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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30년, 독일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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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7호 2020 September

경제협력이 시작되었고, 1980년대에는 도시 간 사회문화교류도 이루어졌다.1) 동서독 도시 간 자매결연과 이를 기반으로 한 교류를 통해 동서독 주민들은 상호 이해에 대한 폭을 넓히 고 깊이를 더할 수 있었다.

1980년대 후반기 동독경제가 침체국면에 들면서 동독체제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1989 년 가을 라이프치히에서 시작된 시민봉기에 서 11월 9일의 베를린장벽 붕괴를 거쳐 1990 년 10월 3일 법적인 통일의 완성까지, 1년 동 안의 통일과정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드라 마 그 자체였다. 1989년 10월 9일 동독 남부의 중심도시인 라이프치히에서 대규모 민주화 시 위가 발생하였다. 이어서 동독정부의 여행자 유화 조치 관련 시책발표 해프닝으로 11월 9

일 베를린장벽이 개방되었다. 1990년 3월 18일 동독지역에서의 첫 번째 자유 총선이 있었으 며, 1990년 5월 18일 ‘통화 · 경제 · 사회통합에 대한 국가조약’이 동서독 간에 체결되었다. 이 조약에서는 동서독 화폐의 1:1 통합비율이 결정되었다. 1990년 9월 12일 전체 독일의 완전한 주권인정을 위해 모스크바에서의 2+4(동서독+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회담이 개최되었고 1990년 10월 3일 독일 통일이 공포되었다.

통일 30년의 변화

지난 30년 동안 동독지역의 변화를 요약하자면, 주민들이 서독지역으로 이주하여 인구가 줄 어들었지만, 소득이 증가하여 동서독지역 간의 경제적 격차가 크게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통일 직전인 1989년 동독의 인구는 서독의 약 4분의 1 수준이었다. 2018년 기준으로 독일 전 체 인구는 약 8302만 명이며, 동독 인구는 약 5분의 1 수준인 1619.6만 명이다. 1991부터 2017 년 동안 동독지역에서 서독지역으로의 이주가 370만 명, 서독지역에서 동독지역으로의 이주 가 250만 명으로 동독지역은 120만 명의 순인구 감소를 경험하게 되었다(Der Spiegel 2019,

1) 분단기간 중 동서독 도시 간 최초의 공식적인 자매결연은 1986년 9월 서독의 자를루이(Saarlouis, 인구 약 4만 명)와 동독의 아이젠휘텐슈타트(Eisenhuettenstadt, 인구 약 5만 명) 간의 체결이었음. 동서독 도시 자매결연의 대부분은 시장(市長)의 강력한 의지라기보다는 시민들의 바람/요청으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음. 독일의 시사주간지 ‘디 자이트(DIE ZEIT)’는 이것을 ‘아래 로부터의 외교’라고 묘사하였음(http://www.zeit.de/2016/02/staedtepartnerschaftenost-west-muentefering-interview).

<그림 1> 통일 이전의 서독과 동독

자료: Manfred Kühn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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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한승완 2020, 5에서 재인용). 1990년부터 2008년 사이에 동서독지역 간 인구 이동만으 로는 180만 명이 동독지역에서 감소하였는데, 2009년부터 2017년 사이 동독에서 서독으로 의 이주에 따른 순인구 감소 규모가 60만 명 감소한 것은 그만큼 인구 이동이 안정화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2013년부터는 베를린을 포함한 동독지역의 인구 이동이 순증가를 보였다. 2017년에는 처음으로 베를린을 제외한 동독지역으로의 이주가 서독지역으로의 이 주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역전현상은 2018년에도 지속되었다(한승완 2020, 5).

지난 30년 동안 독일 내에서 동독지역과 서독지역의 경제적 격차는 크게 줄어들었다.

