속세와의 준별 의식 이 이 작품에도 드러난 것이다. 운수와 풍월에서 흥취 있는 삶을 즐기는 화 자이지만 결국 속세에 대한 미련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가 반어적 이 중주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다만 이 작품에서 자연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

16) 신정가보 49a. 사진051.

17) 신정가보 49b. 사진053.

(17)

하는 모습이 익숙한 관성에 기대었다고 할 수 있다.

사을 미들것가 못미들슨 사이라 내 도 내 모이 남의 을 어이 알이

쳔고(千古)에 측냥(則量)키 어려울손 잇인가 노라 <연취도, 256번>

18)

화자의 관심은 인간이다. 인간 신뢰에 대한 고민과 회의로 작품을 시작하 고 있다. 화자 자신에 대해 자신(自信)하지 못하는데 타인에 대해서는 회의 할 수 없음을 토로한다. 그리고 장구한 역사가 보여주듯이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 작품의 동기가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발생한 부정적인 상황임을 짐작할 수 있다.

연인과의 실연, 자신의 출세에 대한 약속 파기 등 공사간(公私間) 소통의 장애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에 화자는 자기 자신과 역사적 경험을 들어 담담히 수용하는 쪽으로 극복하고 있다.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고 믿으려 했 던 화자 자신에 대한 성찰까지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요슌우탕(堯舜禹湯) 문무쥬공(文武周公) 공도(孔孟道) 니어 이 아조 업고

허무뎍멸디도(虛無寂滅之道) 혹셰무민(感世誣民)고니

언졔나 셩도(聖道)을 알 이 나셔 니어 볼 노라 <연취도, 259번>

19)

이 작품은 유교적 이념의 부활과 공고화를 노래하는 전형적인 틀을 유지 하고 있다. 유교적 관점에서 고대 이상 세계로 상정되는 시대와 그 시절의 군주들, 유교 조종들을 나열하고 현재 이들의 계승자의 부재를 아파하고 이 단이 성행하여 혼탁한 현실을 개탄한다. 그리고 이 어지러운 세태를 일소

18) 신정가보 50a. 사진053.

19) 신정가보 50b. 사진054.

(18)

(一掃)할 수 있는 유교 영웅의 출현을 고대하는 것으로 작품을 끝내고 있 다. 유교적 이념 이외에는 어떤 것도 용납할 수 없다는 폐쇄, 독단 의식이 이 작품을 지배한다.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시조와 가사에서 보이는 유교 이념의 공고화가 이 작품에도 그대로 계승된 것이다.

망(望)에 둥근 다리 금음에 이지러지

기울며 가득미 물리(物理)의 샹(常事)ㅣ로다

우리도 죡(足) 줄 알며 욕(辱) 되옴이 업슬리라 <장우벽, 261번>

20)

이 작품은 자연 현상의 관찰을 통해 자족(自足)과 자수(自守)를 노래하 고 있다. 달이 차고 기우는 현상과 이에 대한 관습적 의미가 작품의 주제를 설득하고 있다. 그리고 화자는 이와 같은 주제를 종장에서 ‘우리’를 통해 공 적 범주로 확대하고 있다. 독자의 범위를 작가 자신을 넘어 설정했다면 장 우벽과 함께 활동했거나 그가 전달 가능한 대상들에게 설득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선행 논의들에서 언급한 것처럼 중인 가객들이 갖는 신 분적 한계에 대한 고민의 결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몸이 늘거시니 언의 벗지 자오리 靑歌 일곡에 탄금을 혀리로다

아희야 나문 슐 부어라 흥이 다시 오노라 <방필기, 268번>

21)

이 작품은 매우 익숙한 소재인 늙음을 흥취와 쾌락으로 연결한 시조시의 전통에 놓여 있다. 늙음을 노래한 작품들이 그러하듯 이 작품에서도 늙어가 는 것에 대해 받아들이고 살아있는 동안 즐겁게 살겠다고 한다. 홀로 즐기 지만 노래 부르고 악기를 타면서 술을 마시니 흥취가 배가 된다. 늙음에 대

20) 신정가보 51a. 사진054.

21) 신정가보 52b. 사진056.

(19)

한 안타까움을 쾌락을 통해 극복하고자 하는 것인지 쾌락의 밀도를 제고하 기 위해 늙음을 빙자하고 있는 것인지 구분이 어려울 듯하나 이 작품은 후 자에 조금 기운 것은 아닌가 한다.

이렇듯 신출 작품들은 평시조가 만들어온 관습적 주제들을 노래하고 있 다. 한두 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자연에서의 삶, 현재 위치에 대한 자족, 늙음, 사람과 세상과의 번민 등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정서적 차원의 주제들 이다. 이외에 유교적 이념에 현실에서 구현되기를 바라는 노래와 당대를 태 평성대로 칭송하는 것 또한 치열한 대결 의식이나 진지한 성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시조 창작 관습 안에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6. 의의와 전망

6.1. 의의

본 가집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작가 9명과 작품 18수를 담고 있다.

