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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교육자료 : 부산광역시 부산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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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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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글

(1)

소리

나는 인문학,

생각

하기

시민인문강좌

(사)민족음악학회

(2)

3월 19일 최 유 준 (동아대학교) 이 희 경 (한국예술종합학교) 신 설 령 (민족음악학회) 정 경 영 (한양대학교) 조 선 우 (동아대학교) 이 인 숙 (부산박물관장) 이 인 숙 (부산박물관장) ※부산박물관 대강당 매주 목요일 14:00�17:00 1강 2강 3강 4강 5강 6강 7강 8강 9강 10강 일 자 순서

강의일정

강 사 내 용 3월 26일 4월02일 4월09일 4월 16일 4월 23일 4월 30일 5월07일 5월 14일 5월 21일 5월 21일 서구음악에서 대중음악으로(1) : 유색의 음조, 블루스 서구음악에서 대중음악으로(2) : 스윙의 시대, 뽕짝의 시대 ‘음악’을 넘어선 음악(1) : 20세기 현대음악의 탈근대적 경계들 ‘음악’을 넘어선 음악(2) : 20세기 현대음악의 탈근대적 경계들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시민의 음악(1) : 모차르트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시민의 음악(2) : 베토벤 바로크음악(1) - 진짜’음악 논쟁 : 오늘날의 바로크 음악 바로크음악(2) - 말, 춤, 음악 : 그 시절의 바로크 음악 서구음악과 한국음악, 중첩되는 근대적 출발점으로서의 기독교와 음악(1) 서구음악과 한국음악, 중첩되는 근대적 출발점으로서의 기독교와 음악(2) 수료식 개강식 3월 19일

(3)

서구음악에서 대중음악으로(1) : 유색의 음조, 블루스 서구음악에서 대중음악으로(2) : 스윙의 시대, 뽕짝의 시대 ‘음악’을 넘어선 음악(1) : 20세기 현대음악의 탈근대적 경계들 ‘음악’을 넘어선 음악(2) : 20세기 현대음악의 탈근대적 경계들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시민의 음악(1) : 모차르트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시민의 음악(2) : 베토벤 바로크 음악(1) - ‘진짜’음악 논쟁 : 오늘날의 바로크 음악 바로크 음악(2) - 말, 춤, 음악 : 그 시절의 바로크 음악 서구음악과 한국음악, 중첩되는 근대적 출발점으로서의 기독교와 음악(1) 서구음악과 한국음악, 중첩되는 근대적 출발점으로서의 기독교와 음악(2) 최유준 최유준 이희경 이희경 신설령 신설령 정경영 정경영 조선우 조선우 /09 /20 /29 /45 /58 /75 /85 /97

소리

나는 인문학,

생각

하기

시민인문강좌

(4)

서구음악에서 대중음악으로

(5)

9 서구음악에서 대중음악으로 20세기와 대중음악 20세기 초(정확히는 1914년)에 발발한 첫 번째 세계대전은 서구 문명에 커다란 상처 를 입혔습니다. 과학과 합리적 진보에 대한 서구인들의 믿음은 전쟁을 계기로 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인간성 실현’의 도구로 믿었던 과학이 오히려‘대량 학살’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목도했기 때문입니다.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어떤 야만의 문명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지는 않았으니까요. 더불어 이전까지 번영을 누리던 유럽의 경제는 파탄 나고, 설상가상 1918년에는 독감의 유행으로 세계적으로 2 천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암울한 상황은 유럽 전체에 파시즘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게 되는 배경이 되 었습니다. 바야흐로 유럽의 문화는 걷잡을 수 없는 퇴행과 타락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 다. 이렇듯 전운이 감도는 유럽의 잿빛 풍경 속에서 급진적인 음악 실험들이 이루어지 기도 했는데, 유럽의 진보적 음악가들은 불협화음으로 가득 찬 불가해한 음악작품들을 통해‘타락한 사회와의 불화’를 선언해 가고 있었습니다. 이렇듯 예술을 표방하는 음악 이 의도적으로 청중으로부터 멀어지면서 이른바‘진지한 음악’과‘가벼운(대중적인) 음 악’사이의 골은 깊어만 갔습니다. 하지만, 이후 20세기를 지배할 대중음악적 조류는 더 이상 유럽에서 만들어지기보다 는 북아메리카 미국 땅으로 옮겨가 형성됩니다. 1차 세계 대전은 미국에 피해를 주기보 최 유 준 | 동아대학교

서구음악에서 대중음악으로(1):

유색의 음조, 블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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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서구음악에서 대중음악으로 people)의 문화적 정체성과 관련된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이미지가 중첩됩니다. 블 루스의 이미지가 지시하는 구체적인 종족 그룹은 물론 아프리카계 미국인(African-American)입니다. 하지만,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정체성은 흔히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단선적이거나 일원적이지 않습니다. 그들의 선조들이 대부분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미국으로 강제이 주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선조들의 문화적 뿌리를 계속해서 유지 해가기에는 그들의 생활환경이 너무도 열악했을 뿐만 아니라 너무 많은 세대가 흘러 그 들 고유의 문화에 대한 기억은 희미해졌을 수밖에 없습니다. 블루스는 오히려 아프리카 계 미국인들이 자신들의 본래적 음악 문화를 망각하는 지점에서 비로소 양식화되었습 니다. 곧, 블루스는 서구 문명인 산업화와 미국식 자본주의 문화에 적응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근대적 음악 양식입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 자신이 그 인종적 정체성의 뿌리를 아프리카의 자연 공동체에 두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산업화와 자본주의 문화에 동화된 도시민의 정체성을 갖고 있 듯이, 근대적 음악 양식으로서의 블루스 역시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이중적 정체성에 상 응하는 두 가지 핵심적 음악 요소에 의해 성립됩니다. 그것은 한편으로 비서구적이며 아프리카 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여겨지는 반음계적 혹은 미분음적 음으로서의 이 른바‘블루 노트(blue note)’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서구의 합리화된 기능 화성 (functional harmony)에 기초한 화음 진행 패턴입니다. 10 소리나는 인문학, 귀로 생각하기 다는 오히려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주었으며, 이후 파시즘의 폭력을 피해 유럽에 서 이주해 온 지식인과 예술가들로부터 유럽 문화의 세련된 유산을 손쉽게 전수받게 됩 니다. 미국에서 싹튼 대중문화 역시 상당 부분 유럽 본토에서 수입하여 윤색시킨 것이 었지만 차츰 나름의 고유한 색채를 갖게 됩니다. 20세기의‘대중음악(popular music)’이란 이렇듯 미국을 문화적 원천으로 삼는 음악을 말하며, 좀 더 과감하게 말하 면‘블루스(blues)’라는 양식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음악을 뜻합니다. 여기서 블루스는 다민족 국가로서의 미국의 가장 커다란 골칫거리인 인종 사이의 갈 등, 곧 인종 정치(racial politics)라는 문제와 태생적인 관련이 있습니다. 블루스라는 음 악적 양식이 자리하는 여러 다층적 맥락들이 있지만, 오늘의 강좌는 바로 이러한 인종 정치적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다루어 볼 생각입니다. 이 문제는 한국인의 음악문화와 음 악적 정체성을 성찰함에 있어서 시사하는 바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블루스는 가 장 속된 층위에서 이해되는 사교댄스를 위한 음악도 아니며, 좀 더 세련된 층위에서 이 해되는 즉흥적 기악 음악인 것만도 아닙니다. 블루스는 억압받는 유색인의 음악적 목소 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블루스는 곧 한국인들의 음악적 목소리이기도 할 것입니다. 20세기 내내 착각해온 사람들이 있지만 한국인은‘백인’이 아니라‘유색인’이니까요. 유색의 음조와‘블루스 피플’ ‘서구인’을 한정하는‘백인’이라는 말에서‘백(白)’이라는 말이 직접적으로 그들의 피부색을 가리키는 수식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붉은 빛에 가까운 피부도 있고 갈색에 가까운 피부도 있습니다. 결국‘흰색’이라는 이미지는 서구인의 피 부색 그 자체라기보다는‘배제의 논리로부터 면제되어 있음’을 가리키는 은유적 이미 지에 가깝습니다. 곧, 배제와 차별의 대상을 설정하는 인종 정치적 착색 행위의 주체를 가리키는 시각적 이미지입니다. 아프리카인들의 피부색이‘검은색’으로 규정된 것도, 동양인의 피부색이‘노란 색’으로 규정된 것도(한국인들의 피부색이 정말 노랗던가요?) 사실상은 그러한 착색 행위의 주체(서구인/백인)가 내린 편의적 선택의 결과입니다. 이렇듯 색조(色調)가 시각에 호소하는 정치적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처럼 음조(音 調) 역시 청각에 호소하는 정치적 이미지를 만들어 냅니다(실제로, 색조와 음조는‘톤 (tone)’이라고 하는 공통의 용어를 갖습니다). ‘블루스’라는 용어에도 유색인(colored 악보1. ‘세인트루이스 블루스’첫 12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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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서구음악에서 대중음악으로 면 모두 안정된 으뜸화음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화성적 효과는 뚜렷해집 니다. 덧붙여, 가사 내용과 관련하여 세 악절은‘a-a-b’의 형식을 갖게 되는데, 여기 서‘b’에 해당하는 세 번째 악절은‘a’의 반복되는 가사 내용에 대해 그 이유를 설명하 는 내러티브적 기능을 갖습니다. 이렇듯 블루스 음악의 화음 진행은 노랫말의 수사법적 배경을 이룰 뿐 서구 고전 음악에서 보이는‘긴장과 해결’의 선형적 플롯에서 벗어나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앞서 지적했듯이 블루스는 도시 문화를 기반으로 하여 양식화되었기 때문에 블루스에서 아프리카인들의 종족적 특성을 근원적으로 추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 니다. 초기 블루스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 사이의‘공유된 암호’로 기능해 온 것은 사 실이지만, 이러한 암호는 처음부터 서구 근대 음악 전통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화음진행이라는 아이디어는 철저히 서구 근대음악 전통의 산물입니다), 이후 초국가적 음반 산업의 세계적 유통망과 함께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 혼종되어 가면서 20세기가 마감될 즈음에는 사실상 전 세계인의‘공유된 암호’가 되었습니다. 결국, “미래의 음악 학자들이 1900년대의 음악 풍경을 회고한다면 우리 모두를‘블루스 피플(blues people)’, 곧 블루스 음악과 거기서 파생된 수많은 음악이 지배했던 시기에 살았던 사 람들로 규정하게 될 법하다”라고 했던 음악학자 수잔 맥클러리의 지적은 과장이 아닙 니다. 따라서 문제는 블루스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음악적 정체성을 얼마나 정확하게 대 변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러한 정체성을 나타내기 위해서 블루스 가 음악 문화적 생산의 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 활용되어 왔는가 하는 것입니다. 특히 20세기 초반 국가 정체성 확립에 고심했던 미국인들에 의해 블루스는 그들의 인종 정 치적 이념을 강화하기 위해 활용되었습니다. 그와 관련된 몇몇 의미 있는 문화적 생산 의 결과물을 브로드웨이 뮤지컬 작품들을 통해 읽을 수 있는데, 작곡가 제롬 컨 (Jerome Kern)의 <쇼 보트(Show Boat, 1927)>는 그에 대한 고전적 모델로 간주될 만 합니다. 뮤지컬‘쇼 보트’(1927)와 인종적 화해의 장치로서의 블루스 뮤지컬 <쇼 보트>의 시간적 배경은, 제도적인 노예 해방이 이루어졌지만 아직 흑인 12 소리나는 인문학, 귀로 생각하기 블루 노트는 온음계를 기준으로 했을 때 전형적으로는‘반음 내린 3음’과‘반음 내린 7음’이며, 그 밖에‘반음 내린 6음’과‘반음 내린 5음’등의 여러 반음계적 음들 역시 블루 노트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악보1>은 미국의 초기 블루스 음악을 대표하는 노래 ‘세인트루이스 블루스(St. Louis Blues)’에서, 반복되는 12마디 패턴의 첫 부분을 악 보로 옮긴 것입니다. 여기서 임시표가 붙은 음들, 예컨대 둘째 마디 가사의 음절‘de’, ‘sun’에 해당하는 음들이 모두 블루 노트입니다. 하지만, 블루 노트가 이론적으로 어 떤 음인지를 규정하는 것은 사실상 무의미합니다. 원래적 의미의 블루 노트는 오선보에 포착될 수 없는 비평균율적인 음들이며, 블루스의 음조는 사투리 음조나 억양으로 비유 할 수 있는바 오직 즉흥적 연주의 맥락에서만 의미를 갖습니다. 한국 전통 음악의 용어 법으로 말하자면, 블루스 음조란 곧‘블루스 쪼(調) 소리’혹은‘아프리카계 미국인 쪼 소리’인 셈입니다. 블루스의 패턴화된 화음 진행은 서구 음악의 기초적인 화음 진행 패턴(Ⅰ-(Ⅳ)-Ⅴ-Ⅰ)을 따르면서도 흑인의 집단 노동 체제에서 비롯된 노동요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습니 다. ‘세인트루이스 블루스’의 첫 12마디의 화음진행과 가사를 사례로, 전형적인 12마디 블루스 화음 진행 패턴과 내러티브 구조를 다음과 같이 제시할 수 있습니다. 노랫말과 형식을 함께 고려해 볼 때 블루스는 자연 공동체 민요의 일반적 특징인‘메 기고 받기(call and response)’의 구조를 보여줍니다. 각 악절에서 블루스 가수의 노 래는 전반부 두 마디를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이는‘메기기’의 형태를, 후반부 두 마디 는 즉흥적 기악 반주를 통해 표현되는‘받기’의 형태를 띱니다. ‘받기’에 해당하는 부 분들이, 반복되는 다음 악절을 준비하기 위해 딸림화음(Ⅴ7)을 이용하는 경우를 제외하

