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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혁신촉진형 금융시스템의 구축

이노베이션 한국을 위한 국가 구상

I. 문제제기1)

한국경제는 1997․1998년 금융위기 이후 국제통화기금(IM F) 체제 하에서 대대적인 구조개혁을 거쳤다. 이 구조개혁의 목표는 ‘금융 건전성’을 강화해서 금융위기를 다시 겪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었 다. 이에 따라 지표상으로 드러난 금융기관의 건전성은 많이 좋아 졌다. 기업부문의 부채비율도 대폭 떨어졌다. 그러나 이렇게 금융건 전성 확보 위주의 구조조정에는 전반적인 성장동력의 둔화라는 반 대급부가 따랐다. 금융기관들이 위험관리를 강조하다 보니 기업부 문에 적극적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위험부담기능이 약화된 것이다.2) 한국의 혁신금융 시스템도 이러한 전반적인 경제 시스템 변화 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었다. 구조조정을 거친 뒤 한국경제의 혁 신금융 시스템과 관련해서도 (1) 전반적인 투자위축, (2) 연구개발 (R& D)투자의 양극화, (3) 혁신형 중소기업 발전의 답보상태, (4) 정 책자금운용의 비효율성 등의 현상이 나타났다. 정부에서는 ‘혁신 위주 성장’이라는 슬로건을 강하게 내세우고 벤처기업 육성 등을 추진했지만 실제 결과는 성공적이라고 하기 어렵다.

이 장에서는 이렇게 혁신금융이 부진하게 된 원인을 분석하고 새로운 혁신금융 시스템을 설계하기 위한 몇 가지 제안들을 담았 다. 이 장은 혁신금융이 부진하게 된 원인으로 (1) 금융부문의 ‘위 험관리’ 시각 위주의 구조조정, (2) 직접금융시장에 대한 잘못된 기대와 역기능, (3) ‘투자-혁신’ 이분법적 혁신정책, (4) 산업금융 과 분리된 금융산업 육성정책을 지적하고 있다.

또 혁신을 보다 촉진시킬 수 있는 금융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1) 본 논문은 과학기술정책연구소 정승일 박사와 공동작업한 결과임을 밝힌다. 2)한국 금융위기 이후의 구조조정에 대한 비판적 평가에 대해서는 Shin and Chang

(2003), 신장섭(200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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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는 (1) 간접금융 및 ‘관계금융’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전환하고, (2) 설비투자와 혁신지원을 결합하는 대책을 마련하는 한편, (3) 산업지원과 연결된 금융 서비스 발전에 보다 많은 정책적 지원을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장은 ‘한국적 관계금융체제’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다소 도 발적인 주장을 내놓았다. 혁신은 불확실성을 앞에 놓고 위험을 부 담하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창조적 활동이고, 이 불확실성 을 금융기관과 혁신가들이 함께 부담해 나가는 데에는 ‘거리를 둔 거래(arm ’s len gth transaction)’보다 ‘관계거래(relational tran sactio n)’ 혹 은 ‘관계금융(relational financin g)’이 중요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 시스템에서의 주체는 간접금융을 제공하는 금융기관들이다.

이들의 상업적 판단이 혁신금융지원의 기반이 되고 정부는 이를 온렌딩(on-lending)이나 보증 등을 통해 간접지원해 줌으로써 시장 친화적 혁신금융 시스템을 새로이 구성해 볼 수 있다. 정부가 민 간금융기관들이 짊어지는 불확실성을 덜어 주면서 이들이 자율적 이고 상업적인 관점에서 대출 및 투자 의사결정을 내리도록 도와 주는 시스템이다. 이를 통해 혁신활동에 공급되는 자금의 양을 늘 릴 수 있는 한편 과거 정책금융이 갖고 있던 비효율성을 많이 해 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 장에서는 그동안 정책적 관심의 주요 대상이었던 대기업이 나 중소기업에 대한 문제는 별도로 다루지 않았다. 대신 관심권 밖에 있었던 중견기업에 대한 시스템적 지원을 통해 한국경제의 허리를 두텁게 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또 지방에 ‘혁신도시’ 건설 등을 통해 지방의 혁신능력을 육성하려고 할 때 지역금융 시스템 과 혁신활동 간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내는 방안을 담았다. 더불어 벤처캐피털에 기반을 둔 세계적인 토종 투자은행(IB)을 육성하기 위한 실험적 제안도 내놓았다.

