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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차 산업혁명의 핵심개념들과 ‘새로운 행정법학’

이상의 내용을 보면 제4차 산업혁명의 핵심개념들은 행정법이론에서 이미 어느 정도 다루어져 왔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핵심개념들에 대해서 행정법체계가 구체적으 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독일의 ‘새로운 행정법’(Neue Verwaltungsrechtswissenschaft) 논의가 주는 시사점이 크므로 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포스쿨레(Voßkuhle)는 새로운 행정법을 촉발하는 원인으로 크게 세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 ‘미래적합성이 있는 법’(zukunftstaugliches Recht)을 추구하게 되는 경향이다. 이러 한 경향은 크게 세 가지 요소로 인해 나타나게 되는데, 1) 기존의 금지, 명령 위주의 질서 법 또는 규제법의 한계, 2) 사회 및 기술의 변화, 3) 정책적으로 지속적인 과제로서 행정 과 행정법의 개혁이 요청된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둘째, 행정법의 유럽화와 국제화의 영향이다. 셋째, 행정법이 ‘적용관련 해석학’(anwendungsbezogene Interpretationswissens chaft)으로부터 ‘법정립에 지향된 작용학 및 결정학’(rechtssetzungsorientierte Handlungs- und Entscheidungswissenschaft)으로 그 중점이 옮겨지고 있다는 점이다.46)

45) Driesen, David M., 앞의 책, p. 67-68 of 242 (Kindle Version).

46) Voßkuhle, 앞의 글, S. 9-21.

새로운 행정법학을 정립함에 있어서는 7가지 방법론적 요소가 강조되고 있다. 첫째, 조종이론적인 접근방법(Steuerungstheoretischer Ansatz)이다. 이 이론은 다음과 같은 장점 이 있음이 지적되고 있다. 1) 조사대상을 분별하고 확장하는 것을 가능케 하며, 2) 서로 다른 조종의 주체, 대상, 목적, 수단 간의 효과연관, 상호관계 분석을 가능케 하고, 3) 다른 학문분야와의 대화를 가능토록 한다는 것이다.47)

둘째, 실제영역(Realbereich)에 대한 분석이다. 조종이론적인 분석의 기초가 되는 것은 실제영역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며,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기술적 또는 생태적 현실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이러한 실제영역에 대한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48)

셋째, 효과 및 결과지향성(Wirkungs- und Folgenorientierung)이다. 효과를 분석함에 있 어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서 분석한다. ‘산출물’(Output)은 결과물 자체를 의미하며 관련된 조치의 즉각적이고 구체적인 결과를 의미하며, ‘영향’(Impact)는 목표집단의 행태 에 대한 단기적인 영향을 의미하며, ‘결과’(Outcome)는 사회적, 경제적, 기타 환경에 대한 조치의 장기적인 영향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기술영향평가(Technikfolgenabschätzung:

TA), 입법영향평가(Gesetzesfolgenabschätzung: GFA) 등이 중시된다.49)

넷째, 내부적, 다원적, 초경계적, 학제적인 성격(Intra-, Multi-, Trans- and Interdisziplinarität) 의 반영이다. 법학내부에서 사법, 공법, 형사법간의 경계를 넘어선 연구가 이루어져야 하며, 행정학 등 다른 학문분야와의 학제적인 연구도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50)

다섯째, 핵심개념(Schüsselbegriff), 모델(Leitbild)을 중심으로 한 연구이다. 이러한 핵심개 념으로는 정보, 보장국가, (규제된) 자율규제, 책임(분배)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모델로는

‘날씬한 국가’(schlanker Staat) 또는 ‘촉진적 국가’(aktivierender Staat) 등을 들 수 있다.51)

47) Voßkuhle, 앞의 글, S. 21-27.

48) Voßkuhle, 앞의 글, S. 27-29.

49) Voßkuhle, 앞의 글, S. 29-33.

