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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와 국내제도의 개선방향

문서에서 규제 연구 (페이지 59-64)

1. 한미 FTA의 간접수용 논쟁과 평가

그동안 우리나라는 많은 투자협정을 체결해 왔지만 간접수용에 대한 보상 문제는 관 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국내경제에서 외국인투자의 비중이 그다지 높지 않던 상황에 서 외국인투자에만 적용되는 투자협정상의 내용이라는 점에서 간과된 이유도 있으며, 기본적으로 간접수용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점도 이유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미 FTA 협상과정에서 이 문제는 국내에서 투자협정 분야의 최대 관심사항의 하나로 대두 되었다.17) 이 문제를 비판적인 시각에서 접근하는 측에서는 간접수용이 우리나라의 법 제에 없는 제도로 위헌성이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하며, 국내외 투자가 간의 심각 한 역차별적 성격에 대해 문제점을 제기하기도 한다. 또한 간접수용에 대한 보상 의무 는 정부의 공공정책 추진을 극히 제약할 것이라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한다.

제IV절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법제에서 간접수용 또는 규제수용이란 용 어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이에 상응하는 내용의 제도적 장치가 존재하고 있다. 위헌성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우리나라의 헌법이 법률에 따른 보상, 즉 보상 법률주의를 규정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재산권의 과도한 침해 사안에 있어 국내 법률상의 보상 근거 규 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투자협정상의 간접수용 규정에 의해 보상의 의무가 발생하는 것은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는 만큼 이 는 위헌성에 대한 타당한 주장이라 볼 수 없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헌법재판소의 판결 에서 명시하고 있는 바와 같이 재산권의 과도한 침해에 대해 해당 법률이 보상 근거 규

17) 한미 FTA상의 투자협정 분야의 주요 쟁점이슈로는 간접수용 외에 투자자 대 정부 간 분쟁해결절차, 세이프가드 규정, 이행의무 금지 규정, 투자협정의 적용 범주 등을 들 수 있다. 이에 대한 상세한 설명 은 정인교(2006) 참조.

정을 두지 않는 것이 위헌인 것이다.

국내외 투자자 간의 역차별성 문제의 경우 단정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보상 법률 주의의 선에서만 보면 분명히 역차별성이 존재한다. 외국인투자자는 투자협정에 근거하 여 모든 재산권의 과도 침해 사안에 대해 보상을 구할 수 있는 반면, 국내 투자자는 법 률에서 규정된 사안에 한해 보상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률에 보상 근거 규정이 없는 경우에 국내투자자도 위헌소송을 통해 보상을 추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 상 추구의 대상 범주 측면에서 역차별성을 단정하기 어렵다.18)19) 보상의 의무가 수반되 는 재산권의 과도한 침해 여부의 판단에 있어서도 역차별성을 단정하기 어렵다. 제IV절 에서도 언급했던 바와 같이 헌법재판소가 제시하고 있는 판단 기준이 국제 중재판정부 의 일반적인 판단 기준보다 엄격하다고 볼 수 없다.

보상의 수단과 금액에 있어 역차별성의 문제는 사전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우리나 라에서 재산권의 과도 침해 사안에 있어 보상 방법으로 확대되어 가고 있는 매수청구권 제도가 투자자에게 반드시 불리한 보상 방법이라 단정하기 어렵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수용 시에 공정한 시장가치에 따른 보상을 규정하고 있다. 공정한 시장가치가 무엇인가 에 대해서는 국제적으로 확립된 구체적인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보상금 액 산정 방식20)이 투자협정상의 공정한 시장가치에 따른 보상 원칙에 부합하는지의 문

18) 재산권의 침해와 관련된 사안에 있어 외국인투자자도 헌법소원을 통해 구제를 추구할 수 있는지는 확 실하지 않다. 헌법소원은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만이 청구할 수 있고, 이는 기본권의 주체라야만 헌법소 원을 청구할 수 있다는 뜻이다. 헌법재판소는 ‘국민’ 또는 국민과 유사한 지위에 있는 ‘외국인’은 기본 권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외국인이 주체가 될 수 있는 기본권의 범위는 확실하 지 않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과 같은 ‘인간의 권리’에 관한 기본권은 이러한 범위에 포함 된다. 참정권을 제외한 평등권도 인간의 권리로서 외국인에게도 부여되는 기본권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재산권이 이러한 범위에 포함되는지 여부는 분명치 않다. 재산권 과도 침해 사안에 있어 헌법 소원이라는 구제절차가 외국인투자자에게 부정되는 경우, 투자협정의 존재가 없다면 외국인투자자는 국내투자자에 비해 차별적 대우를 받는다고 볼 수 있다.

19) 익명의 논평가가 지적한 바와 같이 절차적인 측면에서의 역차별성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법률에 보상 규정이 없는 경우 외국인투자자는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 투자협정을 근거로 법원의 선에 서 구제를 추구할 수 있는 반면 국내 투자자는 위헌소송이라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이러한 절차적 측 면에서 국내 투자자에 부과되는 추가적 부담은 역차별적 요소라 할 수 있다.

20) 토지수용으로 인한 손실보상의 경우 손실보상액의 산정은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하되, 개발이익을 배제 하고, 공시기준일로부터 재결 시까지의 시점보상을 인근토지의 가격변동률과 도매물가상승률 등에 의 하여 행하도록 규정되어 있다(지가공시법 제10조 제1항 1호).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보상이 헌법상의 정당한 보상에 부합한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2001. 4. 26).