II. 산업금융 시스템의 재구축

1.

현황과 문제점

한국경제의 설비투자 증가율은 금융위기 한복판에 있었던 199 7․1998년을 제외하고 보더라도 1999년부터 2005년까지 연평균 0.2%로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금융위기 이전 1990~1997 년에 설비투자 증가율이 연평균 8.4%였던 것과 큰 격차를 보인다 (<그림 4 -1 > 참조). 투자의 내용을 보더라도 전체 설비투자에서 기존 설비 보완투자의 비중은 증가하고 전략적 성장투자의 비중은 감 소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1993~1998년에는 전자의 비중이 58.8%, 후자의 비중이 17.4%에서 1999~2004년에는 전자 62.7%, 후자 13.9%로 변화했다. 금융위기 이전의 한국경제가 ‘과잉투자’를 걱 정할 정도로 설비투자에 적극적이었다면 금융위기 이후에는 투자 가 위축됐다고 할 수 있다.

<그림 4-1> 한국경제의 설비투자 추이

(단위: 10억 원, 2000년 불변가격)

0 1000 0 2000 0 3000 0 4000 0 5000 0 6000 0 7000 0 8000 0 9000 0

90 9 1 92 93 94 9 5 96 9 7 98 99 00 01 0 2 0 3 04 05

자료: 통계청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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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이후 ‘혁신 주도 성장,’ ‘벤처산업 육성’ 등의 방침에 따라 전반적인 R&D 투자액은 많이 늘었다. 제조업 전체 R&D 투 자액은 2001년 10조1,000억 원에서 2005년 16조5,000억 원으로 63% 증가했다. 그러나 이것은 대기업에 의해 증가한 것으로 중 견․중소 기업의 R&D 투자는 정체됐다. 대기업과 중견․중소 기 업 간 R&D 투자의 양극화가 나타난 것이다. 2000년대 초 벤처버 블이 터진 후 중소․벤처 기업의 R&D 투자는 2001년 2조3,000억 원이었는데 2005년에 2조6,000억 원으로 소폭 증가하는 선에 그쳤 다. 이에 따라 중소기업의 R&D 투자비중은 23%에서 16%로 떨어 졌다.3)

<그림 4-2> 대․중소 기업 R&D 추이

0 2 0,0 00 4 0,0 00 6 0,0 00 8 0,0 00 10 0,0 00 12 0,0 00 14 0,0 00 16 0,0 00 18 0,0 00

1 99 1 19 93 1 99 5 19 97 1 99 9 20 01 2 00 3 20 05 5.0 7.0 9.0 11 .0 13 .0 15 .0 17 .0 19 .0 21 .0 23 .0 25 .0

대 기 업 중소기업 R&D 비율( %) (억 원 )

중 소 기업

자료 : OECD(2006).

한편 대기업 중에서도 상위 5대 재벌그룹만 R&D 투자가 증가 세를 보였을 뿐 나머지 6~30대 그룹은 정체상태였다. 5대그룹의 매출액 대비 R&D는 2000년 2.28%에서 2006년에는 3.63%까지 높

3) 김석현 외(2006).

중소기업

대 기 업

아졌다. 반면 6~30대 그룹의 매출액 대비 R&D는 2000년 1.56%

에서 2006년 1.14%로 감소했다. 금융위기 이전(19961.18% )과 비 교했을 때도 답보상태라고 할 수 있다. 정부에서 혁신 주도 성장 을 강조했어도 R&D 투자는 소수의 글로벌 기업들에 의해 늘어났 을 뿐 대다수 기업들은 혁신을 위한 투자에 제대로 나서지 못했 다고 할 수 있다.