작품 수에서 많은 것은 아니지만 중인 작가가 대거 등장한 것은 이례적이 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이들이 어느 가집에도 소개된 적이 없는 점은 특이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편찬자가 이들을 가깝게 배열한 것으로 보 아

22)

특정 시기에 활동한 작가단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특히 당대 가곡창을 능했던 장우벽의 활동 범주에

23)

이들 신출 작가들이 존재했을 가 능성을 염두에 둔다면 같은 가객단으로 묶을 수 있을 듯하다.

그렇다면 편찬자는 이전에 활동한 김천택과 김수장이 이끈 중인 가객단

22) 표한장은 가집 후미로 별도로 기록하고 있어 편찬자가 시차를 두고 추가했던 것으로 보인다.

23) “악률(樂律)에 통효(通曉)하여 스스로 가박(歌拍)의 매화점(梅花點)을 만들었으니 거 의 관현(管絃)의 옥척(玉尺)이다. 날마다 인왕봉(仁王峯)에 올라가서 노래를 부르고 돌아오니 사람들이 그곳을 가리켜 가대(家臺)라 하였다.” 조희룡․유재건 저, 남만성 역, 호산외사/이향견문록(삼성미술문화재단, 1980), 48면.

(20)

( 작가단) 가운데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두어 중인 가객단(작가단)을 구성하 려 했을까. 주지하다시피 뺷청구영언뺸(김천택 편) ‘여향육인(閭巷六人)’에서 6 명을, 김수장이 뺷청구가요(靑丘歌謠)뺸에서는 11명을 따로 두어 중인 가객 을 배려하고 있다. 본 가집에서는 위 17명 가운데 여항육인은 전부, 뺷청구 가요뺸 11인 중 7명의 작품을 선별하여 수록하고 있다.

(5) 청구영언(김천택 편) ‘여향육인’: 장현(221), 주의식(222∼231), 김삼현 (232∼237), 어은[김성기](238∼245), 김유기(246∼255), 남파[김천택](256

∼285)

(6) 청구가요(김삼불 교주본): 김수장, 김우규(1∼11), 김태석(12∼15), 박희 석[서](16∼18), 김진태(19∼44), 문수빈(45), 이덕함(46∼48), 김묵수(49∼

54), 김중열(55∼57), 김두성(58∼59), 박문욱(60∼76) (7) 신정가보

- 장현 1수 중 1수(187-221),

24)

주의식 4수 중 3수(204-230; 205-228;

206-224), 김삼현 2수 중 2수(206-234; 208-233), 김성기 2수 중 2수 (209-245; 210-241), 김유기 3수 중 3수(211-255; 212-251; 213-249), 김 천택 6수 중 3수(238-257; 239-271; 243-264) <이상 ‘여항육인’>

- 김우규 1수 중 0수(연결 없음), 박문욱 1수 중 1수(247-64), 박희서 1수 중 1수(248-61), 문수빈 1수 중 1수(249-45), 김태석 1수 중 0수(연결 없 음), 김묵수 1수 중 0수(연결 없음), 김진태 1수 중 1수(263-24)

<이상 청구가요>

위에서 보듯 중인 본 가집의 작가-작품을 뺷청구영언뺸(김천택 편) 및 뺷청 구가요뺸와 비교했을 때 공유도는 전자가 78%(14/18), 후자는 58%(4/7)로 본 가집은 김천택과 교유한 중인 가객들의 작품을 더 많이 수록하고 있으 므로 ‘여항육인’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김천택의 작품을 비교적 많이 수록하고 있는 점에서 이를 짐작할 수 있다. 이에 비해 김수장

24) 앞은 신정가보, 뒤는 청구영언(김천택 편) 또는 청구가요의 작품 번호이다.

(21)

과 뺷청구가요뺸 인물과 작품에 대해서는 다소 소극적이라 할 수 있다. 편찬 자가 뺷청구가요뺸에 등장하는 중인 작가들을 인식하고 있었다면 분명 김수 장과 그의 작품을 인지하고 있었을 터이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김수장을 배 제하고 있는 것도 의문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본 가집에는 ‘여항육인’과 뺷청구가요뺸에 없는 작품들도 수록하고 있는데,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5)

(9) 주의식(203): 인심仁心은 터히 되고 효졔츙신孝悌忠信 기동 되야

26)