┌ 솔로 가수에 의한 메기기 ┐ ┌ 기악 반주에 의한 받기 ┐ �악절1 / Ⅰ / Ⅳ(또는 Ⅰ) / Ⅰ / Ⅰ7(Ⅳ의 Ⅴ)

(a) : I hate to see de ev'nin' sun go down

�악절2 / Ⅳ / Ⅳ / Ⅰ / Ⅰ (a) : Hate to see de ev'nin' sun go down

�악절3 / Ⅴ / Ⅳ(또는 Ⅴ) / Ⅰ / (Ⅴ7) (b) : 'Cause my baby, he done lef' dis t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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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서구음악에서 대중음악으로 품에서 가장 큰 인기를 얻은 노래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노래에서‘늙은 강’으로 의 인화된 미시시피 강은 그저 침묵할 뿐, 세상사의 일에 무관심할 뿐이며, 노래를 부르는 조 역시 그런 강의 모습을 닮고 싶어 합니다. 의인화된 강의 이미지는 부조리한 사회가 강요하는 줄리의 불행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 없는 흑인 주체의 체념적 태도를 의미하 며, 동시에 그러한 체념을 유도하는 미국 사회의 도도한 역사적 흐름을 은유합니다. 이 노래에서 그려지는 미시시피 강은 언뜻 초월적 관조자의 이미지로 느껴지지만, 실상은 환상을 실어 나르는 현실적 매체이기도 합니다. 미시시피 강을 따라 흘러가는 연예선, 그것은 미시시피 강을 따라 흐르는 아메리칸 드림입니다. 뮤지컬 <쇼 보트>가 그려내는 가장 휴머니즘적인 면모는 매그놀리아와 줄리 사이의 끈끈한 연대입니다. 매그놀리아는 줄리를 친언니처럼 사랑하고 줄리 역시 매그놀리아 를 친동생처럼 아낍니다. 줄리가 혼혈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도, 그녀에 대한 매그 놀리아의 존경과 사랑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습니다. 줄리 역시‘목화 호’를 떠난 후에 도 줄곧 매그놀리아의 행복을 빌며, 후에 래브날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을 때 매그놀리 아와의 재결합을 유도하기도 합니다. 줄리와 매그놀리아의 사랑과 우정은 인종적 화해 라고 하는 미국 사회의 당면한 정치적 문제에 대해 뮤지컬 <쇼 보트>가 제시하는 한 가 지 해답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해답 제시에는 정교한 음악적 장치가 담겨 있습니다. 작품 안에서 줄리가 흑인의 피가 섞인 혼혈인이라는 사실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 은 보안관이 공연중인‘목화 호’에 들어와 줄리를 체포하는 장면에 이르러서의 일입니 다. 하지만, 줄리의 인종적 정체성은 그 이전에 음악적으로 암시되는데, 체포 장면에 앞 서 줄리가 매그놀리아에게 불러주는 노래 속에 이러한 음악적 암시가 담겨 있습니다. 여기서 줄리가 부르는 노래‘그 남자를 사랑할 수밖에(Can't Help Loving Dat Man)’ 는 래브날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고백한 매그놀리아가 줄리에게 스티브를 사랑하는 이 유를 묻자 그에 대한 답변의 형식으로 제시됩니다. 이 노래의 인트로 부분의 가사는 다 음과 같습니다.

