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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문화의 사상적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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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천인합일사상

중국 역대의 철학자들은 모두 인간과 자연계를 하나의 화해적 통일체로 간주하였다. 이 때 문에 중국의 여러 가지 철학 체계에서 자연관과 사회 윤리관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심지어는 동일하게 취급되기도 하였다. 이것과는 반대로 서양철학 체계에서는 인간과 자연계 가 분명하게 나누어졌으며 자연관과 윤리학은 구별되었다. 이러한 관점은 천인합일설에서 가 장 전형적인 견해가 되었다. 간단히 말해서 천인합일은 인간과 자연계의 통일, 혹은 조화를 의미한다.76)

주역 속에는 대인은 천지와 덕을 일치시킨다(大人與天合其德)등과 같은 말이 자주 출현 한다. 주역은 ‘하늘과 땅과 사람(天地人)’ 세 가지를 모두 구비하고 있다. 그러나 주역의 사상 역시 그렇게 일면적이지 않다. 예를 들면 천지는 만물을 발생하고 성장하게 하지만, 그 것은 우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백성을 보살피는 성인과 다르다는 것인데, 이것은 천지가 의지 가 없지만 인간은 의지가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77) 하늘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일종의 신비적 학설로서, 하늘이 사람의 일에 간섭할 수 있고 사람의 행위도 하늘을 감응(感應)시킬 수 있으며, 자연계의 이상하거나 상서로운 현상은 하늘이 사람에 대하여 꾸짖거나 칭찬함을 나타낸다고 보는 견해이다.78) 서한의 동중서(董仲舒)는 하늘도 또한 기뻐하고 분노하는 감정 과 슬퍼하고 즐거워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과 하늘과 사람은 하나라는 것을 전제하고, 나라에 도가 없어지려 하면 하늘은 먼저 재해를 내려 경고하고, 그래도 스스로 반성할 줄 모르면 괴 이한 현상을 내보내 두렵게 하며, 그래도 여전히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그때서야 하늘은 그 를 해치고 무너뜨린다고 한다. 이것은 천인의 관계에 있어서 하늘의 도와 사람의 도, 즉 자 연과 인위가 합쳐서 하나가 된다고 보는 견해이다.79)

76) 김갑수 역, 천인관계론, 신지서원, 1993, p.319.

77) 같은 책, p.325.

78) 철학대사전, 한국철학사상연구회, 동녘, 1989, p.1633.

79) 같은 책, p.1634.

송(宋)의 장재(張載)는 “하늘과 사람이 작용을 달리한다면, 참됨이라 할 수 없다”80)라고 하 고, 정호(程顥)는 “하늘과 사람은 본래 둘이 아니니 합일이라 말할 필요도 없다”81)라고 하고, 주희(朱熹)는 “하늘과 사람은 하나의 것이며, 안과 밖으로 하나의 이치이니, 서로 흘러 통하 여 꿰뚫어서 처음부터 그 사이가 떨어짐이 없다”82)라고 한다. 이들 송의 유학자들은 ‘이치 (理)’, ‘본성(性)’, ‘명(命)’의 측면에서 천인 관계의 합일을 논증했다.

천인합일사상은 『주역 가운데 천명한 음양 조화의 태화관(太和觀)과 일치한다. 주역 건 괘 「단전」에는 “태화를 보합하여 곧음이 이롭다.”83)고 언급되어 있다. 주역의 태화관에 대 한 정의는 천·지·인을 통일한 유기체에 내재되어 있다. 이는 천·지·인 3가지가 서로 도와서 하나의 완벽하고 아름답고 조화로운 역사 세계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천인 혹은 천지인합일 은 우주의 가장 조화로운 모습이다. 또한 사회생활에서 가장 화합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말하며, 생명 개체와 자연 물질생활과 정신문화 생활이 조화를 이루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일컫는다.

다도 점다법의 세 가지 요소는 정위(定位)·순서(順序)·창의(創意)를 일컫는다. 정위는 점다 하는 사람들의 위치 결정을 포괄하고 있고, 차도구의 위치 결정도 포괄하고 있다. 결정에 있 어 점다하는 사람의 위치와 차도구를 배치할 때 차도구의 위치는 우선 결정되어야 한다. 차 도구의 위치가 결정되면 합리적 순서에 따라 점다의 순서도 자연스럽게 결정된다. 순서가 정 해지면 자리하여 자기의 창의적인 점다를 임기응변적으로 발휘하여야 한다. 하지만 점다자의 신체조건은 매번 같은 것이 아니다. 때와 장소 등에 따라 점다는 달라질 수 있다. 점다자의 일거수일투족은 자연스럽게 각각의 특색을 대변하고 있다. 따라서 차문화 중 점다와 차도구 의 위치결정은 역경의 태화관에 정의되어 있는 천·지·인을 통일한 유기체의 조화와 밀접하 게 연계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나. 중정사상(中正思想)

초의는 다신전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중정이란 “차의 근본인 물과 차의 싱그 러운 기운이 비록 온전하다 하더라도 오히려 중정을 지나치면 못 쓰게 된다. 중정이란 우려

80) 철학대사전, 앞의 책, p.1634.

