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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적인 기업조직화의 전통

문서에서 규제 연구 (페이지 165-168)

기업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단지 이를 가능하게 하는 법만 만들어지면 기업은 어디 서나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인가? 베버의 지적(1968; 1988: 9, 12, 37)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 다. 부를 축적하려는 욕구, 가능한 한 많은 양의 화폐와 이윤을 추구하려는 노력은 언제

있다(Anderson&Hill, 1979: 26).

어디에서나 있었다. 중국, 인도, 바빌론, 그리고 고대와 중세에도 있었다. 그러나 근대 서양에서와 같이 자신의 지위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관리(경영자)들이20) 계약에 의하여 직책을 맡음으로써 조직되며(Weber, 1968), 경영자를 포함한 자유로운 근로자들의 합리적인 조직체로서 형성되는 기업조직은 서구 자본주의에서만 독특한 것이다(Weber,

1988: 12).21) 그런데 베버가 말하는 서구 기업조직의 조직형태, 즉 관리자를 통하여 조직

과 기업을 관리하는 조직방식은 이미 대리인관계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문경영 을 특징으로 하는 미국이나 현대적 대기업 조직과 동형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서구에서 상업의 역사를 보면 대리인관계를 포함한 상업조직의 발전은 그 뿌 리가 매우 깊다. 예를 들면, 로마시대 때 이미 세금징수를 목적으로 만들었던 기업 성격

의 조합(societates)이 등장하며, 이 조직은 3세기경에는 각자가 자기 몫의 지분을 가지고

참여하는 주식회사 성격의 조합으로 발전하고 있다. 로마인들은 분명 회사법의 기본 골 격을 수립하였고, 인간이 모여 만든 집합체의 성격은 구성원 각자와 완전히 다른 권한 을 가지게 된다는 결론을 이끌어 내었다. 특히, 참여자 또는 조합원들이 관리 책임을 전 적으로 전문관리인에게 위임하기도 하였다(Micklethwait&Wooldridge, 2004: 30-31).

자연인과 조직체를 법적으로 분리함으로써 대리인 문제를 필수적으로 수반할 수밖 에 없는 법인이라는 조직형태 역시 매우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중세 초기 교회법과 로마법을 연구하던 법률가들은 이때 이미 법인(corporate person)이라는 의인(擬人) 현실화 에 눈뜨기 시작했다. 법인(예: 대학, 도시, 종교집단, 상인․무역업자조합 등)은 결속력이 약한 개인이 만들어 낸 집합체이지만 이를 하나의 독립적인 존재로 존립시킴으로써 재산의 상속을 포함해서 사업의 연속성을 다음 세대에까지 지속할 수 있는 수단으로 강구된 것이다. 예를 들면 아직도 런던금융가의 4분의 1, 세 개의 사립학교, 네 개의 시장, 런 던서북구의 유원지 햄스테드 히스를 보유하고 있으며, 런던시의 33개 자치구 중의 하 나인 런던법인(the Corporation of London)은 그 기원이 1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Micklethwait&Wooldridge, 2004: 39-40).22) 만일 이런 법인에서 대리인 문제가 심각하게 발

20) 자신의 지위를 사적으로 이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함(에치오니&할레비, 1999: 48-49).

21) 우리에게도 기업은 있다. 그러나 우리 기업에 대하여 Fukuyama(1995)가 지적하였듯이 모든 자원에 대 한 비개인적 거래가 가능한 신뢰에 토대한 경영방식은 아니다. 여전히 기업의 대주주들은 자녀에게 경 영권까지 함께 승계하고 있다.