(10) 김천택(240): 역슈한파易水寒波 져은 날에 형겅荊卿의 거동擧動 보소 (11) 김천택(241): 옥하관玉河館 졈은 날에 엿불손 삼학사三學士야 (12) 김천택(242): 시름을 드러 내여 어이 어야 붇동혀셔 (13) 김우규(244): 안빈安貧을 염厭치 말라 일 업스면 긔 죠흐니 (14) 김태석(250): 늙고 병病든 몸이 공명功名에 이 업서 (15) 김묵수(262): 낙엽셩落葉聲  에 길러기 슬피 울메

(9) 는 110여종의 문헌에 있는 작품으로 해동가요계열의 가집, 뺷병와가곡 집뺸, 뺷시여(詩餘)뺸(김씨본) 등에 주의식의 작품으로 기록되어 있다. (10)은 30여종의 문헌에 수록된 작품이나 김천택의 작품으로 표시한 가집은 뺷해동 가요뺸(박씨본)과 뺷시여뺸(김씨본)뺸 뿐이다. (11)은 4종의 가집에 있으며 뺷해 동가요뺸(주씨본), 뺷해동가요뺸(버클리본) 등에서 모두 김천택으로 작품으로 보고 있다. (12)는 3종의 가집에 있으나 뺷시여뺸(김씨본)뺸과 뺷악부뺸(고대본) 에만 김천택 작으로 되어있다. (13)은 4종의 가집에 있는데 뺷해동가요뺸(박 씨본) 및 뺷해동가요뺸(주씨본)에서 모두 김수장 작으로 되어 있으며, 김우규 의 작으로 표기한 가집은 본 가집이 유일하다. (14)는 4종의 가집에 있으며 뺷병와가곡집뺸, 뺷시여뺸(김씨본)뺸, 뺷악부뺸(고대본) 등에서 김태석의 작품으로 표기하고 있다. (15) 20여종의 문헌에 있으며 뺷병와가곡집뺸, 뺷청구영언뺸(육

25) 작품에 대한 정보는 고시조 대전(2012)를 참고하였다.

26) 신정가보의 표기이며 작품의 초장이다.

(22)

당본) 등에서만 김묵수의 작품으로 보고 있다.

(9) 를 제외하고는 위 작품들에 대한 작자 표기가 매우 제한적임을 알 수 있다. 여러 문헌에 수록된 경우에도 본 가집과 일부 가집에서만 작가가 일치 하고 있고 심지어 김수장의 작품으로 보이는 경우에도 본 가집은 김우규로 본 점은 특이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가운데 본 가집과 1805년 송태운 이 편찬한뺷시여뺸(김씨본)뺸와의

27)

관계가 그리 멀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7 수 중 (9), (10), (11), (12)의 두 가집의 작가 정보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수장과 교유한 인물의 작품들에 대해서는 뺷청구가요뺸와 더욱 멀어졌다고 할 수 있다. 주의식과 김천택에 대한 작가 정보는 해동가요계열의 가집과 유사도가 높은 편인데, 김우규, 김태석, 김묵수 등에 대해서는 뺷병와가 곡집뺸등 다른 가집과 공유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편찬자는 ‘여항육인’에 대한 정보 수집에 적극적인 것이었고 그들과의 심리적 거리를 가깝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김수장 과 그가 이끈 뺷청구가요뺸 작가들에 대해서 정보 수집이 어려웠거나 - 뺷청구 가요뺸를 접하지 못했을 가능성 - 김수장과 그가 주도한 일들과 거리를 두려 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다시 말해 편찬자는 새로 등재된 중인 작가단을 김천택(여항육인), 김수장(가단)과 수준으로 인식하면서 김천택(여항육인) 을 계승하려는 의식이 김수장(가단)보다 더 컸던 것은 아닐까 한다. 어떤 경우이든 편찬자는 이들 신출 중인 가객 작가들의 위상을 높이려는 의도는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본 가집은 여타 가집에 소개된 적이 없는 중인 가객 작가들이 본 가집에만 대거 수록된 점을 볼 때 편찬자는 김천택 집단과는 계승적 차원 에서 김수장 가단과는 일정 정도 거리를 두면서 이들을 부각하려 했던 것 으로 보인다.

27) 이상원, 「시여 김씨본」, 고시조문헌해제(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12), 84∼87면.