① 들어봐요 아가씨, 내가 내 남자를 사랑하는 건 말이야. 이유를 말할 수 없지. (Oh, listen, sister, I love my mister man, And I can't tell you why.) ② 왜 그를 사랑하느냐고 묻는다면 그저 이유가 없다 할밖에

(There ain't no reason For me to love that man - )

14 소리나는 인문학, 귀로 생각하기 과 백인의 갈등을 봉합시킬 전망을 가질 수 없었던 1890년경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미시시피 강 연안 도시 나체즈(Natchez)의 강둑에서 연예선의 무대가 펼쳐지는 것으로 극이 시작될 때, 이 무대는 현실로부터 유리된 초시간적 공간에서 펼쳐지는 미국 사회 의 꿈과 환상을 은유합니다. 극중 낭만적 도박꾼으로 설정된 남자 주인공 래브날은 이러한 꿈과 환상의 세계를 다 음과 같이 노래하며 등장합니다. “이 배가 거꾸로 흘러간들 어떠하리/ 폭풍에 실려간들 어떠하리/ 나는 내 환상에 몸을 맡길 뿐이지”. 그는‘목화 호’의 갑판에서 선장의 딸이 면서 배우 지망생인 여주인공 매그놀리아를 처음 만나 서로 사랑에 빠집니다. 이후 강 과 연예선을 떠나 시카고에 정착하여 시작된 이들의 결혼 생활은 래브날의 거듭되는 도 박과 함께 파경에 이릅니다. 이들의 사랑은 강을 따라 흘러가는 연예선 위에서만 유효 한 환상이었던 셈입니다. 이 뮤지컬에서는 또 한 쌍의 불행한 연인이 그려집니다. 흑인 혼혈이면서 백인의 피 부를 가진 여배우 줄리와 그의 남편 스티브입니다. ‘목화 호’가 나체즈에 정박한 직후, 줄리를 짝사랑해오던 선박 노동자 피트는 스티브에게 모욕을 당한 뒤 홧김에 줄리가 혼 혈인이라는 사실을 지역 보안관에게 신고해 버립니다. 줄리와 스티브의 결혼은 흑인의 피가 단 한 방울이라도 섞인 이는 백인과 결혼할 수 없다는 당시의 혼합 결혼 금지법을 어긴 것이었고, 결국 그들은 첫 공연이 있던 날 밤 연예선과 도시를 떠나게 됩니다(이후 이들 두 사람이 파경에 이르는 과정은 극 속에서 자세히 그려지지 않지만, 후반부에서 줄리를 알콜 중독의 폐인이 된 모습으로 등장시킴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그간의 사정 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줍니다). 줄리와 스티브가 연예선을 떠나는 장면에서 흑인 선원 조는‘늙은 강(O'l Man River)’을 부릅니다. 이 노래의 인트로와 전반부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미시시피라고 불리는 늙은 강이 있지/ 나는 그 늙은 강이 되고 싶어/세상이 고통을 겪 어도 그는 상관할 필요가 없지/ 세상이 자유롭지 못해도 그는 상관하지 않지/ 늙은 강, 그는 분명히 알고 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아/ 그저 흘러 흘러갈 뿐/ 그는 감자를 심 지도/ 목화를 심지도 않아/ 감자와 목화를 심던 기억은 곧 사라지겠지만/ 늙은 강은 계 속해서 흘러갈 거야/ ‘늙은 강’은 사실상 뮤지컬 <쇼 보트>의 주제 선율로 활용되고 있으며, 실제로 이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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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서구음악에서 대중음악으로 A’의 구조를 보여줍니다. 여기서, ‘A’에 해당하는 세 개의 악절들은 각각 가사 구성에 있어서 그 내부에‘a-a-b’의 축소된 블루스 형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때‘b’부분의 ‘lov-’와‘man’에 해당하는 음들이 각각 반음 내린 6음과 3음의 블루 노트들이기 때 문에 A 부분의 블루스적 느낌은 한층 강화됩니다. 요컨대 이 노래는, ‘짧은 클래식’으로 서의 특징을 가지는 백인 취향의 초기 틴 팬 앨리 양식과 흑인 취향의 블루스 양식을 혼 종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점은 <쇼 보트>의 극 전개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내포를 보여주 는데, 노래의 주인공인 줄리가 흑백의 혼혈인이라는 점, 이 노래를 통해 줄리와 매그놀 리아 사이의 인종적 벽을 넘어선 사랑과 연대감이 표현되고 있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2막에서 결혼 생활의 파경을 맞은 매그놀리아가 어느 술집의 가수가 되기 위해서 오 디션을 하게 되었을 때도 이 노래를 부릅니다. 우연히도 그 술집의 여가수로 있던 줄리 또한 이 노래 선율을 듣고 무대 뒤편에서 매그놀리아를 알아보게 됩니다(이때, 줄리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매그놀리아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소리 없이 그 술집을 떠나 고, 매그놀리아는 줄리가 사라진 덕분에 그곳의 여가수가 됩니다). 결국, 줄리와 매그놀 리아가 부르는‘그 남자를 사랑할 수밖에’는 가사 내용을 통해서는 두 사람이 각각 선 택한 무모한 사랑을 정당화하며, 음악적으로는 블루스라는 장치를 매개로 인종의 벽을 뛰어넘은 두 사람의 우정과 사랑을 그리고 있습니다. 뮤지컬 <쇼 보트>의 음악은 서유럽 낭만주의 음악의 전통적 관현악법과 블루스와 재 즈, 래그타임 등의 미국식 대중음악 어법을 적절하게 혼용하고 있습니다. 이 뮤지컬의 주제 선율들(‘늙은 강’, ‘그런 척 연기해요’, ‘그 남자를 사랑할밖에’등의 주요 선율 들)이 유도동기(leitmotif)적 쓰임새로 노래 선율과 배경음악을 넘나들며 작품 전체에 서 반복될 때, 그러한 선율들과 음조는 서사적 내용과 맞물려 인종 정치적 함의를 짙게 가집니다. 특히 백인과 흑인의 경계를 다루는 이분법은 극의 내용에 있어서나 음악적 내용에 있어서나 이 작품의 서사적 전략에서 핵심을 이룹니다. 요컨대, <쇼 보트>의 음악은 작품 내에서 무색의 음조와 유색의 음조를 구분하고 이 들의 화해를 이데올로기적으로 도모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화해의 이미지는 영화 <쇼 보트>의 마지막 장면이 그려주는 대로 궁극적으로는 기만적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 면에서 나체즈의 강변에 처음처럼 다시 정박해 있던‘목화 호’는 재결합한 매그놀리아 와 래브날을 태운 채 희망찬 새출발을 하며, 흑인 조 역시 마치 행복에 겨운 듯‘늙은 강’을 목청껏 부릅니다. 이와 함께, 나루터의 보이지 않는 한켠에서 초췌한 모습의 줄 리가 매그놀리아의 행복한 새 출발을 숨어 엿보면서 행복한 미소를 짓는 장면으로 영화 16 소리나는 인문학, 귀로 생각하기 ③ 이유가 있다면, 그건 분명 천사가 미리 계획을 짜놓았기 때문일 거야. (It must be somethin' that the angels done plan.)

이러한 인트로 형식은 표1의 블루스 화음 진행 패턴과 내러티브 구조를 그대로 따르 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노래 선율에도 전형적인 블루 노트들이 들어 있는데, 첫 번째 악절의 원어 가사‘sister’의‘si-’에 해당하는 음(반음 내린 7음), 두 번째 악절의 ‘that’(반음 내린 6음), 세 번째 악절의 가사‘angels’의‘-gel-’(반음 내린 3음)에 해 당하는 음들이 각각 전형적인 블루 노트들입니다. 세 악절이 내용상‘a-a-b’의 형식 을 띄고 있으며‘b’에 해당하는 세 번째 악절이 설명적인 기능을 한다는 점 역시 블루 스 패턴을 따르고 있습니다.

인트로에 이어지는 노래 역시 흥미로운 구조를 보여줍니다.

a: Fish gotta swim, birds gotta fly,

a: I gotta love one man 'till I die - A b: Can't help lovin' that man of mine.

a: Tell me he's lazy, tell me he's slow,

a: Tell me I'm crazy (maybe I know)- A b: Can't help lovin' that man of mine.

When he goes away, that's a rainy day,

But when he comes back that day is fine, B The sun will shine!