22) 런던의 33개 자치구 중의 하나인 the City of London은 런던법인에 의하여 관리된다. 런던법인은 잉글

생하였다면, 즉 선출된 시장이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남용하 는 사례가 빈번한 상황에서도 이러한 자치가 지속될 수 있었을까? 시정에 대한 내부와 외부의 감시와 감독기능이 강화되면서 자치적인 지배구조는 점점 퇴색할 수밖에 없었 을 것이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발전되고 있던 자율적 조직화의 전통은 상대적으로 위험성이 높 고 대규모적인 투자를 필요로 하면서도 동시에 대리인 위험도 클 수밖에 없었던 16-17 세기의 수탁회사(Chartered Company)23)의 발전에 토대를 제공하였다. 수탁회사들은 이미 1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공개시장에서 주식을 사고 팔수 있는 관행에 따라 주식을 거래하고 있었으며, 투자자의 책임을 유한책임으로 제한함으로써 거의 현대적인 조직형 태를 갖추었다. 그런데 사업의 위험이 컸던 만큼 이를 무리 없이 소화해 내기 위하여 관리체계는 더욱 정교화되었다. 예를 들면, 동인도회사는 규정을 마련하고, 자금 모집과 상거래 내역을 철저히 감독하는 시스템에서 다른 유사기업보다 훨씬 진일보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의결권을 가진 주주들이 모두 참석하는 총회와 총회가 선출한 24명의 이 사들로 구성되는 이중적 감독체제를 이미 갖추고 있었다. 또한 종업원의 부정에 대비하 기 위하여 대주주의 자식들을 선발하여 관리업무를 맡겼으며, 종업원들에게 월급을 후 하게 주어 애사심을 강화하고, 매일 빠짐없이 교회에 나가 근면성을 키우고 술, 도박, 방탕한 생활을 철저히 금지하기까지 하였다(Micklethwait&Wooldridge, 2004: 43-50).

지배구조를 놓고 보면, 동인도회사는 전문경영인들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었다 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공무원을 공복이라고 부르기 훨씬 이전에 동인도회사의 관리인 들은 총칭하여 공복이라고 불렸으며, 이 회사의 규율은 “모든 것을 보고하고, 모든 것을 기록”하는 정부와 동일하였다. 아담 스미스가 동인도회사 등 수탁회사에 비판적 견지를

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기구로서 중세시기에 프랑스의 모델에 기초하여 만들어졌으며, 시장이 최고 의사결정자이다. 이 법인은 의회보다 더 일찍 의회구조를 채택하였다. 시장과 24명의 행정장관 (Aldermen)과 112명의 의원에 의하여 통치된다. 이들은 모두 독립적으로 그리고 자원하여 봉사한다.

특히 행정장관들은 중세 길드의 자손들인 Livery Companies에 의하여 아직도 선출되고 있으며, 또한 행정장관회의(The Court of Aldermen)는 비교적 최근까지도 시정에 대하여 상당한 실질적인 권한을 행 사해 왔다(홈페이지 참고).

23) 특정한 식민지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무역에 대하여 왕으로부터 독점적 면허(charter)를 받음으로써 만 들어졌던 회사. 예를 들면, ‘동인도’, ‘모스코비’, ‘호드슨 베이’, ‘아프리카’, ‘버지니아’, ‘메사추세츠’

등이 대표적인 수탁회사들이었음.

제시한 이유는 주식회사가 전문관리인들에 의하여 관리되기 때문에 주주 본인만큼 열 성적일 수는 없으며, 결과적으로 개인사업가에 비하여 태생적으로 비효율적일 수 있다 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들 수탁회사들은 지구 반대편과 무역을 해야 한다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성과를 보여 주었으며, 수탁회사가 개인기업보다 시장에 훨 씬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Micklethwait&Wooldridge, 2004: 63-64). 몽테스키외가 지적하였듯이(법의 정신, XX권 7장) 영국인들은 신앙․상업․자유 세 가 지 사항에서 다른 민족을 능가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물론 영국의 프로테스탄트와 미국의 프로테스탄트가 다르고 영국의 민주주의와 미국의 민주주의가 다르듯 이러한 영국의 정신과 제도들이 동일하게 미국에 전수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문화평론 가 피들러(Leslie A. Fiedler)의 말대로 미국은 나라의 건국 이유부터가 상업주의적이며(김

성곤, 2003: 4), 이런 상거래 관계에서는 영국식의 법치와 정의의 전통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음을 부인할 수 없다(Huntington, 2006: 62; Ferguson, 1984: 711; 황혜성, 1990: 1). 뉴잉글랜 드 지역이나 서부개척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치의 전통의 근원을 그 모태라 할 수 있는 영국적인 경험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영국의 신앙․상업․자유의 전통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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