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 중국인민공화국의 IAU 가입

문서에서 목 차 (페이지 103-108)

소박하나 인상에 남는 개회식

별항 2 : 중국인민공화국의 IAU 가입

IAU의 정식회원국으로 중국을 대표하는 나라는 처음부터 대만(중화민국)이었 다. 1949년에 장개석 정부가 모택동군에 쫓겨서 대만으로 옮긴 후에도 북경의 중국인민공화국(China PR)은 천문연맹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고 있다가, 북한보 다 한참 늦은 1982년이 되어서야 제18차 총회에 중국을 대표하는 국가로 가입 신청을 했다. 이 때문에 IAU집행부는 난처하게 되었다. 1국에 두 회원을 둘 수 없는 규정 때문에 지금까지 IAU회원으로서 의무를 다 해 온 대만의 회원권을 취 소하고 중국인민공화국을 받아 드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국제정 세로는 북경정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누구의 제안인지 는 나로서는 알 수 없으나, 조건부로 중국인민공화국을 임시 회원으로 받아 드리 기로 하고, 3년 후인 제19차총회에서 최종결정을 하기로 결의했다. 그래서 중국 에서 두 사람(Wang Shouguan과 Ye Shuhua)이 참석한 것이다.

개회식이 끝난 후 인사말을 한 Wang Shouguan선생은 지금도 살아계시는데, 중국에서는 현대천문학자의 상징적인 인물로 원사(院士)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는 1923년생이다. 1987년 북경 IAU Asia-Pacific Regional Meeting 이후부터 몇 차례 만난 적이 있는데, 영국 신사라는 인상을 주며 말수가 적다. 그의 붓글씨는 독특해서 중국에서 열리는 특별 행사나 기념물에 그의 글씨가 자주 등장할 정도 이다.

사진 2-4. Wang Shouguan(王綬琯)선생께서 나의 이름(逸星)의 逸자와 星자를 앞에 두고 지은 시와 그의 自選集 『塔里窺天』의 표지

Ye Shuhua(Madam Ye 또는 葉女史라고 부른다)는 그 당시 샹하이천문대 대 장이었고 원사(院士)라는 칭호도 가지고 있었다. 나이는 Wang선생과 비슷한데, 이 분도 영어를 잘 구사한다. 체구는 작은 편이나 Wang선생과는 달리 성격이 아주 활달하다. 대회 기간 내내 서양 유력 인사들에게 지나칠 정도로 접근하고 있구나 하는 인상을 받았다. 그때만 하더라도 중국은 어려운 시기였으므로 천문 대를 유지 발전시키려니까 아쉬운 일이 많아서 그랬겠지만, 중국이란 대국을 대

표해서 온 사람으로서는 좀 애처로워 보였다. 확실한 정보는 아니지만, 그녀는 중국전인대회에 샹하이를 대표하는 위원으로도 활약했다고 한다.

개회식이 끝나자 이 지역의 합창단 두 팀의 공연이 이어졌다. 이미 주위는 어두워지기 시작 한 시각이라 조명이 무대를 비추기 시작했다. 그런데 개회식이 전부가 아닌데도 많은 사람들 이 이 극장을 떠나고 있다. 다음 순서가 있다는 것을 잘 알리지 못해서였을까? 하지만 나와 아내는 Wood 교수 부부와 나란히 끝까지 앉아 있었다. 옛날 복장차림의 합창단원들의 우아 하고 생소한 모습과 그 분위기에 알맞은 아름다운 선율에 취했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의 역사 적 무대의 한복판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에 잠긴 황홀한 경험을 했다.

사진 2-5. Indiana대학의 Frank Edmonson(1912-2008)교수 부부(왼 쪽), 나의 아내 이순희(중앙), Florida대학의 Frank Bradshaw Wood(1915-1997)교수 부부가 함께 포즈를

취했다. (나일성 찍음)

Close binary stars는 Commission 42에 속하는데, 이 총회에서는 두 번의 Session이 있 었다. 이 중 한 Session에서 나는 F.B. Wood와 강영운(姜榮運)과 세 명의 이름으로 식쌍성 AR Lacertae의 관측결과를 발표했다(별항3 참조). 이 때 Commission 42의 President는 South Africa의 Brian Warner였다. 이 양반은 말을 어찌나 빨리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데다가, 인쇄된 프로그램도 준비하지 않은 채 쪽지 한 장을 들고 발표회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회의에 처음 참석한 나는 불편하기 그지없었고 또 실망도 컸다. 나는 IAU총회니 까 여러 면에서 으리으리하리라고 기대했는데, 알고 보니 그저 그런 거구나 싶었다. Warner 와는 그 후 30여 년간 여러 가지 일로 가깝게 지내는 사이가 되었지만, 지금도 나는 그의 영 어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때가 많다. 그는 Oxford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줄곧 남아 프리카의 Cape Town대학에서 교수로 지내고 있다.

Athens 공항으로 가는 길은 Patras 섬과 아테네를 잇는 긴 다리를 LOC가 제공한 버스를 탔다. 그런데 버스를 기다리는 곳에서 유난히 잘 생긴 여자라고 생각했던 합창단원 한 사람을

만났다. 반가와서 인사를 하고, 개회식 때 부른 합창의 CD를 살 수 없겠느냐고 물었으나, 허 탕이다. 그녀는 나의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고 그냥 미소만 짖는다.