50) Voßkuhle, 앞의 글, S. 33-36.

51) Voßkuhle, 앞의 글, S. 36-39.

여섯째, 각론분야(Referenzgebiet)를 염두에 둔 연구이다. 행정법의 총론과 각론이 긴밀 한 관계성 가운데 연구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각론분야의 개별적인 논의들이 일반적인 문제제기에 개방될 필요가 있으며, 이를 통해서 얻어낸 인식의 일반화가능성을 점검해보 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52)

일곱째, 확장된 체계관점(erweiterte Systemperspektive)이다. 위에서 언급한 조종학적 접근방법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세 단계를 거치는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1단계에서는 유형화된 분석을 통해서 분산된 행정현실을 고찰하면서 질서지우고, 2단계 에서는 새로운 지도이념과 핵심개념을 수립하고, 3단계에서는 새로운 일반화된 법사상, 원리, 가치결정, 조직, 작용형식 등을 개발해내는 것이다.53)

이러한 독일의 ‘새로운 행정법학’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 또한 제기될 수 있다. 우 선 새로운 행정법학이 학제적인 연구를 강조함으로써 행정법학을 사실의 학문으로 변질 시키고 이를 경제학이나 사회학에 용해시켜 그 정체성을 부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 판이 제기될 수 있다. 다음으로 ‘조종’이라는 개념이 모호하다는 비판도 제기될 수 있다.

즉, 공공부분의 관련 행정기관을 포함하여 민간부문의 행위주체들을 조율하기 위한 조직,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적정한 절차적 규율과 소통을 통하여 이들 행정주체들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여 최적의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과연 무엇이며 현실 세계에서 가능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54)

위와 같은 비판을 경청할 필요는 있을 것이나,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시대변화에 대응 하기 위해서는 독일의 ‘새로운 행정법학’에서 강조하고 있는 점들이 적실성이 있음을 부 인할 수 없다. 특히 1) 행정현실에 대한 치밀한 분석, 그리고 2) 이에 대한 학제적인 연구 의 필요성, 3) 법원중심의 권리구제형 행정법으로부터 정책지향형 행정법으로의 전환은

52) Voßkuhle, 앞의 글, S. 39-40.

53) Voßkuhle, 앞의 글, S. 40-41.

54) 이와 같은 견해를 소개하고 있는 문헌으로 김성수, “독일의 新思潮 행정법학 사반세기 – 평가와 전망”, 강원법학 제51호, 2017이 있음.

제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는 행정법 및 규제법 체계를 정립하고자 하는 본 연구에 여러 가지 시사점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행정법학이 규범학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나면 행정학을 매개로 사회학, 정치학, 정책학, 경제학 등과의 학제간 연구를 통하여 종합적 행정과학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견 해55) 역시, 위에서의 논의와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제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는 행 정법체계를 정립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학제적 연구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학제적 연구의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제4차 산업 혁명이 야기하는 다양한 사회현상, 특히 리스크를 분석하는데 유용한 틀을 제공해줄 수 있다. 다음으로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제4차 산업혁명은 입법영향평가 또는 규제영 향평가에서 이야기하는 ‘비용편익분석’(cost-benefit analysis)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왜 냐하면 비용편익분석의 정확성이 확보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통계자료가 뒷받침되는 것 이 필요한데 제4차 산업혁명의 특징 중의 하나인 빅데이터의 구축은 이에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행정학적인 관점에서는 네트워크이론이나 융합행정에 대한 논의 등 이 행정조직법에 많은 시사점을 제공해줄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필요한 범위 내에서 행정학, 경제학, 사회학 등에서의 연구성과 를 소개하고 이를 법학적으로 재해석해나는 작업도 실시하고자 한다.

55) 이에 대해서는 박정훈, “한국 행정법학 방법론의 형성 전개 발전”, 공법연구 제44집 제2호, 2015 참조. 바 람.

제2절 헌법적 기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