(23)

6.2. 전망

6.2.1. 가법(歌法)

〈표 3〉 신정가보, 청구영언(장서각본), 청구영언(가람본)의 가법 비교

구분 신정가보 청구영언

(장서각본)

뺷청구영언 (가람본) 창법에서

중요도

聲音爲第一 有識爲第二 長短爲第三

聲音居其首28) 有識居其次 長短居其末

사성

平聲哀而安 上聲厲而擧 去聲淸而遠 入聲直而促

平聲哀而安 上聲厲而擧 去聲淸而遠 入聲直而퟇

각조 및 오음

平調 雄深和平 黃鐘一動 萬物皆春 洛陽三月 邵子乘車 百花叢裡 按轡徐徐 羽調 淸壯激勵 玉斗撞破 碎屑鏘鳴 項羽躍馬 雄釗腰鳴 大江以西 攻無堅城 界面調 哀冤愴悽 忠魂沉江 餘恨滿楚 令威去國 千載始歸 疊疊塚前 物是人非

平調 雄深和平 羽調 淸壯踈暢 界面調 哀怨激烈 宮聲 黃鐘一動 萬物皆春 洛陽三月 邵子乘車 百花叢裡 按轡퟇퟇

羽聲 玉斗撞破 碎屑鏘鳴 項王躍馬 雄劍腰鳴 大江퟇퟇ ퟇퟇퟇퟇

商聲 忠魂沈江 餘恨滿楚 令威去國 千載始歸 疊疊塚퟇ ퟇퟇퟇퟇

平調 雄深和平 黃鐘一動 萬物皆春 羽調 淸壯踈暢 玉斗撞破 碎屑鏘鳴 界面調 哀怨激烈 忠魂沉江 餘恨滿楚

14조목 (풍도형용)

初中大葉

徘徊有一唱三嘆之味 風度南薰五絃 形容行雲流水 二中大葉 上同 風度海濶孤帆 形容平川挾灘 三中大葉 上同 風度項羽躍馬 形容草裡驚蛇

初中大葉 南薰五絃 行雲流水 二中大葉 海濶孤帆 平川挾灘 三中大葉 項羽躍馬 高山放石

28) 밑줄은 본 가집과의 차이를 나타낸 것이다.

(24)

창법을 기록하고 있는 가집은 뺷청구영언(靑丘永言)뺸(장서각본), 뺷청구영 언(靑丘永言)뺸(가람본), 뺷해동가요(海東歌謠)뺸(주씨본), 뺷가조별람(歌調 別覽), 뺷병와가곡집(甁窩歌曲集)뺸, 뺷동국가사(東國歌辭)뺸, 뺷가곡원류(歌 曲源流)뺸(국악원본), 뺷금옥총부(金玉叢部)뺸 등이 있으며,

29)

이 가운데 본 가집에서 언급한 내용과 비교적 가까운 가집은 뺷청구영언뺸(장서각본), 뺷청구 영언뺸(가람본) 등이라 할 수 있다.

위 표는 가법(창법)의 일부를 제시한 것으로

30)

본 가집에서 담고 있는 가법의 내용은 위 두 가집과 비교적 공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가법 의 내용은 당시 창법 일반에 관한 것들이기 때문에 가집 간 관계를 거론하 기에 조심스러운 면이 있으나 결과적 유사성이 있다는 측면에서 고민해볼 일이다.

비록 본 가집에서 가법(창법)의 내용은 소략하지만 성음, 사성, 오음, 14 조목 등을 모두 담고 있어 악론의 차원에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본 가집을 18세기 후반으로 본다면 비슷한 시기의 가집 뺷해동가요뺸(주씨본)의 14조목과의 비교를 통해 이것이 갖는 의미를 고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본 가집의 창법 내용과 유사하게 놓인 뺷청구영 언뺸(장서각본), 뺷청구영언뺸(가람본) 등과도 함께 논의할 가치가 있다고 생 각한다.

6.2.2. 뺷악부(곤)뺸(나손본)과의 관계

太宗大王 1(1수)

31)

/ 孝宗大王 3∼7(5수) / 肅宗大王 8(1수)

薛聰 10(1수) / 成忠 11(1수) / 乙巴素 12(1수) / 李兆年 13(1수) / 禹倬 14∼

29) 「시조 문헌 서발문」, 고시조 대전, 1223∼1243쪽. 서․발문 인용도 이 책을 참고하였다.

30) 밑줄은 본 가집을 기준으로 달라진 글자를 표시한 것이다.

31) 악부(곤)(나손본) 원문에 열성어제 작품 머리에 아리비아 숫자로 347번부터 기록해 놓고 있으나 권순회에 달아 놓은 새로운 번호를 적용하고자 한다. 권순회, 「樂府(羅 孫本)의 계보학적 위상」, 古詩歌硏究 27輯(한국고시가문학회, 2011), 83∼85면.