2018년 베를린을 포함한 동독지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만 2108유로로, 서독지 역 4만 2797유로의 75%에 도달하였다. 동독지역의 1인당 국내총생산은 대략 EU의 평균치 에 해당하는 수준이다(Bundesministerium für Wirtschaft und Energie 2019, 12; 124).2) 2018년 기준으로 정규직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베를린을 포함한 동독지역이 2790유로로, 서독지역 3340유로의 8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한승완 2020, 5). 최저임금은 동독지 역과 서독지역 간의 격차가 거의 없어지게 되었다. 2018년 기준으로 동독지역의 실업률은 6.9%, 서독지역의 실업률은 4.8%를 기록했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동서독의 실업률 격차가 10%포인트에 달했으나 2018년 현재 약 2.1%포인트에 불과하다(Bundesministerium für Wirtschaft und Energie 2019, 37).

2) 베를린을 포함한 숫자이고, 베를린을 제외할 경우 2만 9664유로로 서독지역의 69%(Bundesministerium für Wirtschaft und Energie 2019, 12; 124).

<그림 2> 통일 이후 동독지역과 서독지역 간 인구 이동

자료: 독일 연방통계청 자료를 토대로 할레경제연구소(IWH 2019)에서 재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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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독에서 동독으로 인구 이동 동독에서 서독으로 인구 이동 균형

467호 2020 September

통일 30년의 성과

지난 30년간 독일이 통일을 통해 이룩한 가장 큰 성과는 동서독 간의 물리적, 사회경제 적 격차가 크게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독일 내무부장관은 인터뷰를 통해 동서독 간의 구조적 격차(structural differences)가 앞으로 10년 이내에 사라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3)

무엇보다도 지난 30년 동안 동독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이 높아졌다는 점은 분명하다. 필 자가 독일 베를린 공대(TU Berlin)에서 유학했던 1992년 당시 첫 숙소는 동베를린 판코브 (Pankow)의 5층짜리 아파트였는데, 과거 공무원들이 많이 살았다는 이곳에서 방 한 칸을 사용하였다. 외관은 1990년대 우리나라의 주공아파트와 비슷하였지만 내부 설비가 허술했 다. 베니어합판으로 된 현관문, 타일 벽지가 붙여진 욕실의 모습은 생경함 그 자체였다. 아 파트 인근의 노후한 주택들은 석탄난방을 해서 저녁이면 메케한 석탄 냄새가 진동하기도 하 였다. 집에 전화도 없었는데, 집주인 이야기로는 설치 신청을 했지만 2년 정도 후에나 설치 순서가 돌아올 것 같다고 하였다. 덕분에 전화 한 번 하려면 10분 정도 걸어 나가 공중전화 를 이용해야 했다. 동독의 수도였던 동베를린이 이 정도였으니 나머지 지역의 주거여건은 충 분히 상상하고도 남을 것이다. 필자가 2015년 다시 베를린의 판코브를 방문했을 때, 옛 동베 를린의 주거지는 이제 더 이상 서베를린지역과의 차이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하게 정 비되어 있었다. 이러한 성과가 나타난 것은 연방정부의 대규모 도시개발 투자 때문이었다.

연방정부는 1990년부터 2018년까지 동독지역 도시개발지원 프로그램에 88억 5천만 유로를 투입하였는데, 이것은 독일 전체 도시개발지원 프로그램 투자액의 59%를 차지하는 것이다 (Bundesministerium für Wirtschaft und Energie 2019, 66). 인구비율이 15%에 불과한 지 역에 막대한 재정투자가 이루어진 것이다.

교통 분야도 괄목할 만한 개선이 이루어졌다. 통일 이전에는 철도로 세 시간이 넘게 걸리 던 베를린-라이프치히 구간이 고속철도 덕분에 한 시간대로 좁혀졌고, 동독지역 주민들은 어디에서나 자동차로 30분 안에 고속도로망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서독지역 본(Bonn)에 서 동독지역 라이프치히(Leipzig) 간의 고속도로 통행시간이 통일 이전 9시간에서 현재는 5시간으로 축소되었다. 필자 가족은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라이프치히에서 개최된 우리 나라와 프랑스와의 예선전을 보기 위해 일요일 오후 본에서 승용차로 출발하였는데, 현대화 된 고속도로 덕분에 평균 시속 100km로 달려서 무사히 경기 시간에 맞추어 경기장에 도착 할 수 있었다.