2000년대 초에 벤처붐이 일시적으로 불었지만 혁신형 중소기업 들의 발전은 그 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정부의 기술혁신형 중소기업 집중육성정책에 따라 기술혁신형 중소기업이 2005년 1 만700개에서 2006년 1만7,000개로 급증하였으나, 그 대부분은 벤 처 인증 및 이노비즈(Inno biz) 인증제도의 완화에 따른 서류상의 증 대일 뿐 실질적인 혁신형 중소기업의 발전은 답보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림 4-3> 5대 그룹과 6~30대 그룹의 연도별 매출액 대비 R&D 비율 추이 비교

5 대 기업집단과 6~30대 기업집단 연도별 매출액 대비 R&D 비율 비교

0.00%

0.50%

1.00%

1.50%

2.00%

2.50%

3.00%

3.50%

4.00%

연도

비율

5대 기업 집단 매출액 대비 R&D 6~30 기업 집단 매출액 대비 R&D

5대 기업 집단 매출액 대비 R&D 2.07%2.19%2.15%2.12%2.27%1.62%2.28%2.00%2.62%3.05%3.50%3.74%3.63%

6~30 기업 집단 매출액 대비 R&D0.55%0.66%1.18%1.19%1.32%1.35%1.56%1.21%1.12%1.17%1.13%1.11%1.14%

1994 1995 1996 1997 1998 1999 2000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정책금융자금 운용의 비효율성도 노정되고 있다. 정책자금의 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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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는 상당히 커져 있다. 2007년 말 현재 기술보증기금 10조 원, 중 소기업진흥공단 3조 원, 정보통신진흥기금 1조2,000억 원 등 거액 의 정책자금이 집행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집행상의 비효율 이 문제이다. 정책금융 관련부처(신청기관, 위탁기관, 취급기관)간 연계 가 미흡하여 중복지원, 수혜대상 축소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정책 금융 지원절차의 복잡성, 관할부처 및 법규 등의 난립으로 수요자 에게 불편과 혼란을 초래하고 역선택의 문제 등이 야기되고 있다.

정책금융의 흐름에 관한 일관된 모니터링 및 관리체계가 미흡 하여 정책금융의 부실화 및 양극화도 조장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 는 지방 정책금융의 경우 더욱 심하게 나타나는 경향이다. 한편 상업적 원리를 정책금융에 도입할 수 있는 창구라 할 수 있는 민 간금융기관들은 정책금융 취급마진이 낮고 신용위험의 부담이 높 아 정책금융 취급을 기피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2.

혁신금융 부진의 원인들

혁신은 불확실성을 앞에 놓고 위험부담(risk -taking )을 하는 행위 이다. 혁신 관련 금융은 혁신가들의 이러한 위험부담 행위를 촉진 시키기 위해 불확실성을 덜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금융위기 이후의 구조조정방향은 이와 정반대였다. 금융위기의 원인이 ‘연고자본주의’에 의한 ‘과잉투자’로 규정되었기 때문에 위험부담을 촉진시키기보다는 이를 억제해서 경제 내의 금융위험 을 관리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이러한 전반적 정책기조하에서는 아무리 부분적으로 벤처기업이나 R&D 투자를 지원한다 하더라 도 혁신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정책방향은 직접금융 시장의 자금공급기능에 대한 환상, 혁신과 투자 이분법 등의 경직 적인 사고방식에 의해 악화됐다.