(25)

16(3수) / 徐甄 19(1수) / 元天錫 22∼23(2수) / 李穡 27(1수) / 鄭夢周 28(1수) / 吉再 25(1수) / 郭輿 20∼21(2수) / 崔瑩 26(1수) / 崔沖 17∼18(2수) / 李之蘭 29(1수) / 趙浚 30수(1수) / 鄭道傳 31(1수) / 成汝完 32(1수) / 黃喜 33(1수) / 鄭希良 50(1수) / 孟思誠 34∼37(4수) / 金宗瑞 38(1수) / 金時習 39(1수) /

【王邦衍】

32)

/ 成三問 40∼41(2수) / 朴彭年 42(1수) / 河緯地 43∼44(2수) / 柳 誠源 45(1수) / 李塏 46(1수) / 兪應孚 47(1수) / 李存吾 24(1수) / 南怡 48∼

49(2수) / 南孝溫 51(1수) / 朴誾 52(1수) / 金宗直 53∼54(2수) / 金馹孫 55∼

56(2수) / 金宏弼 57∼60(4수) / 李賢輔 61∼64(4수)

33)

/ 宋寅 67(1수) / 李滉

34)

85∼97(13수) / 宋純 68(1수) / 曹植 69∼70(2수) / 徐敬德 75(1수) / 李彦迪 76(1수) / 趙光祖 77(1수) / 朴英 78(1수) / 李珥 98∼109(12수) / 金玄成 79(1 수) / 徐益 84(1수) / 洪迪 110(1수) / 李陽元 80(1수) / 鄭澈 111∼117(7수) / 李後白 82(1수) / 成守琛 118∼121(4수) / 林悌 122(1수) / 李恒福 123∼124(2 수) / 李德馨 125(1수) / 【成運】 / 成渾 126∼128(3수) / 金長生 129(1수) / 柳自 新 130(1수) /申欽 154∼156(3수) / 朴明賢 131(1수) / 李廷龜 132(1수) / 趙纘 韓 133(1수) / 權韠 145(1수) / 李安訥 134(1수) / 金瑬 157(1수) / 洪瑞鳳 158(1 수) / 李舜臣 135(1수) / 【金尙憲】 / 趙存性 136(1수) / 趙憲 137∼138(2수) / 李元翼 153(1수) / 奇大升 139(1수) / 白光勳 140(1수) / 韓濩 141(1수) / 梁應 鼎 81(1수) / 李仲集 142∼144(1수) / 【朴仁老】 / 金光煜 146∼149(4수) / 鄭蘊 150∼151(2수) / 金應河 152(1수) / 洪翼漢 160(1수) / 林慶業 161(1수) / 金尙 容 159(1수) / 李明漢 162(1수) / 鄭忠信 164(1수) / 張晩 163(1수) / 具仁垕 174(1수) / 鄭太和 165(1수) / 蔡裕後 166(1수) / 鄭斗卿 167∼168(2수) / 尹善 道 169∼170(2수) / 姜栢年 179(1수) / 曺漢英 171∼172(2수) / 金堉 175(1수) / 李浣 176(1수) / 張炫 181(1수) / 李華鎭 173(1수) / 宋時烈 177∼178(2수) / 南九萬 180(1수) / 李畬 182(1수) / 李澤 183(1수) / 柳赫然 184(1수) / 朴泰輔 185(1수) / 具志禎 186(1수) / 金聲㝡 187(1수) / 申靖夏 188(1수) / 金昌業 189(1수)

32) 【 】은 악부(곤)(나손본)에 없는 작가이다.

33) 밑줄은 본 가집과 악부(곤)(나손본)에서 달라진 작품 수이다.

34) 작가 표기는 없으나 이황의 <도산십이곡>과 기타 1수이다. 권순회도 84∼97번 작품을 서익으로 두고 있으나 85번∼96번을 ‘도산십이곡’이라 하였다. 권순회(2011), 같은 글, 84면.

(26)

尹斗緖 190(1수) / 兪崇 191(1수) / 朴尙侃 192(1수) / 朱義植 193∼195(3수) / 金三賢 197∼198(2수) / 金聖器 199∼200(2수) / 金裕器 201∼203(3수) / 朴後 䧺 204∼206(3수) / 尹游 216(1수) / 【尹淳】 / 張鳳翼 211(1수) / 李渘 207∼

209(3수) / 李廷燮 210(1수) / 趙顯命 217(1수) / 趙載浩 218∼219(2수) / 李在 220(1수) / 趙明履 221(1수) / 李鼎輔 222∼225(4수) / 洪鳳漢 226(1수) / 曹命 采 227(1수) / 鄭逑 72∼74(3수) / 金黙壽 292

35)