주거와 교통 분야의 이러한 성과들은 통일 이후 추진된 연방정부의 적극적인 개발 프로젝

3) https://www.dw.com/en/german-unity-day-reunification-is-ongoing-process-says-merk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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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에 따른 것이다. 특히 통일 이후 독일 연방정부가 추진한 ‘통일독일 교통 프로젝트’4)는 동독지역 교통인프라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데 기여하였다. 연방정부가 1991년 4월에 결의 한 총 390억 유로(약 46조 8천억 원) 규모의 이 프로젝트는 9개의 철도 프로젝트와 7개의 고 속도로 프로젝트, 1개의 수로 프로젝트로 구성되었으며, 2018년 말까지 373억 유로가 투자 되었다(Bundesministerium für Wirtschaft und Energie 2019, 60). 철도 분야의 9개 프로 젝트 가운데 프로젝트 2번(함부르크-베를린)부터 7번(베브라-에너푸르트)까지 6개의 프로 젝트가 완료되었다. 프로젝트 8번과 9번은 현재 공사 중인데, 일부 구간은 완료되었다. 프로 젝트 1번(뤼벡-스튜랄준트)은 경제성 부족으로 일부 구간의 보수와 전철화 외에는 본격 추 진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의 동독지역 교통시설 개발은 ‘연방교통망계획 2030’에 따라 진 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통일 초기부터 연방정부는 동독지역의 인프라 개발을 위해 대규모 투자를 하였는 데, 1990년대 투자의 초점은 도로, 상수도 그리고 지역 에너지공급망 건설이었다. 에너 지부문에서는 신재생에너지부문이 가장 큰 성과를 보이고 있다. 이 부문에서 전력 생 산과 일자리 그리고 연구개발 혁신이라는 성과를 거두었다(Bundesministerium für Wirtschaft und Energie 2019, 58). 교통부문에서는 1991년부터 2018년까지 독일 전체 교통부문 투자액 3220억 유로 가운데 약 32%인 1030억 유로가 동독지역에 투입되었다 (Bundesministerium für Wirtschaft und Energie 2019, 60). 이러한 인프라 투자를 바 탕으로 통일 이후 동독지역의 대도시들은 통일 이전보다 더 경쟁력 있는 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특히 교육과 문화관광, ICT 등을 중심으로 라이프치히와 드레스덴은 동독지역 남부 의 경제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성과와 함께 남겨진 과제

지난 30년 동안 동독지역과 서독지역 간의 외형적 격차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내적 격차 도 그만큼 줄어들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사회통합이라는 관점에서는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 은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은 2019년 독일통 일 29주년 기념식에서 “독일통일은 한 번에 완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속되는 과정”이 라고 하였다.5) 동독지역의 경제적 개선에도 불구하고 2015년 이후 대규모로 유입된 난민

4) 통일독일 교통 프로젝트(Verkehrsprojekt Deutsche Einheit)는 통일 이후 동서독 간의 대규모 교통망 건설계획으로, 17개의 교통망 건설 프로젝트를 제시하고 있음. 이 프로젝트의 당초 총 투자계획액은 약 570억 마르크이며, 철도부문에 9개 프로젝트 300억 마르크(52.6%), 도로부문에 7개 프로젝트 230억 마르크(40.4%) 그리고 수운부문에 1개 프로젝트 40억 마르크(7%)를 투자하는 계획임(Bundesministerium fuer Verkehr und digitale Infrastruktur 2019).

5) https://www.dw.com/en/german-unity-day-reunification-is-ongoing-process-says-merkel/

467호 2020 September

수용 문제가 동독지역에서 민심의 이반을 낳

수용 문제가 동독지역에서 민심의 이반을 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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