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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innovation)이라는 개념은 법적 개념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혁신’이라 는 개념은 사회영역의 발전상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혁신에 민감한’ 법이 될 수 있는지 문제의식을 갖게 된다는 점에서 연구가치가 있다. 또한 ‘혁신에 민감한 법’은 사회의 발전을 위해 자유로운 영역이나 이를 촉진하는 수단을 형성하는 이른바 ‘혁신개방 성’(Innovationsoffenheit)의 목표를 추구할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이 혁신이 다 른 공동선에 긍정적, 부정적으로 미치는 영향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22)

22) 계인국, “규제개혁과 행정법 – 규제완화와 혁신, 규제전략 -”, 공법연구 제44집 제1호, 2015, 660면.

이와 같은 맥락에서 과학기술의 혁신에 있어서 법과 규제는 혁신에 수반될 수 있는 위험을 통제할 뿐 아니라, 혁신의 방향을 제시하기도 하고 혁신을 유인하고 지원하는 조 종장치 또는 동력장치로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되고 있다. 새로운 과학 기술을 대할 때, 법은 위험의 통제라는 관점 뿐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러한 혁신을 유도 하고 촉진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함께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23)

그런데 이러한 혁신과 규제 간에는 갈등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갈등사례들 을 갈등의 원인이 되는 이해관계의 구조와 성격에 따라 크게 4개의 유형으로 구분하는 견해도 제시되고 있다. 이 견해에 따르면 크게 혁신과 규제 간 갈등이 기존사업자와 신규 사업자의 경제관계에서 발생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로 구분된다. 그리고 다시 전자 는 경쟁사업자들이 생산 또는 제공하는 재화나 용역이 동일한 경우(유형 I)와 동일하지는 않으나 대체재관계에 있는 경우(유형 II)로 구분하고 있다. 후자는 새로운 과학기술의 적 용이 관계자의 헌법상 기본권이나 법적 권리와 충돌하는 경우(유형 III)와 새로운 과학기 술의 적용이 특정인의 이해를 떠나 사회적 가치 내지 이데올로기 차원의 갈등을 야기하 는 경우(유형 IV)로 구분해서 보고 있다.24)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혁신을 촉진하기 위한 규제법제를 정립하기 위해서는 이해관계의 갈등을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는 절차가 중요 함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혁신과 탄력성을 반영하는 행정법학의 발전방안에 대해서는 독일의 호프만-림(Hoffmann-Riem)의 견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호프만-림은 슈미트-아스만(Schmidt-Aßmann)과 함께 ‘행정법의 개혁’(Reform des Verwaltungsrechts) 시리즈를 1990년대 초반 부터 10권으로 간행했는데, 이 중의 한 권이 혁신과 탄력성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책에서 호프만-림은 행정법에서 탄력성과 혁신개방성(Innovationsoffenheit)을 가 능토록 하기 위해서는 6가지 핵심개념을 유의해야 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1) 조종

23) 이원우, “혁신과 규제: 상호 갈등관계의 법적 구조와 갈등해소를 위한 법리와 법적 수단”, 경제규제와 법 제9권 제2호, 2016, 11면.

24) 이원우, 앞의 글(각주 9), 11면.

(Steuerung), 2) 결정(Entscheidung), 3) 이익(Interesse), 4) 정보, 의사소통, 그리고 상호작 용(Information, Kommunikation und Interaktion), 5) 결정조건(Entscheidungsprämissen), 6) 결정타당성(Entscheidungsrichtigkeit)이 그것이다.25) 이들 6가지 핵심개념을 보다 상세하

25) Hoffmann-Riem, Wolfgang, “Ermöglichung von Flexibilität und Innovationsoffenheit im Verwaltungsrecht Einleitende Problemskizze -”, in: Hoffmann-Riem/Schmidt-Aßmann, Innovation und Flexibilität des

Verwaltungshandelns, Baden-Baden, 1994, S. 19-28.

26) Hoffmann-Riem, 앞의 글, S. 19-21.

27) Hoffmann-Riem, 앞의 글, S. 21, 22.

는 것을 허용한다. 혁신이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사회안에 어떠한 혁신친화적 또는 혁신회피 적 이익이 존재하는지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법질서가 얼마나 혁신이익을 승인하고 절차법적, 실체법적으로 혁신이익을 지지하거나 거부할 것인지도 중요하다.28)

넷째, 결정작용으로서의 행정작용은 정보의 활용가능성, 그리고 적절한 정보취득 및 정보처리의 확보에 의존하게 된다. 그리고 행정에서의 의사소통과 상호작용모델은, 얼마 나 이들이 복잡하고 특히 다극적인 관계에 적합하게 정보취득의 요청을 충족시키는지, 그리고 정보형량을 포함하여 적절한 정보처리를 가능하게 하는지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행정법은 올바른 결정결과를 낳을 수 있도록 상호작용과정을 구조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서 혁신관련정보(규범의 실제영역에 있어서의 혁신필요성, 개별 행위자의 혁신이익, 혁신 적인 행정작용형식 등에 대한 정보)가 사용가능해야 하며, 의사소통절차에서의 참여기회, 정보처리 절차에 있어서 고려기회 등이 혁신개방적으로 반영되어야 한다.29)

다섯째, 전통적인 법이론은 성문 또는 불문의 구성요건과 법효과라고 하는 규범프로그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규범프로그램은 더 나아가 가장 중요한 결정조건(Entscheidungsprämissen) 이라는 점은 명확하며, 혁신과 관련한 정책은 규범프로그램에 의해서 가능해져야 하며, 규범 프로그램의 범위 내에서 유지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정에 의한 혁신동기가 어느 정도 범위 내에서 규정화되었는지를 질문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행정의 작용모델은 배타 적으로 규범프로그램에 의해서 특징져지는 것은 아니며 다른 전제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행정작용의 지향성은 특히 조직, 인사, 그리고 물적인 자원들과 합치될 필요가 있다.30)

여섯째, 행정작용의 타당성은 다음과 같이 3가지 범주로 나누어진다고 할 수 있다. 1) 합법 성(Rechtsmäßigkeit): 한계설정이나 구속력 있는 목표에 대한 프로그램화된 전제조건이라는 의미를 갖는 법의 준수,31) 2) 최적화(Optimalität): 결과책임의 보장을 포함하여 법적인 전제조

28) Hoffmann-Riem, 앞의 글, S. 22.

29) Hoffmann-Riem, 앞의 글, S. 22-24.

30) Hoffmann-Riem, 앞의 글, S. 24-26.

건 내에서 (행정)목적을 달성함에 있어서 최적화하는 것,32) 3) 수용성(Akzeptabilität): 법적인 전제조건을 준수하는 의미에서의 합법성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결정절차와 이익최적화의 방 식에 의해서 수용을 가능토록 하는 것33)이 그것이다. 혁신개방성과 혁신지향성은 특정 조치 의 합법성의 수준으로까지 고양될 수도 있지만, 단순히 바람직한 행정정책의 부수적 효과 (Begleiterscheinung) 정도가 될 수도 있다.34)

호프만-림의 이상의 견해는 행정법의 다양한 측면에 시사점을 제공한다. 혁신과 탄력 성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1) 행정작용법의 측면에서 적절한 행정작용선택이 중요하며, 2) 행정절차의 측면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의 조정이 가능토록 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 수 있 다. 얀 지코(Jan Ziekow) 등은 행정절차가 복잡성을 감축하는 기능을 담당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데 호프만-림과 같은 취지로 이해해볼 수 있다.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