a: He can come home as late as can be,

a: Home without him ain't no home to me - A b: Can't help lovin' that man of m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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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인‘A-A-B-19 서구음악에서 대중음악으로 제‘무색의 음조’, 곧 서구음악은 더 이상 이러한 주류의 흐름을 앞장서서 이끌어갈 수 는 없지만, 여전히 블루스와 같은‘유색의 음조’들이 형성해내는 다양한 지류의 방향을 틀어 자신에게 합류되도록 하는 위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21세기에 새롭게 ‘늙은 강’을 노래해야 할‘유색의’한국인들이 <쇼 보트>의 흑인 조처럼 그런 강물을 그저 닮고 싶어 해야 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18 소리나는 인문학, 귀로 생각하기 는 끝납니다. 해피엔딩의 주인공은 매그놀리아일 뿐 줄리의 불행은 보상받지 못합니다. 줄리는 자신의 불행을 대가로 매그놀리아의 행복을 빌어주는 그림자 같은 존재일 뿐인 것입니다. ‘세계음악’이라는 이름의 연예선과 유색의 음조 대중매체 시대의 문화산업은 초국가적∙초민족적(transnational) 양상을 띠며 발전 해 왔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문화산업 발전의 정점에서 구상된 최신 음악 상품화 전략에‘월드뮤직(세계음악)’이라는 장르 명칭이 붙여진 것도 이해할 만합니다. ‘세계’ 음악이라는 명칭과는 어느 정도 모순적이지만, 그 전략의 내용은 각 지역 음악의 민족 적 색조 혹은 음조를 활용하고, 나아가 그러한 음조의 재생산을 요구하고 부추기는 것 입니다. 실상 월터 J. 옹이 말했던‘2차적 구술 문화’, 곧 대중매체와 기술적 재생 가능 성이 형성해낸 새로운 의미의 구술 문화는 처음부터 서구적 음조(기능화성적 음조)의 지배적 영향력에 저항하는 여러 다양한 지역적 음조의 형성을 가능케 했습니다. 다시 말해 초국가적 대중매체 환경에서 무색 음악에 대한 유색 음악의 잠재력이 키워졌으며,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블루스 음악 역시 그 해방적 가능성을 평가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중매체 시대의‘유색 음악’의 가능성은 양날의 칼을 가지고 있습니다. 블 루스 음악이 (20세기 후반 이후 백인에 의해 전유된 블루스 양식의 심각한 변용을 지적 하지 않더라도) 뮤지컬 <쇼 보트>가 초연된 1920년대에 이미 서구 음악에 대한 종속적 타자의 이미지로서 활용되고 있었음을 지적하는 것은, 가속화되는 글로벌 미디어 시대 의‘월드뮤직’환경에서 토착어 음악의 새로운 가능성을 전망하는 일에 비중 있는 참고 사항이 될 듯합니다. 요컨대, ‘월드뮤직’시장의 음악적 혼종 양상이, 균등한 거리를 취 하고 있는 바둑판 모양의 길 위에서 다양한 장르들이 서로 자유롭게‘크로스오버 (crossover)’하는 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보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것은 오 히려 중심점이 있는 방사형의 길로 묘사하는 편이 옳을 것입니다. 그 중심점은 물론 무 색의 음조, 서구의 음조입니다. ‘세계음악’이라는 이름의 연예선을 실은 강물은 <쇼 보트>의‘늙은 강’이 묘사하는 것처럼 그렇게 무심히 흘러갈 뿐인 것은 아닙니다. 그 강물은 서두에 지적한 바대로 20 세기 초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새롭게 형성된 대중음악의 주류를 따라 흐릅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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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소리나는 인문학, 귀로 생각하기 싱코페이션과 래깅, 그리고 스윙의 탄생 지난 강좌에서는‘유색의 음조’로서 블루스 양식을 다루었습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20세기의 대중음악적 흐름에서 블루스가 서구 전통의 음악에 대한‘타자(他者)’로 서, 즉‘서구음악이 아닌 것’으로서 이데올로기적으로 암호화된 측면에 대해 살펴보았 습니다. 이번 강의에서도 기본적으로 같은 이야기를 이어가려 하는데요. 지난 시간에는 음조, 즉 선율이나 화성의 측면에 역점을 둔 것이라면 이번 시간에는 리듬에 초점을 맞 출까 합니다. 우리가‘클래식음악’이라고 부르는 서구 근대 음악은 세계의 모든 음악 관습들과 비 교해 볼 때, 리듬의 빈약함이 두드러집니다. 이는 사실상 수직적 음조직인 화성을 정교 하게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빚어진 불가피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연주자의 입장에서건 작곡가의 입장에서건 리듬이 단순해야만 복잡한 화성을 쉽게 처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 다. 이에 따라 서구 근대 음악의 리듬 구조는 학교 음악시간에 배웠던 대로‘강-약-중 강-약’의 4박 리듬을 핵심으로 하면서‘강-약-약’의 3박 리듬을 양념으로 가지는 정 도가 사실상의 전부입니다. 이러한 리듬을 굿거리장단이나 세마치장단 등 한국 전통의 맛깔스러운 여러 장단들과 비교해 보십시오. 사정이 이렇다보니 비서구적 음악 관습을 가진 이들이 서구의 근대음악을 처음 접할 경우 그 화성적 짜임새에 감탄을 하면서도 리듬의 빈약함에 대해서는 실망할 수밖에 없

서구음악에서 대중음악으로(2) :