81) 같은 책, p.1634.

82) 같은 책, p.1634.

83) 성백효 역주, 현토완역 周易傳義 上, 앞의 책, p.156. “保合大和 乃利貞.”

낸 차의 빛깔이 좋아야 하고, 차의 간이 함께 잘 맞아야 한다.”84) 즉 차를 우려내는 방법으 로 중정의 정신을 지니고서 차를 우려내야 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차 주전자에 차를 넣을 때 차가 많지도 적지도 않고 알맞게 넣어야 한다. 중정을 지나치거나 적당치 않으면 안 된 다. 차 잎을 많이 넣으면 차 맛이 쓰고 차 향기는 가라앉는다. 물이 많으면 우려낸 차의 빛 깔은 맑고 맛은 부족하다”85)고 하였다.

중정의 정신은 봄에 차 잎을 딸 때부터 시작된다. 차 잎을 너무 일찍 따면 차 맛이 온전치 못하고 너무 늦게 따면 차의 싱그러움이 없어진다. 그러므로 가장 적절한 시기에 차 잎을 채 취해야 한다. 차를 만들기 위하여 물을 끓일 때도 너무 오래 끓이면 노수가 되어 차를 우려 내는 데 부적절하고 물이 덜 끓으면 차의 향기가 제대로 우러나지 않기 때문에 물을 끓일 때도 중정을 지켜야 한다. 물을 끓여 차를 우릴 때도 차의 분량을 너무 적게 넣으면 차 맛이 싱겁고 차의 양을 너무 많이 넣으면 차 맛이 써서 향기가 떨어진다. 또한 차를 우려낼 때도 차 주전자 안에 너무 오래 두었다가 따르거나 너무 일찍 우려내서도 안 된다. 이 모두가 중 정의 도를 넘어서면 차의 제 맛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중정이란, 다인은 모든 일에 지나쳐 도 안 되고 모자라도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또한 자기의 분수를 알고 지키라는 말이다. 별로 아는 것이 없으면서 자기의 지식을 지나치게 과시하거나 별로 가진 것이 없으 면서 가진 자처럼 보이려는 허영심을 버리라는 뜻이다.

사람의 성격에 있어서도 과격하거나 모나는 성격도 중정의 정신에는 어긋난 것이다. 중정 의 정신은 어느 한 곳에 치우침이 없는 사고방식과 삶의 태도를 가짐으로 써 온전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한다. 중정을 지키는 온전한 생활이란 다도에서 말하는 색, 향, 미 즉 인간 이 타고난 본래의 빛깔, 본래의 향기, 본래의 맛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 다도란 높 은 정신과 예절이 함께 어우러져서 격조 높은 가치와 의식으로 생활화하는 것이다.

중용 1장에는 “기뻐하고 노하고 슬퍼하고 즐거워하는 정이 발하지 않은 것을 중이라 이 르고, 발하여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을 화라 이르니, 중이란 것은 천하의 큰 근본이요 화란 것 은 천하의 공통된 도이다.”86)고 언급되어 있다. 이는 희노애락은 정이요, 이것이 발현하지 않은 것은 성이니, 편벽되고 치우친 바가 없으므로 중이라 이르고, 발함에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은 정의 올바름이니 어그러지는 바가 없으므로 화에 이른다는 의미이다.

동다송 제29절에는 “물과 차가 잘 어우러진다 해도 중정을 잃을까 두려우니 중정을 잃 84) 윤병상, 다도고전, 연세대학교출판부, 2007, p.290. “體神雖全猶恐過中正 中正不過健靈倂.”

85) 같은 책, p.291. “茶葉多寡宜酌 不可過中失正 茶重則未 苦香沈水勝則色淸味寡.”

86) 성백효 역주, 대학·중용집주, p.84. “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 中也者 天下之大 本也 和也者 天下之達道也.”

지 말아야 다신과 수령이 아우러진다.”87)라고 언급되어 있다. 이는 참다운 물을 구해, 알맞 게 끓인 탕수로 만든 차를 우려내도 다인은 그 과정에서 중정을 잃을까 두려워한다는 의미 이다. 잘 끓인 물에 타는 차는 적당량이고, 물의 농도 또한 찻잎의 향에 맞아야 한다. 이렇 게 중정을 잃지 말아야 물과 차가 제대로 어우러져 제3의 물질, 즉 신령스러운 한 잔의 차로 태어난다는 것이다.

역경 52번째 중산간괘 「상전」에는 “중으로 바르기 때문이다.”88)라고 언급되어 있다. 이 는 중을 잃지 않게 함은 바로 정을 얻었기 때문이라는 의미이다.