(1) 금융부문의 ‘위험관리’ 시각 위주의 구조조정

부채비율 축소, BIS 비율 규제 강화, 계열사 간 지급보증금지 등 금융 및 기업 구조조정 조치들은 금융부문에서 기업부문으로 가는 간접금융시장을 위축시켰다. <표 4-1>에서 보다시피 기업부 문은 금융위기 이후 내내 자금경색을 겪어왔다. 기업부문의 외부 자금유입액은 1997년 118조 원에서 금융위기가 최악이었던 1998 년 27조6,000억 원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금융위기 전과 비해 4분 의 1 규모에 불과하다. 한국경제가 급격한 회복세를 보였던 1999 년과 2000년에도 외부자금은 1997년에 비해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그 이후 다소 회복됐다 하더라도 1999년부터 2005년까지 기업으로 유입된 외부자금은 연평균 70조 원 남짓으로 1996~

1997년 평균의 60%에 불과했다.

<표 4-1> 기업부문의 자금조달

(단위: 10억 원) 구 분 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총액 118,022 27, 664 51,755 66,531 51,939 86,839 72,100 63,785 98,167 간접금융 43,375 -15,862 2,198 11,391 1,185 51,637 29,975 11,222 29,986 예금은행 15,184 259 15,525 23,348 3,381 41,660 32,121 7,099 17,005 비은행기관 28,191 -16,550 -13,267 -11,997 -2,377 9,618 -2,136 4,123 12,981 직접금융 44,087 49, 496 24,792 18,996 36,838 23,007 26,291 20,417 30,192 기업어음 4,421 -11,678 -16,116 -1,133 4,210 -357 -3,826 -4,160 3,129 주식 8,974 13, 515 41,137 20,806 16,504 28,949 27,654 24,443 19,448 회사채 27,460 45, 907 -2,827 -2,108 11,761 -7,857 -1,925 134 7,615 국외차입 6,563 -9, 809 11,537 15,765 2,283 3,525 7,089 16,077 11,306 기타 23,997 3, 839 13,228 20,380 11,633 8,599 8,746 - - : 기타 항목에는 기업 간 대출, 정부대출 등이 포함됨.

자료: 자금순환동향, 한국은행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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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자금 유입이 줄어들게 된 큰 원인은 금융기관으로부터의 차입급(간접금융) 축소와 회사채 시장 실종에 있다. 기업부문의 금 융기관 차입금은 1997년 43조3,000억 원에서 1998년에는 마이너 스 15조8,000억 원이었다. 기업부문이 어려울 때 금융기관들이 돈 을 빌려주기는커녕 오히려 돈을 빨아갔다. 그 이후 간접금융이 다 소 회복되었다 하더라도 2005년에 29조9,000억 원으로 1997년 수 준의 70%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회사채 시장은 금융위기 후 대우그룹 회사채가 부도나면서 거의 죽어버렸다.4)

이것은 어떻게 하면 간접금융이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할 것인지 에 대한 대안 없이 ‘은행차입 위주 성장’을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규정한 뒤 기업부문의 간접금융을 축소하고 감독을 강화하는 방향 으로만 구조조정 드라이브를 걸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이다.

(2) 직접금융시장에 대한 잘못된 기대 및 역기능

간접금융을 축소하고 주식시장 위주의 직접금융시장이 기업자 금조달의 중추적 기능을 해야 한다는 구조조정 시각은 본래부터 실증 기반이 없는 것이었다. 선진국들의 역사적 경험을 볼 때 주 식시장이 자본조달의 중추적 기능을 한 사례가 없다. 선진국에서 주식시장은 자본조달에 미미하게 기여했거나 오히려 역기능을 초 래했다는 것이 실증연구들의 일관된 결론이다.

Corbett and Jenkinson(1994)에 따르면 1970~1989년 기간 중 투자 자금조달에서 신주발행이 차지하는 비율은 미국 -4.9%, 영국 7.0%, 독일 2.3%, 일본 3.9%였다. 오히려 ‘차입 위주 성장’을 했다 는 한국에서 신주발행의 기여는 13.4%로 선진국들보다 크게 높았 다(<4 -2 > 참조). Mayer(198 8)의 연구에서도 주식시장의 신규자금조

4) 신장섭(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