스윙의 시대, 뽕짝의 시대

최 유 준 | 동아대학교 21 서구음악에서 대중음악으로 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클래식음악은 적어도 리듬이라는 측면에서는‘김빠진 맥주’처 럼 들릴 것입니다. 결국 서구의 음악전통이 미국을 중심으로 한 대중음악적 흐름과 함 께 비서구의 음악 관습과 만나는 과정에서 일어난 중요한 현상 가운데 하나는 리듬 요 소의 강화였습니다. 이를 위한 기초적인 음악 기술적 전략은 음을 당기는 것, 곧‘싱코 페이션’을 쓰는 것입니다. 싱코페이션은 서구음악에서도 오래 전부터 써왔지만 기본적 리듬 패턴을 간섭하는 방식으로 본격적으로 쓰인 것은 19세기 후반 케이크워크(cakewalk)와 같은 흑인들의 댄스 리듬이 인기를 끌게 된 이후였습니다. 이러한 싱코페이션 전략은 일종의 즉흥연주 테크닉인‘래깅(ragging)’으로 발전해 갑니다. 이렇듯 래깅이 인기를 끌면서 20세기 초에는 미국의 흑인 작곡가 스코트 조플린(Scott Joplin, 1867-1917)으로 대표되는 ‘래그타임(ragtime)’음악이 하나의 양식적 구조를 갖추게 됩니다. 피아노 연주를 예로 들면, 래깅의 기본적인 리듬 전략은 왼손 반주가 4박자 혹은 2박 자의 기본적 리듬형을 고수하는 대신에 오른손 선율은 싱코페이션을 활용해서 엇박자 리듬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래그타임’음악 역시 상당부분 즉흥적 요소가 있지만, 악보에 씌어진 대로 연주하는 서구 낭만주의 음악 전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차츰 젤리 롤 모튼(Jelly Roll Morton)과 같은 급진적인 래그타임 연주자들이 더 자유로운 리듬을 추구하면서 래그타임의 즉흥성은 크게 확장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재즈(Jazz)’의 역사는 이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서구 백인의 관점에서 봤을 때‘래그타임’은 케이크워크 등의 흑인 음악적 요소를 받 아들인 것이 되지만, 반대로 흑인의 관점에서 봤을 때는 서구 백인 전통의 4박자 리듬과 화성을 받아들인 결과이기도 합니다. 미국 흑인들의 음악적 감수성에 4박자 리듬이 자 리 잡는 데에는 행진곡의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19세기에 금관 악기의 발명 과 개량이 이루어지면서 금관 악기를 중심으로 한 아마추어 밴드가 유럽과 미국의 각지 에서 결성되었고, 이들 밴드를 위한 행진곡 풍의 음악이 유행했습니다. 특히 미국의 남 북전쟁 기간에는 거의 모든 부대에서 군악대를 결성하여 부대원들의 사기를 높이고 여 흥을 즐길 수 있도록 했습니다. 남북전쟁 이후 1880년대까지 연주되던 밴드 수가 수만 개에 달했다고 하니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금관 악기 밴드 의 행진곡은 래그타임∙블루스 등의 음악적 요소와 더불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로 하여 금 새로운 기악 음악 양식으로서의 재즈를 발전시켜 가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재즈는 기본적으로 행진곡 풍의 4박자 리듬에 기반하면서도 그와 구별되는 좀 더 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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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서구음악에서 대중음악으로 했습니다. 요컨대, 1920년대와 1930년대를 거쳐 오는 동안 한국의 도시 음악문화는 오 늘날 우리가 겪는 문화와의 동질성을 어느 정도 획득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해볼 만한 점은 당시 식민지 조선의 도시 대중의 욕망이 향하고 있었던 미국화와 초기 세계화의 경향입니다. 실상 이 시기의 유행가에(나아가 신민요에까지) 습윤되어 있었던 미국화와 세계화의 요소는 관련 학계에서 간과되어 온 측면이 있습니 다. 훗날‘트로트’라는 장르 명칭으로 싸잡아 분류되었던 이 시기의 유행가는 일본 엔 카(艶歌/演歌)의 영향만이 아니라 미국의 재즈와 블루스, 나아가 당시 세계적으로 유행 하던 각종 댄스 음악 스타일의 영향을 두루 받았습니다. 당시 도시 음악 문화에서 미국 화 현상이나 초국가적 댄스음악의 영향은 다음의 노랫말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아가씨 범벅 도련님 범벅 흐르는 끝에 비치는 룸바 때깔스럽다 네온의 범벅 젊은이들의 숨쉬는 서울 데굴 데굴 데굴 데굴 범벅이 굴러간다. 아! 노래부르자 사랑의 룸바 목청이 깨지도록 하하하하 술집도 한 철 꽃집도 한 철 노래 부르자 범벅의 서울 윙크의 서울 히트의 서울 새로운 리듬 열정의 탱고 혼란스럽다 째즈의 범벅 젊은이들의 비끼는 서울 데굴 데굴 데굴 데굴 범벅이 굴러간다. 아! 춤이나 추자 사랑의 탱고 이 밤이 새기 전에 하하하하 웃음도 한 철 눈물도 한 철 춤이나 추자 범벅의 서울 인조견 범벅 란데부 범벅 날리는 테프 사랑의 왈츠 자랑스럽다 윙크의 범벅 젊은이들의 꽃피는 서울 데굴 데굴 데굴 데굴 범벅이 굴러간다. 아! 노래부르자 사랑의 왈츠 이 청춘 가기 전에 하하하하 잘나도 청춘 못나도 청춘 노래 부르자 범벅의 서울 [김인수 노래, ‘범벅의 서울’(오케 레코드, 1936), 가사 전문] 22 소리나는 인문학, 귀로 생각하기 기찬 리듬과 템포를 보여주었습니다. 재즈의 이러한 리듬적 성격을 가리켜‘스윙 (swing)’이라고 부릅니다. ‘스윙’을 정확히 정의내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만, 재즈 밴드의 드럼 주자가 두드리는 하이햇 소리를 연상하는 것이 도움이 될 듯합니다. 물론 재즈 연주자들이 스윙감이 있다 혹은 없다는 식으로 말할 때 그 의미는 훨씬 더 다 층적이고 미묘해집니다만, 매우 단순하게 말해 스윙 리듬은 4박 구조의 약박(두 번째 박과 네 번째 박)에 오히려 강세가 위치하는 엇박자의 리듬 구조를 뜻한다고 말할 수 있 을 것 같습니다. 행진곡 리듬을 역으로 바꾼 이와 같은 스윙 리듬은‘폭스트롯(fox-trot)’과 같은 사 교춤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여기서 묘한 역설이 만들어지는데요. 스윙은 그 태 생적 배경이 군악대의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는 전쟁터와 관능적 욕망이 꿈틀거리는 무 도회장의 어울리지 않는 결합에서 찾아진다는 것입니다. 스윙이‘비서구적 음악 전통 에서 비롯된 자유로운 음악 리듬’이라는 식으로 평가될 수만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 습니다. 2차 세계대전 발발 직후 이른바‘비밥’연주자들이 스윙에서 벗어나려 했던 이 유 역시 이와 관련 있다 하겠습니다. 스윙은 전장을 향한 군인들의 행진과 무도회장의 짝짓기를 위해 봉사하는 비루한 기능음악으로서의 멍에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실 상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사이의 기간은 스윙 리듬의 재즈가 사실상‘대중음악’ 그 자체로 인식될 만큼 큰 인기를 누리던 시기였습니다. 전쟁의 막간 짤막한 평화의 시 기, ‘스윙’은 그렇듯 전쟁의 광기 속에 춤바람 난 대중들을 위한 리듬이었던 것입니다. 식민지 조선의 유행가, 사교댄스 그리고 뽕짝 여기서 시선을 같은 시기 한반도로 옮겨와 보도록 하겠습니다. 간전기(間戰期) 일제 하 조선은 음악 문화적 맥락에서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의 음악문화 가 그 이전 시대와 확연히 구분되는 것은 무엇보다 음향 재생 기술과 관련한 음반 산업 의 발전과 매스미디어의 확산 때문입니다. 특히 1928년부터 도입된 전기녹음 기술은 유 성기음반의 재생 음질을 비약적으로 높여 놓았으며 이전까지 극장 흥행을 중심으로 형성 되어 있던 도시 대중의 음악 유통 메커니즘을 음반 유통 중심으로 재편하는 계기가 되었 습니다. 또한 1927년부터 방송을 송출하기 시작한 경성방송국은 1930년대에 이르러 전 국으로 확산되는 대중매체의 영향력을 발휘했으며 음악적 수용의 또 다른 매체로서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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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서구음악에서 대중음악으로 의 공통되는 리듬은 케이크워크나 래그타임, 폭스트로트, 나아가 스윙 재즈 등에서 기 원을 찾을 수 있는 댄스홀 문화의 산물이었습니다. 이는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사이의 기간 미국의 음반 산업을 중심축으로 초국가적 대중음악 문화가 형성되면서 공 유케 된 새로운 의미의 음악적 공통 관습(common practice)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 다. 뽕짝 리듬은 조선의 일본풍 유행가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이 시기 세계의 유행 가에 두루 적용되는 공통의 리듬이었던 셈입니다. 간전기의 세계는 너나 할 것 없이 춤 바람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식민조선의 어설픈 스윙 음반산업의 변두리 시장을 형성하고 있었던 식민지 조선의 유행가 속에는 일본풍으 로 변조된 스페인, 아르헨티나, 쿠바, 중국, 심지어 아랍의 음악 선율과 리듬이 담겨 있 었고, 이들 이국적 양식의 음악이 할리우드적 욕망에 실려 생산되고 수용되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인 녹음 시설 등을 결여하고 있었던 조선 음반산업의 취약성은 이러한 세계적 조류의 음악을 오직 일본이라는 매개체를 경유해서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제한 했습니다. 다음의 인용문에서 당시 음반산업의 취약한 현실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레코드 산업이 호황을 누렸지만 서울에 녹음실을 설치한 곳은 1937년 O.K 레코 드사(*오케 레코드사) 뿐이었고, 1940년대에, 포리돔(*포리돌), 콜롬비아 등이 간이 녹음실 을 설치했었으나 이때는 태평양전쟁에 휘말려 모든 물자 부족현상으로 인해 유명무실한 녹 음실이 되고 말았다. 아주 오랜 기록을 살펴보면 1907년경부터 한국의 명창들이 일본에 건 너가서 레코딩을 하기 시작, 1940년대 초기까지 레코드 제작을 위한 취입은 대개 일본에 건너가서 녹음했던 것이다. 더 중요한 사실은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한국 내에서는 레 코드 프레스 공장이 한 군데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1944년경 일본의 한 레코드 메이커가 레코드 프레스 공장시설을 한국으로 옮겨다 놓고 공장을 차릴 계획을 세우던 중 2차 대전 이 끝났다.1) 인용문에서 나타나듯, 조선의 음반기획자(당시‘문예부장’으로 불리던)가 유행가 또 24 소리나는 인문학, 귀로 생각하기 위의 노랫말에서 빈번하게 사용되는 영어 외래어는 당시 경성의‘모던보이’와‘모던 걸’이 품고 있던 욕망의 지향점을 알 수 있게 해주며, 인용에서 강조해둔‘룸바’, ‘탱 고’, ‘왈츠’등의 용어는 당시 사교댄스 문화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었음을 또한 방증합니다. 실제로 이 시기 유행가에 쓰인 음계에서 강한 일본풍이 느껴지는 경 우라 하더라도 관현악 편곡이나 리듬에서는 어김없이 사교댄스의 부수음악적 쓰임새를 의식한 댄스곡 리듬을 담고 있었습니다. 해방 후에까지 인기를 유지했던 이 시기의 유행가의 상당수가 폭스트로트 댄스곡 리 듬을 담고 있었다는 점은 이들 유행가가 훗날‘트로트’라는 별칭을 갖게 된 이유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시기의 댄스곡 리듬이 폭스트로트 스타일에 한정되지는 않았습니 다. 예컨대, 무용가 최승희가 부른‘이태리의 정원’(1936)과 남일연의‘눈물의 경부선’ (1937), 김해송이 이난영과 함께 부른‘연애함대’(1937), 김복진의‘애꾸진 달만 보고’ (1938) 등은 탱고 리듬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눈물의 경부선’의 경우 서주에 스페 인 작곡가 사라사테의‘찌고이네르바이젠’주제 선율이 삽입되어 있어 이국적 리듬이 나 선율의 혼성화된 쓰임새를 보여줍니다. 김해송의‘밀월의 코스’(1937) 또한 서주에 서부터 스페인 작곡가 말라츠의‘스페인 세레나데’를 차용하면서 스페인풍의 리듬을 깔고 있으며, 고복수의‘흑장미’(1937)와 김영춘의‘국경특급’(1939)과 같은 유행가에 서는 집시풍 혹은 러시아풍 리듬과 선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당시 중국의 국제 도시 상 하이에서 발달한 중국식 재즈의 영향 역시 이 시기의 유행가에서 발견되는데 김정구의 만요‘왕서방 연서’(1938)가 대표적입니다. 한편, 가수 이난영은 대표곡‘목포의 눈물’(1936)로 전형화된 로컬한 이미지와 달리 당시 유행가의‘미국화’를 리드해간 국제적 음악 감각의 소유자이기도 했습니다. 미국 작곡가 포스터의‘오 수잔나!’선율을 차용하고 직접 삽입되기도 한‘명랑한 젊은 날’ (1936)에서‘오케이’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모습도 그렇거니와, 중일전쟁 기 간 일본의 블루스 음악 유행의 영향을 받은‘바다의 꿈’(1939)과‘다방의 푸른 꿈’ (1939), 나아가‘항구의 붉은 소매’(1940)로 이어지는 재즈 블루스 스타일의 곡들에서 ‘미국화’의 면모가 잘 나타납니다. 김해송의‘풍차 도는 고향’(1938)과 같은 노래에서 는 노랫말에서‘낙타’, ‘사막’등의 단어가 등장하면서 아랍풍의 선법을 사용하기도 합 니다. 일제하 조선에서 댄스홀 경영은 총독부 당국에 의해 제도적으로 금지되어 있었지 만, 도시 곳곳에서 성업했던 카페를 중심으로 유성기 음반 재생을 통한 사교댄스 문화 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습니다. 훗날‘뽕짝’으로 비하하여 일컬어지는 이 시기 유행가 1) 황문평, 「한국대중연예사」, 서울 : 부루칸모로, 1989, 3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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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을 넘어선 음악