전술한 바와 같이 작가-작품 배열에서 본 가집과 가장 가까운 가집은 뺷악 부(곤)뺸(나손본)이다. 위는 뺷신정가보뺸의 순서를 기준으로 뺷악부(곤)뺸(나손 본)의 작가와 작품을 재배열한 것이다. 위에서 보듯 본 가집과 뺷악부(곤)뺸(나 손본)은 매우 상당한 수준에서 유사도가 높다고 할 수 있다. 조명채까지 놓고 볼 때 작가와 작품 순서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두 가집이 시대 인물 순으로 작품을 배열하고 있으며, 다작 작가의 작품 수를 선별하고 수록 하는 양상이 거의 같다고 할 수 있다. 일례로 윤선도의 작품 가운데 2수를 선별하여 싣고 있는데 두 가집 모두 같은 작품을 선택하였다.(<비오는 날들 에∼>, <슬프나 즐거오나∼>) 그리고 선행 연구에서 밝힌 바 있듯이 뺷악부 ( 곤)뺸(나손본)의 특이점 가운데 이현보 <어부가> 5수 중 김종직과 김일손의 작품으로 각각 2수씩 나누어 표기한 점, 중인가객의 작품을 따로 나누지 않은 점,

36)

기생시조가 없는 점, 뺷악부(곤)뺸(나손본)에만 등장하는 이여와 조명채 가 등장하는 점

37)

등에서

38)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작가 정보 표시 방식 또한 두 가집이 매우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다.

39)

이렇게 볼 때 이삭대엽 부분 에서 두 가집은 긴밀한 관계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선행 연구에서 뺷악부(곤)뺸

35) 악부(곤)(나손본)에는 292∼297번(5수)까지 김묵수의 작품으로 표기하고 있다.

36) 다만 악부(곤)(나손본)에 김천택과 김수장의 작품이 없으나 본 가집에는 김수장의 작품은 없고 김천택의 작품은 있다.

37) 다만 악부(곤)(나손본)에 기록된 정민교는 본 가집에는 없다.

38) 권순회(2011), 같은 글, 86∼87면.

39) 예를 들어, 신정가보: 李畬 字子三 号 睡村 肅宗朝相; 曹命采 字 号 英宗朝參判.

악부(곤)(나손본): 李畬 字子三 号 睡村 肅宗朝相; 曹命采 英宗朝參判.

(27)

( 나손본)의 이삭대엽 부분의 “저본이 18세기 중반 무렵에 산출된 가집으로 추정”하고 있다.

40)

이처럼 이삭대엽 부분에서 뺷신정가보뺸와 뺷악부(곤)뺸(나손본)에서 약간의 차이는 보이지만, 뺷악부(곤)뺸(나손본)에서만 보이는 작가별 작품 선별, 작가 표시 및 정보 표기 방식 등이 본 가집과 일치하고 있다. 따라서 두 가집의 관계를 ① 두 가집이 동일한 저본을 공유했을 경우, ② 뺷신정가보뺸가 뺷악부 ( 곤)뺸(나손본)의 저본일 경우, ③ 뺷악부(곤)뺸(나손본)가 뺷신정가보뺸의 저본일 경우 등을 상정하여 살펴야 할 것이다.

7. 결론

이 논문은 새로 발견된 가집인 뺷신정가보뺸에 관한 내, 외적 사실들을 소 개하고 이 가집이 갖는 의의와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연구 방향을 살피 는데 목적이 있다. 본 가집은 김해동이 고서 수집가가 영남에서 수거된 것 을 원주에서 구입하여 2019년 8월 필자에게 제공함으로써 본 연구를 수행 하게 되었다.

이 가집은 가집으로서 갖추어야할 기본적인 것들을 유지하고 있어 비교 적 안정적인 체계를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편찬자로 보이는 춘지당의 서 문이 있고, 창법에 대한 서술이 있으며 작품은 곡조 및 시대별로 배열하고 있다. 가집의 분량은 총 72장이며 내용은 서문, 가법(창법), 작품 순으로 되 어 있으며, 곡조 및 시대별로 유명씨, 무명씨 순으로 배열하고 있다. 수결에 는 소장한 일시가 있는데, 1774년 이후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서문에 는 효용론, 편찬 배경 및 목적, 편찬 과정을 기록하고 있으며 가법은 창법에

40) 권순회(2011), 같은 글, 86면. 하지만 이삭대엽 부분에서 두 가집의 차이가 드러나는데,

신정가보에 있었던 ‘왕방연, 김상헌, 박인로, 윤순’이 악부(곤)(나손본)에 사라졌고 이현보, 조식, 정철, 신흠, 주의식의 작품 수에 변동이 있는 점 등은 남은 과제이다.

(28)

관한 것들을 설명하고 있다. 작품은 모두 329수이며 유명 작가는 152명을 등재하고 있다. 초중대엽부터 초삭대엽까지 곡조별로 1∼2수만 수록하고 있고 대부분 작자 미상으로 처리하고 있으며, 이삭대엽에 해당하는 40수와 삼삭대엽 이하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에 비해 이삭대엽 시작 부분은 군왕 의 작품을 먼저 소개하고 이후 시대별 유명 작가의 작품을 수록하고 있다.

