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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장과 지산겸괘(地山謙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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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혜장 상인에게 주다」라는 시의 끝 대목에는 “원컨대 그대 겸광(謙光)을 펼치시게 나, 어이 힘을 추이(推移)에다 허비하리오(願汝流謙光, 推移詎費力)”라는 구절이 나온다. 여 기에서 ‘겸광’이라는 말은 주역 15번째 지산겸괘(地山謙卦) 「단사」에 나오는 ‘겸존이광(謙 尊而光)’을 줄인 표현이다. 이는 존귀한 이가 겸손의 덕을 갖춰 빛을 발하는 모습을 일컫는 다. 혜장은 지기를 싫어하고, 한번 옳다고 생각하면 좀체 고집을 꺾는 법이 없었다고 알려져 왔다. 또한 그는 주역의 점치는 법에 지나치게 몰입하여 괘상의 추이를 익히는 데 많은 노 력을 기울였다. 그래서 다산은 그에게 겸손의 덕을 갖추고, 괘상의 추이를 따지는 일 따위에 너무 힘을 낭비하지 말라고 충고했다.177)

지산겸괘의 내용을 살펴보면, 깨달음의 방법을 제시하는 겸괘에 대해 언급되어 있다. 여기 에서 겸괘란 진리에 대한 깨달음의 방법을 제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맹자는 “하늘은 말씀하 지 않는다. 행실과 일로 인하여 그에게 주려는 뜻을 보여줄 뿐이다.”178)라 말했다. 이는 하

176) 신성수, 현대 주역학 개론, 대학서림, 2007, p.172.

177) 정민 지음, 앞의 책, p.119.

178) 성백효 역주, 懸吐完譯 孟子集註, 전통문화연구회, 2005, p.387. “天不言 以行與事 示之而已矣.”

늘이 진리를 베푸는 방식은 질서정연한 운행과 그것이 전개하는 사건이라는 의미이다. 진리 의 현현은 자연과 역사와 문명과 인생사로 나타난다. 맹자는 깊이 잠든 인의예지의 본성을 겉으로 드러내어 실현하면 된다는 사유법을 제시하였다. 따라서 진리의 개시성과 인간 본성 의 개시성의 만남을 통해 하나 됨의 방향성을 제시한 것이 겸괘인 것이다. 겸괘에는 진리관 과 인식의 문제와 수양론의 통합이 제시되어 있다. 겸괘는 인간이 하늘과 땅, 즉 천지의 진 리와 하나 되는 ‘삼위일체적 존재’임을 터득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가르치고 있다. 이 괘는 낮은 땅 아래에 높은 산이 있는 형상이며, 자신을 굽혀서 낮은 자보다 더욱 낮추는 겸허의 상이다. ‘경’은 본래 절대자에 대한 경외심을 뜻한다. 인간은 절대자 앞에 섰을 때 자만심을 버리고 겸허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겸과 경은 상보적인 관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유일한 양효인 구삼(九三)이 내괘(內卦)에 있는 것은 지고한 하늘의 기운이 땅으로 내려온 것을 의미한다. 땅이 산보다 위에 있다는 것은 골짜기가 높은 언덕이 된다는 의미이다. 이는 자신을 낮추는 자가 오히려 높임을 받는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단전」에 “천도는 아래로 내려와 교합하고, 지도는 낮아서 위로 올라간다.”라고 하였다.

또한 겸괘 「단전」에는 “천도는 가득 찬 것을 이지러뜨리고 겸손한 것을 보태어 주며 지도 는 가득 찬 것을 변화시켜 겸손한 곳으로 흐르며 귀신은 가득 찬 것을 해치고 겸손한 자에 게 복을 주며 인도는 가득 찬 것을 미워하고 겸손한 것을 좋아한다.”179)라고 언급되어 있다.

이는 가진 자의 것을 덜어내어 부족한 자에게 보태 줌으로써 형평성을 유지하는 것이 자연 의 법칙이며 인간의 도덕 원리인 것을 의미한다.

자신을 비워서 낮추는 겸괘는 6효 가운데 길(吉)을 뜻하는 내괘 3효와 이(利)를 뜻하는 외 괘(外卦) 3효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부정적 평가가 전혀 없는 유일한 괘이다. 특히 「단전 (彖傳)」에는 “구삼(九三)은 공로가 있고 겸손하니 군자가 종결짓는 것이 있어 길하리라.”180) 고 언급되어 있는데, 이는 공로는 있으나 이것을 자랑하지 않고 더욱 자신을 낮출 때 모든 사람이 감복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겸에만 치우칠 경우에는 균형성을 상실할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육오(六五)에는 “부유하지 않고 그 이웃과 함께 하는 것이 다. 침벌(侵伐)하는 것이 이로우니 이롭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181)라고 언급되어 있다. 이는 겸덕으로 상대방을 감복시킬 수 없을 경우 무력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겸손의 극치인 상육(上六)의 단계에는 “겸손하다고 인정받는 것이니 군대를 동원해 자신이

179) 성백효 역주, 현토완역 周易傳義 上, 앞의 책, p.401.