이 희 경 | 한국예술종합학교 26 소리나는 인문학, 귀로 생각하기 는 신민요 가수를 발굴하면 일본으로 함께 건너가 그곳 녹음실에서 현지의 음악인들과 협업 형태로 녹음을 하는 게 당시의 일반적인 음반 취입 관행이었습니다. 이러한 음반 녹음 관행이 만들어낸 일본에 대한 기술적 의존도 문제거니와 일본 현지 녹음 과정에서 반주를 담당한 밴드의 연주나 편곡 등 일본 음악인의 간여가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이 시기 유행가를 들어보면 가수의 노래 선율과 밴드의 반주 사이에 적절한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당시 음반산업의 식민적 구조가 초래한 임시변통적 녹음관행의 필연적 결과로 분석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음반산업의 토대적 구조가 매우 부실한 상태에서 음반 매체를 통한 도시 음악문화가 급속하게 형성 되고, 초국가적 양상을 띤 이들 매체를 통해 일본을 경유한 외래의 문화가 홍수처럼 밀 려들어 오면서, 당시 조선의 도시민들은 갓 형성된 세계의 대중문화 지형과 관련하여 ‘외부(글로벌)’에 대한 상상력만을 확장시킨 채 자신이 자리 잡을‘내부(로컬)’의 한 지 점을 명확히 포착하지 못하거나 외부로 확장된 문화적 시공간을 바라보는 주체적 시선 을 적절하게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1930년대의‘신민요’는 이러한 유행가의 문제점에 대한 대안 찾기의 탈식민적 시도 로서 안출되었지만 유행가에 투사된 식민적 근대의 욕망이 갖는 파행성으로부터 자유 로울 수는 없었습니다. 여기서‘신민요’가 극복하고자 했던 음악 양식이 양악, 곧 서구 클래식 음악이나 서구식 성악곡으로서의 창가였다기보다는 이른바‘레코드음악’으로 서의 유행가였다는 점을 강조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신민요’라는 장르 자체가 1930년 대 중반에 이르러 당시의 음반 산업을 매개로 넓은 의미의‘유행가’의 인기에 대응하기 위한 상업적 전략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다국적 음반 산업의 주변부 시장에 불과 했던 식민지 조선의 현실에서, 더구나 작사와 작곡, 노래를 제외한 오케스트라 편곡과 연주, 그리고 녹음과 관련된 제반 상황을 상당 부분 식민 본국의 일본인에게 내맡길 수 밖에 없었던 열악한 기술적 한계에서 행해진‘신민요’실험은 음반 구매층 확대라는 문 화산업적 요구 이상을 달성하기 어려웠던 게 사실입니다. 결국 식민지 조선의 도시 대중들 속에서 조선 전통의 리듬은 제 자리를 잡지 못한 채 어설프게 흉내 낸 스윙 리듬이 그들의 감수성을 대신 사로잡게 됩니다. 파격적으로 들 릴지 모르지만, 일제하 조선의 유행가에서(그리고 이후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뽕짝’ 리듬이란 사실상 식민지 조선의‘스윙’이었습니다. 그것은 전쟁과 제국주의, 새로운 근 대적 욕망에 둘러싸인 채 부유(浮游)하는 파행의 리듬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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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음악을 넘어선 음악 지금 여기, ‘음악’의 표상 여러분은‘음악’이라는 말에서 무엇을 떠올리시나요? 누구나 자신의 경험 세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음악’에 대한 표상이 사람들마다 제각각 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누구에게는 베토벤이나 말러의 교향곡이 최 고의 음악이겠지만, 누구에게는 판소리 <심청가>나 거문고 산조만큼 깊이 있는 음악은 없을 것이며, 누군가에게는 U2나 서태지의 음악이 지고의 가치를 지닌 것이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명상적인 인도 라가 음악이야말로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것일 수 있으 니까요.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여기, 21세기 대한민국에서‘음악’이라는 단어에 담긴 지배적 표상은 여전히 18-19세기 서양 예술음악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물놀이나 민요는‘전통 음악’으로, 원더걸스와 빅뱅의 음악은‘대중음악’으로, 포르투갈의 파두나 아르헨티나 의 탱고는‘월드뮤직’이라는 수식어로 명명되고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음악적 문화 권력의 핵심에 놓인 것이 이른바‘클래식’이라 불리는 18-19세기 서양 예술음악이기 때문입니다. 100년 전으로 한번 돌아가 봅시다. 1909년 한반도에서는 어떤 음악이 들려지고 있었 을까요? 아마도 그 당시 우리 선조들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음악적 경험을 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100년 전에는 전혀 접해보지 못했던 종류의 음악을 오늘날 우리는 너무 이 희 경 |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

을 넘어선 음악 :

