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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로(風爐)

문서에서 저작자표시 (페이지 30-33)

차문화에서 위에 언급한 ‘정행검덕’은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이와 함께 ‘정행검덕’을 수행 할 중요한 도구인 다구의 선택도 매우 중요하다. 육우는 다구 가운데 풍로에 대해 많은 관심 을 가지고 있었다. 다경 「사지기」에서 육우는 ‘풍로’를 제작할 때, 주역에 나오는 ‘정괘 (鼎卦)’에서 ‘정’의 모습을 취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위 문장에 의하면, 「사지기」에 나오는 ‘풍 로’를 제작할 때 육우는 ‘옛 솥’의 모습을 따르며, 풍로에는 ‘리, 손, 감’ 세 괘를 표시하라고 하였는데, 이는 풍로가 철저하게 주역에 근거하여 제작되도록 요청한 것이다. 그는 풍로를  주역의 괘에 근거하여 제작함으로써, 구체적 사물에서 추상적 사유로까지 차문화의 의미를 확 장하고 있다. 다경의 ‘솥’에 대해서 살펴보면, ‘솥’은 주역의 ‘화풍정괘’에 등장한다. 정괘 (鼎卦) 「서괘전」에 “물건을 변혁하는 것은 솥 만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정괘로 받았다.”42) 라 하였다. 솥의 쓰임은 물건을 변혁하는 것이니, 날고기를 변하여 익게 하고 단단한 것을 바꾸어 부드럽게 만든다. 물과 불은 함께 할 수 없는데 서로 합하여 쓰임이 되어 서로 해치 지 않게 하면 이는 물건을 변혁하게 하는 것이니, 정괘가 이 때문에 혁괘의 다음이 된 것이 다. 괘의 모습은 위는 리이고 아래는 손이니, 이것이 솥이 된 까닭은 그 상을 취하고 그 뜻 을 취한 것이다. 상을 취한 것이 두 가지가 있으니, 전체로써 말하면 아래에 세워진 것은 발 이 되고 가운데 채워진 것은 배가 되니, 물건을 받아 가운데에 두는 상이요, 위에 대치하고 있는 것은 귀이고 맨 위에 가로 뻗쳐있는 것은 현(鉉)이니 솥의 상이며, 상체와 하체의 상으 로 말하면 가운데 빈 것이 위에 있고 아래에 발이 있어 받드니, 또한 솥의 상이다. 그 뜻을 취하면 나무가 불을 따른 것이다. 손은 들어감이니 순종하는 뜻이다. 나무가 불에 순종함은 불태우는 상이 된다. 불의 쓰임은 오직 굽는 것과 삶는 것인데, 굽는 것은 기물을 필요로 하 지 않으므로 삶는 상을 취하여 솥이라 하였으니, 나무로써 불에 순종함은 삶는 상이다.

현실에서 ‘물과 불’은 상극관계에 있는 사물이다. 이 사물의 특성을 서로 합하여 새로운 차원으로 전환하고, 이 과정에서 새로운 변혁을 도모한다는 것이 주역에서 ‘정’을 해석하는 견해이다. 이는 주역이 ‘정역(正易)이면서 ‘변역(變易)’이라는 점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42) 성백효 역주, 주역전의 하, 전통문화연구회, 2009, p.308. “革物者莫若鼎 故受之以鼎.”

육우는 풍로를 구상하면서 주역의 ‘정괘’를 깊이 학습하고 응용하였다. 찻잎이라는 유형적 이며 구체적인 사물을 물과 결합하여 ‘마시는 음료’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다양한 과정이 필 요한데, 이 과정에 서로 상극적인 요소의 결합 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이를 위해 그는

‘차+물+불+바람’의 결합을 효율적으로 완성할 목적으로 주역 정괘에서 응용하여 풍로를 고 안하였다. 풍로는 도구로 활용되어 이 모든 상 극적인 요소를 하나로 결합하였다. 이는 풍로가 단순한 도구의 의미를 뛰어넘어 새로운 차원으 로의 변화와 변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육우가 이와 같은 풍로를 구 상할 때 주역의 ‘화풍정괘’는 변화와 변혁이 라는 중요한 사상 정립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고 말할 수 있다.

육우는 풍로를 제작하는데 두 번째로 다음의 사항을 강조하고 있다.

“풍로 안에 체얼(墆㙞)을 두는데 세 개의 틀을 만든다. 그 한 틀 위에는 꿩을 그리는데 꿩 은 불과 관계된 새이므로 리괘(☲)를 그리고, 한 틀 위에는 호랑이를 그리는데 호랑이는 바 람과 관계된 짐승이므로 손괘(☴)를 그리고, 한 틀 위에는 물고기를 그리는데 물고기는 물에 관계된 것이므로 감괘(☵)를 그린다. 손괘는 바람을 주재하고, 리괘는 불을 주재하며, 감괘는 물을 주재한다. 바람은 불을 일으키고, 불은 물을 끓이므로 그 세 괘를 갖추도록 한 것이 다.”43)(그림144) 참조)

육우는 풍로를 제작할 때 8괘 중에 바람을 가장 밑에, 그 위에 불, 그 위에 물의 괘를 갖 추도록 한 것이다. 여기에서 무형의 바람이 유형의 불을 일으켜 물을 데우는 현상을 주역

으로부터 빌어 온 것이다. 그가 인용한 첫 번째 사상은 불에 관련된 괘이다. 불의 괘인 리괘

43) 육우지음, 류건집 주해, 앞의 책, p.140. 일부 수정.