본 가집의 서문에서는 시가의 효용론, 편찬 배경 및 이유, 편찬 과정이 드러나 있다. 시조시의 효용에 있어 개인의 정서적 쾌감과 사회적 풍속 교 화에 두고 있고 편찬 이유에는 전승․유통된 노랫말에 오류가 적지 않아 연행 소통과 풍속 교화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바로 잡기 위함이라 하였다. 편찬 과정에서 작품의 상한선을 삼국시대까지, 작가의 범 위에는 신분과 계급에 제한을 두지 않았으며, 작품은 정대하고 한아한 것을 추려 고증과 논의를 거쳤음을 밝히고 있다. 이를 통해 편찬자는 언어예술로 서 시조시의 가치를 재확립하고 시조시의 역사적 전통을 드높이려 했던 것 으로 보인다.

본 가집이 편찬 시기는 곡조 분류와 유명 작가의 하한선 등으로 볼 때, 19 세기 우조와 계면조가 본격 분화되기 이전, 정조가 살았던 시기인 18세기 후반으로 추정할 수 있다. 본 가집의 곡조 분류가 18세기 후기에서 19세기 전기 사이에 편찬된 가집들과 비슷하고 우조와 계면조의 뚜렷한 분화가 보 이지 않은 점에서 이 시기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작가 정보를 나타내는 부기 에 임금의 묘호를 기록하고 있는데 유명 작가 하한선에 ‘英宗(영조)’의 묘 호가 나타나고 정조(1752∼1800)의 묘호가 없기 때문에 편찬 시기는 적어 도 영조 이후 정조 사망 이전으로 볼 수 있을 듯하다.

신출 작가는 9명이며, 신출 작품은 18수이다. 신출 작가는 김석화, 김상

흡, 연취도, 장우벽, 백경문, 이봉희, 정동로, 방필기, 표한장 등이며, 작가별

로 대부분 한 작품만 수록하고 있으나 연취도의 것은 8수, 정동로는 2수를

남기고 있다. 신출 작가 중 장우벽과 정동로만 기록을 찾을 수 있고 나머지

작가들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정보를 확인할 수 없으나 대부분 영조 이후에

(29)

활동한 중인층 가객들로 볼 수 있다.

신출 작품들은 평시조가 만들어온 관습적 주제들을 노래하고 있다. 대부 분 자연에서의 삶, 현재 위치에 대한 자족, 늙음, 사람과 세상과의 번민 등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정서적 차원의 주제들이라 할 수 있다. 예외적으로 유 교적 이념에 현실에서 구현되기 바라는 노래와 당대를 태평성대로 칭송하 는 것이 있으나 치열한 대결 의식이나 진지한 성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시조 창작 관습 안에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본 가집의 가장 큰 의의는 알려지지 않은 중인 작가 9명을 대거 수록하고 있는 점이다. 편찬자가 이들을 한꺼번에 등재한 것은 특별한 의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당대에 뛰어난 음악계에서 특출한 장우벽과 함께 배치한 점에서 이들을 장우벽과 함께 활동한 작가단으로 볼 수도 있을 듯하다. 그 렇다면 이들은 이미 활동했던 김천택이 주도한 여항육인과 김수장이 이끈 뺷청구가요뺸 작가들의 동시대 다른 집단 혹은 후속 가단일 가능성이 높으며, 편찬자는 이들을 김천택(여항육인), 김수장(가단)과 수준으로 인식하여 이 들의 위상을 높이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김천택 집단과는 계승 적 차원에서 김수장 가단과는 일정 정도 거리를 두었다고 할 수 있다.

본 가집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연구 방향을 전망하면 첫째, 가법(창법)을

중심으로 본 가집과 뺷해동가요뺸(주씨본), 뺷청구영언뺸(장서각본), 뺷청구영언

뺸(가람본) 등과의 비교이며, 둘째, 이삭대엽 부분에서 본 가집과 친연성을

보이는 뺷악부(곤)뺸(나손본)과의 계보 관계 파악이라 할 수 있다. 본 가집에

서 성음, 사성, 오음, 14조목 등을 모두 담고 있기 때문에 악론의 차원에서

이들 가집과 함께 다룰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작자

정보 측면에서 독특하게 여겨졌던 뺷악부(곤)뺸(나손본)가 본 가집에서도 나

타난 점에서 이들의 관계를 살피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18세기 후반 가집사의 영향 관계 및 계보를 구도화 하는 데 일조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30)

참고문헌

뺷갑진왕세자책봉경용호방(甲辰王世子冊封慶龍虎榜)뺸(국립중앙도서관[古朝 26-28-65])

뺷악부(樂府) 곤(坤)뺸(나손본) 뺷청구가요(靑丘歌謠)뺸

뺷청구영언(靑丘永言)뺸(김천택 편) 뺷해동가요(海東歌謠)뺸(주씨본)

권순회, 「뺷고시조 대전뺸의 편찬 과정과 주요 특성 개관」, 뺷민족문화연구뺸 57권,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12.