20세기 현대음악의 탈근대적 경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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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음악을 넘어선 음악 고자 하며, 이를 다섯 개의 담론을 통해 구성해보고자 합니다. 첫째, 조성과 탈조성의 문제. 18-19세기 서양 예술음악은‘조성’이라는 확고한 음악 어법을 토대로 하여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17세기 형성되기 시작하여 18세기에 확립 되었고 19세기를 거쳐 엄청난 음악적 표현가능성으로 자리 잡은 조성(tonality)은 서양 예술음악의 근대적 지반이라 할 만한 것이었지요. 그런데 그‘조성’이라는 확고한 체계 안에서 그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균열이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은 어찌 보면 음악적 표 현가능성의 확장이라는 내부로부터 제기된 필연적 결과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조성적인 질서의‘외부’를 사유하기 시작하면서 더욱 촉발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 외 부란 드뷔시에게는 가믈란 음악일 수 있고, 버르토크에게는 발칸 지방의 농민음악일 수 있겠지요. 둘째, 박절에서 해방된 리듬의 문제. ‘조성’이 서양 근대음악의 음조 체계였다면, ‘박 절’은 그것의 시간 구성 원리였다 할 수 있습니다. 근대적인 박자체계로 정착된 박절적 시간구조가 전체 악곡에 통일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은 조성과 비슷한 시기인 17세 기에 이르러서였습니다. 강세의 주기적 반복에 기초하는 박절이 음악적 시간의 척도가 되어, 모든 음악은 4/4, 3/4, 6/8 등의 박자를 통해 척도적 단일성을 갖게 되지요. 이 때 리듬은 척도로서의 박자에 규정된다는 점에서 박절적 리듬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18-19세기 음악에서 리듬은 박절을 배제하고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20세기 작 곡가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 박절적 척도를 무력화시켜버리고, 그로부터 해방된 자유 로운 흐름의 리듬을 탐색해가기 시작합니다. 셋째, 음악적 소리와 비음악적 소리의 문제. 탈조성이나 비박절적 리듬 같은 문제의 식이 근대적인 음악 체계 내부를 균열시키며 등장한 것이었다면, 흔히 '소음'이라 불리 는 비음악적 소리, 혹은 평균율로 코드화된 12음들 '외부'에 있는 수많은 소리들을 사유 하기 시작한 것은 서구 예술음악이 놓인 지반 자체를 근본적으로 뒤집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세기 현대음악의 역사는 '새로운 소리'를 탐색해가는 과정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렇게 근대적인 음악의 외부를 사유하는데, 비서구 음악의 독특한 음조 체계와 전자적 소리발생 장치를 통한 매체의 발전이 그 촉발제가 되었음은 충분히 짐작가능한 일이지요. 넷째, 주체의 종말이라는 의식. 베토벤으로 상징되는 근대적인 예술가는 소유자로서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를 펼쳐가는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입니다. 궁정이나 교회에 예 속되지도 않고 창조적 예술 그 자체로서 최고의 권위를 부여받는 존재인 것이지요. 물 30 소리나는 인문학, 귀로 생각하기 나 자연스럽게 향유하고 있으니, 20세기에 벌어진 문화적 변용과정은 가히 상상을 초 월한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20세기의 이런 급격한 문화 변동은 비단 동아시아 에서만 벌어진 일은 아니었습니다. 전 세계가 엄청난 사회 문화적 격변을 겪었고, 20세 기 예술 전반이 그러하듯 음악 역시 과거 어느 세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근본적인 변화를 맞게 됩니다. 20년 정도 더 과거로 가볼까요?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청년 드뷔시는 저 멀리 인도네시아에서 온 낯선 가믈란 악단의 음악을 처음 접하고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받았 습니다. 아마도 이 충격은 한반도에서 조선인들이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유입된 찬송 가 소리를 처음 듣는 만큼이나 강력한 것이었을 겁니다. 그 즈음 다음 세기 음악계의 지 형에 혁명적인 지각변동을 일으키게 될 테크놀로지의 발전도 시작되었습니다. 시간 속 에서 흘러지나가는 무정형의 소리를‘저장’한다는 발상(축음기의 발명)은 회화에서 사 진의 도래만큼이나 획기적인 것이었지요.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비서구 문화의 접속과 함께 20세기 현대음악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두 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도전과 모색, 창조적 변이의 선들 20세기 현대음악은 흔히 낯설고 어렵게만 이해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생겨난 배경과 사회 문화적 맥락을 들여다보면, 단순히 복잡한 음들의 질서만이 아니라, 그 소리에 담긴 작가의 문제의식과 시대정신을 읽어낼 수도 있습니다. 영문을 모른 채‘듣기 괴롭다’고만 느껴졌던 음악들도 그것이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를 이해하 고 나면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날카로운 불협화음이 아름답게 들리지는 않겠지만 말입니다. 20세기 벽두부터 이른바‘클래식’음악이라 불리는 18-19세기 서양 예술음악의 표 상은 균열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음악’의 경계는 끊임없이 새롭게 도전받았습니 다. 20세기 현대음악은 바로 이전 시대의 관습에 대한 대결과 도전의 역사라 해도 과언 이 아닙니다. 이미 주류로 정착되어버린, 그래서 더 이상 창조적인 변화를 용인하지 않 는 지배 질서에 균열을 가하며, 그를 통해 새로운 변이의 선을 그려가는 것, 바로 이 점 이 20세기 현대음악을 이해하는 아리아드네의 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강의는 이처럼 18-19세기 음악에 대한 비판적 도전과 새로운 모색을‘탈근대’라는 관점에서 접근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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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음악을 넘어선 음악 있습니다. 중세 때에는“악마의 소리”라 불렸던 이 음정은 조성음악에서 중심 역할을 하는 5도와 달리 조성의 중심을 전혀 느낄 수 없게 하는 특성을 지닙니다. 말하자면 그 것은 뭔가 기괴하고 어디로 진행될지 알 수 없는 그런 음정인 것이지요. 그런 증4도의 음정을 오르내리다보면 이 선율의 소속(조성)이 무엇일지 전혀 예측이 안 됩니다. 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 선율에 서로 다른 여러 조성의 화음들이 결합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선율이 갖는 조적 모호성 때문이지요. 이 모호함은 조적 중심에서 출발하여 그 로부터 벗어난 후 다시 조적 중심으로 돌아오는 위계구조적인 조적 체계, 클라이맥스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목적론적인 방향성을 지닌 조성음악의 지반을 가볍게 날려버리 는 것이었습니다. 파리 콘서바토리에서의 학창 시절, 드뷔시가 화성법을 무척이나 싫어 했음은 잘 알려진 얘기인데요. 그에게는 어떤 화음에서 어떤 화음으로 진행되는 화성법 의 규칙이나 기능이 아니라 개별 화음들이 갖는 고유한 색채감이 중요했습니다. 특히 가믈란 오케스트라에서 들었던 색다른 음향이 조성과는 전혀 다른 음조 체계에서 나오 는 것임을 간파한 후로는, 서양 오케스트라 내에서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음향을 만들 어내기 위한 수많은 실험들을 했지요. 이처럼 조성 음악의 지반 위에서 벌어지기 시작한 균열은 1908년에 이르러 본격적인 양상으로 나타납니다. 미국 작곡가 찰스 아이브스가 쓴 <대답 없는 질문>은 이런 당시 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작품인데요. 이 작품에는 세 부류의 성부가 등장 합니다. 시종일관 변화 없이 아주 여리게 조성적인 3화음을 연주하는 현악 성부 위에, 조성도 무조도 아닌 선율로 덤덤하게 질문하듯 연주하는 독주 트럼펫, 그리고 이 질문 에 답하듯 등장하는 플루트(혹은 목관) 4중주. 항시 같은 음조로 등장하는 독주 트럼펫 과 달리 플루트 4중주는 나올 때마다 점점 템포도 빨라지고 텍스처도 복잡해지며 마지 막에는 아주 신경질적으로 날카롭게 소리 지르듯이 나옵니다. 이 모든 일이 벌어지는 동안 현악 성부는 조용히 3화음만 연주하고 있지요. 트럼펫이 마지막 질문을 던진 후까 지도 말입니다. 아이브스에게 이 작품은“천년을 이어온 존재에 대한 질문”을 다룬 것 이었다지만, 다음 세대 작곡가이자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에게는 그것이“조성적 갈 등에 대한 생생한 묘사”로 보였습니다. 조성적인 것과 무조적인 것이 전혀 별개의 세계 인 양 나오면서, 그 두 세계를 조성도 무조도 아닌 듯한 트럼펫 선율이 이어가고 있으니 까요. 같은 해 작곡된 아르놀트 쇤베르크의 op. 10 <현악사중주 2번>은 조성음악의 위기를 더욱 극적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f#단조로 시작되는 이 작품의 3, 4악장에서 쇤베르 32 소리나는 인문학, 귀로 생각하기 론 이러한 예술가 상(像)이 낭만주의적으로 채색된 허구적 이데올로기인 측면이 없지는 않지만, 근대적 음악문화의 핵심에 절대적 존재로서의 작곡가와 그의 분신이라 할 완결 된 작품이라는 관념이 자리 잡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20세기에 이르면 이러한 창작 주체로서의 작곡가라는 존재, 악보 자체가 절대시되는 작품에 대해 근본적 으로 의문을 제기하는 시도들이 등장합니다. 존 케이지의 수많은 작업들이‘작곡가’와 ‘작품’으로 지탱되던 근대적인 음악문화의 지반 자체를 통렬하게 비판한 것이었다면, 1950년대 대두된 음렬주의 작곡 방식은 아이러니하게도 작곡가들 스스로 창작의 주체 라는 관념을 무력화시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음악’의 경계에 대한 질문. 아시다시피 20세기는 어느 시대보다 인류 문명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때입니다. 특히 테크놀로지의 발전에서 야기된 새로운 환 경은 예술의 지형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전자 장치에 의한 새로운 소리 생성 매 체의 등장, 비서구의 음악관에 대한 관심은‘음악’에 대한 관념 자체를 새롭게 사유하 게 만들었고, 근대적인 장르 구분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다양한 예술적 실험들은 ‘음악’이라는 영역에 다양한 변이의 선을 그려나가게 했습니다. 그리하여‘음악’의 경 계는 끊임없이 확장되기도 하고 어느 순간 사라져버리기도 하며 또 다른 지점에 세워지 기도 했지요. 이제 20세기 현대음악이라는 낯설지만 흥미진진한 세계를 위의 다섯 가지 문제의식 을 따라 탐색해볼까요? 조성과 탈조성 감미로운 독주 플루트의 인상적인 선율로 시작되는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 전주곡 >(1894)을 아시지요? 몽롱하고 모호한, 그야말로 오후의 나른함을 전해주는 곡인데요. 한국의‘클래식’애호가들 중에도 드뷔시 음악을 좋아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탄탄 한 형식 구성과 장대한 파토스로 가득 찬 브람스나 말러의 교향곡에 비한다면, 드뷔시 의 음악은 그야말로 심심하고 밋밋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많은 음악학자들이 이 곡을 20세기 현대음악의 출발로 삼곤 합니다. 왜일까요? 그건 이 곡에서 느껴지는 바 로 그 모호함의 실체 때문입니다. 