180) 같은 책, p.406.

181) 같은 책, p.400.

다스리는 나라를 정벌해야 한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이는 무력이라는 강력한 수단을 동원 해 극복해야 할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임을 주장한 것이다. 따라서 자신이 겸손한 사람이라 는 의식까지 버려야 진실한 의미의 ‘겸’이 가능하게 된다. 이와 관계된 괘는 「단전」과 「상전」

에서 찾을 수 있다.

지산겸괘 「단전」에 “겸은 형통하다. 천도는 아래로 내려와 빛나고, 지도는 낮아 위로 행한 다. 하늘의 도는 가득 차면 이지러지게 하고 겸손한 것은 더해주니, 해와 달과 음양이 이것 이다. 땅의 도는 가득 찬 것을 변하게 하여 겸손한 데로 흐르며, 귀신은 가득 찬 것을 해쳐 서 겸손한 것에 복을 주고, 사람의 도는 가득 찬 것을 싫어하고 겸손한 것을 좋아하니, 겸은 높고 빛나며 낮되 넘을 수가 없으니, 군자의 끝마침이다.”182)라고 언급되어 있다. 이는 겸손 함만이 형통을 이룬다는 의미이다. 하늘의 도는 기운이 아래로 내려오기 때문에 만물을 화육 하며, 인간은 그 도가 광명하기를 기대한다. 땅의 도는 낮은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그 기 운이 위로 행하여 하늘과 만나야 한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을 낮추게 되면 형통하게 된다. 하 늘의 운행으로 말하면 가득 찬 것은 이지러지고 이지러진 것은 참을 통해 겸손함을 더해주 는데, 이것이 바로 해와 달과 음양의 이치이다. 지세로 말하면, 높은 곳은 기울고 변하여 낮 게 하고, 낮은 곳은 흘러들어와서 더욱 높아지게 되어있다. 자만한 것에는 화(禍)를 주어 해 가 미치게 하고, 겸손한 것에는 복을 주어 도움을 준다. 무릇 과하면 덜어내고 부족하면 더 해주는 이치와 같다. 인정은 자만함을 미워하고 겸손함을 좋아하여 상대한다. 겸은 자신을 낮추고 남에게 공손히 대하라는 의미이며, 그렇게 하면 도가 더욱 높아지고 빛나게 된다. 스스 로 처신을 낮추면, 그의 덕은 실제로 높아져 더할 나위가 없게 된다. 이러한 처신은 누구도 뛰 어 넘을 수 없으며, 자신만이 할 수 있다.

겸괘 「상전」에는 “땅 속에 산이 있는 것이 겸이다. 군자는 이를 보고 많은 곳에서 덜어내 어 적은 곳에 더해 준다. 이렇게 만물을 저울질하여 베풂을 공평하게 한다.”183)고 언급되어 있다. 땅의 형체는 낮은데 ‘높고 큰 산이 땅속에 있다.’는 말은 밖에서 보기에 낮아 보이지만 내실은 높고 큰 실력을 쌓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덕목은 겸이라 부른다. ‘산이 땅 속에 있다.’고 말하지 않고, ‘땅 속에 산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숭고함과 겸손함이 쌓여있는 것을 말한다. 군자는 산이 땅 아래에 있는 겸괘의 상을 보고, 이것은 높은 것이 아래로 내려 오고 낮은 것이 위로 올라간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높은 것을 억제하고 낮은 것을 들어

182) 周易 附諺觧 三, 앞의 책, p.137. “謙亨 天道下際而光明 地道卑而上行 天道 虧盈而益謙 地道 變盈而流謙 鬼神 害盈而福謙 人道 惡盈而好謙 謙 尊而光 卑而不可踰 君子之終也.”

183) 성백효 역주, 현토완역 周易傳義 上, 앞의 책, p.403. “地中有山 謙 君子以 裒多益寡 稱物平施.”

올려주며, 지나친 곳을 덜어내 부족한 곳에 더해 줄 수 있다. 이것은 일을 시행함에 있어 많 은 것을 덜어서 적은 것에 더해주고, 물건의 많고 적음을 저울질하여 그 시행을 고르게 함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공평함을 얻는 방법이다. 이상과 같이 다산이 혜장에게 제시한 주역

의 겸괘를 통해 다산은 혜장에게 겸손함을 가르치려 했음을 알 수 있다.

다도의 행(行)과 검(儉)은 이러한 겸의 미덕을 기본으로 전제하고 있다. 자연 만물과 인간 이 하나가 되는 음다행위는 궁극적으로 겸의 미덕을 체화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이 점을 다 산은 혜장에게 가르쳐 주고자 했다고 보인다.

제2절 초의 의순(草衣 意恂)과 풍택중부괘(風澤中孚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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