제는 실제 구체적인 사안이 발생하여 중재판정부의 판단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단정할 수 없는 문제이다.

공공정책 추진의 제약 문제는 비단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투자협정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는 세계의 일부 시민단체들이 공히 제기하고 있는 비판 사항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간접수용의 개념을 자의적으로 지나치게 확대 해석함으로써 비 롯된 비판이라 볼 수 있다. 간접수용은 재산권에 대한 모든 침해에 대해 보상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소유권만 남았을 뿐 재산에 관한 여타의 권리가 거의 소멸된 정도의 피해 가 발생한 경우만이 간접수용으로 인정되고 있는 것이다. 투자협정상의 간접수용 규정 은 공공정책을 추진하되 이러한 정도의 피해에 대해서는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내 용일 뿐이다. 사유재산권 보호를 초석으로 하는 시장경제체제 국가에 있어 공익과 사적 희생 간의 균형이라는 제약하에 공공정책이 추구되어야 한다는 것은 기본적인 원칙이 다. 투자협정상의 간접수용 규정은 이러한 기본적인 원칙을 요구하는 것일 뿐이다.

2. 국내 관련제도의 개선방향

그동안 우리나라가 투자협정에 접근하는 방향은 외국인투자와 국내투자를 구분하는 시각하에 이루어졌다. 투자협정의 내용에 맞게 외국인투자 제도와 환경을 개선하는 것 이 투자협정이 부과하는 과제였다. 그러나 외국인투자가 한국경제를 지탱하는 하나의 축이 될 정도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외국인투자와 국내투자 간의 구분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자본의 국적성이 갈수록 소멸되어 가는 상황에서 투자협정을 통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과제는 단지 외국인투자와 관련된 제도와 환경의 개선이 아니라 전반적인 국내 제도와 환경의 개선이라 할 수 있다. 한미 FTA상의 투자협정은 이러한 시각하에 접근되어야 하며, 간접수용과 관련된 국내제도는 한미 FTA를 계기로 점검이 요구되는 과제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간접수용과 관련된 국내제도의 주요 문제점으로 접근성과 예방성 측면에서의 문제점 을 제시할 수 있다. 접근성의 경우, 법률에 보상 근거 규정이 없는 사안의 경우 재산권 의 과도한 침해를 주장하는 피해자가 보상을 추구할 수 있는 구제절차가 용이하지 않다 는 것이다. 이런 사안의 경우 위헌소송을 통해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구해야 한다. 미국

에서 연방대법원의 헌법 해석을 구하는 것과 유사한 절차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우 리나라의 경우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절차가 종결되는 것이 아니다. 헌법재판소가 재산 권의 과도한 침해로 인정하는 경우에도 보상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보상 근거 법률이 제정되어야 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21) 최초 행정소송의 제기로부터 헌법소원심판의 최종 판결이 이루어지기까지의 절차만 해도 상당히 긴 시간이 소요되며, 여기에 법률 제정절차에 소요되는 기간까지 고려한다면 우리나라의 이러한 구제절차의 실효성은 상 당히 떨어진다고 볼 수밖에 없다.22)

예방성의 경우, 입법자가 재산권에의 침해를 최소화하면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수 단을 강구하는 노력이 부족하다. 재산권 보호에 대한 인식이 전반적으로 높지 않다는 점이 근본적인 이유일 수 있다. 그러나 직접적인 이유는 입법자가 이러한 노력을 하게 만드는 제도적 압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구제를 추구할 수 있는 제도적 상황이 전제되고 있다면, 입법자는 입법 시 재산권 침해 문제에 대해 좀 더 숙고 할 것이다. 보상 사안의 발생에 따른 정부의 재정적 부담이라는 문제에 대해 입법자가 책임감을 갖고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역시 재산권 침해 가능성에 대해 좀 더 숙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는 입법자에 작용하는 이러한 제도적 압 력이 부족하고, 그 결과 과다수용의 위험성이 큰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정책방향은 정부 주도의 개발을 적극 추진하기 위해 재산권 침해 에 대한 보상을 최소화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개발 시대의 이러한 정책방향은 수정되어 야 한다. 정부가 공공목적의 정책을 추구하되 재산권 보호 친화적인 방향에서 그것이 추구되어야 한다. 접근성의 측면에서 피해자가 보다 용이하게 구제를 추구할 수 있는 제도적 절차가 마련되어야 한다. 법원이 재산권의 과도 침해 여부를 판단하고 인정 시 피해자에 대한 보상 지급을 명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에서 근거 법률의 제정을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미 해당 법률에 보상 근거 규정이 있는 경우 이를 계속 따르고,

21) 더욱이 헌법재판은 일반 소송과 달리 국가기관이 그 재판의 결과에 따르지 않아도 이를 강제할 수 없 는 한계가 있다. 헌법재판소가 어떤 법률의 헌법 불합치 판결을 내리고 입법자에 개선 입법을 촉구해 도 입법자가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헌법재판소가 입법자에 강제하도록 할 수단이 없다.

22)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는 기간 또한 제한되어 있다. 즉 헌법재판소 법은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있는 기간을 기본권 침해가 있음을 안 날로부터 90일 이내 또는 그 사유가 있은 날로부터 1년 이내로 제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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