버스에서는 또 다른 반가운 분을 만났다. 대회 기간에는 마주치지 못했는데, 이렇게 마지막 날에 버스를 기다리는 곳에서 만나다니. 그는 Canada Dominion Astrophysical Observatory의 Alan H. Batten(1933- )박사다. 내가 Penn대학에서 공부할 때 Seminar 강 사로 오신 일이 있었는데 그때 내가 AR Lacertae의 Spectrum을 찍어 달라고 부탁한 일이 있었다. 그곳의 망원경은 대형이기 때문에 Spectrum 관측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는 근접 쌍성계의 spectrum catalog도 발간하고 있었던 권위자였기 때문이다. 고맙게도 몇 달 후에 2-3 meter 되는 긴 trace paper에 trace한 종이와 건판 2장을 보내 주셨다. 그런데 부끄럽 게도 그 귀한 자료를 분석할 능력이 없어서 지금까지 사장시키고 있다.

사진 2-6. Baltimore총회에서 만났을 때의 Alan Batten 박사. (이순희 찍음)

아테네에서는 1박을 했어도 다음날 비행기 시간 때문에 상점가를 잠깐 구경했을 뿐 명승지 는 별로 가 본 기억이 없다. 남은 시간이 별로 없어서 서둘러 비행장에서 아내와 혜어졌다.

아내는 오던 길로 돌아가기 위해 Roma로 향했고, 나는 2시간이나 연발인 Swiss Zurich행 비행기를 타려고 찜통 속과도 같은 공항 건물 안에서 무척 고생했다.

---별항 3 : AR Lacerte와 나

최초의 국산 관측자료로 광도곡선을 완성하고 광도변화를 연구한 나와 강영운의 논문이 PASP(Publication of the Astronomical Society of the Pacific)에 게 재되었다. 하지만, 나는 이 issue가 한국으로 우송되기 전에 출국했으므로 보지 못했었는데, 공교롭게도 이 논문이 있는 issue가 총회 회의장 Lobby에 전시되었 다. 이 논문은 그때까지 국내에서 관측한 자료를 가지고 만든 논문으로는 처음 국제학술지에 게재된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논문 제목은 “Photoelectric photometry of the RS Canun Veneticorum-type

close binary AR Lacertae”이며, data가 포함되어 있어서 모두 20 page나 되 었다.

이 AR Lacertae라는 식쌍성은 1960년대에서 80년대까지 쌍성 연구가들에게 꽤 오래 주목을 받아온 관측대상이었다. 그 이유는 별에도 태양처럼 표면에 흑점 이 있는데 그 크기가 대단히 크기 때문에 별의 광구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 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흑점을 “dark spot”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많은 사람들이 그 실체를 탐색해 왔었지만, 이것을 검출하려면 single star로는 불가능하기 때 문에 식을 일으키는 쌍성의 광도 변화를 통해서 찾으려고 하였다. 그래서 이런 종류의 식쌍성 중에서 AR Lacertae가 좋은 대상으로 각광을 받게 된 것이다.

이 별은 U of Penn에서 함께 공부했었던 이석우 선생이 1968년에 관측한 일 이 있었다. 당시 Robert H. Koch교수가 독창적으로 제작한 CN filter로 U of Penn의 Flower and Cook 천문대에서 관측한 것이다. 그가 학교를 떠나면서 그 자료를 나에게 주었는데, Koch 교수가 CN 관측이니까 자기와 함께 IBVS에 제출하자고 제안해 왔다. 그러나 나는 그의 제안을 거절했는데, 이유는 그가 나 의 지도교수이기는 하지만, 나는 큰 논문을 쓸 때 이용하려고 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이 CN filter가 없으므로, 당시 연세대학교 캠퍼스에 설치 한 40-cm 반사망원경을 이용하여 UBV 관측을 했다. 그 때의 서울의 밤하늘이 7등성 정도의 밝은 별을 광전관측 하는데 그리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남들이 아 마츄어용 망원경이라고 비하한 망원경으로 열심히 관측했다. 그런데 이 AR Lacertae의 공전주기가 1.98일로 2일에 가깝기 때문에 매일 밤 관측해도 광도 곡선 상에 나타나는 위상(phase)은 약간씩만 변화할 뿐이다. 그래서 한 해의 관 측 season(별마다 다르지만, 이 경우에는 약 4개월)이 끝나도 Light curve 전체 를 한 천문대에서는 완성할 수가 없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이 쌍성은 “dark spot” 때문인지 광도도 변한다. 그래서 다음 해에 관측을 해 보면, 다른 식쌍성 의 경우와는 달리, 전 해의 광도와는 연결이 되지 않는다. 결국 한 해에 Full curve를 완성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경도가 180도 정도 다른 지역에 있는 관측소와 공동관측을 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국제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부각 시키는 내용을 이 IAU의 C42(Close Binary Stars)에서 발표한 것이다.

Nha와 Kang의 이 논문에는 U 관측은 제외시켰다. 아무리 좋은 날이라 하더 라도 역시 서울의 밤하늘은 가장 짧은 파장인 U 영역은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 다. 그래도 다행히 이 해에 그때까지 아무도 성공하지 못한 AR Lacertae의 제1 극심과 제2극심을 동시에 관측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참고로 이 AR Lacertae의 “dark spot”에 관해서는 그 후 강영운의 Ph. D. 논문에서 밝혀지고 있다.

사진 2-7. 강영운과 나일성

사진 2-8. 1976년 10월–1977년 2월이 이 AR Lacertae를 관측할 수 있는 계절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최초로 광전관측한 AR Lacertae의 BV 광도곡선이다. 이 한 계절에 제1극심과

제2극심을 관측할 수 있었던 것은 큰 성과였지민, Phase가 0.12-0.32와 0.57-0.8 되는 부분을 관측 못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셋째 묶음》=

제19차 IAU 총회(New Dehli, INDIA), 1985-1988

문서에서 목 차 (페이지 103-108)