중용에는 “치우침이 없는 것을 중이라 하며, 쉬이 변하지 않는 것을 용이라 한다. 중은 천하의 바른 도요, 용은 천하의 지극한 이치다.”89)라고 언급되어 있다. 이는 사람이나 사물 에 대하여 치우치거나 기울어짐이 없이 원만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중용이 유 가에서 도덕적 규범의 최고 기준이며 완전히 이상적인 덕성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육우가 말 하는 다덕은 결국 일련의 다사 과정에 내재한 도덕과 지조에 관한 내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유가의 중요한 지표 가운데 하나인 덕을 정치적 측면에서 해석하면, 국가통치에서 덕은 덕치 에 대한 요구로 나타나며, 이 과정에서 ‘중용’은 그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견해를 다사에 반영하면, 다인은 각종 다사를 행함에 있어서 개개의 행위가 모두 덕을 바탕으로 이 루어져야 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송나라 시대의 유명한 성리학자 주희(朱熹)는 일찍이 건차(建茶)와 강차(江茶)를 비교한 후,

“건차는 중용의 덕에 비교할 수 있고, 강차는 백이(伯夷)·숙제(叔齊)와 같다.”90)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중용’을 다덕의 표준으로 제시하였는데, 이것은 차의 덕성에 관한 최고의 경지라 고 말할 수 있다.

다. 청정무위(淸淨無爲)

무위는 도가의 중심 사상으로서 비인위적인 자연성을 중시하는 것으로, 인위 또는 작위(作 爲)에 상대되는 개념으로서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주장한다. 그것은 만물을 생성케 하는 근원 으로서 태극의 개념과도 만난다.

87) 초의선사, 동다송, 동아일보사, 2004, p.188. “體神雖全猶恐過中正 中正不過健靈倂.”

88) 성백효 역주, 현토완역 周易傳義 上, 앞의 책, p.353. “以中 正也.”

89) 성백효 역주, 대학·중용집주, p.84. “不偏之謂中 不易之謂庸 中者天下之正道 庸者天下之至理.”

90) 박남식, 「茶賦에 나타난 寒齎 李穆의 樂道思想 硏究」, 성균관대학교, 2014. “建茶如中庸之爲德江 茶如伯夷叔齊.”

노자는 인위를 반대하고 소박한 자연을 숭상하며 인의예지를 버리고 대도의 상덕으로 돌아 갈 것을 주장한다. “무위는 인간이 목표로 삼아 추구해야할 행위의 규범으로, 인위와 조작은 천연의 아름다움에 이르는 일체의 법도를 버려야 한다.”91)

노자의 사상은 다도사상의 형성에 있어서 중심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음다행위는 개인적 욕망을 절제하거나 제거하는 자연수련의 과정이라 할 수 있고, 음다가 널리 성행하게 되면서 무위의 관념이 다도의 핵심으로 자리잡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도가의 자연을 숭상하 고 자연과 합일하여 천지의 운행에 따르고자 하는 사상은 세속적 욕망과 사회적 권위를 부 정하고, 허정(虛靜)과 염담(恬淡)이라는 가치관을 이끌어냈다. 이는 음다를 통해 개인적, 사회 적 관계에서 재물이나 출세를 거부하고 마음과 행위의 청정을 추구하는 다도와 연계되어 다 도사상의 핵심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또한 도가 사상은 ‘장생불로(長生不老)’의 개념을 내포 하고 있다. 노자는 만물의 근원인 ‘도’의 영원성을 통하여 장생불사의 가능성을 암시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도가의 도사들은 우화등선(羽化登仙)의 길을 찾고자 하였으며, 반드시 ‘생기 (生氣)’가 함유된 식물을 복용하려고 노력하였다. “도홍경(陶弘景: 456~536년)의 잡록(雜錄)

에는 차는 몸을 가볍게 하고 뼈를 바꾸어 주며, 단구자(丹丘子)와 황산군(黃山君)이 이를 복 용하였다”92)고 기술되어 있다. 이러한 기록을 통하여 우리는 차가 도교의 득도성선의 이념이 나 우화등선의 관념에 매우 잘 맞는 음료였음을 알 수 있다.

도교의 도사들은 건강이나 장수를 인간의 생명 운동의 일환으로 파악하고 장생불로의 목적 을 이루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그들은 적극적인 마음가짐으로 양생에 힘씀으 로써 타고난 천생의 체질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으며, 특히 차의 효능에 주목하였다. 왜냐하 면 심신을 새롭게 만드는 차의 고유한 성질과 도교의 양생관이 여러 면에서 서로 잘 맞기 때 문이다. 소박한 모습으로 그늘에서 묵묵히 자라는 차는 도교가 추구하는 청정무욕의 정신을 상 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차는 그윽하고 고요한 환경에서 마주할 때 비로소 그 진정한 맛과 희 열을 느낄 수 있다. 도교와 차 문화는 ‘청정’이라는 점에서 그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91) 박영호 역저, 老子, 두레, 1998, pp.22~23.

92) 육우 지음, 류건집 주해, 앞의 책, p.293. 茶經 「七之事」, “陶弘景 雜錄 苦茶輕身換骨 昔丹丘子 黃山郡服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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