44) 정민 지음, 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 김영사, 2011, p.158.

그림1. 육우의 풍로

公伊 陸羹 茶氏

는 ‘중화리괘’를 말하는 것으로, 주역 상경의 마지막 괘이다. 「서괘전」에서 “구덩이(함정)에 는 반드시 붙는 것(걸리는 것)이 있으니, 그러한 이유로 리(離)로써 받아 간다.”45) 리는 붙는 다는 것이라고 하여 감괘 뒤에 리괘가 오는 이유를 설명했다. 여기에서 구덩이란 함정을 말 한다. 함정이란 무엇을 잡기 위해서 파는 것이고, 그렇게 파놓은 구덩이에 빠져서 함정에 걸 리는 것을 ‘붙는다’라고 표현한 것이다. 불을 뜻하는 단괘(單卦)인 리괘가 겹쳐진 것이 중화 리괘이다. 가운데는 허(虛)하고 밖은 실(實)한 리괘(離卦☲)의 물상이 불을 뜻하는 것은 불의 성질과 모양이 내유외강이기 때문이다. 불길의 가운데 속은 어둡고 겉은 환한 것이 불의 모 양이다. 즉 가운데는 음하고 밖은 양하니, 가운데는 음효이고, 밖은 양효인 리괘의 괘상이 불인 것이다. 그런데 이 불은 불만으로는 불이 되지 못하고 불이 붙을 수 있는 물건, 즉 나 무나 종이 따위에 붙어야 불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불을 뜻하는 리괘의 성질이 ‘달라붙음(離 /麗)’인 것이다.

리괘 다음으로는 불을 살리는 바람에 관한 괘이다. 손괘는 57번째 괘로 중풍손괘(重風巽 卦)이다. 손괘는 「서괘전」에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손은 조금 형통하니, 가는 것이 이 로우며, 대인을 만나는 것이 이롭다.”46) 「단전」에 말하기를 “중복된 손으로써 명을 펴나니, 강이 중정에 겸손해서 뜻이 행해지며, 유가 모두 강에 순종한다. 이로써 조금 형통하니, 가 는 것이 이로우며, 대인을 만나는 것이 좋다.”47)고 하였다. 「상전」에 말하기를 “서로 따르는 바람이 손이니, 군자가 이로써 명령을 거듭하고 정사를 행한다.”48)라고 하였다. 이는 바람이 불을 살림으로써 ‘이로움’이 발생하고 ‘형통’하게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리괘와 손괘 다음으로 세 번째 괘는 물에 관련된 괘로 중수감괘(重水坎卦)이다. 감괘는 29 번째 괘로 다음과 같이 언급되어 있다. “습감(習坎)은 믿음이 있어 마음 때문에 형통하니, 가 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단에 말하기를, ‘습감은 거듭 험한 것이니, 물이 흘러가나 가득 차지 아니하며 험한 곳을 다녀도 신의를 잃지 않으니, 마음 때문에 형통하다는 것은 강중(强 中)때문이요, 가면 좋다는 것은 가면 성공이 있는 것이다. 하늘의 험함은 오를 수 없고, 땅의 험함은 산천과 언덕을 말한 것이니, 왕공(王公)이 험함을 설치하여 나라를 지키니 험(險)의 시기와 작용이 크다.’ 상에 말하기를, ‘물이 거듭 이르는 것이 습감이니, 군자가 이로써 덕행 을 항상 행하며 가르치는 일을 익힌다.’”49) 이는 감괘란 궁극적으로 앞에 나온 리괘와 손괘

45) 성백효 역주, 현토완역 周易傳義 上, 전통문화연구회, 2009, p.624.

46) 성백효 역주, 현토완역 周易傳義 下, 전통문화연구회, 2009, p.418.

47) 같은 책, p.419.

48) 같은 책, p.421.

49) 성백효 역주, 현토완역 周易傳義 上, 앞의 책, p.610.

의 작용을 이어받아 작동하는 괘로서 물이 차의 효용을 최종적으로 완성하기 위해 절대적으 로 필요한 괘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따라서 한 잔의 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찻잎을 음다용 차로 만들기 위한 ‘솥’이 있어야 하고, 이 ‘솥’은 리괘와 손괘와 감괘에 모두 연관되어 있다 는 의미이다. 결국 육우의 다경에 언급된 차문화와 다도 사상은 주역 사상과 밀접한 관련 이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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