______, 「뺷樂府뺸(羅孫本)의 계보학적 위상」. 뺷古詩歌硏究뺸 27輯. 한국고시가문 학회, 2011, 83∼85면.

김흥규 외 편, 뺷고시조 대전뺸,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12.

송방송, 뺷증보 한국음악통사뺸, 민속원, 2007, 405면.

신경숙 외 저, 뺷고시조 문헌해제뺸,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12.

이상원, 「시여 김씨본」, 뺷고시조문헌해제뺸,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12. 84

∼87면.

조희룡․유재건 저, 남만성 역, 뺷호산외사/이향견문록뺸, 삼성미술문화재단, 1980.

(31)

부록

신출 작품 주석과 현대어역

◎ 245번 金碩華 字英叔 英宗朝散人

김석화(金碩華) 자(字)는 영숙(英叔)이고 영종(英宗)[영조(英祖)] 때 사람 [산인(散人)]

41)

이다.

【원문】

벼 뷔여 쇠게 싯고 고기 낙가 여 들고 아희로 져블리며

42)

을 여 도도라오니

43)

아마도 협리(峽裏)

44)

한졍(閑情)은 이인가 노라

[현대어역]

벼를 베어 소에 싣고 고기를 낚아 꿰어 들고 아이에게 지게하며 달을 띠어 돌아오니 아마도 골 속 한정은 이뿐인가 하노라

◎ 246번 金尙洽 字聖餘 英宗朝散人

김상흡(金尙洽) 자(字)는 성여(聖餘)이고 영조 때 사람이다.

【원문】

내 어이 늙돗던고 무스 일로 늙돗덧고

41) 벼슬을 하지 않은 사람.

42) 지여리다[負]: 지게 하다.

43) 도도라오다: ‘되돌아오다’로 추정됨.

44) 협리(峽裏): 골짝이 안. 깊은 골.

(32)

연하(烟霞)

45)

세계(世界)에 흥진(興盡)니 늙돗덧가 아마도 뎨향(帝鄕)에

46)

갈 길 밧 늙것는가 노라

[현대어역]

내 어이 늙던가 무슨 일로 늙던가 좋은 경치 세상에 흥이 다하여 늙던가 아마도 하늘에 갈 길 바빠 늙었는가 하노라

◎ 252번

47)

延就道 字聖寬 號 英宗朝散人

연취도(延就道) 자(字)는 성관(聖寬)이고 영조 때 사람이다.

【원문】

무심(無心) 운슈간(雲水間)에

48)

무심(無心) 이내 몸이 무심(無心) 풍월(風月)에

49)

무심(無心) 흥(興)을 계워

무심(無心)히 (醉)야 누어시니 셰(世事)ㅣ 무심(無心)여라

[현대어역]

무심한 구름과 물 사이에 무심한 내 몸이 무심한 바람과 달에 무심한 흥에 겨워 무심히 취하여 누었으니 세상이 무심하여라

45) 연하(煙霞): 안개와 노을. 좋은 경치.

46) 제향(帝鄕): 하느님이 있는 곳. 하늘. 사후의 세계.

47) 259번까지 연취도의 작품이다.

48) 운수간(雲水間): 구름과 물 사이.

49) 풍월(風月): 음풍농월 혹은 자연. 여기서는 바람과 달, 자연으로 볼 수 있다.

(33)

◎ 253번

【원문】

텬하(天下) 근심을 다 쓰러 모화 노흘 와 낼쟉시면 빈한(貧寒)과 리별(離別)를   동혀다가

가업슨

50)

쳥소에

51)

드리쳐

52)

후텬(後天)에도

53)

업게 리라

[현대어역]

천하 근심을 다 쓸어 모와 노를 꼬와 낸다면 가난과 추위, 이별을 한곳에 찬찬 동여다가 끝없는 밤하늘 들이쳐 후천에도 없게 하리라

◎ 254번

【원문】

내 집이 다만 두 간 녤 것 업셔 구름 덥허 쳥산(靑山)이 울이되여

54)

면(四面)을 둘러 괴냐

이 즁(中)에 풍월(風月)의 벗이되여 졀(節)가

55)

줄 몰오이라

[현대어역]

내 집이 다만 두 간 넣을 것 없어 구름 덮어 청산이 울이 되어 사면을 둘렀구나

이 중에 풍월의 벗이 되어 철가는 줄 모르리라

50) 가없는: 끝이 없는.

51) 청소(淸宵): 맑은 밤 하늘.

52) 드리쳐: 들이쳐.

53) 후천(後天): 다음 세상.

54) 울: 울타리.

55) 절(節): 계절, 절기, 세월.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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