곡을 시작하는 독주 플루트의 아래위로 오르내리는 선율은 증4도(c#-g)에 기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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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음악을 넘어선 음악 에서 자신들이 상상하는 소리 세계를 표현하기 위한 의식적, 무의식적인 결과였는지도 모릅니다. 작곡가 개개인들이 느끼는 정도와 그 해결 방식이 달랐을 뿐. 이후로도 20세 기 작곡가들은 조성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를 끊임없이 제기했습니다. ‘조성’이라는 음악의 지반을 벗어나지 않더라도 그 속에서 어떻게 현재의 모습을 담아낼지 고민했고, 탈조성의 대표적 형태인‘12음 기법’을 사용할 때에도 그것이 어떻게 조성음악이 지닌 탁월한 음악적 구성력을 대체할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어쩌면 조성과 탈조성은 21세 기 오늘날에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작곡가들의 중심 화두인지도 모릅니다. 박절이라는 척도를 넘어 음대 학생들에게 현대음악 연주에서 어려운 점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박자에서 벗어 난 불규칙적이고 복잡한 리듬이라 답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변박도 심하고, 악보에 표 시된 박자 표시 자체가 무의미한 프레이징에다 지나치게 세분화된 리듬 때문에 골머리 를 썩이기도 하며, 때로는 시간적 분절이라기보다 공간적 배치라 느껴질 정도로 점점이 떠다니는 듯한 것도 있지요. 이렇게 근대적 의미의 박절적 시간구조에서 벗어난, 마디 박자에서 해방된 리듬이야말로 18-19세기 음악과 확연히 구분되는 20세기 현대음악 특징의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리듬 혁명의 도화선이 된 작품이 그 유명한 <봄의 제전>입니다. 어느 작곡가에게 나 출세작이나 대표작은 있게 마련이지만, <봄의 제전>만큼 그 영향력이 압도적인 경우 도 흔치 않습니다. 서른에 쓴 곡의 유명세 덕분에 이후 60년간 쓴 나머지 작품들이 상 대적으로 큰 주목을 받지 못한다면, 작곡가로서는 무척 안타까운 일일 겁니다. 하지만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은 그만큼 후세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걸작이었던 거죠. 역동적인 리듬과 폭발적인 에너지를 분출시키며 새로운 시대를 예감케 한 이 작 품에는 근대적인 박절 체계를 무너뜨리는 다양한 종류의 리듬 작법들이 등장합니다. 먼저 곡을 여는 도입부의 파곳 독주를 떠올려 봅시다. 자유롭게 흘러가는 이 선율의 악보를 보면 거의 마디마다 박자기호가 다릅니다. 하지만 여기서 4/4, 3/4, 4/4, 2/4, 3/4 등의 박자들은 본래의 박자감을 불러일으키기는커녕, 마디선과 불일치하는 프레이 징과 늘임표 등으로 인해 아주 자유롭게 흘러가는 시간구조를 만들어냅니다. 박자가 존 재하지만 부유하는 리듬에 의해 박절감이 모호해지는 것이지요. 이러한 비박절적인 리 34 소리나는 인문학, 귀로 생각하기 크는 아예 조성음악을 떠나기로 작정한 듯, 조성적 중심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버리고 맙니다. 흥미롭게도 이 곡의 4악장에서 노래되는 슈테판 게오르게의 시“나는 다른 혹 성의 공기를 느낀다.”는 쇤베르크 자신의 예술적 고백처럼 들립니다. 실제로 이 작품 이후 쇤베르크는 이른바‘무조’음악의 세계로 나아갔지요. 쇤베르크 자신은‘무조’라 는 명칭이 주는 부정적인 어감 때문에 이 말을 무척이나 싫어했다지만 말이에요. 쇤베 르크의 무조 음악은 우리 귀에 거슬리는 불협화음들이 너무 많이 등장하여 듣기 거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 자체로 강한 표현성을 지닙니다. 흔히 쇤베르크의 무 조 음악을 표현주의와 연관 짓곤 하는데요. 에두아르트 뭉크의 <절규>나 오스카 코코슈 카의 그림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모네나 세잔의 그림처럼 집에 걸어두고 감상하기에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강렬한 내면의 모습이 직설적으로 드러나고 있지 않습니까? 쇤베 르크의 무조 음악도 그와 같은 것이라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굳이 듣고 싶 지 않은 추악한 현실, 은폐된 무의식의 세계를 소리로 그대로 표출한 것이었다고 말입 니다. 쇤베르크의 불협화음들로 가득 한 무조 음악은 바로 그 자신이 느꼈던 세상의 진 실, 그의 내면을 표현하기 위한 필연적인 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다른 한편 헝가리 작곡가 벨라 버르토크는‘농민음악’이라는 예술음악의‘외부’에 존 재하는 전혀 다른 영역과 접속하며 탈조성의 길을 찾아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05년 헝가리 농민음악을 처음 접한 그는 졸탄 코다이와 함께 민속음악 연구에 매진하지요.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그가 단순히 자신의 창작의 재료를 찾아가는 과 정에서 민속음악을 연구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는 산업화의 과정에서 사라져가 는 농촌 문화를 접하며 그들의 삶이 온전히 묻어나는 노래에서 진정한 음악의 가치를 보았고, 상업화되고 통속화된 민요들과는 전혀 다른, 간결하면서도 아주 복잡 미묘한 음악적 표현 가능성에 크게 매료되었습니다. 그는 농민음악 연구를 통해 조성 너머에 있는 민요적 불협화음의 무한한 표현성에 주목했고, 이를 피아노곡 <14개의 바가텔 >(1908) 같은 작품 속에 녹여냈습니다. 오랜 기간 구전으로 전해지는 민요는 더 이상의 군더더기가 필요 없을 정도로 간명하고 소박하면서도 그 자체 완벽한 음악적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또한 이들 민요에서 사용되는 장단조의 체계로 포섭되지 않은 미세하게 비 껴가는 음들은 조성이 담보하지 못하는 새로운 음조이고요. 농민음악을 통해 버르토크 는 쇤베르크와는 전혀 다른 행보의 음악적 불협화음을 구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20세기 초 작곡가들은 상이한 배경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들의 음악적 사 유와 어법을 규정짓던 틀인‘조성’에서 벗어나고자 했는데요. 급격히 변화하는 시대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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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음악을 넘어선 음악 스트라빈스키에 이어 20세기 최고의 리듬 연구가라 할 올리비에 메시앙이 서양음악 의 리듬 체계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종류의 리듬에 눈을 뜨게 된 계기는 흥미롭게도 파 리 콘서바토리 학창 시절 수업자료에서 접한 인도음악의 리듬이었다고 합니다. “deci tala”라 불리는 비대칭적 박절로 된 13세기 인도의 리듬 패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여러 가지 새로운 형태의 리듬을 창안해냈는데, 짧은 음가를 다양한 방식으로 부가하 는“첨가가치를 갖는 리듬”, 앞으로 읽으나 뒤로 읽으나 동일한 거울대칭적인 리듬 형 태의“비역행리듬”등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리듬들은 악보로 볼 때는 분명하게 그 특징이 드러나지만 실제 귀로 확인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짧은 단 위의 음가들이 늘었다 줄었다 하면, 박절적 느낌은 전혀 감지하지 않고 오히려 매우 불 규칙적인, 독특한 시간 흐름으로만 지각되거든요. 또한 앞뒤 대칭적인 리듬은 음악에 뭔가 정적인 느낌을 부여하면서, 시간의 흐름이라기보다 마치 공간 속에 소리들이 조 각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합니다. 근대적인 박절체계를 벗어나는 또 다른 방식은 서로 다른 시간구조들을 동시에 병치 시키는 것입니다. 하나의 시간구조가 아닌 여러 층의 시간구조가 중첩되면, 하나의 방 향으로 나아가며 점증하는 역동성 대신 부유하듯 흘러가는 인상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18-19세기 음악이 하나의 박절에 의해 전체 성부가 움직이면서 한 방향으로 클라이맥 스를 향해 나아가는 목적론적 시간이 특징이었다면, 20세기 음악은 차라리 캔버스 위 에 병치된 음향들처럼 정적인 경향을 보여주곤 합니다. 예컨대 <봄의 제전> 1부의 62-65마디를 보면 10-13개의 시간진행이 동시에 등장하는데, 그것들이 뒤섞여 마치 거대 한 시간 흐름에 입체감이 부여된 것 같은 인상을 만들어내지요. 이러한 시간적 다층성 은 음악의 흐름에 끊임없이 새로운 청취시점들을 요구하게 됩니다. 마치 피카소의 입 체파 그림들처럼 말입니다. ‘조성’과 나란히‘박절’에서 해방된 20세기 현대음악은 18-19세기 음악에서는 찾아 보기 힘든 자유롭고 색다른 리듬과 시간 구조를 통해 새로운 음악적 시공간을 체험하 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박절이라는 척도에서 벗어나는 것이었지만, 점차 다양한 비서 구 음악에서 아이디어를 얻거나 혹은 전자 음향 같은 새로운 매체로 인해 시간 흐름을 분절하는 다양한 방식들이 시도되어갑니다. 36 소리나는 인문학, 귀로 생각하기 듬은 1부의 두 번째 곡 “봄의 싹틈과 소녀들의 춤”에서 더욱 두드러집니다. 20세기 음 악사 책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아주 유명한 리듬 패턴이지요. 이 원초적이고 강렬 한 리듬은 규칙적으로 박동하는 8분음들 위에 불규칙적인 강세가 붙여짐으로써, 본래 의 2/4박자와는 상관없는 전혀 다른 리듬패턴을 만들어낸다는 데 그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리듬적 일탈이야말로 야만적 제의를 다루는 이 작품의 분출하는 에너지를 탁월하게 형상화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이렇게 강세를 이동시키거나 불규칙하게 배치함으로써 규칙적인 박절감을 지양하는 것은 스트라빈스키 이후 20세기 현대음악에서 매우 애용되는 리듬 작법입니다. 한 예 로 바르토크의 <현악사중주 4번>(1928) 4악장“알레그레토 피치카토”를 보면, 3/4박자 로 기보되어 있긴 하지만 불규칙적 강세로 인해 본래의 박절감은 무력화되지요. 오히려 이 불규칙성이 곡에 더욱 뚜렷한 긴장감과 활력을 불어넣습니다. 이러한 극적 긴장감은 <봄의 제전>의 마지막 곡“희생의 춤”에서 절정에 달합니다. 마침내 제물로 선택된 처녀가 죽을 때까지 춤을 추는 이 장면에서는 강렬하게 폭발하는 듯한 리듬이 무질서하다싶을 정도로 정신없이 전개됩니다. 악보를 보면 3/16, 2/16, 2/8, 2/16 박자 등이 교차되면서 강세도 불규칙적으로 등장합니다. 척도여야 할 박자가 이토록 빈번하게 빠른 템포로 변화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척도로서의 역할을 하지 않 는다는 의미겠지요. 오히려 박자는 짧은 한 두 개의 리듬에서 한 음을 더하거나 빼는 방 식으로 이루어진 음가들의 자유로운 그루핑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올리비에 메시앙의 <크로노크로미> (1959/60)에서도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있습니 다. 이 작품의 번째 곡“Antistrophe I”의 중간부분을 보면 2/16, 4/16, 3/16, 2/16, 2/16, 3 2 2/32 등 마디마다 박자기호가 달라집니다. (3 2 2/32라는 이상하게 생긴 박 자표시는 한 마디에 32분음 7개가 3+2+2로 그루핑 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박자표 시는 16분음 혹은 32분음의 짧은 단위음가들이 하나씩 늘어나거나 줄어들면서 불규칙 적인 시간 분절을 만들어내는 수단에 불과합니다. 이는 전통적인 서양음악의 리듬 체 계와는 낯선 새로운 시간 분절 방식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중세 이래 서양음악이 박자 나 단위박을 동일한 시가로 나누는 분할리듬의 체계를 채택했다면, 민속음악이나 비서 구 음악에서는 최소 단위의 음가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더해지는 부가(additive) 리듬 의 형태가 지배적입니다. 메시앙은 바로 이 부가 리듬의 방식을 도입함으로써 근대적 인 박절체계에 기초하는 분할 리듬과는 전혀 다른 리듬 체계를 사유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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